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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영의 어제오늘내일

정년 퇴임 후 소설가로 변신한 정치학자 김도종 교수

“디지털 全體主義 사회가 온다”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ironhee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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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오웰의 《1984》의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의 생환과 전체주의 질서의 몰락, 디지털 전체주의 사회의 등장 다룬 《윈스턴의 귀환》 출간
⊙ “디지털의 편리성에 중독되어서 스스로의 인성이 변하고 쾌락 추구 이외의 자유가 서서히 속박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어”
⊙ “소련은 체르노빌 原電 사고 후 5년 만에 붕괴… 전체주의 사회는 의외로 허약”
⊙ “《1984》의 디스토피아는 권력으로 억압… 세계화 이후의 ‘포스트1984’의 디스토피아는 돈으로 통치”
⊙ “개인을 중시하면 右派, 집단이나 국가를 강조하면 左派”
⊙ “옵티머스, 화천대유 대장동 사건은, 지배 엘리트가 담합해서 민중의 돈을 수탈한 것”

金道鐘
1955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美 사우스캐롤라이나대 국제정치학 석사, 애리조나주립대 정치학 박사 / 국무총리 정무비서관, 여의도연구소 정치연구실장,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사회과학대학장 겸 사회복지대학원장·행정부총장 역임
  얼마 전 만난 강규형 명지대 교수가 말했다.
 
  “김도종 교수를 기억하세요? 그분이 정년 퇴임한 후에 ‘김로벨’이라는 이름으로 소설가가 됐어요.”
 
  김도종 전 명지대 교수는 2005~ 2010년경 정치나 현대사 관련 세미나에서 곧잘 만났던 정치학자다. 마지막으로 만난 것이 12년 전쯤인데, 명지대 부총장을 끝으로 금년 2월 정년 퇴임했다. 대학 부총장까지 지낸 정치학자가 소설가가 되다니, 흥미가 동했다. 그가 썼다는 소설을 찾아보았다. 제목은 《윈스턴의 귀환》! ‘윈스턴? 윈스턴 처칠일 리는 없고…. 아! 윈스턴 스미스!’
 
  윈스턴 스미스는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Dystopia) 소설 《1984》의 주인공. 영사(영국사회당)가 지배하는 전체주의(全體主義) 국가 오세아니아의 진리부(眞理部)의 하급 관리인 그는 변화하는 현실정치의 추이에 맞게 과거의 역사와 뉴스들을 왜곡하는 일을 한다. 하지만 그는 점차 빅 브러더(Big Brother)가 물샐틈없이 인간의 사고(思考)와 행동을 감시하고 옥죄는 전체주의 체제에 대해 회의(懷疑)를 품게 되고 오브라이언이라는 인물이 이끄는 저항조직에 가담하는 한편, 줄리아라는 여인을 만나 사랑을 나누게 된다.
 
  하지만 사실 오브라이언은 저항조직의 리더가 아니라 비밀경찰인 애정부(愛情部)의 간부로 윈스턴이 체제에 대해 회의를 품고 있음을 간파하고 그를 유인했던 것이다. 계속되는 고문과 세뇌(洗腦)에 윈스턴은 결국 굴복하고, 빅 브러더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그를 사랑하면서 죽어간다.
 
  조지 오웰이 이 소설 속에서 상상해낸 텔레스크린에 의한 철저한 감시체제, ‘이중사고(二重思考)’와 ‘신어(新語)’, 그리고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통제한다. 현재를 통제하는 자가 과거를 통제한다”는 영사의 슬로건은 이후 전체주의 체제의 위험에 대한 경고로 널리 회자(膾炙)되어왔다. 《1984》의 세계는 읽는 이의 가슴을 콱콱 막히게 만든다.
 
 
  《윈스턴의 귀환》
 
《윈스턴의 귀환》
  《윈스턴의 귀환》은 애정부에 연행되었다가 간신히 살아 돌아와 일단 진리부로 복귀한 윈스턴 스미스에게 평화부(平和部·국방부)에서 징병 영장을 발부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유라시아, 이스타시아라는 또 다른 전체주의 국가들과 끊임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던 오세아니아는 병력 자원이 부족해지자 윈스턴 같은 늙다리들까지 전쟁으로 내몰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윈스턴은 북해(北海)의 부양요새(浮揚要塞)에서 해병으로 복무하다가 인도전선으로 전출된다. 몇 곳의 전선을 전전하면서 유라시아군과 싸우던 윈스턴은 유라시아군의 포로가 되어 시베리아의 벌목공으로 전락했다가, 이번에는 유라시아군으로 징집되어 이스타시아와의 전쟁에 투입되었다가 다시 포로가 된다.
 
