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그때 그 사람

마흔 넘어 세계유도선수권대회 다시 도전하는 이원희 선수

“내로남불은 스포츠 정신이 아니다”

글 : 장원재  장원재TV 대표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스포츠 정신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확실한 것. 규칙을 지키며 경쟁하고 판정에 승복하며, 결과가 기대와 달라도 남 탓을 하지 않는 겁니다. 모든 잘못을 남 탓으로 돌리면 발전도 없고 반성도 없는 것 아닙니까. 스포츠는 정확합니다. 아닌 건 아닌 거죠. 내로남불은 스포츠 정신이 아닙니다. 또 하나, 규칙을 어기면 스포츠에선 바로 실격패입니다.”

⊙ 7월 말 소셜미디어 통해 현역 복귀 선언… “중장년들에게 ‘우리도 아직 할 수 있다’ 메시지 주고 싶어”
⊙ 2003년 2~12월 48連勝, 그중 44경기를 한판승으로 이긴 ‘한판승의 사나이’
⊙ 25세 5개월 때 올림픽,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을 모두 제패한 한국 최연소 그랜드슬래머
⊙ “‘위기는 곧 기회’는 잘못된 얘기… 위기는 준비된 자에게만 기회”
사진=전형찬
  2020 도쿄올림픽이 끝났다. 코로나바이러스에 맞선 인류의 응전(應戰). 우여곡절(迂餘曲折) 끝에 개막을 1년 연기하고, 전 일정을 무관중으로 치른 미증유(未曾有)의 축제였다. 흥행과 관광수입은 참패했지만, 전 세계적으로 시청률은 급상승했다. 집 밖 출입과 야외활동의 제한이 역설적으로 올림픽의 인기를 높인 것이다. 사람들은 TV로, 유튜브로, 케이블로, 그 밖의 각종 미디어로 올림픽을 체험했다. TV가 보여주는 영상만을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닌 인터넷을 종횡(縱橫)하며 다른 나라 모든 종목의 경기를 검색하고 실시간으로 올림픽을 즐겼다. 소셜미디어 (SNS)는 선수들과 팬들을 연결하고 사람 사이의 간격을 좁혔다. 금메달리스트가 가수 누구누구의 팬이라고 인터뷰하면, 그 누구누구가 곧바로 금메달리스트의 홈페이지를 방문해 감사 인사와 응원 댓글을 남겼다. 소위 말하는 본인등판(本人登板)과 상호소통이다. 중계도 남달랐다. 관중이 없으니 선수들 사이의 대화가 또렷하게 다 들리고, 그들의 표정이 더 눈에 들어왔다. 승리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 그 노정에서 보이는 인간적인 고뇌와 감정적인 동요가 이번만큼 섬세하게 드러난 대회는 없다.
 
  그래서 만난 사람이 있다. ‘한판승의 사나이’ 이원희(李元熹·40) 용인대 유도경기지도학과 교수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유도 -73kg급 금메달리스트. 첫 경기를 제외하고, 모든 경기를 한판으로 끝낸 완벽주의자. 다들 알겠지만 ‘한판승의 사나이’는 올림픽을 통한 영예로운 훈장이 아니다. 2003년부터 이원희는 세계선수권을 포함, 초일류들을 상대로 48연승, 그중 44 한판승이라는 불멸의 대기록을 세웠다. 이에 대한 국제유도계의 헌사(獻詞)가 바로 ‘한판승의 사나이’다. 그래서 이원희다. 그는 도(道)를 닦듯이 운동을 하고 자신을 연마했다. 일류(一流)의 목소리에는 그윽한 울림이 있다. 올림픽의 열기가 지나간 지금, 유도란 무엇인가, 올림픽이란 무엇인가, 세계 정상에 오른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를 묻고 싶었다.
 
 
  “유도, 점수 내기로 가는 경향”
 
  ― 이번 대회에서 대한민국은 양궁, 펜싱에서 펄펄 날았고 유도, 태권도, 레슬링, 복싱 등 투기(鬪技) 종목에서는 상대적으로 부진했습니다. 특히 전 체급에서 출전권을 획득한 유도에서 금메달이 나오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부진의 이유를 뭐라고 보는지요.
 
  “중압감 때문 아닐까요? 최근 추세는 유도가 무도(武道)라기보다는 스포츠, 다시 말해서 점수 내기로 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몇 년 전 국제유도연맹(IJF)이 다리 잡기를 금지했죠. 힘 유도 대신 기술 유도를 하라는 의도였는데, 현장에선 결과가 반대로 나왔습니다. 넘기는 유도 대신 ‘지도’를 유도하는 작전이 유행하고 있죠. 공격 범위가 줄어드니 노림수가 줄어들고 화려함도 사라졌어요. 단조로운 유도지만, 실력 차이가 미세한 상황에서는 이 방식이 이길 확률이 가장 높습니다. 이번 올림픽만 해도 연장전 승부가 많았잖아요?
 
  경향이 바뀌면 실전(實戰)을 통해 변화를 몸에 익혀야 하는데, 우리 선수들은 코로나19 여파로 오랫동안 실전을 치르지 못했습니다. 지루하고 답답했을 겁니다. 경기 감각이 떨어지고 있다는 걸 누구보다도 선수들이 잘 알거든요. 심리적으로 흔들리고, 긴장감도 높아지고, 메달을 따야 한다는 중압감은 더 커지고, 이런 점들이 종합적으로 작용한 결과, 100% 실력 발휘를 하기가 어려웠겠죠.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 올림픽의 중압감은 어느 정도입니까.
 
