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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탐구

두부 맛의 비밀

두부 맛은 콩과 간수가 결정

글 : 서철인  월간조선 기자  ironin@chosun.com

사진 : 서경리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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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당두부는 광복정국과 6·25 동란의 비극 속에 탄생, 남편 잃은 아낙들이 어린 자식 키우기 위해
    만들어 판 것에서 유래
⊙ 강릉 지역에서 나는 콩과 강릉 앞바다 물을 넣은 것이 초당두부 맛의 비결
⊙ 맛있는 두부는 단백질 함량 많고 단맛 나는 콩으로 만들어
⊙ 포장두부 1, 2위 업체 풀무원과 CJ제일제당 치열한 시장 경쟁 속에 글로벌 경쟁력 다져
  기자의 고향은 전북 순창(淳昌)이다. 한겨울, 읍내에서 30리쯤 떨어진 산골 마을에선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두부를 쑤어 먹었다. 집마다 갹출한 콩을 황소가 돌리는 커다란 맷돌에 갈아 콩물을 내고, 이 콩물을 가마솥에 끓인 후 간수를 부으면 신기하게도 백설기같이 새하얀 두부가 만들어졌다.
 
  육류 섭취가 부족한 산골 마을 사람들에게 두부는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두부를 적당히 맛이 든 김장김치에 싸서 먹으면 세상에 부러울 게 없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온 마을 사람들이 모두부 두어 판에 배부르고 행복했었다.
 
  노인들만 남은 고향에선 이제 더 이상 두부를 만들지 않는다. 노인들끼리 만들기엔 힘도 부치고, 만들어 놓아도 맛있게 먹어줄 사람이 많지 않은 까닭이다. 고향의 두부 맛은 추운 겨울이면 생각나는 추억이 되었다.
 
  그런데 최근 추억의 두부 맛을 일깨워준 곳이 있다. 강원도 강릉의 초당마을이다. 이곳엔 허균(許筠)·허난설헌(許蘭雪軒) 공원을 중심으로 18개의 두부 전문 맛집들이 운집, 두부촌을 이루고 있다. 일명 ‘초당두부’를 만들어 요리하는 곳이다. 이 지역에서 나는 콩과 깨끗한 바닷물을 이용해 전통 방식으로 두부를 만들어 특유의 손맛이 살아 있다. 포장두부에 비해 식감이 다소 거친 듯하지만 입안 가득 고소한 풍미가 감도는 맛이다.
 
 
  초당두부 탄생 비화
 
강릉시 초당동에 있는 허균·허난설헌 생가.
  ‘초당(草堂)’은 허균과 허난설헌의 부친 허엽(許曄)의 호이다. 조선 중기 문신이며 청백리(淸白吏)였던 허엽은 광해군 시절 당파싸움에 밀려 이곳 바닷가에 집을 짓고 살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초당마을엔 당시 허엽이 살았던 전통가옥이 복원돼 있고, 최근에는 이 일대가 공원으로 조성됐다.
 
  초당두부의 역사는 허엽이 이 지역에서 많이 나는 콩과 집 앞 바닷물을 이용해 만들면서 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초당마을이 두부로 명성을 얻게 된 것은 훨씬 후의 일이다. 마을의 어른이자 경로당 회장을 맡고 있는 곽기섭(郭琪燮)씨를 만나 그 유래를 들었다. 곽씨는 일제시대(1930년생) 때 태어나 광복 후 혼란기와 6·25를 온몸으로 겪은 이 고장 근현대사의 산증인이다. 1990년대 초에는 강릉시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그의 말이다.
 
  “광복 후 이곳은 좌우 이데올로기 대립이 심했던 곳이에요. 농민들이 아무 생각없이 농민회(좌익 단체)나 국민회(우익 단체)에 가입했다가 좌우로 분류돼 고초를 겪었지요. 강릉 농업학교와 상업학교가 좌우로 편이 나뉘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 마을 청년 15명이 징집으로 군에 입대했어요. 1948년 12월이었고, 당시 열아홉 살이었던 저도 징집된 15명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초당마을 경로당 회장 곽기섭씨.
  1948년은 제주 4·3사건과 여순사건이 연달아 발발한 해이다. 당시 이들 사건은 북한 지령에 의해 발발한 것으로 파악돼 남한 사회 내 좌익 숙청 작업이 전개됐다. 그 여파로 군에도 좌익 숙청령이 떨어졌고, 초당마을에 좌익이 많다는 이유로 군 복무 중이던 이 마을 출신 청년들은 모두 서대문형무소와 마포형무소에 투옥됐다. 곽씨는 “나는 좌익과 무관함을 호소해 겨우 풀려났지만 나머지 분들은 영문도 모른 채 5~13년씩 감옥살이를 했다”고 회고했다.
 
