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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탐구

만두 맛의 비밀

“담백하면서 촉촉해야 맛있다”

글 : 서철인  월간조선 기자  ironin@chosun.com

사진 : 서경리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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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두는 추운 지방에서 발달한 음식, 한반도에서도 충청도 이남에서는 만두 먹지 않아
⊙ ‌고려가요 <쌍화점>에 따르면 만두를 한반도에 전한 것은 아랍 상인일 가능성 커
⊙ ‌평양만두와 개성만두는 육수에 삶고, 서울만두는 찜통에 찐다는 점에서 달라
⊙ ‌중국 만두는 반죽을 발효시켜 만드는 바오쯔(包子)와, 반죽을 피로 만들어 빚는
    자오쯔(餃子)로 나뉘어
  “봄 타는 걸까요. 고향에서 먹던 만두(饅頭) 생각이 간절하네요. 우리 집에서는 이른 봄에 나는 온갖 나물을 넣고 만두를 빚었는데, 그 맛이 얼마나 신선하고 향긋했는지 몰라요. 요즘처럼 입맛 없고 기운 없을 때는 딱 좋은데….”
 
  나른한 봄날 오후, 황해도 회령 출신의 한 탈북자가 푸념처럼 털어놓은 이야기다. 만두소로 나물을 넣는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 “회령 지역 만두에는 속에 나물을 넣느냐”고 물으니 “우리 집만 그렇게 먹었다”고 답한다. “우리 집에서는 그때그때 구하기 쉬운 재료로 만두소를 만들었다”는 말도 덧붙인다.
 
  돌이켜 보면 만두처럼 응용하기 쉬운 음식도 없는 듯하다. 속에 고기를 넣으면 고기만두가 되고, 김치를 넣으면 김치만두가 되지 않는가. 비빔밥처럼 평소 좋아하는 여러 가지 재료를 소로 넣어 즐길 수 있는 음식이 만두 아닌가 싶다.
 
  만두의 종류는 편의상 중국식과 한국식으로 구분하고, 한국식은 다시 평양식, 개성식, 서울식으로 세분한다. 재료나 모양에 따라 분류할 경우 그 종류를 헤아릴 수조차 없다. 조선시대 문헌에 등장하는 만두 종류만도 78종에 이른다.
 
  호서대 식품영양학과 정혜경(鄭惠京) 교수는 자신의 논문 <만두 문화의 역사적 고찰>에서 ‘세계 다른 나라보다 우리의 만두 문화가 발달한 것은 밀가루나 호밀가루를 만두피로 사용한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은 생선과 채소류 등 다양한 재료를 만두피로 활용하는 독창성 때문’이라고 밝혔다.
 
  만두의 사전적 의미는 ‘밀가루 따위를 반죽하여 소를 넣은 음식’이다. 이렇게 볼 때 이탈리아의 라비올리, 아르메니아의 힝깔리, 러시아 시베리아 지역의 펠메니, 티베트의 모모, 중국 톈진(天津) 지역의 바오쯔(包子), 폴란드의 피에로기, 터키의 만티, 몽골의 보쯔 등은 모두 만두의 범주에 속한다. 이들 만두의 공통점은 북반구에 위치한 나라에서 즐겨 먹은 전통음식이라는 점과 새해 명절에 가족들이 모여 만두를 빚었다는 점이다. 정혜경 교수는 ‘가족들의 반두 빚기는 주로 메밀이나 밀의 재배가 가능한 지구 북쪽 지역에서 행해지던 공통된 문화’라고 분석했다.
 
  우리의 만두도 중부 이북 지역에서 발달한 음식이다. 요리연구가 한복선(韓福善)씨는 “역사적으로 충청도 이남 지역에서는 만두를 먹지 않았다”며 “남부 지방은 밀이나 메밀이 흔치 않아 만두 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북 지역에서는 설음식으로 떡국 대신 만둣국을 먹었다. 설이 되면 온 가족이 모여 만두를 빚는 것이 이북 지역의 세시풍속이었다. 전라도나 경상도에서는 만두 대신 떡국을 먹었고, 충청도와 경기도에서는 떡국에 만두를 넣은 떡만두국을 먹었다. 이북 지역에서는 언제부터 만두를 먹게 되었을까. 또 맛있는 만두의 기본은 무엇일까.
 
