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영화 속으로

영화 〈사바하〉로 본 불교

불교와 기독교의 비슷하지만 다른 종교관

글 : 이정현  월간조선 기자  johhlee@chosun.com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기독교 구원과 불교 해탈은 비슷하지만 다른 개념
⊙ 육체적 永生 추구는 도교적 이야기
⊙ 善惡 이분법은 불교와 맞지 않아
⊙ 불교는 無神論으로 인간이 되는 길을 찾는 종교
영화 〈사바하〉 포스터. 사진=CJ엔터테인먼트
  지난 2월 개봉한 장재현 감독의 영화 〈사바하〉는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오컬트(occult) 영화다. 사바하(娑婆詞)는 산스크리트어로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소서’로 해석된다.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악령, 악마의 이야기를 엮어내는 오컬트 영화 공식을 따르면서, 종교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특징이다.
 
  〈사바하〉는 신흥 종교 집단을 쫓던 박웅재(이정재 분) 목사가 의문의 인물과 사건을 마주하게 되며 시작되는 미스터리 스릴러다. 영화는 한 시골 마을에서 쌍둥이 자매가 태어나면서 시작된다. 온전치 못한 다리로 태어난 금화(이재인 분)와, 모두가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이름조차 얻지 못한 언니 ‘그것’이 자매다. 자매가 16세가 된 이후, 영월 터널에서 여중생이 사체로 발견된다. 사건을 쫓는 경찰과 박 목사의 종교 탐험이 영화의 주요 흐름이다. 악(惡)이라고 생각했던, ‘그것’이 사실은 해탈(解脫)로 붓다가 되는 설정이 주요 반전이다.
 
  불교와 기독교가 ‘악’을 바라보는 시각차도 영화 곳곳에 나타난다. 불교와 기독교의 세계관 차이도 영화에 드러난다. 예수 재림과 미륵, 구원과 해탈 등 비슷하지만 다른 두 종교의 시각이 드러난다.
 
  영화는 표면적으로 불교 영화처럼 보인다. 실제 동국대 불교대학 정성준 연구초빙교수와 위덕대 불교문화학과 김영덕 교수가 불교 자문에 참여했다. 두 교수는 불교, 특히 밀교(密敎) 연구의 권위자다.
 
  〈사바하〉에는 불교 상징이 많이 등장한다. 사슴, 뱀, 코끼리 등 불교와 기독교에서 교리를 해석하고 설명할 때 사용하는 동물 상징이 등장한다. 영화에서 밀교가 이야기의 뼈대를 이루면서 종교적 상징이 특히 많아졌다. 정성준 교수는 “밀교는 붓다의 세계를 만다라와 같은 고도의 상징체계로 표현하고 이것을 대상으로 관상(觀想)함으로써 깨달음에 이르는 가장 탁월한 불교 수행”이라며 “낮은 음의 진언 소리, 등장하는 티베트 스님, 밀교승들의 옷 색깔 등이 밀교적 색채를 영화에 입힌 것이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보니 영화를 보고 나면, 관객마다 나름의 생각이 생긴다. 영화 관람 후 나름의 종교적 해석을 내놓는 경우가 많은 이유다.
 
  영화 자문 교수들과의 대화는 영화평(인터넷 후기)에 등장하는 불교관에 대한 관객의 다양한 해석으로 시작했다. 불교 전문가들과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니, 자연스럽게 불교가 지향하는 방향성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바하〉는 불교 영화인가?
 
동국대 불교대학 정성준 연구초빙교수.
  장재현 감독은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 알려져 있다. 영화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사건 역시 《성경》에서 차용했다. 예수가 태어날 즈음 헤롯 대왕이 베들레헴의 두 살 이하 남자아이들을 학살했다는 《성경》 구절(마태복음 2장 16절)이 모티브다.
 
