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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완의 인간탐험

여든둘 감동 시인 李文吉

“평생 써도 남는 詩는 한두 편”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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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詩를 보면 무서워 떨었고, 아무것도 아닌 시를 써놓고 명시를 썼다고 떨었어. 고등학교 2학년 때인가, 동네(대구 방천시장)에 바보가 있었어. 바보의 말이 뭔고 하니, ‘아아아아아, 어어어어어’밖에 못 해. 말을 못 하니까. 그 소리를 듣고 그대로 시를 썼다꼬. ‘아아아아아, 어어어어어’라고. 그 시를 쓰고 시에 대해 눈을 뜨게 됐다꼬. 또 그 시를 쓰고 내가 사나흘 동안 떨었다꼬.”

⊙ “詩 쓰는 기(게) 얼마나 어려분데(어려운데) 고생, 고생, 무지무지하게 고생이지”
⊙ “50년 전 일들이 내 가슴에 맺히(맺혀) 있는 거, 그걸 시로 풀어내는 거라꼬”
⊙ “나는 영원히… 하느님보다 오래 살고, 우주보다 오래 살고… 그 적막이… 나를 살리는 거야”
⊙ “김구용 선생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 ‘좋은 詩를 보면 떨리고, 팍 고꾸라진다’”
⊙ 10년 가까이 병든 아내 구완하며 틈틈이 詩作. “아내의 맑디맑은 눈, 못 잊어”

李文吉
1939년생. 서라벌예대 문창과 수료. 서사시집 《복개천》, 시집 《허생(許生)의 살구나무》 《내 잠이 아무리 깊기로 서니》 《하늘과 허수아비》 《꿈도 꾸지마라》 《오목눈이 고향》 《눈물선》 《떠리미》 등 다수. 대구문학상 수상
  노(老)시인이 쓴 시를 우연히 읽게 되었다. 이문길(李文吉), 1939년생이니 올해 여든둘이다.
 
  기교를 거둬낸 시(詩)에 행간마다 여운이 느껴졌다. 그의 시집을 구해 읽고 또 읽었다. 버스 안에서 전철 안에서 읽었다. 양치질하며 읽었다. 저녁 혼자 밥 먹을 때 꺼내 읽었다. 시인이 누군지 점점 궁금해졌다.
 
  시 ‘이상하다’를 소개한다.
 
  내가 장가갈 때는
  아내는 자기 엄마를 닮았다
 
  고생하며 자식 낳고 살 때는
  장인어른을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요양사 선생님이
  어떻게 둘이 그렇게 닮았느냐고 해서
  자세히 보니
  정말 나를 닮았다
 
  아내를 훨체어에 태우고
  아파트를 한 바퀴 돌아와
  눕혀 놓고 들여다보니
  오늘 아내는 내 아버지를 닮았다
 
  이상하다
  자기 엄마를 닮은 아내가
  어떻게 내 아버지를 닮았는지
  볼수록 이상하다
 
  -시 ‘이상하다’ 전문

 
  시 속 화자(話者)는 아내를 병간호하고 있다. 요양사 선생님이 어떻게 둘이 그렇게 닮았느냐고 해서 자세히 보니 정말 닮았다. 시인은 문뜩 깨닫는다. 자기 엄마를, 장인어른을 닮은 아내가 나를, 내 아버지를 닮아가는 세월에, 생의 비밀에 놀란다.
 
이문길 시인이 펴낸 시집들.
  시 ‘경비원’을 읽었다. 화자의 시선은 무덤덤하다. 수사가 없다. 그저 보여준다.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낀다.
 
  이 빠진 가위가 세 개 있고
  제각각 가는 시간이 다른 시계가
  다섯 개 있고
 
  잡음 때문에 잘 들리지 않는
  라디오가 두 개 있고
  노래 테이프를 물고 있는 오디오도 있고
 
  화장실 구석엔 줄 끊어진 배드민턴 채도 있고
  줄 없는 낚싯대도 있고
  창문가 책상 위엔
  주워모아 만든 산세베리아 화분이 있고
  먼지 앉은 조화도 있다
 
