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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구

창작과 나이의 상관관계

“밥 딜런, 10대에서 100대까지 다양한 팬덤. 놀랍지 않은가”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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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세 철학자 김형석과 94세 은퇴 교황의 新刊
⊙ 83세 때 《파우스트》를 완성한 괴테…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 94세 화가 알렉스 카츠… “13세 때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리라 결심”
⊙ 83세 기타리스트 신중현, 지난해 14년 만에 정규 앨범
⊙ “기타 연주 할 때마다 사다리의 맨 끝에 서야 한다”(74세 에릭 클랩턴)
(왼쪽부터) 괴테, 김형석 교수, 톨스토이.
  인간의 창작 능력에 한계가 있을까.
 
  희곡 《파우스트》에서 괴테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입을 빌려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Es irrt der Mensch, Solang er Strebt)”라고 말했다. 괴테는 평생을 방황하며 창작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한국 나이로 그는 84세에 세상을 떠났다. 83세 때 인류의 유산(遺産) 《파우스트》 2부를 완성했다.
 
  괴테는 자신이 겪은 ‘방황’의 의미를 최종적으로 이렇게 규정했다.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구원한다.(Das Ewig-weibliche, Zieht uns hinan.)”
 
  정확한 행간의 의미는 알 수 없지만, 어렴풋이 잡히는 무언가가 있다.
 
  ‘한국의 지성’이라 불리는 이어령(李御寧) 선생은 어느덧 미수(米壽)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선생은 기자에게 “역대 작가들 중에 괴테를 제외하고 여든이 넘어 작품을 발표한 이가 없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쓴다”고 했다. 선생은 지난 10년 동안 무리한 집필로 머리 수술을 받았고, 암 진단을 받아 두 차례 큰 수술을 받았다.
 
  세월이 흘러서인지 선생은 “추리력이나 세상에 대한 분석력은 그대로지만 기억력 감퇴는 어쩔 수 없다”고 고백했다. “가끔 고유명사가 안 떠오른다”고 했지만, 기자의 관찰로 볼 때 명석함은 그대로였다. 선생은 지난 2월 신간 《한국인 이야기: 너 어디에서 왔니》(432쪽)를 펴냈다.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를 2009년, 그러니까 77세 때부터 쓰기 시작했으니 출간까지 11년의 세월이 지났다. 4월에도 선생은 새로운 책 출간을 준비 중이다.
 
  나이와 창작은 어떤 관계일까. 창작은 천재적 직관(直觀)이 우선하는 것일까.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관점에서 세상을 인식하는 작가의식은 나이와 관련이 있을까.
 
  ‘어머니’와 ‘꿈’에 대한 다양한 그림과 조각을 만들어온 중견 화가 양순열(梁順烈·62)은 이렇게 말했다.
 
  “마음에 욕심이 없다면 생각은 맑을 것이니, 죽음의 찰나에도 창의력은 시들거나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노고추(老古錐)라는 말이 있듯, 오랜 세월 애쓰고 노력하는 가운데 창의력이나 통찰력, 지혜도 연륜만큼 완성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노고추란 ‘끝이 닳아 무디어진 송곳’이란 선어(禪語)로 무섭게 정진하는 단계를 넘어 원숙한 경지에서 노니는 도인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어쩌면 특정 영역에서의 소질 또는 재주는 어느 정도 선천적인 것이리라. 그러나 새로운 문제해결의 길잡이를 찾는 지혜, 긴 시간 주의를 집중하는 능력, 끈기와 같은 장인(匠人)정신은 나이와 무관할지 모른다.
 
  오히려 일에 대한 흥미, 만족, 도전 등은 지능과 무관한, 내적 동기와 관련 깊지 않을까. 나이 많은 작가가 좋은 작품을 내놓지 말라는 법이 없다.
 
  21세기에는 수명 연장이 불가피하다. 창작의 나이 역시 늘어날 수밖에 없다. 기자는 나이를 극복한 작가들의 사례를 찾아보았다.
 
 
  75세 때 19세 처녀와 사랑에 빠진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로 유명한 괴테(1749~1832)는 당대 독일문학을 세계문학으로 발돋움시킨 작가다. 한 시대를 그만큼 풍미한 천재도 드물 것이다.
 
  68세 때인 1816년 괴테는 아내 크리스티아네를 잃었다. 외아들 아우구스트도 여행지 이탈리아에서 객사(1830)하고 말았다. 늘그막 괴테의 고독과 내면의 정적은 더욱 깊어갔던 셈이다.
 
