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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청년 보훈 문제 해결에 나선 안종민 청년미래연합 대표

“부상 장병 ‘국가가 나를 버렸다’고 생각해”

글 : 정광성  월간조선 기자  jgws89@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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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보훈 문제는 절차에 대해 안내 없어”
⊙ “부를 땐 우리 자식, 다치면 남의 자식”
⊙ “PTSD로 고통받고 있는 천안함 생존 장병 보훈 제일 낮아”
⊙ “1년에 부상 장병 4만5000명, 국방부 외면”
청년미래연합 안종민 대표. 사진=안종민 대표 제공
  2020년 3월 3일 해상사격 훈련 중이던 해군 참수리급 고속정에서 수류탄이 폭발해 6명의 부상자가 생긴 사건이 발생했다. 이 중 한 명인 김용수 상사는 당시 사고로 두 눈과 오른쪽 팔목을 잃었다.
 
  이로 인해 김 상사는 최근 보훈처로부터 국가유공자로 지정됐다. 김 상사가 국가유공자로 인정되고 계속해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된 뒤에는 안종민 청년미래연합 대표가 있었다. 안 대표가 아니었다면 김 상사의 국가유공자 등록은 더 늦어졌을 것이고, 치료도 사비로 받았어야 했다. 안 대표는 김 상사의 국가유공자 등록을 위해 부산을 오가며 김 상사를 도왔다. 지난 4월 1일 김 상사의 부인이 안 대표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내용이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연락드리게 되었습니다. 활짝 핀 벚꽃으로 따스한 봄이 찾아왔듯 우리 가족에게도 기쁜 소식이 있어 감사인사드리고 싶어서 문자 드립니다. 지난주 목요일쯤에 남편의 보훈심사가 완료되어 1급 2항으로 최종 결정되어 유공자 등록이 완료되었다고 합니다. 많은 도움 주셨고, 우리 가족과 함께 힘겨운 일들을 묵묵히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안종민 대표도 육군 대위 출신이다. 안 대표는 1999년 학군단 37기 소위로 임관했다. 그러던 중 불의의 사고로 2007년 8월 대위로 전역하게 됐다. 안 대표는 전역 후 김 상사뿐만 아니라 연평해전, 천안함 생존 장병과 순직한 경찰·소방공무원들의 보상과 국가유공자 선정에 도움을 주고 있다. 안 대표는 이들을 무료로 돕고 있다.
 
 
  “두 차례 사고로 무릎 망가져… 평생 꿈이었던 군 떠나”
 
  ― 군 복무 중 사고를 당해 국가유공자가 됐다고 알고 있습니다. 무슨 사고였습니까.
 
  “2004년 육군 대위로 중대장을 하고 있을 때였어요. 당시 독수리 훈련 중이었습니다. 남한강 도하(渡河) 훈련 중 저희 부대 장갑차 한 대가 강물에 빠지는 바람에 작전이 중지됐어요. 그 장갑차를 끌어내고 나서 운전사의 운전 미숙으로 장갑차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다치게 됐죠.”
 
  ― 보통 이런 일들을 장교들이 합니까.
 
  “아니요. 대부분은 사병들이나 부사관이 하죠. 그런데 당시 군단장까지 나와 있었고, 위에서 지시가 내려오길 장교들이 들어가 끌어내 보라고 해서…. 그곳이 양평이었어요. 그곳 지형을 잘 알고 양평에서 훈련해본 제가 차출되어 들어가게 됐죠.”
 
  ― 그런데 운전 미숙은 무슨 얘기입니까.
 
  “장갑차를 끌어내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요. 한 5분 만에 끌어냈습니다. 그런데 강기슭에서 언덕을 올라가야 하는데 나는 그 장갑차 위에 올라가 있었어요. 운전병에게 언덕을 올라갈 때 조심해서 가라고 분명히 말했는데 이 친구가 잘 올라가지 않으니 액셀러레이터를 확 밟은 거예요. 그 반동에 의해 저는 옆으로 떨어졌습니다.”
 

  ― 그래서 전역을 한 겁니까.
 
