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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필석의 山이야기

카라코룸 히말라야 히스파르 패스 트레킹 〈上〉

크레바스에 빠져 죽다 살아나다

글 : 한필석  전 《월간산》 편집장  psh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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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팔 트레킹이 부드러운 시골길을 따르는 여유로운 여정이라면, 파키스탄 트레킹은 돌밭길이나 얼음빙하를 거슬러 오르는 힘든 여정
⊙ 포터들 보름 일하면 한화 25만원 받아… 10년 경력의 군인 월급에 해당
⊙ 지쳐서 “헬기 불러달라”던 맹헌영 선배, 초코파이·찰떡파이 먹고 기운 차린 후 “배가 고파 그랬나?”
크레바스를 피해가며 마르포고로로 향하고 있다. 사흘간 내린 눈에 숨은 크레바스가 많았던 빙하지대였다.
포터들 뒤로 소카룸부에서 소스분브락으로 이어지는 침봉군이 왕관처럼 솟구쳐 있다.
  발토로 빙하(Baltoro Gl.)는 파키스탄 카라코룸 히말라야에서 가장 잘 알려지고 매력적인 트레킹 코스다. 마지막 마을 아스콜레(Askole·3060m) 출발 이후 K2 베이스캠프(5200m)에 이르기까지 파이유(Paiyu·6610m), 트랑고타워(Trango Tower·6617m), 무즈타그(Muztagh·7284m), 마셔브룸(Masherbrum·7821m), 가셔브룸 4봉(GasherbrumⅣ·7925m), 브로드피크(Broad Peak·8047m), K2(8611m) 등6000~8000m급 고봉들이 빙하 양옆에 도열해 있는, 명봉(名峰) 전시장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빙하상의 군사기지를 오가는 수송용 말들로 인해 흙먼지가 풀풀 날리고 말똥이 널려 있는가 하면, 수많은 원정대와 트레커팀들의 발길과 쓰레기 때문에 많이 훼손되고 있다.
 
  발토로 빙하 초입에서 서쪽으로 갈라지는 비아포(Biafo Gl.)~히스파르 빙하(Hispar Gl.)는 다르다. 험하고 거친 면은 비할 데 없을 정도이며, 대자연의 순수함과 신비감 또한 고스란히 살아 있다. 산모퉁이를 돌 때마다 우뚝 솟구치는 거대한 산봉(山峰)들은 물론, 남극 빙원(氷原)을 연상케 할 만큼 어마어마한 넓이(약 77km2)의 스노레이크(Snow Lake)가 눈앞에 펼쳐질 때는 가슴 벅찰 만큼 감동적이다. 비아포 빙하와 히스파르 빙하의 분기점인 히스파르 패스(Hispar Pass·5150m)에서 바라보이는 설봉(雪峰)과 설원(雪原)은 순백(純白)의 미(美)가 극에 달해 가슴 떨리게 한다.
 
 
  파키스탄 트레킹은 고난의 길
 
채석장을 방불케 하는 비아포 빙하 초입부. 해발 6294m 높이의 불라피크가 날카롭게 솟아 있다.
  네팔 트레킹이 부드러운 시골길을 따르는 여유로운 여정이라면, 파키스탄 트레킹은 돌밭길이나 얼음빙하를 거슬러 오르는 힘든 여정이다. 히스파르 패스 트레킹 역시 그렇다. 비아포와 히스파르 두 빙하를 이을 경우 122km에 달한다. 히말라야에서 가장 긴 빙하다. 여기에 사막 같은 더위 속에서 퇴석지대와 크레바스가 도사리고 있는 빙하지대를 가로지르고, 가파른 해발 5150m 높이의 패스를 올라서는 과정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맹헌영 선배와 김창호, 필자, 그리고 현지 가이드와 포터 10명이 동행한 히스파르 패스 트레킹은 즐겁고 순조롭게 시작됐다. 2004년 6월 18일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한 일행은 그날 밤 파키스탄 제2의 도시 라호르에 도착하자마자 야간버스를 타고 이슬라마바드까지 이동했다. 19일 오전 8시발 비행기로 파키스탄 북동부 발티스탄의 주도인 스카르두(Skardu)에 도착해 그날 오후 포터 고용과 식량 구입을 마치고 이튿날 오후 K2와 가셔브룸1·2봉 캐러밴 기점인 아스콜레에 도착하는 쾌속 행진을 벌였다.
 