  헤롯왕은 2000년 전 멀리서 경배하러 온 동방박사들로부터 유대인의 왕이 나셨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 될 것을 우려해 당시 두 살 이하 사내아이를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다. 영화에서는 동방교주 김제석(유지태 분)이 자신을 죽일 아이를 미리 찾아내서 죽인다.
 
  정성준 교수는 “영화는 개신교 세계관과 불교적 세계관이 뒤섞여 있고, 오히려 불교적 세계관에 적대적인 부분도 있다”고 설명했다.
 
  ― 영화가 불교의 시각으로 보면 현실적인가.
 
  “감독을 만났을 때 영화 줄거리는 대부분 완성되어 있었다. 불교적으로 현실적인 내용을 넣는 것이 필요한데 사천왕, 티베트불교, 환생자 김제석 등이 불교적인 내용이다. 다만, 태아 시절 쌍둥이로 자매가 적대적으로 태어난다는 설정이나, 혼란한 세상에 선(善)의 존재를 찾는 부분은 감독에 의해 창작된 부분이다.”
 
  ― 〈사바하〉를 불교 영화로 보나.
 
  “개신교 세계관이 강하다. 기독교의 악마에 대한 정의, 선이 태어나면 악도 동시에 태어난다며 악과 선의 상호관계를 설정한 부분들이 그러하다. 오히려 불교의 전통신앙인 사천왕 신앙에 대해 부정적으로 본 부분이 있다.”
 
 
  미륵이란?
 
위덕대 불교문화학과 김영덕 교수.
  동방교주 김제석은 영생(永生)을 갈구한다. 김제석은 미륵으로 설정되어 있다. 영생을 갈구하는 김제석의 욕망도 대사에 드러난다.
 
  “시간은 인간을 허둥거리며 살다가 죽게 만들지. 나는 시간을 이겼다. 나는 꺼지지 않는 불이다. 나는 살아야 한다.”
 
  불교의 미륵신앙으로 보이고, 수행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경지를 설명하는 듯하다. 이에 대해 김영덕 교수는 “불교에서 고통은 생로병사(生老病死)로, 태어나는 것도 고통으로 본다”며 “불교 교리에는 맞지 않는 내용”이라고 설명한다.
 
  ― 미륵이란 무엇인가.
 
  “불교사상의 발전과 함께 미래불이 나타나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구제할 수 없는 미래의 중생들을 남김없이 구제한다는 사상이 싹트게 됨에 따라 미륵보살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 미륵보살은 인도의 바라나시국의 브라만 집안에서 태어나 석가모니불의 교화를 받으면서 수도하였고, 미래에 성불(成佛)하리라는 수기(授記)를 받은 뒤 도솔천에 올라가 현재 천인(天人)들을 위하여 설법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붓다가 되기 이전의 단계에 있기 때문에 보살이라고 부른다. 그는 석가모니불이 입멸한 뒤 56억7000만 년이 되는 때, 즉 인간의 수명이 8만 세가 될 때에 이 사바세계에 태어나서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 아래에서 성불하여 3회의 설법으로 272억인을 교화한다고 한다.”
 
  ― 역사상 미륵이 지상에 내려온 적이 있나.
 
  “김제석이 살아 있는 미륵이 되었다는 말은 도솔천에 있던 보살이 지상에 내려와 김제석이라는 미륵불로 화현(化現·중생을 구제하려 변장하고 내려옴)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김제석이 미륵을 자칭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역사상 자칭 미륵불은 후삼국시대의 궁예를 들 수 있다. 그리고 현재까지 무수한 종교인이 미륵을 자처하였다. 모두 진실한 미륵이라고 보기 어렵다. 미륵은 구원불의 의미를 담고 있기에 대중의 염원이 강하게 투영되어 있다. 기독교의 예수 재림 이미지를 미륵불에서 볼 수 있다.”
 
 
  “불교에서는 태어나는 것도 고통”
 
  ― 미륵은 영생이 가능한가.
 
