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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주희의 라운지

귀순한 전 북한요원 차성근

“지금의 국정원은 구시대 유물, 한국형 모사드 절실하다”

글 :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everhop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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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년 귀순한 대남 공작원 차성근 박사
⊙ 김정일정치군사대학 졸업 후 잠비아에서 노동당 공작원 활동 중 귀순
⊙ “한국에서 장애인 특집 방송 보고 남한에 마음의 문 열어”
⊙ “제2연평해전을 우발적 충돌로 조작, 남한 사회에 깊이 실망했다”
⊙ “북핵 대응은 최악의 실패한 정책, 귀순 후 오극렬 부장의 북핵 언급 진술했지만 입 다물고 있으라 했다”
⊙ “휴민트로 북한 사회에 구멍 뚫어 자유의 물 넣어야”

車成根
1967년생. 김일성정치군사대학 졸업 / 대외정보조사부(현 35호실) 배치되어 러시아, 잠비아에서 태권도 사범으로 위장. 대남 공작요원 활동 / 1996년 귀순. 국방부에서 근무 후 퇴직 / 경기대 북한학 박사
1996년 1월 16일 김포공항으로 입국한 차성근 전 노동당 작전부 공작원. 현재 모습은 사진으로 담지 않았다. 사진=국가기록원
  “김포공항에서 차로 이동하는데 도로가 꽉 막히더군요. 국가정보원 직원이 옆에서 알려줬어요. ‘이게 다 한국에서 만든 차들입니다.’ 속으로 생각했어요. ‘그래? 저 차가 1년이나 굴러가려나?’”
 
  1996년 1월 16일 김포공항 입국장에서 환한 얼굴로 자유 대한민국에 손을 흔들던 스물아홉 살 청년 차성근. 어느덧 55세의 중년이 되어 앉아 있다. 8월 26일 서울에 있는 그의 자택에서 만났다.
 
 
  김정일정치군사대학 졸업
 
96년 1월에 망명한 북한 잠비아 주재 외교관 현성일씨와 부인 최수봉씨, 공작원 차성근씨가 기자회견이 끝난 뒤 회견장을 나서는 모습. 사진=조선DB
  그는 잠비아에서 노동당 작전부 공작원으로 근무하다 현성일, 최수봉 부부와 함께 귀순했다. 현성일씨는 귀순 당시 주(駐)잠비아 북한대사관의 3등 서기관이었다. 평양 출신 엘리트들이 한꺼번에 세 명이나 귀순해 당시 큰 화제가 됐다.
 
  그는 외교부 영접국장을 지낸 차순권 전 주(駐)가봉 북한대사의 장남이다.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을 졸업했다.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은 북한 대남사업요원과 전투원을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곳이다. 1962년 금성정치군사대학으로 설립됐고, 당중앙위 직속 정치학교로 개칭했다. 1992년 1월 김정일의 50회 생일을 맞아 ‘김정일정치군사대학’으로 이름을 바꿨다. 북한에서 유일하게 김정일의 이름을 붙인 학교다. 당 간부 자녀, 대남사업 관련자 자녀, 국가안전보위부 및 보안성 간부 자녀 등 소위 ‘성분’이 좋고 똑똑한 이들이 입학생으로 선발된다.
 
  대학 졸업 후에도 계속 대남 공작 요원 훈련을 받았다. 1992년 노동당 대외정보조사부(현 35호실) 소속으로 러시아에 파견됐다. 태권도 사범으로 위장해 남한 기업인과 선교사를 포섭하는 공작을 했다. 1994년엔 다시 잠비아로 보내졌다. 가족은 북한에 남겨둔 채였다. 역시 태권도 사범으로 위장해 대남 공작 업무를 했다.
 
  주잠비아 북한대사관에 신임 대사가 부임한 후 갈등이 생겼다. 현철해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의 조카인 현성일씨 부부와 함께 한국으로 귀순했다. 대남 공작 요원으로 남한에 대한 교육, 즉 이남화 교육을 받았지만 막상 남한에 와보니 배운 것과 달랐다.
 
  “북한도 승리-58이라고 1958년부터 자동차를 생산했어요. 그런데도 발전이 없었어요. 그러니 한국에서 만든 차도 같을 줄 알았던 겁니다. 와서 살아보니 아니더군요. 20년 넘게 갈 정도로 잘 만드는데 사람들이 오래 안 탑디다.”
 
  ― 대남 공작원 교육받으면서 그런 건 안 배웠나요.
 
  “남한이 10대 경제 강국이라고 아무리 배워도 내가 그걸 누려보지 못했기 때문에 실감하지 못해요. 피서도 가보고, 자가용도 사보고 여러 가지 해봐야 남한 사람들 생활 수준이 대단하구나 깨닫는 겁니다.”
 
  ― 머리로는 알아도 실감을 못 하는군요.
 
  “먹기 싫은 음식이면 버리고, 배달 어플을 켜면 결정장애가 올 정도로 갖가지 음식이 기다리고 있는 걸 목격해야 자본주의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게 됩니다.”
 
  ― 이남화 교육은 어떻게 하나요.
 
  “한국의 정치 시스템이나 생활 습관은 가르쳐주는데 감정적인 건 못 가르쳐주잖아요. 드라마를 보여줍니다. 저때는 〈회전목마〉니 〈아들과 딸〉 〈서울의 달〉이라는 드라마였죠. 〈청춘 행진곡〉이라는 드라마를 보는데 고생만 하던 여주인공이 죽는 걸 보니 가슴이 먹먹하더군요.”
 