  “메달 유망주와 중상위권 선수가 느끼는 중압감이 다르고, 출전만으로 감사한 선수가 갖는 느낌은 또 다르죠. 역사상 가장 뛰어난 체조선수라는 평가를 받아온 바일스 선수가 이번에 여자 기계체조 단체전 경기 중 기권했잖아요?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에서 자신의 어깨에 ‘전 세계의 무게가 얹어진 것 같다’고 했다는데, 그 심정을 100% 이해하고 응원합니다.”
 
 
  “남아 있는 모든 하루가 올림픽이라는 마음으로”
 
이원희 선수는 2004년 8월 아테네올림픽 남자유도 -73kg 결승에서 러시아의 마카로프를 꺾고 우승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원희는 자타가 공인하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 금메달 유망주였다. 어떻게 중압감을 이겨냈을까?
 
  “저는 정면대결 했습니다. 도망가고 싶은 마음도 없고, 무조건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묘책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묘책을 찾아다닐 시간에 한 번이라도 더 연습해야 합니다. ‘연습을 시합처럼, 시합을 연습처럼’이 제 모토입니다.”
 
  태극마크는 개인의 것이 아니다. 나라를 대표해서 나가는 만큼 그에 걸맞은 결과를 내야 한다고 다짐하며 훈련 계획표를 짰다. 올림픽 개막 100일 전부터 일체의 외부연락을 끊고, 사생활 없이 오직 운동에만 전념하는 ‘집중단련(執中鍛鍊)’이다.
 
  “남아 있는 모든 하루가 올림픽이라는 마음으로 새벽 5시30분에 일어났습니다. 6시 등산, 하루 3회 훈련을 소화하고 저녁에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거나 치료를 받았죠. 잠들기 전에는 튜브 당기기 기술훈련을 했고요. 겨울에는 조금 일찍 일어나 반신욕(半身浴)을 했습니다. 날씨가 추우니까 훈련 가능한 상태로 미리 몸을 예열(豫熱)하는 거죠. 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서 작은 정성(精誠)을 모으는 겁니다. 정성이 모이면 큰 힘이 되고, 저만의 자신감이 자라납니다. 완벽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암시도 되고요.”
 
  매일 극한까지 자신을 몰아치면 그만큼 스트레스도 쌓일 터이다. 스트레스를 풀지 않으면, 스트레스는 괴물이 되어 몸과 마음을 습격한다. 보통 사람들이 술과 담배를 애용하는 이유다.
 
  “음주가 훈련에 도움이 된다면, 생리학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해도 상관없습니다. 특별히 알코올 분해 능력이 좋은 사람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알코올은 근육을 분해합니다. 운동선수 몸에 좋을 리가 없죠.”
 
 
  훈련, 연구, 山行
 
  이원희가 택한 스트레스 해소법은 ‘훈련’과 ‘연구’와 ‘산행(山行)’이다.
 
  “유도가 잘되면 기분이 좋고 스트레스가 풀리죠. 이 감각을 유지하며 선순환을 반복하면 행복해집니다.”
 
  ― 유도가 잘된다는 건 어떤 겁니까.
 
  “유도는 유능제강(柔能制剛)의 원리로 이루어지는 예술입니다. 부드러운 것이 능히 강한 것을 제압한다. 상대가 밀면 나는 당기고, 상대가 당기면 나는 밉니다. 신체 반응으로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고 상대의 중심을 읽는 거죠. 유도가 잘되는 날은 상대의 동작을 읽는 제 예측이 딱딱 맞아떨어집니다.
 
  유도가 잘 안 되는 날에는 무엇이 문제인지 찾는 과정을 갖습니다. 첫째로 제 심리상태를 점검합니다. 둘째로는 피지컬, 그러니까 육체적인 컨디션은 어떤지, 몸 전체의 근육이 적절하게 잘 이완되어 있는지를 살피죠. 셋째로는 영양과 휴식이 잘 조화를 이루는지를 따집니다.
 
  다음 과정은 동작 분석입니다. 연습 중 동작에 문제가 있었다면 하나하나 동작을 세밀하게 분석해서 어긋난 지점을 찾습니다. 점검하다 보면 문제가 풀리죠. 문제가 풀리면 다음 날 대련할 때 수정해서 연습합니다. 교정이 성공하면, 말할 수 없는 쾌감을 느낍니다. 유도의 흐름이 자연스러워집니다. 강물처럼요. 저는 이러한 과정 자체가 즐겁습니다.”
 
  산행은 본인에게 준 선물이자 심리 안정제다. 매 주말, 북한산에 올라 3~4시간 산중을 누볐다.
 
  “주말에는 운동을 쉬며 체력을 보충하는 선수도 있었는데, 저는 산에 가서 고품질 산소를 마시면 피로가 빨리 회복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른바 기도발이 잘 받는다고, 목사님들이 ‘능력봉’이라고 부르는 바위가 있는데 매번 그곳까지 올라갔어요. 기도하면서 마음도 가라앉히고, 다음 주 훈련 계획도 점검했습니다. 일종의 ‘마인드컨트롤’이었죠.”
 
