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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10박12일로 돌아본 발칸 8개국 일주

발칸의 보석, 아드리아의 진주는 눈부셨다!

글·사진 : 김승열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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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가리아는 영주권자에 대한 제한이 거의 없어. 최소 거주기간이 1년에 단 하루
⊙ 알바니아는 한국의 1970년대, 음식도 한국 입맛에 맞아… 개발 잠재력 상당한 곳

金承烈
1961년생. 서울대 법학과 졸업, 同 대학원 법학 박사과정 수료. 미국 보스턴대학 국제금융법 석사, 노스웨스턴대학 법과대학 LL.M. / 사법시험 합격(24회) / 대통령 직속 국가지식재산委 산하 지식재산활용전문위원장 역임. 現 한송온라인리걸센터(HS OLLC) 대표변호사, 대한중재인협회 수석 부협회장
몬테네그로 서부에 있는 해안 휴양도시 스베티스테판. 밀물 때면 섬이 되는 곳이었으나 지금은 지협(isthmus·地峽)으로 육지와 항상 연결되어 있다.
  필자는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에 있는 소피아대학에서 열린 국제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7월 13일 인천을 떠났다. 이참에 못 가본 동유럽 여행을 감행했다. 정말이지 ‘발칸의 보석’ 8개국을 온몸으로 느낀 일정이었다. ‘하얀 성’이라는 이름의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사라예보, 크로아티아의 스플리트와 항구도시 두브로브니크, 몬테네그로의 지중해 연안도시 코토르,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 북마케도니아 수도 스코페,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등지를 10박12일 일정으로 두루 돌아보았다.
 
세르비아 칼레메그단 요새에서 바라본 베오그라드 전경이다. 이 요새는 BC 4세기경 건축되었다. 터키어로 ‘칼레’는 ‘요새’, ‘메그단’은 ‘전장(戰場)’을 뜻한다.
  첫 방문국은 세르비아였다. 나라 이름조차 생소한 곳. 유고슬라비아 시절의 수도가 바로 베오그라드다. 한때 세르비아 제국은 이탈리아 정도의 국토를 가질 만큼 번창했다. 시내 중심에 베오그라드대학이 있고, 칼레메그단 요새가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BC 4세기경부터 건축된 성(城)과 야외 군사박물관이 이채로웠다. 그곳에서는 베오그라드 시내 전경이 한눈에 보였다. 사바강과 다뉴브강이 합류하고 있었다. 도시 분위기는 동유럽이지만 서유럽 분위기도 느껴졌다. 물론 세련된 감은 적으나 매력적인 고도시라는 느낌이 그대로 묻어나왔다. 베오그라드 번화가를 찾았다. 한 카페가 눈에 띄었는데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라고 한다. 처음엔 정교회 이름을 따서 카페 이름을 지었다고. 그러나 교회 측이 문제를 제기하자 당황하여 카페 이름을 지우고 그냥 ‘?’로 남겨두었다. 그런데 이 물음표가 널리 알려져 유명해졌다고 한다.
 
멀리서 바라본 베오그라드 칼레메그단 요새. 지금은 관광객이 주로 찾는 공원이 되었다.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 시내에 있는 한 그리스 정교회 모습이다.
 
  발칸의 숨은 보석, 사라예보
 
사라예보 여행자는 모두 찾는다는 라틴다리.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비극의 현장이다.
  세르비아에서 보스니아로 가는 길에는 산맥이 가로놓여 있었다. 상당히 험준한 산을 지나야 사라예보에 갈 수 있었다. 또 국경수비대를 거쳐야 했다. 분위기가 엄중해 보였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역사를 알고 보니 이해가 되었다. 국경지대의 산맥이 문화 형성에 영향을 준 것이다. 세르비아는 그리스 정교가 강했다. 반면에 보스니아는 이슬람문화권이었다. 두 나라 모두 400년간 터키의 지배를 받아왔다. 그러나 이 산맥을 중심으로 문화 분위기에 차이가 있어 보였다. 사라예보의 시내 쪽으로 들어오니 이슬람 사원이 눈에 띄었다. 구릉 등에 많은 집이 보였다. 그런데 건물들 모습에서 좀 더 이슬람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내전의 상처로 빌딩 곳곳에 총알 자국이 보였다.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비극의 현장인 라틴다리는 한 드라마 현장이었다.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와 세르비아 청년 암살자들의 우연한 만남. 특히 1차 암살작전 실패 후에 다시 해후하며 마침내 암살에 성공하게 된 세르비아 청년들. 그날이 마침 황태자 부부의 결혼기념일이란 사실 등 이 사건은 마침내 오스트리아와 연맹을 맺은 독일 등과 함께 제1차 세계대전으로 내닫게 된다. 재미있는 역사소설을 보는 것 같았다.
 