  그런데 남라(Namla·3400m)에서 하룻밤 지낸 뒤 22일 망고1(MangoⅠ·3700m)으로 향하는 사이 브레이크가 걸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망고에서 끝내야 할 것 같습니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려 밴타(Baintha·4000m)까지 가는 것은 포터들에게 무리입니다.”
 
  가이드 알리 칸(Ali Khan)이 오늘 일정에 대해 걱정스럽게 말했다. 하루 전날 아스콜레에서 남라까지 걸어올 때는 더위와 거친 돌길에 시달렸는데 이제 비와 추위에 곤욕을 치른다.
 
  빗방울이 굵어지자 아스콜레에서 끌고 올라온 염소가 바들바들 떤다. 포터가 안고 있는 닭은 고소증세가 심각하다. 아예 눈을 감고 있다. 닭을 품에 꼭 껴안은 포터는 ‘염소 등을 덮어줄 만한 게 없냐’고 손짓·발짓으로 묻는다. 현지인들의 가축에 대한 애정은 대단하다. 여름철에는 우리에서 키우거나 4000m대 목초지에서 방목하다가도 9월 말부터 이듬해 3월 초까지 추위가 닥칠 때면 집 안으로 들여 함께 지낼 정도다.
 
  하지만 파키스탄 트레킹 규정상 트레킹에 참가한 포터들에게 고기를 일정량 지급해야 한다. 그래서 염소와 닭을 아스콜레에서 사서 끌고 올라가다 트레킹 초반에 잡아 포터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줄 계획이었다. 염소 한 마리와 닭 두 마리 역시 이러한 신세였고, 결국 이 짐승들의 운명은 비로 인해 망고에서 끝나고 말았다.
 
 
  빙하는 살아 움직인다
 
거대한 퇴석 둔덕을 넘어 남라로 향하다가 잠시 쉬고 있는 현지인들.
  밤새 비에 시달린 일행은 비가 소강상태를 보이자 오전 8시 밴타로 향했다. 빙하를 가로질러 얼음빙하로 들어선다. 비아포 빙하 트레킹은 3~4km 너비의 퇴석빙하(堆石氷河) 한가운데 띠를 이루며 뻗은 얼음빙하를 거슬러 오르다가 그날 캠프지가 다가올 즈음이면 초지나 평지를 이룬 가장자리로 빠져나가곤 한다. 그런데 3~4km의 폭, 그것도 집채만 한 바윗덩이와 시커먼 흙더미가 뒤엉킨 산등성이를 오전 오후 두세 차례씩 가로지르다 보면 체력이 바닥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빙하에서 불어대는 바람이 얼굴을 스치면 정신이 되살아난다. 푸른빛 감도는 망고에서 생동감 넘치는 삶과 생존이 느껴진다면 검은 퇴석빙하에서는 죽음, 절망이 연상된다. 히말라야에서 죽음의 지대는 꼭 해발 8000m 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가 들어선 이 빙하도 죽음의 지대다. 흙빛 빙하, 흙과 바위, 얼음이 뒤섞인 퇴석빙하는 그 어떤 생물체의 생존도 거부하는 듯하다. 그렇지만 빙하는 살아 움직인다. 녹으면서 흙과 바위가 드러나 죽어 있는 채석장 같지만, 끊임없이 밀려 내려가며 겉으로 크레바스를 만들어내고 그 밑으로 생명수가 흘러내려 기나긴 인더스강을 이루는 것이다.
 
  퇴석빙하라고 흙과 바윗덩이만 뒤엉켜 있는 곳은 아니다. 하얀 빙하도 나타나고, 빙하 양옆에 설봉과 암봉(岩峰)도 솟구쳐 있다. 날씨가 맑다면 지금 우리 앞에 솟구쳐 있을 밴타브락(Baintha Brakk·7285m)도 그중 한 봉우리요, 아스콜레에서 만난 아르헨티나 클라이머들이 노리는 라톡(Latoks·7145m) 역시 그중 한 봉우리이다.
 
  채석장 같은 돌밭을 지나 얼음빙하로 올라선다. 끝이 없을 듯 길고 완만하다. 이래서 비아포 상단부가 ‘비아포 하이웨이’라 불리는 것일 게다.
 