 
  ‘빈틈을 만들어라’
 
  준비를 철저히 하면 두려움이 없다. 자신감은 많은 훈련을 통해 기량이 좋아짐에 따라 상승한다. 국민타자 이승엽의 어록 ‘진정한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와 비슷한 맥락이다. 유도에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철저한 준비일까?
 
  “저는 세 가지를 염두에 둡니다.
 
  첫째, 기술의 감각과 기술력입니다. 근력을 키우는 것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근력은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키워야 하는 기본 사항이죠. 기술 감각은 ‘힘 조절’입니다. 얼마만큼 어느 부위에 힘을 넣고 빼느냐, 언제 기술이 가장 깨끗하게 들어가느냐를 무수한 반복연습을 통해 몸에 익히는 거죠.
 
  둘째는 ‘빈틈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유도가 어려운 건 상대가 쉬지 않고 계속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그냥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저를 공격하려고 끊임없이 빈틈을 보는 거잖아요? 상대는 내가 원하는 쪽으로 움직여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상대의 중심을 읽고 어디가 비어 있는지, 허점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올림픽에 나오는 선수는 모두 세계적인 선수다. 누가 이겨도 이상하지 않다. 다들 절정 고수들이기에 도무지 틈이 없는 것이다. 그래도 이기려면 어떻게든 틈을 만들고 찾아야 한다.
 
  “밀고 당길 때 상대가 끌려오거나 밀리는 순간 내가 원하는 상황이 만들어지면 그대로 가는 거고, 안 끌려오면 힘을 빼고 밸런스를 유지해야 합니다. 만약 상대가 앞뒤로 중심을 두고 있다면 옆으로, 좌우로 중심을 두고 있다면 앞뒤로 살짝 틀어줍니다. 그러면 상대의 힘이 분산되거든요. 힘이 분산되면 당황하고 빈틈을 보이죠. 순간적으로 그 틈을 노리고 들어가야 합니다.
 
  간단한 예를 들면 업어치기는 상대를 앞으로 메치는 기술이고, 밭다리후리기는 상대를 뒤로 메치는 기술입니다. 만약 제가 업어치기만 계속하면 상대의 몸도 바로 반응합니다. 본능적으로 제 공격을 방어하죠. 그때 업어치기 동작을 취하다가 갑자기 밭다리를 들어가면 상대가 자신도 모르게 물러섭니다. 순간적으로 중심이 뒤로 가기 때문에, 처음보다 쉽게 넘길 수가 있는 거죠.
 
  하지만 세계적인 선수들은 다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중심이 뒤로 가지 않고 밸런스를 유지하죠. 그래서 밭다리로도 넘기기가 힘듭니다. 이런 선수들을 넘기려면 좀 더 고급 기술이 필요합니다. 똑같은 자세에서 앞, 뒤, 좌, 우, 위아래로 동시에 여러 방향에서 기술을 넣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기술 들어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선수의 고집’
 

  이원희가 말하는 세 번째 준비는 ‘자기 고집을 버려라’다. ‘선수의 고집’이란 무엇일까?
 
  “내가 잘하는 것만 하는 겁니다. 업어치기가 특기라고 그 기술을 주로 연습한다고 해보죠. 근육이 그쪽으로 특화(特化)되고, 다른 기술을 연습하려면 주 근육이 아니어서 ‘과연 이 기술이 실전에서 먹힐까?’ 불안한 마음이 생깁니다. 불안하니까, 알면서도 바꿀 수가 없는 거죠. 제가 불안하면 상대가 바로 알아차려요. 유도는 살을 맞대고 하는 운동이잖습니까. 모든 스포츠가 마찬가지지만, 상대방에 맞춰서 전술을 세워야 승리합니다. 기록경기는 내가 잘하면 금메달을 딸 수 있지만, 상대가 있는 종목은 내 장점만 키워서는 세계 정상에 오를 수 없어요. 그런데 그 불안감을 넘어서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준비를 철저히 했어도 실전에서는 또 다른 과제가 남아 있다. 실시간 데이터 수집을 바탕으로 한 머리싸움과 응용(應用)이다. 격투기는 연습한 것을 그대로 재현하는 반복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도는 몸으로 하는 대화입니다. 상대보다 잘해야 이기잖아요? 상대가 움직일 때마다 몸의 중심이 변하는데, 매트 위에서 그 패턴을 빨리 찾아야 합니다. 당기려고 하는지, 잡으려고 하는지, 상대 근육의 습관도 파악해야죠. 내가 이런 공격을 하면 어떻게 방어했나, 경기 시작부터 동선과 동작이 어땠나,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파악하는 겁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 어디를 잡고 어떤 기술을 어떻게 써야만 수학 문제처럼 답이 또렷하게 보이곤 하죠.”
 
  강호동은 천하장사 시절, 샅바만 잡아도 상대의 생체정보를 인식할 수 있었다고 한다. 어디 근육이 강한지, 어디를 다쳤었는지를 바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일류 선수는 그래서 상대가 착각하도록 특정 근육에 힘을 넣어 일부러 역정보를 주기도 한다고 했다.
 
