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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단체장을 만나다

정문헌(鄭文憲) 서울 종로구청장

“종로구 전체를 문화예술지대로 만들겠다”

글 :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everhop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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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3명 배출한 종로구… 근대화의 시원지 탈바꿈해 도심 재정비
⊙ 인사동 화랑가부터 대학로 극장들까지 문화예술벨트로
⊙ 영어로 인문학 가르치는 무료 ‘국제 서당’… 올해부터 운영

鄭文憲
1966년생. 美 위스콘신대 정치학 학사, 시카고대 정책학 석사, 고려대 정치학 박사 / 17·19대 국회의원(강원 속초·고성·양양), 대통령실 외교안보수석실 통일비서관 역임. 現 종로구 구청장
  “프리즈 측에서 저를 찾아왔어요.”
 
  정문헌 종로구청장이 말했다. 의외였다. 프리즈(Frieze)는 2003년 영국 런던에서 시작한 아트 페어다. 지난해부터는 서울에서도 매회 한 차례 페어를 열고 있다. 한국화랑협회와 손잡고 5년간 코엑스에서 열릴 예정이다. 그런 프리즈가 종로구청장을 찾은 이유는 뭘까.
 
  “청와대가 대중에 공개됐잖아요. 그 공간에 관심을 갖고 있더군요.”
 
  청와대는 종로구에 위치해 있다. 대통령의 집무 공간이었다는 점을 차치하고라도, 살펴보면 꽤 매력적인 공간이다. 야외와 실내 공간이 풍요롭게 어우러져 있다. 그러고 보니 프리즈는 애초 야외에 천막을 쳐놓고 그 안에서 시작했다.
 
 
  3대 국회 선수를 합치면 10選
 
  정문헌 종로구청장은 3대째 공직자 집안의 후손이다. 외조부 전진한(錢鎭漢) 초대 사회부(현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장관은 제헌의회 의원을 시작으로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한 4선 의원이고, 부친 정재철(鄭在哲) 전 국민의힘 고문 역시 4선 의원이었다. 정 구청장은 재선 의원(17대, 19대) 출신이니 3대를 합치면 국회 선수만 10선이다.
 
  지난해 6월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국회의원 출신 자치단체장이 여럿 탄생했다. 서울에서는 정 구청장과 이성헌 서대문구청장(16대, 18대)이 있다. 그 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당시 자유한국당)은 서초구를 제외한 모든 구청장 자리를 민주당에 내줬었다. 지난해 지선에서 국민의힘이 17개 자치구를 탈환한 것은 중량급 인사들이 뛰어든 덕도 컸다.
 

  ― 구청장 취임하고 8개월이 지났는데 어떻습니까.
 
  “군대로 비유하면 국회의원은 병참이고 자치단체장은 전투부대예요. 국회의원이 예산을 끌어오고 규제를 푸는 역할을 한다면, 실제 사업 실행은 자치단체장이 하지요.”
 
  ― 종로구에 출마한 이유가 있나요.
 
  “종로가 아니면 구청장 출마할 이유가 없었어요. 저는 종로구 삼청동에서 태어나서 초중고를 다 종로에서 다녔어요. 종로가 예전엔 어땠는지 어떻게 변해왔는지 다 알잖아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출마를 결심했어요.”
 
  종로구는 규모에 비해 정치적 영향력이 큰 자치구다. 대통령을 3명(윤보선, 노무현, 이명박)이나 배출한 정치 명당인데다, 청와대, 각종 정부 청사, 대사관 등이 즐비하다. 조선 시대의 5대 궁궐 중 덕수궁을 제외한 4 곳의 궁궐(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을 품고 있기도 하다. 한국 유일의 고미술품 거리인 인사동도 종로구에 속해 있다. 각종 규제와 여건 때문에 서울 도심에서 가장 변화하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정 구청장은 종로구를 ‘변화가 시작된 곳’이라 규정했다.
 