  그러나 얼마 안 가 19세의 처녀 울리케 폰 레베초와 사랑에 빠졌고 《마리엔바트의 애가(哀歌)》(1823)가 나왔다. 그의 나이 75세 때다. 두 사람 사이에는 무려 56년의 생물학적 시간 차가 존재했다.
 
  외면으로는 조용한 생활을 보내면서도 내면에서는 쉼 없는 창조 활동을 이어가던 괴테는 이후에도 많은 시를 쓰고 소설을 발표했다. 평생에 걸쳐 완성하고 자신의 인생 여정을 소설로 완결한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1821)와 《파우스트 제2부》(1831·1부는 60세가 다 되어 발표했다)가 대표적인 말년 작품들이다.
 
  괴테는 《파우스트》를 탈고한 후 이렇게 말했다.
 
  “이제부터의 나의 삶은 고스란히 선물 받은 것이네. 그러니 이제는 뭘 하든지, 하지 않든지 간에 같은 것이지.”
 
  1832년 3월 16일, 가벼운 감기로 자리에 누운 괴테는 3월 22일 자신의 평생 벗 실러와 가지런히 바이마르에 묻혔다. 그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더 빛을…”이었다고 한다.
 
  인류의 평균 수명은 신석기 시대 29세, 청동기 시대 38세, 그리스 시대 36세, 14세기 영국인 38세, 17세기 유럽인 51세, 18세기 유럽인 45세, 19세기 유럽인 65세, 20세기 유럽인 76세라고 한다.
 
  괴테는 당대 유럽인의 평균수명보다 아주 오래 살았음이 분명하다. 오래 살았으니 늦게까지 작품을 쓸 수 있었다. 그러나 자유롭게 방황하며 사랑을 갈구했다. 갈구한 대가는 늘 기쁠 수 없었고 때로 참혹했으나, 긴 여정의 과정이라 생각하며 평생에 걸쳐 소설을 완성할 수 있었다.
 
 
  90세 현역 알렉스 카츠
 
2017년 4월27일자 미국 《뉴스위크》에 ‘나이 들어도 창작은 현재진행형’이란 기사로 소개된 알렉스 카츠.
  90세가 넘었지만 알렉스 카츠(Alex Katz·1927~ )의 예술사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올해로 94세. 현대 회화의 거장인 그는 뉴욕을 무대로, 가장 뉴욕적인 작품을 생산해내고 있다. 그의 작품은 1960년대 뉴욕에서 시작된 아방가르드 물결부터 지금의 구상미술까지 영역이 다양하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2017년 4월 27일 ‘나이 들어도 창작은 현재진행형’이란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내용인즉, 미국의 전설적인 구상화가인 카츠가 지금도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며 70년 전 그린 초기 드로잉 작품 전시회를 열고 있다는 것이다. 기사 도입부는 이렇다.
 
  〈… 전설적인 구상화가 알렉스 카츠는 색이 바랜 검은 청바지에 회색 지퍼를 올린 후드티를 입고 자신을 유명하게 만든 컬러의 팝스(pops of color)에 고개를 끄덕이며 맨해튼의 한 미술관에 들어서고 있다. 선글라스는 그의 대머리 위에서 반짝인다. 약간 직감적으로 벽에 걸려 있는 한 줄의 스케치 앞을 어슬렁거리며 가벼운 나무틀의 폭에 대해 뭐라고 중얼거린다. 그는 ‘나무틀이 더 얇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카츠는 1927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러시아 이민자였고, 어머니는 전직 여배우였다. 13세 때 ‘세상’과 결별하며,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리라 마음먹었다. “다른 학생들보다 더 많이 읽었지만, 학교에서 소란을 피웠고 고등학교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다. 부모는 미술 공부를 할 수 있게 직업학교를 보냈는데 “옷과 춤, 스타일이 좋았다(It was great for clothes and dancing and style.)”고 한다.
 
  맨해튼의 쿠퍼 유니온 미술대학에서 공부했다. 야외 풍경화 수업에서 자신의 예술적 감성과 재능을 발견하고 예술가의 길을 걷게 된다. 카츠가 활동한 1960년대의 뉴욕은 그야말로 새로운 예술이 탄생하던 곳이었다. 잭슨 폴록의 ‘올 오버 페인팅(All over Painting)’, 앤디 워홀의 팝 아트 같은 실험적인 예술 활동은 부흥했고, 카츠 역시 독창적인 스타일을 창조했다.
 