  1994년 11월 5일, 마이클 무어를 상대로 10라운드 KO승을 거두며 무려 45세 나이로 21년 만에 프로복싱 세계 헤비급 챔피언에 재등극한 조지 포먼(George Foreman)의 다큐멘터리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포먼은 9회에 체력 소모가 심한 레프트 롱훅을 여러 차례 날린다. 빗나가리라는 걸 날면서도 일부러 날린다. 정확성이 떨어지는 펀치를 거듭 던져 상대방이 많이 지쳤구나 인식하도록 하여 움직임을 한쪽으로 제한하는 고도의 수 싸움이다. 바둑으로 치자면 성동격서(聲東擊西) 전법이다.
 
 
  ‘머리 가죽이 해골에 달라붙는 느낌’
 
  이렇게 철저하게 준비를 해도, 예비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출전이 불가능하다. 모든 체급 경기의 숙명인 체중조절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저는 -73kg 체급을 뛰기 전에는 -66kg급을 뛰었습니다. 대회 출전할 때마다 9~10kg을 뺐어요. 대회가 다가오면 하루에 1kg 감량을 목표로 운동하는데, 4~5일을 굶어도 마지막 날은 항상 2~2.5kg 초과입니다. 절대로 빠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경기 전날은 특별조치를 취합니다. 여름에도 바지 두세 벌 껴입고 땀복과 겨울 파카 입고, 털모자에 마스크까지 쓰고 뜁니다. 땀이 나야 체중이 주는데, 그렇게 극한으로 힘들지 않으면 땀이 나지 않거든요. 지방이 거의 없는데다가 수분까지 말라 있으니까요. 땀 나가기까지가 정말 고통스럽고 오래 걸리는데,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땀이 나면 그때부터 시작입니다. 호흡이 터지도록 계속 뛰어야죠.
 

  우리는 땀구멍이 열린 상태에서 옷 입은 채로 사우나를 갑니다. 사우나 안에서 계속 운동을 하면 체중은 빠지는데, 몸이 쪼그라드는 느낌이 듭니다.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어서 숨쉬기조차 힘이 듭니다. 침은 삼키지 말고 다 뱉어야 하는데, 수분이 아니라 가루를 뱉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죽을 만큼 힘들면 잠깐 밖에 나와 숨 돌리고 바로 또 사우나로 들어가 운동을 합니다. 그렇게 서너 번 들락날락하면, ‘이 정도면 됐다’라는 신호가 옵니다. 제 경우는 머리 가죽이 해골에 달라붙는 소름 끼치는 느낌이 그 신호였죠.
 
  그제야 사우나 밖으로 나오는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몸이 타는 것 같더라도 옷을 벗으면 안 되고, 밖에 나와서 그 열기가 다 식을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계속해서 땀이 나고 있는데 옷을 벗으면 땀이 바로 식기 때문이죠. 체중을 달아보면 100g 이하입니다. 음료수 딱 1병 마실 수 있는데, 그 맛이 정말 천상의 맛이죠.”
 
 
  ‘체중을 맞췄을 때의 성취감’
 
  유도는 예전에 경기 당일 시합 개시 3시간 전 계체량을 했지만, 지금은 경기 전날 체중을 잰다. 선수 보호 차원이다. 계체량이 끝나면 회복(回復)에 전념해야 한다. 싸울 수 있는 상태로 뼈와 근육을 정비하는 과정이다.
 
  “빨리 수분 보충을 해야 하는데, 선수들 대부분은 음식 섭취를 잘 하지 못합니다. 오랫동안 먹지 않아서 위가 줄어들어 있거든요. 조금만 먹거나 마셔도 위가 찌르르 아픕니다. 저는 링거를 맞으면서 주스 마시고, 죽 먹으면서 에너지를 채웠습니다.”
 
  룰이 바뀌어 회복할 수 있는 시간 하루가 주어지지만, 그렇다고 마음껏 음식을 섭취할 수는 없다. +5% 중량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전날 계체량을 통과했더라도 경기 당일 랜덤으로 몇 명 선수의 체중을 측정한다. 예를 들어 80kg이 한계체중이라면, 이때 +5% 즉 84kg을 초과하면 실격이다.
 
  이는 2014년 12월 이후 무패(無敗) 행진을 펼치며 2016년, 2020년 올림픽 2연패, 세계선수권대회 3회 우승에 빛나는 오노 쇼헤이(大野將平·29) 때문에 생긴 규칙이다. 2013년 그랜드슬램 파리대회(Grand Slam de Paris 2013) -73kg급 경기. 오노는 몽골의 하시바타르(Khashbaatar·37)에게 준결승에서 패했다. 문제는 하시바타르의 중량이었다. 그는 밤새 초인적으로 음식을 폭풍흡입해 무려 90kg에 가까운 몸을 만들어 오노를 이겼다. 상식적으로는 믿기 어려운 증량(增量)이지만, 실제 사례가 나온 이상 규칙을 합리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었다.
 
  국제대회 출전 수준의 선수들은 1년에 7~8회 체중을 뺀다. 가장 힘든 감량은 대회가 연이어 열릴 때다. 감량과 증량을 며칠 단위로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원희의 경우 전국체전, 열흘 후 대표선수 선발전, 선발전 이후 유럽 전지훈련을 떠나 일주일 간격으로 프랑스・오스트리아 대회에 참가하며 체중을 뺀 적이 있다. 몸은 축나지만, 체중을 맞췄을 때의 성취감은 긴장을 풀어주는 묘한 매력이 있다.
 