 
  메소포타미아가 만두의 기원
 
  모양과 맛은 약간씩 다르지만 만두는 전 세계적으로 즐겨 먹는 음식이다. 만두의 기원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설이 존재한다. 하나는 많은 이가 알고 있는 중국 기원설이다. 나관중(羅貫中)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나오는 에피소드를 근거로 하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이렇다.
 
  <삼국시대 촉(蜀)나라의 승상 제갈공명(諸葛孔明)이 남만(南蠻·지금의 미얀마 부근)을 정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여수(濾水)의 풍랑이 심하여 건널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부하 하나가 남만의 풍속에 따라 사람 목을 베어 머리를 수신(水神)에게 바칠 것을 권했다. 공명은 적지일지라도 더 이상 사람의 목숨을 해칠 수는 없다며 밀가루 반죽에 양과 돼지고기를 넣어 사람의 머리처럼 빚어서 바쳤다.>
 
  만두가 남만인의 머리를 뜻하는 ‘만두(蠻頭)에서 유래했다는 설인데, 일부 전문가들은 에피소드 자체가 정사(正史)에는 나오지 않는 허구(虛構)라 역사적 근거가 약하다고 한다. 삼국시대 이전인 후한(後漢) 시대에 최식(崔寔)이 지은 《사민월령(四民月令)》에 이미 만두라 할 만한 음식이 등장한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다른 하나는 인류 문명의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메소포타미아는 오늘날 시리아, 이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 중동 북부 지역에 해당한다. 성서 연구가이자 아시리아 전문 학자인 장 보테르(Jean Botero)는 수메르와 아카드의 요리책에서 만두의 원조 격인 ‘푀겔헨’이라는 음식을 발견했다. 이 음식은 ‘밀가루를 반죽한 피 위에 다진 고기를 올린 다음 피로 덮는다’고 요리책에 소개돼 있다.
 
  만두의 메소포타미아 기원설을 주장하는 이들은 이 ‘푀겔헨’이 서쪽으로 가서 라비올리가 되었고, 밀의 도로인 실크로드를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만두가 된 것으로 추정한다. 지금도 실크로드 인접국가들의 만두 이름이 만티(터키), 만띄(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으로 불리는 점을 감안하면 꽤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한반도엔 고려 때 온 것으로 추정
 
   우리나라 만두는 고려가요인 <쌍화점(雙花店)>을 근거로 고려시대 원나라에서 전파된 것으로 추정한다. <쌍화점>은 고려시대 문란했던 성(性)문화를 꼬집은 속요(俗謠)다. ‘만두 사러 쌍화점에 갔더니 회회(回回)아비가 내 손목을 쥐더이다’로 시작되는 이 노래에서 ‘쌍화점’은 만두가게인 ‘상화점(霜花店)’을 희화적으로 표현한 것이고, 회회아비는 원(元)나라에서 온 아랍 상인(위구르인으로 추정)을 뜻한다고 한다. 고려시대 상화점은 아랍 상인들이 운영했던 것으로 전해지는 만큼 중동 지역의 만두가 원나라를 거쳐 고려에 전파된 것으로 추정하는 셈이다.
 
  고려시대 만두는 생김새가 서리처럼 희다고 해서 ‘상화(霜花)’ 혹은 ‘상화(霜華)’라 불렸다 한다. 상화(霜花)는 조선 중종(中宗) 때 최세진(崔世珍)이 지은 한자 학습서 《훈몽자회(訓蒙字會)》에도 등장한다.
 
  그런데 조선 말기에 완성된 《육전조례(六典條例)》(육조 각 관아의 사무 처리에 필요한 행정법규와 사례를 편집한 행정법전)에는 ‘상화(床花)’라 하여 ‘상화는 그 모양과 성질이 중국인의 기호에 맞는 관계로 중국 사신이 오면 그들을 대접하는 데 썼다’고 기록돼 있다. 또한 조선 숙종(肅宗) 때 편찬한 《역어유해(譯語類解)》(조선시대 사역원·司譯院에서 신이행·愼以行 등이 만든 중국어 어휘사전)에는 상화가 ‘중국의 증병(蒸餠)’으로 소개돼 있고, 조선 후기의 학자 이익(李瀷)이 쓴 《성호사설(星湖僿說)》에는 상화가 ‘기수(起搜)’로 표현돼 있다.
 
  ‘증병’과 ‘기수’는 발효한 떡으로서 오늘날의 ‘술떡’을 가리킨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조리서인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 《주방문(酒方文)》 《규합총서(閨閤叢書)》 등에도 증병에 대한 언급이 빈번하다. 고려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상화가 술떡이었다는 얘기다.
 