 
  선택지 없는 사회
 
  ― 가슴이 먹먹해지는 걸 기대해서 교육자료로 쓴 건 아니지 않나요.
 
  “북한에선 대남 공작원들한테 남한은 세 명 중 한 명이 중앙정보부 정보원이고, 매판 자본가이고, 미국 모방해서 잘사는 거지 절대 스스로 자력갱생하는 게 아니라고 가르쳐요. 드라마는 감동스럽지만, 감상문을 좋게 쓰면 어떻게 될지 뻔히 알잖아요. 남한은 못된 사회라고 쓰죠.”
 
  ― 남한 드라마를 많이 보고 감동을 받아도 행동은 안 바뀌는군요.
 
  “한국인들은 흡수력이 빠르고 실천력이 빠르잖아요. 북한 사람은 안 그래요. 열 번 스무 번 봐도 내 걸로 만들기가 힘들어요. 똑똑한 사람일수록 더합니다.”
 

  ― 왜 그렇죠.
 
  “북한에선 어릴 때부터 쭉 유일적인, 하나의 똑같은 교육만 합니다.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상관없어요. 딱 이대로만 해야 된다 이런 교육을 받으니 다르게 행동하면 다른 사람이 되는 줄 알아요.”
 
  ― 선택지 외에 다른 행동을 해본 적이 없군요.
 
  “탈북자들이 생리적으로 적응 못 하는 이유가 그겁니다. 남한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친구 문제, 집안, 돈 문제, 무슨 보험, 직장 이런 걸 다각적으로 생각해서 결정하잖아요. 그런데 북한에선 하라는 대로만 하고, 정부에서 정해준 몇 가지 중에 고르는 게 답니다.”
 
 
  감동 강요하는 북한
 
  ― 그렇겠네요.
 
  “평양 사람들이 한국 드라마를 접하면 이런 생각을 합니다. 첫째, 적발되면 어떡하지, 둘째 재밌네. 그렇지만 표현해도 안 되고 쫓아가서도 안 되지. 남한이 발전한 건 알아. 그래도 의도적으로 안 따라가려 해요. 셋째, 그래도 사회 계율을 지켜야지. 사회 계율에서 벗어나면 지방으로 내려보내지거든. 지방에 가면 말짱 황이라는 걸 아니까요.”
 
  ― 평양 시민에겐 지방으로 보내지는 게 일종의 공포군요.
 
  “매일 교시 말씀과 당 정책을 학습합니다. 거기에 한 달에 한두 번씩 계속 큼직한 행사가 열려요. 대낮에 10만 명, 100만 명이 모여서 ‘와’ 하는데 사람이 심리적으로 거기에 쫓아가게 되어 있어요. 2002년 월드컵 거리응원보다 더한 행사를 상시적으로 한다고 보면 됩니다.”
 
  ― 누구라도 자연스럽게 세뇌당하겠군요.
 
  “유튜브에 올라오는 북한 영화를 최근에 다시 쭉 봤어요. 이제 다시 보니 자부심을 길러주는 내용이더라고. 특히 노동당에 대해 자부심을 길러줍니다. 나도 눈물이 날 정도더라고. 근데 그게 영화 〈탑건:매버릭〉 같은 자연스러운 감동이 아니야.”
 
  ― 그럼 어떤 감동인가요.
 
  “북한은 모든 영화의 내용이 비슷해요. 어떤 상관이 수령의 충신이야. 이 사람은 아프고, 형편이 어려워도 내 일을 먼저 도와줘요. 누가 아프면 병원 가서 헌혈해주고요. 북한에도 의인들이 있어요. 그 사람들의 좋은 점만 뽑아서 그런 식으로 영화를 만들어요.”
 
  ― 그러고 보니 《로동신문》에도 무슨 미담(美談)이 거의 매일 등장합니다. 내용 구조는 매번 거의 비슷하지만요.
 
  “그렇죠. 그러니 북한 영화를 보면 감동을 안 받을 수 없어요. 수령과 당에 대한 충성을 도덕화, 의리화, 양심화해놨어요. 충성을 안 하면 인간쓰레기보다 더한 놈이라고 교육하는 겁니다. 그러니 교육을 잘 따라간 똑똑한 사람일수록 벗어나기 쉽지 않아요.”
 
 
  ‘냉면이 넘어가나?”
 
리선권. 사진=공동취재단
  ― 어릴 때부터 계속 같은 교육을 받으면 그렇겠네요.
 
  “북한은 인물 잘나고, 공부 잘하고, 집안 좋은 애들은 어릴 때부터 간부를 시킵니다. 못생기고 체구도 작고 운동도 잘 못하고, 집안도 별로고, 공부도 못하는 애는 말썽꾼이라고 불러요. ‘야 너는 숙제도 제대로 안 하고 답도 못 하는 애가 낟알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니?’”
 
  2018년 리선권 조평통 위원장은 옥류관 행사에서 냉면을 먹고 있는 대기업 총수들에게 정색하며 이렇게 말했다.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니까?’
 
  “남한 사람들은 너무 어이가 없겠지만, 북한에선 보통 하는 얘기예요. 어릴 때부터 아이들에게 욕을 하는 데는, 노리는 효과가 있어요. 첫째, 똑똑한 애들이 반대 세력화를 할 수 없어요. 둘째, ‘이렇게 공부 잘하고 똑똑한 사람을 데리고 가는 당, 군, 정부는 너희를 이끌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렇게 각인이 됩니다.”
 