 
  세계 最長의 빙하
 
  파키스탄 히말라야를 속속들이 답사한 바 있는 김창호씨는 “비아포 빙하와 히스파르 빙하를 합치면 면적은 발토로 빙하에 뒤지지만 길이는 세계 최장(最長)”이라며 비아포 빙하 주변 캠프지와 암봉 이름의 유래에 대해 얘기해준다. 우리가 ‘바인타브락’이라 불러온 오거(Oger)는 초입 목초지인 ‘밴타’와 암봉을 일컫는 ‘브락’에서 비롯된 산명(山名)인데 일본식 발음으로 잘못 전해져 바인타브락으로 불리고 있다고 한다. 밴타 이후 캠프지인 낙포고로(Nakpo Goro), 마르포고로(Marpo Goro), 카르포고로(Karpo Goro)의 ‘낙포’ ‘마르포’ ‘카르포’는 검정, 빨강, 하양을 뜻하고 ‘고로’는 돌밭을 의미한다고 한다.
 
  남라를 출발한 지 4시간쯤 지나 알리는 얼음빙하 위에서 점심을 먹자고 한다. 포터들은 얼음을 싫어한다. 신발이나 의류가 열악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초코파이 같은 간식거리로 점심을 해결하지만 포터들은 엊저녁 구운 밀가루빵인 ‘차파티’에 ‘차이’라 불리는 밀크티를 마신다. 차에 분유와 설탕을 섞어 끓인 것이다. 망에 걸러내지만 비위가 약하고 고소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잘 마시지 못한다.
 
  점심을 먹는 사이 알리가 “오늘 일정을 사풍(Shafung·3930m)에서 마무리 짓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왔다. 포터들이 비에 젖어 힘들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렇다고 그들 입장에 맞추다 보면 일정대로 끝맺을 수 없다. 포터들은 그들 편한 쪽으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습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빗방울이 더욱 굵어지자 포터들이 몸을 잔뜩 움츠린 채 걷는다. 안쓰럽다. 이들의 하루 임금은 화목을 구할 수 없는 밴타 이후 식량·연료 포함해 스테이지(stage·구간)당 240루피, 하루에 두 스테이지씩 걷는다고 해봤댔자 우리 돈으로 1만원 안팎으로 보름 일정을 모두 마치면 보너스 포함 6000루피(25만원)쯤 받는다. 10년 경력의 군인 월급에 해당한다 하니 이 나라에서는 적은 돈이 아니다. 트레커 입장에서도 적은 액수는 아니다. 트레커 한 명당 서너 명의 포터를 고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히말라야의 오아시스
 
밴타 캠프지 부근의 호숫가를 걷는 맹헌영씨와 필자. 호수에 하얀 산이 잠겨 있다.
  얼음빙하를 거슬러 오르다 정오가 넘어선 뒤 서서히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건너편 산기슭의 둔덕으로 올라서기 위해서다. 4000m에 접근하면서 고소증세가 왔다 갔다 한다. 이것도 히말라야 트레킹의 매력 중 하나다. 컨디션을 조절해가면서 높이를 차츰 높이노라면 어느 순간 목표 삼은 지점에 도달하고, 그 순간 장엄한 히말라야의 풍광이 눈앞에 펼쳐지면서 가슴 벅찬 감동이 느껴지는 것이다.
 
  “와~, 이런 오아시스가 숨어 있다니….”
 
  둔덕에 올라서자 맹헌영 선배가 감탄스런 표정을 짓는다. 둔덕 뒤에 푸른 잔디밭과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개울이 숨어 있었다. 둔덕에서 우리를 지켜보던 이들은 외국팀 짐을 지고 왔다가 이곳에서 머물고 있는 아스콜레 청소년들이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이벡스(ibex·야생염소)가 수십 마리씩 뛰어다니던 곳이에요.”
 
밴타 초원 캠프에서 담소를 나누는 맹헌영씨(왼쪽)와 필자. 아스콜레 주민의 총에 맞아 죽은 아이벡스의 머리가 보인다.
  알리는 파랗게 풀이 자라고 있는 절벽 사면을 가리키며 이곳에서 사는 동물들에 대해 설명해주고, 캠프장 부근의 바위 굴 위에 얹혀 있는 아이벡스 머리는 “5년 전 아스콜레 사람이 총으로 쏴 잡은 아이벡스”라고 일러주었다.
 
