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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한국전쟁 이후 최초 음악잡지 《음악》이 품고 있는 보석들

25년 만의 安益泰 귀국 무대가 추동한 미국 악단들의 내한공연

글 : 김승열  음악칼럼니스트·안익태기념재단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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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익태는 ‘한국환상곡’을 1955년 3월 26일과 4월 11일, 12일, 18일, 23일 공연
⊙ 해방 이후 최초의 해외 악단 내한공연… 1955년 5월 25일 美 ‘심포니 오브 디 에어’ 공연

金勝烈
1976년생. 서울대 대학원 석사, 파리8대학 석사(공연예술학), 파리7대학 박사과정(동양학) 수학 / 유럽 50여 개 도시와 일본·중국 등지에서 세계적인 클래식·오페라 거장들의 무대 900여 회 관람 / 저서 《거장들의 유럽 클래식 무대》(2013, 투티)
1955년 5월 25일 서울 중앙청 광장 야외무대에서 있은 ‘심포니 오브 디 에어’ 내한공연을 관람하는 이승만 대통령과 프란체스카 여사, 그리고 수많은 인파.
  필자는 우연한 기회에 1955년 8월에 창간된 월간 《음악(THE MUSIC)》을 입수했다. 휴전 이후 한국 최초의 음악잡지 《음악》은 1955년 8월에 창간되어 1959년 상반기에 종간된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입수한 분량은 1955년 8월 창간호부터 1956년 7~8월호 합본호까지 열두 달 치다. 당시 국민음악연구회장으로 있던 이강렴과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장 현제명이 쓴 창간호의 서문이 눈에 들어온다.
 
미국 ‘심포니 오브 디 에어’의 내한 지휘자 월터 헨들과 함께한 현제명.
  이강렴은 “조국 해방 이후 10년이 되는 오늘에 우리 음악계에 아직 음악에 관한 대중음악 잡지가 발간되지 못하였던 것은 우리 신흥국가로서 유감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고 글머리를 열고 있다. 그리고 “우리 음악계의 올바른 논평과 내외 소식의 정확하고 민속한 보도로서 조국 음악 재건 운동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자 한다”고 서문을 끝맺고 있다.
 
  그러나 이강렴의 당시 언급은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이다. 해방 이후 음악문화사에서 월간 《음악문화》라는 잡지를 발간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1948년 초에 간행된 《음악문화》 창간호에서 채동선(1901~1953)이 ‘민족음악수립론’을 10쪽에 걸쳐 기고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볼 때, 《음악》은 해방 이후 두 번째이자 휴전 이후 최초의 음악잡지로 정정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일부 식자만이 아닌 일반 대중을 겨냥했다는 점에서 해방 이후 최초의 대중 음악잡지로 볼 수도 있다.
 
1954년 만 12세에 미국 유학을 떠난 한동일군이 1955년 텍사스 연주회를 전후해서 미국 내 후원자들과 함께한 모습.
  일제 때는 모두 네 종의 음악잡지가 발간된 기록이 있다. 1919년 2월 당시 도쿄 유학생 홍난파가 창간한 《삼광》을 필두로 1925년 4월 홍난파가 조선에 돌아와 창간한 《음악계》, 1934년 7월 창간된 《음악》, 1936년 4월 창간된 《음악평론》 순이다. 이 중 《음악》만이 1937년 5월까지 통권 19호를 찍었을 뿐, 나머지 잡지들은 통권 2~3호로 종언을 고했다.
 
  해방 이후 최초의 음악잡지 《음악문화》는 그 실체가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런 상황에서 전쟁의 상흔을 딛고 이강렴 국민음악연구회장이 3년 넘게 펴낸 월간 《음악》은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낸다. 필자가 입수한 각 권 80여 쪽 분량의 창간호부터 이듬해 1주년 기념 합본호까지 12권 속에는 그간 국내에 소개된 적 없는 희귀 흑백사진이 가득 담겨 있다.
 