  그러는 사이에 유라시아와 이스타시아 간에 휴전이 성립된다. 수십 년에 걸친 전쟁이 멈추고 장병들이 귀환하자 각국은 통제 불능의 상태가 되고, 이어 전체주의 체제가 잇따라 무너진다. 세 개의 전체주의 국가에 예속되었던 여러 나라는 자유와 민주주의,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번영을 누리는 한편, 민족적 정체성(正體性)까지도 회복해나간다. 유라시아와 발티키아(발틱3국)를 거쳐 오렌지아(네덜란드)에 정착하게 된 윈스턴은 자신의 경험을 언론에 폭로하고, ‘전체주의 희생자’의 상징으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된다. 한국에서는 전체주의의 위험을 경고하는 시민단체 오월회(오웰회)가 윈스턴을 초청한다.
 
 
  ‘디스토피아 한국’
 
  윈스턴이 방문한 소설 속 한국은 문재인 정권 치하의 한국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사회. 분단 상황 속에서 권위주의 독재 체제를 극복하고 급속한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쳐 고도 정보화 사회에 접어들었지만, 온갖 갈등과 모순으로 가득한 위험사회다. 윈스턴을 초청한 오월회의 대표 Dr.K는 디지털 전체주의의 위험을 경고하면서 그에 맞서 싸우는 소규모 저항조직을 이끄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노력은 좌절하고 한국은 과두(寡頭)지배계급이 지배하는 디지털 전체주의 사회, 디스토피아, 아니 디스코피아(DysKopia)로 전락한다.
 
  거의 600페이지에 가까운 이 소설은 모두 3부로 되어 있다. ‘윈스턴의 귀환’과 ‘디스토피아 한국’에 대한 기술(記述)이 결이 다르고, 흐름이 다소 매끄럽지 못하기는 하지만, 소설 곳곳에서 《1984》에 대한 오마주(Hommage)나 패러디(parody)를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러고 보니 ‘김로벨’이라는 필명도 ‘김도종’이라는 이름을 바꾼 것이다. 도(道)는 로(路)로, 종(鐘)은 벨(bell)로 말이다. 소설 속에 나오는 정치·사회적 담론 중에는 귀담아들을 만한 내용이 적지 않았다. 6월 3일 김도종 전 교수를 만났다.
 
  ― 원래부터 문학을 하고 싶어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어렸을 때 다 꿈 아닙니까? 우리 사회와 특히 21세기 세계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하지만 논문으로 쓰기는 적절치 않고, 좀 더 쉽게 접근해야겠다 싶었습니다. 대학에 있는 동안 구상을 하면서 자료를 모아놓고 스토리 보드를 다 준비해놓았는데, 마침 코로나19로 인해 조금 여유가 생기면서 2020년 6월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 작년 12월에 완성했습니다. 책은 지난 4월에 출간했고요.”
 
  ― 《1984》 패러디라고 해야 하나요, 오마주라고 해야 하나요.
 
  “반반이죠. 후속작이라고 할 수 있겠죠.”
 

  ―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왜 《1984》에 얹었습니까.
 
  “우리나라를 비롯해 여러 나라에서 21세기의 특징으로 불안, 불만, 불신을 꼽습니다. 3불(不)시대라고 하죠. 풍요로워지는데 마음속에 행복은 없는 거예요. 젊은이들은 ‘헬조선’이라고 하고…, ‘이건 뭐지’ 하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1984》의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가 그렇게 살았더라고요.”
 
  ― 그랬던가요.
 
  “빅브러더에게 불만 많고, 항상 두렵고, 불안하고, 결국 줄리아도 못 믿고. ‘이게 바로 우리 사회의 모습이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면서 《1984》를 다섯 번 읽었습니다. 영문(英文)으로도 두 번 읽었고요. ‘우리가 《1984》와는 시대가 다른 디스토피아에서 살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전체주의 체제, 의외로 허약”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소련 붕괴의 시작이었다. 사진=퍼블릭 도메인
  ― 《윈스턴의 귀환》을 보면 영사가 지배하던 오세아니아를 비롯해 전 세계적 차원의 전체주의가 불과 10여 년 사이에 급속하게 붕괴하고 자유와 민주, 번영, 민족정체성이 회복되는 걸로 되어 있더군요.
 
  “실제로 소련도 체르노빌 원전(原電)사고 이후 급속히 붕괴했습니다. 체르노빌 사태, 아프가니스탄에서의 과도한 전비(戰費) 지출, 그동안 누적된 체제의 비효율성, 그리고 레이건의 압박으로 인해 체르노빌 사태 후 5년 만에 소련이 붕괴했어요. 겉으로는 전체주의 체제가 강고하게 유지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보는 것은 허상(虛像)일지도 모릅니다.”
 
  ― 하긴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케네스 갈브레이스를 비롯한 서구 지식인들은 소련 체제가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작동하고 있으며 오래갈 것이라고 장담했었죠.
 
  “하나 더 덧붙이면 저는 이번 우크라이나전쟁으로 1990년대 초 성립된 미국 단극(單極) 체제가 무너지지는 않더라도 엄청나게 약화(弱化)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 어떤 점에서 그렇습니까.
 
