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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완의 인간탐험

한국문학 번역하는 안선재 修士

“번역은 자연스럽게… 한 마디 한 마디 정확하게는 아닐지도…”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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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한국 소설은 더 이상 우울하고 민족주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드러내지. 이 소설들은 종종 괴기스럽고 소름 끼칠 만큼 재미와 상상력이 풍부한데 동서양이 함께 느끼는 보편성도 있고 재미도 있어. 어느 정도 (한국 소설이) 세계 서양문학과 하나 된 거야.”

⊙ 佛 테제 공동체 출신 수사… 1980년 김수환 추기경 권유로 한국에 정착
⊙ 서강대 교수이자 영문 번역가. 지금까지 50여 권 단행본 출간
⊙ “한국인은 ‘정확한 번역’ 강조하지만, 해외 독자가 재미있어야”
⊙ “유일하게 외우는 한국 詩는 천상병의 ‘歸天’”
⊙ “서양인은 ‘한국문학이 왜 이리 슬프고 우울하냐’고 물어. 한국 역사를 모르니까”
⊙ “된장찌개, 옛날 변소, 한옥, 사랑채, 안성댁, 보릿고개 같은 단어는 번역하기 어려워”

안선재
1942년생. 영국 옥스퍼드대학 퀸스컬리지 졸업(중세·근대 영문학 전공), 同 대학원 문학박사 / 서강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학과장 역임. 現 명예교수 / 옥관문화훈장 수상, 대한민국문학상 번역상, 미국 NCBA(Northern California Book Awards)의 번역 부문 수상, 대산문학상 번역상, 구상문학상 수상
사진=조준우
  한국에 온 지 42년째인 영국인 브러더 앤서니(Brother Anthony·80), 아니 귀화한 안선재(安善財) 가톨릭 수사(修士·서강대 명예교수)는 누구보다 한국과 한국인을 잘 안다.
 
  기자에게 “한(恨) 속에 흥(興), 흥 속에 한”이라며 한국인의 마음을 응축해 표현한다. 이 정도라면 탁월하다 해야겠다.
 
  수사는 수도원에서 독신으로 사는 남자 수도자를 일컫는 말이다. 프랑스 동부의 작은 마을 ‘테제(Taize)’ 공동체에서 1969년 성직자의 길로 들어섰다. 고향은 영국. 옥스퍼드대학 퀸스컬리지에서 중세·근대 영문학을 전공했다.
 

  지금까지 영어로 번역한 한국문학 단행본이 시, 소설, 논픽션을 합쳐 57권에 이른다. 김동리, 서정주, 구상, 천상병, 김수영, 김영랑, 고은, 김광규, 신경림, 정호승, 이성복 등의 작품이 세상에 나왔다. 작품집이 아니더라도 각종 매체에 실린 번역 작품이 부지기수다.
 
  비교적 최근에 번역을 마쳤으나 아직 출판사를 못 찾은 작품도 있고, 거의 번역이 마무리 단계인 경우도 있다.
 
  임성순의 장편소설 《극해》(2014)와 《컨설턴트》(2010), 공지영의 《높고 푸른 사다리》(2013)와 《먼 바다》(2020), 이금이의 《알로하, 나의 엄마들》(2020), 권정현의 《칼과 혀》(2017), 이정명의 《부서진 여름》(2021) 등이 이 경우다. 이금이의 소설 《알로하…》는 내년 10월 미국과 영국에서 출간이 확정됐다.
 
  안선재 수사는 한류(韓流) 전도사라는 점에서 한국과 한국인에게 복덩이 같은 고마운 사람이다.
 
 
  “한국인은 영어를 모국어로 번역해야지…”
 
안선재 수사와 정호승 시인. 안 수사는 정호승 시인의 시를 번역해 두 권의 영문 시선집으로 펴냈다.
  지난 7월 8일 서강대 인근의 낡은 오피스텔 12층 작은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는데, 정호승(鄭浩承) 시인이 자리를 같이했다. 안 수사는 정 시인의 대표작을 번역해 두 권의 시선집 《A letter not sent(부치지 않은 편지)》 《Though flowers I have never forgotten you(꽃이 져도 나는 너를 잊은 적 없다)》를 펴냈다. 두 사람은 남해안에 차(茶) 여행을 다녀왔을 정도로 각별한 사이란다.
 
  고서와 원서 등 책으로 발 디딜 틈 없는 사무실 한쪽에 생수통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정호승(이하 정) “물을 직접 사서 들고 오시나요?”
 
  안선재(이하 안) “(무거워서) 제자가 갖다줘요.”
 
  “건강해 보이세요. 그때 (출판사) 김 사장과 만났을 때보다 훨씬 좋아 보입니다.”
 