  ― 철저히 적자생존이군요.
 
  “그런데 북한은 남한과 다른 게 인성교육을 많이 합니다. 잘난 애가 잘난 척하면 선생이 혼내요. 겸손하고 남을 도울 수 있는 성품을 가지게끔 교육해요. 50세가 지나서 생각을 해보니까 잘난 놈 주위엔 항상 사람이 있거든요. 남한에선 그러면 국회의원 되고, 장관 되는 게 당연하잖아요. 북한에선 그게 아니에요.”
 
  ― 그럼 뭡니까.
 
  “내가 잘났잖아요? 첫째, 내가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겠습니까 다 당의 은덕이죠. 둘째, 공부 못하는 애 숙제 도와주고 놀아주고, 잘난 척 안 해야 해요. 원래 국가 사회주의 도덕이 그거예요. ‘하나는 전체를 위해, 전체는 하나를 위해’ 그게 그거예요. 그래서 북한에 협동을 소재로 한 영화가 그렇게 많아요. 영화 〈심장에 남는 사람〉 〈보증〉 둘 다 그런 내용이에요.”
 
  ― 인성교육을 철저히 시킨다는 게 흥미롭네요.
 
  “그렇게 교육하면 모반을 할 수 없어요. 1968년 김창봉(1919~1968년) 사건이 유명하지요. 김창봉이 너무 똑똑했어요. 소련에 유학도 다녀왔고 말도 잘했어요. 김창봉이 김일성 최고사령관보다 자기가 전략·전술에서 우수하다 이렇게 나온 거예요. 군벌관료주의로 지목받고 숙청당했어요. 자만한 거죠.”
 
  ― 능력은 뛰어났지만 인성 때문에 숙청당했다는 얘기군요.
 
  “오진우와 현철해는 절대 나서지 않았어요. 그래서 오래간 겁니다. 북한에서 관료주의, 세도주의 하다 걸리면 미국에서 인종주의 걸리는 것과 거의 같아요. 그래서 능력 있고 겸손한 사람이 남한보다 북한에 더 많은 거예요.”
 
 
  장애인 방송 보고 마음 열어
 
  ― 남한에서 목격한 좋은 점은 없나요.
 
  “여기 와서 마음을 탁 연 계기가 있어요. 들어와서 국정원 논현동 안가 2층에 있었을 때예요. TV를 트니까 장애인을 위한 음악회를 하는 겁니다. 관객석에도 장애인이 많은데, 무대에도 장애인들이 올라가 있어요. 이런 음악회를 1시간 넘게 하는 겁니다. 깜짝 놀랐어요. 북한엔 장애인이라는 말도 없거든요. 병신이라고 하지.”
 
  ― 요새는 장애인이라는 말을 쓰는 것 같던데요.
 
  “김정은 집권하고 보이는 것 때문에 쓰는데, 북한 내부는 아니에요. 제가 평양 살 때 어느 집에 놀러 갔는데 안방에(팔을 옆으로 크게 벌리며) 이만한 애가 앉아 있는 겁니다. 이만하게 부어서 눈도 조그마한 여자아이였어요. 다운증후군이라는 말도 모를 때니 깜짝 놀랐어요. 어린 마음에 ‘안됐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야 되는데 ‘뭐지 이게?’ 하고 나온 거예요.”
 
  ― 그 아이는 어떻게 됐나요.
 
  “그 가족이 지방으로 내려갔어요. 아이를 지방으로 보내라고 6개월 정도 기한을 줬어요. 그 아버지가 외교관이었는데도 딸만 내려보내지 않고 가족이 전부 지방으로 같이 간 겁니다. ‘혁명의 수도에는 불량배도 없고 병신도 없어야 한다’는 원칙 때문이지요.”
 
  ― 사회 차원에서 도태시켜버리는군요.
 
  “제가 중학교 4학년 때 차출이 돼서, 5학년 1학기 마치고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이하 김정일대학)에 들어갔어요. 1967년생이면 보통 86학번이거든요. 저는 83년에 들어간 겁니다. 김정일대학 졸업해보니 공부 잘했던 외교관 가정 친구들은 종합대학 2학년에 다니고 있어요. 공부 못한 애들은 공장에 집단 배치돼 있고요.”
 
  ― 진로 지도가 단순하고 확실하군요.
 
  “대학 다니는 애들, 공장 다니는 애들을 만났는데 저한테 존대를 하는 겁니다. ‘너 어떻게 지냈어?’ ‘잘 지냈습니다’ 이게 당연시되는 거예요. 북한에서 김정일대학에 갔다는 건 여기로 치면 하버드대학 가는 거 이상이거든요.”
 
 
  조작된 제2연평해전
 
2003년 6월 24일 오전 평택 해군 제2함대 사령부 충무동산에 세워진 6·29 서해교전 전적비 제막식에서 전사자 유가족들이 전사자들의 흉상 부조를 어루만지며 오열하고 있다. 사진=조선DB
  그는 귀순 이듬해인 1997년에 국방부에 들어갔다. 2017년 퇴임할 때까지 20년간 북한의 정치·경제·사회와 대남 정책을 분석했다. 한국 생활에 한참 적응하며 일에 매진했던 2002년 6월 29일, 잊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제2연평해전.
 
