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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윤석열·최재형 입당 일등공신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

“尹·崔와는 같은 서클 선후배 사이 누구 편 들겠나?… 어니스트 브로커 역할 할 것”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woosuk@chosun.com

글 : 이경훈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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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후보, 중매 서줄 만큼 괜찮은 사람
⊙ 최재형 후보, 무언가 일을 쉽게 벌이지 않는 신중한 사람
⊙ 우리 당 기존 대선 주자 대부분 대통령직 감당할 수 있어
⊙ 이준석 대표, 별것 아닌 문제로 감정싸움
⊙ 非정치인 출신 후보들 구태정치는 배척해야 하지만 정치 자체를 부정해선 안 돼
⊙ 경선 과정서 중진의원은 중립 지키는 게 이상적
⊙ 21대 총선서 화려하게 부활… 강북 목소리 대변 위해 노력 중
⊙ 박근혜 정부는 중국에 할 말 다해
  국민의힘 전당대회(지난 6월 11일) 직후 이준석 대표, 오세훈 서울시장, 권영세 의원이 모였다. 이 대표가 권 의원에게 부탁했다.
 
  “사무총장을 맡아주십시오.”
 
  권 의원은 고사했다. 이유가 있었다.
 
  “제가 2008년도, 2011년도부터 2012년까지 사무총장을 두 번 했습니다. 10년 전 사무총장이 또다시 사무총장을 맡는 것은 아마 국민에게 인사(人事)로 보이지 않을 겁니다. 이 대표께서 저에게 사무총장직을 맡기려 하는 것은 아마 대선이라는 중요한 행사 때문일 텐데, 사무총장은 대선 관련 업무 외에도 일이 어마어마합니다. 꼭 사무총장이 아니더라도 대선과 관련해 도움이 될 수 있는 게 많습니다.”
 

  권 의원은 이 대표가 행여나 서운해할까 이렇게 덧붙였다.
 
  “저는 ‘이준석 체제’가 잘되기를 바라고, 그러기 위해 어떤 형태로든 도우려는 사람입니다. 지금 보니, 현재 야권의 대선 주자들은 과거 우리 당의 주요 주자였던 이회창 총재, 이명박·박근혜 대통령과는 다릅니다. 자족적인 캠프를 차릴 정도의 세력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따라서 인큐베이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무총장 대신 이런 역할을 하면 어떻겠습니까. 직함은 없어도 됩니다.”
 
  이 대표는 지난 6월 21일 권 의원을 대외협력위원장으로 임명했다. 권 의원이 대외협력위원장을 맡게 된 후 이 대표의 ‘8월 출발 경선버스론’은 현실화했다.
 
  야권의 장외 유력 대선 주자인 윤석열·최재형 후보가 대선 주자 영입을 총괄하는 권 의원을 만난 뒤 전격 입당을 선언하고, 당 대선 경선에 참여할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당 안팎에서는 ‘권영세가 아니었다면 경선버스론은 교착상태에 빠져 이준석 대표의 리더십 타격이 불가피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두 유력 주자의 영입에 성공했지만, 권 의원은 여전히 바쁘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합류와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영입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까닭이다. 피곤할 법도 하지만, 권 의원 표정은 밝았다.
 
  “벌써 6년이나 됐네요.”
 
  그는 2015년 《월간조선》과의 인터뷰를 떠올리며 취재진에게 인사를 건넸다. 당시 《월간조선》은 주중(駐中) 한국대사(주중대사)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국내에 들어온 권 의원을 심층 인터뷰했다.
 
 
  형사법학회 출신
 
  ― 큰일을 하셨습니다.
 
  “당 밖 대선 주자와의 소통 및 영입이라는 대외협력위원장의 임무 상당 부분을 완수했다고 국민에게 감히 말씀드릴 수 있게 돼 기쁩니다. 최재형 전 원장은 회동 하루 만에 전격 입당해주셨습니다. 윤석열 전 총장의 입장도 예상보다 빨랐고요. 김대중 전 대통령 직계 인사인 장성민 세계와동북아평화포럼 이사장도 입당해주셨습니다. 만약 이분들 특히 윤석열 전 총장의 입당이 늦어져 제3지대가 만들어지거나, 8월 말 열릴 우리 당 경선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우리 당 경선이 아주 불확실해졌을 겁니다. 나중에 윤 전 총장과 우리 당 후보가 단일화 경선을 한 번 더 해야 했으니까요. 윤 전 총장의 입당은 불확실성을 없앴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결정이라 봅니다.”
 
  ― 윤석열·최재형 후보, 모두 잘 아시죠.
 