  “형을 살던 중 6·25전쟁이 터져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하면서 이분들을 모두 풀어주었습니다. 덕분에 고향에 올 수 있었지요. 그런데 낙동강으로 후퇴했던 국군이 파죽지세로 북진하게 되자 이분들은 불안한 마음에 모두 월북(越北)을 해버렸습니다. 이미 혼인해서 처자식을 둔 분들이 상당수여서 고향에 남은 식솔들은 먹고살 길이 막막했지요. 보시다시피 이 지역은 농사가 많지 않을뿐더러 어장이 형성돼 있지도 않습니다. 두부 만들기는 홀로 코흘리개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 젊은 아낙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생계 수단이었습니다. 초당두부에는 이 지역의 아픈 역사가 담겨 있는 셈이지요.”
 
  아낙들은 밤새도록 맷돌에 콩을 갈아 새벽녘 두부를 만들었다. 그러곤 걸어서 1시간 거리인 강릉 시장에 내다 팔았다. 당시 대두(大豆) 한 말로 두부를 쑤면 모두부 20모가 나왔고, 이것을 팔면 콩 한 말 값이 이문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1950년대 말 초당마을은 총 200가구가 살았고, 이 중 96가구가 두부로 생계를 이어나갔다. 곽씨는 “두부를 먹고 자란 초당마을 아이들은 두부 판 돈으로 공부하고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극작가 辛奉承 덕에 유명세 얻어
 
솔숲 사이에 형성돼 있는 초당두부촌. 18개 업소가 수제두부를 제조하고 있다.
  가내수공업으로 두부를 만들어 팔았기에 초당두부는 집마다 맛이 다르다는 점이 특징이자 강점이었다. 하지만 이 전통은 1980년대 들어 맥이 끊길 위기에 놓였다. 식품위생상의 각종 규제와 단속으로 허가를 받지 않고서는 더 이상 가정에서 두부를 만들어 팔 수 없게 된 것이다.
 
  단속을 피해 집에서 몰래몰래 두부를 만들어 팔던 초당마을 주민들은 결국 초당협동조합을 결성해 공동작업을 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운영상의 어려움으로 경영권을 외지인에게 넘겨줘야 했다. 마을에 두부공장이 생긴 셈이 되었다. 이후 한동안 마을 사람들은 이 공장에서 두부를 받아 팔았다.
 
  맥이 끊길 뻔한 수제 초당두부의 역사가 살아난 것은 1990년대 초반이다. 이 무렵은 초당두부가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초당두부가 이 지역을 대표하는 관광상품이 된 데는 극작가 신봉승(辛奉承)씨 역할이 크다. 초당마을에서 아담한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는 정태환(鄭泰煥)씨 이야기다.
 
  “신봉승 선생님은 제 초등학교(현 강릉사대부속초등학교) 은사님이십니다. 선생님은 국방부 주최 시나리오 공모에서 <두고 온 산하>가 당선돼 학교를 떠나기 전까지 저희를 가르치셨죠. 그런 선생님이 <조선왕조 500년> 등 드라마 작가로 크게 성공한 후 초당마을에 집을 지어 내려오셨어요. 그러자 수많은 국내외 취재진이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이곳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선생님은 그분들을 모시고 집 앞에 있던 허름한 두부 음식점에서 식사를 대접하곤 했는데, 이게 입소문을 타고 전국으로 퍼져 초당두부가 유명해졌지요.”
 