  “말이 안 되는 질문이다. 불교에서는 중생이 수행을 통해 생(生)과 사(死)라고 하는 윤회가 허상임을 깨달음으로써 윤회에서 벗어난다. 원래로 모든 중생은 생도 없고 사도 없는 불생불멸의 존재인 것이다. 또한 불교에서 추구하는 것은 일체의 고통을 없애는 것이며, 일체의 고통은 생로병사가 대표적인 것이다. 생이 있으므로 노・병・사가 있기에 생도 괴로움으로 본다.
 
  따라서 생 또한 추구하지 않으며 본래로 태어남이 없음을 자각하게 되면 모든 번뇌가 끝난 열반에 이른다. 따라서 누구도 중생으로서의 생을 오래 누린다거나 영생이라는 바람을 갖지 않는다. 이러한 바람은 중생의 번뇌에 속한다. 미륵불이 세상에 나오는 이유는 오직 한 가지 중생 구제를 위해서이다. 미륵불만이 아니라 모든 부처님과 보살이 세상에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오직 한 가지 중생 구제를 위해서이다. 중생 구제는 불교의 절대적 목표라고 할 수 있다.”
 
  ― 붓다가 되는 방법은.
 
  “깨달음을 얻으면 누구라도 붓다가 될 수 있다. 짐승의 행위를 하면 아무리 고귀한 지위에 있어도 짐승이며, 하찮은 짐승이라도 깨달음의 마음을 가지면 부처가 되는 것이다. 중생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경계는 끊임없이 폭포수처럼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한 생각 바로 돌려서 부처의 마음을 지닐 수도 있고, 지옥의 마음을 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정성준 교수는 “육체적 영생은 도교적(道敎的) 이야기”라고 풀이한다. 그의 해석은 이러하다.
 
  “영화에서 삶과 죽음을 초월하고, 영원히 살려 하는 욕망이 그려진다. 육체를 가지고 영원히 살려고 한다. 불교에서 영생은 육체를 가지고 영원히 살려는 것이 아니다. 죽음은 육체적 소멸에 불과하다. 부처가 되는 것은 육체라는 유한성(有限性)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육체적인 죽음은 막을 수 없고, 필연적이고 사소한 것으로 본다. 영화는 도교적 이야기이다.”
 
 
  “불교에서, 善惡 구분은 무의미”
 
영화 〈사바하〉 스틸사진. 사진=CJ엔터테인먼트
  영화에서 박 목사는 악(惡)을 찾아 나선다. “악은 가짜다”며 사이비 종교를 찾아 떠난다. 뱀을 악의 상징으로 해석하는데, 대체로 기독교의 악마 관념과 비슷하다. 자문 교수들은 “불교에서는 이러한 이분법적인 구분 자체가 없다”고 말한다.
 
  김 교수는 “이분법적 사고는 불교에서 지양한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뱀을 악의 상징으로 보는 것은 불교적인 견해가 아니다. 더 나아가 그 어느 것에도 악의 상징을 두지 않는다. 선과 악이라고 하는 이분법적 견해는 불교에서 지양하는 극단이 된다. 마치 세상 모든 것이 실제로 있다고 보는 견해와 모든 것이 아예 없어서 허망하다고 보는 견해와 마찬가지이다.”
 
  정 교수는 “불교에서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생각 자체가 다르다”며 불교에서 말하는 선과 악을 설명했다.
 
  “불교에서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고 본다. 유일신의 신앙에서도 유일신의 피조물에서 악이 생긴다면 그것은 유일신의 본성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모든 존재의 본성을 선하다고 보기에 불성(佛聖·성인이라는 뜻으로 석가모니), 여래장(如來藏) 이런 말이 가능하다. 다만 그 진실을 모르기 때문에 자아를 가지고 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미륵이 되었음에도 살고 싶은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악을 행하는 모습이 강조된다. 부처가 되어도, 더 살고 싶은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모습은 불교적으로는 수용될 수 없는 내용이다. 정 교수는 “미륵이 되었다가, 다시 욕망에 흔들린다는 영화적 흐름은 불교에 맞지 않다”고 설명했다.
 
