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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Q의 시 읽기 〈40〉 돈 헤럴드의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인생을 다시 산다면 데이지꽃을 더 많이 따리라”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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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헤럴드의 ‘다시 산다면’… 老年의 새로운 시작을 격려
⊙ 안도현 ‘나중에 다시 태어나면’, 황인숙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미국의 시인이자 유머가, 만화가인 돈 헤럴드.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데이지꽃을 더 많이 따리라

  돈 헤럴드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이번에는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르리라. 긴장을 풀고 몸을 부드럽게 하리라. 그리고 좀 더 바보가 되리라. 되도록 모든 일을 심각하게 생각지 않으며 좀 더 많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리라.
 
  더 자주 여행을 다니고 더 자주 노을을 보리라. 산도 가고 강에서 수영도 즐기리라. 아이스크림도 많이 먹고 콩 요리는 덜 먹으리라. 실제 고통은 많이 겪어도 고통을 상상하지는 않으리라.
 
  보라, 나는 매 순간을, 매일을 좀 더 뜻깊고 사려 깊게 사는 사람이 되리라. 아, 나는 이미 많은 순간들을 마주했으나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면 그런 순간들을 많이 가지리라. 그리고 순간을 살되 쓸데없이 시간을 보내지 않으리라. 먼 나날만 바라보는 대신 이 순간을 즐기며 살아가리라. 지금까지 난 체온계와 보온병, 비옷, 우산 없이는 어디도 못 가는 사람이었다.
 
  이제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좀 더 간소한 차림으로 여행길을 나서리라. 내가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면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신발을 벗어던지고 맨발로 지내리라. 춤도 자주 추리라. 회전목마도 자주 타리라. 데이지꽃도 더 많이 따리라.
 
 
  If I Had My Life Over-
  I’d Pick More Daisies

  Don Herold
 
  If I had my life to live over, I’d dare to make more mistakes next time. I’d relax, I would limber up. I would be sillier than I have been this trip. I would take fewer things seriously. I would take more chances. I would climb more mountains and swim more rivers. I would eat more ice cream and less beans. I would perhaps have more actual troubles, but I'd have fewer imaginary ones.
 
  You see, I’m one of those people who lived sensibly and sanely, hour after hour, day after day. Oh, I’ve had my moments, and if I had to do it over again, I’d have more of them. In fact, I’d try to have nothing else.
 
  Just moments, one after another, instead of living so many years ahead of each day. I’ve been one of those persons who never goes anywhere without a thermometer, a hot water bottle, a raincoat and a parachute. If I had to do it again, I would travel lighter than I have.
 
  If I had my life to live over, I would start barefoot earlier in the spring and stay that way later in the fall. I would go to more dances. I would ride more merry-go-rounds. I would pick more daisies.
 
 
돈 헤럴드가 그린 만화.
  100세 시대를 맞았다. 그러나 머리카락이 빠지고 새치가 점점 백발이 되어감을 깨닫는 일에서 노년은 시작된다. 주름살과 늘어진 피부, 밤에는 깊이 잠들지 못한다. 문득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하는 생각이 든다. 이미 늦은 것일까. 아니다. 꿈꾸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산문시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데이지꽃을 더 많이 따리라’는 미국 시인 돈 헤럴드(Don Herold·1889~1966)의 작품이다. 그는 유머가,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만화가로 활동하며 많은 책을 쓰고 삽화를 그렸다. 혹자는 나딘 스테어(Nadine Stair)라는 85세 여성이 쓴 시로 알고 있지만 헤럴드 작품이다.
 
  노년을 대하는 헤럴드의 바람은 전혀 특별하지 않아 놀랍다. 인생을 다시 산다면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르리라’ ‘좀 더 바보가 되리라’ ‘모든 일을 심각하게 생각지 않으리라’고 말한다. 다시 살지 않아도 지금 당장 실천하면 되는 일들이다. 새롭게 도전하는 노년의 삶을 격려한다.
 
  ‘아이스크림도 많이 먹고 콩 요리는 덜 먹으리라’고 다짐한다.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을 건강상 이유로 먹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된 모양이다. 반면, 몸에 좋다는 이유로 먹어야 했던 ‘맛없는’ 콩 요리를 덜 먹겠다고 외친다. 절제와 욕망 사이에서 늘 절제를 택한 자신을 해방시킨다. 얼마나 소박한가.
 
  또 ‘체온계와 보온병, 비옷, 우산 없이는’ 외출을 못 했던 소심한 자신을 나무란다. 다시 인생을 산다면 이번에는 쓸데없이 시간을 보내지 않고 ‘이 순간을 즐기며 살아가리라’고 다짐하고 다짐한다.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신발을 벗어던지고 맨발로 지내리라. 춤도 자주 추리라. 회전목마도 자주 타리라. 데이지꽃도 더 많이 따리라’고 한 마지막 행은 무척 감동적이다.
 
