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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민식 국가보훈처장

“(광복회 감사는) 적폐 청산이 아니라 나라의 정상화”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ironhee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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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報勳의 역사를 통해 국가 正體性 확립에 기여하겠다”
⊙ “윤석열 대통령, ‘참전국 방문 시 일정이 아무리 바쁘더라도 참전용사를 초청, 감사 표하는 행사 갖겠다’고 해”
⊙ “자유 부정하는, 김일성 정권 만들기 위한 독립운동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 “보훈처장으로서 李承晩 대통령에 대한 메시지를 내기 위해 이승만 추도식 참석”

박민식
1965년생.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외무고시(제22회)·사법시험(제35회) 합격 / 외무부 국제경제국 사무관, 서울·창원·여주 지방검찰청 검사,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수석검사, 국회의원(제18·19대), 최동원기념사업회 이사장 역임. 現 국가보훈처장
사진=보훈처
  월남에 갔던 아버지가 돌아왔다. 군인이던 아버지는 집에 머무는 날이 그리 많지 않았다. 가끔 집에 왔다가 금방 나가곤 했다. 이번에는 싸늘한 시신이 되어 돌아왔다. 전사(戰死)! 하지만 그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 장례식 전인지 후인지는 기억에 없지만, 아버지의 군복을 태우며 굿을 했던 기억만은 강하게 남아 있다. 그 자리에는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왔었다. 경남 거창의 작은 마을에서 육군 장교였던 아버지는 가장 잘나가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꼭 50년 후, 그때 일곱 살이던 ‘군인의 아들’은 참전용사 등 국가유공자들을 선양(宣揚)하고 그들과 그 유가족, 제대군인들의 복지를 챙기는 책임자가 됐다. 박민식(朴敏植·57) 국가보훈처장 얘기다. 박 처장은 취임하자마자 화제들을 많이 만들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김원웅(金元雄) 전 회장 시절 광복회 비리에 대한 감사(監査) 결과를 직접 발표했다. 이승만(李承晩) 초대 대통령의 57주기 추모식에 참석해 추도사를 했다. 백선엽(白善燁) 장군 2주기 행사에도 참석했다. 탈북(脫北) 국군포로 이규일씨의 빈소(殯所)도 찾았다. 그의 이런 행보를 보면서 많은 보수(保守) 인사들은 “정권 교체한 보람을 느낀다”며 박수를 보냈다. 9월 2일 서울 삼각지에 있는 서울지방보훈청에서 박민식 처장을 만났다.
 
 
  先親 박순유 중령
 
박민식 처장의 先親 故박순유 중령.
  ― 선친(先親) 박순유 중령(갑종 69기)은 어떤 분이었습니까.
 
  “주로 첩보부대(HID·현 국군정보사령부)에서 근무하셨다고 합니다. 월남에도 첩보부대장(공작대장)으로 가셨지요. 첩보 수집차 지프를 타고 출동했다가 적의 매복 공격에 돌아가셨지요. 함께 있던 병사들까지 모두 네 명이 전사했는데, 당시로서는 큰 사건이었다고 합니다.”
 
  박 처장은 “내가 보훈처장에 지명된 후, 옛날 아버지의 부하였던 분들이 이렇게 편지를 보내왔다”며 편지를 보여주었다. 월남 참전 고엽제 유공자인 신정부씨의 회고다.
 
  <당시 공작대장 소령 박순유님과는 가까운 사이로 많은 핀잔도 들은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대장님께서는 참 훌륭하시고 멋있는 참 군인이셨습니다. 전쟁 상황인지라 병사들의 안위를 살펴주시고 훌륭한 인격을 소유하신 분이었습니다. 특히 첩보 수집 활동에 능하시고 참 명민하셨습니다. 사적으로는 곰방대 담배를 많이 피우신 걸로 기억이 나는군요.
 