  문헌상에 나타나는 이런 기록들을 토대로 한국 식품영양학의 선구자인 고(故) 이성우(李盛雨) 박사는 우리의 만두가 중국 만두 바오쯔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했다. 바오쯔는 중국의 북부, 특히 톈진 지역에서 발달한 전통음식이다. 바오쯔는 밀가루 반죽에 이스트를 넣고 발효시킨 후 돼지고기나 팥 등으로 속을 채워 찐빵처럼 찌는 것이 특징이다. 중국집에 가면 흔히 맛볼 수 있는 꽃빵, 즉 소 없이 발효된 밀가루 반죽만 빚어 찐 것도 바오쯔의 일종이다. 밀가루 반죽을 얇게 밀어 피를 만든 후 소를 넣는 한국식 만두와는 거리가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식 만두는 중국의 또 다른 만두인 자오쯔(餃子)에서 유래한 것으로 본다. 조선시대 문헌에는 상화와 만두가 혼용돼 있어 중국의 자오쯔가 어떤 경로로 한반도에 정착했는지 알 길이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조선 후기로 갈수록 만두는 바오쯔가 아니라 자오쯔 형태로 만들어졌고, 다양한 재료의 응용으로 중국 만두와는 다른 독특한 한국식 만두가 탄생했다는 점이다.
 
 
  지역별로 맛과 모양 달라
 
  중국과 달리 과거 한반도에서는 밀가루나 돼지고기가 귀했다. 이 때문에 밀가루 대신 메밀가루나 감자가루로 만두피를 만들었고, 꿩고기와 어패류(魚貝類)로 만두소를 만들었다. 궁중요리 전문가이기도 한 한복선씨는 “조선의궤에 보면 궁중연회 등 중요한 행사에 빠지지 않고 만두가 올라간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때의 만두는 대부분 메밀가루 반죽에 꿩고기를 넣어 빚은 생치(生雉)만두였다”고 말했다.
 
  조선의궤에는 생치만두 외에 민어 살을 넣은 어(魚)만두, 대합을 넣은 생합(生蛤)만두, 전복을 넣은 생복(生鰒)만두, 소의 천엽(千葉)을 넣은 천엽만두, 박과 식물인 동아 열매를 넣은 동과(冬果)만두 등 다양한 종류의 만두가 등장한다.
 
  궁중만두는 지리적 위치상 서울식 만두와 많이 닮아 있다. 조선 왕조의 마지막 주방상궁이자 궁중음식 대가였던 고 황혜성(黃慧性) 선생이 공동집필한 《이조궁정요리통고(李朝宮廷料理通考)》에는 ‘편수(片水)’라는 여름만두가 소개돼 있다. ‘물 위에 떠 있는 조각’이라는 뜻의 이 만두는 상당히 운치 있으면서 고급스럽다. 네모난 피에 호박, 오이, 버섯 등의 야채와 소고기로 만든 소를 넣어 빚으며, 여름에 시원하게 먹는 것이 특징이다.
 
  서울에서 편수를 맛볼 수 있는 곳은 종로구 부암동에 위치한 ‘자하손만두’와 인사동의 ‘궁’이다. 서울식 만두 전문점인 자하손만두의 편수는 소고기와 표고버섯, 오이 등을 넣고 빚어 사계절 내내 먹을 수 있도록 쪄서 낸다. 개성식 만두 전문점인 궁은 소고기와 애호박을 넣고 빚으며 양지국물에 삶아 여름 한철에만 낸다.
 
  서울식 만두와 개성식 만두는 허투루 보면 유사한 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맛도 모양도 조금씩 다르다. 우선 서울식 만두는 개성식 만두에 비해 크기가 작고 좀 더 섬세한 느낌이다. 맛도 약간 더 슴슴하다(약간 싱겁다는 뜻인 심심하다의 북한식 표현).
 
  자하손만두와 궁을 기준으로 볼 때 서울식 만두와 개성식 만두의 맛의 차이는 조리법의 차이에서 오는 듯하다. 서울식은 만두를 찜통에 찌고, 개성식은 만두를 양지국물에 삶는다. 이 때문에 개성식 만두는 서울식 만두에 비해 좀 더 무르고 촉촉한 느낌이다.
 