  제2연평해전은 2002년 6월 29일 북한 경비정들이 서해의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와 우리 해군의 고속정을 선제공격하며 시작됐다. 북한 해군 서해함대 8전대 7편대 소속 경비정 등산곶 684호정이 85mm 전차포로 선제 포격해왔다. 이 전투로 우리 해군 6명이 전사, 18명이 부상당했고 참수리급 고속정 357호가 침몰했다. 북한 해군은 약 30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1척의 함정이 반파되었다. 이날은 2002 FIFA 월드컵 대한민국 대 터키의 3위 결정전이 열린 날이다. 그의 설명이 이어졌다.
 
  “여기가 이런 곳이구나… 너무 실망했어요. 그때 저는 국방부 전략정보과에 있었어요. 북한 함정이 3개월 동안 두 척씩 나와서 연습을 하는 겁니다. 한미연합사에서는 이상하다고, 도발 준비 하는 거 아니냐고 했어요.”
 
  ― 그때가 2000년 김대중-김정일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에 평화가 왔다고 떠들 때였죠.
 
  “월드컵 시기이기도 하고 남북 간에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등 교류가 있을 때예요. 김대중 청와대에 들어가 ‘북한이 도발할 겁니다’라고 얘기하면 자리보전하기 힘든 시기가 아니었을까. 저는 장군이 아니었으니까 모르지만요. 문건을 쓸 때도 문구 자체를 순화한 용어로 쓰게 했어요.”
 
 
  보복이 체질화된 북한
 
  ― 그런 와중에 연평해전이 일어난 거군요.
 
  “우리 과는 담당들이 각기 나뉘어 있었어요. 북한의 정치 담당, 경제 담당, 대남 정책 담당 하는 식으로요. 투스타, 스리스타 장군들이 우리를 오라고 했어요. 궁금한 건 하나예요. 공격이 의도적이냐, 우발적이냐.”
 
  ― 뭐라 답했나요.
 
  “무조건 의도적이다. 첫째, 북한 지휘체계 자체가 서해함대 사령관이 결정하고 전대장이 결정하고 하는 게 불가능하다. 전방의 총알 한 방까지 일사불란하게 통제된다. 함선을 가라앉힐 정도로 한두 시간 교전을 한다? 말도 안 되는 얘기다.”
 
  ― 계획적이었단 거군요.
 
  “둘째, 북한은 보복이 체질화되어 있다. 김정일이 제1연평해전에서 진 걸 보복해야 된다고 했다는 첩보가 수십 건 있었어요. 해군사령관에게 무조건 참패를 만회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세 번째, 월드컵 마지막 날이었다. 북한은 항상 성동격서(聲東擊西)다. 북한은 대한민국이 월드컵으로 위상이 높아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가 북한은 서해를 분쟁지역화하려고 한다. 월드컵 시기, 국제적 이목이 모여 있으니까 얼마나 좋은 기회냐.”
 
  ― 장군들이 납득하던가요.
 
  “반문하더군요. ‘김대중 대통령이 2년 전에 가서 정상회담을 했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겠나.’ 북한은 그 정상회담을 ‘남한 대통령이 노구(老軀)를 끌고 와서 김정일 장군에게 이제까지 잘못했다며 많은 조공을 바쳤다’고 평가했어요. 실제 북한 강연자료에 쓰여 있어요. 그 얘기를 하면서 이게 북한의 생각이라고 알려줬어요.”
 
  ― 받아들이던가요.
 
  “북한이 지금 경제난 아니냐는 겁니다. 사회주의 나라가 다 거꾸러지고 뒷배가 없는데 자칫 전쟁 날 수도 있는 도발을 어떻게 하냐.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런 배은망덕한 짓을 설마 하겠냐고 하더군요.”
 
  ― 핵무기를 만드는데 함포를 못 쏘나요. 당황스럽네요.
 
  “마지막으로 저에게 다시 묻더군요. ‘그러면 북한이 어떻게 도발하나?’ 답했어요. ‘전대 전체가 도발하는 게 아니다. 북한은 해군사령관, 서해함대사령관, 전대장이 연결된다. 전대는 함선 두 척의 함장하고만 딱 연결된다. 작전 문건도 수기로 내린다. 무전도 안 한다. 그러니 아예 감지가 안 된다. 대남 침투 자체를 그렇게 한다.’”
 
  ― 그랬더니요?
 
  “수기로 쓰인 작전 문건을 가지고 오라는 겁니다. 제가 그랬어요. ‘그건 국정원이 가져와야지요’ 그러니, 주장하지 말라는 겁니다. 물어봐놓고 주장하지 말라는 건 뭡니까.”
 
  사실 군은 이때 이미 증거를 갖고 있었다. 제2연평해전을 일으킨 북한 경비정 684호가 교전 이틀 전에 상급부대인 8전대에 보고한 ‘SI(특수정보·Special Intelligence)’ 15자였다. 대북(對北) 감시부대가 수집해 국방부 장관, 국방정보본부, 합참작전본부, 해군작전사령부 등 관련 부대에 통보한 내용이다. ‘발포 명령만 내리면 바로 발포하겠다.’ 《월간조선》이 뒤늦게 밝혀내 2012년 7월호에 단독 보도했다. 군은 이때까지도 이 사실을 숨겼다. 북한의 계획적 도발이었던 제2연평해전은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 서울 용산에서 우발적 교전으로 변모했다.
 