  1972. 06월(날짜 미상) 어느 날 오전 공작대장 고(故) 박순유님, 통신병, 통역병, 운전병 등 4명이 1/4톤 케네디 찝차로 첩보 수집차 출동하는 것을 보았는데, 출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에 재구대대 가는 도로상에서 찝차가 화염에 휩싸였다는 내용이 연대 상황실에 접수, 확인해 보니 우리 공작대장 차량이 이동 중 은신 중인 적의 공격을 받고 화염에 휩싸였던 것입니다. 이 공격으로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습니다. 피해 시신은 적의 저항에 의거, 바로 회수 조치 하지 못하고 시신 보존을 위해 시신 주변을 미군 헬기가 24시간 위협 사격을 가한 후 월남 조력자들에 의해 시신을 회수할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시신을 연대 임시 천막으로 후송시킨 후 고 박순유 대장님과 사병의 시신 부패를 막기 위해 정성을 다해 시신을 닦고 소독을 한 생각이 나며 바로 유해를 고국으로 후송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援護’에서 ‘報勳’으로
 
  ― 보훈대상자로서 우리나라 보훈 행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왔습니까.
 
  “어렸을 때 학교에서 가정환경조사를 하잖아요? 집에 텔레비전 있는 사람, 냉장고 있는 사람 묻는…. 그때는 집에 자동차 있는 사람은 아예 없었고요.”
 
  ― 그때는 그랬었죠.
 
  “선생님이 그렇게 죽 묻다가 ‘원호(援護) 대상자 손 들라’고 하는데, 그때는 뭔가 죄책감 같은 생각, 숨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아버지는 나라의 명령을 받고 전선에 나갔다가 돌아가셨어요. 그럼 누가 미안해해야 하나요? 국가가 우리 가족에게, 우리 어머니에게 미안해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그 반대로 내가, 우리 가족이 부끄러워한다는 게 말이 되나요? 그런 느낌을 들게 하던 것이 원호처(국가보훈처의 전신) 시대의 보훈 행정이고 보훈 문화였어요.”
 

  ― 그러면 안 되는 것이죠.
 
  “‘원호’란 글자 그대로 국가가 도와준다는 의미입니다. 조선 시대 혜민서(惠民署) 같은 기관처럼 말이죠. ‘원호’라는 개념 아래서는 도움을 주는 국가가 채권자, 갑(甲)이 되고, 원호대상자는 채무자, 을(乙)이 됩니다.
 
  ‘보훈(報勳)’은 그 반대입니다. 보훈대상자의 희생으로 신세를 진 것은 국가이고, 그 때문에 국가가 끝까지 예우를 해준다는 개념입니다. 보훈대상자가 채권자이자 갑이 되는 것이고, 국가가 채무자, 을이 되는 것이죠. 원호처가 국가보훈처로 이름이 바뀐 것은 이러한 개념 변화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원호처가 국가보훈처로 개칭된 것은 1985년이었다. 박민식 처장은 그에 따른 뒷이야기를 해주었다.
 
  “1983년 아웅산테러 사건 때 순직한 어떤 각료의 부인이 원호처로부터 ‘원호 대상자 귀하’ 운운하는 편지를 받고 청와대에 ‘대통령 모시고 나갔다가 세상을 떠났는데, 나라에서 대우는 못 해줄망정 원호 대상자가 뭐냐? 너무 불쾌하다’고 항의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원호’라는 개념에서 ‘보훈’이라는 개념으로 바뀐 것이죠.”
 