  장윤재 이화여대 교수(교목실장)에 따르면, 미국의 한 사회학자가 만 95세 이상 된 고령자 50명을 대상으로 “만약 당신의 인생을 다시 한 번 살 수 있다면 어떻게 살겠는가” 물었다고 한다. 응답자에게서 세 가지 공통적인 답이 나왔다. 첫째가 ‘더 많은 모험(risk more)’, 둘째가 ‘더 많은 성찰(reflect more)’, 셋째가 ‘더 많은 감사(thank more)’를 다짐했다고 한다.
 
  모험·성찰·감사는 두려움·이기심·증오와 대척점에 있는 단어다. 이웃을 외면하며 오직 자신만을 위해 뛰어온 삶을 생의 마지막까지 지속할 것인가. 아니다. ‘복된 죽음’이라는 상급을 받지 못할 것 같아 두렵기만 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에밀리 디킨슨과 안도현
 
안도현 시인은 ‘나중에 다시 태어나면’을 통해 자전거로 태어나 세상의 모든 모퉁이, 구덩이, 모난 돌멩이를 두 바퀴에 감아 기억하겠다고 노래한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 ‘사나운 밤! 격렬한 밤!’은 격정적인 시다. 노년기라고 해서 격렬한 밤, 사나운 밤과 맞서지 말라는 법이 없다. 오히려 욕망이 더 불타오를지 모른다. ‘항구의 품에/ 바람은 헛된 것’이 될지라도 그 항구를 향해, 에덴을 향해 노를 저어라고 외친다. 나침반, 해도는 사치다. 오직 전진하기만 하면 된다.
 
  사나운 밤! 격렬한 밤!
  그대와 함께라면
  격렬한 밤들도
  사치여라!
  항구의 품에
  바람은 헛된 것
  나침반을 버려라
  해도를 버려라
  에덴으로 저어라!
  아 바다여!
  나 오늘 밤 그대에게
  정박하고파라!
 
  -에밀리 디킨슨의 시 ‘사나운 밤! 격렬한 밤!’ 전문

 
  디킨슨의 ‘사나운 밤! 격렬한 밤!’을 읽으니 문득 안도현 시인의 단시(短詩) ‘인생’이 떠오른다. 1997년 펴낸 시집 《그리운 여우》(창비 刊)에 실렸다. 단 두 줄의 시다. ‘밤에, 전라선을 타보지 않은 자하고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
 
  전라선이 어떤 열차기에, 그 열차를 타야 인생의 비밀을 알 수 있을까. 《그리운 여우》에 실린 또 다른 시 ‘지상의 방 한 칸’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내 키만 한 슬레이트 지붕 아래
  한 달에 3만원 내는 방 한 칸을 얻다
  외로움도 오래 껴안고 자다 보면
  애첩이 되리
 
  -안도현의 시 ‘지상의 방 한 칸’ 전문

 
  쫓기듯 밤 열차를 타는, 그것도 전라선을 타는 고된 인생과 한 달에 3만원 내는 방 한 칸을 얻는 삶은 어쩌면 맞닿아 있을지 모른다.
 
  안도현의 시 ‘나중에 다시 태어나면’이란 시가 있다. 따뜻한 시다. 자전거가 되어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세상의 모든 모퉁이, 구덩이, 모난 돌멩이를 두 바퀴에 감아 기억하겠다고 말한다. ‘내리막길에는 휘파람을 휘휘 불겠으며 죽어도 사랑했었다는 말은 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죽어도 사랑했었다는 말은 하지 않으리라’는 미련 없이, 원 없이 사랑하겠다는 뜻이다.
 
  나중에 다시 태어나면
  나 자전거가 되리
  한평생 왼쪽과 오른쪽 어느 한쪽으로 기우뚱거리지 않고
  말랑말랑한 맨발로 땅을 만져보리
  구부러진 길은 반듯하게 펴고, 반듯한 길은 구부리기도 하면서
  이 세상의 모든 모퉁이, 움푹 파인 구덩이, 모난 돌멩이들
  내 두 바퀴에 감아 기억하리
  가위가 광목천 가르듯이 바람을 가르겠지만
  바람을 찢어발기진 않으리
  나 어느 날은 구름이 머문 곳의 주소를 물으러 가고
  ‌또 어느 날은 잃어버린 달의 반지를 찾으러 가기도 하리
  ‌페달을 밟는 발바닥은 촉촉해지고 발목은 굵어지고
  종아리는 딴딴해지리
  게을러지고 싶으면 체인을 몰래 스르르 풀고
  페달을 헛돌게도 하리
  굴러가는 시간보다 담벼락에 어깨를 기대고
  ‌바퀴살로 햇살이나 하릴없이 돌리는 날이 많을수록 좋으리
  그러다가 천천히 언덕 위 옛 애인의 집도 찾아가리
  ‌‌언덕이 가팔라 삼십 년이 더 걸렸다고 농을 쳐도 그녀는 웃으리
  ‌돌아가는 내리막길에서는 뒷짐 지고 휘파람을 휘휘 불리
  죽어도 사랑했었다는 말은 하지 않으리
  나중에 다시 태어나면
 
  -안도현의 시 ‘나중에 다시 태어나면’ 전문

 
 
  神을 향한 사랑과 ‘쪽빛’의 삶
 
이해인 수녀.
  이해인 수녀가 쓴 ‘다시 태어난다면’은 절대자인 신(神)을 사랑하는 여인의 음성이다. 그 음성은 소박하다. 조물주를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어쩌면 피조물의 일방적인 구애인지 모른다.
 