  “두 분과 학교(서울대 법대)를 같이 다녔습니다. 최재형 전 원장이 75학번, 제가 77학번, 윤석열 전 총장이 79학번입니다. 우리 셋 모두 ‘형사법학회’ 출신입니다. 최 전 원장이 저보다 두 학번 선배, 윤 전 총장이 저보다 두 학번 후배라 저는 두 분을 잘 아는데, 두 분은 4학번 차이라 학교를 같이 다니지 않아 서로 잘 모르죠.”
 
  ― 최 후보는 학교 다닐 때 어떤 선배였습니까.
 
  “꼭 군인 같으셨어요. 이번에(지난 7월 15일) 최재형 전 원장을 만났을 때도 ‘선배님 만날 때는 꼭 군인을 대하는 것 같다. 아버님(故 최영섭 해군 대령)이 군인이셔서 내가 그런 인상을 받는 것 같다’고 말했죠. 최 전 원장이 웃으면서 ‘아, 내가 대학교 다닐 때도 그랬어요?’ 하시더군요. 강직하고 곧은 모습이 대학 시절부터 보였어요. 무언가 일을 쉽게 벌이지 않는 신중한 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 졸업 후에도 인연을 이어갔나요.
 
  “학교를 졸업하고 최 전 원장은 법원에, 저는 검찰에 있다 보니 자주 만나지는 못했어요. 거의 볼 기회가 없었죠.”
 
  ― 최 후보와 만났을 때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습니까.
 
  “최근 상황을 고려하면 되도록 이른 시일 내에 입당하시는 게 좋다, 7월을 넘기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당에 들어오면 확실한 인큐베이팅을 받을 수 있다고도 했지요.”
 
  ― 입당 등 최 후보의 신속한 결정이 정치권의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시작을 비교적 잘하셨죠. 아직은 좀 더 두고 봐야 하지만요. 만약 부족한 부분이 눈에 띄면 여러 조언을 할 생각입니다. 선거를 치르고 정치를 해본 사람이 (이것저것) 좀 가르쳐줘야 최 전 원장도 빨리 뜨니까요.”
 
 
  군인 같았던 崔, 사람 냄새 나는 尹
 
2021년 7월 30일 오후 윤석열 대선 예비후보가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 당사를 방문, 대외협력위원장인 권영세 의원에게 입당원서를 제출하고 있다. 사진=조선DB
  ― 후배 윤석열은 어떤 학생이었습니까.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법률가이지만 법률 외에도 사회과학 분야에 굉장히 관심이 많아 독서나 토론도 즐겼던 친구죠. 좋은 의미의 고집도 있고요.”
 
  ― 사람이랑 어울리는 것을 좋아한다는 평을 삐뚤게 보면 ‘주당’으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친구라고 해서 만날 술 마시고 쓸데없는 이야기를 노닥거리는 게 아니라 사회문제에 관해 토론하기를 좋아하는 친구입니다. 그렇기에 중매(仲媒)도 마음 놓고 설 수 있었던 거죠.”
 
  ― 중매를 서줄 정도로 윤 후보에게 인간적인 매력을 느낀 모양입니다.
 
  “제가 서울대 법대 3학년 때 형사법학회 회장이었습니다. 회장으로서 회원 뽑을 때였는데 가장 먼저 뽑은 사람이 윤 전 총장이었죠. 우리 동아리에 좋은 사람들이 있는 것을 알고 자기가 먼저 들어오겠다고 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괜찮은 사람, 열려 있는 사람 같아서 제가 일등으로 뽑았습니다.”
 
  ― 윤 후보가 ‘형사법학회 5·18 모의재판’서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사형을 구형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됐습니다.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었죠. 그때는 분위기가 약간 뭐랄까, 사회적으로 두려운 분위기였잖아요. 굉장히 용기 있는 모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그 모의재판에 참여했나요.
 
  “제가 졸업한 다음이라 현장에는 있지 않았습니다.”
 
 
  윤석열, 전두환 사형 구형 모의재판의 진실
 
  ― 《한겨레》 기자 출신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은 윤 후보의 전두환 사형 구형은 가짜 뉴스에 가깝다고 주장했는데요.
 
  “민주당 쪽 사람들은 실제 재판 결과도 왜곡하잖아요. 모의재판은 오죽하겠습니까. 한명숙 전 총리, 김경수 경남지사 재판 결과를 민주당 쪽 사람들은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있지요. 그러니 모의재판에서 나온 내용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비판하고 왜곡하겠죠.”
 