  밴타는 아름다운 곳이다. 둔덕을 경계로 아래쪽은 죽음을 연상케 하는 퇴석지대이거나 얼음빙하지만, 위쪽 밴타는 푸른 초원지대에 맑은 물이 흘러내리고 그 뒤로 웅장하면서도 푸른 절벽이 솟구쳐 풍요롭게 느껴진다. 텐트 치는 사이 하늘을 뒤덮던 먹장구름이 벗겨지고 햇살이 쏟아져 내리면서 검은 벽, 검은 봉, 흰 벽, 흰 산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소카룸부(Gama Sokha Lumbu·6282m)에서 망고브락(Mango Brakk·5355m)으로 이어지는 침봉들과 동바르(Dongbar·6282m)에서 불라(Bullar·6294m)로 이어지는 암봉들뿐 아니라 빙하 바깥쪽의 바코르다스(Bakhor Das·5809m)까지 빤히 바라보인다. 소스분브락(Sosbun Brakk·6413m)도 창끝처럼 날카롭게 솟구쳐 있다.
 
  비아포 빙하와 주변 침봉·암봉들을 넋을 잃은 채 바라보고, 밴타 위쪽 호숫가로 다가가 산을 머금은 호수의 정취에 빠졌다가 텐트에 돌아오자 맹헌영 선배는 “오늘 이렇게 아름다운 히말라야의 자연을 마주한 것으로 만족한다. 내일부터 보는 것은 모두 보너스로 생각하겠다”며 즐거워한다. 그러곤 지난 1년간 굳게 지켜왔던 금주(禁酒) 결심을 깨고 “오늘 같은 날 한 잔 안 하면 언제 하겠냐?”며 배낭 깊숙이 넣어두었던 술병을 꺼낸다. 술 한 잔, 차 한 잔 마셔가며 저녁노을에 물드는 소스분브락을 바라보는 즐거움은 그 어느 것에도 비교할 수 없는 황홀경이었다.
 
 
  멈추지 않는 진눈깨비
 
트레킹 기점인 아스콜레 마을.
  히말라야의 날씨는 종잡을 수 없다. 밤새 별이 반짝일 정도로 날씨가 좋았건만 새벽녘 빗방울이 텐트를 두드리더니 진눈깨비가 내리고, 오전 10시가 넘어섰는데도 멈추지 않는다. 파키스탄 히말라야 전문가인 김창호씨도 “이런 날은 처음”이라며 혀를 내두른다.
 
  이런 날은 움직일 수가 없다. 특히 크레바스가 많은 빙하로 들어서는 날이기에 더욱 불가능하다. 어쩔 수 없이 시간 죽이기에 들어갔다. 김창호씨는 히스파르~비아포 빙하 탐험사와 빙하 주변 봉우리들의 등반사를 얘기해준다.
 
  어제 날씨가 좋으면 밴타에서 4800m 높이 산등성이에 오르기로 했었다. 밴타브락과 라톡, 우준브락(Uzun Brakk·6422m·일명 Conway’s Oger)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 꿈이 깨지자 이제 히스파르 패스에서 워크맨피크(Workman Peak·5885m)를 오르기로 했다. 카라코룸 히말라야의 절반이 바라보인다는 봉우리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트레킹 종착 마을인 히스파르에서 지프를 타고 나가르(Nagar)로 가다가 또 다른 봉우리로 오르기로 했다. 꿈은 원대한데 지금 날씨로 봐서 하나라도 제대로 이루어질는지 걱정이다.
 
  오후 3시, 장대비를 맞으며 현지인 여럿이 우리 쪽으로 올라온다. 스카르두까지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온 일본 여성팀 포터들이다. 가이드 2명과 쿡, 키친보이 등 60명에 이르는 현지인이 다 올라온 뒤 60대 전후 일본 여성 트레커 3명이 올라왔지만 모두 풀이 죽어 있다.
 
  2시간쯤 지났을까, 이번에는 위쪽에서 8명의 클라이머가 내려온다. 한 달 가까이 이 일대의 암봉을 정찰하고 히스파르 패스를 넘어 나가르 쪽으로 빠져나가려던 체코 산악인들이었다. 이들은 많은 눈과 히든 크레바스에 이틀간 곤욕을 치르다 패스 횡단을 포기하고 아스콜레를 향해 내려서던 중이었다. 상황은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빗방울 맞으며 출발
 
이방인들에게 몰려든 아이들은 불결한 환경 때문인지 피부색과 눈빛이 건강해 보이지 않았다.
  “너무 무리하지 말고 코스를 바꾸는 게 어때요? 나한테도 부담 가질 것 없이….”
 