  서울식 만두는 자하손만두 외에 서울 명동의 ‘명동교자’에서 맛볼 수 있고, 개성식 만두는 궁 외에 서울 동부이촌동의 ‘갯마을’과 서울 동대문구 용신동의 ‘개성집’에서 맛볼 수 있다.
 
  평양식 만두는 모양부터 서울이나 개성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추운 지방이어서인지 모양이 투박하고 큼지막하다. 개성식 만두의 두세 배 크기다. 만두피도 두껍고 소도 푸짐하게 들어간다. 평양식 만두는 크고 길게 빚은 후 둥근 모양으로 붙이기도 하지만 그냥 일자형으로 조리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 무교동의 ‘리북손만두’는 평양식 만두 전문점이다. 평양식 만두는 양지국물에 삶아 낸다는 점에서 조리법이 개성식 만두와 유사하다. 평양식 만두는 리북손만두 외에 서울 장충동의 ‘평양면옥’, 압구정동의 ‘만두집’과 ‘목로’, 내수동의 ‘평양만두집’ 등에서 맛볼 수 있다.
 
  평양식이든 개성식이든 이북 만두의 공통점은 맛이 심심하면서 담백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호불호(好不好)가 나뉜다. 맵고 짠 맛에 길들여진 입에는 맞지 않는 맛이다.
 
  지역별 만두의 특징과 맛의 비밀을 서울의 대표적인 만두 전문점 주인들을 통해 알아보았다.
 
 
  서울식 만두/조미료 없이 재료 본연의 맛 살려야
 
  ‘자하손만두’의 朴惠瓊 대표
 
‘자하손만두’의 박혜경 대표.
  ‘자하손만두’는 자하문터널 위쪽 북악스카이웨이 초입에 자리 잡고 있다. 인왕산이 일반에게 개방될 무렵인 1993년 문을 열었다. 청와대와 정부 종합청사에서 가까워 역대 총리들을 비롯해 고위 공무원들이 자주 찾았고, 미식가로 정평이 나 있는 지휘자 정명훈(鄭明勳)씨와 소설가 조경란(趙京蘭)씨가 즐겨 찾는 집으로 알려져 있다. 부암동 외에 2005년 명동 신세계백화점 식품관에 직영점을 하나 열어 운영하고 있다.
 
  주인은 벌써 20년 넘게 만두를 빚고 있는 박혜경(朴惠瓊)씨다. 부암동 가게는 박씨가 나고 자란 집을 개조해 오픈했다.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박씨는 결혼 전까지 교편을 잡았고, 결혼 후 살림만 하다 우연한 계기로 만두집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박씨의 얘기다.
 
  “인왕산이 일반에 개방되기 전만 해도 부암동은 적막강산이 따로 없을 만큼 조용한 동네였어요. 결혼 후 저는 고요함을 즐기며 친정에서 살고 있었고, 분가해서 살고 있던 손아래 올케는 시댁을 친정인 듯 자주 드나들었죠. 그런 올케가 하루는 ‘아는 분이 집에서 만두를 만들어 파는데 장사가 잘 되지 않아 힘들어한다’는 얘기를 하더군요. 그 얘기를 듣고 무심결에 ‘아, 만두는 나도 잘 만드는데’라고 했더니 올케가 냉큼 ‘그래요? 형님, 놀면 뭐 해요. 우리도 만두 만들어 팔아요’라고 하는 거예요. 재밌겠다 싶어 마당에 파라솔 설치하고 집에 있는 그릇으로 시작한 게 여기까지 오게 됐죠.”
 
  서울 토박이인 박씨는 어려서부터 만두를 자주 빚었다. 조부(祖父)가 이웃과 음식 나누는 것을 좋아해 집에서 잔치를 자주 열었고, 그때마다 할머니와 어머니 사이에 끼여 만두를 빚었다고 한다. 박씨는 “빚을 때마다 어머니가 잘한다고 칭찬을 해 주셔서 더 열심히 빚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만두 빚는 날이면 할머니께서는 ‘그믐날 3동서가 앉아 만두를 빚다 보면 날이 샜다’는 말씀을 입버릇처럼 하시곤 했어요. 그런 할머니로부터 반죽을 밀대로 밀어 만두피 만드는 법부터 배웠습니다. 가게를 시작할 때도 집에서 먹던 만두 맛 그대로 만들어 팔았어요. 서울식 만두는 ‘깍쟁이 같다’는 서울 사람처럼 푸짐하거나 덜퍽진 게 없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정갈하고 깔끔하죠.”
 