  화가로서 그의 활동은 일단 생물학적 나이를 뛰어넘었다. 젊은 시절 작품보다 90대의 지금이 더 뛰어난 것일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단정할 순 없지만, 그는 여전히 선글라스를 대머리 위에 얹고 무언가에 골몰해 있다.
 
 
  두 사례: 헤르만 헤세와 톨스토이
 
노벨상 수상 작가 헤르만 헤세.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독일 소설가인 헤르만 헤세(1877~1962)도 장수(長壽) 작가로 불린다. 한국 나이로 86세에 타계했다.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시인이 되고자 수도원 학교에서 도망친 뒤 시계공장과 서점에서 견습 사원으로 일했다.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보내고 20대 초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많은 작품이 한국어로 번역되었는데 대표작이 《수레바퀴 아래서》(1916), 《데미안》(1919), 《싯다르타》(1922), 《황야의 이리》(1927), 《나르치스와 골드문트》(1930), 《유리알 유희》(1943) 등이다.
 
  히틀러 집권 기간인 1933~1945년 독일에서 총 20권의 헤세 저서가 나왔지만, 12년 동안 총 481권의 문고본밖에 팔리지 않았다. 《수레바퀴 아래서》 《황야의 이리》 《관찰》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등 대표작 대부분이 나치에 의해 불온서적으로 간주되었다.
 
  독일 패망 후 그의 문학이 독일어권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독자들에게 가장 널리 읽히게 된 것은 또 다른 역설(逆說)이다. 헤세는 제2차 세계대전 종료 직후인 1946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그의 나이 일흔 무렵이었다.
 
  이후 작품을 계속 발표했는데 75세 무렵 《후기 산문》(1951)을, 같은 해 《서간집》(1951)을 펴냈다. 78세 때인 1954년 동화 《빅토르의 변신》을 펴냈고 《헤르만 헤세・로망 롤랑 서한집》도 그해 출간했다. 79세인 1955년 산문 《마법》을 발표, 독일 출판협회가 수여하는 ‘평화상’을 받았다. 《마법》은 헤세가 마지막으로 쓴 작품이다.
 
  다만 헤세는 말년에 이르러서는 40~60대 발표한 《데미안》 《유리알 유희》 같은 깊고 울림이 섬세한 장편소설은 쓰지 못했다.
 
  반면, 83세로 세상을 떠난 톨스토이(1828~1910)는 1899년(72세) 3월 장편 《부활》을 지상에 발표할 만큼 작가적 정열(情熱)이 남달랐다. 생애 마지막까지 창작의 불꽃을 피웠다. 말년의 6년 동안 쓴 작품은 이렇다. 장편소설은 없고 단편과 수필, 논문이 많다.
 
  ▲1905년(78세): 《알료샤 고르쇼크》 《코르네이 바실리예프》 《표도르 쿠즈미치의 수기》 《기도》 《딸기》 《불타》 《큰 죄악》 《러시아의 사회 운동》 《세계의 종말》 《가짜 수표》 《초록 지팡이》
 
  ▲1906년(79세): 《1일 1장 인생노트》 《셰익스피어론》 《유년시절의 추억》 《신의 행위와 사람의 행위》 《러시아 혁명의 의의》 《꿈에서 본 것》 《라메네》 《표트르 헬리치스키》 《파스칼》
 
  ▲1907년(80세): 《참다운 자유를 인정하라》 《우리의 인생관》 《서로 사랑하라》
 
  ▲1908년(81세): 《폭력의 법칙》 《침묵하고 있을 수는 없다》 《어린이를 위하여 쓴 그리스도의 가르침》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의 병합에 관하여》
 
  ▲1909년(82세): 《피하기 어려운 대변혁》 《세상에 죄인은 없다》 《사형과 그리스도교》 《시간의 일호(一號)》 《유일의 장막》 《고골리론》 《유랑자와의 대화》 《마을의 노래》 《돌》 《대웅성(大熊星)》 《어린이의 지혜》 《꿈》
 
  -1910년(83세): 《인생의 길》, 단편 《모르는 사이에》 《마을의 나흘 동안》, 희곡 《모든 것의 근원》 《세상에 죄인은 없다》(개작), 논문 〈효과 있는 수단〉
 