 
  정의나 정직 실종
 
  “우리 의견은 반영 안 하고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로 만들었어요. 다음 날 TV에 자막이 지나가더군요. ‘서해에서 북한 함정 우발적 충돌 우리 함선 하나 피격됨.’ 지금 와서는, 그때 뒤집어놨어야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2015년에 〈연평해전〉이라는 영화가 나왔어요. 극장에서 보는데 눈물이 줄줄 나와요. 해군 수병들이 총탄에 맞아 죽어가는데, 위에선 우발적이냐 의도적이냐 우왕좌왕하다 결국엔 조작한 겁니다.”
 
  ― 비극입니다.
 
  “미안하고 창피했어요. 우발적 사고라고, 사상자들 대우도 제대로 못 받았어요. 유가족 중의 한 가족은 한국에서 못 살겠다고 미국으로 떠났잖아요. 그걸 보면서 생각했어요. 여기는 정의나 정직이 안 통하는구나.”
 
  ― 북한은 다르다는 겁니까.
 
  “북한은 이런 건 있어요. 제가 공작원 할 때 지도원이 허튼소리하고 제 말을 반영하지 않고 일을 진행해요. 나중에 그 일 때문에 저에게 추궁이 내려와요. 그러면 저는 말합니다. ‘제가 한 게 아닙니다.’ 근거로 회의록이나 지도원에게 제출한 보고서를 제출합니다. 그러면 확인 후 지도원을 바로 날려버려요.”
 
  ― 신상필벌(信賞必罰)을 확실히 한다는 얘기군요.
 
  “제가 남한에 와서 제2연평해전 다음으로 실망한 게 바로 인사(人事) 관리입니다. 2년에 한 번씩 과장이 바뀌어요. 야전에 있던 대령들이 주로 내려와요. 대위나 소령, 중령 때라도 정보본부에서 근무해본 것도 아니고 대령이 와서 1년 만에 정책보고서를 어떻게 씁니까. 그런데 이분들이 저에 대한 인사 평가를 해요.”
 
  ― 북한은 인사 방식이 다른가요.
 
  “북한은 인사 파트가 따로 있는데 인사 업무만 담당하고 개입을 못 해요. 조직 안에서 세포비서가 매주 각 사람에 대해 정리를 합니다. 상호 비판을 하니까 이 사람이 이번 주는 업무를 등한시했는지, 동료를 무시했는지 정리가 돼요. 그 사람의 평정서(생활기록부)로 축적됩니다.”
 
  ― 그럼 누군가를 알고 싶으면 그 평정서를 열어보면 되겠네요.
 
  “조직에서 평정서를 정리해서 주면 인사 파트는 그걸 연도별로 정리해요. 그걸 열어보면 인성부터 업무 능력까지 다 알 수 있어요. 북한에서 제일 좋은 평가는 ‘눈치 안 보고 누가 뭐라 해도 자기 길 꿋꿋이 가는 사람’입니다. ‘이번 주에 평가가 안 좋았는데 한 달 지나서 보니 사실은 다른 사람을 도와주려고 헌신한 거구나’, 그러면 이게 기록이 돼요.”
 
  ― 독재 국가 하부 조직 나름의 합리성이군요.
 
  “그러니 인사를 할 때 당위원회에서 후보를 정해서 문건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열몇 명이 같이 문건을 살펴봐요. 그러면 누가 적임자인지 딱 나와요. 보위부나 보안부도 검토를 하고요. 후보를 올리면 상급 당에서 결정해요. 남한처럼 차례대로 기수별로 앉히는 식이 아니에요. 철저히 능력을 보니까 3년 아래도 임명됩니다.”
 
  ― 실수했다고 지방으로 내쫓기기도 하잖아요.
 
  “북한은 실수를 하면, 반성하고 더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요구합니다. 혁명화 내려갔다가 돌아와서 더 승진하는 이유가 그겁니다. 근데 거기서 주저앉으면 완전히 주저앉게 돼요.”
 
 
  장군에게 쓴소리 해 눈총
 
  ― 2년 만에 바뀌는 과장이 인사 평점을 혼자 다 매기는 방식이 이해 안 되긴 했겠네요.
 
  “자기 기분대로 인사 평가를 하고, 좀 양반이라는 사람은 양식을 나눠줘요. 본인 인사 평가를 스스로 연필로 써서 주면 자기가 그 위에 다시 쓰겠다고요.”
 
  ― 사이가 안 좋으면 그게 영향을 미칠 수 있겠네요.
 
  “군단장 마치고 본부장으로 온 장군이 있었어요. 북한 시스템에 대해 보고를 몇 번 했는데 계속 같은 결론을 내는 겁니다. ‘차 서기관, 내가 한 얘기가 맞나?’ 솔직하게 얘길 했어요. ‘이 말씀은 맞는데 좀 그렇지 않은 내용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대령들이 저를 힐끗힐끗 봐요.”
 

  ― 눈치를 주는 건가요.
 
  “나중에 그랬다더군요. ‘살다 살다 군인도 아닌 애가 본부장한테 잘못을 지적하는 건 처음 봤다, 특이한 사람이다.’”
 
  ― 북한이 헌신적이고 굽히지 않는 사람을 중용한다 해도, 김씨 3대에 대한 비판은 어쨌든 못 하잖아요. 아무리 합리적으로 인사를 해도 기본 토대가 비정상 국가 아닙니까.
 