  “그때는 심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사고 후 전역을 하게 됐습니다. 첫 사고 후 지금 강원도 인제에 있는 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 교관으로 갔습니다. 강원도가 겨울에 눈이 얼마나 많이 옵니까. 거기에 2006년에 벌목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런데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아 나무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야간 훈련 중 나무에 발이 끼이면서 넘어지는 바람에 한 20m를 굴렀습니다. 그때 2차로 무릎을 다쳐 수술까지 하게 됐습니다. 병원에 가서 MRI(Magnetic Resonance Imaging·자기공명영상법)를 찍어 보니 십자인대는 다 나가고 연골은 파열됐더라고요.”
 
  안 대표는 수술을 마친 뒤 2007년 8월 제대를 했다. 안 대표는 “사고로 무릎을 다치지 않았다면 현재도 군인으로 나라를 지키고 있었을 것”이라며 “그 일로 평생 꿈이었던 군을 떠나야 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 전역을 앞두고 마음이 많이 아팠을 것 같습니다.
 
  “정말 착잡했죠. 정말 저는 입대할 때 평생 군인으로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데 목숨 바칠 각오로 입대했는데 불의의 사고로 제대하게 됐으니. 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았습니다.”
 
 
  “깜깜이 보훈 절차… 사고 장병 치료도 받지 못해”
 
안종민 대표가 2020년 2월 12일 국군의 권익과 보훈, 혁신방향과 과제 국회 콘퍼런스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안종민 대표 제공
  ― 전역 이후 어떤 일을 했습니까.
 
  “평범한 직장 생활을 했습니다. 운 좋게 좋은 직장에 들어가 열심히 일하면서 생활했죠. 그리고 저도 군에서 다친 국가유공자다 보니 우연한 기회에 국가유공자 모임에 나가게 됐습니다. 그곳에서 사람들과 7년간 교류를 하면서 활동도 했습니다.”
 
  ― 어떻게 다친 장병을 돕게 됐습니까.
 
  “하루는 친한 학군단 장교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 친구가 훈련 중 사고로 다쳤는데 어떻게 하면 군이 정해준 병원에서 계속 치료를 받을 수 있는지, 국가유공자 신청은 어떻게 하는지를 묻더군요. 그래서 자세히 알려줬습니다.”
 
  ― 그렇게 시작하게 된 겁니까.
 
  “그 이후에도 지인들을 통해 많은 사람이 연락이 왔습니다. 그걸 겪고서 그때야 군 복무 중 사고로 다친 장병에 대한 우리나라의 보훈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대부분의 사람이 보훈과 관련해서 많이 모르고 있었습니다.”
 
  ― 무릎을 다쳤을 당시엔 절차에 대해서 알고 있었나요.
 
  “저도 몰랐었습니다. 다행히 동기 중에 해당 내용을 아는 사람이 있어 그 친구에게 물어봤죠. 군 특성상 육사와 육군3사관학교 출신들 빼고는 70~80%가 단기로 복무하는 장교들입니다. 그렇다 보니 자기가 군에서 다쳐도 어떤 보상이 나오는지 아는 사람이 잘 없었습니다. 지금은 조금 바뀌긴 했는데 당시에는 군에서 국가유공자라든지, 상의연금제도라든지 이런 절차에 대해서 알려주지도 않았습니다.”
 
  ― 후배들이 주로 어떤 질문을 합니까.
 
  “대부분이 ‘저 단기로 근무하다 다쳤는데 저도 국가유공자 신청 가능합니까?’라고 물어보는 친구들이 제일 많았습니다. 그리고 해당 절차에 대해 물어보고 다들 놀라요. 이런 제도가 있었는지 처음 알았다면서.”
 
  ―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후배들을 돕기 시작했습니까.
 
  “아마 2017년부터일 겁니다. 유공자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우리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면서 부를 땐 내 자식이고, 다치면 남의 자식이라는 식의 국방부의 후안무치한 태도에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관련 자료들을 정리하기 시작한 것이 여기까지 온 거죠.”
 
 
  의무대 개인 자료, 5년 지나면 폐기
 
  ― 주로 어떤 것을 도와줍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모든 작업을 도와준다고 보면 됩니다. 2018년 전까지는 군에 입대하는데 어떠한 설명도 없었어요. 그냥 너희는 왔으니 우리 명령에 따라야 한다는 거였죠. 물론 군의 특성상 절대복종이 맞지만 그래도 안내 책자라도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아프거나 다쳤을 때 어떤 절차가 있고, 어떻게 해야 한다 정도는 알려줘야죠.”
 