  “하하하.”
 
  ― 김애란의 단편소설 〈풍경의 쓸모〉를 〈The Utility of Landscapes〉로 번역하셨지요? ‘쓸모’를 Utility라는 단어로 번역했던데 이유가 있을까요.
 
  “기억나지 않아. 어떻게 다 기억해. 하하하.”
 
  ― 한국인이 영문으로 번역하면 벽안(碧眼)의 눈으로 보시기에 아무래도 어색한가요.
 
  “영어를 모국어(한국어)로 해야지 거의 못 해. 특히 (한국인) 영문과 교수들이…, ‘나는 영어 잘한다’고 하지만 번역은 (영어) 실력을 보이는(드러내는) 대상이 아니야.
 
  글쎄, 한국인은 ‘정확한 번역, 정확한 번역’ 하지만 그것 아니야. 해외 독자가 재미있게 봐야 해요. 그들이 번역이라 느끼게 하면 안 돼.”
 
  잠시 후 이렇게 덧붙였다.
 
  “자연스럽게… 그러나 ‘한 마디 한 마디 정확하게’는 아닐지도….”
 
안선재라는 이름은…
 
  브러더 앤서니 수사는 1994년 안선재라는 이름으로 귀화해 한국인이 됐다.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부처님 가르침을 담은 《화엄경》 마지막 부분에 선재 동자가 나옵니다. 그는 인도를 돌아다니면서 53명의 스승을 만나지요. 1994년 한국인으로 귀화할 무렵, 마침 고은의 소설 《화엄경》을 번역하고 있었는데 그 주인공이 선재 동자였어요. 나는 영국을 떠나 프랑스로, 그리고 필리핀에서 활동하다가 한국으로 귀화해 살면서 깨달은 게 많습니다.
 
  어느 정도 ‘어린 나그네’인 셈이지요. 그래서 제 이름 ‘앤서니’와 음절이 같고 발음도 비슷하게 안선재(安善財)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선재는 범어(梵語)로 ‘수타나’ ‘좋은 재물’이라는 뜻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詩는 詩답게!”
 
  ― 그런데 정호승 시인의 시는 정확하게 번역하려 했던데요.
 
  “난 비교적 정확하게 번역하려 해요. 제일 중요한 것은 시는 시답게!
 
  보통 시인에게 ‘이게 무슨 뜻이냐’고 물으면 자기도 모른다고 해요.”
 
  “하하하, 그러고 보니 번역하시며 한 번도 제게 안 물어보셨어요.”
 
  안 수사는 “정 시인의 시가 다 좋지만 한 편을 꼽으라면 시 ‘술 한잔’을 좋아한다”고 했다.
 
  우리는 시 ‘술 한잔’을 펴놓고 실제로 술 한 모금을 입에 대듯 음미해보았다. 안 수사의 번역을 곁들여 시를 소개하면 이렇다.
 
  인생은 나에게(Life has never bought me)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a drink).
  겨울밤 막다른 골목 끝 포장마차에서 (Many a time I’ve shaken out my empty pockets)
  빈 호주머니를 털털 털어(in a tent-bar at the end of a blind alley)
  나는 몇 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to buy life a drink),
  인생은 나를 위해 단 한번도(but life has never once)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bought me one drink),
  눈이 내리는 날에도(even on snowy days),
  돌연꽃 소리없이 피었다(even on days when stone lotuses, without a sound, bloomed),
  지는 날에도 (and faded).
 
  -정호승의 ‘A Drink(술 한잔)’ 전문

 
 
  ‘술 한잔’과 돌연꽃
 
  안 수사의 말이다.
 
  “정호승 시인의 시는 순(純)하고(해서) 좋아. 심플하면서도 깊이가 있어요. 시를 통해 위로, 희망을 받게 됩니다. 삶에 대한 지혜가 담긴, 그냥 시적인 게 아니고 메시지가 있으니까. 개인적인 괴로움보다는 이웃을 위한 시….”
 
  정 시인이 말을 받았다.
 
  “(혼잣말로) 이 시를 언제 썼더라…. 40대 후반? 아니, 40대 초중반일 거야.
 
  이 시를 쓸 때 아주 힘든 일이 있었는데 어떤 분노로 시를 썼어요. 하지만 시는 분노, 증오로 쓰지 않잖아요. 그땐 그랬어요. ‘술’의 은유는 분노와 절망이었는데 세월이 흐르니 이 ‘술’이 사랑으로 바뀌었어요.”
 
  조금 뜸을 들인 후 이렇게 덧붙였다.
 
