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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 이슈

다시 주목받는 경남 함안 말이산 고분

“무덤 속에 새겨진 별자리로 보아 왕릉 분명”

글 : 이정현  월간조선 기자  johh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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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帝가 임나일본부 입증하려 발굴하다 붕괴, 2017년부터 다시 발굴
⊙ 가야 무덤에서 별자리 발견된 것은 처음
⊙ 왕릉에 天文圖를 그린 것은 고구려와 가야뿐… 고구려-가야 문화교류 입증
가야고분 최초로 시신이 안치되는 공간 위쪽 천장에서 발견된 125개의 성혈(알구멍). ‘현대 별자리’ 궁수자리·전갈자리 모습과 ‘전통 별자리’ 남두육성·기수·미수·심수의 모습. 사진=함안군
  가야는 《삼국사기》 등 관련 문헌에 따르면 AD 42년 금관가야·대가야가 건국되면서 역사에 등장한다. 이후 500년을 존속했다. 지역 12개국은 가야연맹체를 구성했다.
 
  AD 400년 고구려의 남정(南征)은 가야사의 중요한 사건이다. 〈광개토대왕릉비문〉은 고구려의 남정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경자(庚子·400년)에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보병과 기병 5만을 보내어 신라를 구원하게 하였다. 남거성을 지나 신라성에 이르니 왜가 가득하였다. (고구려의) 관군이 이르니 왜적은 물러나고 □□하여 그 뒤를 급히 추격하여 임나가라의 종발성(從拔城)에 이르자, 성이 곧 항복했다.〉
 
  학계는 이 광개토대왕의 남정을 ‘한반도 중·남부 전체에 커다란 충격과 변화를 가져온 일대 사건’이라고 평가한다. 광개토대왕릉비에 보이는, 왜병이 퇴각한 종발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김해설·고령설·임나(창원)와 가라(김혜) 통합설 등이 엇갈리고 있다.
 
  지난해 12월 경상남도 함안군의 함안 말이산 고분군(사적 제515호) 13호분 발굴 조사 결과가 발표되면서 학계에서는 광개토대왕의 남정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함안이 아라가야가 존재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말이산(주능선 길이 1.9km)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13호분은 말이산 고분군(古墳群) 중에서 최대 규모의 고분이다. 100년 전인 1918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발굴됐지만, 조사 내용에 대한 제대로 된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 2017년 봉분 중앙에 대대적인 싱크홀 현상이 생기면서 발굴조사가 다시 시작됐다.
 
 
  “전하기를 옛 나라의 왕릉이라 한다”
 
경상남도 함안 말이산 고분군(13·14·15·16호분). 사진=함안군
  말이산 고분군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조선 중기 함안을 기록한 대표적인 지리지인 《함주지(咸州志)》(1587)에 실려 있다.
 
  〈우곡리 동서쪽 언덕에 고총(古塚)이 있다. 높이와 크기가 언덕만 한 것이 40여 기인데, 세상에 전하기를 옛 나라의 왕릉이라 한다.(牛谷東西丘古塚, 高大如丘陵者四十餘, 諺傳古國王陵云)〉
 
  말이산 고분군의 지리적 위치와 모습, 고분의 크기와 수를 기록하고 있다. 옛 나라(아라가야)의 왕릉이라고 민간에서 구전되어 내려왔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발굴조사에서 특히 관심을 끈 것은 125개의 성혈(星穴·알구멍)이다. 무덤 주인의 시신이 안치된 공간 위쪽 천장에 새겨진 별자리다. 일반적으로 성혈은 청동기시대 암각화에서 발견된다. 고분의 개석(蓋石·뚜껑돌) 윗면에서 드물게 확인되었는데, 무덤 방 안에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공개된 성혈은 우리 전통 별자리의 남두육성(南斗六星)과 기수(箕宿)·미수(尾宿)·심수(心宿) 등이다. 현대 별자리로는 궁수자리와 전갈자리에 해당되며, 봄과 여름철 별자리 모습이다.
 
