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권노갑 김대중재단 이사장 : 월간조선

95세에 박사논문을 준비하고, 골프 70타를 기록한다. 기상 직후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국내외 신문을 모두 읽는다. 매일 헬스클럽에서 2시간 이상 운동을 하고 저녁식사 후엔 아령 200회와 팔굽혀펴기 100회를 한다. 권노갑(權魯甲) 김대중재단 이사장의 일상이다. 국회 헌정회에서 만나는 순간 그의 활력을 느끼며 알려진 일상에 과장이 없음을 단박에 이해했다.

권 이사장은 83세에 한국외대 영문학 석사학위를 받아 국내 최고령 석사를 기록했고, 2년 전인 2023년 같은 과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석사논문의 제목은 ‘존 F 케네디의 연설문에 나타난 정치사상 연구’였으며 박사논문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와 관련한 내용이다.

-대학원 박사과정 재학중이라고요.

“현재 박사과정은 수료를 마쳤고, 졸업시험과 논문을 준비 중입니다. 내년이면 이 시험들을 마치고 영문 논문까지 완성해 박사학위를 정식으로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권노갑 이사장이 2025년 6월 24일 샷 이글을 치고 골프장 측으로부터 기념 증서를 받고 있다. 사진=권노갑 이사장 측

-박사에 도전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학교에서도, 주변에서도 ‘영원한 DJ비서실장’인 제가 김대중 전 대통령을 주제로 논문을 써서 세계에 알리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권유를 많이 받았습니다. 김 전 대통령을 가장 가까이에서, 또 가장 오랫동안 모신 사람으로서, 그 경험과 자료를 바탕으로 논문을 집필하는 일이 의미가 크다는 이야기였죠. 그의 인권주의, 민주주의, 그리고 평화와 통합의 정신을 학문적으로 조명하고 싶습니다.”

-젊은 사람도 하기 힘든 게 박사과정인데, 체력이나 기억력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

“내가 기억력은 젊은 사람에게 지지 않아요. 체력은 물론이고. 매일 2시간 운동을 하고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흑염소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고기를 많이 먹어요. 고기를 먹어야 근육이 생기거든. 고기 먹고 운동하고, 근육을 계속 만들어야 돼요.”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인연

지난 7월 1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1회 김대중상 시상식. 사진=뉴시스

그는 어린 시절 다양한 운동을 섭렵하고 올림픽 출전까지 노렸던 만능 운동선수였다. 야구 농구 유도 육상 등 운동을 두루 잘 했던 그는 상업학교(당시 6년제였던 목포상고)에 진학해서는 권투선수로 활동하게 됐다. 올림픽(1948년 제14회 런던올림픽)에 출전할 뻔 했지만 아쉽게 실패한 후 공부해 대학에 갔다. 6.25 당시 부산으로 가서 유엔군에 들어가 통역관으로 일했고, 전쟁 후에는 목포여고 영어 교사로 근무했다. 권 이사장이 영어교사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계기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1924년생)과는 북교초등학교, 목포상고 선후배 사이죠.

“당시엔 (목포상고가) 목포상업학교였는데 5년제여서 같이 학교를 다녔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언제나 공부도 운동도 1등이었고 특별하게 똑똑한 학생이었습니다. 외모도 잘생긴데다 인성도 훌륭해서 후배들이 모두 선망하는 대상이었어요. 그런데 정치를 시작하고 나서는 선거에서 계속 떨어지는 겁니다. 도저히 두고 볼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1961년 강원도 인제 민의원 보궐선거때 교직을 내려놓고 도우러 갔어요.”

권 이사장이 선거운동에 나서면서 김 전 대통령은 처음으로 승리를 쟁취했고 1961년 5월 민의원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돼 초선 의원이 됐다. 그러나 기쁨은 며칠도 못 갔다.