  “김현성씨가 곡을 붙이고 가수 안치환씨가 편곡해 노래로 만들었는데 안치환씨가 ‘아직도 인생이 술 한잔 사주지 않았느냐’고 물어요. 내가 답했죠. ‘사줘도 너무 많이 사줬다. 지금은 대취, 만취 상태!’라고. 하하하. 일흔 넘게 인생을 살게 해준 것만으로 감사해요.”
 
  ― 시 끝부분에 ‘돌연꽃’이 나오는데 돌연꽃이란 게 실제 존재합니까.
 
  “흔히 석탑 아래 기단부에 보통 연꽃이 새겨져 있잖아요. 그게 석연(石蓮)인데, ‘석연이 피었다 진다’고 하면 시 맛이 없어서 ‘돌연꽃’이라고 했죠.
 
  또 돌연(突然)꽃? ‘갑자기 꽃’이란 느낌도 주고…. 어쨌든 ‘석연’이 현실에서 피었다가 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지요. 은유적 표현입니다.”
 
  “(이 시를 번역할 때가) 기억나지 않아. 무슨 의미인지 모를 때는 대개 정확하게 번역하려 해요. 그리고 시는 설명하는 게 아니야. 하하하.”
 
  안 수사는 정 시인의 시 ‘수선화에게’도 좋아한다고 말하다가 “그런데 왜 제목에만 있고 시 속에 ‘수선화’라는 단어가 없나요?” 하고 물었다.
 
 
  ‘수선화에게’에 수선화가 없는 까닭
 
안선재 수사가 번역한 한국문학 관련 책들이 그의 좁은 오피스텔(서강대 인근)에 놓여 있다.
  정호승 시인은 이렇게 답했다.
 
  “수사님, 그게 궁금하셨어요? 하하하. 수선화 꽃대가 연약한 것처럼 사람도 여리고 약하잖아요. 수선화 꽃대에 핀 연노랑 빛깔은 어쩌면 인간의 외로움, 아니 외로움의 색채와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수선화는 겨울에도 피니까 어떤 의미에서 강한 꽃일 수도 있어요.”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정호승의 ‘수선화에게’ 전문

 
  ― 두 분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우린 생일이 같아요. 1월 3일.”
 
  ― 놀라운 인연이네요.
 
  “천상병문학제에서 정 시인과 만났던 것 같아요.
 
  사실 천상병(千祥炳·1930~1993) 시인을 생전에 한 번도 뵙지 못했어. 1993년 4월 28일 돌아가셨는데, 2주 후에 인사동 카페 ‘귀천’에 갔어요.”
 
  “다 기억하시네요. 천상병 시인이 돌아가시고 하관(下棺)할 때 가까운 문인들이 저더러 시 ‘귀천’을 낭독하라고 해서 낭독했어요. 그 인연으로 천상병문학제에 참여했죠. 그때 수사님을 가까이서 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내가 머리가 약해(나빠). 시 외울 수 없어. ‘귀천’만 유일하게 외워. 한국말과 영어 둘 다. 영어로 번역된 《귀천》 시집이 지금까지 24쇄나 팔렸어. 어쩌면 25쇄까지 나갔는지 몰라요.”
 
 
  천상병의 시 ‘歸天’,
  인생에 대한 귀한 메시지

 
  ― 우리말이든 영어든 시 ‘귀천(歸天)’을 낭독해주실 수 있을까요.
 
  안 수사는 약간 부끄러워하면서도 영어로 ‘귀천’을 노래했다.
 
  I’ll go back to heaven again(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Hand in hand with the dew(새벽빛 와닿으면 스러지는)
  that melts at a touch of the dawning day(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I’ll go back to heaven again(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With the dusk, together, just we two(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at a sign from a cloud after playing on the slopes(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I’ll go back to heaven again(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At the end of my outing to this beautiful world(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I’ll go back and say: It was beautiful…(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
 
  -천상병의 ‘Back to Heaven(귀천)’ 전문

 
  시 ‘귀천’ 낭송을 끝낸 뒤 안 수사는 자신의 느낌을 전했다.
 
  “뭐랄까. 퓨어(pure·순수)한… 완전히 시적(詩的)인 시야. 하지만 저 안에도 의미… 메시지가 대단해. (천상병이) 이 시를 1970년에 지었는데 3년 전 ‘동백림(동베를린) 사건’에 연루돼 고문을 당했어요. 아무 이유 없이. 집도 없고 돈도 없고 그를 돌보는 사람도 없었는데, 그 일이 있고 형님이 있는 부산에 내려가 6개월 동안 누워 있었다고 해.
 