  ― 지금도 그런 제도가 없습니까.
 
  “지금은 있습니다. 2018년부터 생겨났는데 안내 책자를 만들어 신병들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그것도 제가 나서서 계속 얘기하고 하니까 만들어진 겁니다. 얘기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아마 지금도 없었을 겁니다. 이런 제도가 있다는 것에 대해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제가 알리고 다니고 있지만, 그 이전에 다쳐서 제대한 사람들은 혜택을 받지 못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 왜 그런 겁니까.
 
  “일단 다쳐서 제대할 때엔 몰랐으니까요. 그냥 군에서 해주는 치료비와 보상금 정도 받고 나오는 거죠. 그렇게 5년, 10년이 지나면 증거가 사라지게 되고, 그러면 대우받기가 어려운 거죠.”
 
  ― 기록이 안 남아 있나요.
 
  “의무대 특성상 개인 자료는 5년이 지나면 폐기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치료 내용 등 필요한 자료들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특히 전산화 이전 사고의 경우 더 문제죠. 예를 들어 제가 군 생활 할 때 자료가 남아 있을까요. 없습니다. 그러니 이 사람이 군 생활 중 부상당한 것은 맞는데 객관적으로 입증할 자료가 없으니 힘든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 자료를 찾다가 너무 어려워 중간에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솔직히 주변에 육사 출신의 동기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겁니다.”
 
 
  1년에 상이군인 4만5000명 발생
 
2021년 7월 28일 천안함 재조사 관련 국회 시위 중인 안종민 대표. 사진=안종민 대표 제공
  ― 육사 출신 동기가 뭐라고 조언해주던가요.
 
  “제가 다쳤다고 하니 안부차 전화를 했었습니다. 관련해서 얘기하다가 저에게 물어보는 거예요. 이런 제도가 있는데 혹시 알고 있는지. 당연히 몰랐죠. 그 친구의 말에 따르면 앞으로 국가유공자나 치료를 지속적으로 받기 위해선 수술 자료라든지 진료 기록을 빼놓지 말고 꼼꼼히 챙겨놓으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군에서 지정해주는 병원보다 무릎의 경우 외부 유명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도 된다고 했어요. 이런 걸 누가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또 어떤 곳에 신청하는지 어떤 보상 절차가 있는지 알려주더라고요. 그 친구가 아니었으면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제대를 했을 겁니다.”
 
  안 대표는 기자에게 1년에 상이군인이 몇 명이나 나오는지를 물어왔다. 기자가 생각하는 사이 안 대표는 “4만5000명 정도입니다”라고 먼저 답했다.
 
  ― 그럼 이들 중에 몇 명이나 제대로 보상받습니까.
 
  “아직 파악이 안 되고 있습니다. 4만5000명 가운데 1700~2000명은 의병전역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의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고 나올 겁니다. 왜냐하면 해당 내용에 대해서 모르니까요.”
 
  ― 만약 군에서 다칠 경우 어떤 보상을 받게 됩니까.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먼저 기관보상과 국가에서 보상해주는 것이 있습니다. 기관보상은 국방부에서 상이연금이나 보상금을 주게 되고, 보훈처에서 국가유공자들에게 보상해주는 것이 정부보상이라고 보면 됩니다.”
 
 
  “미군처럼 우리도 군인들에게 안정감 심어줘야”
 
  ― 보상금에도 등급별로 차이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죠. 차이가 있습니다. 저처럼 장교나 부사관들은 복무 중에 기여금을 내기 때문에 조금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병사들도 차이가 있습니까.
 
  “네, 병사도 급수에 따라 보상이 다릅니다. 지금 기준으로 최소 1600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까지 지급됩니다. 그런데 이런 보상들을 모르고 지나간 사람들이 많다는 거죠. 지금도 모르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저에게 보상제도 관련해 알려줬던 친구도 이에 대해선 몰라서 얘기를 안 해줬습니다.”
 
  ― 해외 사례는 어떤가요.
 
  “미군 같은 경우는 아주 잘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부러워하죠.”
 
  ― 보상이 많아서 부러워하는 겁니까.
 