  없는 것이 없는 경비실엔 TV가 없고
  여름에는 너무 덥고 겨울에는 너무 춥고
 
  하루하루 사는 것이 심심해서
  수염이 더 늙고
  대부분 무엇인지도 모를 약을 한웅큼씩 먹는다
 
  자주 주인이 바뀌는 경비실
  늙은 경비원들이 밥을 짓고
  국을 끓이며 살고 있다
 
  무엇이 틀렸는지
  어제는 김씨가 그만둔다고
  신던 구두도 버리고
  밥솥도 버리고 갔다
 
  -시 ‘경비원’ 전문

 
  화자는 아파트 경비원의 일상을 바라본다. 경비실에 잡다한 물품들로 가득하다. 주민들이 버린 물건을 하나둘 모은 것이다. 좁디좁은 경비실은 너무 덥거나 너무 춥다. 그래서 경비원이 자꾸 바뀐다. 어제는 신던 구두, 밥솥을 버리고 김씨가 도망치듯 그만두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시 ‘이별’은 고향 지인의 전화로 시작된다.
 
  오랜만에
  고향에서 조 선생의 전화가 왔다
 
  “이 선생 잘 계시는지요.”
  힘없는 목소리였다
  나는 손자를 기르느라 힘들어하던
  조 선생의 여윈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문길아 뭐하노.”
  친구 칠문이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나는 전화하면 반드시 만나자고 하던
  소리가 없어 의아해하며
  도봉산 입구 두붓집을 생각했다
 
  아아 나는 그때 그 전화가
  세상 떠난다던 마지막 하직인사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전화 받은 그날이
  세상에서 제일 슬픈 날이 된 것을
  알지 못했다
 
  보고 싶다
 
  -시 ‘이별’ 전문

 
  화자는 고향에 사는 조 선생의 전화를 받는다. 손자를 기르느라 힘들어하던 조 선생의 모습이 떠오르고, 문득 친구 칠문이의 목소리가 교차된다. 전화하면 반드시 만나자던 친구가 그날만은 만나자는 말이 없어 의아해했다. 얼마 후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그 전화가 세상 작별인사라는 것을 알았다. 절제의 시인도 마지막 행에 속마음을 드러낸다. ‘보고 싶다’고.
 
 
  아내가 채소 장사해서 번 돈으로 마련한 첫 시집
 
이문길 시인의 거실 벽에 걸린 아내 홍노미씨, 외손주와 찍은 사진.
  이문길 시인을 만나기 위해 지난 5월 4일 오후 경기도 의정부로 향했다. 기자가 수소문해 얻은 정보는 이렇다.
 
  노시인은 학창시절을 대구서 보내고 서라벌예대(지금의 중앙대 예술대) 문예창작과를 수료했다. 산골짝 외딴집에 살며 아내가 채소 반티(함지) 장사로 돈을 벌어 첫 시집 《허생(許生)의 살구나무》를 펴낸 게 1981년. 이후 지금까지 15권 정도의 시집을 펴냈다. 제2회 대구문학상을 받았다. 지금은 아파트촌(村)으로 변한 대구 수성구 범물동 인근 야산을 개간해 떼잔디를 심었었다. 효성여대(지금은 대구가톨릭대) 원예학과에서 꽃과 나무를 길렀다. 교수나 교직원은 아니었다.
 
  시인의 아내 홍노미(洪老美·작고)씨는 10년 가까이 파킨슨씨 병을 앓았다. 치료를 위해 고향을 떠나왔다. 서울 아산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호전되지 않았다. 2018년 12월, 눈이 많이 오던 날 시인의 아내는 세상을 떠났다. 투병 기간이 길었던 만큼 아내에 대한 시가 많다.
 
  아내는 저녁 무렵이면
  잠시 눈을 떠 세상을 살피고
  다시 눈을 감는다
 
  내 보았나
  물어도 대답이 없다
 
  아내는 남은 세상이
  모두 멀리서 온
  손님 같은가 보다
 
  눈 뜰 때 눈 맞추려
  애써도 늘 헛일이다
  아내 보고 너무 자지 마라
  해도 대답이 없다
 
  다행히
  오늘 저녁 아내의
  숨소리 고르다
 
  -시 ‘저녁 무렵’ 전문

 
  아내는 점점 몸이 굳어갔다. 대화도 불가능했다. 시인이 직접 대소변을 받아야 했다. 시인은 그런 아내를 위해 몸부림쳤다. 시 ‘병’에는 아내가 낫지 못할 병에 걸리자 하느님을 욕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아내가 낫지 못할 병에 걸리자
  나는 하느님을 욕했다
 