  자기가 곧 돌아갈(죽을) 것이라 생각해 아일랜드 신부님이 오셔서 급히 세례를 주었대. 급하게. 하하하. 그 후 시인은 가톨릭 신자가 됐는데 가끔 명동성당에도 갔다고 해요. 시 ‘귀천’은 죽는 줄 알고 쓴 시예요. 보세요. 아주 좋지 않은 사건에 연루돼 다 죽어가는 상황인데도 ‘인생… 그래도 아름다웠다’고 하잖아. ‘그래도! 그래도!’ 말이지. 이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모르면 시 맛을 볼 수 없어. 삶에 대한, 인생에 대한 귀한 메시지라고 할까.”
 
  그의 바리톤 낭송에 정 시인도, 기자도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숙연해지는 느낌이었다. 우리 인생, 저 종잡을 수 없는 삶에 대해.
 
 
  “번역은 창조하는 사람이 아니라 언어를 옮기는 사람”
 
다섯 살 무렵 어머니(Nan Albina Green·1911~91) 품 안에서. 당시 아버지(Thomas Leslie Teague·1914~85)는 아프리카에 있었다. 안선재 수사의 본명은 안토니 그레이엄 티그(Anthony Graham Teague)다. 사진=안선재 수사 홈 페이지
  우리는 한국문학 번역에 대해 대화를 이어갔다.
 
  ― 번역은 창작자와 같은 에너지가 필요한가요.
 
  “창조하는 자는 작가입니다. 번역은 창조하는 사람이 아니라 언어를 옮기는 사람이죠. 원본을 버리고 마음대로 쓰면 그건 번역이 아니야.”
 
  ― 한국어의 의성어, 의태어를 만나면 어떻게 번역을 하나요.
 
  “그런 것은 번역할 수 없어. ‘졸졸’ ‘줄줄’ ‘질질’… 영어엔 이런 단어가 없어요. 이런 표현이 나오면 빼고 번역해요.”
 
  ― 한국 작가가 외국 독자에게 사랑받기 위해서는 정부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요.
 
  “아무것도 못 해….”
 
  ― 왜 못 해요.
 
  “중요한 것은 (정부가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입니다. 외국인이 한국 작품을 읽고, 더 읽고 싶게 만들어야지 국가가 나서면… 그냥 돈 버리는 거야.
 
  오피셜한 이야기지만 (한국문학을 영어로 번역한) 출판사는 사실 한국에 아무 관심이 없어.”
 
  안선재 수사는 “(정부가) 돈을 많이 들여서 한국문학을 (번역해) 해외로 보내지만, 대부분의 한국 작가는 영어를 못 한다. 영어를 못 하면 (그 소설과 관련한) 인터뷰를 자유롭게 하지 못하니” 해외 독자에게 책을 소개하거나 홍보하기 어렵다는 견해를 밝혔다. 계속된 그의 말이다.
 
  “마찬가지로 외국 작가들이 한국에 와도 말(대화)할 수 없어. 몰라. 유명한 해외 작가가 누군지 모르고 그들 작품을 번역할 수가 없어.
 
  2013년에 미국 소설가 메릴린 로빈슨(Marilynne Robinson)이 박경리문학상을 받았는데 한국 작가 중에 그가 누군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알 수가 없지요. 그의 작품도 한국인이 이해하기 어려워. 완전한 미국식 사고방식이나 생활습관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어.”
 
  ― 한국문학에 등장하는 소재나 내용은 어떤가요.
 
  “서양인이 우리(한국) 문학을 보고 ‘왜 이리 우울하고, 왜 그리 슬프냐’고 합니다. 20세기 한국인이 겪은 역사를 모르니까. 내가 1988년부터 번역을 했는데 단편소설 몇 편을 번역하니 재미없고, 우울하고, 슬프고…. 할 수 없이 시로 방향을 틀었어.
 
  시는 정서적 보편성이 있고 인간성에 공감할 수 있으니까.”
 
 
  “다 돈이야. 비즈니스가 돼야 출판해요”
 
  안 수사는 번역을 어렵게 만드는 한국문학의 어려움을 역사 흐름에서 들여다보았다.
 
  그에 따르면, 한국문학은 일제에 저항하거나 외부 세력에 의한 분단, 이념갈등과 전쟁 등 국가적 충격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6·25전쟁 이후 민주적이지 못한 정권이 뒤따랐고, 이들에 대한 비난과 항의가 용납되지 않았기에 작가들의 관심사는 국가 정체성, 개인의 존엄성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었다.
 
  비평가들 역시 “문학은 무엇에 저항하거나 그런 의식에 영감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시나 소설을 가벼운 오락으로 여기지 않았다.
 