“5월 13일에 당선증을 받았는데 사흘만에 5.16이 일어났어요. 국회는 해산되고 정치인들은 구속됐는데 형수님(故 차용애 여사)는 그 전 해 돌아가셔서 옥바라지도 내가 했지요. 감옥에서 나와서도 정치 규제에 걸려 활동도 못 하고…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겠습니까. 그러다 이희호 여사와 결혼하면서 다시 힘을 얻게 됐어요. 여사가 아니었으면 정치활동을 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겁니다.”

“민주당은 김대중 덕에 존속돼 온 정당”

권노갑 이사장(오른쪽)은 김대중 전 대통령(가운데)의 ‘영원한 비서실장’으로 불린다. 사진=조선DB

자신의 근황과 그동안의 인생 역정을 간단하게 설명한 후 권노갑 이사장은 민주당 이야기에 긴 시간을 할애했다. 5.16이후 민주당은 완전히 소멸된 상태였다. 사분오열된 민주당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88년 ‘평화민주당’으로 다시 창당해서 민주당의 정통성을 구축했다. 그는 “민주당의 뿌리는 김대중 대통령과 우리 동교동계”라며 “(현재의) 민주당은 사실상 김대중 대통령이 만들고 키워온 정당이며, 김대중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존속할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사실 (과거) 민주당이 지금까지 무난하게 이어져 내려온 게 아닙니다. 4.19 때 정권을 잡았지만 구파와 신파가 싸우면서 혼란이 확산되고 결국 당이 사실상 깨져버렸어요. 그러니 군부세력이 그 틈을 타서 5.16을 일으키면서 민주당은 거의 소멸됐었지요. 박정희정권에서는 민주당이 4개로 쪼개졌습니다. 이합집산이 되다가 결국 ‘김대중당’ 평화민주당과 ‘김영삼당’ 통일민주당만 남게 된 거죠. 그런데 ‘김영삼당’은 3당합당하면서 군부세력쪽으로 가버렸잖아요. 대한민국의 정통야당은 평민당뿐이었던 겁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수십 년 동안 다섯 번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6년간 옥고를 치르고 망명, 연금, 감시의 고통을 견디면서 오직 국민과 역사를 믿고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헌신했기 때문에 결국 40여년만에 수평적, 민주적, 평화적 정권교체를 할 수 있었어요. 김대중이라는 분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이 평화적이고 수평적인 정권교체를 할 수 있었겠습니까?”

-‘김대중 정신’을 정의한다면요.

“김대중 정신은 민주주의, 인권, 평화, 통일 4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김대중 민주당의 기본 가치는 중도개혁 정당이며, 노선은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당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평생 법치, 삼권분립, 의회민주주의의 풀뿌리 참여 민주주의(지방자치)를 추구했어요.”

86세대 대거 발탁

지난 2023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 참석해 이재명 당대표의 안내를 받고 있는 권노갑 이사장. 사진=조선DB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인 권 이사장은 언론 등을 통해 일부 민주당 정치인들에 대해 쓴소리도 서슴지않고 있다. 그의 후배 정치인들에 대한 시선이 궁금했다.

-지금 정치권에 큰 정치인이 될 만한 괜찮은 인물이 있나요.

“내가 발탁한 사람들이 이미 활발하게 활약을 하고 있어요. 내가 사람을 잘 본다고 김대중 대통령이 인정했거든요. 13대 총선부터 16대까지 신인 발탁과 공천은 사실상 다 했고요. 지금 민주당에서 돋보이는 정치인들은 거의 다 내가 발탁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예를 들면요.

“김민석 총리, 정세균 전 총리, 정동영 장관, 천정배 전 장관, 신기남 전 의원, 추미애 전 대표, 임종석 전 의원, 우상호 정무수석, 우원식 국회의장, 송영길 전 대표, 이인영 전 장관, 이낙연 전 총리, 전병헌 전 원내대표 등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특히 김민석 총리는 김대중 대통령께서 큰 인물이 될 것이라 판단하고, 28세의 젊은 나이에 직접 발탁했습니다. 제14대 총선에서 영등포 지역구에 공천해 당선됐고 이후 김대중 대통령께서 당 총재를 겸임하실 당시에는 총재 비서실장으로 중용하셨죠.”