  “우크라이나전쟁으로 미국은 한국, 대만, 유럽 국가 등으로부터 신뢰를 잃었어요. 패권(覇權)에서는 신뢰가 굉장히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신뢰를 잃으면, 달러가 약화될 겁니다. 정부에 대한 신뢰 때문에 우리가 화폐를 신뢰하듯이, 달러 패권은 미국에 대한 신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크라이나전쟁은 미국이 신뢰를 잃어가고 미국이 구축(構築)한 세계화(世界化)라는 질서가 흔들리는 가운데 일어난 데다가,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잘못 핸들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소련 붕괴의 예를 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영사의 전체주의 지배 체제를 종식시킨 ‘프롤혁명’과 체제 전환 같은 게 너무 급작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련 붕괴와 체제 전환도 결국은 ‘먹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되어 있던 약 20만 명의 병력을 비롯해 동독(東獨) 등 동유럽에 주둔해 있던 소련군이 소련으로 돌아왔지만, 당시 소련 체제는 이들에 대한 대우를 전혀 해주지 못했어요. 해외에 나가서 고생하고 심지어 전쟁을 치르고 돌아왔는데 국가가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자, 그들은 과격한 불만 세력이 되어버렸고, 소련은 급속한 혼란 속으로 빠져들어갔던 겁니다. 전체주의 체제는 의외로 허약합니다.”
 
  ― 책이 너무 두껍고 그 속에 담긴 이야기도 많습니다. 윈스턴의 생환, 영사 전체주의 체제의 붕괴, 디지털 전체주의에 대한 경고 등, 세 권 정도로 나누어서 냈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원고를 완성하고 전문가, 소설가들에게 리뷰를 부탁했는데, 그분들도 똑같은 얘기를 했어요. 맥락과 배경이 다르니, 나누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었죠. 고민을 해보았지만 ‘내가 상업적 목적에서가 아니라 하고 싶은 얘기를 전하고 싶어서 책을 내는 것이다. 순차적으로 내기에는 대한민국의 상황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생각에서 조금 무리를 했습니다.”
 
 
  돈과 권력
 
  ― 얘기 자체는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나라가 전체주의 체제에서 해방된 후 고도 정보화 사회로 이행하는 기간도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것도 다 설명하기 힘들어서 압축을 시킨 것이죠. 《1984》의 디스토피아하고 제가 말하는 ‘포스트(post)1984’의 디스토피아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감시와 통제라는 것은 똑같습니다. 하지만 영사의 체제는 권력과 물리력, 공권력만 가지고 억압을 하는데, 세계화 이후의 ‘포스트1984’의 디스토피아는 돈을 같이 사용합니다. 돈으로 통치하는 것이죠.”
 
  앞에서 《윈스턴의 귀환》의 내용을 요약해 소개하면서 전체주의의 붕괴와 자유, 민주, 번영의 회복을 이야기했지만, 하지 않은 이야기도 있다. 자유와 민주, 번영이 회복된 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여전히 구(舊)체제 출신의 과두지배세력이라는 사실 말이다. 《1984》에서 윈스턴 스미스를 체포한 비밀경찰 간부 오브라이언이 그 과두지배세력의 우두머리다. 소련이 붕괴한 후 올리가르히(Oligarch·소련 붕괴 후 러시아에 등장한 정경유착의 신흥 재벌집단)나 실로비키(Siloviki·‘제복 입은 남자들’이라는 뜻으로 푸틴으로 상징되는 비밀경찰·군부·경찰 출신 통치 엘리트들)들을 연상케 한다. 《윈스턴의 귀환》에서 오브라이언은 윈스턴에게 이렇게 말한다.
 
  “자네가 애정부에서 개조 교육을 받으며 공포와 증오와 잔인성을 바탕으로 한 사회는 생명력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소멸될 것이라고 한 말이 생각나네. 윈스턴, 자네 예측이 맞았어. 영사 시절 우리는 공권력으로 통치하려고 했지. 그래서 억압이 심했지. 권력에 기반을 둔 통치는 물리력의 행사로 복종을 끌어내지. 그런데 돈에 기반을 둔 통치구조는 그럴 필요가 전혀 없더군. 상대가 알아서 순응을 하고 복종을 하니까.… 권력은 반발을 일으키지만 돈은 환영을 받네.”
 
  ― 《윈스턴의 귀환》에서 영사 체제로부터 해방된 브리타니아를 막후에서 지배하는 오브라이언 일당을 보니 러시아의 올리가르히, 실로비키가 생각나더군요.
 
  “소련과 구 동유럽국가 사이에는 차이가 있어요. 예를 들어 폴란드나 체코에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사회까지는 아니지만 종교인과 일부 지식인으로 이루어진 최소한의 자율성(自律性)을 가진 집단이 존재했습니다. 그런 세력이 있었던 지역에서는 구(舊)공산당 세력이 자취를 감추었지요.”
 
 
  운동권의 행적
 
《1984》의 저자 조지 오웰.
  ― 소설 속 Dr.K는 혹시 김 교수님 자신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까.
 