  “1950년 이후 파괴와 분열, 빈곤의 끔찍한 시기에 6·25전쟁이든 산업화 과정의 도시 빈민이든 고통을 겪은 사람들 이야기가 새로운 문학적 규범이 되었어요.
 
  유머와 환상은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지만 그것 자체로는 가치가 거의 없었어.”
 

  안 수사에 따르면 1960년 4·19혁명 이후 신동엽·김수영·신경림 시인은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에서 영감받아 저항적인 문학에 자극을 주었다. 어두운 ‘다큐멘터리적 현실주의’와 고통, 소외에 대한 이야기를 선호하는 현상은 1990년대까지 계속되었다.
 
  그 시대 여성 작가들은 아파트에서 혼자 사는 기혼 여성들의 고독과 소외에 관심을 돌렸고, 가벼운 안도감이나 생활의 자그마한 기쁨은 거의 또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 역시 그 전통을 이어갔다고 볼 수 있다.
 
  안 수사의 말이다.
 
  “전쟁과 분단, 민주화, 한국인, 심리적 갈등 등 작가들이 한국적 현실을 중심으로 시와 소설을 썼어. 현실적인 딜레마에 울고 웃고…. 하지만 박완서 작가의 문학을 번역해도 해외 독자들이 선뜻 이해하기 어려워요. (소재를) 한국 중심으로 써서는 곤란해.
 
  (출판은) 다 돈이야. 비즈니스가 돼야 출판해요. 이 책을 읽고 사람들이 ‘좋다, 재밌다’고 할 만한 소설이나 시를 써야 해.”
 
 
  “한국인조차도 이제는 한옥에 안 살아”
 
1977년 홍콩에서 프랑스 테제 공동체 창립자인 로제 수사를 만나 환담하는 김수환 추기경. 사진=테제 공동체 홈페이지
  ― 흔히 우리는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 말하잖아요.
 
  “나는 국악(國樂)을 무척 좋아하는데 외국인 친구들에게 들려주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야.
 
  사실 한국인조차도 이제는 한옥에 안 살아요. 소설 속 옛날 변소, 한옥, 마루 같은 표현들은 정말 번역하기 쉽지 않아. 그리고 제일 어려운 게 ‘된장찌개’야. 그 맛…, 표현할 길이 없어. 또 ‘밥’이나 ‘밥그릇’도 라이스(rice)로 번역할 수 없는 거야.”
 
  안 수사는 또 ‘안성댁’이나 ‘보릿고개’ ‘사랑채’ 같은 단어와 만나면 너무 답답했다고 한다.
 
  “한국말 어려워. 사실 한국인도 서로서로 이해하지 못하지.”
 
  ― 한국말 쉽지 않습니까.
 
  “(번역 과정에서) ‘내’가 하는 것인지, ‘그분’이 하는 것인지, 유(you)가 하는지 몰라. 또 끝난 것인지, 하는 중인지, 할 것인지… 휴…. 언클리어(unclear·모호한)! 구글 번역기나 파파고(포털 번역기)를 돌려도 알 수가 없어. 하하하.”
 
  ― 우리도 노벨문학상 작가를 키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노벨상…, 필요 없어요. 하하하. 받기 위해 애쓰면 바보야.
 
  노벨문학상이 시리어스(심각하고)하고 미학적이며 스웨덴 같은 분위기를 선호하지만 그 대신 국경을 넘어 독자들이 책을 읽게 만드는…, 작가와 독자를 하나 되게 하는 거야. 그러다 보면….”
 
  안선재 수사가 쓴 영문 논문 〈Korean Poetry and Fiction in English Translation: A Personal Survey〉를 읽어보았다.
 
  그에 따르면 1970~2000년 사이에 한국의 시, 소설, 드라마 등 130여 편이 영문으로 번역되었다. 이 중 95편이 한국인 번역가의 손을 거쳤고 40편 이상이 국내에서 출판됐다.
 
  130여 편 중에 시는 53편, 소설은 63편이었다. 또 간행된 서적 44권은 여러 작가의 작품을 모은 선집(選集)이었다. 1979년이 되어서야 장편소설이 번역됐는데 소설가 안정효가 번역한 김동리(金東里·1913~1995)의 《을화》가 미국에서 출판됐다.
 
  2000년 이전에는 36편의 장편소설이 영문으로 번역됐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이 한국에서 출판됐다. 다시 말해 해외 독자를 겨냥하기보다 국내용에 가까웠다.
 
  그러나 2000년 이후 지금까지 한국문학의 영문 번역 책들이 130권 더 나왔다. 1970~2000년 사이 130여 권에 비한다면 비약적인 증가다.
 