  발굴팀은 “무덤 천장에 별자리를 표현한 예는 고구려 고분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가야 무덤에서 별자리가 확인된 것은 최초”라고 발표했다. 광개토대왕의 남정이 고구려 문물이 가야로 전해지는 계기가 되었다는 학계의 오랜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발표였다.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
 
  고구려 유물이 경상남도에서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고구려 문화가 가야로 유입되었다는 고고학적 증거로는 1963년 경상남도 의령군(대의면 하촌리) 도로공사 중 발견된 연가7년명(延嘉七年銘) 금동여래입상(국보 제119호)이 있다. 북위(北魏)의 영향을 받아 고구려에서 제작했는데, 간지(기미년)와 조각 양식으로 보아 539년 제작된 것으로 추측된다. 가야 멸망(562년) 전 가야 문화권인 의령으로 유입된 불상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기년명(紀年銘) 금동불인 이 불상에 새겨진 명문은 이러하다.
 
  〈연가 7년인 기미년에 고구려 낙랑에 있는 동사(東寺)의 주지이며 부처님을 공경하는 제자인 승연을 비롯한 사도(師徒) 40인이 함께 현겁천불을 만들어 (세상에) 유포한 제29번째인 인현의불(因現義佛)을 비구인 법영이 공양하다.〉
 
  낙랑은 현재의 평양으로 추정된다. 첫머리의 연가는 고구려가 독자적으로 사용했던 연호 가운데 하나로 보이지만, 고구려가 이런 연호를 사용했다는 기록은 사서(史書)에 없다. 연호 다음에 등장하는 기미년(己未年)은 479년, 539년, 599년에 해당한다. 학계에서는 조각 형식과 양식적 특징에 비추어 539년에 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임나일본부는 통치기관이 아니라, 倭의 사신들”
 
  가야와 고구려의 관계를 보여주는 사료(史料)로는 칠지도명문(七支刀銘文), 광개토대왕릉비, 《일본서기》 등이 있다. 인제대 이영식 인문문화융합학부 교수의 말이다.
 
  “칠지도명문과 광개토대왕릉비는 4세기 말~5세기 초경 ‘백제·가야·왜’ 대(對) ‘고구려·신라’의 세력 구도가 충돌하는 격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칠지도명문은 372년 칠지도의 수수를 통해 백제·가야·왜가 군사동맹을 맺던 모습을 알려준다. 광개토대왕릉비는 그 동맹이 신라에 쳐들어가자 신라가 고구려 광개토대왕에게 구원을 청하는 사실,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보병과 기병 5만을 파병해 신라성(경주)을 구원하는 모습, 달아나는 가야와 왜의 연합군을 추격하다 김해와 고령의 임나가라(任那加羅)와 함안 아라(安羅·아라로 읽는다)의 가야군과 격돌하는 장면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이 교수는 “《일본서기》는 위의 군사동맹 체결의 모습을 전한다”고 말했다.
 
  “《일본서기》 ‘신공기’에 한성백제가 왜와 통교(通交)하기 위해 가야의 탁순국(卓淳國·창원)에 중개를 부탁한 기록이 있다. 과거 일제식민사학이 이 기록을 4~6세기 동안 고대 일본이 가야에 임나일본부를 두고 통치했었다는 주장의 근거로 삼기도 했다. 임나일본부가 관청이나 통치기관이 아니라 왜의 사신들을 말한다는 것은 ‘흠명기’에 기록된 아라일본부(安羅日本府)를 재안라제왜신(在安羅諸倭臣), 곧 ‘아라에 있는 왜의 사신들’이란 기록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日帝, 임나일본부설 입증하려 발굴
 
발굴조사 중인 경상남도 함안 말이산 고분군 13호분. 사진=함안군
  문헌기록이 거의 없는 가야, 특히 아라가야의 경우, 고고학적 조사와 연구를 통해 역사를 복원할 수밖에 없다. 말이산 고분군은 아라가야의 왕과 귀족들의 무덤군으로, 1987년 이래 20여 차례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이번 발굴조사 중인 13호분은 1918년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임나일본부설을 입증하기 위해 발굴했던 고분이다. 말이산 고분군뿐만 아니라 가야 문화권 전체로 보아도 최대급의 고분이다. 1918년 첫 발굴 당시에는 구덩이를 파고 무덤 내부로 빠르게 진입하는 도굴식 발굴 방법을 채택했는데, 고분 내부 붕괴로 인해 석곽 내부 2분의 1 정도만 발굴되었다. 발굴 관련 기록은 유리원판 사진 3매, 측량도면 2매가 전부다. 발굴 상황을 전혀 알 수 없었다.
 