‘자하손만두’의 고기만두, 김치만두, 소만두, 편수. 모양이 서울 깍쟁이처럼 정갈하다.
  이 집 만두의 레시피는 주인의 성격처럼 간결하다. 밀가루를 반죽해 돼지고기, 숙주, 두부, 소고기 등으로 만든 소를 넣는 것이 기본이다. 여기에 양념을 털어낸 김치를 추가하면 김치만두가 되고, 고기 대신 제철 나물이나 채소를 넣으면 소(蔬)만두가 된다. 이 집 단골들 사이에는 봄에만 하는 엄나무순 만두가 인기다.
 
  맛은 좋은 재료와 정성에서 나오는 법이다. 박씨는 “만두피는 매일 아침 우리밀 가루를 반죽해 1시간 동안 저온숙성한 후 만들고, 소에 들어가는 돼지고기와 소고기는 믿을 만한 정육점에서 기름기가 적은 쪽으로 골라 온다”고 설명했다.
 
  “밀가루의 경우 일반 중력분을 사용해 오다 우리밀 가루를 쓰기 시작한 것이 몇 년 되지 않아요. 수입산 밀에 비해 우리밀의 글루텐 함량이 떨어져 처음에는 만두피가 잘 터졌어요. 나름 보완책을 강구해 좋아졌지만 지금도 수입산만큼 튼튼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래도 우리밀을 고집하는 건 구수하면서도 뭔가 살아있는 맛 때문입니다.”
 
  고기는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1 대 1 비율로 섞는데, 돼지고기는 잡내가 없는 암퇘지 엉덩이살을, 소고기는 우둔살을 사용한다고 한다.
 
  박씨는 만두는 물론 만두전골 등의 요리에 사용하는 조선간장을 직접 담가 쓴다. 매년 강원도 정선에서 콩 10가마를 사서 음력 1월이나 3월에 담근다고 한다. 박씨는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기 위해 조미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면서 “우리 집 유일한 조미료는 조선간장”이라고 말했다.
 
 
  개성식 만두/양지육수에 삶아야 부드럽고 구수해
 
  ‘궁’의 申芙源 대표
 
‘궁’의 신부원 대표.
  궁은 서울 인사동 경인미술관 앞에 자리 잡고 있다. 개성 출신 고(故) 임명숙(林明淑) 할머니의 손맛으로 유명해진 곳이다. 1990년대 말 MBC 일일 드라마 <보고 또 보고>에서 여주인공 김지수가 극중 개성 음식을 배우러 다닌 곳이 이 집이다. 당시 임 할머니가 직접 출연해 김지수에게 조랭이떡국 만드는 법을 가르치기도 했다.
 
  지난해 임 할머니가 97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한 후 손녀인 신부원(申芙源) 씨가 안주인이 되었다. 할머니와 함께 식당을 열었던 신씨의 친정어머니 이종순(李鍾順)씨는 10년 전(前)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신씨 일가가 인사동에 만두집을 내게 된 계기는 이렇다.
 
  “개성 출신인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6·25 전쟁 전에 월남해 인사동에서 필방(筆房)을 운영하셨어요. 신도림 쪽에 공장도 가지고 계셨죠. 개성에서 호수돈고녀를 졸업한 할머니께서는 늘 꼿꼿하고 깐깐한 분이셨는데, 음식 솜씨가 좋았어요. 그 손맛을 며느리인 저희 어머니가 그대로 물려받았죠. 어머니께서는 특히 만두를 잘 빚어 공장 식구들이나 인사동 이웃들이 솜씨가 아깝다며 만두집을 해 보라며 부추기곤 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와 함께 살던 집을 개조해 시작한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어요.”
 
  신씨는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어머니와 함께 만두를 빚었을 뿐 아니라 즐겨 먹었다. 그녀는 “겨울이 오면 온 가족이 만두를 빚어 장독대 항아리에 넣어 두고 간식으로 먹었는데,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금은 남녀 구분 없이 똑같은 만두를 먹지만 제가 어렸을 때 저희 집에서는 남녀가 다른 만두를 먹었어요. 남자들은 꿩, 토끼, 노루 등의 고기가 들어간 고기만두를 먹었고, 여자들은 김치나 야채를 넣은 만두를 먹었죠. 아궁이에 불 피워 조랭이떡국을 끓이던 기억도 생생하네요.”
 