  “그렇죠. 북한에서 올바르다는 건 수령과 당의 방침대로 하는 거예요. 무엇이 옳은가 판단할 때 교시 말씀, 그리고 현 정세와 주변 상황을 보고 판단하라는 거예요. 당의 방침을 신념화, 양심화, 도덕화를 해버렸다고요. 그게 수령제일주의예요. 그게 사회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겁니다.”
 
  그는 공작원 훈련 시절 겪은 사건을 털어놨다.
 
 
  화교를 혼낸 신의주 사건
 
  “김정일대학 출신들은 다른 공작원들과 좀 다른 대우를 받았어요. 그들은 영웅 칭호 받아야 받는 대우를 받았어요. 스무 살 되자마자 20일 만에 노동당에 화선 입당을 했어요. 다른 사람은 1년 동안 후보 기간을 보내야 해요.”
 
  ― 그만큼 훈련이 힘들겠군요.
 
  “훈련을 하면서 우리끼리 담력 훈련을 한 번 하자고 했어요. 신의주에 화교들이 와서 북한 여성들을 노리개 삼아 농락하고, 도박을 하면서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겁니다. 우리가 징벌을 하자.”
 
  ― 홍길동처럼요?
 
  “네. 다섯 명이 내려갔어요. 조장은 김정일대학 12기예요. 우리는 21기고. 그 사람은 남한에도 몇 번 왔다 갔다 해서 영웅 칭호를 받았어요. 대남 공작 부문에 있는 애들은 생사를 걸고 하는 일이기 때문에 똑똑하고 헌신적이지 않으면 안 돼요. 생판 낯선 사회에서 적응해야 하니까 적응 잘하고 현명해야 해요. 조장이 그런 사람이었어요.”
 
  ― 도박장에 갔나요.
 
  “한 명이 정찰을 돌아서 도박장을 알아냈죠. 제가 보위부 과장, 다른 친구가 지도원을 연기하기로 했어요. 나머지 사람은 망봐주고요. 근데 작전하기로 한 날 전날에 조사부에서 전화가 온 거예요. ‘하지 마라. 잘못되면 이게 조·중(朝·中) 사이에 외교 문제가 될 수 있다.’ 다들 모여 앉았어요.”
 
  ― 회의를 했겠네요.
 
  “지도원이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기에 제가 그랬어요. ‘감쪽같이 하자. 우리만 입 다물면 되지 않나.’ 스물두세 살 때였으니까요. 다른 사람들도 합시다, 합시다 그래요. 지도원도 그러면 하겠다고 했어요. 도박 판돈을 압수하면 다 같이 혁명자금으로 쓰자고 했어요.”
 
  ― 결국 감행했군요.
 
  “우리가 북한 사람 치고 키가 컸어요. 화교들이 벌벌 떨더라고요. 둘이 들어가서 엎드리라고 하고 가짜로 사진도 찍었어요. ‘오늘은 우리가 조직적으로 문제는 안 삼는다. 다신 이런 판 벌이면 용서 안 한다’ 하고는 판돈을 싹 걷어서 나왔어요. 그런데 문제는 다른 데서 터졌어요.”
 
  ― 어디서 터졌나요.
 
  “조장이 돈을 더 받아내려고 한 거예요. 우리한테 얘기 안 하고 넷 중의 한 친구를 데리고 돈 털린 화교를 다시 만났어요. ‘우리가 눈 감아주기엔 금액이 너무 적다. 더 가지고 와라.’ 그런데 그 화교가 평북도 보위부와 연결이 돼 있던 거예요. 그래서 보위부에 얘길 한 겁니다.”
 
 
  朝中 분쟁으로 확대 위기
 
  ― 난리가 났겠네요.
 
  “돈 받으러 나갔다 두 명이 다 검거됐어요. 나머지 사람은 그 상황을 몰랐고요. 조사하는데 소속이 대외조사부라고 하니 보위부에서 깜짝 놀라는 거예요. 그때 김정일이 국가안전보위부장을 겸하고 있었어요. 보위부에서 보고서를 올리면 김정일에게 직보가 되는 겁니다.”
 
  ― 난리가 났네요.
 
  “노동당 조직지도부로 보고서가 올라갔어요. 서기실 부부장이 이 문서를 보니까 대단히 엄중한 거예요. ‘조사부 공작원들이 신의주에서 화교들 등쳐서 조·중 문제가 발생, 외교적 문제로 비화하게 됐다.’”
 
  ― 엄청난 내용이군요.
 
  “그때 우리 부부장이 허명욱이었어요. 최은희·신상옥을 납치한 사람이에요. 납치하고 김정일이 너무나 기분이 좋아서 자기가 차던 롤렉스 금시계 풀어서 주고, 자기가 타던 차도 가져가라고 했어요. ‘허 부부장은 이제 과장 겸 부부장이다’, 서기실에서는 김정일이 허 부부장을 신임한다는 걸 알고 있었죠. 그래서 얘기해준 겁니다.”
 
  ―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우리가 알아서 잘 처리할 테니 문서는 올리지 마라’ 그래서 안 올라갔어요. 저희는 즉시 소환이 됐고 비판 토론이 열렸어요. 지도원이 이러는 거예요. ‘저는 조직의 지시를 받고 하지 말자고 했는데 차 선생을 포함한 공작원들이 해야 된다고 우겨서 자의적으로 저지른 거다.’”
 
  ― 죄를 덮어 씌웠네요.
 