 
  알링턴 雨中 참배
 
박민식 보훈처장은 지난 7월 25일 美 워싱턴 D.C 알링턴국립묘지에서 장대비를 맞으면서 참배했다. 사진=보훈처
  박민식 처장은 지난 7월 27일 미국 워싱턴 D.C ‘추모의 벽’ 준공행사에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해 참석했다. 이 추모의 벽에는 6·25 당시 미군 전사자 3만6634명의 이름과 함께 카투사(KATUSA) 전사자 7174명의 이름도 함께 새겨졌다. 박민식 처장은 “이는 한국을 영원한 우방이자 동맹국으로 바라보는 미국의 의지와 혈맹(血盟)으로 맺어진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식 처장은 알링턴국립묘지도 참배했다. 적지 않은 비가 내렸지만 박 처장은 우산을 쓰지 않고 참배했다. 비가 오면 옆에서 우산을 받쳐주는 우리 풍토에서는 생소한 풍경이었지만, 사실 그것이 ‘글로벌 스탠더드’다. 인터넷을 뒤져보면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이 폭우를 맞으면서 무명용사묘나 국립묘지를 참배하는 사진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비를 맞으며 알링턴국립묘지를 참배하는 사진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그게 보훈 문화죠.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알링턴국립묘지에서는 폭우가 내리더라도 우산을 쓰지 않고 참배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하더군요. 국가를 위해 헌신한 영웅들을 최고로 예우하려는 자세가 느껴졌습니다. 참배를 하면서 우리나라의 보훈 문화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작년에 알링턴국립묘지를 참배하면서 ‘우리가 그들의 희생을 잊는다면,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잊는 것’이라고 한 말이 떠오르더군요.
 
  알링턴의 무명용사의 비는 의장대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24시간 지키고 있습니다. 저는 ‘이곳에 묻힌 분들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나라를 지켰듯이 우리도 이분들을 지킨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같은 나라는 없다’
 
박민식 처장은 지난 7월 24일 美 메릴랜드 프레데릭타운에 있는 한국전 참전용사 故 윌리엄 웨버 대령의 자택을 방문, 부인 애널리 웨버 여사를 위로했다. 사진=보훈처
  ― 지금 우리나라 국립묘지는 보훈처 관할인가요, 국방부 관할인가요.
 
  이 질문을 받자 박민식 처장은 반색을 했다.
 
  “안 그래도 제가 요즘 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국립묘지는 모두 12개입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서울현충원(동작동 국립묘지)과 대전현충원이죠. 그런데 그중 11개는 보훈처 관할인데 서울현충원만 국방부 관할입니다. 아마 국군묘지로 출발했다는 연혁(沿革) 때문이겠지만, 그곳에 군인만 묻힌 게 아니잖아요? 독립운동가, 사회공헌자 등 다양한 분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그분들을 최고로 잘 모시기 위해서는 전문성과 역량을 가진 국가보훈처에 국립묘지관리본부 같은 것을 만들어서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 미국 알링턴국립묘지는 어느 부서 관할인가요.
 
  “국방부 관할입니다. 하지만 미국은 계속 전쟁을 하고 있는 나라이고, 국립묘지에 묻히는 분들도 군인들입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군인뿐 아니라 얼마 전 돌아가신 김자동(金滋東) 선생 같은 독립운동가들도 있고, 민주화운동 관련자들도 있잖아요?”
 
 
  尹 대통령, 보훈 외교에 깊은 관심
 
  ― 미국 워싱턴 D.C ‘추모의 벽’ 준공행사 참석 등 보훈 외교를 강조하고 있더군요. 혹시 젊은 시절 잠시 외교관 생활을 했던 경험 때문인가요.
 
  “사람들이 개인 대(對) 개인으로 처음 만나서 ‘앞으로 잘해나가자’고 하는 것도 물론 가능하겠지만, 그래도 옛날에 군대 생활을 같이하거나 백수 시절을 같이 보내면서 동고동락(同苦同樂)했다고 하면 특별한 관계가 되지 않겠습니까? 나라와 나라의 관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튀르키예(터키)와 같은 참전국(參戰國) 대사를 만나면 긴말이 필요 없어요. 그냥 통하는 거죠. 이번에 미국에 가서 한국전쟁 참전용사와 가족, 전사자·실종자·포로 유가족들을 많이 뵈었습니다. 우리가 위로하고 감사드려야 하는데 오히려 그분들이 자신들을 찾아와 준 우리에게 ‘대한민국 같은 나라는 없다’면서 고마워하시더군요. 보훈 외교는 국가적 도리일 뿐 아니라 다른 나라는 갖지 못한 중요한 외교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 윤석열 대통령도 보훈 외교에 관심이 많다고요.
 
