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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권의 책

충성과 반역 (정안기 지음 | 조갑제닷컴 펴냄)

대한민국 건국과 호국의 주체가 된 일본군 특별지원병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ironhee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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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8년 2월 일본은 육군특별지원병령(令)을 공포했다. 이로써 조선인이 일본군에 지원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후 1944년까지 1만7136명의 ‘일본군 육군특별지원병’이 탄생했다.
 
  종래에는 이 ‘일본군 육군특별지원병’을 ‘일제(日帝)의 희생양’ 아니면 ‘친일파’로 보아왔다. 저자는 그런 통념에 반기를 든다. 특별지원병 제도는 일제의 필요 때문이라기보다는 참정권(參政權)을 요구하던 조선인 ‘협력엘리트(친일파)’들의 노력의 소산이었던 측면이 크다. 또 여기에 지원한 조선의 젊은이들은 대개 남한 지역 중농(中農)층 가계(家系)의 차남들로, 당시로서는 낮은 학력이 아니었던 보통학교 이상 졸업자로 강건한 신체의 소유자들이었다.
 
  무엇보다도 평균 47대 1의 경쟁률이 보여주듯이 ‘특별지원병’은 그들의 자발적인 선택이었다. 그들은 반상(班常)의 차별이 남아 있던 전(前)근대적 향촌(鄕村)의 질식할 것 같은 삶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싶어 하는 진취적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이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의 불지옥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였다.
 
  이들은 해방 후에는 국군 장교가 되어 일본을 통해 배운 ‘국민의식’과 군사적 역량을 가지고 공산주의자들의 침략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냈다. ‘특별지원병’ 출신 중 86명이 장성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송요찬·최경록 전 육군참모총장, 임부택·박경원·함병선 장군 등은 6·25 때 특히 용명을 떨친 이들이었다.
 
  저자는 “실체성을 결여한 민족을 반역하고 국가공동체에 충성한 이들이야말로 대한민국 건국의 올바른 정신사를 몸소 체현(體現)했던 제대로 된 국민들이었다”면서 “이들이 감당해야 했던 역사의 무게와 역할은 협력과 저항, 친일과 애국으로 단순화하거나 양단하기 곤란한 다양성과 복잡성을 갖는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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