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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Q의 시 읽기 〈44〉 로런스 비니언의 ‘전몰자를 위하여’

반짝이는 별처럼 영원히 살아 있으리라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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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런스 비니언, 제1차 세계대전 참전 후 ‘전몰자를 위하여’ ‘치유자들’ 남겨
⊙ 대표적인 전쟁詩… 구상의 ‘초토의 시’, 유치환의 ‘보병과 더불어’
시인 로런스 비니언. 그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전몰자를 위하여
  로런스 비니언
 
  살아남은 자는 늙을지라도 님들은 결코 늙지 않으리.
  세월이 가고 나이가 들어도 피곤치 아니하고 비난하지 않으리라.
  해 뜨는 아침이나 해 저문 밤에도 님들을 항상 잊지 않으리.
 
  님들은 다시금 동료들과 웃으며 대화하는 일도 없고
  가정의 단란한 식탁에 앉는 일도 없으며
  우리의 낮 동안의 노동에 동참하는 일도 없으리라.
  그들은 잠자고 있다. 영국에서 떨어진 바다 저쪽에
 
  우리가 바라는 곳 우리의 희망이 넘치는 곳.
  그곳이 보이지는 않지만 샘의 원천처럼 느껴지네.
  밤이 돼야 별들의 존재를 알 수 있듯이
  님들의 존재는 전사함으로써 조국의 중심부에 아로새겨졌네.
 
  우리가 죽었을 때 반짝이는 별들이
  천국의 평원을 진군해 나아가듯
  어둠 속에 반짝이는 별들처럼
  님들은 영원히 영원히 살아있으리라.
 
  -‘전몰자를 위하여’ 중 4~7연
 
 
로런스 비니언은 ‘살아남은 자는 늙을지라도 님들은 결코 늙지 않으리’라고 노래했다.
  For The Fallen(1914)
  Laurence Binyon
 
  They shall grow not old, as we that are left grow old:
  Age shall not weary them, nor the years condemn.
  At the going down of the sun and in the morning
  We will remember them.
 
  They mingle not with their laughing
  comrades again;
  They sit no more at familiar tables of home;
  They have no lot in our labour of the day-time;
  They sleep beyond England’s foam.
 
  But where our desires are and our hopes profound,
  Felt as a well-spring that is hidden from sight,
  To the innermost heart of their own land they are known
  As the stars are known to the Night;
 
  As the stars that shall be bright when we are dust,
  Moving in marches upon the heavenly plain;
  As the stars that are starry in the time of our darkness,
  To the end, to the end, they remain.
 
 
전쟁은 형제가 서로를 겨누는 죽음의 체험이다. 역설적으로 전쟁은 인류애를 확인할 수 있다. 1951년 7월 미국인 원조 담당관이 원조 물품을 고아에게 나눠주고 있다.
  전쟁은 살기 위해 죽음을 정당화한다. 사람을 죽이고 죽음을 각오하고 싸운다. 어느 순간, 이념과 사상은 잊힌다. 애초에 전쟁은 이념이나 사상과 거리가 멀지 모른다. 형제가 서로를 겨누고 가족끼리 서로를 죽여야 하는 경험은 죽어도 잊히지 않는다.
 
  죽음은 그 자체로서 정당화될 수 없다 해도 넋을 달래는 일은 산 자의 몫이다. 화해와 용서를 노래하는 이가 시인이다.
 
  영국의 시인 로런스 비니언(Laurence Binyon·1869~1943)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며 ‘전몰자를 위하여’라는 시를 썼다. 그의 눈에 비친 살아남은 자는 늙고 병드는 존재다. 그러나 전몰자는 결코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 심지어 웃으며 대화할 수도, 단란한 식탁에 앉을 수도 없다. 영원히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둠 속에 반짝이는 별처럼 산 자의 기억 속에 영원히 살아 있다. 마지막 7연이 인상적이다.
 
  시인의 전쟁시 중에 ‘치유자들(The Healers)’이란 시도 감동적이다. 치유자들이란 바로 피투성이 상이용사를 치료하는 의무병을 일컫는다.
 
  밤중에 나는 그들을 보았네.
  야간전의 와중, 고함소리와 휘청대는 핏빛 그림자 안에서
  이들은 빛처럼 움직였네.
  물속 같은 고요함과 정밀한 손놀림으로
  침착하고 재빠르게,
  그들은 상처와 고통의 몸부림을 동여매고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네.
  (중략)
  타인에게 진실한 인간, 흘러넘치는 그의 호의는
  천둥이 쳐 그의 요새가 전부 무너져도 그의 영혼은 견고히 서 있으리라.
  그 빛, 무시무시한 혼란 속에서도, 그들은 타인을 섬기고 살린다네.
  그 어떤 노래로 이들을 찬양하는 것이 어울리는가? 이들이야말로 용사 중의 용사가 아닌가?
 