  “보훈처 업무 보고를 하는 자리에서 대통령께서 먼저 ‘앞으로 해외 순방 시 참전국일 경우에는 일정이 아무리 바쁘더라도 참전용사를 초청해 손을 잡고 감사를 표하는 행사를 갖도록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참 고맙게 느껴지더군요.”
 
  ― 내년은 6·25 휴전 70주년, 한미동맹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국무총리가 위원장, 보훈처장이 실무 책임자가 되어 여러 행사를 할 것입니다. 국내외 참전 휴전협정이 체결된 7월 27일은 유엔이 지정한 ‘유엔군 참전의 날’인데, 내년에는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행사와 함께 6·25 때 우리나라를 도와준 22개 참전국 정상급 회의를 개최할 계획입니다.”
 
 
  사회주의자 敍勳 논란
 
  홍문표 국민의힘 국회의원은 8월 30일 “아직까지도 김일성(金日成)의 삼촌 김형권과 외삼촌 강진석의 서훈(敍勳) ‘애국장(4등급)’이 박탈되지 않은 채 버젓이 대한민국 상훈 명단에 고스란히 올라 있다”면서 “김일성의 친족을 정부가 서훈 추서했다는 사실은 목숨 바쳐 나라를 지켜온 애국 순국열사들에 대한 모욕이자,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헌법을 부정하는 반(反)역사적인 일”이라고 지적했다. 홍 의원은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에게 건의문을 전달하며 서훈 박탈을 조속히 추진해줄 것을 촉구했다”고 밝혔다.
 
  사회주의자 서훈 문제는 오랫동안 논란의 대상이었다. 남로당 수괴(首魁) 박헌영(朴憲永)의 아내 주세죽도 애국장을 받았다. 문재인(文在寅)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내내 월북(越北) 후 북한 정권의 국가검열상·노동상 등을 지낸 김원봉(金元鳳)을 서훈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받은 손혜원 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의 아버지는 해방 후 공산당 활동을 했다는 의혹 때문에 논란이 됐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제(日帝) 강점기 시절 독립운동은 3·1 독립선언과 상해 임시정부 헌장, 그리고 매헌(梅軒) 윤봉길(尹奉吉) 선생의 독립 정신에서 보는 바와 같이 국민이 주인인 민주공화국, 자유와 인권, 법치가 존중되는 나라를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 자유와 인권이 무시되는 전체주의 국가를 세우기 위한 독립운동은 결코 아니었다”고 밝혔다. 박민식 보훈처장도 보훈처 업무 보고를 하면서 “보훈의 역사를 통해 국가 정체성(正體性) 확립에 기여하겠다”고 다짐했다.
 
  ― 김일성의 삼촌, 박헌영의 아내 등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을 서훈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반하는 것 아닙니까.
 
  “사회주의자 서훈 문제는 논란이 심한 이슈라고 봅니다. 독립·건국을 목표로 한 것이라면 포용적 차원에서 폭넓게 인정해주자는 것이 정부의 기본 원칙입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께서 광복절 경축사에서 천명하셨다시피 독립의 길도 결국 자유 대한민국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개인의 자유를 부정하는, 예컨대 김일성 정권을 만들기 위한 독립운동이었다라고 하면, 그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겠지요.”
 
  ― 그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할 계획이 있습니까.
 
  “독립운동가서훈공적심사위원회 회의록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한 페이지밖에 안 돼요. 5분이나 걸렸을지…. 이미 다 결정해놓고 회의를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예요. 그런 식으로 심리가 아주 허술하고 미진했던 것이 객관적으로 명백하거나,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볼 때 상당히 일탈(逸脫)한 경우에는 두 번 아니라 세 번, 네 번이라도 공적 검증을 다시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만간에 조치를 취할 겁니다.”
 
  ― 과거 《월간조선》에서는 그런 결정을 누가 내렸는지 알기 위해 여러 차례 공적심사위원들의 명단 공개를 요청했지만, 영 안 내놓더군요.
 