  ×× 같은 것아 ×× 같은 것아
  ×××××××× 같은 것아
  내 마누라 데려가는 날이
  네 죽는 날이다 하고 욕했다
 
  그런데 점점 아내의 병이 깊어지는
  어느 날 드디어 요양사 여인이 한 사람 왔다
  예수 믿는 여인이었다
 
  나는 아무에게도 말 안 했지만
  알고 있었다
  ×××××× 같은 것이
  그 여인을 보내 주었다는 것을
  그러나 그 여인은 모르고 있었다
 
  나는 천기를 누설 않기로 했다
  아무에게도 말 안 하기로 했다
 
  -시 ‘병’ 전문

 
 
  “서정주 선생은 나를 알아주셨어”
 
  기자와 만난 노시인은 구수한 경상도 방언을 썼다. 정감 있게 들렸다. 고향을 떠나온 지 십수 년이 넘었지만, 입엔 여전히 고향 산천 어디를 헤매는 듯한 말이 흘러나왔다. 문장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았다.
 
  “시가 너무 감동적이어서 찾아왔다”고 인사하니 시인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시 쓰는 기(게) 얼마나 어려분데(어려운데) 고생, 고생, 무지무지하게 고생이지.”
 
  ― 그렇습니까.
 
  “10년 전에 것도(시도) 끄잡아(끄집어) 내서 쓰고… 뭐, 개코도 사람들이 알아주지도 않지만…. 하하하, 어느 놈이 알아줘야 말이지. 그래도 (서라벌예대 시절) 서정주(徐廷柱·1915~2000) 선생님은 나를 알아주셨어….”
 
  ― 몇 년도인가요?
 
  “…단기로 4292년.”
 
  59학번인데 입학연도를 단기로 기억하고 있었다. 기가 막혔다.
 
  “입학 동기가 누군지 모르겠어. 전국에서 문학하는 촌놈들이 다 모이(모여) 가지고… 학교도 아이라(아니라). 찌끄러기(찌꺼기)들이 욱쩍욱쩍(웅성웅성)거리는데 (동기 중에) 신춘문예 당선자도 있고, 그래. ‘바람’이란 시를 한 편 써서 냈는데 미당 선생님이 보시더니 ‘시 잘 쓰는구만, 시 많이 써봤구만’이라 카시대(하시대).
 
  신춘문예 나온(당선된) 사람들은 아무것도 아이라(아니라). 선생님이 강의실을 나서시며 ‘자네를 올해 내로 내세워줌세’ 이카는(이러는) 거야. 난 무대로(문단에) 빨리 나올지 알았지. 그런데 빨리 못 나왔어. 문단 운이 없었어. 훗날 신동집(申瞳集·1924~2003) 선생님이 ‘추천받을 마음이 없나’ 하셔서 ‘좋지요’라고 했어. 선생님이 서울 시문학사에 내 시를 갖다줬던 모양이야. 근데 출판사 여직원이 시를 잃어버려 등단을 못 했어.
 
  지금까지 공무원도 좀 하고 회사에도 있었고, 산을 개간해 사과나무도 심었고, 떼잔디 심는다고 고생, 고생했지.
 
  사람들이 내 시가 좋다 카고(하고), 신문에도 나고…, 그런데 자시(자세히) 모르겠어. 내가 시인인지, 시인 아닌지 모르겠어. 시는 계속 썼는데 내가 시인이라 생각한 적이 별로 없었다꼬. 근래 와서 ‘아, 내가 시인이구나’ ‘딴 사람한테 시인이라고 캐도(말해도) 되는구나’ 생각해. 좋은 시는 없어도, 하하하.”
 
 
  “詩라 카는 것은…”
 
두 번째 시집 《내 잠이 아무리 깊기로서니》에 실린 젊은 시절 이문길 시인의 모습이다.
  ― 근래 시인이라는 생각이 드셨군요.
 
  “그래요, 근래에….
 