  - 로런스 비니언의 ‘치유자들’ 중 일부

 
 
  具常의 ‘초토의 시’, 柳致環의 ‘보병과 더불어’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Karl von Clausewitz·1780~1831)는 저서 《전쟁론》에서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해서 수행되는 정치(정책)의 연장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전쟁이 정치의 연장인지는 모르나 지금도 세계는 내전으로, 국지전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구상(具常·1919~2004) 시인의 ‘초토의 시’는 전쟁으로 인한 몸살의 심각성을 6·25전쟁의 체험을 통해 보여주는 작품이다. ‘초토의 시’는 15편의 연작시로 1956년 시집으로 묶였다.
 
  전반적으로 직설적 어투의 무기교(無技巧) 시다. 수사를 멀리하며 전장 체험을 구체적이고 쉬운 언어로 형상화한다. 시인은 6·25전쟁이라는 민족적 고난을 자기 고난으로 체화하면서 인간의 삶과 관련된 근본적인 물음을 매우 예리하게 던진다. 이러한 물음이 전쟁을 초래했던 이데올로기의 허망함을 전제로 하고 있음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오호, 여기 줄지어 누웠는 넋들은
  눈도 감지 못하셨겠구나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문드러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 바른 두메를 골라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도 사랑보다도
  더욱 신비스러운 것이로다
 
  -구상의 ‘초토의 시 7’ 중 1~2연

 
 

  1951년 출간된 청마(靑馬) 유치환(柳致環·1908~1967)의 《보병과 더불어》에는 4편의 시가 있는데, ‘보병과 더불어’ ‘해바라기와 같이’ ‘포연(砲煙)을 넘어’ ‘배수(背水)의 거리에서’ 등이다. 르포르타주 형식의 전시문학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청마는 6·25전쟁 당시 국군 정훈국(政訓局) 소속 문총구국대(文總救國隊) 일원으로 보병 3사단과 함께 종군했다. 대표적인 전쟁문학으로 꼽히는 모윤숙의 시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김장수의 장편소설 〈백마고지〉, 황순원의 장편 〈카인의 후예〉, 박영준의 단편 〈빨치산〉, 김동리의 〈귀환장정(歸還壯丁)〉 〈흥남철수〉, 안수길의 〈제비〉, 김성한의 〈귀환〉 등이 이 무렵 출간됐다.
 
  ‘보병과 더불어’는 포연 속에 감도는 불안한 정적감을 담고 있다. 승전에 대한 염원이나 기록보다 전쟁이라는 비극적 상황에 처한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표현방법은 직접적인 진술의 방식이 아닌 간접적이고 내면화된 형식을 갖추고 있다.
 
  여기는 외금강 온정리 정거장
  기적도 끊이고 적군도 몰려가고
  마알간 정적만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빈 뜰에
  먼저 온 우군들은 낮잠이 더러 들고
  코스모스 피어있는 가을볕에 서량이면
  눈썹에 다달은 금강의 수려한 본연에
  악착한 전쟁도 의미를 잃노니
  시방 구천 밖으로 달아나는 적을 향해
  일제히 문을 연 여덟 개 포진은
  찌릉찌릉 지각을 찢어 그 모독이
  첩첩 영봉을 울림하여 아득히 구천으로 돌아들고
  봉우리 언저리엔 일 있는 듯 없는 듯
  인과처럼 유연히 감도는 한자락 백운(白雲)
 
  - 유치환의 ‘보병과 더불어’ 전문

 
 
  陸士 교가 만든 시인 孔仲仁
 
공중인 시인.
  시인 공중인(孔仲仁·1925~1965)은 육군사관학교 교가를 작시(作詩)한 시인이다. 6·25전쟁 당시 서울이 함락되었는데도 중앙방송국(현 KBS)에서 애국시를 낭독하다가 체포되어 백두산까지 끌려갔다가 탈출한 일화가 전해진다.
 
  구상, 유치환 등과 함께 ‘문총구국대’에 참여했다. 영국의 낭만주의와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에 심취하여 감정을 분명하게 방출시키는 낭만파적 기질을 지닌 시인이었다.
 
  ‘진혼의 노래’는 호국 영령들을 추모하는 시다. 4연의 ‘고향엔 젖빛 구름’ ‘조국에 맹세하던 옛집’ ‘등하(燈下) 외로이 아내는 베를 짜고 있어라’는 표현이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2016년 5월 30일 워싱턴 인근 알링턴 국립묘지의 무명용사 묘역을 참배하고 헌화한 뒤 이렇게 말했다.
 