  이번 대회 여자 -48kg급에 출전한 강유정 선수는 머리카락을 잘라 체중을 맞췄다. ‘삭발투혼’으로 화제를 모았지만, 32강전에서 패하며 꿈을 접었다.
 
  “아무리 빼도 체중이 안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 최후 수단으로 머리카락을 자르죠. 100g쯤 빠집니다. 저는 그 기사를 보고 걱정이 들었습니다. 원만한 체중조절을 하지 못한 것은 컨디션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니까요. 강유정 선수는 얼마 전에 무릎 수술을 했습니다. 쉬어야 하는데, 대회에 나가 랭킹포인트를 쌓아야 올림픽에 나갈 수 있으니까 계속 무리를 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강 선수가 인간의 한계까지 싸웠구나, 머리카락을 잘라 체중을 맞출 정도라면 자기 실력을 100% 발휘할 몸이 아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유도 시작
 
2004년 1월 제41회 백상체육대상 5대상 투기부문 수상. (왼쪽부터) 아버지, 누나, 이원희, 어머니. 사진=이원희 제공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유도의 심오한 세계가 비경(祕境)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산봉우리를 돌면 또 다른 거산(巨山)이 나왔다. 자나 깨나 유도만 생각하는 이 남자는 어떤 어린이였을까. 언제부터 유도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을까.
 
  이원희의 출생지는 서울 경희대병원이다. 아버지 이상태(李相泰·64)는 청량리 일대에서 활동하던 의협 남아로, 오락실, 인쇄소 등을 운영했다. 기골이 장대하고, 취미로 복싱을 하던 장사(壯士)였다. 어머니 이상옥(李相玉·57)은 미용실, 복덕방을 하며 살림을 보탰고 현재는 신학대학을 나와 목회를 하고 있다.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골목대장 이원희 어린이가 동네 아이들을 때리고 다니자 아버지는 청량리 시조사 뒤 청림유도관으로 아들을 데리고 갔다. 이원희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일이다.
 
  “격투기 중에서도 직접 때리고 맞는 건 피하자고 하셨어요. 유도를 하면 예의와 인성(人性)이 바른 사람이 된다며 권유하셨는데, 도장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첫날부터 학교 파하고 도장으로 달려가서 밤 10시까지 훈련했지요. 재미있어서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당시엔 학교 등록선수가 아니라 체육관 관생이 입상하는 건 매우 드문 일이었는데, 저는 입관 10개월 만에 전국대회에 나가서 3등을 했습니다.”
 
  유도에 재미를 붙인 건 특별한 계기가 있다. 체육관을 같이 다니던 김보섭이라는 동네 형이 있었다. 몸집이 호리호리하고 힘도 없어 보였는데, 붙을 때마다 결과는 완패였다. ‘기술’ 때문이었다. 기술 없이는 아무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 유도의 묘미였다. 승부욕이 끓어올랐다. 기술을 배운 뒤로는 어른들을 넘기는 재미도 있었다. 어른들은 기특하다며 꼬마의 기술을 다 받아줬다. 내 힘과 상대의 힘을 활용해서, 힘들이지 않고 거구를 넘기는 재미는 손끝을 넘어 온몸에 전율을 일으켰다. 미친 듯이 유도에 몰두하는 아들을 ‘키 크라’며 어머니가 1년을 쉬게 했다. 5학년에서 6학년으로 넘어갈 무렵이다.
 
 
  “스스로 타협하면 지는 것”
 
  ― 유도가 평생의 직업이 된 건 언제입니까.
 
  “보성중학교 유도부로 진학하면서부터죠. 나는 이제부터 진짜 운동선수다, 도장과 경기장 이외에선 절대 싸우지 않는다, ‘올림픽 금메달을 꼭 딴다’라고 목표를 세웠습니다.”
 
  훗날 처음 만든 이메일 주소도 ‘opchampion’이다. 보성중 유도부는 보성고 유도부와 훈련을 함께했다. 그때 매일 체육관에서 만났던 보성고 유도부 에이스가 아테네올림픽 한국 남자 기수이자 -100kg 은메달리스트인 4년 선배 장성호, 3년 선배가 -60kg 2000년 시드니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정부경이다.
 
  ― 예의, 인성 이야기도 했고 선배 이야기도 했으니 묻겠습니다. 보성중·고 유도부는 선후배 규율이 엄했나요.
 
  “선생님과 선배들에게 예의를 지켰죠. 저는 유도선수 사이에 어느 정도 규율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유도는 스포츠 이전에 무술이잖아요? 전쟁에서 백병전 때 쓰이고, 사람을 상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위험한 운동이죠. 그래서 정신이 해이해지면 많이 다칩니다. 칼, 불 등 위험한 도구를 다루는 요리나 중장비 운전, 다른 격투기가 다 마찬가지라고 봐요.
 
  또 하나, 편하게만 갈 수 없다는 사정도 있습니다. 실력을 키운다는 건 자기의 한계를 넘어야만 가능한데, 사람이란 게 쉬고 싶고 힘든 일은 안 하고 싶고 그렇잖습니까? 그럴 때 저를 끌어주고 밀어주는 사람들이 선배고 코치죠. 폭력은 사라져야 하지만, 규율은 필요합니다. 운동선수는 운동선수다워야 한다고 봅니다.”
 
  ― 정신력을 말씀하는 겁니까.
 