‘궁’의 만두는 찜통에 찌지 않고 양지육수에 삶아 낸다.
  신씨는 결혼 후 어머니가 운영하던 만두집에 가끔 들러 일을 돕곤 했지만 물려받을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고, 할머니는 이미 팔순을 훌쩍 넘긴 나이였다. 신씨가 하지 않으면 가게 문을 닫아야 할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이 떠맡게 되었지만 어머니에게 배운 것이 많지 않았다. 어머니는 레시피도 남기지 않았다.
 
  “처음 2년 동안은 고생을 많이 했어요. 할머니가 많이 도와주셨지만 워낙 연로하셔서 한계가 있었죠. 가장 힘들었던 때는 손님들이 ‘맛이 옛날 같지 않다’며 제가 만든 만두를 타박할 때였습니다. 그만둘까 생각도 했지만 어머니의 손때가 묻고 혼이 밴 곳이라 그럴 수도 없었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 눈을 감고 할머니와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음식들의 맛을 그림으로 그리듯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손은 몰라도 머리는 맛을 기억하고 있더군요.”
 
  개성 음식은 뭐든 담백한 것이 특징이다. 만두는 만두소에 고기나 두부보다 야채가 많이 들어가 느끼하지 않고, 만두전골이나 조랭이떡국은 양지고기 국물에 별다른 양념 하지 않고 잘박잘박 끓여내 담백하다.
 
  만두피는 밀가루 중력분에 천일염으로 간해 매일 새벽 4~5시에 반죽한 후 2~3시간 정도 숙성시켜 만든다. 만두소에는 암퇘지 살코기 부위와 두부, 배추, 숙주, 부추가 들어간다. 마늘, 파, 양파는 기본이고, 소주와 간장도 약간 넣는다.
 
  만두는 오전 오후로 나누어 소비될 양만 빚으며 파뿌리와 다시마를 넣고 끓인 양지육수에 삶아 낸다. 신씨는 “맹물에 삶는 만두와 육수에 삶는 만두는 맛이 하늘과 땅 차이”라고 말했다.
 
 
  평양식 만두/야채보다 삼겹살 많이 넣어야
 
  ‘리북손만두’의 朴惠淑
 
‘리북손만두’의 박혜숙 대표.
  리북손만두는 서울 무교동 프레스센터 뒤쪽에 자리 잡고 있다. 빌딩 숲 한복판에 숨어 있어 모르는 사람은 찾기가 쉽지 않다. 좁은 골목길 막다른 곳에서 만나는 한옥이 별천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서울식 만두와 개성식 만두가 새침데기 별당아씨 같다면 평양식인 이 집의 만두는 힘 좋은 머슴 같다. 투박하고 거칠지만 속이 꽉 차 있어 알찬 느낌이다. 주인인 박혜숙씨는 “평양은 날이 추우니까 모양 따지지 않고 푸짐하고 맛있게 만들어 먹는 것이 기본이었다”고 말했다. 황해도 사리원 출신인 박씨는 평양에서 초등학교 3학년까지 다니다 1·4후퇴 때 가족과 함께 월남했다.
 
  “평양에서는 설날이면 만두를 잔뜩 빚어서 항아리에 넣어 놓고 만둣국을 끓여 먹었어요. 만둣국은 양지고기 푹 삶은 국물에 만두만 넣고 슴슴하게 끓여 먹었지요. 이북에서는 설날 떡국을 먹지 않습니다. 떡국은 남한에 내려와서 먹어 봤어요.”
 
  서울에 정착한 박씨의 부모는 빈손으로 내려왔지만 이북 사람 특유의 바지런함으로 생활 기반을 다졌다. 어머니는 동대문에서 포목장사를 하고, 아버지는 미도파백화점에서 양품점을 운영했다고 한다. 교육열이 높은 부모 덕에 박씨를 비롯한 4남매는 모두 대학을 마쳤다. 박씨는 한양대 성악과 1회 졸업생이다.
 
‘리북손만두’의 고기만두. 평양식이라 크고 투박한 느낌이다.
  박씨가 만두집을 내게 된 것은 25년 전 두 자녀를 독일에 유학 보낸 후다. 그는 “텅 빈 집안이 적적하기도 하고 아이들 유학 자금도 필요해 부업 삼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현재의 만두집은 황해도 해주에서 내려온 시댁 식구들이 살던 집이었다고 한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메뉴는 접시만두와 만둣국, 만두전골로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았어요. 얼음이 들어간 김치말이 국수는 날이 더워지니까 여름별미로 추가한 메뉴였지요. 접시만두는 3일 밤낮을 곤 사골 국물에 삶아서 냅니다. 만둣국과 만두전골은 사골 국물에 만두 띄워 내고요. 만두전골에는 매콤한 양념이 들어가는데, 그건 평양식이 아니라 이곳에서 와서 개발한 겁니다. 평양 사람들은 사골 국물에 별다른 양념 없이 먹는데, 서울에서는 그렇게 끓이면 젊은 사람들이 맛없다고 먹지 않아요.”
 