  “살아남은 우리는 전몰자들의 침묵을 행동 없는 말이 아니라 사랑과 지지, 감사로 채워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전쟁에서 희생된 이들에게 진 빚은 완전히 되갚을 수 없다. 되갚을 수 없는 것이기에 때로 그 영령들의 넋을 기억해야 하고 때로 ‘사랑과 지지, 감사의 말’로 보답해야 한다. 공중인은 ‘죽음으로 휘어올린 자유의 깃발’이라는 표현으로 전몰자를 위로하고 있다.
 
  불러도 올 수 없는 이름을 목메이는
  어머니의 그 처절한 울음을 멈추게 하라
  발버둥치며 소매를 적시는
  누님의 그 애절한 눈물을 멈추게 하라
  땅을 치며 미치듯 읍소하는
  아내의 그 비통한 곡 소리를 멈추게 하라
  비원(悲願)에 저무는 나라의 마음,
  산하는 저렇게 통곡에 잦아 말이 없노라
 
  얼마나 별 밑에 가고픈, 고향엔 젖빛 구름.
  그대가 조국에 맹세하던 옛집에서
  등하(燈下) 외로이 아내는 베를 짜고 있어라
  맑은 시내 달무리 부서지는 버들피리,
  노래에 감도는 아이들의 강강술래,
  그대의 피 흘린 흙에서
  싱싱한 오곡은 저렇게 푸르렀노라
 
  그대 민국(民國)의 것이,
  영원히 사랑의 그 이름을 수호함이니
  어머니인 우리의 산하는 자손들이
  역사에 기록할 님들의 혈맥, 겨레의 언어!
  죽음으로 휘어올린 자유의 깃발은,
  우람한 종(鐘) 속에 새벽을 펄럭이는도다
 
  -공중인의 ‘진혼의 노래’ 2~5연

 
  2015년 9월에 출간된 공중인의 시전집 《무지개》에는 ‘민족투쟁의 노래’가 실려 있다. 동족상잔의 피바다, 아비규환으로 조국이 유린되었지만 ‘원수의 숨통을 겨누어 두고 온/ 어머니의 북(北)으로 가야겠다’고 외치고 있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을 탈환한 후 평양과 원산 등지로 북진할 당시 쓴 시로 보인다.
 
공중인 시인의 시전집 《무지개》(2015).
  염원과 애소(哀訴) 가실 줄이 없는
  대동강 비분의 곡(哭)마저 빼앗겨 굽이 칠백리!
  아 어찌 잊으랴 항쟁의 나날
  진리와 함께 전진하며 쓰러진 자유의 전사들
  폭풍처럼 적구(赤狗)와 맞서 만세의 피는
  동결된 전진을 굽이 쳤노라
  비록 원수에 찢기어 뭇 산(山) 해골이 될지라도
  평양, 의주, 남포 이윽고 함흥, 청진
  곳곳에 멸공항쟁의 피바다는 휩쓸지라도
  ‌온겨레의 이름으로 배달 영세(永世)의 신시(神市)를 기록함이니
 
  ‌봉(峰)마다 줄기차게 뻗쳐 봉화(烽火) 첩첩
  끓는 무쇠가 되어 맥동하리니
  피 철철 굽이치는 비창(悲愴)한 강을 넘어, 나두야
  원수의 숨통을 겨누어 두고 온
  어머니의 북(北)으로 가야겠다
  가신 님들의 그 피의 만세는 우리 가슴에,
  길이 울리는 여명의 종이 되어 원수를 무찔러
  북진하는 진격의 나팔이 되라!
  통일을 전취하는 승리의 나팔이 되라
  그러면 흔연히 너는 서라!
  눈물과 읍소(泣訴) 위에 열화처럼 너는 서라
 
  가신 님들이 잠든 그 흙 위에 우리 쓰러져
  다시 엉바위 될지라도
  ‌변함없는 민국(民國)에의 충실을 자손 만대에 전하올지니
  서라! 자유의 겨레들이여
  민국(民國)의 기(旗)와 더불어 그 언제까지나
  ‌열혈(熱血)의 결속은 적구(赤狗)를 무찔러, 짓밟힌 우리의
  북(北)을 탈환할지어다
  내 조국과 내 겨레와 내 자손들의 이름으로
  삼천리에 크나큰 새벽이 다가올 때까지!
 
  -공중인의 ‘민족 투쟁의 노래’ 중 1연, 4~5연

 
  공중인의 애국시는 낭만주의 경향이 짙다. 전쟁 체험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다. 이분법적인 증오의 감정이 살아 꿈틀댄다. 시의 힘과 열정을 느낄 수 있다. 시인 공중인은 1925년 함경남도 이원(利原)에서 태어나 식민지, 분단, 월남, 전쟁을 모두 경험했다. ‘1950년대 전란으로 인한 실존적인 위기 상황에서 시인 개인의 낭만을 넘어 국가와 민족 차원의 낭만으로 시적 지평을 확장’(이재복 한양대 교수)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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