  “네. 유도의 매력은 한 번의 실수가 곧 끝이라는 거잖아요. 큰 점수 차로 이기고 있다가도 혹은 지고 있다가도 단발 역전으로 승패가 뒤집힙니다. 그래서 연습할 때 절대 넘어가지 않는 정신력을 키워야 합니다. ‘넘어가면 죽는다!’라는 심정으로 버텨야 하는 겁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넘어가지 않으면 근육이 기억하고 습관을 들입니다.
 
  대표선수가 되면 하루에 여러 명 훈련 파트너를 상대하죠. 체력 훈련 마치고 지친 상태에서 여러 명의 상대와 돌아가며 대결하는 극한 훈련을 합니다. 저는 지쳐 있고 상대는 쌩쌩하죠. 그래서 지는 경우가 자주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본래 체력이면 얼마든지 이긴다’ 하는 건 자기 합리화입니다. 지쳐서 넘어갔더라도, 그 지점, 그 상황에서 약해서 넘어간 거니까 거기가 바로 약점인 겁니다. 정신력으로 끝까지 버티면 한계를 넘는 것이고, 스스로 타협하면 지는 거죠.”
 
 
  권성세 감독
 
  ‘유도에 미친 중학생’은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까웠다. 멋있는 유도를 하고 싶어서, 잠들 때까지 유명 선수들의 경기 영상 비디오를 보며 연구를 했다. 테이프가 늘어질 정도였다.
 
  “씨름의 자반뒤집기와 비슷한 배대뒤치기라는 기술이 있습니다. 선망의 기술이지만, 누워서 들어가니까 위험성도 크죠. 그래서 중·고교 선생님들은 이 기술을 가르치지 않았어요. 저는 비디오에서 본 게 있으니까, 떨리는 마음으로 연습 때 시도해봤죠. 집에 와서 오늘 동작과 비디오 속 동작 차이를 비교하고, 비디오 속 동작이 정확하게 나올 때까지 계속 연습했습니다.”
 
  꼬맹이 제자의 열정을 높이 산 권성세(權聖世·64) 감독이 이원희의 도전정신을 더 키워줬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이원희를 믿었다. 온갖 시도를 해도 제지하지 않았다. 2004년 올림픽 때 남자팀 감독으로 참가한 스승 앞에서 이원희는 금메달을 땄다.
 
  2체급 프로복싱 세계챔피언 홍수환(洪秀煥)은 ‘상대가 예쁘면 덜컥 겁이 난다’고 했다. 그만큼 안 맞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귀여운 악마’ 유명우(柳明佑)는 얼굴 자체가 무기였다는 말도 있다. 말이 난 김에 덧붙이자면, ‘곱상한 최민호 형’은 태릉선수촌에서 가장 열심히 하는 선수였다. 올림픽 전 연습 때 주변 분위기가 숙연할 정도였다. 훈련할 때 ‘금메달’ 예감이 왔는데, 2004년엔 체중조절 실패로 동메달, 4년 후엔 기어이 전 경기 한판승 금메달의 신화(神話)를 썼다.
 
  ― 두 사람 다 한판승의 명수인데, 유도 스타일은 다르죠?
 
  “네. 민호 형은 허리 근력이 세계 최강이니까 버티다 넘기는 힘의 유도를 하고, 저는 힘 대 힘으로는 겨루기가 싫어서 타이밍을 맞춰 정확하게 기술을 거는 스타일이죠.”
 
  고등학교 3학년 때 성적은 1년 내내 전승. 성인대회인 국가대표 선발전에도 나가 3등을 했다. 대학은 용인대로 진학했다. 유도대(柔道大)로 출발한 전통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66kg급으로는 계속 2위. 2001년 전국체전에서 처음 우승하고 드디어 2등에서 벗어났다며 눈물을 흘렸을 정도다.
 
 
  48연승 44 한판승
 
2003년 8월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에서 이원희는 -73kg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사진=이원희 제공
  2003년 -73kg으로 체급을 올린 뒤 전성기가 찾아왔다. 행운이 따라준 결과다.
 
  “2002년 -66kg급에선 아시안게임 선발전 2위, 대학연맹전 3위를 했죠. 2월 파리 오픈에서는 쿠바 선수에게 져서 2위를 했고요. 2002년 말 -73kg으로 체급을 올리고도 국내 랭킹 3위였어요. 동급 챔피언 ‘유도 천재’ 최용신(43) 선배가 장염으로 유럽대회 출전권을 반납하면서 저에게 기회가 왔습니다.”
 
  2월 15~16일에 열린 2003 헝가리 오픈 우승이 이원희 시대의 출발점이다. 이후 12월 코리아 오픈 결승전까지가 바로 전설의 48연승 44 한판승의 대장정이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 하지만, 그건 잘못된 얘기입니다. 위기는 준비된 자에게만 기회니까요. 준비를 안 하고 있으면 위기는 그냥 위기입니다. 좀 더 참담해질 뿐이죠. 저는 3등이었지만, 체중도 적정하게 유지하며 훈련을 멈추지 않고 오히려 훈련 강도를 높였습니다. 정규 훈련이 끝나고 매일 한 시간씩 추가로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면서 ‘준비된 자’가 되고 있었죠. 어차피 올림픽 금메달로 나아가는 과정이었으니까요. 기회를 잡아 부다페스트 대회에서 우승하고도 별로 흥분하지 않은 이유입니다. 귀국 후 하루도 안 쉬고 바로 연습을 시작했어요. 정규 프로그램을 마치면 추가로 중량 운동을 하고, 동작을 정밀하게 가다듬는 개인 운동을 하고, 마무리 중량 운동을 하고 나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른 선수들이 하는 만큼 하는 건 노력이 아니니까요.”
 