  김의겸 의원은 지난 7월 17일 윤 후보가 광주광역시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고 희생자 유족을 만나자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5·18 관련 윤석열의 진실을 밝혀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윤석열이 5·18 직후가 아니라 이전에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수배를 받고 도피를 한 게 아니라 지레 겁먹고 튄 거다”라고 했다. 다음 날에는 글을 올려 “‘전두환 사형 구형’은 ‘가짜 뉴스’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윤 후보에게 전 전 대통령 사형 구형을 직접 물은 전직 법조 출입기자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윤 전 총장은 제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검사로서 사형을 구형했다고 하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고 나는 판사 역할을 했다.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 소문이 나자 집안 어른이 나보고 다른 곳에 가 있는 것이 낫겠다고 해서 강원도 강릉으로 갔다. 얼마 뒤 경찰이 집으로 들이닥쳤다고 하더라.’”
 
  윤 후보는 또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제 기억이 맞는다면 모의재판은 5·18 직전인 1980년 5월 8일에 학생회관 2층 라운지에서 밤새워 진행됐어요. 보도 통제로 정확한 정보가 없었고, 막연히 전두환·노태우 이런 사람들이 군사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문만 듣던 때였어요. 당시 《동아일보》에 입사한 선배들로부터 정보를 듣고 온 법대 4학년생들이 궐석 모의재판을 계획했는데 저는 재판장을 맡았어요. 고(故) 신현확 총리께 너무 죄송했지만, 잘못된 정보로 인해 그분이 쿠데타 수괴인 줄 알고 사형선고를 내렸어요, 전두환에게는 무기징역을 선고했고요.”
 
  ― 대외협력위원장을 맡자마자 국민의힘과 거리를 뒀던 윤 후보와 만남이 성사됐습니다.
 
  “대외협력위원장직을 맡자마자 윤 전 총장한테 전화해서 ‘내가 이런 일을 맡게 돼 좀 봐야 하는데 언제 정치 참여 선언을 할 거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언론에서 6월 27일에 윤 전 총장이 정치참여 선언을 할 것이란 보도가 많았거든요. 윤 전 총장 말이 ‘27일은 아니고 그 며칠 뒤에 한다’더군요.(윤 후보는 6월 29일 정치 참여 선언을 했다) 윤 전 총장 말이 참여 선언 직후 만나자 하기에, 제가 기존 일정이 있으니 7월 3일에 보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날 첫 미팅을 하게 된 것이죠.”
 
 
  “탈(脫)여의도는 안 된다”는 충고
 
  ― 무슨 이야기를 나눴습니까.
 
  “캠프에는 자신의 알터 에고(alter ego·제2의 자아)가 필요하다. 후보가 바쁘다 보니 선거대책위원장은 중진급으로 알터 에고일 수 있는 인물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비정치인이 곧바로 캠프에 들어와서 정치를 잘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윤 전 총장에게 제 경험도 이야기해줬습니다. 나도 당신이랑 똑같이 검사 출신으로 정치를 시작할 때 기존 정치인에 대해 그리 좋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반드시 (부정적으로) 그렇게 볼 건 아니더라. 나쁜 정치인도 있지만 좋은 정치인도 있고, 무능한 정치인도 있지만 유능한 정치인도 있으니 잘 구별해야 한다고 말이죠.”
 
  ― 실제 잦은 말실수, 혼선 등 비정치인 중심으로 이뤄진 윤석열 캠프에 대한 비판이 있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MB)이 재임 초 ‘탈(脫)여의도’를 표방했는데, 여의도식 정치로 불리는 ‘구태 정치’는 완전히 배척해야 하지만, 저는 ‘여의도 정치’ 자체를 배척했다가는 나라를 제대로 운영하지 못한다고 강하게 비판했었지요. 선거는 정치적인 과정인 만큼 정치인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윤 후보에게도 여러 번 이야기했습니다.”
 
  ― 처음엔 충고를 안 들은 것 같습니다.
 
  “‘우리(비정치인)가 해도 자신 있다’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선거를 아는 정치인들이 캠프에서 일정·메시지·기획·홍보·조직 영역을 잘 조정해줘야 합니다. 후보는 정신이 없잖아요. 자기가 정치 9단이 아니라 10단이라도 혼자 다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최근 캠프에 정치인들을 대거 영입했잖아요. 아주 잘된 방향이긴 한데, 보완해야 할 부분은 좀 있다고 봅니다.”
 
 
  별것 아닌 문제로 감정싸움할 때 아냐
 
  ― 만찬 회동 뒤 ‘입당’에 온도 차가 있었다는 지적이 있는데요.
 