  특히 100권의 영문 번역서 중에서 한국인 번역가 이름은 단 한명에 불과하다. 대개 안선재 수사 같은 외국인이었다. 또 국내 출간된 책은 거의 없었지만, 메이저 해외 출판사나 주요 해외 대학에서 간행한 경우도 없었다. 18권이 선집 형태의 출판이었고, 38편이 장편소설이었다.
 
 
  “한국 소설은 더는 ‘공부 소재’가 아니라”
 
안선재 수사는 한국 전통차 마니아다. 한국 전통차와 관련한 책도 여러 권 펴냈다. 사진=안선재 수사 홈페이지
  “신경숙의 《Please Look After Mom(엄마를 부탁해)》. 이 소설은 한국 소설이라 해외에서 주목을 받은 게 아니에요. 재미있어서 사랑을 받았어. 한국인은 ‘우리 한국문학, 우리 한국문학!’이라고 하지만 (해외 독자는) 한국 소설에 관심이 없어요. 재미가 있어서 관심을 가질 뿐이지. 요즘에는 (재미있는 한국) 만화도 번역되어 출간됩니다.”
 
  2011년 4월 미국에서 번역・출간된 장편 《엄마를 부탁해》는 비(非)미국 작가 데뷔작으로는 역대 최고인 초판 10만 부를 발행해 화제를 모았다. 미국 7개 도시와 유럽 8개국 낭독 행사를 가졌다고 한다.
 
  “신경숙의 장편을 출간한 미국의 출판사 ‘크노프(Knopf)’는 빅 네임(big name)이야. 그동안 한국 책을 내놓은 출판사는 작고 알려지지 않았거나 홍보 예산도 없는 곳이었어요.
 
  마침내 한국 소설은 더는 (한국을 이해하기 위한) ‘공부 소재’의 차원이 아니라 영화, TV 드라마, 그리고 뒤에 등장하는 K팝 같은 전 세계 연예산업의 자료로 보이기 시작했어.”
 
  ― 이제는 국내 독자만 의식해 글을 쓰는 시대는 지났나 봅니다.
 
  “국내 작가들이 전 세계를 즐겁게 하기 위해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을 이해한 것이지.”
 
  한국 정부가 관련 재단(한국문학번역원・문예진흥원)을 통해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장려하고 국내 작가의 작품을 해외 출판사가 펴내면 후한 자금을 제공했다. 또한 국내 작가들이 해외 문학축제에 나갈 수 있게 애를 썼지만 실제적인 영향은 거의 없었다.
 
  “한국 독자만을 위해 글을 쓰는 작가에겐 번역가가 필요 없어. 지명도가 있는 유명 작가인지 아닌지도 이젠 필요 없게 됐어요.”
 
  안 수사는 미국 뉴욕의 문학 에이전트인 바버라 지트워(Barbara Zitwer) 이야기를 덧붙였다.
 
  지트워는 젊은 서양 독자의 흥미를 끌 만한 국내 소설들, 특히 공포·공상과학·심리 스릴러물들을 골라 해외 출판사에 소개하는 중개 역할을 하고 있다. 젊은 소설가 중 배수아, 황선미, 편혜영, 정유정, 조남주, 김숨뿐만 아니라 김은수와 원로 작가 황석영의 작품이 번역돼 해외로 나갔다. 젊은 번역가 중에는 김소라 러셀(Sora Kim Russell)이란 이름의 번역가가 새로운 형태의 한류를 만들어내는 데 공헌하고 있다고 한다.
 
  “나도 지트워 제안으로 국내 장편소설을 번역하고 있는데 7편 중 단 한 편(이금이의 《알로하, 나의 엄마들》)만 출판사가 확정된 상태야.
 
  어쨌든 최근의 한국 소설은 더는 우울하고 민족주의적이지 않다(no longer gloomy and nationalistic)는 것을 드러내지. 이 소설들은 종종 괴기스럽고 소름 끼칠 만큼 재미와 상상력이 풍부한데 동서양이 함께 느끼는 보편성도 있고 재미도 있어. 어느 정도 (한국 소설이) 세계 서양문학과 하나 된 거지. 번역하면 재미있게 볼 수 있게 된 거죠.”
 
안선재 수사가 말하는 ‘번역의 즐거움’
 
  작품 속 사회적·개인적 맥락을 함께 전달하는 것이 번역가 임무
 
  안선재 서강대 명예교수가 영문으로 쓴 강연원고 〈The Joys of Translation〉의 일부를 번역해 소개한다. 오랫동안 한국문학을 영문으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느낀 소회를 담았다. “한국문학 작품들이 생겨난 사회적·개인적 맥락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와 함께 전달하는 것이 번역가의 임무”라는 점도 밝히고 있다. 번역은 포털 번역기 도움을 받았음을 밝혀둔다.
 