  유난히 두꺼운 만두피는 밀가루 강력분을 반죽해 24시간 숙성시킨 후 기계로 만든다. 만두소에는 돼지 삼겹살 간 것과 두부, 숙주, 파, 부추 등이 들어간다. 박씨는 “다른 집과 달리 우리는 돼지 삼겹살을 듬뿍 넣는다”며 이렇게 말했다.
 
  “평양은 날이 추우니까 만두 속에 야채보다 기름기 많은 돼지고기를 많이 넣었어요. 이북에서는 소고기보다 돼지고기를 즐겨 먹었지요. 저희 집에서는 소에 들어가는 삼겹살을 하루 정도 숙성시켜 사용합니다. 그래야 육질이 부드럽고 더 고소하지요.”
 
 
  중국식 만두/돼지고기로 뜨거운 육즙 내야
 
  ‘천진포자’ 鄭鎭昊 대표
 
‘천진포자’의 정진호 대표(오른쪽)와 톈진에서 온 만두 장인 왕환윈(王環雲) 씨.
  천진포자는 종로구 소격동 정독도서관 앞 골목에 위치해 있다. 이 집은 중국 관광객이나 중국 유학생들이 중국 본토보다 더 만두를 잘하는 곳으로 입소문을 내면서 유명해졌다. 2007년 문을 연 이후 단골 고객이 꾸준히 늘어 현재는 소격동 본점 외에 부암동과 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 등에서도 직영점이 성업 중이다.
 
  주인은 고미술품 전문가이자 갤러리를 운영 중인 정진호(鄭鎭昊)씨다. 대학에서 중문학을 전공한 정씨는 중국 명문 난카이대(南開大)에서 중국 고전문학 석사 학위를, 베이징중앙미술대에서 미술사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만두 가게는 중국 유학생활 10년 동안 즐겨 먹었던 바오쯔 맛이 그리워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오랜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해 고미술품 전문 갤러리를 열었는데 톈진에서 먹던 만두가 자꾸 아른거렸어요. 서울에서 중국식 만두로 유명하다는 곳을 찾아다녀 봤지만 제 입맛을 총족시키지는 못했어요. 정통 중국 만두는 없고 한국사람 입맛에 맞춘 어정쩡한 만두만 있더군요.”
 
  그가 말하는 정통 중국 만두는 톈진식 바오쯔를 일컫는다. 톈진식 바오쯔는 이스트를 넣고 발효시킨 밀가루 반죽에 돼지 삼겹살을 갈아 넣고 대나무 찜통에 찐 만두다. 보자기에 싸인 듯한 만두를 씹으면 입안에 뜨거운 육즙과 함께 돼지고기 특유의 향과 맛이 퍼지는 것이 특징이다. 정씨는 “전 세계 차이나타운에서 만드는 중국 만두의 전범은 톈진식 바오쯔”라며 톈진에서 유독 바오쯔가 발달한 배경을 설명해 주었다.
 
  “톈진은 한국의 인천과 같은 항만 도시입니다. 전국 각지에서 베이징 자금성으로 보내는 물품이 이곳 부두에 집결했지요. 부두에는 노동자가 많았고, 이들은 쉽고 간단하게 먹을 수 있으면서 영양가가 높은 음식을 찾았습니다. 그게 바오쯔였죠.”
 
중국 만두의 전형이 된 톈진식 만두는 소에 육즙이 풍부한 것이 특징이다.
  톈진의 부둣가에 있는 바오쯔 전문점 ‘거우부리(狗不理)’는 중국 대륙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만두집이다. 거우부리는 청나라 말 최고 통치자였던 서태후(西太后)가 환란 당시 피란을 가던 중 식사로 올라온 만두를 먹고 상찬(賞讚)해 명성을 얻은 곳이라고 한다.
 