  “과거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대선 실패 과정, 지난 4·7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당시 오세훈-안철수 사이의 경선 과정을 봤을 때 윤 전 총장에게 ‘당연히 들어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이야기에 윤 전 총장이 수긍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서 ‘사실상 묵시적으로 입당에 동의했다고 본다’고 했죠. 그런데 윤 전 총장 캠프에 있는 사람들이 바로 부인했습니다. 그러니 언론에서는 ‘무슨 이견(異見)이 있다’는 식으로 보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어쩌면 당연한 수순입니다. 사실 본인은 입당하는 순간까지 ‘입당하겠다’는 소리를 못 해요. 안 하는 게 정상입니다.”
 
  ― 윤 후보는 7월 31일 소위 기습 입당을 했는데요.
 
  “저는 전격 입당을 두고 무슨 ‘패싱(passing)’이니, ‘빈집털이’니 하는 말이 참 한가한 소리라고 봅니다. 기회가 왔을 때 입당을 하는 게 중요하지, 입당 원서니, 입당 환영식이니 하는 요식 행위가 중요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내년 대선을 너무 쉽게 보는 것 같아 걱정이 많습니다. 우리끼리 별것도 아닌 문제로 감정싸움할 때가 아닙니다.”
 

  ― 입당을 미리 알고 계셨나요.
 
  “아니요. 저도 당일(7월 31일) 오전 10시 반 전후로 연락받았습니다.”
 
  ― 하루 전에는 알릴 수 있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하루 전에 알렸다가 틀어질 수도 있고요. 그렇게 되면 하루가 일주일이 될 수도 있고. 결심이 섰을 때 해야죠.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하지 않습니까.”
 
  ― 입당 후 윤 후보의 직설화법이 더욱 공격을 받는 모양새인데요.
 
  “대선 주자가 되면 기발한 비판을 많이 받게 되니 특별히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고 말해줬습니다. 억울한 점이 많을 겁니다.”
 
  ― 윤 후보에 대한 여권의 네거티브 공세가 거세지고 있는데요.
 
  “여당은 물론이고 친여(親與) 매체들도 그들 특성상 자기네들이 알아서 파고들어 기사를 내고 퍼뜨릴 겁니다. 우리도 이를 예상하고 준비해야죠.”
 
 
  안철수 대표에게 감정적으로 대하는 태도 지양
 
2021년 7월 14일 오후 최재형(오른쪽) 후보가 서울 정동의 한 식당에서 국민의힘 대외협력위원장인 권영세 의원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사진=조선DB
  ― 야권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긴 하지만 너무 윤 후보에 관한 질문만 한 것 같습니다. 윤석열·최재형 후보 말고도 당내에는 여러 후보가 있는데 지지율이 낮은 편입니다.
 
  “보수 유권자들의 분위기가 과거와 다르게 바뀐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정권 교체를 위해서는 경륜 있는 인물보다 새로운 인물이 적합하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우리 당의 기존 주자들 대부분은 충분히 대통령직을 감당할 수 있는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 윤·최 두 후보에 비해 다른 후보들이 차별을 당하는 것 같기도 한데요.
 
  “최 전 원장 입당 직후 공개 오디션 ‘나는 국대다’로 선출된 국민의힘 대변인단과 대화를 나누는 자리를 가졌는데요. 기존 주자들한테도 이런 기회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난 지도부가 가장 잘못한 부분은 잠재적 대선 후보군을 미리 띄워놓기는커녕 철저하게 짓밟은 것이죠. 이미 국민의 평가를 한 번 받은 사람이니까 한물갔다는 식의 평가를 하지 않았습니까.”
 
  ― 사실 국민의힘 입장에서 두 후보 외에 다른 후보도 선전해야 경선이 흥행하고, 정권 교체 가능성도 커지지 않겠습니까.
 
  “그렇죠. 지금 두 후보(윤석열·최재형) 외에도 당내 주자 한두 명 정도는 지지율이 더 올라 서너 명 정도의 후보가 흥미진진하고 치열하게 경쟁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정권 교체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당 차원에서 더 큰 노력을 기울여 기존 당 주자들의 지지율을 키워줘야 한다고 봅니다. 제 소관 업무는 아니지만, 안철수 대표의 국민의당과도 합당을 해야 합니다. 이준석 대표도 안철수 대표 측에 감정적으로 대하거나 몰아붙이는 태도를 지양해야 합니다.”
 
 
  “어니스트 브로커 될 것”
 
  ― 2007년 경선 때 같은 계파 갈등이 재현하진 않을까요.
 
  “중진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후보 간 경쟁이 지나치게 과열되면 이를 중재해야 하는데, 이를 중진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의 선거 과정을 볼 때, 이러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런 역할을 할 생각입니다.”
 