  〈젊은 한국인들은 종종 해외에 한국문학을 알리기를 열망하며, 많은 사람은 번역가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나의 첫 번째 반응은 엄중한 경고(a stern warning)다.
 
  번역가들은 첫 번째 언어, 즉 모국어로 번역해야 한다는 것은 널리 합의된 사항이다. 보통 한 사람이 유아기에서 2개 국어를 완전히 구사할 수 있도록 성장하지 않는 한 완전히 숙달된 유일한 언어는 하나뿐이다. 한국에서 이뤄진 영어 교육은 너무 열악해서 심지어 일류 대학을 졸업한 A+ 영문학도도 사실상 문법적으로 그리고 문체적으로 올바른 비즈니스 편지를 쓰기 어렵다. 한국에서만 공부한 이들과 영어권 국가에서 학교를 다니며 몇 년을 보낸 사람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아주 드문 예외를 제외하고, 한국문학을 영어로 번역할 수 있는 유일한 ‘원어민’ 한국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어린 시절을 해외에서 보냈다. 사실상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이다. 국내에서 교육받은 한국인은 항상 외국어를 한국어로 번역해야 한다(Koreans educated in Korea should always be translating from foreign languages into Korean.).
 
  매우 자주, 한국인들은 한국 시를 단어 대 단어(word-for-word), 행 대 행(line-for-line) 식의 등가로 번역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이는 서양의 번역 방식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매우 자주, 특히 오늘날 번역된 시는 원본의 매우 자유로운 버전이다. 물론 번역이 그 자체로 한 편의 시가 되도록 하는 것은 도전이다(The challenge is to enable the translation to stand as a poem in its own right). 물론 번역이 원작의 시적 담론을 너무 변화시켜서 그 결과가 현대 미국, 아일랜드 또는 영국의 시적 관행에 동화되도록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론적인 문제가 항상 있다. 다시 말해, 예를 들어, 시인 고은이 쓴 영어 번역시가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 시인과 같은 소리를 내야 하는가? 그것은 대답하기 쉬운 질문이 아니다.
 
  사람들은 항상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 시가 무엇인지 묻는데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말하곤 한다.
 
  나는 결코 그 시를 단순히 읽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시인의 삶과 가난, 체포와 고문, 신체적 약점, 아이 같은 마음을 사람들에게 들려준다. 그리고 그가 살았던 시대, 즉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군사정부에 대해서도 말해야 한다. 한 나라의 문학, 그 작품들이 생겨난 사회적·개인적 맥락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를 함께 전달하는 것도 번역가 임무의 일부이다.
 
  한국문학은 한국 역사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는 자신만의 독특한 목소리를 가진 보편적인 인간 경험의 일부이기도 하다. 나는 단지 번역할 때, 그 목소리가 분명하게 들리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면 해외 독자들도 한국 시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고, 읽을 가치가 있다고 느낄 것이다.〉
 
  “저녁에 어디 가서 막걸리 한잔 하자는 사람이 없어”
 
자신이 번역한 정호승 시인의 영문 시집 《A letter not sent(부치지 않은 편지)》를 들고 있는 안선재 수사.
  우리 셋은 서강대 인근 한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안 수사는 비냉(비빔냉면), 정 시인은 돌솥밥, 기자는 물냉(물냉면)을 시켰다. 안 수사의 젓가락질 솜씨가 무척 훌륭했다.
 
  ― 늘 젊은 제자들과 함께 대화해서인지 젊어 보입니다.
 
  안 수사의 말이다.
 
  “교수와 학생은 안 만나. 가르치는 관계니까 학생들이 교수와 얘기 못 해. (내가) 정년퇴임 후 대학원생과는 어느 정도 만나요. 그들과 여행도 갔다 오고 따로 술 한잔씩 하고.
 
  학생들 주례를 많이 섰어요. 그(결혼) 후에 안 와. 하하하.
 
  저녁에 어디 가서 막걸리 한잔 하자는 사람이 없어, 사실.
 
  나이 팔십이면 편안하게 가만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봐. 나처럼 한국에 오래전에 정착한 외국인 친구 두세 사람끼리 가끔 만나 막걸리 한잔씩 해.”
 
  그는 서강대 영문과의 터줏대감이었다. 1980년 9월부터 서강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1985년 정교수가 되었다. 외국인 교수로는 드물게 학과장을 지냈다. 수도자인 만큼 학생들에게 무척 엄격해 다가가기 어려워했지만, 고민이 있을 때면 가장 먼저 그를 찾았다고 전한다.
 
  ― 막걸리를 좋아하나 봅니다.
 