갤러리 초당의 정태환 대표.
  신봉승 작가는 1980년대 초 안방극장에 사극 열풍을 몰고 온 주인공이다. <조선왕조 500년>을 집필할 당시 그는 자신이 청춘을 보낸 초당마을에 집필실 겸 별장을 마련했다. 그러곤 자신을 만나고자 하는 언론사 기자며 학자들을 이곳으로 불러들였고, 식사 때마다 초당두부를 대접했다. 국내는 물론 일본과 중국에서 온 취재진은 초당두부의 독특한 맛을 알리는 전도사 역할을 했다.
 
  “일본 NHK 방송은 선생님의 작품 세계를 조명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초당두부를 소개했어요. 그 덕에 일본 관광객들이 초당두부를 맛보기 위해 마을을 찾기 시작하면서 현재의 두부 전문 식당들이 하나 둘 생겨났습니다. 가가호호 전해 내려온 두부 제조비법도 살아나게 되었고요.”
 
  초당두부의 특징은 강릉 일대에서 나는 콩과 마을 앞 바닷물을 이용한 천연응고제로 만든 수제두부라는 데 있다. 예총 부회장을 지낸 정씨는 “중국이나 일본에서 온 예술가들도 초당두부의 고소한 맛에 매료돼 ‘세상에 뭐 이런 두부가 다 있느냐’고 감탄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초당두부의 제 맛을 내려면 이 지역에서 나는 콩을 써야 합니다. 과거와 달리 요즘은 ‘콩값이 금값’이라 수입산 콩으로 두부를 만드는 곳이 많다고 하는데, 초당두부는 보존회가 중심이 되어 강릉 일대에서 재배되는 콩만 엄선해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18개 업소 초당두부 보존회 결성
 
30년 동안 초당두부를 만든 이금자씨가 완성한 두부를 자르고 있다.
  현재 강릉 지역에 두부공장과 두부 제조 식당은 200여 군데에 달한다. 이 중 초당두부의 맥을 잇는 곳은 초당마을에 있는 18개 업소다. 이들 업소 대표들은 초당두부의 전통과 고유성을 보존하기 위해 초당두부 보존회를 결성했다. 보존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김규태(金奎兌)씨를 만났다. 그는 어머니 이금자(李錦子)씨, 부인 정민희(鄭珉姬)씨와 함께 5년째 이곳 초당에서 두부집을 운영하고 있다. 김씨의 말이다.
 
  “1970년대 중후반 아버지가 이 마을에서 두부공장을 했어요. 강릉 시내 6개 공장이 하나로 통합되는 과정에 지분을 매각하면서 손을 뗐지만 두부는 집에서 계속 만드셨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두부를 만들면 할머니께서 시장에 내다 파셨죠. 1980년대 초 중학교를 다녔는데, 학교가 멀어 새벽에 통학버스를 타야 했습니다. 할머니를 비롯해 두부를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파는 마을 아주머니들도 같은 버스를 탔지요. 그 때문에 강릉 가는 새벽 첫차는 늘 만원이었던 기억이 나네요. 발 디딜 틈 없이 버스 바닥에 나열돼 있던 두부 함지박이 어제 일처럼 기억에 선명합니다.”
 
  초당두부촌은 집마다 사정이 조금씩 다르지만 대개 성수기인 여름철에는 매일, 비수기인 겨울철에는 2~3일에 한 번씩 두부를 만든다. 미리 불려놓은 콩을 갈아서 두부를 완성하기까지 대략 4시간이 소요된다. 김씨는 “콩 한 말을 갈면 보통 모두부 20모가 나온다”고 말했다.
 
양념을 많이 하지 않아 초당두부 특유의 고소한 맛이 살아 있는 두부전골.
  “현재 콩 한 말(약 14kg) 값이 국산의 경우 5만원을 호가합니다. 두부 한 모의 원가가 2500원 정도 하는 셈이지요. 초당두부의 경우 가로와 세로가 10.5~11cm 크기의 정육면체 모양이며, 한 모 값이 5000~1만원까지 책정돼 있습니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포장두부에 비해 비싼 편인데, 크기가 포장두부의 두 배 정도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저렴한 편이죠.”
 
  초당두부는 제조 전 공정에 사람의 손길이 닿아야 완성된다. 김씨는 시장이나 마트에서 사먹는 공장형 두부와 사람의 정성이 가득 배인 초당두부의 맛 차이를 느껴보라며 모두부 한 접시와 두부전골 요리를 차려냈다.
 