  “제가 그 부분도 한 번 공론화할 겁니다. 그런 위원 명단을 공개해도 된다는 판례도 있고,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판례도 있습니다. 편향된 역사관을 가진 몇몇 사람에 의해서 공적심사위원회가 독점(獨占)되어 온 것이 아니냐 하는 비판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부분에 대해 국가보훈처장으로서 책임감 있게 보고 있습니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역사는 어떤 진영(陣營)이나 정파(政派)의 관점에서 자의적(恣意的)으로 해석되거나 독점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복 입은 영웅들이 존경받는 나라’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월 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 “확고한 보훈 체계는 강력한 국방력의 근간”이라면서 “공정하고 합리적인 보훈 체계를 마련해 조금이라도 억울한 분들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윤 대통령은 또 “제복 입은 영웅들이 존경받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정부가 천안함 폭침, 연평해전, 연평도 포격 사건 등을 겪은 장병들에 대한 전상(戰傷)이나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 인정에 인색하다는 호소가 많습니다. 이제 좀 달라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도 100번 공감합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한 그분들이 신체적·정신적으로 피해를 입은 데 대해서는 저도 전사자 유가족인지라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마음입니다. 그에 대해 나라가 입으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어떤 책임을 져줬느냐고 묻는다면, 여기서 책임이라고 할 때에는 물질적 보상 플러스 의료가 되겠는데, 이에 대해서는 법률적으로 상당히 까다롭게 되어 있습니다.”
 
  ― 그에 대해 정부가 너무 야박한 것 아니냐는 것이죠.
 
  “어떠한 사건으로 인해 신체적 피해나 트라우마를 입었다는 인과(因果)관계를 개인이 입증(立證)하라는 것이 그동안의 정책이었습니다. 하지만 개인에게 의학적·법률적 지식이 있는 게 아니잖습니까? 행정적으로 보면 그들은 약자(弱者)입니다. 어떻게 정부를 상대로 이길 수 있겠어요? 이런 경우에는 일반적인 경우와는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분들은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이고, 그분들이 천안함 사건이나 목함지뢰 사건 등을 겪었다는 것은 공지(公知)의 사실이잖아요? 이러한 경우에는 입증 책임을 전환, 국가가 입증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
 
  ― 용산에 국가보훈공원을 조성한다고 들었습니다.
 
  “보훈처 업무 보고 때 대통령께서 ‘국가보훈처 주도로 용산공원을 미국 워싱턴 D.C의 내셔널몰(National Mall)과 같은 국가보훈공원으로 만들라’고 아주 강한 어조로 되풀이 강조하셨습니다.”
 
 
  ‘광복회 不法은 지난 정권 비호받은 비리’
 
박민식 보훈처장은 8월 29일 김원웅 전 회장 시절 광복회 비리 감사 결과를 직접 발표했다. 사진=보훈처
  박민식 보훈처장은 8월 29일, 지난 6월 27일~7월 29일 시행한 광복회 특정감사 결과를 직접 발표했다. 출판사업 인쇄비 5억원 과다 견적, 카페 공사비 9800만원 과다 계상, 대가성 기부금 1억원 수수, 기부금 1억3000만원 목적 외 사용, 법인카드 2200만원 유용 등 김원웅 전 광복회장 시절의 여러 비리가 적발됐다. 관련 액수를 합하면 8억원이 넘는다. 이와는 별도로 지난 2월 보훈처 감사에서는 광복회가 국회 구내에서 운영한 카페(헤리티지815) 수익금 중 일부인 6100만원가량이 임의로 빼돌려져 비자금으로 조성되었고, 이 중 1000만원은 김원웅 전 회장의 통장으로 입금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문재인 정부 적폐 청산’을 제일 열심히 하는 부서가 보훈처인 것 같습니다.
 
  “(목소리를 높이며) 적폐 청산이 아닙니다. 적폐 청산이 아니라 나라의 정상화이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정체성을 확립시키는 과정입니다. 우스갯소리로 ‘다른 건 모르겠는데 국가보훈처를 보니 정권이 바뀐 걸 확실히 느낀다’는 말씀을 많이 하세요.”
 