  엄중한 훈련의 열매는 달았다. 이어진 국가대표 1차 선발전에서 결승전 최용신전(戰)을 포함, 전 경기 한판승 우승, 2차 선발전 또한 전 경기 한판승 우승을 거뒀다. 8월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8월 21~31일) 우승, 9월 오사카 세계선수권대회 우승(9월 11~14일), 제주 아시아선수권대회(10월 31일~11월 1일) 우승 등 혁혁한 전과(戰果)를 올리자 세계가 이원희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화장실 벽을 치며 울어”
 
  메이저 대회를 다 우승했는데, 엉뚱한 곳에서 연승 행진이 멈췄다. 우승을 자신하던 코리아 오픈(12월 5~7일)이다.
 
  “용인대 체육관에서 경기가 열렸거든요. 후배들에게 뭔가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의욕 과잉이었죠. 결승전 상대가 1999년 세계선수권자 지미 페드로 선수(미국)였는데, 제 기술이 깨끗하게 들어갔어요. 한판이라고 생각했는데 절반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 직후, 경기 중인데 갑자기 힘이 빠지더군요. 그때까지 억지로 버티고 있었는데, 오버워크의 후유증이었습니다.”
 
  결과는 연장 승부 끝 판정패. 차라리 후련했다. 연승에 대한 중압감이 사라졌으니까. ‘이때 패배가 없었더라면, 올림픽 금메달이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이원희는 생각한다. 예방주사를 미리 맞은 것이기 때문이다. 페드로는 올림픽 16강전에서 만나 14초 만에 먼저 절반을 따고, 반격에 유효를 내주었지만 1분25초를 남기고 소매들어 업어치기 한판으로 설욕(雪辱)했다.
 
  2004년 1월 모스크바 대회 우승으로 자신감을 회복했는데, 이원희는 발목을 심하게 다쳤다. 주변에서는 올림픽 금메달은 당연히 따는 것으로 기대했는데, 실제 준비 과정은 영 부실했다. 스트레스와 중압감이 최대치로 상승했다.
 
  “속도 모르는 기자들이 취재 요청을 하는데, 언론사 마감 시간이 있으니까 제 훈련시간을 쪼개야 했습니다. 일정이 망가지더군요. 그래서 어느 시점부터는 인터뷰를 다 사절했어요. 도복 두 벌이 흠뻑 젖을 정도로 훈련하는데 예전 같으면 한 번 대련할 때 4~5판을 넘기던 제가 한 번도 못 넘기고, 심지어 질 때도 있었습니다. 계속되는 컨디션 저하에 미칠 지경이었죠. 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화장실에 가 벽을 치면서 일주일에 4~5번은 펑펑 울었어요.”
 
 
  “내려놓기와 포기는 다르다”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웠고 고민은 즉시 해결이 불가능했다. 그를 일으켜 세운 건 신앙의 힘이다. 목사님인 어머니가 명상을 권했다. 마음속 전광판을 만들고 1에서 100까지 숫자를 켜며 마음을 다스렸다. 어느 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는 성경 마태복음의 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내가 너무 교만했구나, 승패(勝敗)는 신(神)의 영역이다’라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내려놓으니 마음이 편해졌다.
 
  “내려놓기와 포기는 다릅니다. 포기는 아예 노력 자체를 중단하는 것이고, 저는 더 열심히 운동하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정신이었다. 런던올림픽 유도는 템스강 하구 도크랜드의 엑셀 런던 이벤트홀에서 열렸다. 대진표를 받아보니 정말로 ‘이기고 지고, 메달을 따고 못 따고는 인간이 상관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러 만든다고 해도 더 어렵게 만들 수 없을 만큼 대진운이 나빴기 때문이다. 강자가 전부 한쪽으로 몰린 구도였다.
 
  완전히 내려놓으니 오히려 힘이 나고 신앙심이 커졌다. 32강 첫 상대는 벨라루스의 아나폴리 라류코프. 접전 끝에 유효 2-1, 효과 1-1로 판정승. 하지만 경기 중 손가락이 탈구되는 부상이 따라왔다. 진통제 없이 극복하고 싶어 테이핑만 하고 다음 경기를 준비했다. 손가락이 부어오르고 통증이 찾아왔지만, 마음은 역으로 담대해졌다. 8강전은 2001년 유럽선수권 우승자 우크라이나의 게나디 빌로디드와의 경기. 36초 만에 밭다리치기로 끝낸 전광석화(電光石火) 같은 한판승이었다. 이 선수의 딸이 이번 올림픽 -48kg급 동메달을 딴 다리아 딜로디드다.
 
  준결승 상대는 몰도바의 빅토르 비볼. 최대의 고비였다. 연승을 거두자 주체할 수 없으리만큼 자신감이 차올랐다. 방심했던 것이다. 깃을 잡아보니 상대는 발이 바닥에 끈적끈적하게 붙어 있는 것처럼 중심이 단단했다. 1분16초, 아차 하는 사이에 기술에 걸렸다. 옆으로 엎드려 누운 상태에서 코어근육으로 버티다 업어치기를 당했다. 넘어가면서도 ‘한판만 주지 마라’고 빌었다. 역전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판정은 절반. 툭툭 털고 일어난 이원희는 16초 후 빗당겨치기로 한판승을 거둔다.
 