-민주당에 동교동계, 친노, 친문 등 다양한 계파가 존재해 왔음에도 이재명 대통령이 당을 장악하고 대권을 차지하게 된 원인이 무엇일까요.

“일찌감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준비하고 내놓은 정치인이기 때문이죠.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50~60년대부터 수십년 후의 미래를 준비했어요. 경제성장은 물론 과학기술, 문화, 사회복지, 환경, 노동 등 당시 우리 사회에서는 개념조차 찾기 어려웠던 가치를 추구하며 미래 청사진을 내놓으려 노력했습니다. ”

-이 대통령이 다른 정치인들에 비해 특출나게 미래를 준비해왔다고 봅니까.

“86세대 잘나가는 정치인들에 비하면 정치 경력이나 스펙 등이 열세인 건 사실이잖아요. 그런 상황에서도 스스로 노력을 해서 지방선거에서 성남시장 공천을 받아냈고요. 시장이 되면서는 국정 전반에 걸쳐 공부를 엄청나게 한 걸로 알고 있어요.”

-사법개혁 등에 대해 민주당이 유독 강하게 나가고 있습니다.

“너무 강한 것 아닌가라는 우려를 갖고 있습니다. 검찰이든 사법부든 법적 잣대로 국민의 판단을 제어하려 해선 안 되지요.”

“민주당엔 훌륭한 차기 대권 주자 많아”

-누굴 차기 대권주자로 생각하는지요.

“여권 전체로 보면 김민석 총리, 김동연 경기지사, 김경수 전 경남지사, 김관영 전북지사, 이광재 전 강원지사, 정청래 대표, 박찬대 전 원내대표, 송영길 전 대표, 박용진 전 의원,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 등등 많지요.”

-그 중 누가, 또는 어떤 사람이 주도권을 잡게 될까요.

“거듭 얘기하지만 야망이 있는 정치인이라면 꾸준히 공부하고 미래 비전을 준비하고 연구하고 제시해야죠. 국내 정치에만 집중하지 않고 문명의 변화와 세계적인 동향과 국제정세에 관심을 갖고 준비해야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1960~70년대에도 외국을 방문하면서 각국 지도자들을 만나고 배울 건 배우고 알릴 건 알리는 활동을 했고, 내외문제를 연구하기 위한 개인연구소도 만들었어요. “당시는 당 내에 정책연구소조차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때 김대중 의원이 직접 국내 문제와 국제 문제를 함께 연구하는 ‘내외문제연구소’를 설립해 운영했지요. 말 그대로 국내(內)와 국외(外)를 아우르는 폭넓은 정책 연구의 토대를 마련한 겁니다. 이 연구소가 훗날 민주당이 정책정당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됐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그 정도로 국제적인 활동을 하는 정치인이 있습니까.”

-내년 6월에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습니다. 이재명정부와 여당에 대한 중간평가가 되겠지요. 민주당이 유리할 것으로 봅니까.

“지방선거에서 좋은 결과가 나와야 이재명정부가 성공할 수 있으니 나 역시 적극적으로 전국 유세에 나설 계획입니다. 특히 경기도와 호남을 중심으로 후보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어요.”

따라서 내년 봄엔 만96세 정치인의 현장 유세 모습을 볼 수 있을 전망이다. 권 이사장은 “사람은 죽을 때까지 사회적 활동을 해야 한다”며 100세 시대에 지켜야 할 점에 대해 얘기했다.

“우리 동년배들이 지켜야 할 점은 세 가지 입니다. 건강을 잘 챙겨야 하고, 남에게 베풀어야 하고, 마지막까지 사회적 활동을 하는 겁니다. 내가 건강해야 자식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사회적으로도 후대에 피해를 주지 않아요. 각 분야에서 쌓아온 경험과 경륜은 소중한 자산이고, 나이 많은 사람은 그에 맞는 사회적 역할이 있어요. 노장청(老壯靑)이 조화를 이뤄야 좋은 사회, 행복한 사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