 
  광장시장, 탑골공원 조성한 고종
 
종로구 탑골공원 안에 있는 원각사지 10층 석탑.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흰색을 띠고 있어 백탑이라고도 불렸다. 사진=조선DB
  “조선이 개국하고 나서 쭉 종로는 한민족의 심장이었어요. 조선 말기 고종 시기에 일본이 한양에 어떤 짓을 합니까. 명동을 개발했어요. 남대문에 상권을 형성하고요. 그래서 고종이 대응하기 위해 뭘 했을까요. 광장시장을 만들었어요. 당시 수준에서 제일 현대적인 시장을 만든 거예요.”
 
  광장시장은 1905년 설립됐다. 구한말 일본인들이 남대문시장 경영권을 장악하는 등 서울 상권을 장악하자 조선 상인들과 고종이 조선의 자본으로 세운 시장이다. 공식 명칭은 ‘동대문 시장’이었고, 청계천 광교와 장교 사이에 위치했기에 광장시장이라고도 불렸다. 종로구에 속해 있다.
 
  정 구청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고종은 탑골공원도 만들었어요. 탑골공원은 서울에 최초로 들어선 근대적인 공원입니다. 탑골공원엔 원각사지 십층석탑이 서 있어요. 조선 시대 예술품으로는 특이하게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탑이지요. 그래서 ‘백탑(白塔)’이라고도 불렸어요.”
 
  ― 지금은 유리로 사방을 둘러놓았지요?
 
  “대리석이라 외부 변화에 취약해서입니다. 백탑 근처에 지식인 한 그룹이 모여 살았어요. 박지원, 홍대용, 박제가 같은 ‘북학파’로 기록된 실학 사상가들입니다. 이분들을 ‘백탑파’라고도 불렀어요.”
 
  ― 그분들이 탑골공원 주변에 사셨군요.
 
  “이분들이 나눴던 깊숙한 대화들은 한민족이 자생적으로 근대화할 수 있는 맹아를 품고 있었다는 걸 보여줍니다. 결국 1919년 탑골공원에서 기미독립선언서가 낭독됩니다. 우리 역사 최초로 민주공화국을 선포하는 내용이었어요. 백탑파 지식인들의 정신이 이어져온 겁니다.”
 
 
  현대화 넘어 고도 현대화로
 
정문헌 구청장이 신년 인사회에서 ‘종로 모던’에 대해 발표하는 모습. 종로 모던은 한국식, 종로식 고도 현대화를 뜻한다. 사진=종로구청
  종로의 근대화 정신을 현시대엔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정 구청장의 답은 바로 ‘종로 모던’이다.
 
  “종로 모던은 ‘세계에 본(本)이 될 수 있는 한국식, 종로식 고도(高度) 현대화의 구현’입니다. 고도 현대화는 학자에 따라 탈(脫)현대라고도, 후(後)현대라고도 표현하는 개념이에요.”
 
  ― 현대화와 뭐가 다른가요.
 
  “한국에서 현대화의 중심은 강남이었어요. 1970~1980년대 강남이 개발되면서 너도나도 강남으로 이사 갔어요. 강남으로 갈 수밖에 없었지요. 그때는 궁궐 같은 건 다 짐이었어요. 한국 사회가 그 방향으로 뛰어가야 할 때였으니까요. 그런데 시대가 바뀌었어요.”
 
  ― 4차 산업혁명이라고들 하지요.
 
  “중세 시기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바뀐 정도의 패러다임 전환이에요. 코로나19 때문에 변환이 더 가속화됐어요. 재택근무, 온라인 교육이 일반적인 일이 됐잖아요. 더 나아가면 초중등으로 구분하는 현재의 교육제도를 과연 유지하는 게 맞는지도 고민해봐야 해요.”
 
  ― 미래는 이미 다가왔는데 제도는 그대로군요.
 