  세르비아는 그리스도 정교, 보스니아는 이슬람, 그리고 크로아티아는 가톨릭이 지배적이다. 이들 간에 갈등이 없을 수 없었다. 이런 맥락에서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가 연합하여 보스니아에 대한 인종 대학살이 진행된 것이다. 유고슬라비아에서 유고는 남쪽을 의미한다. 그러면 북쪽 슬라비아는 어딜까? 다름 아닌 소련이다.
 
  이 2대 강국이 한꺼번에 붕괴되었다. 옛 소련이 붕괴되면서 발틱 3개국 등으로 분리되었다. 그리고 유고는 붕괴되어 6개국으로 나뉜 것이다. 세르비아, 보스니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북)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다. 여기에 코소보가 독립국가로 인정되면 7개국으로 나뉘는 셈이다.
 
  사라예보는 도심 전체가 아름다웠다. 마치 발칸반도의 숨은 보석처럼 느껴졌다. 이슬람 문화가 가미되니 더욱 이국적인 면이 추가된 양상이라고 할까?
 
 
  ‘지중해의 보석’ 두브로브니크
 
크로아티아 스플리트에는 디오클레시안 궁전이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옛 궁전의 그림이다.
  크로아티아의 아드리아 바다로 향하였다. 로마 황제의 궁으로 유명한 스플리트를 방문하기로 했다. 크로아티아는 아름다운 해안을 배경으로 관광산업이 주다. 그러나 청년실업률이 높다. 그래서 조국을 떠나는 청년이 증가한다고. 안타까운 일이다.
 
  스플리트는 아드리아해에 접한 관광휴양지다. 305년 로마 황제인 디오클레시아누스에 의해 축조된 디오클레시안궁이 있다. 로마시대 대표적인 건축물로 유명하다. 황제가 퇴위한 후 보낸 곳이다. 궁은 기본적으로 황제의 주거 공간과 수비군 공간으로 나뉜다. 바닥은 대리석이고 벽면은 석회석으로 이루어졌다. 이 돌은 해안의 섬에서 가지고 왔다. 당시에도 로마의 건축 기술은 상당한 수준을 이루어 시멘트를 만들어 사용했다. 달걀껍데기를 분쇄해 여기에 노른자위 등을 섞어 시멘트로 만들어 사용한 것이다. 당시 물이 귀해 9km 이상 떨어진 산 위에서 해안가로 물을 길어왔다. 이 물을 상수도관을 통하여 왕궁으로 끌어 올렸다. 놀라운 것은 상하수도 시설. 석회암 등으로 파이프를 만들어 음양의 너트 형식으로 이어나간 것이다.
 
디오클레시안 궁전 내부 모습이다. 옛 로마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곳이 스플리트 디오클레시안 궁전이다. 유럽에 있는 로마유적 중 보존상태가 뛰어나다.
  필자에게 인상적인 부분은 따로 있었다. 역사책에서만 보던 시설을 접했다. 로마 황제 가족과 귀족들은 다양한 음식문화를 접하기 위해 식사 도중에 이를 일부 토하면서 먹었다고 한다. 황제 연회석 바로 옆에 별도의 방이 있었다. 시중이 상주하는 방인데, 황제와 귀족들은 식사 도중 이곳에 들러 간간이 음식물을 토해냈다. 흥미로웠다. 문은 따로 나뉘어 황족은 골든게이트, 귀족은 실버게이트를 이용했는데 명성에 맞게 아름다움을 자랑했다.
 