  따뜻하게 데워 나온 모두부는 수제인데도 생각보다 부드러우면서 탱탱했다. 간이 연하게 배어서인지 씹는 순간 고소하다는 느낌이 강하지는 않았지만 은은한 맛이 났다. 김씨는 “갓 만들었을 때는 훨씬 더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난다”고 했다.
 
  전골은 얇게 썬 모두부에 모시조개 몇 개를 넣은 것뿐인데 맛이 시원하면서도 구수했다. 양념을 많이 하지 않은 덕에 두부 본연의 고소한 맛도 그대로 느껴졌다. 김씨는 “정성을 들여 만든 두부는 특별한 양념이 없어도 맛있다”고 말했다.
 
초당두부 만들기

 
   ① 콩 불리기
 
  좋은 콩을 선별한 후 손질해서 물에 불린다. 보통 하루 전날부터 물에 담가 불리는데, 시간은 습도에 따라 약간씩 다르다. 겨울에는 12시간, 봄·가을에는 8시간, 여름에는 6시간 정도 불리면 충분하다.
 
 
   ② 콩 갈기
 
  불린 콩을 깨끗이 씻은 다음 간다. 전통적인 맷돌을 이용해 갈아야 제 맛을 낼 수 있지만 시간이 많이 걸리고 번거로워 최근에는 기계식 맷돌을 이용한다. 콩을 갈 때는 물도 함께 넣어 부드럽게 하는데, 콩과 물의 분량은 2:3 정도가 적당하다.
 
 
   ③ 콩물 걸러내기
 
  간 콩은 촘촘한 천으로 걸러 콩물만 빼낸다. 보통 삼베 천에 콩물을 걸러내는데 천이 몇 개냐에 따라 두부의 맛이나 부드러움이 달라진다. 초당두부촌은 집마다 천의 개수가 다르다. 콩물을 걸러낼 때 초당두부는 뜨거운 물을 조금씩 넣어가며 걸러낸다. 콩물을 걸러낸 뒤 남은 찌꺼기가 콩비지다.
 
   ④ 콩물 가마솥에 끓이기
 
  콩물을 넣기 전에 가마솥을 찬물로 식힌다. 뜨거워진 가마에 콩물을 넣을 경우 눌어붙을 수 있기 때문이다. 콩물을 가마솥에 부으면 거품이 많이 생기는데 거품을 완전히 걷어낸 다음 가마솥에 들어간 콩물을 끓인 후 적당한 불의 세기로 뜸을 들인다.
 
   ⑤ 바닷물 넣기
 
  이 단계가 가장 중요하다. 바닷물(천연응고제)을 서서히 넣어준다. 바닷물의 농도나 양에 따라 다양한 두부 맛이 나오기 때문에 초당두부마을 음식점들은 바로 이 간수 맞추는 법을 비법으로 여기고 있다.
 
 
   ⑥ 초당초두부 완성
 
  바닷물을 넣고 은근한 불로 가열하면 콩물이 뭉글뭉글 응고되기 시작하는데, 물컹한 이 상태의 두부가 바로 초당초두부(순두부)다. 초당초두부는 특별한 양념장을 넣지 않아도 맛이 간간하다. 초두부 완성 단계에서는 ‘촛물(순물)’이 생겨나는데, 촛물에는 사포닌 성분이 들어 있어 촛물에 머리를 감으면 윤기가 흐르고 세안하면 피부가 부드러워진다고 한다. 또 된장이나 고추장이 굳었을 때 촛물을 넣으면 금세 부드러워진다.
 
   ⑦ 초당모두부 만들기
 
  초당모두부는 초두부 다음 단계에서 이뤄진다. 네모난 틀 안에 천을 깐 다음 갓 엉킨 초두부를 조심스럽게 붓는다. 천 사이로 촛물이 자연스럽게 빠질 수 있도록 한다.
 
