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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권의 책

얄타: 8일간의 외교전쟁 (세르히 플로히 지음 | 허승철 옮김 | 역사비평사 펴냄)

얄타 密約은 없었다, 치열한 외교전만 있었을 뿐…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ironhee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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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전(冷戰)시대 내내 한국인들은 ‘얄타’라고 하면 늘 한반도의 운명이 거래된 ‘밀약(密約)’을 상상했다.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의 국민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친소적(親蘇的)이고 병약한 리버럴인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앨저 히스 같은 소련 간첩들의 꾐과 잘못된 조언을 받아 얄타에서 지나친 양보를 했으며, 그것이 냉전으로 이어졌다고 믿었다.
 
  소련 태생의 역사학자인 저자는 이러한 믿음이 대부분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한다. 얄타에서 한반도에 대한 밀약은 없었고, 동유럽은 얄타회담 이전에 이미 소련군 점령 아래 들어가 있었다는 것이다. 또 저자는 얄타회담 내내 루스벨트는 현안을 확실하게 파악하고 미국의 국익(國益)에 맞게 회담을 이끌어갔으며, 앨저 히스는 소련의 군사간첩이기는 했으나 얄타회담에서는 루스벨트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줄 만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대신 저자는 얄타라는 역사 무대에서 미국의 루스벨트, 영국의 처칠, 소련의 스탈린이라는 배우들이 무엇을 생각했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경쟁했는지를 냉전 해체 이후 비밀해제된 소련 문서들을 비롯해 미국·영국의 다양한 자료들을 활용해 생생하게 보여준다. 마치 독자 자신이 1945년 2월 4~11일 얄타회담 자리에 동석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저자는 이렇게 경고한다.
 
  “국제회담의 준비와 진행을 위해 아무리 많은 노력을 기울였더라도, 회담 참가자들이 아무리 뛰어난 임기응변과 지략을 갖추었다고 해도, 아무리 회담 결과가 고무적이라고 해도(얄타회담 당시에는 대단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인식되었다), 민주적 지도자들과 사회는 똑같은 가치를 공유하지 않은 사람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것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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