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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권의 책

꿈을 이루기 위해 살아온 흙수저 인생 (이우영 지음 | 우촌미디어 펴냄)

가난 극복한 금융史 산증인의 회고담

글 :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talktom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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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1973년, 금융시장에는 ‘한국이 곧 부도난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이는 곧 현실이 됐다. 제1차 오일쇼크가 가시화된 것. 한국은행 외환자금과장이던 한 청년은 매일 밤잠을 설쳤다. 당시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단 6억 달러였다. 남은 시간은 20일. 부도를 막으려면? 돈을 빌려야 한다. 청년은 한달음에 안(案)을 짜냈다. 외국은행 한국지점을 통해 달러를 빌리자. 그런데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법률 문제를 비롯해 갖가지 행정적 절차가 발목을 잡았다. “지금 나라가 부도나게 생겼는데!”
 
  당시 37세에 불과했던 저자 이우영(85) 선생의 절규였다.
 
  한국 금융사(史)의 산증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36년 출생한 그는 고려대 상학과에 입학해, 1959년 졸업과 동시에 한국은행에 들어갔다. 한국은행의 핵심 보직인 자금부장을 거쳐 부총재까지 역임(1991년)했다. 한국은행 이사 시절, 상전(上典) 격인 재무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나라를 좀먹기 위해 있는 게 국회의원이냐”며 호통 친 일화는 지금도 금융가에 전해지고 있다. 1993년에는 국책은행인 중소기업은행 은행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중소기업청의 초대 청장을 마지막으로 공직생활을 마무리했다.
 
  실세(實勢)에 호통을 치는 배짱과 화려한 이력. 일견 ‘뒷배’가 있을 거라는 선입견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시쳇말로 ‘흙수저’다. 경북 상주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상주와 대구에서 중·고교 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 입학원서를 내기 위해 부모님의 승낙도 없이 무작정 대구로 갔다. 한 손엔 쌀 한 말, 한 손엔 입학원서를 들고서. 연고가 없는 곳인지라 이 집 저 집 낯선 집 대문을 두드리며 며칠만 머물게 해달라고 간청하기도 했다.
 
  차가울 정도로 냉철하고 이성적인 금융인, 그리고 꿈을 이루기 위한 뜨거운 열정…. 회고록에서는 이 두 가지 온도를 모두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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