 
   ⑧ 촛물 빼기
 
  초두부를 틀 안에 가득 넣은 다음 뚜껑을 덮고 무거운 돌을 얹어 물기를 뺀다. 물을 뺄 때는 가끔씩 손으로 살며시 눌러보는데, 이는 두부의 굳기를 잘 조절해야 부드럽고 맛있는 두부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⑨ 초당모두부 완성
 
  물기가 어느 정도 빠지면 단단해진 두부를 꺼내 네모난 모양으로 자른다. 자른 두부는 찬물에 잠깐 담가놓는데, 부드러우면서 단단해지도록 하기 위함이다. 갓나온 모두부의 맛은 그 어떤 두부 맛에 비할 바가 아니다. 초당두부의 진정한 맛을 알고 싶다면 이 순간의 두부 맛을 놓쳐서는 안 된다.
 
  자료 제공 : 강릉시청
 
  중국서 한국, 한국서 일본에 전파
 
충북 음성에 있는 풀무원 두부 공장. 두부 단일 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두부는 오래전부터 한·중·일 3국에서 즐겨 먹어온 음식이다. 두부는 언제 어디서 기원한 음식일까. 한·중·일 3국은 두부가 중국에서 기원해 한국에 전해지고, 일본에 전파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두부 탄생 과정을 세 가지 가설로 압축한다. 기원전 641년 중국 북구 지역에서 당시 회남의 왕이었던 류안이 불로장생(不老長生)의 비밀을 찾던 중 두부를 만들었다는 설과 쓰촨성 지방의 한 여인이 우연히 콩을 끓이던 중 바닷소금을 쏟아서 탄생되었다는 설, 그리고 고대 몽골인들의 치즈 만드는 것을 보고 중국인들이 따라하다 두부가 만들어졌다는 설이다. 몽골에서는 ‘우유’가 ‘루프(rufu)’로 불리는데 ‘두부’의 ‘doufu’와 유사하다는 데서 근거한 설이다.
 
  두부가 한국에 전해진 것 역시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없다. 다만 고려 말기 문집인 《목은집》에 두부에 관한 기록이 나오는 것으로 미뤄 이 시기 고려와 교류가 가장 빈번했던 원나라로부터 전래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목은집》에는 ‘대사구두부래향(大舍求豆腐來餉)’이라는 시(詩)가 나오는데, 두부를 ‘나물국 오래 먹어 맛을 느끼지 못하는데 두부가 새로운 맛을 돋우어주네, 이 없는 사람 먹기 좋고 늙은 몸 양생에 더없이 좋네’라고 묘사하고 있다.
 
  《세종실록》에는 명나라 황제가 조선에서 온 여인이 각종 식품 제조에 뛰어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두부를 잘 만든다고 칭찬했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 기록으로 보아 조선시대에는 두부 제조법이 매우 발달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조선의 두부 제조법을 이웃 나라 일본에서 가져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에서 기원한 두부는 한국을 거쳐 일본에 전해졌지만 가장 빨리 산업화를 시킨 것은 일본이다. 일본은 3국 중 가장 먼저 자동화 설비를 도입해 위생적인 두부를 생산해 냈다. 반면 중국은 아직도 비위생적인 수작업으로 두부를 만들고 있고, 그 사이에 낀 한국은 재빨리 일본 기술을 받아들여 그들을 능가하는 두부 제조 시스템을 고안해 냈다. 한국의 선두주자는 풀무원이다.
 
  풀무원은 1980년대 말 국내 최초로 포장두부를 출시했다. 시장에서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주는 두부를 사먹던 시절이었다. 이후 20년 가까이 국내 포장두부 시장의 80% 이상을 풀무원이 점유해 왔다. 후발업체들의 진출로 현재는 시장의 절반 정도만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풀무원식품의 올해 두부 매출은 1820억원이다.
 
  풀무원이 독식해 오던 포장두부 시장에 도전장을 낸 업체는 CJ제일제당이다. 이 회사는 2005년 냉장식품 시장에 진출하며 주력 상품으로 포장두부를 내놓았다. 이후 풀무원을 추격하며 2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업계 3위는 CJ제일제당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포장두부를 내놓고 있는 대상(종가집두부)이다.
 