  “에이, 저는 아닙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네 명의 운동권 출신은 각각 제가 생각하는 실존 인물의 모델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들은 서울-지방 출신, 부잣집-가난한 집 출신을 축으로 하는데, 서울-부잣집 출신이 Dr.K, 서울-가난한 집 출신이 돈을 추구하는 재민, 지방-부잣집 출신이 원국, 시골의 지지리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게 병호죠. 일반화시키기는 뭣하지만, 사실 실제 운동권들의 나중의 행적을 보면 네 명과 비슷합니다.”
 
  ― 소설 속에서 Dr.K가 운동권 시절에 수사기관에 잡혀가서 전화번호부로 얻어맞은 얘기는 혹시 본인 얘기인가요.
 
  “아닙니다. 저는 1970년대 학번이기 때문에 1980년대 학생운동을 직접 경험하지는 않았어요. 1980년대에 외국 유학을 나갔다가 1990년대 초 귀국한 후 2~3년 동안 제 후배들이기도 한 1980년대 운동가들과 많이 어울렸는데, 그들의 경험을 얼추 수박 겉핥기로 알게 되었죠. 그걸 소설 속에 녹여 넣은 것입니다.”
 
  소설 속에서 윈스턴은 Dr.K에게 “당신은 리버럴리스트지요?”라고 묻는다. 이에 대해 Dr.K는 “예전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세상이 나를 아나키스트로 만든 것 같습니다”라고 답한다. 그러면서 그는 “진정한 아나키스트는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을 신봉하는 자기 책임이 강한 사람들”이라고 덧붙인다.
 
  ― 교수님의 이념 성향은 어떻습니까.
 
  “고전적 의미의 리버럴리스트(자유주의자)입니다. 시장경제를 중심으로 봤을 때의 우파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국가가 이런 식으로 간다면 정말 아나키스트가 되고 싶더라고요. 세금을 너무 많이 걷고, 간섭하는 게 너무 많아요. 우리에게 걷은 세금을 제대로 쓰는 것도 아니고 막 써요. 국가가 정말 필요한가 하는 회의가 들 때가 있습니다.”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라는 이념적 구분과 관련해, 소설 속 Dr.K는 흥미로운 주장을 한다.
 
  “저는 보수적이다 진보적이다라는 구분보다는 좌와 우라는 용어로 대체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좌우의 구분은 시장경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지만, 저는 좀 더 포괄적으로 개체의 자율성을 강조하면 우파이고 집단의 효과성을 강조하면 좌파라고 봅니다. 개체주의나 개인주의는 우파고 집단주의는 좌파라는 분석틀을 갖고 있습니다. 개인을 중시하면 우파이고 집단이나 국가를 강조하면 좌파인 것이죠. 영사도 당과 국가를 우선시하면서 개인을 억압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영사는 좌파입니다. 히틀러의 나치즘을 극우전체주의라고 하고 스탈린식 공산주의를 극좌전체주의라고 하는데, 제 관점으로는 국가라는 집단을 강조하는 면에서 둘 다 좌파국가입니다.”
 
  ― 소설 속 Dr.K가 말한 우파와 좌파의 구분이 흥미롭더군요.
 
  “전에 정치학자들의 모임에서 ‘보수를 우파, 진보를 좌파로 보는 것은 굉장히 잘못되었다. 굳이 좌우의 구분을 하자면 개체주의-개인주의와 집단주의로 나누어야 한다’고 말했다가 욕을 무지하게 먹었습니다.”
 
 
  《윈스턴의 귀환》 속의 한국 사회
 
김도종 교수는 대장동 사건을 통치 엘리트가 민중을 수탈한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사진=조선DB
  《윈스턴의 귀환》 속에는 신라젠, 라임, 옵티머스 사건 같은 문재인 정권 시절의 의혹 사건이나 세월호, 총기난사, 시민단체 횡령 같은 사건·사고들이 많이 녹아 있다.
 
  ― 지난 몇 년 동안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들이 소설에 많이 들어 있더군요.
 
  “신라젠 사건이 소설 속 가야진이죠. 그런 사건들이나 옵티머스, 화천대유 대장동 사건을 보면, 결국 지배 엘리트들이 담합을 해서 민중, 즉 일반인들의 돈을 수탈한 것입니다. 진짜 나쁜 거예요. 그게 일반화되어버렸어요. 그래서 그게 너무 화가 납니다.
 
  용인·평택 등 수도권에서 성장하고 있는 도시들에서는 대장동과 같은 일들이 다 벌어지고 있어요. 그걸 건드려야 한다고 주장들 하지만, 그걸 건드리지는 못합니다. 이게 국가가 모든 인허가권을 가지고 있다 보니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 운동권 출신으로 끊임없이 권력과 부(富)를 추구하는 소설 속 원국은 조국(曺國)이죠?
 
  “네. 거기서 착상을 한 거죠.”
 