  “강남으로 대변되는 현대화 시대에는 좋은 학교를 가야 좋은 선생한테 지도를 받을 수 있었어요. 지금은 어떤가요. 인터넷에 접속하면 하버드대 강의를 그냥 볼 수 있어요. 단순히 지식을 전수하는 교육은 안 해도 된다는 겁니다.”
 
  ― 미국과 유럽도 변화를 맞은 건 마찬가지지요.
 
  “저는 인류가 현재 직면한 문제를 서양의 철학과 사조로 풀어낼 수 없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데카르트)라는 명제는 자연과 유기체인 나를 분리하는 사고지요. 그런데 이걸 우리 조상들은 다르게 생각했거든요. 풍수를 보세요. 지구 자체를 거대한 유기체로 보고 있어요.”
 
 
  종로구 전체를 문화지대로
 
지난해 10월 열린 북촌공방축제에 참석한 정문헌 종로구청장. 사진=종로구청
  ―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현대화를 넘어서 한국식 고도 현대화를 할 때입니다. 종로구는 그 방법 중 하나로 문화관광벨트를 제안합니다. 서울을, 종로를 아시아의 문화를 대표하는 엔터테인먼트 도시로 만드는 거예요. 종로 전체를 전시장, 박물관, 공연장으로 만들 겁니다.”
 
  ― 그러고 보니 종로구에 문화 시설이 많네요. 대학로도 있고, 인사동도 있고요.
 
  “종로구는 전역이 역사 현장이에요. 그동안 청와대를 사이에 두고 서촌과 북촌이 나뉘어 있었어요. 청와대가 개방되면서 종로의 문화자산들이 하나의 거대한 문화벨트 안에 놓이게 됐어요. 평창동 문화마을에서 청와대와 고궁, 삼청동 갤러리타운과 송현동, 인사동 화랑가에서 대학로 공연예술거리까지 이어지는 문화관광벨트입니다.”
 
  ― 뉴욕이나 런던 같은 도시를 지향하나요.
 
  “어느 한 도시만 벤치마킹하긴 힘듭니다. 뉴욕 브로드웨이의 장점이나 런던 웨스트엔드의 장점 중 어떤 부분을 참고할 수는 있겠지요. 외국에도 종로처럼 소극장 150개가 모여 있는 도시가 잘 없어요. 여기에 1500석 이상의 대형극장이 3군데 정도 함께 어우러지면 공연 생태계에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 대형 극장이 강남엔 있는데 종로에는 없네요.
 
  “종로에도 1000석 이상의 극장 한 곳이 이미 지어지기로 확정됐어요. 1500석 이상의 극장에서는 대형 뮤지컬을 장기 공연하는 게 가능합니다. 그런 극장이 세 곳 정도 있으면 그중 한 곳에는 한국에서 만든 뮤지컬을 올릴 수 있어요. 그렇게 우리 뮤지컬이 외국에 진출하는 거죠.”
 
  ― 결국 고도 현대화는 문화예술이 핵심이라는 거군요.
 
  “젊은 친구들이 요즘 조깅을 많이 하잖아요. 빌딩 숲에서 조깅하는 게 좋겠습니까, 궁궐 담벼락에서 뛰는 게 좋겠습니까. 종로에는 조선 시대 골목길도 다 남아 있어요. 걷는 관광을 할 수 있게 곳곳마다 스토리와 함께 코스를 만들고 있어요. 유럽은 다 걸으면서 관광하잖아요. 관광객이 걸어 다녀야 주변 상권도 살아납니다. 종로엔 먹거리 골목도 있어요.”
 
  ― 빈대떡 골목, 아귀찜 골목은 유명하지요. 피맛골도 있고요
 
  “그래서 1년에 한 번 한 달 내내 축제를 여는 ‘한 달 축제’를 열려고 합니다. 그동안 종로구와 서울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하는 행사들이 같은 날 별도로 진행되는 등 산발적으로 이뤄진 경우가 많았어요. 이를 한데 모으고 정리하는 거죠. 예를 들면 10월 중 어느 때든 종로구에 오면 전통문화부터 먹거리, 놀거리 등 축제를 만끽할 수 있는 겁니다.”
 