  시라 카는(하는) 것은 정말로 여러 가지라. 그런데 평생 써도 딱 한두 편이야. 노벨문학상 받은 사람도 그렇고. 로버트 프로스트도 ‘가보지 못한 길’하고 ‘눈 내리는 저녁 숲 가에 멈춰 서서’라는 시 두 편뿐이라.
 
  시인 박해수(朴海水·1948~2015)는 ‘저 바다에 누워’ 한 편이고, 또…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 더 빨리 눕는다’는 시인(金洙暎·1921~1968) 있잖아. 평생 썼지만, 그거 한 편 쓸라고(쓸려고) 그랬던 거야.
 
  그렇게 한 편 쓰기가 어려워. 난 시 한 편 쓰는 데 몇 년이 걸린 경우도 있고…, 10년 만에 다시 생각나서 쓴 시도 있고…, 40년 만에 그때 일이 떠올라 쓴 시도 있다꼬. 근래에 와서 말이지.”
 
  ― 뭐라고요? 40년 만에?
 
  “아니, 50년 만에. 그때 지나쳤던 일들이 가슴에 맺히(맺혀) 있는 거, 그걸 시로 쓰면서 풀어내는 거라꼬. 그때 일을 이제야 깨닫게 된다꼬.”
 
  이야기가 군(軍) 시절로 흘러갔다. 기독교를 믿지 않았지만 그는 청주 23육군병원의 종교 병사였다. 술 먹느라 종교교육도 못 받았다. 새벽 4시에 일어나 교회 종을 쳤던 기억은 잊을 수 없다. 그렇게 군목(軍牧) 아래 3년간 복무했다.
 
  ― 3년간 신심이 깊어지셨겠네요.
 
  “전마(저 사람) 저거는 예수 믿을라고(믿으려고) 온 게 아니라 시 쓸라고(쓰려고) 교회 왔다고 그랬어. 전부 그 캤다꼬(그렇게 말했다고). 종교에 대해서는 이제 확고하게 생겼다꼬.”
 
  ― 이제요? 어떻게요.
 
  “서라벌예대 계셨던 김동리(金東里·1913~1995) 선생이 그러셨어. 이스라엘은 온 땅이 황무지라서 볼 게 없어 하늘만 쳐다보다가 그런 문화가 생겼다꼬. 그런데 예수 가정이 문제야. 아버지 요셉은 (예수가) 자기 아들이 아니거든. 성령으로 잉태됐다고 카는(하는)데 저거(자기) 아버지가 아니란 말이야. 예수는 점점 나이가 들면서 그 사실을 알게 됐을끼고(됐을 것이고) 얼마나 외로웠겠어. 당시에 혼외 자식이라 카면(하면) 돌로 쳐 죽이던 시절이잖아. 성경에 요셉이 아들 예수를 사랑했다는 말이 어딨어?”
 
 
  “믿어야 되나… 안 믿어야 되나…”
 
이문길 시인이 가장 애착을 느끼는 시집 《내 잠이 아무리 깊기로서니》.
  ― 아이고… 그렇다고 사랑하지 않았다는 구절도 없지 않습니까.
 
  “사랑하지 않았다는 구절도 없지만도, 누구 하나 예수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다꼬. 당신 제자들도 다 외면했잖아. 예수님… 고생 많으셨지…. 광야서 40일간 기도하고… 암만 그캐도(그래도) 안 믿으니까 군중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지.
 
  난 믿는 사람 절대 욕 안 한다꼬. 사람은 믿어야 할 곳을 찾기 마련이라꼬. (신을) 찾고 부르짖는다꼬. 하느님이 없다 캐도 자꾸 찾는다꼬.
 
  나는 ‘믿는 게 옳으냐’ ‘왜 안 믿느냐’… 이런 것을 평생 생각했다꼬.”
 
  ― 평생?
 
  “평생을…. 얼마 전까지도, 지금도 생각한다꼬. ‘믿어야 되나… 안 믿어야 되나…’ 하고. 지금 생각은 믿어야 해. 왜냐? 사람들이 말이지, 바라보잖아. 바라보는 사람이 좋잖아. 믿어서 바라보고 있는 것이 좋다꼬. 그럼 따라 믿어야지.
 