  《윈스턴의 귀환》은 앞과 뒤의 분위기가 확 다르다. 앞부분은 밝고 활기차다. 전쟁터로 끌려간 윈스턴은 온갖 고생을 하지만, 그조차도 조지 오웰의 《1984》보다는 한결 여유가 있고, 인정(人情)이 느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1984》의 세계로부터 불과 10여 년 후에 전 세계적인 전체주의 질서가 붕괴한다. 반면에 뒤로 가면 한국은 과두지배체제가 지배하는 디스토피아로 전락한다. 그 계기가 되는 것은 ‘내각제 개헌(改憲)’이다.
 
 
  과두체제와 포퓰리즘
 
  ― 《윈스턴의 귀환》을 보면, 국내 보수 세력 일각에서 ‘내각제 개헌’을 사갈시(蛇蝎視)하는 것과 인식이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여야(與野)를 막론하고 우리나라의 지배 엘리트들은 내각제 개헌을 통한 과두지배체제 수립을 계속해서 추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근혜 탄핵도 그 일환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 지배 엘리트란 누구를 말하는 것입니까.
 
  “정계는 물론이고 재계, 관료 집단, 언론계, 법조계, 학계를 말하는 것이죠. 내각제로 갈 경우 학계가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손해 볼 일은 없어요. 하지만 언론계, 법조계, 재계는 내각제로 갔을 때 훨씬 편하죠. 그럴 경우 완전한 올리가르히 체제가 가능해진다고 봅니다.”
 
  ― ‘제왕적 대통령제’니 뭐니 하지만 국민들이 내각제에 익숙하지 않은 데다가, 지금 국회의원들 수준으로 내각제를 하면 개판이 되지 않겠습니까.
 
  “저는 문재인 정권 때도 내각제 개헌을 추진하다가 그만두었지만, 그런 시도는 계속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몇 년 전 문재인 정권에서 개헌안을 내놓았을 때 보니, 저와 친한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이 거기에 찬성을 하고 있더군요. 그에게 ‘왜 더 밀어붙이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국회 통과는 걱정이 안 되는데, 국민투표에서 자신이 없다’고 하더군요.”
 
  ― 오늘날 유럽이나 미국의 포퓰리즘에는 과두정치에 대한 반발이라는 측면이 있지 않습니까.
 
  “미국의 경우 냉전(冷戰) 종식 이후에 클린턴 8년, 부시 8년, 오바마 8년을 거치면서 과두체제가 거의 완성됐다고 봅니다. 정치권력과 미디어, 월스트리트의 자본이 한통속이 되어버린 거예요. 그러면서 BLM(Black Lives Matter·흑인에 대한 경찰의 폭력에 반대하는 인권운동세력), PC(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 CRT(Critical Race Theory·비판적 인종이론), LGBT(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등을 통해 밑바닥의 대중동원력을 확보하지만, 그들에게 돌아가는 떡고물은 아주 미미하지요. 저는 그게 과두체제라고 보는 겁니다.”
 
  ― 미국 보수 우파의 티파티(Tea Party)도 과두체제에 의해 동원되는 밑바닥 대중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티파티는 죽었죠. 그 후에 우파적 포퓰리즘을 이용한 게 트럼프죠. 지금은 트럼피즘(Trumpism)이라고 하죠.”
 
 
  페스트와 코로나19
 
문재인 정권은 코로나 방역을 이유로 국민들의 자유를 침해했다. 사진=조선DB
  ― 혹시 포퓰리즘이 과두체제에 대항한다는 의미에서 긍정적 측면이 있다고 보는 건가요.
 
  “제가 진짜 하고 싶은 얘기는 너무 풍요가 빨리 오니까 그게 탐욕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거죠. 《1984》의 오브라이언은 권력에 대해서만 탐욕을 부렸는데, 세계화가 되면서 지배 엘리트들이 돈과 권력에 대한 탐욕을 같이 부리면서 더 살기 힘든 세상으로 만들어놓았어요. 그게 결국 불안과 불만과 불신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 조국 사태나 대장동 사태에서 보듯, 진보를 자처하는 세력들이 돈과 권력을 다 갖겠다고 달려드는 걸 보면 역겹더군요.
 
  “우파나 좌파나 똑같아요. 김어준이나 진중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권력이 꼭 정치권력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에요. 정치권에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도 권력이지요. 그걸 권력화하고 그게 또 돈이 되잖아요? 저는 그런 사람들의 말은 경청(傾聽)할 필요가 없다고 봐요.”
 
  ― 소설에서는 Dr.K가 그런 과두체제에 저항하다가 파멸당하는데, 현실에서는 어떤 견제 방도가 있을까요.
 
  “중세(中世)에 페스트가 없었다면 종교개혁이 가능했을까요? 종교개혁이 없었다면 근대(近代) 계몽주의 시대가 가능했을까요? 근대 계몽주의가 없었다면 산업화와 시민혁명이 가능했을까요? 저는 사람들의 머리를 완전히 띵하게 만드는 큰 파국(破局)이 있기 전까지는 사람들이 쉽게 각성하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하지만 페스트 정도는 아니어도, 그런 시기가 지금 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코로나19 팬데믹 말씀인가요.
 