  “아닙니다. 보상이 많아서 부러운 것이 아니라 그 절차에 대해 상세하게 안내해주니 그것을 부러워하는 겁니다. 우리나라도 보상으로 치면 전 세계 5번째로 많은 편입니다. 그런데 안내 절차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니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미군들은 군에서 다쳐도 이런 보상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보다는 안정감 있게 군 생활을 하는 겁니다. 우리도 미군처럼 병사들에게 안정감을 심어줘야 합니다.”
 
  ― 군 간부 학교에서도 절차에 대해 교육하지 않나요.
 
  “그게 큰 문제입니다. 우리나라는 훌륭한 교육기관을 다 가지고 있음에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만약 보훈 절차에 대해 교육을 했더라면 병사들이 다쳤을 때 간부들이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려주면 큰 문제가 없죠. 국가가 우리를 챙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들어야 하는데 현실은 정반대죠. 미군은 상이군인 한 명에 전담으로 한 사람씩 붙어서 절차를 안내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미군은 국가가 우리를 지켜주는구나 하고 국군은 우리가 나라를 지켜도 국가는 우리를 버리는구나 하고 생각을 하죠. 인식의 차이가 크죠.”
 
 
  “천안함 생존 장병 보훈등급 제일 낮은 7급”
 
  ― 천안함 생존 장병도 도왔다고 들었습니다.
 
  “네, 우연히 천안함 생존 장병을 만나게 됐습니다. 그들 중 대부분이 보훈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너무 마음이 아팠죠. 그래서 그들을 도와야겠다고 생각하고 2019년부터 천안함 전우회 사무총장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 지금은 생존 장병이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습니까.
 
  “지금도 인정을 못 받은 인원이 10명 정도 있습니다. 모두 신청은 했는데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 받을 겁니다.”
 

  ― 그들도 절차를 몰라서 못 한 겁니까.
 
  “몰라서 못 한 사람도 있고, 뒤늦게 알았지만, 신청기한을 넘겨 못 한 분도 있습니다. 또 어떤 병사는 보훈처에 국가유공자 신청을 했는데, 돌아온 답이 ‘외상은 단기간에 치료 가능하고,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발병은 가능성이 낮아 국가유공자 자격을 줄 수 없다’고 통보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국가입니까. 정말 그들은 그날의 기억을 지우지 못하고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데 국가는 그날을 잊은 것 같습니다.”
 
  ―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은 장병은 보통 몇 급입니까.
 
  “대부분 보훈 등급에서 제일 낮은 7급을 받았습니다. 근데 이게 말이 안 되는 것이 지금 그들은 그 사건이 있고 나서 PTSD를 겪고 있습니다. 그날의 기억과 우리 사회 일부 사람들의 잘못된 시선으로 인해 많은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 잘못된 시선이라는 것은 어떤 걸 말하는 겁니까.
 
  “간단히 말해 천안함이 북한에 의한 침몰이 아니라 좌초됐거나 자작극이라는 주장이죠. 이것은 천안함 장병을 두 번 죽이는 격입니다. 당시 생존 병사 대부분은 나이가 20대였습니다. 정말 꿈 많고 희망이 가득한 나이에 나라를 지키다 지금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처음엔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먹는 족족 토하고, 물 한 모금조차 제대로 마시지도 못하는 병사들도 많았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악몽 시달리는 천안함 장병들
 
2010년 3월에 백열도 근처 해상에서 북한 잠수함 어뢰에 의해 격침된 대한민국 해군의 초계함인 천안함이 인양되고 있는 모습.
  ― 지금 생존 장병은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생존 장병 대부분이 전역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도 불면증에 시달리며 하루하루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병사들은 캄캄한 곳이 무서워 밤에도 불을 켜놓고 잠을 청한다고 합니다. 또 다른 이는 아직도 천안함 침몰 당시 동기들이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꿈을 꾸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나라를 지키다 정신적인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국가는 국가유공자 7급을 주었습니다.”
 
  ― 국가유공자 등급은 어떻게 나뉘나요.
 
  “쉽게 말해 신체에 극심한 장애가 있어 일상생활이 어려울 경우 1등급부터 천안함 생존 장병처럼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이들은 7급을 주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020년 고속정에서 수류탄 사고로 두 눈과 오른쪽 팔목을 잃은 김용수 상사와 같은 분들이 1등급을 받게 됩니다.”
 
  ― 제2연평해전 생존자도 돕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네, 한 분을 돕고 있습니다.”
 