  이들 대기업, 특히 1위 업체인 풀무원과 2위 업체인 CJ제일제당의 두부 시장 선점 경쟁은 그 어느 분야보다 치열하다. 이 두 업체는 품질 관리는 물론 제조기술과 제품개발을 놓고 양보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전 세계 콩 백두산에서 퍼져
 
풀무원식품의 류영기 마케팅실장.
  두부 맛을 결정하는 요소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요소는 주원료인 콩이다.
 
  현재 국내에서 생산하는 콩의 종류는 500여 가지다. 이 중 두부에 좋은 콩은 백태이며, 그중에서도 황금, 태광, 대원 등의 품종이 우수하다. 류영기(柳永基) 풀무원 마케팅실장은 “두부가 갖고 있어야 할 탄력, 향취, 맛이 종합적으로 풍미인데, 각종 테스트 결과 이 세 품종이 가장 우수했다”고 말했다.
 
  “풍미가 뛰어난 이 세 품종의 콩은 전국에서 재배하고 있는데, 특히 충북과 경북, 강원도 일부에서 많이 출하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매년 농협을 통해 계약재배하는 한편 지역 단위로 구매하고 있습니다. 농가에서 40kg 단위로 들어오는 콩은 먼저 두부에 적합한지 테스트합니다. 콩의 입도(粒度)와 단백질 조성도 등을 분석하는 것이지요. 그런 다음 크기, 색채, 윤택 순으로 거르는 정선(精選) 과정을 거치게 되지요. 좋은 두부에는 이처럼 까다로운 절차를 거친 최고 품질의 콩만 사용됩니다.”
 
  류 실장은 1988년 풀무원에 입사한 이후 20년 넘게 콩과 두부 연구에 매진해 온 생명공학 박사다. 그는 콩에 관한 아주 흥미로운 얘기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 콩의 원산지가 한반도라는 말에는 귀가 번쩍했다. 류 실장의 말이다.
 
  “전 세계 콩 생산지는 한반도가 위치해 있는 북위 36°를 따라 벨트가 형성돼 있습니다. 분류통계학자들은 자기 세포의 끝단에 어미 염색체의 전모를 복제하는 미토콘드리아를 추적해 동식물의 원산지를 추적하는데, 콩의 원산지는 한반도로 밝혀졌다고 해요. 옛 만주 지역인 백두산과 두만강 유역이 콩의 원산지라고 합니다.”
 
  우리 몸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영양소는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이다. 역사적으로 농경국가였던 한반도에서는 육류 섭취가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한민족의 두뇌가 우수한 것은 질 좋은 단백질 공급원인 콩을 많이 먹은 덕분이라고 한다. 류 실장은 “지금은 전 세계인이 콩을 먹지만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서구에서는 콩을 동물사료로만 사용했을 뿐 먹지 않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콩에는 100여 가지의 기능성 물질이 함유돼 있습니다. 각종 성인병을 예방해 주는 사포닌, 노화 방지에 효과적인 이소플라본, 장을 건강하게 하는 식이섬유 등이 대표적이죠. FDA(미국 식품의약국)에서도 ‘하루에 콩 12g만 먹어도 심장병을 예방할 수 있다’며 콩 먹기 운동을 장려하고 있지요. 미국의 대표적인 콩 전도사인 힐러리 클린턴은 백악관 식단에 두부 요리를 넣은 주인공입니다. 미국인들은 이제 두부를 ‘식물성 치즈’라 여기며 즐겨 먹고 있지요.”
 
  전문가들에 따르면 콩 본연의 맛과 영양소를 가장 효율적으로 흡수할 수 있는 식품이 두부다. 류 실장에게 “수입산 콩으로 두부를 만들면 맛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는 “두부에 좋은 콩은 단백질 함량과 점성이 높으면서 단맛과 고소한 맛이 나는 것”이라며 “이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콩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단백질 함량과 점성이 높으면 단맛과 고소한 맛이 덜하고, 단맛과 고소한 맛이 좋으면 단백질 함량과 점성이 떨어지는 식이다.
 
  “한국인들이 한국산 콩을 좋아하듯이 미국인은 미국산 콩이, 중국인은 중국산 콩이 가장 맛있다고 합니다. 오랫동안 길든 입맛 때문 아닐까 싶어요. 누구나 자기 나라 콩이 제일 맛있다는 것이 보편타당한 사실일 겁니다.”
 