보스니아 두브로브니크 전경이다. 두브로브니크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스르지산에 케이블카를 타고 올랐다.
  ‘지중해의 보석’인 두브로브니크는 아름답다. 자태가 가히 압권이다.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보는 바다, 하늘 등 역시 조화롭다. 누엠에서 차로 1시간 거리다. 지중해의 보석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코발트색 바다와 푸른 하늘 그리고 붉은 지붕, 하얀 벽, 푸른 수목 등 원색의 향연이다. 바다에 떠 있는 조그마한 배들…. 오스만튀르크 등 외적의 침입에 대비한 성이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아름답다니…. 성 안에 많은 사람이 거주하다 보니 공간의 여유는 없었다. 그런 중에도 아름다운 삶을 추구한 모양이다. 모든 장소가 아름다움 그 자체라면 과장된 표현일까. 사진을 대충 찍어도 예술 작품(?)이다.
 
  지중해의 숨은 보석은 다름 아닌 몬테네그로다. 해안가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유럽에서 요트를 가장 싸게 살 수 있다고 한다. 전 국토가 해안가에 위치한 나라! 몬테네그로는 성, 요트 등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옛 비잔틴 제국의 근거지 알바니아
 
몬테네그로의 지중해 연안 도시 코토르 전경.
  이름도 생소한 몬테네그로로 향했다. 전체 인구가 100만명도 안 된다. 국토는 한국의 5분의 1. 그럼에도 축복받은 땅이다. 전 국토가 해안가 주변에 구성되어 있다. 사철 관광객으로 붐빈다. 해안가에는 많은 요트가 정박해 있다. 아담하고 아름다운 소국가다. 그래서 더 매혹적이다. 해안가가 있고 바로 산이 있다. 구릉에 많은 집이 들어서 있다. 몬테네그로에서 몬테는 ‘산’, 네그로는 ‘검은색’을 뜻한다. 즉 검은 산맥이라는 의미다. 해변가 산에 검은 암벽이 많아 이같이 불린다. 가장 대표적인 해안도시는 코토르다.
 
  코토르는 해양교통의 중심지에 있다. 과거 많은 외침이 있었다. 외부 공격을 피하려 바로 바닷가에 성을 건설했다. 지금도 그 모습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아담한 성이었다. 지리적으로 어떤 요충지인지 잘 보여주었다. 많은 기념품 가게와 카페 그리고 야외에서 연주하는 악사 등 모두 매혹적이었다. 아름다운 연안도시 부드바에 들렀다. 누드비치는 아니지만 옷을 벗고 일광욕을 즐기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스베티스테판은 원래 섬이었다. 그런데 모래가 쌓여 육지와 연결되었다. 어촌이었는데 이후 그리스도 정교 성당이 세워졌다. 현재는 리조트 단지로 바뀌었다. 무척 아름다운 연안도시다. 경관이 아름다워서 ‘소(小)두브로브니크’라고 불린다. 해안가는 지중해와 어울려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몬테네그로에서 산길을 따라 알바니아로 향했다. 산속에 고속도로가 있다니…. 아슬아슬하고 위험천만한 길이었다. 좀 더 지나자 중앙선이 있는 편도 1차선이 보였다. 그래서 이것을 하이웨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알바니아는 발칸 국가 중 가장 먼저 건립되었다. 옛 비잔틴제국의 근거지로 당시 무역이 활발했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주유소 등도 실제 운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단지 자금세탁용으로 간판만 걸어놓는 경우가 태반이란다. 그래서 ‘유럽의 시리아’라고 불린다.
 
  알바니아의 수도인 티라나로 향했다. 수도지만 규모가 크지 않았다. 시내 중심가에는 큰 광장이 자리했다. 공산국가의 전형이다. 특이한 점은 독재정권이 벙커를 만들어 지하에서 업무하도록 한 것이다. 알바니아는 한국의 1970년대를 보는 것 같았다. 산 능선과 시냇물 등이 한국의 산수와 비슷해 보였다. 음식도 입맛에 맞았다. 개발 잠재력만은 상당한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EU에 가입 못 한 北마케도니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호수 중의 하나인 마케도니아 오흐리드 호수.
  마케도니아는 아직 유럽연합(EU)에 가입하지 못했다. 공식명칭은 북(北)마케도니아. 그리스 내부에도 마케도니아라는 행정명칭이 있다. 이에 따라 유고연방 분리 시 국명과 국기가 문제가 되었다. 빨간 바탕에 8개 노란색 빛살이 있다. ‘용맹’의 상징이다. 고대 마케도니아는 강력한 국가였다. 나아가 글라골 문자를 만든 나라다. 9세기 후반 그리스인 선교사 키릴로스와 그의 형 매토디오스가 마케도니아의 토어를 기초로 하여 최초의 슬라브 언어인 글라골 문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오흐리드 호수는 자연적 가치가 인정되어 유네스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엄청나게 커서 거의 바다 같았다. 오흐리드라는 뜻은 ‘언덕’을 의미한다. 300만 년 전 바다가 지리학적 요인으로 올라와서 호수를 형성한 것이다.
 