  ― 그분들 중에서도 보훈을 못 받은 인원이 있습니까.
 
  “제가 알기엔 모두 국가유공자로 인정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분이 기존에 업무 중 사고로 인해 국가유공자가 돼 전투에서 싸운 공이 인정이 안 되고 있습니다. 너무 안타깝습니다.”
 
  ― 어떤 것이 안타깝다는 겁니까.
 
  “이분 같은 경우 업무를 하다 사고가 났음에도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싸웠습니다. 그런데 그전에 유공자로 등록되어 있다고 인정을 해주지 않는 것이 말입니다.”
 
  ― 중복이 가능합니까.
 
  “네, 중복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전투의 공을 인정받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실 업무상 공로도 좋지만, 목숨을 걸고 적과 싸워 우리나라를 지켜낸 공로만큼이야 하겠습니까.”
 
 
  “문자 서비스로 보훈 제도 안내해야”
 
  ― 지금 우리나라 보훈의 문제점은 뭐라고 생각합니까.
 
  “가장 큰 문제는 나라를 지킨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국가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복무 중 다치게 되면 심할 경우 의병전역을 해야 합니다. 전역을 하면 국방부에서는 더는 책임지지 않죠. 그 이후엔 보훈처 몫인데 보훈처도 당사자가 신청을 하지 않으면 절차에 대해서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그러니 다친 사람만 억울하게 사비를 들여가며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당연히 국가로부터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할 수밖에요. 그 가족들은 어떻습니까. 귀한 아들 잘 키워 군에 보냈더니 다쳐서 오고, 국가에서 신경도 안 써주고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 제도적 문제네요.
 
  “그렇죠. 너무 간단한 문제인데 사람들이 생각을 바꾸지 않으니 될 수가 없죠. 군에 가기 전에 병무청에서 문자가 오죠. 신체검사, 입대날짜 등 관련해서 문자가 옵니다. 이런 문자서비스를 이용해서 복무 중 사고를 당할 경우 어떤 제도가 있고, 절차는 어떻게 되는지 한 번씩만 보내면 다 해결될 문제를 그것마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걸로 국회, 국방부, 보훈처를 찾아다니고 있지만 바뀌지 않고 있어요.”
 
 
  “보훈처를 보훈부로 승격시켜야”
 
  안 대표는 보훈처 인력 문제도 꼬집었다. 안 대표는 “지금 국가유공자만 100만 명 가까이 된다”며 “이렇게 많은 인원을 보훈처 한 개 국에서 관리를 하려니 이게 되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보훈처를 보훈부로 승격시켜 나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빠짐없이 챙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 보훈부로 승격하면 어떤 이점이 있습니까.
 
  “지금 국가 보훈 자체가 사회복지 쪽에 편입되어 있습니다. 이는 나라를 위해 몸을 다쳤으니 마지못해 돈 몇 푼 챙겨주는 식입니다. 하지만 상이군인들은 돈 몇 푼 받으려고 국가유공자를 신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공로를 인정해주고 그들이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다는 자긍심을 심어줘야 합니다. 한마디로 명예죠. 다들 그걸 바라는 것이지 돈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보훈부로 승격되면 국가유공자들의 마음부터 달라질 것입니다. 사람들의 인식을 바꿀 좋은 기회예요. 그렇게 되면 군에 가지 말라고 해도 가는 사람이 생길 겁니다.”
 
  ― 무슨 얘기입니까.
 
  “생각해보세요. 만약 가족 중에 군 복무 중 다쳤는데 국가가 책임지지 않으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국가가 보호해주지 않으니 내 몸은 내가 챙겨야겠다고 하면서 군에 가는 것을 꺼릴 겁니다. 저라도 안 갈 것 같습니다.”
 
  ― 이번 대선 때 관련 내용을 윤석열 캠프에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네, 지금 장병이 처해 있는 현실과 현 제도에 대해서 잘 전달했습니다.”
 
  ― 앞으로 계획은 뭡니까.
 
  “지금 준비하는 것이 있습니다. 전자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한 60페이지짜리입니다.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보훈 절차에 대해서 누구나 알기 쉽게 만들고 있습니다. 국가와 기관 보상에 관한 안내서를 만들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그리고 쉽지는 않겠지만, 앞으로도 계속 어려운 이들을 도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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