  ― 제 주위에서도 그런 얘기를 많이 합니다.
 
  “소명(召命) 의식을 갖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 김원웅 전 회장의 경우 자잘한 비리보다 그 자리에 있으면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언동을 일삼았다는 게 더 큰 문제 아닐까요.
 
  “말씀하신 것처럼 광복회장의 이름을 팔아서 일탈 행위를 마음껏 했더라고요. 그것을 국회나 청와대(대통령실) 등 국가기관에서 다 알고 있으면서도 비호(庇護)하고 있었어요.”
 
  박민식 처장은 광복회 감사 결과 발표 후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도 “광복회의 불법은 지난 정부의 비호를 받은 비리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었다.
 
  ― 비호라고 하는 것은 조금 지나친 표현 아닐까요.
 
  “대한민국 광복절 경축식에서 연설하는 사람은 딱 두 명입니다. 바로 대통령과 광복회장입니다. 그런데 김원웅 전 회장은 3년간 광복절 경축사를 할 때마다 우리 사회를 완전히 분열시키는 망발을 했어요. 광복절 행사는 시간 계획, 동선(動線), 발언 내용 등이 사전에 대통령실과 공유(共有), 조율될 수밖에 없어요. 시간 계획이 분초 단위로 짜이는데, 광복회장이 연설을 하고 싶다고 마음대로 시간을 쓸 수 없어요. 그런데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3년이나 계속할 수 있었다면 비호가 있었다는 의구심을 갖는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박민식 처장은 “김원웅 전 회장의 비리는 엄정하게 처리할 수밖에 없다”면서 “그것을 그냥 놔두는 것은 지하에 계시는 김구(金九) 선생, 안중근(安重根) 의사(義士) 등 선열(先烈)들께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만을 陰地에서 陽地로’
 
박민식 처장은 지난 7월 말 방미 당시 하와이에 있는 이승만 대통령 관련 사적지들을 찾았다. 사진=보훈처
  박민식 처장은 지난 7월 19일 이승만 전 대통령 57주기 추모식에 참석, 추모사를 했다. 기자도 이승만 전 대통령의 추모식에 종종 참석했었는데, 대개 보훈처 차장이 처장을 대신해 참석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날 추모사에서 박민식 처장은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전 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극적인 성공의 역사이며, 그 대한민국의 시작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계셨습니다. (중략)
 
  공(功)과 과(過)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일방적인 비판에 가려 공화주의자로, 또 독립운동가로, 그리고 반공·자유주의자로서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토대를 만들기 위해 기여했던 많은 업적들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울 뿐입니다. 마땅히 기려야 할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이 묻히고, 폄훼되어서는 안 됩니다.
 
  비단 이승만 대통령뿐만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그리고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헌신한 모든 분은 마땅히 추앙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의 업적은 제대로 조명받거나 평가받기는커녕 이념에 따라 또 진영에 따라 축소되거나 왜곡되는 등 있어서는 안 될 일들이 벌어져 왔습니다. (중략) 이제는 이승만 대통령을 음지에서 양지로 모셔야 할 때입니다. (후략)”
 
  ― 보훈처장이 이승만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하는 것은 드문 일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임자인 박삼득 전 처장 등이 참석한 적이 있지만, 대개 보훈처 차장이나 서울지방보훈처장이 참석했었죠. 사실은 그날 국무회의가 있었는데, 추도식에 꼭 가고 싶어서 차장을 대리 출석시키고 참석했습니다.”
 
  ― 추도식에 참석해야 할 이유가 있었나요.
 
  “국가보훈처장으로서 이승만 대통령 추도 메시지를 한 번 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건 대한민국 정부가 이승만 대통령을 어떻게 인식하느냐 하는 문제’라는 책임감을 갖고 참석했습니다. 사실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인정하자’는 평범한 이야기였는데, 많은 분이 추도사를 보내달라고 하시는 걸 보면서 ‘지난 몇 년 동안 우리 사회가 이런 평범한 말조차 할 수 없는 사회였나’ 싶어서 조금 서글펐습니다.”
 