 
  영어로 인문학 배우는 국제 서당
 

  ― 종로구 업무 계획을 보니 ‘국제 서당’이라는 게 있던데 국제 서당이 뭡니까.
 
  “정치권 들어오기 전에 고려대에서 연구교수를 할 때였어요. 공부를 엄청나게 열심히 하는 학생이 눈에 띄었어요. 물었지요. ‘너는 공부를 왜 그렇게 열심히 하니?’ 답이 돌아와요. ‘잘살려고요.’ 그래서 물었지요. ‘잘사는 게 뭐니?’”
 
  ― 뭐라 답하던가요.
 
  “‘일단 돈을 좀 벌어야겠지요’라더군요. 그래서 또 물었어요. ‘돈 벌어서 뭐 하게?’ 그랬더니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요. ‘잘살려고요.’”
 
  ― 순환 논리네요. 삶의 가치를 고민할 기회가 없어서일까요.
 
  “돈이 있으면 편리한 건 맞아요. 그런데 편리한 것과 삶이 편안한 건 다른 얘기거든요. 돈이 많아도 불안하게 사는 사람이 있잖아요. 잘사는 게 과연 무엇인지 젊을 때 성찰해야 편안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개인주의가 심화되니 앞으로는 더욱 중요해질 겁니다.”
 
  ― 더구나 인공지능이니 뭐니 격변하고 있는 시대니까요.
 
  “우리 아이들한테 잘사는 게 뭔지 고민해볼 수 있도록 인문학적 성찰을 하게 하자는 게 ‘국제 서당’의 취지예요. 서당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서당의 교육 방식을 차용하자는 뜻입니다.”
 

  ― 서당에선 어떻게 가르치나요.
 
  “여러 명이 함께 배우지만 개인별 맞춤 진도로 배우기도 하지요. 예전에 보면 책을 다 공부했을 때 하는 ‘책거리’를 각자 다른 시기에 하잖아요.”
 
  ― 한자를 가르치는 게 아니군요.
 
  “잘사는 게 뭘까, 어떻게 해야 잘살 수 있을까 같은 질문을 아이들이 자유롭게 떠들 수 있게 하는 게 목표예요. 그런데 이걸 한국어로 가르친다고 하면 학부모들이 큰 관심을 가질까요? 아직도 입시 준비 압박이 큰데요. 그래서 이걸 영어로 가르치자는 겁니다.”
 
 
  구민에게 무료로 영어 교육
 
  ― 그래서 ‘국제 서당’이군요.
 
  “아이들이 영어를 구사하게 되면 삶이 달라져요. 예를 들면 옷을 만드는 친구들도 영어를 좀 할 수 있다면 유럽 디자이너들처럼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립니다. 아이들에게 우리가 만든 인문학 교재로 삶의 성찰도 하고, 영어도 배우게 하는 겁니다.”
 
  ― 수업료를 받나요.
 
  “형편이 허락되는 데까지 교육은 무료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육이 결국 사다리 아닙니까. 동네에 있는 작은 도서관들에서 시작해보려 합니다. 국제 서당을 한다고 하니까 지방에서도 관심을 갖고 연락을 주세요. ‘방학 때도 열면 우리 아이들도 보내겠다.’ 이 아이들이 국제 서당을 다니면서 종로구에 있는 대사관이나 갤러리 같은 다양한 곳들을 탐방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려면 장기적으로는 센터를 만들어야 할 것 같고요.”
 
  ―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이 되겠네요. 종로구의 아이들도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과 교류할 수도 있고요.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 원하는 걸 깨닫고, 남이랑 비교 안 하고 살게 되면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삶이 편해지겠습니까. 기왕이면 거기에 더해 영어까지 능숙해지면 삶의 무대가 한국을 넘어서 세계로 넓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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