  하지만 안 되는 기(것이) 있다꼬. 교(종교)를 믿어도 천당엘 못 간다꼬. 자기가 살아서는 해결이 안 된다꼬.”
 
  ―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죽을 때까지 기도해야 한다꼬. 구원을 받았다고 해도 마찬가지라. 죽을 때까지 죄라는 게 없어지지 않는다꼬. 생명이 있는 한, 없어지지 않는다꼬. ‘하느님, 하느님’ 백 번 부르는 사람, 천 번 부르는 사람, 평생에 한 번 부르는 사람도 있지만도, 그게 말이지, 하늘에 도달해 믿음이 열릴 때가 있다꼬. 열릴 때가 있으면 좋지만, 산다는 게… 죽을 때까지 계속 기도해야 하고, 참회하고, 회개해야 된다꼬.
 
  그런데 사람이 회개하나? 살아 있을 적에는 절대 회개 안 한다꼬. 그러니까 예수를 잡아 죽였지.
 
  난 하늘 아래 옳은 사람 되는 게 소원이라꼬. 하늘 아래, 단 한 번이라도 옳은 사람 되는 게, 그게 내 소원이었다꼬.(이 말을 할 때 그의 눈가가 그렁그렁해졌다.)
 
  내가 소고기를 먹으면, 요새는 잘 안 되지만, 입에서 소고기 냄새가 나고, 내 옷에서 고기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꼬. 닭고기 먹으면 내 몸에서 닭고기 냄새가 났다꼬. 그래, 다른 생명을 취해서 내가 존재를 한다꼬.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이 뭔가 하면 하느님 없는 하늘, 저 하늘이 있잖아. 저 하늘은 내 꺼야. 내가 보는 산이 있고, 산 위에 푸른 하늘이 있고, 그 하늘에는 하느님이 없어. 하느님 없는 하늘이 내 하늘이라꼬. 그 하늘은 우주 끝보다도 더 길고 넓고…. 그 말 없는 하늘을 나는 믿어. 내 하늘이야. 그런데 그 하늘을 살아서 봐야지, 죽어서 보면 파이고(싫고), 하하하.
 
  나는 영원히… 하느님보다 오래 살고, 우주보다 오래 살고…, 그 적막이… 그 적막이…, 나를 살리는 거야. 실지로 내 문학한다고 댕길(다닐) 직에(때에) 환희, 희열이라는 것을 종교적으로 느껴봤어.
 
  세상엔 나뭇잎 한 장도 똑같은 게 하나 없어. 다 달라. 다 다르다꼬. 괴테가 그랬나? ‘모래 한 알 속에 우주를 본다’고 했잖아. 우리가 우주와 호흡하고 있다꼬. 나무는 나무고, 흙은 흙이고, 땅은 땅이지만도 나무는 흙에 의지하고, 흙은 햇볕에 바람에 의지하고, 산은 하늘에 의지하고… 다 의지해 있다꼬.
 
  그러니까 나는 문학하면서 얻은 게 신 없는 하늘, 하느님 없는 하늘. 나 같은 죄인이 하늘 아래 옳은 사람 되는 것…, 이렇게 찬송가를 바꿔서 부른다꼬.”
 
 
  전율의 詩 ‘아아아아아, 어어어어어’
 
  ― 시는 언제 쓰시나요.
 
  “시는 배고플 때 써. 새벽 배고플 적에.”
 
  ― 시를 잘 썼다고 느낄 때가 언제였나요.
 
  “좋은 시를 보면 무서워 떨었고, 아무것도 아닌 시를 써놓고 명시(名詩)를 썼다고 떨었어. 고등학교 2학년 때인가, 동네(대구 방천시장)에 바보가 있었어. 바보의 말이 뭔고 하니, ‘아아아아아, 어어어어어’밖에 못 해. 그 소리를 듣고 그대로 시를 썼다꼬. ‘아아아아아, 어어어어어’라고. 그 시를 쓰고 시에 대해 눈을 뜨게 됐다꼬. 또 그 시를 쓰고 내가 사나흘 동안 떨었다꼬.
 
  대학 시절 스승인 김구용(金丘庸·1922~2001) 선생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 ‘좋은 시를 보면 떨리고, 팍 고꾸라진다’꼬.”
 
  ― 지금까지 몇 편을 쓰셨어요.
 