  ― 지난 7월 8일에는 백선엽 장군 2주기 행사에도 참석했더군요.
 
  “이승만 대통령이나 백선엽 장군 같은 분은 외국에서도 걸출한 인물로 인정하는 분들입니다. 그런 분들이 유독 고향인 자기 나라에서는 제대로 평가를 못 받고 동상 하나 못 세우는 것을 보면 이게 제대로 된 국가인지, 참 안타깝습니다.”
 
  ― 사실 이승만 대통령은 4·19 이후 보수 정권하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해 왔는데, 어떻게 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게 되었습니까.
 
  “사실 저도 상당히 오랫동안 ‘이승만’이라고 하면 ‘자유당 부정선거’만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객관적인 독서를 하게 되면서, ‘이건 어떻게 보면 보수의 분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 맞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저평가된 큰 이유 중 하나는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18년간 집권하면서 이승만 대통령을 부정했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이승만 대통령이 양지로 나올 기회가 없었던 거죠. 부정선거 같은 것에 대해서는 비판받아야 하지만 지나칠 정도로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강했던 이승만 대통령을 친일파(親日派)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얘기죠. 정치적 프레임에 따른 선전선동인데, 괴벨스가 그랬잖아요? ‘거짓말을 자꾸 하면 대중은 그걸 정말로 믿게 된다’고.”
 
 
  ‘국방과 보훈은 동전의 양면’
 
  ― 보훈부 승격은 보훈처의 오랜 숙원입니다만, 그만한 행정수요가 있는 건가요.
 
  “보훈처의 행정 서비스 대상자를 우리는 1300만 명으로 봅니다.”
 
  ― 그렇게나 많다고요?
 
  “제대군인 업무가 있으니까요. 여태까지는 중장기 근무 제대군인 관련 사무만 다루었는데,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의무복무 제대군인 사무도 다루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경우 제대군인 사무가 보훈처의 한 국(局)이지만, 미국의 경우는 보훈부의 명칭이 제대군인부(Department of Veterans Affairs)잖아요? 가족까지 포함하면 사실상 전 국민이 보훈처의 행정 서비스 대상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기술적인 문제를 떠나서 대한민국은 전쟁을 경험한 나라이고 유일한 분단국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적절하게 지적하신 것처럼 국방과 보훈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미국의 군사력이 왜 세계 최강일까요? 70년 전 6·25 때 전사한 전투기 조종사의 뼛조각을 찾기 위해 이역만리(異域萬里)까지 찾아와 수십억원을 쓰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이 국방력 강화를 위해 탱크나 전투기를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나라를 위해서 희생한 분들을 확실하게 받들어 모시는 것입니다. 그래야 전쟁이 났을 때 누구라도 총을 들고 뛰어나갈 것 아닙니까?”
 
  ― 맞습니다.
 
  “우리는 군인을 군바리, 경찰을 짭새라고 비하해왔습니다. 제복을 입은 사람들, 보훈 대상자들이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전 생애를 보훈처와 함께하는 보훈 대상자들은 주무(主務) 부서인 보훈처의 위상을 본인의 위상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명박(李明博)·박근혜(朴槿惠) 정권 등 보수 정권 시절에 오히려 보훈처를 차관급 부서로 격하한 것은 아쉬운 일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철학이 확실한 분이어서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자연스럽게 애국심이 녹아 들어갈 수 있게”
 