  그 때문에 말이산 13호분 발굴 조사에 대한 지역의 관심이 높다. 김수환 경상남도 학예연구사는 이번 발굴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 재발굴 조사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2017년 봉토(封土) 정상부 싱크홀 발생으로 인해 조사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함안군은 일제강점기 발굴로 왜곡된 가야사를 재조명하고자 문화재청과 경상남도의 지원을 받아 재발굴 조사를 하게 됐다. 이번 13호분 발굴 조사에서 별자리 덮개돌 발견 및 석곽 내부 채색으로 인하여 주목받았다.”
 
  ― 별자리 발견의 의미는 무엇인가.
 
  “별자리 덮개돌의 경우, 무덤 주인공이 누워서 바라보는 위치에 별자리가 새겨져 있다. 향후 고고학계뿐만 아니라 고대 천문학계의 면밀한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현재 관계 전문가들은 고구려의 천문사상의 영향을 받아 제작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고고학적으로 출토 유물을 통해 대외교류 관계를 유추하는데, 이번 별자리 덮개돌의 발견은 가야와 고구려의 문화적 교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다.”
 
 
  北斗七星과 南斗六星
 
  ― 무덤 덮개돌에서 발견된 별자리를 어떻게 보아야 하나.
 
  “성혈(알구멍)은 지금까지 청동기시대의 고인돌·바위 등에 새겨져 있어서 선사인(先史人)들이 다산(多産)·풍양(豊穰·풍년)을 위해 새긴 것으로 이해해왔다. 심지어 조선시대에 득남(得男)을 위해 새긴 것이라는 설도 있다. 일부 고(古)천문학 연구자들은 선사·고대의 별자리로 해석해왔다.
 
  말이산 13호분에서 발견된 별자리 덮개돌의 경우 청동기인들이 성혈을 새긴 바위를 가야시대에 고분의 덮개돌로 재사용한 것이라는 설명도 있었다. 고천문학 연구자들은 13호분의 별자리(남두육성)는 청동기시대에 볼 수 있는 별자리가 아니라 가야시대에 관측된 별자리라고 한다.”
 
  ― 이번 발굴의 의미는 무엇인가.
 
  “고구려의 천문사상과 관계된 별자리를 아라가야 최고 지배자(왕)의 무덤 내에 묘사했다는 것은, 고구려와 가야가 단순히 물품의 교류를 뛰어넘어 정신문화까지도 교류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고구려의 경우, 현재까지 발견된 고분 벽화 91기 중 22기에 별자리가 묘사되어 있다. 고구려는 북두칠성(北斗七星)의 맞은편에 여름밤 남쪽 하늘의 남두육성을 묘사, 남쪽을 대표하는 별자리로 인식했다. 북두칠성은 하늘·죽음·운명을, 남두육성은 땅·생명(삶)·장수를 의미한다는 고대 동양인들의 믿음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말이산 13호분 덮개돌의 별자리는 남두육성으로 생명(삶·부활)을 의미한다. 이는 무덤 주인공의 사후(死後)에도 주거공간(무덤방)을 마련하고 저승에서의 생활을 보필할 아랫사람들을 순장(殉葬)했던 것과 함께 가야인들의 내세관(來世觀)을 잘 보여준다.
 
 
  “南斗六星 강조는 고구려의 특징”
 
경상북도 고령군 지산동 주산 남쪽 기슭에 있는 대가야 왕과 왕족의 무덤들. 대가야는 5세기 이후 후기 가야연맹의 맹주였으며 562년 신라에 병합됐다. 사진=조선DB
  고대 천문 연구의 권위자인 김일권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고구려 고분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한다.
 