‘심포니 오브 디 에어’ 지휘를 마치고 화동들로부터 꽃다발을 받는 도어 존슨과 월터 헨들.
  해방 이후 최초의 해외 악단 내한공연으로 기록된 1955년 5월 25일의 월터 헨들(1917~2007)과 도어 존슨(1913~1975) 지휘 미국 ‘심포니 오브 디 에어’ 내한공연 및 1956년 5월 28일의 알프레드 월렌 스타인(1898~1983) 지휘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 화보가 특히 눈길을 끈다. 1956년 4월 28일에 있은 미 공군 교향악단의 내한공연을 관람하고 있는 이승만 대통령 내외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이 세 미국 악단의 내한공연은 모두 서울 중앙청 광장 야외무대에서 열렸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가수들이 출연한 글루크의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에서 사랑의 신 아모르로 분한 30대의 김자경.
  도불(渡佛) 직전에 윤이상이 기고한 두 편의 글, ‘성악가에게 드리는 고언’과 ‘1956년 작곡계 발흥기에 도달하였다’ 또한 귀한 자료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에서 있은 글루크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에서 아모르 역으로 출연한 한국 오페라의 대모 김자경(1917~1999)의 무대 사진도 선구적이다. 안익태에 관한 글로는 1956년 6월호에 짤막하게 실린 ‘안익태씨의 근황’이 유일하다. “세계적인 명지휘자로 구라파 각지에서 명성을 떨쳐 한국의 명예를 빛내고 있는 안익태씨는 최근 서반아 마요르카에서 바그너의 ‘리엔치’를 지휘한 바 있었는데 특히 동(同) 연주회에 바그너 씨의 따님이 참석하고 한국인인 안씨의 탁월한 지휘에 감격한 나머지 경의를 표하였다고 한다”가 그것이다.
 
 
  《음악》 창간은 안익태 귀국이 기폭제
 
1956년 5월 28일 오후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첫 내한공연을 관람하는 관객과 마에스트로 알프레드 월렌 스타인의 지휘 모습.
  이강렴 국민음악연구회장이 《음악》을 창간하게 된 계기는 25년 만의 안익태 귀국이 기폭제가 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 탄신 80주년 기념음악회를 지휘하고자 해방 이후 처음 조국을 찾은 안익태는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있었다. 해군정훈음악대와 연합합창단을 이끌고 안익태는 자신의 ‘한국환상곡’을 1955년 3월 26일과 4월 11일, 12일, 18일, 23일 시공관과 경무대, 창경원에서 다섯 차례 지휘했다.
 
  이후 4월 29일 스페인으로 출국한 안익태와 바통 터치한 음악전도사가 아르투로 토스카니니(1867~1957)가 이끌던 NBC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후신인 ‘심포니 오브 디 에어’였다. 이듬해 미 공군 교향악단과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이 이어지면서 전쟁 직후 한국에는 때아닌 클래식 붐이 일었다.
 
  해방공간 5년 동안에는 이 같은 안익태급의 거물 지휘자와 해외 유수악단 내한공연이 전무했다.
 
1956년 4월 28일 서울 중앙청 광장 야외무대에서 있은 미 공군 교향악단 연주회 모습과 관중.
  한편, 일제시대에는 총 다섯 차례의 해외 악단 및 오페라단 내한공연이 서울 부민관에서 있었다. 1937년 5월 25일 일본 후지와라 오페라단이 내한해 소프라노 미우라 다마키와 테너 김영길을 주인공으로 푸치니의 〈나비부인〉을 한국 초연했다. 이후 1939년 3월 26일에 세르게이 슈바이코프스키가 이끄는 하얼빈 교향악단이 내한했다. 같은 해 6월에는 요제프 로젠슈토크와 사이토 히데오가 이끄는 도쿄 신교향악단(지금의 NHK 교향악단)이 내한공연을 가졌다. 1940년 봄 다시 동 악단이 내한했고, 같은 해 10월에는 후지와라 오페라단이 하얼빈 교향악단과 동반으로 내한해 비제의 〈카르멘〉을 한국 초연했다.
 
1956년 5월 28일 오전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 알프레드 월렌스타인이 현제명의 안내로 서울 비원을 둘러보고 있다.
  어떻든 1930년 미국 유학을 떠난 안익태가 1955년 이승만 대통령의 탄신 80주년 기념음악회를 지휘하기 위해 사반세기 만에 귀국한 사건은 《음악》의 창간과 미국 유수 악단들의 내한공연을 촉발시킨 기폭제였다. 그런 시대적 맥락에서 안익태와 《음악》의 창간은 긴밀한 함수관계에 있다.
 
안익태가 주도한 1963년 제2회 서울국제음악제 프로그램북.
  이후 1960년 안익태가 두 번째로 한국을 찾은 시점을 전후해, 1962년부터 1964년까지 서울국제음악제를 주관할 때까지 한국에는 여러 음악잡지가 명멸했다. 1958년 1월 재창간한 《음악문화》를 필두로, 1964년 4월 창간된 《음악세계》, 1965년 12월 창간호에서 안익태 추모 특집기사를 내보낸 《음악생활》에 이르기까지, 이 1950~60년대의 음악잡지들은 모두 안익태의 등장과 맞물려 있던 음악 미디어였다.
 
  전쟁이 끝나고 안익태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음악잡지들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미국 유수 악단들이 방한공연을 가질 수 있었을까. 안익태라는 인물을 독해하는 데 있어 근시안적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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