  이튿날 아침 텐트 밖으로 나서자 초원에 눈이 수북이 쌓여 있다. 함박눈까지 퍼붓는다. 일본팀도 체코팀도 텐트 안에서 꼼짝하지 않는다. 포터들 역시 마찬가지. 맹 선배는 오전 내내 뭔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포기하는 게 어떻겠냐’고 묻는다. 히말라야에서 처음 눈을 맞은 맹 선배로서는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아스콜레까지 예상보다 2~3일 빨리 들어왔고, 그만큼 시간을 벌어놓았기에 그럴 상황은 아니었다.
 
  오전에 배꼽 아래 커다란 ‘물건’ 달린 눈사람을 만들며 여유를 보이던 체코팀이 하산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먹구름이 걷히고 파란 하늘이 드러난다. 일본팀 리더가 우리 텐트에 찾아와 계획을 묻는다. “우리는 내일 무조건 출발한다”고 하자, 그는 “고민 중”이라 한다. 꽤 많은 돈을 들여 트레킹에 나섰기에 웬만하면 강행하리라 예상했는데 나이 든 여성 트레커들이라 조심스러운 듯했다.
 
  정말 지긋지긋한 날씨다. 엊저녁에는 초승달이 보일 정도로 밤하늘이 맑았는데 이튿날(26일) 아침이 되자 또다시 눈발이 날린다. 알리가 텐트 앞에 다가와 “어떡할 거냐”고 묻는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더 이상 미루다가는 귀국행 비행기 타기가 쉽지 않다. 계획을 바꾸어 카르포고로(4700m)까지 하루에 가려던 계획을 마르포고로(4300m)에서 끊어 이틀에 나누어 가기로 했다.
 
  오전 8시, 빗방울이 두드리는 궂은 날씨 속에서 일본 여성 트레커들의 환송을 받으며 호수를 끼고 언덕을 넘어 널찍한 평원을 지난다. 평원에는 커다란 돌들이 널려 있다. 어제 굉음(轟音)을 내며 돌이 떨어졌는데 이 중 하나일 것이다.
 
  김창호씨는 1892년 외국인으로서 비아포 빙하를 처음 답사한 영국 산악인 마틴 콘웨이(W. Martin Conway·1856~1937)가 쌓아놓은 돌탑이 그대로 남아 있는 밴타Ⅱ를 거치려고 했는데, 알리는 평원을 지나자 빙하 쪽으로 방향을 튼다.
 
  얼음빙하는 이틀간 내린 눈으로 순백의 옷을 입고 있다. 눈속임이다. 흰 눈 쌓인 빙하를 마음 놓고 걷다가는 옷 주름에 걸려 넘어지거나 주름 사이로 빠져들고 만다. 게다가 비아포 빙하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출렁인다. 오늘은 보려니 기대했던 밴타브락과 라톡은 먹구름에 가려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아, 이번에도 못 보네….”
 
  김창호씨는 우준브락 위쪽의 룩필라브락(Luk Pilla Brakk)을 보지 못하는 게 못내 아쉬운가 보다. 2000년 비아포 빙하에 처음 들어섰을 때는 날씨가 나빠 보지 못하고, 빙하 상단부 크레바스 지대가 너무 위험해 히스파르 패스 횡단마저 포기했었다. 그 한 달 뒤 히스파르 쪽에서 진입했을 때도 닷새 내리 비가 내리는 바람에 또다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때문에 김창호씨는 누구보다도 날씨를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밴타브락 쪽에서 짐승 울음소리가 들린다. 알리가 아이벡스가 우는 소리라 일러준다. 짐승도 궂은 날씨를 탓하고 있는 것일까.
 
  하늘이 짐승의 울부짖음이 안쓰러웠는지 설원에서 포터들이 차이를 끓이는 사이 햇살이 서서히 퍼지더니 비아포 빙하 전역이 환하게 빛난다. 기대하던 스노레이크 설원과 히스파르 패스 일원도 멀리 바라보인다. 뜨거운 햇살 아래 입을 쩍쩍 벌린 크레바스를 피해 길을 찾아 나가는 것은 개미굴 찾기 게임이나 다름없다. 한동안 엄청난 폭의 크레바스에 놀라거나 신기해하기도 하고, 스노브리지를 딛고 크레바스를 건너설 때는 짜릿한 스릴도 느꼈다. 하지만 뜨거운 태양 아래 하얀 빙하를 걷다보면 금세 체력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결국 빙하를 지나 퇴석지대를 가로지르는 사이 지치고 만다.
 