  결승전 상대는 러시아의 비탈리 마카로프. 유효 2-0, 효과 1-1로 앞서 있었지만, 이원희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9초를 남기고 소매들어 업어치기에 이은 안뒤축걸기 연결기술로 깨끗한 한판승. 올림픽 챔피언의 탄생이었다.
 
  “허무했습니다. 죽도록 최선을 다한 결과가 이것인가? 꿈을 이루고 나니 목표가 사라진 거죠. 시상식 때도 공허했습니다. 한 1~2년은 많이 힘들었어요.”
 
 
  ‘그랜드슬램 달성’
 
이원희 선수는 2006년 12월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 남자유도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 그랜드 슬래머가 됐다. 사진=조선DB
  귀국하니 올림픽 금메달의 위력을 실감했다. 3개월 동안 기사들은 택시비를 받지 않았고, 식당에선 주인이나 손님들이 다투어 밥값을 내주었다. 밥값을 대신 내준 이 중엔 R&B의 대가 김조한도 있다.
 
  “제 결승전이 한국 시각으로 8월 17일 0시50분에 열렸는데, 비가 꽤 많이 왔다고 하더군요. 일요일 새벽이라 집에서 다들 TV를 보셨고, 시청률이 50%를 넘겼다고 들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영웅 대접을 받았죠.”
 
  마음이 붕 뜨니 훈련에 집중할 수 없었다. 일본으로 넘어가 시골학교에 캠프를 차렸다. 일본 유도선수들이 동경(憧憬)의 시선을 보내며 확실하게 선배 대접을 해줬다. 일본 유도협회 분석자료에 ‘이원희는 두뇌, 힘, 전술, 체력 모두 만점이다. 누구도 이길 수 없다’고 나와 있었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직전 또 발목을 다쳤다. 발을 딛지 못할 정도였다. 과다 훈련으로 인한 피로 골절이었다. 선수단 주치의 김경태 박사는 ‘경기를 할 수 없는 상태’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또 다른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하면 올림픽,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을 모두 제패하는 ‘그랜드슬램 달성’이라는 영예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원희는 무리했고, 그리고 우승했다. 25세 5개월의 한국 최연소 그랜드슬래머 등극. 2위는 2012년 런던올림픽 우승자 김재범의 27세 6개월이다.
 
 
  “우리나라 상황, 스포츠 정신 위반하는 걸로 보여”
 
이원희 선수는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세계선수권대회 도전 의사를 밝혔다.
  발목은 좋아지지 않았다. 결국, 2007년 5월 독일로 건너가 정밀진단을 하고 7월에 수술을 받았다. 집도의가 ‘이 발목으로 그동안 어떻게 걸어 다녔느냐?’고 했다. 인대가 끊어져 있었고, 뼈가 부러진 채 방치되어 괴사한 지경이었다. 발목을 네 군데 절개해 인대와 골반뼈를 이식했다. 2008년 올림픽 선발전은 왕기춘에게 패배.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했다. 준비가 부족하다는 걸 스스로 인정한 결과다.
 
  이원희를 인터뷰한 까닭이 하나 더 있다. 7월 말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현역 복귀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일과성(一過性) 발언이 아니라, 몸을 단련해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하겠다는 진지한 선언이다. 유도선수가 40대 초반에 복귀해 세계 정상을 노린다는 건 전례가 없는 일이다.
 
  ― 왜 그런 결심을 했습니까.
 
  “중장년들에게 ‘우리도 아직 할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습니다. 다른 이유도 있죠. 타이완 국립체육대학에서 교환교수로 2년을 지내다 보니, 우리나라 전체를 객관적으로 보게 되더군요. 외국에서 살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잖습니까. 제 눈에는 우리나라의 상황이 스포츠 정신을 위반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제가 스포츠맨이니까 스포츠 정신을 살리고 보여주자, 그것이 제 사회적 책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스포츠 정신이란 뭡니까.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확실한 것. 규칙을 지키며 경쟁하고 판정에 승복하며, 결과가 기대와 달라도 남 탓을 하지 않는 겁니다. 모든 잘못을 남 탓으로 돌리면 발전도 없고 반성도 없는 것 아닙니까. 스포츠는 정확합니다. 아닌 건 아닌 거죠. 내로남불은 스포츠 정신이 아닙니다. 또 하나, 규칙을 어기면 스포츠에선 바로 실격패(失格敗)입니다.”
 
 
  “올림픽은 나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
 
  ― 좋은 성과 거두기를 기대하겠습니다. 마무리 질문입니다. 이원희에게 유도란 무엇입니까.
 
  “호흡과 같은 것이죠. 제가 유도고 유도가 접니다.”
 
  ― 올림픽은 무엇인가요.
 
  “나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이죠. 내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나, 나도 모르는 내 최고의 모습을 찾는 최고의 경쟁입니다.”
 
  달변에 독서의 깊이가 느껴지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와의 인터뷰가 끝났다. 그가 왜 세계 정상에 올랐는지 알 것 같았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202110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북스토어
프리미엄결제
2020년4월부록
정기구독 이벤트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 월간조선 2018년 4월호 부록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