 
  충진수는 먹지 않는 게 좋아
 
서울 구로동에 위치한 CJ제일제당 식품연구소.
  두부 맛을 결정하는 두 번째 요소는 간수, 즉 응고제이다. 좋은 콩을 갈아 끓인 다음 두부로 굳히기 위해서는 응고제가 필요하다. 묵은 점성이 높아 식으면 자동적으로 굳어지지만 두유 속의 단백질은 저 홀로 뭉치는 힘이 약해 다른 식품첨가제의 도움을 받아야 고형화(固形化)된다.
 
  CJ제일제당 식품연구소의 권순희(權純熙) 상무는 “과거에는 염화마그네슘이나 황산칼슘·염화칼슘 혹은 GDL(글루코노델타락톤) 등 화학적으로 합성한 응고제를 사용했으나 요즘은 대부분 천연응고제를 쓴다”고 말했다.
 
  “화학 응고제가 건강에 나쁘거나 두부 맛을 해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순도 100%의 콩맛을 내기 위해 자연의 맛에 가까운 천연응고제를 쓰는 추세죠. 저희는 미네랄 성분이 풍부한 신안 간수를 농축하고 여과해 응고제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좋은 응고제는 두부의 고소한 맛을 살려주기도 합니다.”
 
  권 상무는 풀무원을 거쳐 2001년 CJ제일제당에 입사했다. 이후 10여 년 동안 두부 연구에 매달려온 식품공학 박사다. CJ제일제당의 두부 사업을 세팅할 당시 세계 최고의 두부를 만들어야 한다는 각오로 새로운 제조 공정을 설계했다. 소포제나 유화제 같은 식품첨가물을 넣지 않고도 두부를 굳히는 기술이다.
 
  “콩은 단백질 함유량이 높고 사포닌 성분이 많습니다. 이 때문에 콩을 간 후 끓이면 거품이 많이 생기죠. 거품이 많으면 두부에 구멍이 생겨 식감이 나빠집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두유를 끓일 때 거품을 제거하는 식품첨가물을 넣는데, 이게 소포제입니다. 또 끓는 두유에 간수를 넣으면 몽글몽글 응고되기 시작하는데, 그 속도가 너무 빠르면 거칠고 퍽퍽한 두부가 나오기 십상입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간수를 기름에 싸서 넣고, 유화제를 추가해 두유가 천천히 굳어지게 하죠. 저희는 두부 본연의 맛을 살리기 위해 이런 식품첨가제들을 넣지 않고도 부드러운 식감의 두부를 만들 수 있는 설비를 고안해 냈습니다.”
 
CJ제일제당의 권순희 상무.
  권 상무가 고안한 기술은 두유를 한번 끓여 거품이 올라오면 5℃로 냉각시켜 거품을 제어한 다음 온도를 서서히 높이며 두부를 굳히는 방식이다. 이 기술로 기존 두부와의 차별화에 성공한 CJ제일제당은 배우 고소영을 기용해 기름이 들어가지 않은 두부라는 점을 강조하는 CF를 촬영했다. 두부 용기 윗부분을 열고 충진수를 마시는 바로 그 광고다. 나름 성공적이었던 이 CF장면 때문에 최근 ‘충진수 식음 문제’를 놓고 논란이 일었다. 전문가에 따르면 충진수는 두부가 공기 중에 노출되면 산패하기 때문에 접촉면을 차단하고자 포장두부 용기에 넣는 물이다. 특별히 영양분이 있는 물은 아니다. 권 상무의 설명이다.
 
  “저희는 두부에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그 같은 콘셉트의 광고를 했을 뿐 충진수를 먹으라고 홍보한 것은 아닙니다. 또 식약청이 충진수는 먹는 물 기준에 맞지 않다는 관점으로 보아 그 같은 논란이 생긴 것 같아 역으로 식약청에 질의했습니다. ‘포장두부 전체를 식품으로 간주하고 충진수 역시 식품규격 기준으로 해석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요.”
 
  풀무원이든 CJ제일제당이든 충진수는 식음이 가능한 수돗물을 사용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 물은 시간이 지나면서 과일 통조림 속의 물이 당분과 섞여 다른 성질로 변화하듯 변할 수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충진수는 마시지 않는 것이 좋고, 그 안의 두부도 가능한 한 흐르는 물에 한번 씻어 먹는 것이 안전하다.
 