 
  붉은 자갈밭
 
마르포고로로 향하던 중 파란 하늘이 터지자 일행 모두 얼굴이 활짝 펴졌다.
  오늘 묵을 캠프장은 마르포고로, 붉은 자갈밭이란 뜻이다. 널찍한 초지와 모래밭이 깔려 있고, 그 사이로 맑은 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텐트를 치고 낮잠 한잠 자고 일어나자 히스파르 패스 쪽도 구름이 걷히면서 날카롭게 치솟은 침봉인 소스분브락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곤 암봉들이 하나하나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김창호씨가 보고파 하던 룩필라브락도 캠프장 뒤편에 우뚝 솟구쳐 올랐다.
 
  오늘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연장자의 선창에 따라 현지인들의 이슬람 교리 낭독으로 시작한다. 안전을 기원하는 의식도 겸하고 있다. 현지인들의 빙하 크레바스에 대한 공포심은 대단하다. 트레킹 도중에 눈에 띄는 묘는 대부분 크레바스에 빠지거나 지쳐서 죽은 포터들의 묘다. 현지인들은 이러한 묘가 나타날 때마다 다가가 무릎을 꿇고 앉아 죽은 이의 넋을 위로해주는 묵념을 하거나 주문을 외운다.
 
  새벽 6시 조금 못 미쳐 카르포고로로 향한다. 엊저녁 캠프지 옆으로 흘러내리던 물이 얼어붙을 정도로 기온이 떨어졌다. 트레킹 이후 처음으로 구름 한 점 없이 맑다. 암봉들 또한 냉랭할 정도로 차게 보인다. 산봉들이 햇살에 황금빛으로 반짝이며 새날을 맞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퇴석 둔덕을 넘어 얼음빙하로 들어서면서 어제 우리가 겁 없이 대암벽 기슭으로 들어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룩필라브락은 첨병(尖兵)에 불과했다. 그 뒤편에 솟구친 우준브락은 거대한 장벽을 곧추세운 채 많은 위성봉을 거느리고 있었다.
 
  출발한 지 1시간쯤 지나자 햇살이 빙하에 스며든다. 소스분브락과 스노레이크 주변의 무명봉들이 보인다. 우리는 저기 보이는 패스 중 하나를 넘어 히스파르 빙하로 내려설 것이다.
 
  빙하는 햇살이 파고들자 기지개 켜듯 숨을 깊이 들이마시곤 꿈틀거린다. 크레바스는 그래서 생기는 것이다. 눈이 물러지자 무거운 짐 멘 포터들이 툭 하면 허벅지까지 눈 속으로 빠져든다. 행동이 위축되고 긴장감이 감돈다. 쉬는 시간 또한 잦아진다. 무방비 상태로 더 이상 가는 것은 지나친 모험이다. 고정로프를 꺼내 굴비 엮듯 한 명 한 명 연결한다.
 
 
  크레바스에 빠지다
 
천하장사 유습이 스노레이크로 접근하던 중 크레바스에 빠진 포터를 끄집어내 주고 있다.
  이제 비아포 빙하가 완전히 터졌다. 정말 광활한 빙하다. 넓디넓은 빙하는 양옆으로 치솟은 봉우리들이 균형을 잡아주고, 날카로운 봉우리 부근에 뭉게구름이 떠다녀 더더욱 아름답다. 암봉은 빙하 가까이 벽만 내놓았을 뿐, 진짜다 싶은 산봉들은 한참 뒤로 물러앉아 있다. 큰 산은 자신만의 흰옷, 빙하까지 갖추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하지만, 실제로는 적어도 2000m 이상 표고 차가 나는 봉들이다.
 