  “일단 어두운 동굴에서 나오면, 다시 들어가지 않는다. 쥐들은 쥐구멍에서 살면서, 음식 찌꺼기를 먹으면서 자기들 나름의 생활을 한다. 인간이라면 쥐처럼 살지는 않을 것이다. 큰 자아(自我)를 이루면 더 이상 욕망의 다툼은 생기지 않는다. 깨달아서 부처가 되면 지식과 자아가 확장된다. 번뇌가 없어지고, 자비심이 확장되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작은 나를 초월해 우주적인 내가 되는 것이다.”
 
  영화에서 감독의 목소리를 대신하는 박 목사는 신을 찾고, 구원을 갈구한다. “짐승으로 태어난 자일지라도 깨달음을 얻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영화 대사는 불교적 구원을 암시한다. 반면 깨달음을 얻은 자일지라도 짐승의 행위를 하면, 본인 내면에 있는 부처의 모습을 잃게 된다는 메시지도 있다. 이러한 영화적 장치와는 달리 김 교수는 “불교에서는 구원이 아닌 구제다”며 이렇게 설명한다.
 
  “불교에서는 ‘구원’이라는 용어 대신에 ‘구제’라는 말을 사용한다. 중생 구제란, 고통에 빠진 중생들을 구해내어 안락한 곳으로 안내한다는 의미가 있다. 현실적으로 어려움을 지닌 중생이 있다면 그 필요한 것을 제공하거나 보호해준다는 것이 구제의 내용이지만, 좀 더 궁극적으로는 중생 구제는 생사의 윤회로부터 해탈하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된다.”
 
 
  神은 존재하는가?
 
  영화 속 박 목사는 ‘진짜’에 대한 강한 호기심이 있다. ‘진짜’를 찾으려 하는데, ‘진짜’는 신이다. 이슬람 광신도에게 자신의 가족이 살해당한 이후, 더욱 종교적 회의론에 빠졌다. 혼란한 세상을 한탄하며 “우리의 하나님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계시나”라고 말한다. 이렇듯 신(神)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의 문제도 영화의 주요 주제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불교는 무신론(無神論)으로서 신이 존재한다는 질문이 성립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불교는 세계에서 드물게 무신론에 속하는 종교이다. 가장 인간다운 인간이 되는 길이 불교이며 신비로운 신의 경지, 또는 신선의 경지로 가자는 종교가 아니다. 모든 존재는 우리의 인식 가운데에서만 존재할 뿐이기에 누군가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그 마음에 신은 존재하는 것이고, ‘과연 신은 존재하는가’라고 자문(自問)했을 때에는 이미 신이라는 존재를 말살시켰다.
 
  불교에서는 우리의 인식을 허망한 망상(妄想)으로 보고 있으며 이 모든 망상에서 깨어나는 것이 깨달음이다. 이 망상이 스스로 생과 사라는 현상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나도 만들고 너도 만들고 일체를 만들어서 그 속에 갇혀서 온갖 괴로움을 스스로 만들고 고통스러워한다. 마치 바다에 바람 불면 파도가 치면서 온갖 기이한 현상을 만드는 것처럼 원래 없던 것이 망상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그 바람이 그치면 파도는 고요한 바닷물이 되어 거울처럼 모든 것을 비추듯이 우리의 망상이 그치면 모든 것을 거울처럼 받아들이되 비친 영상에 흔들리지 않는다. 이러한 상태를 모든 번뇌 망상이 그친 부처님의 마음이라고 하며, 그 마음의 본질은 중생이나 부처님이나 동일한 것이다.”
 