  “제 차례가 됐어요. 제 비판은 하나도 안 하고 대뜸 말했어요.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지도원 동지가 처음엔 그렇게 얘기해서 제가 하자고 했습니다. 근데 그걸 당신이 승인하지 않았습니까. 현장 나와서 망까지 봐주지 않았습니까.’ 부부장이 갑자기 소리를 질러요. ‘종파 새끼들이구만! 어디 당을 공격해.’”
 
  ― 그래서 벌을 받았나요.
 
  “초대소에서 2개월 동안 아무것도 못 하고 비판서만 썼어요. 젖 먹을 때부터 학생 때 잘못한 것까지 계속 썼어요. 그런데 그 와중에 제가 일을 또 저지른 겁니다. 몰래 초대소를 빠져나가 아버지를 만나러 갔어요.”
 
 
  북한 시스템에 모순 느껴
 
  ― 구해달라고요?
 
  “조장이 제대당한 걸 알고 아버지에게 합영회사 취직 자리를 부탁하려고요. 아버지가 그때 외무성 대표단 영접지도국장을 했거든요. 그거 하면서 북한의 합영회사라는 합영회사는 다 알고 있었어요. 영접지도국장 사인이 없으면 외국 대표단이 북조선에 못 들어왔거든.”
 
  ― 뇌물 유혹도 많았겠네요.
 
  “아버지는 집에 사치품은 일절 들이질 않았어요. 대신 술, 고기, 흰쌀은 늘 채워져 있었어요. 담배도 합영회사에서 꽉꽉 채워놔요. 저건 뇌물 아니냐고 했더니 아니래요. ‘내가 혼자 먹냐, 다 같이 먹고 나눠주잖아. 이건 뇌물 아니다.’ 부친한테 조장 일자리를 부탁해서 결국 좋은 자리에 취직됐어요.”
 
  ― 취직시켜줬네요.
 
  “결국 신의주 사건을 두고 동료들이랑 같이 반성하며 잘못했다고 빌었어요. 그 와중에 몰래 나갔다 온 게 걸린 거예요. ‘조장을 취직시켜주는 게 네 개별적으로는 맞는 얘기지만 당 조직의 원칙이나 규율을 위반한 사람을 위해주는 건 반항하는 거다.’ 이 사건을 겪으며 북한 시스템에 모순이 있다는 걸 느꼈어요.”
 
  그가 어릴 때 북한에서 겪은 일을 들려준 이유는 한 가지였다. 북한 사회를 똑바로 이해시키고 싶은 것.
 
  “보수, 진보 다 문제인데, 특히 민주당 정권의 대북 정책은 참 문제가 많았습니다. 첫째, 북한을 바라보는 관점이 아예 틀렸고, 정책에 대한 이해력이 없었어요. 북한은 수령 중심으로 단결하는 사회예요. 사회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가정이에요. 수령이 아버지이고 노동당은 어머니예요.”
 
  ― 수령제일주의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군요.
 
  “둘째, 북한은 남한과 미국을 쳐서 없애야 될 대상으로 간주하고 있어요. 노동당 규약 바뀌었다고 언론에서 떠들썩했는데 내용은 하나도 변한 거 없어요. 셋째, 개인의 인권을 인정 안 하고 전체주의 인권만 인정하는 사회예요. 그런 전제하에서 움직여야죠.”
 
 
  ‘백두산의 새 전설’
 
2018년 9월 20일 백두산 장군봉에 오른 문재인 대통령 부부와 김정은 내외. 북한은 백두산을 김일성의 항일빨치산 활동의 주무대이면서 김정일이 태어난 곳으로 선전하고 있다. 사진=조선DB
  ― 이해 없이 무작정 정상 회담만 해봤자라는 거군요.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과 회담을 하며 백두산까지 간 것을 두고 북한은 이렇게 생각해요. ‘배짱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5년짜리 대통령, 역시 우리 수령이 위대하구나.’ 최악은 이렇게 생각한단 겁니다. ‘우리가 똘똘 뭉쳐서 지금까지처럼 가야 한다.’”
 
  ― 그래서 다가서고 퍼줘도 ‘삶은 소대가리’ 소리를 듣는 거군요.
 
  “문재인 대통령이 백두산에 갔을 때 리설주가 이런 말을 해요. ‘전설 많은 백두산에 새 전설이 생겼다.’ 이게 무슨 뜻인가 하면요, 남한 대통령은 순수하게 백두산을 찾았다 해도, 북한 측은 혁명 전통이 시작된 백두산에 와서 백두산 전통을 인정했다고 할 겁니다. 요새 대북 휴민트(Humint·인간정보)를 안 하니까 강연자료를 안 가져오는데 안 봐도 뻔해요. 남조선 괴뢰가 백두산 전통을 인정했다고 할 겁니다.”
 
  ― 남한에서 와서 김정은 장군님한테 엎드렸으니까 또 다른 전설이 생긴 거란 뜻이죠?
 
  “그렇죠. 민간 교류는 좋아요. 교류를 반대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출연 가수나 곡목을 고를 때도 좀 생각을 해야 해요. 2018년에 한국 가수들이 평양에서 공연했을 때 윤도현밴드가 ‘1178’이란 노래를 불렀어요.”
 