  “코로나19 전과 후는 다를 것입니다. 우크라이나전쟁 전과 후도 다를 것입니다. 그 결과 미국의 패권이 약화되고 달러도 악화되면서 굉장히 카오스(chaos)적인 상황이 됐을 때에 뭔가 새로운 길이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文 정권 학습효과로 더 이상 선동은 안 통할 것”
 
  ― 코로나19로 인한 충격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는 건가요.
 
  “앞으로 세계경제는 상당히 어려워질 것입니다. 그때 충격을 받고 그때부터 차분하게 생각을 해보겠지요. 그러면서 새로운 방향을 찾을 거라고 기대합니다. 그게 과두지배체제를 더 강화할지, 우리가 원하는 정상적인 민주주의로 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 그런 위기 상황이 오면 차분하게 성찰하면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가기보다는 히틀러 같은 선동가, 더 나쁜 악종(惡種)이 나타나기 쉽지 않을까요.
 
  “1997년 IMF가 왔을 때에 우리는 진짜 망할 뻔했지요. 하지만 그때 삼성, 현대, LG 같은 대기업들은 충격을 받고 ‘대마불사(大馬不死)라고 국가를 등에 업고 돈을 엄청나게 끌어다가 벌여놓으면 우리는 살아남고 성장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전 세계와 경쟁하는 쪽으로 의식을 확 바꾸었잖아요? 물론 이런 긍정적인 측면과 함께, 반대로 우리 국민들이 ‘잘못하면 한방에 갈 수도 있구나. 그러면 내 몫부터 챙기자’면서 탐욕의 시대로 들어가기도 했지요.”
 

  ― 그런 면이 있죠.
 
  “다음에 우리나라든, 전 세계적이든, IMF 같은 경제적 파국이 왔을 적에 그에 대한 책임의 90%는 국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미국, 일본 할 것 없이 국가가 금융 정책이나 재정 정책을 통해 국민들을 굉장히 취약하게 만들어놓았어요. 국민들이 그런 문제에 대해 깨닫게 되면 국가권력에 대한 감시체계를 좀 더 강화하고 정교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겠지요. 물론 바이마르공화국 같은 혼란이 와서 전체주의적 세력이 선동을 통해서 대두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우리나라는 문재인 정권 때 그런 선동에 대해 경험한 학습효과 때문에 더 이상 선동은 안 통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 저는 국민의 절반이 이재명 같은 엉터리를 지지하는 걸 보면, 걱정입니다.
 
  “거기에 넘어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런 선동가가 최고권력까지 잡기는 힘들 겁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이재명은 끝났다고 봅니다.”
 
 
  “文 정권의 정책들 의도적이었다고 생각”
 
  소설을 보면 과두지배체제로 가는 과정에서 정권이 부동산 정책이나 재정 정책, 금융 정책 등을 통해 중산층을 의도적으로 몰락시키는 대목이 나온다.
 
  ― 문재인 정권의 부동산 정책 등이 중산층을 몰락시키기 위해 계산된 것이었다고 봅니까.
 
  “문재인 정권의 재정 정책, 부동산 정책, 금융 정책 등으로 인해 가계(家計)대출이 엄청나게 늘었잖습니까. 많은 국민이 빚쟁이가 된 것이죠. 빚쟁이가 많아지면 국가가 통제하기 쉬워집니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 이후 정부가 원리금 상환을 계속 유예(猶豫)시켜줬어요. 오는 9월에 종료시킨다고 하는데 윤석열 정부가 그걸 종료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 순간 개인 파산자가 엄청나게 많이 나올 겁니다. 빚쟁이가 많아지면 국가가 통치하기 쉬워진다는 점에서 저는 문 정권의 정책들이 의도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윈스턴의 귀환》에서 한국이 디스토피아로 가는 데 일조하는 세력 가운데 하나는 국내에 들어온 중국인과 조선족,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부동산 시장을 쥐락펴락하며 내국인들의 일자리를 잠식해 경제를 망가뜨리고, 자신들에 대한 차별금지를 요구하며 소요를 일으키고 공권력이 개입하지 못하는 해방구(解放區)를 만들어 사회 혼란을 조성하고, 정치권을 압박해 참정권을 획득하면서 정치 질서를 뒤흔들어 놓는다.
 
  ― 소설에서 국내 중국인 등 외국인 문제에 대한 경고를 많이 했더군요.
 
  “제가 있던 명지대의 경우 1만5000여 명의 재학생 가운데 중국인 학생이 2000여 명이었어요. 국내 거의 모든 대학이 중국 학생이 없으면 재정이 파탄 납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대학이 친중(親中)대학이라고 보면 됩니다. 저는 우리나라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어가는 것도 중국 돈이 더 이상 안 들어와서라고 봅니다. 지금 외국인 노동자가 180만 명쯤 되는데 그에 대한 관리가 거의 안 되고 있어요. 중국인이나 조선족 밀집 거주 지역이 있는 금천구나 구로구 같은 데서는 초등학교 취학 학생의 4분의 1 내지 3분의 1이 중국어를 써서 중국인 원어민 교사를 채용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외국인 밀집 지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해요. 이러다가 큰일 날 거라고 봅니다.”
 