  톨스토이는 1910년 10월 31일 여행 중에 병이 들어 시골의 조그만 역(아스타포보. 지금은 톨스토이역으로 바뀜)에서 내렸고, 11월 7일 오전 6시5분 역장의 집에서 눈을 감았다. (참고: 《전쟁과 평화》(동서문화사))
 
 
  101세 철학자와 94세 은퇴 교황의 新刊
 
교황 베네딕트 16세와 로베르트 사라 추기경이 공동저술한 《마음 깊은 곳에서(From the Depths of Our Hearts)》.
  예술가는 아니지만, 올해 우리 나이로 101세인 김형석(金亨錫) 연세대 명예교수는 요즘 한창때 못지않은 강연과 집필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1920년 평안도에서 태어나 연세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명예교수가 된 지 35년이 넘었지만 ‘100세 시대’를 몸소 증명하려는 듯 집필도 쉬지 않고 있다.
 
  올해 들어 벌써 2권의 신간을 펴냈다. 《삶의 한가운데 영원의 길을 찾아서》라는 수필과 《그리스도인에게 왜 인문학이 필요한가?》라는 기독교 교육과 관련된 책이다. 각각 280쪽과 252쪽.
 
  김 교수는 101세 열정의 비결을 이렇게 설명했다.
 
  “내 생각과 상대방의 생각을 합해서 더 좋은 것을 찾아가는 습관, 그것이 열린 마음의 (대화) 습관이고, 제일 소중한 건 그것일 거예요.”
 
  은퇴한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올해로 94세다. 1927년 독일에서 태어난 교황은 젊은 시절 신학이론을 잘 가르치는 교수로 명성을 얻었다. 그가 집필한 신학 서적 또한 수정 같은 명징함의 상징이었다. 1977년 바오로 6세 교황 때 추기경에 임명되어 뮌헨 프라이징 대교구장을 맡았으며, 1982년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 2005년 제265대 교황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2013년, 한국 나이로 87세 때 건강상의 이유로 교황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평생 많은 신앙서적을 남겼는데 대표적으로 2000년, 그의 나이 74세 때 펴낸 《전례의 정신》은 공의회 이후의 사이비 전례론에 일침을 가한 명저로 꼽힌다. 주(駐)교황청 한국대사를 지낸 정종휴 전남대 명예교수가 이 책을 6년 뒤 국내 번역했다. 정 교수는 베네딕토 16세 교황을 알현한 이래 많은 교황의 저서를 번역했는데 《그래도 로마가 중요하다》(바오로딸, 1994), 《이 땅의 소금》(가톨릭출판사, 2000), 《하느님과 세상》(성바오로, 2004), 《신앙, 진리, 관용》(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09), 《나자렛 예수》(김영사, 2010) 등이다.
 
  베네딕토 교황은 사제 독신제에 대한 자신의 의지를 담은 신간을 지난 3월 12일 펴냈다. 책 제목은 《마음 깊은 곳에서(From the Depths of Our Hearts)》. 이 책의 부제는 ‘사제, 독신주의 그리고 천주교의 위기(Priesthood, Celibacy and the Crisis of the Catholic Church)’다. 94세 나이를 무색하게 하는 신앙교리책이다. 다만, 로베르트 사라 추기경(Cardinal Robert Sarah)과 공동 집필했다.
 
  아무래도 고령의 성직자가 심오한 교리와 천주교 위기에 대해 혼자 집필하는 데 체력적으로 부담을 느끼지 않았을까. 두 성직자는 현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독신주의는 교회를 위한 선물이라 생각한다. 나는 선택적인 독신주의를 허용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절대로(I think that celibacy is a gift for the Church…. I don’t agree with allowing optional celibacy, no.)”라고 밝혔다.
 
 
  신중현과 에릭 클랩턴, 그리고 밥 딜런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과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밥 딜런.
  대한민국 록 음악의 대부이자 기타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신중현(申重鉉)은 1938년생이다. 우리 나이로 83세. 일제 강점기 태어난 그의 출생지는 경성부 명륜정이다.
 
  1941년 아버지를 따라 만주국 신징으로 건너갔고 8·15 광복 후 귀국했다. 1955년부터 미 8군 연예단에서 활동한 그는, 영국 비틀스가 활동을 시작하던 때인 1964년 대한민국 최초의 록 그룹 ‘에드 포(Add 4)’를 결성하고 1집 〈빗속의 여인〉을 냈다.
 
  한국 로큰롤이 그의 기타에서, 그의 기타 현(弦)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2011년 보관문화훈장(3등급)을 받았다.
 