  “1000편도 더 썼겠어. 평생 썼으니까. 가장 내게 좋고,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게 그 ‘바보 시’야.”
 
  ― 시를 보여주세요.
 
  “시가 없어 ‘아아아아아, 어어어어어’ 그거뿐이라. 지금은 시에 때가 묻었지만, 그때의 감정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싶고 그런 시를 쓰고 싶어. ‘아아아아아…, 어어어어어…’ 하는 것을 쓰고 싶다꼬.”
 
  ― 지금까지 시집은 몇 권 내셨어요.
 
  “15권 정도 돼. 정확히 몇 권인지 모르겠어.”
 
  ― 세어보면 되잖아요.
 
  “안 세알러(세어)본다꼬. 시집 내고 다시 읽어본 적이 없어. 기냥(그냥)… 우야다가(어쩌다가) 그냥 들씨 봐(들춰 봐). ‘아, 이 시 마음에 든다’ ‘역시 내 시가 마음에 든다’ 하고. 하하하.
 
  요새 시인들 보면 약력이 책 한 페이지야. 무신(무슨) 상, 무신 추천, 무신 학교 나왔다고 자랑하는데 우리나라에 별 시인 없어. 역시 박목월(朴木月·1916~1978)하고 이상(異狀)하게 시를 쓰는 이상(李箱·1910~1937)밖에 없다꼬.”
 
 
  “우리나라 시인은 朴木月하고 李箱밖에 없어”
 
  그가 쓴 시 중에 ‘어’라는 시가 있다.
 
  내 보이나
  어
  내 보이나
  어
  아내 곁에 앉아
  다시 묻는다
 
  내 보이나
  어
  내 보이나
  어
 
  -시 ‘어’ 전문

 
  ― 외람되지만, 돌아가신 사모님 이야기 좀 해주세요. 아내를 위해 쓴 시가 많더군요.
 
  “중매로 결혼했는데 젊었을 땐 못생겨도 눈썹은 짙었어. 눈썹 보고 장가갔지. 나중에 보니 곰보더라꼬. 그런데 어느 날 보니, 눈썹이 하나도 없는 기라. 지가 무슨 양귀비라고 반달 눈썹 문신을 해갖꼬…. 쫓까(쫓아)내려 했는데 아이들 있어서 못 쫓아냈지. 4녀1남을 뒀어. 지금도 잘못한 게, 가시나를 쌍둥이로 두어 판 더 낳으면…. 딸들이 훨씬 나. 아들은 나이가 쉰이 다 돼가는데 장가를 안 갔다꼬.”
 
  그는 가슴속 아내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파킨슨씨 병으로 10년을 그렇게 지냈다꼬. 처음 3년 동안은 조금 움직였는데, 아내를 차에 태워 댕기며(다니며) 호수를 한 바퀴 돌고, 무슨 절로, 학교 운동장으로 댕겼다(다녔다)꼬. 나중에는 못 댕기게 됐어.
 
  할 수 없이 휠체어에 태워 아파트 단지 마당을 돌고 또 돌고…. 대개 안 추우면 돌고 그랬다꼬. 아내에게 ‘바라(봐라), 얼마 안 있으면 저게 안 보일지 모른데이. 반드시 봐라. 보이나?’ 카면서 댕겼다꼬.
 
  그것도 안 되니까, 집 안에서 휠체어 태워 큰방 갔다가 작은방 갔다가, 작은방 갔다가 큰방 갔다가, 또 안 되니까, 누워서 꼼짝도 못 하니까, 똥오줌 다 받아내고….
 
  머리부터 다리까지 다 긁어주고, 주물러주고…. 내가 어떻게 했는지 몰라. 신경이 쇠약해져서 내가 뇌 MRI 사진을 두 번이나 찍어봤다꼬. 잠깐 잔다는 게, 마누라가 잘 동안에 수면제 반 알 먹고 자는 게, 그게 자는 거였다꼬.
 
  아내가 서울 아산병원에 입원했는데 새벽 2시에 사위에게 전화가 왔어. 달려갔더니 아들한테 안겨 있어. 손을 만져 봤다꼬. 아직도 따뜻해. 내가 아내 눈꺼풀을 열어봤다꼬. 눈이 얼마나 맑은지…. 아기 눈하고는 달라. 아기 눈은 생명을 향한 욕심이 보인다꼬. 그러나 그때 아내 눈엔 욕심이 없는, 우주를 향한 맑디맑은 눈…. 내가 아무리 따라가려고 해도, 그것은 못 따라가겠더라꼬.
 