  “유학 시절 이 집 만두를 즐겨 먹었어요. 그런데 이 집이 대형화하고 상업화하면서 맛이 점점 변질되어 갔습니다. 지금은 옛맛을 잃어버린 상태예요. 그게 싫어서 그만둔 직원들이 많은데, 그중 한 분을 소격동에 가게를 열 당시 모셔 왔습니다. ‘거우부리’ 만두의 마지막 전수자라고 할 수 있는 분이죠. 그분의 손맛 덕분에 톈진 분들도 여기 와서 만두를 먹어 보곤 옛날 ‘거우부리’ 만두 맛이라고 좋아합니다.”
 
  톈진 만두는 원래 생마늘과 함께 먹는다. 정씨는 “톈진에서는 만두 한 판에 생마늘 한 통을 먹는다”며 “생마늘과 돼지고기는 궁합이 잘 맞는 음식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톈진 만두 속에는 야채보다 돼지고기가 많이 들어간다. 그것도 삼겹살처럼 기름기가 많은 부위를 곱게 갈아 저온숙성한 후 넣는데, 풍부한 육즙의 맛과 향을 위해 때에 따라서는 응고된 단백질을 보충해 주기도 한다. 정씨의 말이다.
 
  “중국 사람들은 소고기보다 돼지고기를 더 좋아합니다. 중국에서 고기라고 하면 돼지고기를 뜻하죠. 소고기는 ‘우육(牛肉)’, 양고기는 ‘양육(羊肉)’이라고 표현하지만 돼지고기를 ‘돈육(豚肉)’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중국의 고기만두에는 돼지고기만 들어가지 소고기는 들어가지 않아요.”
 
 
  가족의 화합이 담긴 음식
 
‘남궁’의 남궁석 대표.
  중국 사람들은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제(春節)의 마지막 날 만두를 먹는다. 정진호씨에 따르면 춘제 행사는 나흘에 걸쳐 진행되는데, 매일 먹는 음식이 다르다. 첫날은 길짐승을 먹고, 둘째 날은 날짐승을 먹으며, 셋째 날은 물고기를 먹는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만두를 먹는다는 것이다.
 
  중국의 만두는 지역마다 맛과 모양이 확연하게 다르다. 상하이(上海)를 비롯한 항저우(杭州), 난징(南京) 등 중국 강남 지역(양쯔강 이남)에서는 바오쯔와 유사하나 크기가 작은 샤오룽바오(小籠包)를 먹고, 중국 남부인 광둥(廣東) 지역에서는 딤섬을 먹는다. 그리고 베이징과 톈진 등 중국 북부 지역에서는 바오쯔나 자오쯔를 먹는다.
 
  경기도 일산에서 중국 요리 전문점 ‘남궁(南宮)’을 운영하는 남궁석(南宮晳)씨는 “지역마다 먹는 만두의 모양과 맛은 달라도 춘제에 만두를 먹는 의미는 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중국에서 만두는 복(福)과 가족의 화합을 의미합니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함께 만들고 나누어 먹는 것이 만두죠. 그래서 케이크처럼 큰 만두를 만들어 먹기도 합니다. 저희 집에서 만드는 황금지마빙은 이스트가 들어간 밀가루 반죽에 참깨를 뿌려 튀깁니다. 완성되면 참깨 수백 개가 박힌 겉 표면이 황금색으로 변하죠. 황금색은 번영을, 참깨는 자손을 뜻합니다.”
 
오징어 먹물이 들어가 검은색을 띠는 힐링 만두(오른쪽). 발효한 반죽에 팥을 넣고 튀긴 황금지마빙.
  황금지마빙은 가족이나 동료들끼리 모여 축하할 일이 있을 때 케이크 대용으로 사용한다. 남궁에는 산둥(山東) 지방에서 많이 먹는 물만두를 응용해 조리한 ‘힐링 만두’를 개발해 선보이고 있다. 반죽에 시금치를 갈아 넣어 연둣빛을 내거나 오징어 먹물을 넣어 검은색을 낸 만두가 그것이다. 컬러풀한 이 만두 속에는 돼지고기와 더불어 냉이나 달래 등의 제철 나물이 들어간다. 남궁씨는 “맛도 훌륭하지만 색깔만으로도 손님들에게 즐거움을 주니까 좋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만두는 새해 아침 온 식구가 둘러앉아 먹는 설음식이다. 그러고 보면 만두는 단순히 허기(虛飢)를 채우기보다 사랑과 행복을 담고 기원하기 위해 먹는 음식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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