  “북두칠성과 남두육성이 매우 강조되어 있는 것은 고구려의 특징적인 현상의 하나이다. 22기 별자리 고분 중 86% 정도에 북두칠성이 그려져 있고, 45% 혹은 그 이상에서 남두육성이 발견된다. 그런데 남두육성이 그려진 곳은 예외 없이(100%) 북두칠성이 함께 등장한다. 이것은 남두육성이 북두칠성의 대대적(對代的)인 자격으로 등장하여 있는 현상이라 하겠다.”(〈고구려 고분벽화의 천문사상 특징〉)
 
  김 교수는 “말이산 13호분은 왕릉이 분명하다”며 “고구려 천문사상이 가야로 넘어오는 과정을 추정할 수 있는 발굴”이라고 말한다.
 
  ― 고구려 천문사상이 가야로 넘어간 과정은 어떠한가.
 
  “광개토대왕의 남정 과정에서 고구려의 천문사상이 전달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 고구려 별자리가 중국과 차이가 생긴 이유는 무엇인가.
 
  “‘고구려가 이 세상의 중심이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런 생각은 광개토대왕 시기부터 발전했다. 국력이 신장하니 천문학 지식도 발전한 것이다. 중국은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시대로 분열되어 있었다.”
 
  ― 고구려는 왜 ‘남두육성’을 강조했나.
 
  “북두칠성은 원래부터 강력한 의미를 가지는 별자리다. 북두칠성과 똑같은 모습인데 이것이 남쪽 하늘에 나타나는 것이 남두육성이다. 북두와 대칭구도를 만드는 것이다. 의미론적으로 북두칠성은 사후 세계를 주관해 죽으면 북두칠성이 보호해줘 영원히 산다는 생각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살아 있을 때는 이 모든 것을 지켜주는 별자리가 남두육성이다. 도교와 비슷한 맥락으로 불교·도교 등 신흥사상이 들어오면서 강조됐다.”
 
 
  “천문도는 王權의 상징”
 
  ― 13호분 성혈 발굴의 의미는 무엇인가.
 
  “청룡 별자리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별자리를 새긴 시점은 봄이나 여름에 걸치는 시기다. 가을이나 겨울은 아니다. 피장자(被葬者)를 중심으로 구성되는데, 천장 아랫면이 하늘이 되는 것이다. 우주, 즉 윗면에 천문도를 그린다. 무덤 공간 자체를 우주로 인식하는 장치가 되는 것이다. 무덤 속 공간 자체가 소우주(小宇宙)가 되는 것이다. 이 소우주의 주인이 피장자다. 죽어서도 우주가 나를 감싸는 것처럼 하늘과 별처럼 영원한 삶을 유지하겠다는 소망을 나타낸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있었던 곳이 별이고, 죽어서 가는 곳이 별이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한다.”
 
  ― 말이산 고분군은 왕릉인가.
 
  “왕릉이 분명하다. 별자리 성혈이 왕릉의 가장 강력한 증거다. (지금까지) 무덤이 장군 무덤인지 귀족 무덤인지, 왕릉인지까지는 추정하기 어려웠다. 금관 같은 유물이 나오면 확실하겠지만…. 무덤 속에 천문도를 그렸다는 것은 피장자가 그 지역 최고 지배자인 왕일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서양에서는 왕권(王權)이 신(神)으로부터 온다고 믿었다. 이집트 파라오를 생각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동양에서 왕권이 하늘에서 온다. 왕권 천수(天授)다. 천문도를 그린다는 것은 하늘을 직접 피장자와 잇는다는 의미를 가진다. 왕권의 상징으로서 하늘과 통한다는 의미에서 천문도를 그린 것이다.”
 
  ― 말이산 13호분 별자리와 고구려 고분의 유사점은 무엇인가.
 
  “무덤 속 천장부에 별자리를 그렸다는 점이 고구려와 같은 맥락이다. 이 천문도를 그리면서 무덤을 우주의 축소판, 즉 소우주 공간으로 인식한 것이다. 고구려·백제·신라·가야 등 당시 4국 시대에, 왕릉에 천문도 별자리를 그린 것은 고구려와 가야밖에 없다. 백제는 해와 달을 그렸다. 별자리는 아직 없다. 이러한 천문도를 통해 문화적으로 교류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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