  광릉수목원 뒤에 있는 추모공원 묘터를 사위가 사줬어. 나는 돈이 없어 공동묘지 대여섯 군데를 돌아다녔는데. 다행히 아내 무덤에 나도 합장하기로… 하하하.
 
  무덤에는 경주이씨, 무슨 홍씨 안 쓰고… 다 필요 없어. 내 시 한 구절 써놨어. ‘아, 알고 보니 이 적막도 주인이 있어, 내 것이 아니고 하늘의 것이구나’. 이렇게 써놨어. 산 사람이 쓰는 게 아니라 카는데, 아들도 못 쓰게 하는데, 필요 없다꼬. 같이 묻힐 낀데.”
 
  시 ‘가운데 있기 싫어’를 읽어보았다.
 
  가운데 있기 싫어
  산비탈 한모퉁이에 자리해 두었더니
 
  태풍에 허물어졌나
  걱정이 되어 가보니
  작은 개울물 소리
 
  지난해 빈터에
  새 식구들이 와 자고 있으니
  조용해야지
 
  언젠가 아내와 같이 와
  쉬다 갈 자리
 
  내가 시인이니
  묘비명 대신 내 시를 써 두어야지
 
  아아 알고 보니
  이 적막도 주인이 있어
  내 것이 아니고 하늘의 것이구나
 
  -시 ‘가운데 있기 싫어’ 전문

 
 
  이승 끝나면 저승이듯… 산 뒤에 산이 있고…
 
이문길 시인은 시 3편과 산문을 적은 시작노트를 북북 뜯어 기자에게 건넸다.
  그는 요즘도 시를 쓰고 있다.
 
  “마누라가 떠나니까 자꾸 생각나는 기라. 마음에 맺히(맺혀)가지고, 시를 안 쓰면 안 되더라꼬. 20~30편 썼는데 전부 마누라 죽은 것밖에 없어, 하하하. 그러니 시가 될 턱이 있나.”
 
  그러더니 시작노트를 뒤적여 자작시 ‘산 뒤에’를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산 뒤에 산이 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이승 끝나면/ 저승이듯// 산 뒤에 산이 있고/ 그 산 넘어 다시 산이 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가도 슬프고/ 와도 슬픈 산길// 나는 오늘도 그 길을/ 갔다 왔다/ 산 속에 자고 있는/ 아내를 보고 왔다// 말 없는 산 너머/ 말 없는 산이 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노시인은 요즘 산과 하늘을 보는 일이 부쩍 많아졌다고 했다.
 
  “하늘을… 산을 보거든. 빨래하고 밥하고 난 뒤에는 산을 본다꼬. 그라고(그리고) 하늘을 본다꼬. 요즘 내 시에 하늘이 제일 많다꼬. 저녁 무렵의 끝도 없는 파란 하늘. 그 너머에 있는 내 하늘, 말 없는 내 하늘, 우주 끝보다도 더 멀리 있는 내 하늘, 하느님 없는 하늘. 그기(그게) 내 하늘이야.”
 
  그러더니 시작노트를 펼쳐 시 ‘쉬고 있는 산’을 읊었다.
 
  “우리집 앞 길 건너/ 더 가지 않고/ 쉬고 있는 산// 누가 와도 모르고/ 가도 모르는 산// 그 산 아래/ 우리집이 있다// 아무도 안 살고/ 나무, 하늘, 구름, 별, 바람이 사는 산// 산도 타향에 와서/ 고단한가 보다// 아내 떠나고/ 더 가까이 와 있는 산// 우리집 앞에/ 쉬고 있는 산”
 
  그는 시작노트에서 시 3편을 북북 뜯어 기자에게 건넸다.
 
  시 ‘구름 한 송이’가 적혀 있었다.
 
  산 위에 푸른 하늘이 있어
  웃었다
 
  오늘은 거기 구름 한 송이 떠있어
  웃었다
 
  -시 ‘구름 한 송이’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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