 
  공포로 통치한 문재인 정권
 
  《윈스턴의 귀환》에서 한국이 디지털 전체주의, 과두체제하의 디스토피아로 전락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것은 계속 이어지는 팬데믹이다. 팬데믹을 계기로 정부는 디지털 감시체제를 강화하지만 국민들은 여기에 순응하면서 스스로 자유를 포기한다. 문재인 정권 시절의 K-방역을 경험하면서 많은 국민이 걱정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 코로나19 방역을 빌미로 한 통제를 밀어붙이는 문재인 정권에 순응하는 국민들을 보면서 우리나라 국민들이 자유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코로나19 음모론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국민들이 자유에 대한 의식이 낮은 것은 사실이고, 문재인 정권이 그걸 딱 잡은 것도 사실입니다. 무엇보다도 문재인 정권은 국민들의 공포를 이용했어요.”
 
  ― 공포라면?
 
  “하나는 계층 하락에 대한 공포입니다. 팬데믹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내가 정규직으로 있다가 비정규직으로 떨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공포죠. 다른 하나는 코로나19로 인해 죽을 수도 있다는 죽음에 대한 공포죠. 이 두 가지 공포를 문재인 정권이 틀어쥐었던 거죠. 저는 팬데믹 발생 이후 일부 의료인이 정치권력과 결탁해서 국민을 우롱했다고 봅니다. 미국의 경우는 주(州)에 따라 마스크를 안 써도 되기도 했는데, 우리는 중앙권력이 강하니까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였죠. 심지어 확진자 동선(動線)까지 공개했었잖습니까? 이건 말이 안 되는 거였죠.”
 
 
  디지털 전체주의
 
  소설 《윈스턴의 귀환》이 가장 소리 높여 경고하는 것은 ‘디지털 전체주의 사회의 도래’이다. 소설 속에서 윈스턴은 옛 동료 앰플포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코리아는 새로운 형태의 디스토피아(Dystopia)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인데, 이를 디스코피아(DysKopia)라고 부를 수 있을까?
 
  Dr.K는 이 같은 현상이 급속도로 퍼진 것을 디지털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네. 사람들이 디지털의 편리성에 중독되어서 스스로의 인성이 변하고 쾌락 추구 이외의 자유가 서서히 속박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분개하네.”
 
  Dr.K의 우려는 디지털 통화의 도입, ‘사회신뢰등급제’ 실시, 그리고 ‘스마트 시티(Smart City)’ 건설 등을 통해 현실화된다. 중국의 자본과 정보통신기술, 감시 시스템 등이 이를 뒷받침하면서 한국은 중국에 종속되어간다.
 
  이 중에서 ‘사회신뢰등급제’는 중국에서 이미 시행에 들어간 제도이다. ‘사회신뢰등급제’를 묘사한 대목을 보자.
 
  〈정부는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가치와 질서의 형성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사회신뢰등급제를 도입하였다. 이를 위해 국회는 ‘사회신뢰 제고와 개인신용 보호 및 향상을 위한 기본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점점 개인화되는 추세 속에서 상부상조의 정신을 함양하여 신뢰사회를 건설하고 구성원들의 준법정신을 향상시켜 서로 믿고 사는 아름다운 사회를 건설하자는 목적을 표방했다. 법안 이름이나 ‘사회신뢰등급’이라는 문구만 봐서는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없었다.
 
  ‘사회신뢰등급’ 제도는 철저하게 상벌 원칙에 기반하여 고안되었다. 일단 모든 18세 이상 국민들에게 1000포인트의 점수가 주어졌다. 그 후 친사회적 행위를 하면 가산점이, 반사회적 행위를 하면 감점이 부과됐다. 점수에 따라 개인에게 신뢰등급이 매겨졌다. 등급은 최상등급인 ‘갑’서부터 ‘을’ ‘병’ ‘정’과 마지막 ‘무’의 5단계로 되어 있는데 대인 큐알코드에 자동으로 입력되었다. 교통법규 위반, 계약 위반, 각종 공과금 및 요금 체납, 쓰레기 분리수거 불이행 등은 감점 요인이었고, 자원봉사, 기부 및 후원, 헌혈 등은 가산점을 받았다.…
 
  사회신뢰등급의 ‘병급 이하는 공공부문 취업에 제한을 받고 은행대출도 받을 수 없었다. 최하위 단계인 무급은 비행기와 KTX 탑승이 제한되고 호텔 예약도 할 수 없었다. 개인은 자신이 받은 가산점과 벌점을 앱을 통해 수시로 확인하였다. 이 시스템의 작동을 위해 정부 부처와 지자체, 금융기관 및 통신사업자와 SNS사 등이 연계된 정보공유 플랫폼이 구축되었다. 대학 입시에서도 본인은 물론 부모의 신뢰등급을 기재하라는 대학이 늘어났다.…
 