박민식 처장은 지난 6월 4일 KIA-KT의 프로야구 경기에 앞서, 2015년 목함지뢰 폭발 사고로 부상을 당한 하재헌 예비역 중사, 6·25참전유공자의 후손인 강병준 육사 생도와 함께 시구·시타 행사를 가졌다. 사진=보훈처
  인터뷰가 끝나갈 즈음 박민식 처장은 “제가 하루를 보훈처장을 하더라도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서 “지면이 허락한다면 이 얘기를 꼭 좀 써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처장은 스마트폰을 열어 1991년 미국 슈퍼볼 개막식에서 가수 휘트니 휴스턴이 미국 국가(國歌)를 부르는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고음(高音)을 거침없이 소화해내는 가창력도 대단했지만, 마지막에 전투기들이 경기장 상공을 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이 동영상이 그냥 나온 게 아닙니다. 치밀한 기획의 결과입니다. 이 노래로 휘트니 휴스턴은 7주간 빌보드 차트에 올랐어요. 국가를 따라 부르는 관중들 얼굴을 보세요. 애국심은 무거운 주제이고 풋볼(미식축구)은 가벼운 주제인데, 이렇게 서로 연결시키니 국민들에게 자연스럽게 애국심이 생기는 것이죠. 무겁게 설교하듯 애국심을 고양하려 할 것이 아니라 축구나 야구, 게임 같은 것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애국심이 녹아 들어갈 수 있게 하는 게 보훈처장으로서 저의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지난 8월 13일 탈북 국군포로 이규일씨의 빈소를 찾아 윤석열 대통령의 조의(弔意)를 전한 것을 두고 많은 분이 ‘정권 교체한 보람이 있다’고 하더군요.
 
  “사실 그날 저는 다른 일정이 있었어요. 그런데 ‘대통령께서 이규일씨 빈소에 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못 가게 되었으니, 빨리 대신 가라’는 연락이 와서 가게 된 것입니다.”
 
 
  “참전용사분들이 단 한 분도 소외감 느끼지 않게”
 
  ― 참전용사들은 민주화운동 보상금으로 몇억원씩 받아가는 것을 볼 때, 월(月) 35만원에 불과한 참전명예수당(65세 이상), 10만원에 불과한 생계지원금(80세 이상)을 받는 자신들의 처지와 비교하면서 소외감을 많이 느낀다고 합니다.
 
  박민식 처장은 잠시 생각하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외국의 경우 대개 보훈의 가치는 독립과 호국입니다만, 우리나라는 독특한 정치적 환경 때문에 민주화가 더해졌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전용사들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아쉬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국가보훈처장으로서 우리나라를 위해서 진짜 희생했던 참전용사분들이 단 한 분도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박민식 처장의 목소리는 촉촉하게 젖어드는 듯했다. 문득 ‘대한민국이 참 오래간만에 국가보훈처장다운 국가보훈처장을 갖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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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달기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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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일    (2022-09-26) 찬성 : 0   반대 : 0
공산당 독립유공자는 북한에서 챙겨야지 왜 대한민국에서 보훈대상자로 합니까?
말도 되지 않는 소리입니다.
6.25라는 전쟁으로 엄청난 피해와 어려움을 겪고 그 참상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원흉들을 독립운동을 했다고 보훈대상자로 해줍니까?
북한 공산당과 같은 주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절대로 용납되지 않는 말입니다.
지금이라도 공산당은 모두 보훈대상자에서 제외시켜야 합니다.
이런 정책을 추진한 사람들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6.25를 겪은 사람들은 공산당에 치를 떨고 있습니다.
  정성근    (2022-09-25) 찬성 : 7   반대 : 0
그동안 특정 집단의 이데올리기에 치우쳤던 보훈정책이 제대로 정상적으로 정착되가는 것 같아 기쁘고 이제 나라다운 모습을 갖추는 것 같아 다행이다.
한가지 제안이 있는데 제 아버님이 참전용사신데 연세가 많아 밤마다 걱정이다. 돌아가신후에 호국원(국립묘지)에 가고싶으신데 모두 대전에서 너무 멀리 있기 때문이다. 대전 현충원에도 참전용사의 납골당을 만들어 주시면 집에서 가깝고 자식들도 자주 갈 수 있어 좋을텐데 현실이 그렇지 않아 고민이 많습니다. 정책으로 검토하셔서 가까운 곳에 모실 수 있도록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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