  다만, 정 교수는 “종교적 회의는 진리를 찾을 수 있는 원동력”이라며 불교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신에 대해 절대자로서 능력을 기대한다. 그러나 인간의 현실은 불완전한 것으로 채워져 있다. 이런 고통은 오래도록 서구사회가 가진 의문이었을 것이다. 기독교인으로서 불교의 깨달음이나 해탈에 대해 듣게 되면 상당한 의문을 가지게 될 것이다. 영화에도 그런 고통스런 혼란이 보인다. 회의는 진리를 찾으려는 원동력이다. 붓다 당시 회의론은 인간이 지닌 지식의 불완전함을 조롱하는 산자야 학파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붓다는 깨달음이 있다고 주장한다. 회의에 대해 그 이유와 근본을 따지고 극복하려 노력할 것 같다.”
 
 
  연기설로 해석한 인연
 
  영화에서는 불교의 연기설(緣起說)을 설명하는 부분도 나온다.
 
  “이것이 있기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태어난 후 저것이 태어나고, 이것이 멸(滅)하므로 저것이 멸한다.”
 
  만물의 인과관계와 상호의존성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영화의 주요 화두다. 우주만법이 단독의 힘으로 생겨나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인(因)과 연(緣)의 결합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불교적 시각으로 본 정 교수의 설명이다.
 
  “연기설은 사물과 인간의 본성이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고 수많은 외적 요인과의 상호작용 때문에 생긴다는 의존성을 말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는 수많은 기계적, 디자인 문화 등 다양한 요소가 결합하여 존재한다. 자동차라는 독립된 개념도 존재할 수 없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수많은 이적 요소가 결합되어 한 인격이 성장한다. 인간이 독립되거나, 불변의 존재로서 자아가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착각을 가진다. 무상(無相)의 현실 속에서 고통받는다. 불교에서 해탈은 자아나 외적 사물의 연기성을 보고 그 본성이 공(空)함을 봄으로써 집착을 끊는다. 거기서 시작한다.”
 
 
  〈사바하〉의 불교 상징들
 
  종교적 함축뿐만 아니라, 〈사바하〉에는 불교적 상징 또한 등장한다. 자문 교수들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불교적 색채를 가진 상징으로 설명한다.
 
  *머리카락과 번뇌: 불교에서 머리카락, 털은 ‘번뇌’를 상징한다. ‘그것’은 태어날 때부터 털이 온몸에 수북하게 자라 있다. 번뇌가 가득한 상태라는 의미다. 광목과 대면하는 장면에서도 이전과 상반되게 털 한 가닥도 찾을 수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것이 부처가 되어 해탈했기 때문에 번뇌(머리카락, 털)를 찾아볼 수 없는 이유다.
 
  *사슴: 김제석은 자신의 죽음을 막기 위해 사슴동산, 즉 녹야원(鹿野苑)을 만든다. 녹야원이라는 곳은 인도 바라나시 교외에 있는 동산으로서, 그전의 동료던 다섯 명의 수행자에게 가르침을 열었다. 이 가르침은 불교의 기본 교리에 대한 최초의 설법이었다.
 
  *육손: 부처가 태어났을 때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었다고 한다. 즉 육도(六道·중생이 가지는 여섯 가지 생존 방식)의 한계로부터 벗어났다는 의미다. 영화에서 육손이 부처의 상징처럼 쓰이고 있다. 나아가 영원이라는 의미로까지 읽히고 있다. 다만 불교에서 ‘6’은 완결・완성・영원을 뜻하는 것이 아니며, 완결・완성・영원이라는 개념도 없다.
 
  〈사바하〉는 불교적 세계관과 기독교적 세계관이 섞여 있어, 두 종교의 세계관의 차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인간이라며 느끼는 공통의 질문과 고뇌가 중간중간 등장한다.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라는 점이 특징이다. 종교에 대한 고민과 토론의 장을 만들었다는 데 두 자문 교수는 영화에 의미를 두었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1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박혜연    (2019-05-23) 찬성 : 1   반대 : 1
좌우성향을 불문하고 타종교비방은 이제그만!!!!!!

202105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프리미엄결제
2020년4월부록
정기구독 이벤트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 월간조선 2018년 4월호 부록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