기타리스트 신중현의 손과 14년 만인 지난해 발매된 그의 정규 앨범.
  지난해 신중현은 14년 만에 정규 앨범을 완성했다. 일렉트릭 기타 제조사인 펜더(Fender)가 그에게 특별 제작해 헌정한 기타로 연주했다. 앨범 제목은 헌정 기타를 위한 작품집이란 의미로 〈SHIN JOONG HYUN for Tribute Guitar〉다. 앨범에는 모두 8곡이 실렸는데 신곡 2곡이 포함됐다. 그는 자신의 기타 주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손가락이 아니라 몸에서 뱉어내는 소리다. 나의 새로운 주법이다. 내적 주법이라고 하겠다. 벤딩(손가락으로 줄을 밀어 올리는 주법)을 통해 몸 소리를 낸다. 주법 개발에 몰입한 지 20년 정도 됐다. 노자가 ‘진정한 도(道)에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고 했듯 내 주법을 어떤 이름의 틀에 넣고 싶지 않다.”(《동아일보》 2019년 7월9일자)
 
  ‘기타의 신’이라 불리는 에릭 클랩턴(Eric Clapton·74)이 이명(耳鳴)과 청력 감퇴로 음악활동이 어렵다고 고백, 놀라움을 주고 있다. 미국 CNN과 영국 BBC 라디오에 따르면 클랩턴은 수년째 이명으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으며, 기타리스트의 생명과도 같은 손도 간신히 쓸 수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그는 “앞으로도 라이브 공연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내 유일한 관심은 청각장애와 이명에도 계속 능숙해지고 싶은 마음뿐이다. 나는 희망한다. 사람들이 그런 이유에도 계속 날 찾아오길 바란다. 나는 그런 어려움이 내 삶의 일부이며 나 자신에 대해 아직도 놀라워하고 있다.”
 
  자신의 건강에 대한 클랩턴의 공개적인 고백은 2016년 앨범 〈아이 스틸 두(I Still Do)〉를 내놓을 때 처음 나왔다. 당시 습진으로 인해 손가락 없는 장갑을 끼고 연주한다고 밝혔다. 2018년 미국 음악잡지 《롤링스톤》과의 인터뷰에서 “그래도 기타 연주에 대해 지난 2년간 그랬던 것처럼 잘하고 있다”며 이렇게 고백했다.
 
  “어쨌든 연주하기가 어렵다. 나는 기타 연주 할 때마다 사다리의 맨 끝에 서야 한다. 손가락 굳은살의 한계점을 (연주와) 조화시키려 애쓴다.(I have to get on the bottom of the ladder every time I play guitar, just to tune it.)”
 
 
  ‘기타의 신’이라는 에릭 클랩턴, 耳鳴으로 고통받아
 
  음유시인이자 201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밥 딜런은 1941년 미국 미네소타주 덜루스에서 태어났다. 나이는 어느덧 80세.
 
  1959년부터 50년 넘게 대중음악과 예술에 영향력을 발휘한 가수이자 작곡가, 시인, 화가다. ‘블로잉 인 더 윈드(Blowin’ in the Wind)’ ‘더 타임스 데이 아 어체인징(The Times They Are a-Changin’)’ 등의 곡은 민권운동과 반전운동의 앤섬(합창곡)이 되었다. 그리고 201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그런 그가 2017년 4월 38집 정규 앨범 〈트리플리케이트(Triplicate)〉를 발매해 세상에 그의 존재를 다시금 알렸다. CD 3장짜리 음반에는 신곡도 있지만 프랭크 시내트라의 ‘마이 원 앤드 온리 러브(My One And Only Love)’ ‘애즈 타임 고즈 바이(As Time Goes By)’ 등 팝의 명곡을 커버했다. 그만이 연주할 수 있는 노래로 청자(聽者)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2018년 7월 내한공연을 가졌는데 당시 ‘2018 아시아 투어’를 기념해 1962~1966년에 녹음된 곡들이 수록된 2장짜리 라이브 앨범 〈라이브(Live) 1962~1966・레어 퍼포먼스 프럼 더 카피라이트 컬렉션(Rare Performances From The Copyright Collection)〉을 발매하기도 했다.
 
  이 로큰롤의 전설은 나이와 상관없이 여전히 세상에 자신의 음성을 알리고 있다.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팬덤은 10대에서 100대까지 다양하다. 놀랍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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