  천하장사 유습도 피켈로 눈을 쿡쿡 찔러대며 허공 다리를 확인한 다음에야 한 발 한 발 움직인다. 크레바스를 피하느라 갈지자로 걷다 보니 속도가 나지 않았다. 힘이 좋아 ‘천하장사 헤라클레스’라 불리는 그는 빙하지대에 들어선 이후 히스파르 마을에 닿을 때까지 앞장서서 길을 찾아 나갔다. 절벽을 내려서거나 오를 때도 동료 포터들이 조금이라도 불안해하면 기꺼이 짐을 대신 메주는 마음씨 좋은 사람이었다.
 
크레바스에 빠지는 순간 눈에 들어온 빙하 속은 생명은 결코 존재할 수 없는 죽음의 지대다 싶었다.
  정말 찰나였다. 포터들에 이어 맹 선배가 지나간 다음 맨 뒤에서 걸어가는데, 발이 쑥 빠지더니 몸이 허공에 뜨고 말았다. 모두 조금씩 빠지면서 지나가기에 나도 그 정도려니 방심하고 발을 딛는 순간 크레바스에 빠져버린 것이다. 배낭이 크레바스 안의 얼음 턱에 걸리고 서로 로프를 연결했기에 망정이지 1.5km 깊이 얼음 속으로 사라져버렸을지 모르는 순간이었다(비아포 빙하 상단과 스노레이크 일원의 빙하 두께는 1.5km 이상으로 추정). 귀신 수염처럼 섬뜩한 분위기의 얼음 기둥들이 매달려 있는 크레바스 안에 좁은 얼음 크랙이 형성돼 있어 발을 끼워 넣어 일어서고, 맹 선배가 로프를 당겨주어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인샬라!
 
연일 내린 눈은 우리를 이틀간 밴타에 묶어놓기도 했지만 이후 펼쳐진 순백의 세계로 우리를 감동시키기도 했다.
  예상보다 배 이상의 시간과 배 이상의 체력이 소모되고 있다. 빙하를 벗어나 퇴석지대로 들어섰다. 이곳 역시 곳곳에 크레바스가 도사리고 있어 만만치 않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맹 선배가 드러눕는다. 그러곤 정색을 한 채 “내 몸은 내가 잘 안다. 돈이 많이 들어 문패를 바꾸는 일이 있더라도 헬기를 타야겠다”고 한다. 헬기를 부를 수 없는 곳이라 설득하자 “그러면 포터 4명만 붙여달라”고 한다. 그렇지만 곳곳에 크레바스가 도사리고 있는 빙하 구간을 혼자 내려가게 할 수는 없는 일. “오늘 캠프지까지만 가서 생각해보자”며 물과 간식을 권했다. 마침 포터들이 갖다 준 차파티를 김창호씨가 뜯어 먹는 모습을 보더니 조금 먹어보겠단다. 이상하다. 고소증이 오면 현지 음식은 냄새도 맡지 못하는데….
 
  “하나 더 줘봐요.”
 
  초코파이와 찰떡파이를 3개씩 먹고 난 뒤 맹 선배 왈 “배가 고파서 그랬나?”. 고소증보다 허기에 지쳐 있던 것. 간식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계속 걷다 보니 허기에 지쳤던 것이다.
 
침봉들로 둘러싸인 거대한 설원인 스노레이크를 가로지르고 있다. 한 발 한 발이 조심스러웠지만 조금씩 히스파르 패스에 다가선다는 기쁨이 더해졌다.
  퇴석 둔덕의 거친 돌길과 가파른 언덕을 넘고 넘어 카르포고로에 도착한 것은 오후 3시30분, 마르포고로 출발 9시간40분 만이다. 표고 차 300m, 거리 12km를 걷는 게 이렇게 힘들었던 것이다. 빙하 원두(原頭)의 둔덕에 자리 잡은 카르포고로는 고행을 보상이라도 해주려는 듯 조망이 뛰어났다. 불꽃처럼 타오르는 소스분브락과 그 오른쪽으로 잘록한 소카 패스(Sokha Pass), 그리고 내일 오를 히스파르 패스와 워크맨피크도 빤히 바라보인다.
 
  저녁 식사 후 모처럼 평온한 시간을 갖는다. 소스분브락을 시작으로 빙하 주변 침봉들이 붉게 물들어갔다. 어둠이 몰려오기 전 비아포 빙하는 또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고 있었다. 눈을 감고 조용히 기도했다.
 
  “인샬라(Inch Allah·알라신의 뜻대로 하옵소서), 인샬라~. 내일 히스파르 패스에 무사히 올라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다음 달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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