  호수임에도 진주가 나온다. 호수에는 특이한 어종인 플라시티가 산다. 일종의 빙어. 호숫가에 수많은 성당과 수도원이 있다. 10~11세기에 축조한 요새 같은 성곽이 아름답게 자리하고 있다.
 
북마케도니아 수도 스코페의 상징인 스코페 광장. 알렉산더 대왕의 기마상이 있다.
  너무 매력적인 장소로 보였다. 현지 가이드에게 “방 2개인 아파트를 한 달 빌리는 데 얼마냐”고 물었다. 바로 100 유로(13만원 정도)라고 한다. 일행이 한 달이 아니라 하루를 잘못 들은 것이 아닌지 의아해했다. 그래서 다시 물어보니 한 달 임대료라고 한다.
 
북마케도니아의 수도 스코페에 있는 테레사 수녀 기념관.
  물론 한창 성수기는 좀 더 비싸다는 말을 추가했다. 호수가 보이는 전망의 아파트는 200~250유로 된다고 했다. 한겨울 통상 온도는 0℃ 정도고, 며칠간만 영하 5℃까지 내려가기도 한다고.
 
  마케도니아의 수도 스코페에 방문했다. 먼저 가톨릭 성녀 테레사 수녀의 메모리얼 하우스를 찾았고, 알렉산더 광장도 둘러보았다. 시내 가운데에 바루다루강이 흐르고, 이를 중심으로 구도심과 신도심으로 나뉜다. 이 강물은 에게해로 나아간다. 시내 외곽에 보드노산이 있다.
 
 
  ‘불가리아의 아테네’ 벨리코투르노보
 
불가리아 블라고예브그라드 지방에 있는 릴라 수도원. 10세기경 동방정교회(Orthodox Church)의 성자 반열에 오른 운둔자로 알려진 릴라의 성요한이 설립했다.
  불가리아는 장수마을로 유명하다. 국민의 80%가 불가리아 정교를 믿는다. 국민소득은 북마케도니아보다 높다. 산업은 농업. 인구는 700만명 정도고 국토는 한국 크기다.
 
  유서 깊은 릴라 수도원을 방문했다. 서기 927년에 설립된 그리스 정교의 대표적인 수도원인데, 역사적으로 의미 있고 주변 자연이 아름다웠다. 릴라 수도원은 500년 오스만튀르크 지배 속에서도 불가리아 정신을 유지해온 곳으로 유명하다. 수도원 안의 ‘속죄의 샘물’을 마시니 물맛이 상큼했다. 어느 성인(聖人)이 2개의 빵과 이 샘물로 한 마을의 사람들을 살렸다고 한다.
 
릴라 수도원 천장에 그려진 성화(聖畵).
  현지에서 듣고 확인한 불가리아 생활과 역사의 이모저모는 이렇다. 두서없이 소개한다.
 
  #1400년간의 불가리아 역사에서 500년 동안 오스만튀르크 비잔틴의 지배를 받아왔다. 1908년 독립하게 되었다. 그 후 1989년까지 사회주의 국가였다. 역사적으로 지배를 많이 받아온 국가다.
  불가리아에 대한 인식이 전반적으로 잘못되어 있는 부분이 있다. 위험하다, 게으르다, 가난하다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다. 그러나 이 지역의 역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불가리아 소피아에 있는 알렉산드리 네프스키 수도원 모습이다. 60m에 이르는 네오 비잔틴 양식의 황금돔이 특징이다. 발칸반도 최대 규모의 수도원으로 꼽힌다.
  #이곳 사람들은 복잡하게 스트레스받으면서 살고 싶어하지 않는다. 편안하게 사회생활하고자 한다. 욕심이 없다. 잘 어울리고 친구 내지 가족처럼 지낸다.
 