  “전에는 청주도 마셨는데 (정 시인에게) 있잖아요. 인사동 ‘장자와 나비’ 식당 말이에요. 식당 주인이 술을 직접 만들었잖아. 탁주, 청주, 소주…. 2년 전에 그만둔다고 해서 단골 몇 명이 모여 식사 끝에 한잔하는데 처음엔 술이 40도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또 한잔씩을 더 돌리는데 70도야.”
 
  ― 70도요?
 
  “그래도 술이 순해요.”
 
  다음은 안 수사와 정 시인의 대화다.
 
  “귀가 탈이 났나 봐. 잘 안 들려. 병원 가니 보청기가 필요하다고 해요.”
 
  “제가 2년째 보청기를 하고 있어요. 저는 귀뒤형을 쓰는데 귀속형도 있어요. 안경의 귀걸이처럼 생긴 귀뒤형은 코로나19로 마스크를 쓰게 되면서 불편해요. 저는 수사님께 귀속형을 추천하고 싶어요. 그게 편리해요.”
 
  “옛날부터 새소리가 안 들려. 매미 소리도 안 들리고. 하이톤은 안 들려. 식당에서 여러 사람과 대화할 때 조금 노력해야 해. 아주 심한 편은 아니에요. 집(화곡동 테제 공동체)에서 설거지할 때 누가 뒤에서 이야기하면 안 들려.”
 
  “요즘엔 보청기 구입에 정부 지원금을 받을 수 있어요. 100여만원까지. 한번 알아보세요.”
 
 
  테제 공동체는…
 
프랑스 테제 공동체 모습이다. 사진=조선일보DB
  서울 강서구 화곡본동의 주택가 골목 이층집. 프랑스 ‘테제 공동체’에서 파견한 수사가 3명 살고 있다. 3명 중 한명이 안선재 수사다.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 지방의 작은 산골마을인 테제는 유럽은 물론 아시아, 아프리카, 미주 등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젊은이가 몰려든다. 하루 3번의 침묵 미사(예배)에 참석하고 각자의 자유의지에 따라 수도생활을 한다.
 
  평생 영적·물적 재산을 공유하고 독신 생활과 단순 소박한 삶을 영유한다. 성가와 침묵으로 이뤄진 테제 미사에 한 번이라도 참여한 사람이라면 이 공동체를 흠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지금은 일반인이 참례할 수 없다.
 
  “나를 포함해 3명의 수사가 생활하는데, 오랫동안 둘이서 지내다 최근 젊은 수사가 왔어요. 그는 프랑스 테제 공동체에 있다가 왔대. 앞으로 중국과 일본, 타이완을 오가며 할 일이 많을 거예요.”
 
  ― 젊으니까 20대인가요.
 
  “네? 60대인데? 60대면 아주 젊지요.”
 
  ― (기자인) 저는 50대 초반입니다.
 
  “어리네.”
 
  ― 성소(聖召·성직자가 되기 위한 하느님의 부름)를 느끼셨나요.
 
  “이것 할까, 저것 할까 선택은 성소가 아냐. 성소는 하나밖에 없는 거야. ‘내가 가야 할 길은 이 길이다’ 하는 게 성소입니다. 내 마음의 기쁨, 생의 의미가 여기에 있다고 느끼는 거지요.”
 
  ― 성소는 한순간에 오나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오나요.
 
  “어느 날 갑자기. 난 9년간 공부하면서 장학금 받고 프랑스로 유학을 갔어요. 공부가 끝나면 뭘 할까? 교수? 별로…. 그 무렵 테제에 갔다가 ‘오, 예!’ 다른 데 갈 생각이 없었어요. 후회 없죠.”
 
  한국에 오기 전 그는 필리핀 남부 다바오에서 판자촌 주민들과 어울려 살았다. 우연히 판자촌을 찾아온 김수환(金壽煥·1922~2009) 추기경을 만나 한국에 와달라는 요청을 받고 선뜻 결심했다고 한다.
 
  ― 필리핀에서 3년 정도 계셨다고 하던데요.
 
  “아주 옛날이야기지. 30대 때. 더는 할 얘기가 없어.”
 
  ― 수사는 평수사도 있고, 사제수사도 있는데 사제의 길을 걷진 않았네요.
 
  “수도자는 수도원에 살면서 공동으로 함께 기도하고 봉사하는 사람입니다. 일이나 맡은 역할이 각자 달라도 공동체 생활을 같이합니다.
 
  그러나 본당을 책임지는 사제는 재미없어. 사제는 권력이야 권력!”
 
  ― 대학 사회도 권력 아닙니까.
 
  “옛날에는 괜찮았는데 요즘 교수는 각종 평가에다 보직… (손사래를 치며) 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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