  가산점을 받기가 힘들다는 여론에 따라 국정홍보 가산점 제도가 신설되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홍보 메시지를 보냈다. 이를 청취하거나 보면 가산점을 주는 것이었다.… 사회신뢰지수가 아니라 사회복종지수라는 것을 사람들은 알게 됐다.… 사회신뢰등급제의 시행은 짧은 시간에 사람들의 모든 행위를 완벽히 통제할 수 있었다.〉
 
 
  “국가가 빅 브러더 된다”
 
  ― 우리가 디지털 전체주의에 기반한 디스토피아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어느 시대건 지배 엘리트의 한결같은 소망은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하는 것, 즉 올리가르히 시스템, 과두체제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감시하고 통제하기 쉬운 사회가 어디 있습니까? 그런 유혹을 계속해서 받은 것은 당연하지요. 문재인 정권은 어설프게 그걸 해보려고 했는지 모르겠는데, 그런 일을 막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 러다이트운동이 산업혁명을 막지 못했듯이, 디지털 기반의 고도 정보 사회화도 피하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디지털 전체주의 사회의 도래는 막아야 하고,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국가가 데이터를 통합해서 관리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지금도 국가가 통신 3사에 통신기록을 내놓으라고 하면 내놓잖아요? 국가가 국민들의 데이터를 통합해서 가지는 순간 ‘빅 브러더’가 되는 겁니다.”
 
  ― 하지만 빅데이터를 이용한 정보산업 발전이나 AI(인공지능)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데이터를 통합적으로 관리, 활용해야 한다는 요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가령 시간대별 교통량, 고속도로 같은 소셜 액티비티(Social Activity)에 대한 정보는 통합 관리하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김도종이의 차가 어느 톨게이트를 몇 시에 지나갔다’는 정보를 통합 관리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소설에서도 얘기했지만, IOT(Internet of Things·사물인터넷) 정보까지도 통합 관리할 수 있는 세상이 옵니다. 누가 TV나 전등불을 언제 껐는지 켰는지, 누가 화장실 변기 물을 언제 내렸는지에 대한 정보까지 통합 관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정보를 국가가 통합 관리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프라이버시에 대한 인식이 약해서 걱정입니다.”
 
  소설 《윈스턴의 귀환》에서 디스토피아 한국은 디지털 화폐 시스템-그것도 중국과 통합된-을 전면적으로 도입한다.
 
  〈디지털 화폐를 사용하면서 오류가 발생했다. 휴대폰에 내장된 전자지갑이 가끔 작동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러한 오류가 늘어나기 시작하자 사람들 사이에는 정부가 비판적인 인사들의 지갑을 일시 폐쇄시키는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 진위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정부에 비판적인 인사는 전자지갑이 안 열려 주택매매가 무산되면서 큰 손해를 보기도 했다. 일부 사람은 반정부 성향의 인사뿐 아니라 시노(중국)에 비판적인 사람들에 대해서도 전자지갑을 잠시 폐쇄하여 골탕을 먹인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디지털 화폐의 도입으로 모든 돈의 흐름을 정부가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개인의 지갑과 경제생활을 국가가 관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소설에는 디지털 화폐에 대한 경고도 있더군요.
 
  “제가 왜 디지털 화폐에 반대하느냐? 저의 돈 씀씀이를 국가가 다 알게 되는 것 아닙니까? 그건 아니라는 것이죠.”
 
 
  “자판 못 두드리게 될 때까지 쓸 것”
 
  ― 앞으로도 소설을 계속 쓸 계획입니까.
 
  “물론입니다. 지난 20년 교수들이 신문에 시론(時論)을 쓰는 게 점점 줄어들었어요. 종편이건 공중파건 토론 프로에 교수가 별로 안 나와요. 객원교수는 많이 나오지만…. 그래도 저는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이 있어요. 하지만 예를 들어 ‘21세기 디지털 전체주의의 도래가 개인의 자유에 미치는 영향’이라고 논문을 써봤자 10명도 안 읽을 겁니다. 그래서 정년 퇴임 후에 시간도 있으니 이런 거나 하자는 것이죠. 저는 손이 떨려서 자판을 못 두드리게 될 때까지는 이런 작업을 계속할 것입니다.
 
  솔직히 제가 소설을 써서 돈을 벌겠어요, 유명해지겠어요? 다만 제 이야기에 1000명이 관심을 가지고 읽고, 그중에서 10분의 1인 100명이라도 제 글을 통해 뭔가 각성을 할 수 있다면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 ‘윈스턴의 귀환’을 다룬 앞부분은 영미(英美)에서도 먹히지 않을까요.
 
  “사실 우리 아이가 영어로 작품을 쓰는 작가 지망생입니다. 공부도 외국에서 했고요. ‘너 이거 읽고 영어로 번역해서 미국이나 영국에서 출간하도록 섭외해보라’고 했더니, 싫다고 하더군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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