  #전반적으로 현재를 중시한다. 많은 사람이 “현재 처한 ‘있는 자리’에서 모두가 행복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고 있다.
 
불가리아의 수도에 위치한 국립대 소피아대.

필자(가운데)는 소피아대에서 국제세미나에 참석해 한국의 분쟁해결제도의 변천에 대해 발표를 하였다.
  #불가리아 장미 오일은 식용이 가능하다. 접시에 초를 피우고 거기에 오일 반 방울을 떨어뜨려 향을 피워 냄새를 맡으면 좋다. 약간 최음제 효과가 있다고 한다. 통상적으로 집시가 장미꽃을 딴다. 맨손으로 따서 장미의 눈물이라고 한다.
 
  #흥미롭게도 불가리아에서는 영주권자에 대한 제한이 거의 없다. 최소 거주기간이 1년에 단 하루다.
 
과거 불가리아의 수도 벨리코투르노보에 위치한 벨리코투르노보城 전경이다.
  불가리아의 옛 수도인 벨리코투르노보를 방문했다. ‘불가리아의 아테네’로 불린다. 이 지역은 불가리아의 영광이기도 하고 아픔이기도 한 곳이다. 1393년 오스만튀르크제국의 침략으로 멸망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후 오스만튀르크의 지배 시대인 500년 동안 문화교육의 중심지였다. 성은 해자가 잘 발달되었으며, 높은 곳에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과거 요새의 견고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주변에 대학교, 태양광발전소가 들어서 있다. 유럽에서 보기 어려운 견고한 요새다. 주변 경관도 아름답다.
 
 
  소설 〈드라큘라〉의 무대 브란城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의 펠레슈城.
  루마니아는 동유럽에서 의외로 큰 나라다. 음악과 미술 등 예술을 사랑하는 라틴계의 열정이 느껴지는 곳이다. 의학과 수학 등은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한다. 루마니아는 인구 2100만명으로 발칸반도에서는 비교적 인구가 많다. 루마니아라는 뜻이 ‘로마인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과 토지’라고 한다. 그만큼 로마의 영향력하에 있었다. 수도는 부쿠레슈티. ‘기쁨이 넘쳐나는 곳, 기쁨이 솟아나는 곳’이라는 뜻이다. 이 도시는 초기 카롤 1세 국왕 시절에 개발되었다. ‘리틀 파리스’라는 이름으로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다. 도심 내 녹지가 잘 조성되어 있었다.
 
  펠레슈성을 찾았다. 카롤 1세가 여름별장용으로 받은 성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마치 독일식 큰 저택으로 보인다. 다만 정원에 있는 조각상 등은 베르사유 궁전을 연상케 한다. 펠레슈성 주변에는 귀족들의 성이 널려 있다. 외관상으로는 그리 인상적이지 않지만 시설은 놀랍다. 개폐식인데다 엘리베이터, 에어컨 시설까지 되어 있다.
 
소설 〈드라큘라〉의 무대가 된 루마니아의 상징 브란城.
  작은 호수에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중세 마을 브란에 유명한 브란성이 있다. 브란성은 소설 〈드라큘라〉의 무대가 된 곳이다. 드라큘라 백작이 자기 아버지를 배반한 신하에게 보복하는 내용이다. 그 아들이 알라키아공국을 설립하게 된다. ‘똥침 처형법’으로 유명한 ‘말뚝 처형법’을 시행한다.
 
  드디어 타이트한 일정을 마치고 지난 7월 24일 부쿠레슈티발(發) 서울행 비행기를 탔다. 일상의 권태로움과 짜증에서 벗어난 세월이 상당히 지났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먼저 몸부터 거부반응이다. 기분도 덩달아 다운되는 것 같다. 물론 한편으로는 빨리 일상으로 복귀하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 아름다운 동유럽의 대자연, 특히 맑은 청정공기를 맛보니 다시 혼탁한 일상으로 가고 싶지 않다. 물론 다른 대안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저 본능적인 거부반응이 나타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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