 
  한국 두부업체 경쟁력 세계 최고
 
  국내 포장두부 1, 2위 업체인 풀무원과 CJ제일제당은 시장 점유율을 공개하지 않을 정도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그런 가운데 기술개발이나 제품개발 면에서는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한·중·일 두부 3국 중 글로벌 경쟁력 면에서 가장 앞서가고 있을 정도다. 풀무원의 류영기 실장은 3국의 두부 특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두부 제조 과정은 3국이 대동소이합니다. 그런데 기호도에는 많은 차이가 있지요. 가령 중국인들은 돌짝처럼 딱딱하거나 양념을 많이 넣은 두부를 좋아합니다. 얇게 포를 떠서 싸먹는 두부도 즐겨 먹고요. 반면 일본은 사무라이들이 좋아하는 나긋나긋하고 섬세한 두부, 부드러운 연두부를 좋아합니다. 두 나라의 중간에 있는 한국은 딱딱하지도 부드럽지도 않은 중간 물성을 가진 두부를 좋아하지요.”
 
  중국이나 일본은 자국 두부에 대한 고집이 있고, 장인정신이 강하다. 그 때문에 다른 나라 두부에는 관심이 없다. 반면 한국은 양쪽 나라 두부에도 관심이 많아 이미 제조 기술을 익혀놓은 상황이다. 류 실장은 “웰빙 트렌드를 타고 점점 커지고 있는 글로벌 두부 시장은 한국이 제패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CJ제일제당의 권순희 상무도 이 같은 분석에 공감했다. 그는 “중국과 일본은 전국적으로 흩어져 있는 소규모 업체들이 두부를 만드는 반면 우리는 대기업이 체계적인 시스템 속에 두부를 제조해 경쟁력이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중국이나 일본은 조림두부, 튀김두부 등 가공두부가 발달해 있습니다. 유독 한국만 가공두부가 없어 저희가 몇 년 전 생으로 떠먹을 수 있는 두부를 개발한 데 이어 소시지 형태의 동그란 두부를 개발해 좋은 반응을 얻었죠. 이에 힘입어 두부 스테이크, 두부 너비아니 등의 가공두부를 출시했는데, 지금은 경쟁 업체들도 이 같은 제품을 속속 내놓고 있지요. 글로벌하게 두부를 잘할 수 있는 곳은 전 세계에서 한국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풀무원이나 우리처럼 큰 규모의 연구소를 두고 있는 곳은 중국이나 일본에 없지요.”
 
  양사는 이미 해외시장에도 진출해 있다. 충북 음성에 세계 최대 두부 공장을 두고 있는 풀무원은 일본 다음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 동부(뉴욕)와 서부(샌프란시스코)에 각각 하나씩 공장을 두고 가동 중이다. 류영기 실장은 “풀무원은 철저히 현지화한다는 전략으로 해외시장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CJ제일제당은 거대한 중국 시장을 겨냥, 베이징에 있는 국영기업 이산그룹과 손잡고 기술개발과 제품연구 등을 공동으로 진행 중이다.
 
  이번 취재를 마무리하며 양사를 대표하는 류영기 실장과 권순희 상무에게 우문(愚問)을 하나 던졌다. “수제두부에 비해 포장두부의 맛이 덜 고소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요”라고. 두 사람의 답은 다른 듯 같았다.
 
  “갓 빚어낸 따끈따끈한 두부는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도 고소하고 맛있습니다. 열심히 운동하고 난 후 먹는 두부 역시 마찬가지죠. 등산 후 산 아래 식당에서 먹는 음식은 두부가 아니라도 다 맛있습니다.”(류영기 실장)
 
  “포장두부는 유통기한이 있어서 두부를 만든 후 위생상의 안전을 위해 살균을 한 번 합니다. 보통 85℃에서 30분 정도 하지요. 살균 전과 후의 두부 맛은 확실히 차이가 납니다. 살균 전 포장두부는 따뜻할 때 먹으면 수제두부보다 훨씬 맛있습니다.”(권순희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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