  ‘1178’은 한반도 최북단에서 최남단까지의 거리(1178km)를 뜻한다. 가사는 이렇다. ‘처음에 우리는 하나였어 너와 내가 잡은 손 그 누군가 갈라놓았어.’ 윤도현은 평양에서 이 노래를 부르기 전 남북한 관계를 생각하며 가사를 지었다고 설명했다. 차성근 박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건 딱 북한이 좋아하는 운동권적 사고의 가사입니다. 특히 남한에서는 예술하는 사람은 정치에 함부로 끼어들면 안 됩니다. 상황이 복잡해요. 차라리 평양에선 ‘가을 우체국 앞에서’ ‘너를 보내고’ 같은 사랑 노래를 부르는 편이 나아요.”
 
  윤도현씨가 그런 계산까지 했을진 의문이지만, 북한 입장에선 윤도현밴드의 노래를 들으며 남한의 예술인이 와서 위대한 지도자 김정은에게 아부를 떤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휴민트 강화해야
 
  차 박사는 북한을 자유민주주의체제로 변하게 하려면, 무엇보다 스스로 변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나서 논의한다고 대북 정책 잘하는 게 아니에요. 그건 그대로 하되 북한 사회에 자꾸 구멍을 파서 자유의 물을 넣으라고요. 북한을 스스로 변하게 하려면 거기에 자유 의지 가진 사람들이 점점이 확산되고 세력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그때 사회주의 국가들 무너졌듯이 무너질 거예요.”
 
  ― 구멍을 어떻게 팝니까.
 
  “휴민트하라고요. 해외에 나와 있는 사람 포섭하고 들여보내고, 그걸 장기간 하다 보면 어느새 북한말로 ‘은을 내는’ 시기가 안 오겠어요? 효과가 나온다고요. 그건 안 하고 대통령이 선물, 약속 잔뜩 싸들고 가서 화해협력 같은 소리 했잖아요. 근데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했어요. 얼마나 핫바지로 봤으면요.”
 
  ― 국정원이 휴민트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이네요.
 
  “박정희 대통령 때 만들어진 게 중앙정보부잖아요. 국내, 국외 정보를 한 사람이 틀어쥐고 조종할 수 있어요. 이게 지금까지 바뀌지 않은 겁니다. 정치가들이 한심해요. 북한이 독재 사회라지만 북한도 정보조직은 국내, 국외 다 갈라져 있어요. 국내는 국가안전보위부가, 해외는 정찰총국이 담당합니다.”
 
  세계 주요 국가들은 국내 정보 수집과 해외 정보 수집 기관을 분리해놨다. 영국도 국내 안보는 MI5가, 해외는 MI6로 담당기관을 나눴다. 미국의 경우 해외는 CIA, 국내는 FBI다. 러시아는 국내는 FSB, 해외는 SVR이다. 이스라엘도 국내는 신베트가, 해외는 모사드가 맡고 있다.
 
  ― 한국은 1960년대에 만들어진 정보 조직을 지금도 고수하고 있군요.
 
  “국정원 안에 국내 파트, 해외 파트, 북한 파트가 같이 있기 때문에 국정원장이 조종을 할 수 있어요. 갈라져 있으면 각기 성과를 내야 하니까 조종이 안 되죠. 그 사이의 조정은 미국의 국가정보국(DNI)처럼 청와대 정도에서 컨트롤타워 하나 만들면 되는 겁니다. 거기는 정보 수집이 아니라 컨트롤만 하는 거예요. 정보 독점과 전횡을 막을 수 있어요.”
 
 
  실패한 북핵 정책
 
  ― 그렇게 안 하니 정보 수집에서 뒤처지고 문제가 생기겠네요.
 
  “저는 핵 문제를 가장 큰 실패로 봐요. 2002년도 2차 북핵위기가 올 때부터 제가 본격적으로 개입을 했어요. 근데 저는 오극렬 부장한테 분명 들었거든요. 전병호가 김정일한테 ‘장군님 이렇게 핵무기 조립했습니다’고 하니 김정일이 너무 좋아했다면서 나한테 직접 말한 적이 있어요. 그 얘기를 남한 와서 했더니 국정원에서 입 다물고 있으라는 거예요.”
 
  ― 그랬군요.
 
  “그런데 국방부에 들어와서 보니까 계속 북핵을 조악한 수준, 써먹을 수 없는 수준이라고 평가절하하는 거예요. 그러다 지금까지 온 겁니다. 이제 와서는 대응체계로 가야 되지 않냐고 해요.”
 
  ― 문제가 많네요.
 
  “왜 영변이나 핵 시설이나 핵과학자들 주변에 간첩들을 못 들이냐고요. 북핵을 전반적으로 알 수 있는 고급 정보가 없어요. 북핵 전담 TF를 따로 만들어서, 이 조직은 정권이 바뀌어도 관계없이 대북 공작을 하게 해야 해요. 모사드는 중동의 핵을 막으려고 물리적인 공작을 얼마나 합니까. 과학자도 죽이고 시설 파괴도 하잖아요.”
 
  ― 윤석열 정권에 제언을 한다면요.
 
  “북한에 대한 진단을 똑바로 해야 합니다. 지금은 북한을 변화시키는 게 우리의 목표입니다. 북한은 가만 놔두면 변화는커녕 의리화, 도덕화, 신념화되고 똘똘 뭉칩니다. 민주당 정권들처럼 퍼주면 더 심해질 거고요.”
 
  ―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말이 같잖아요. 미국이 위성으로 5cm 단위로 북한을 들여다본다지만, 우리처럼 휴민트를 할 순 없습니다. 정보를 갖고 있으면 미국을 설득하고 미국보다 우위에 설 수 있어요. 명심해야 할 건 김정은 집권 후 북한은 더 단단해졌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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