  그래서 이렇게 다짐한다. 다시 태어나면 ‘엄청난 당신’보다 ‘덜 힘든 한 사람’을 택하겠노라고 말이다.
 
  하지만 부처님의 손바닥처럼, 달아나 봐야 어차피 ‘당신’ 품안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신을 향한 사랑은 아이러니다. 세속의 눈에는 확실성이 떨어지는 일로 보인다. 그러나 신을 사랑하는 신비, 그 매혹을 말로 설명할 수 없다(고 한다). 신앙의 본질 속에 자리하고 있는 영적인 감성은 세속적인 감성과 차원이 다르기 때문일까.
 
  내가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엄청난 당신보다는
  덜 힘든 한 사람을 선택하겠습니다 (중략)
  내가 만약 죽어서
  다시 태어난다면
  사랑이신 당신을 모르고 싶은
  죄스런 바램을 어찌해야 합니까
  주문(呪文) 외며 달아나다
  내가 쓰러질 곳 또한
  당신 품안일 것을
 
  -이해인의 시 ‘다시 태어난다면’ 일부

 
  뇌성마비로 지체장애 1급을 안고 사는 정정자 시인이 ‘나 다시 산다면’이란 시를 썼다. 그만이 쓸 수 있는 영혼의 울림이 가득한 시다. 불편한 몸을 ‘서글픈 한’으로 묘사하며 ‘가을 낙엽 되어/ 불 태워지게 하소서’라고 읊조린다. 남의 도움을 받은 만큼 언젠가는 도움의 손길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리고 자신의 작은 생명이 ‘쪽빛 가을 하늘빛’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쪽빛’은 하늘을 닮은 푸른빛을 뜻하는 색이다. ‘가을 하늘빛’과 ‘쪽빛’은 서로가 가장 닮은 색이다. 시인의 때 묻지 않은 지순한 삶을 의미한다.
 
정정자 시인.(사진=남해미래신문)
  나의 육신이 가을꽃이 되어
  바람과 함께 춤추게 하소서.
 
  나의 서글픈 한은 가을 낙엽 되어
  불 태워지게 하소서.
 
  나의 손발도 그 누군가를 도와주는
  그런 손길이 되게 하소서.
 
  나의 이 작은 생명이
  쪽빛 가을 하늘빛이 되어
 
  외로운 자에게 비추어
  소망되게 하소서.
 
  나의 이 작은 육신을
  풍성한 수확의 계절
  가을같이 되게 하소서.
 
  -정정자의 시 ‘나 다시 산다면’ 전문

 
 
  고양이가 되고 싶은 인간 이야기
 
황인숙 시인.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인 황인숙 시인의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는 경쾌한 시다. 어쩌면 평범한 진술이지만 진솔한 짜임새에 걸맞게 빛나는 유머가 담겨 있다.
 
  작지만 사뿐사뿐 뛸 때면 커다란 까치처럼 보이는 고양이, 참새를 잡아도 꼬마 참새는 안 잡는 고양이, 어둔 들판에 홀로 남아도 기꺼이 어둠을 핥으며 꿈을 좇겠다고 다짐하는 고양이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타협하지 않으며 스스로 삶을 개척할 줄 아는 삶을 고양이에 빗대어 노래하고 있다.
 
  이 다음에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윤기 잘잘 흐르는 까망 얼룩고양이로
  태어나리라
  사뿐사뿐 뛸 때면 커다란 까치 같고
  공처럼 둥글릴 줄도 아는
  작은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나는 툇마루에서 졸지 않으리라
  가시덤불 속을 누벼 누벼
  너른 벌판으로 나가리라
  거기서 들쥐와 뛰어놀리라
  배가 고프면 살금살금
  참새 떼를 덮치리라
  그들은 놀라 후다닥 달아나겠지
  아하하하
  폴짝폴짝 뒤따르리라
  푸드득 푸드드득
  꼬마 참새는 잡지 않으리라
  할딱거리는 고놈을 앞발로 툭 건드려
  놀래주기만 하리라
  그리고 곧장 내달아
  제일 큰 참새를 잡으리라.
  이윽고 해는 기울어
  바람은 스산해지겠지
  들쥐도 참새도 가버리고
  어둔 벌판에 홀로 남겠지
  나는 돌아가지 않으리라
  어둠을 핥으며 낟가리를 찾으리라
  그 속은 아늑하고 짚단 냄새 훈훈하겠지
  훌쩍 뛰어올라 깊이 웅크리리라
  내 잠자리는 달빛을 받아
  은은히 빛나겠지
  혹은 거센 바람과 함께 찬 비가
  빈 벌판을 쏘다닐지도 모르지
  그래도 난 털끝 하나 적시지 않을걸.
  나는 꿈을 꾸리라
  놓친 참새를 쫓아
  밝은 들판을 내닫는 꿈을.
 
  -황인숙의 시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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