  ― 중립을 지키면서 중재 역할을 하겠다?
 
  “제가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이 붙은 2007년 경선 과정에서도 중립을 지켰습니다. 우리 후보 간의 경쟁이 지나치게 과열되지 않고 아름다운 경쟁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역할을 자임했죠. 당시는 제가 주니어(junior·재선)였기에 그런(중재) 역을 하기에는 좀 어려웠지만, 지금은 제가 더는 주니어가 아니니까 ‘중재자 역할’을 하는 데 충분하리라 봅니다.”
 
  ― 중진의원이 중립을 지키는 게 이상적이긴 하지만 이쪽저쪽에서 다 좋은 소리 못 들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뭐 그건 받아들여야지 어떻게 하겠습니까. 사실 경선 과정에서 사생결단식의 싸움이 벌어지면 웬만해서는 중재가 잘 안 됩니다. 반드시 ‘저 사람 정도면 소위 어니스트 브로커(honest broker·정직한 중개인)다’라고 할 만한 사람이 있어야 하죠. 제가 해보겠습니다.”
 
  ―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이 한창인데, 누가 유리해 보이는지요.
 
  “이낙연 후보가 이재명 후보를 추격하는 상황이긴 한데, 민주당 경선도 오는 10월이나 돼야 결론이 납니다. 그사이 변수들이 얼마든지 있죠. 지금 누가 이길지를 예측하는 것은 ‘뽑기’에서 뽑는 수준이지, 정확히 근거 있는 예측은 어렵습니다.”
 
 
  19대·20대 두 번의 총선 패배
 
  권 의원은 2008년 3선 의원이 됐을 때만 해도 보수정당의 ‘잠룡’으로 꼽혔다. 서울시장 선거 등 굵직한 선거가 있을 때면 단골로 하마평에 오르는 정치인이었다. 당시 보수 정치의 미래를 짊어졌던 그는 대선 주자로 성장한 후배 정치인들에 대한 질문에 답하면서 어떤 기분이었을까.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진 않았을까. ‘혹시 저평가 우량주라는 정치권의 평이 서운하지 않으냐’는 질문에 권 의원은 담담히 답했다.
 
  “요즘처럼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 정치권에서 5년 가까이 잊힌 인물로 지낸 것은 큰 타격”이라면서도 “결국 자신이 부족했던 탓”이라고 했다.
 
  ― 승승장구하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낙선했습니다.
 
  “19대 총선을 앞두고 사무총장직을 맡았습니다. 당연히 공천심사에도 참여했죠. 당시 박근혜 비대위는 처음으로 공천심사위원회 구성에 변화를 줬습니다. 기존에는 정치인들이 다수였는데, 당시는 비정치인 수가 더 많았죠. 공천이 굉장히 전문적인 분야인데, 잘 모르는 분들이 하시니까 제가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공심위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갔습니다. 잠시도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죠. 당일 하랴, 공천 업무 집중하랴, 인재 영입하랴, 정말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막상 제 선거운동은 전혀 하지 못했죠.”
 
  ― 소위 사무총장의 저주네요.
 
  “제가 너무 시간이 없으니까 공심위에서 비례대표 22번을 받으라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제 지역구에는 다른 사람을 공천하고요. 당시 100~120석을 바라볼 때라 당선권이 20번 정도였는데, 22번이면 배수의 진을 치고 열심히 하겠다는 의미가 있었죠. 그런데 당시 저는 제 지역구(영등포구 을)에는 그래도 제가 나가야 경쟁력이 있지, 다른 사람이 나가면 무조건 잃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무리를 해서 출마했는데 결국엔 안 된 것이죠.”
 
  ― 2016년 20대 총선 때도 패배했습니다.
 
  “당시는 우리(새누리당)가 170석을 얻는다고 말할 때였죠. 제가 당에 ‘이렇게 자만하다가는 2012년 민주당처럼 박살 난다’고 수없이 경고했습니다. 그런데도 친박 내에서도 진박이냐 일반 친박이냐 나눠서 쳐대고, 대통령과 생각을 달리했다는 이유 말고는 칠 이유가 없는 유승민 의원을 날리고…. 이런 오만함을 보이니 역풍이 불었죠. 선거운동을 열심히 했는데 역부족이었습니다. 물론 기본은 제가 부족해서 패배한 것이지만 굳이 변명하자면 이런 원인이 있었다는 겁니다.”
 
 
  21대 총선서 화려하게 부활
 
권영세 의원은 21대 총선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사진=조선DB
  ― 2020년 21대 총선 때 화려하게 부활했는데, 왜 지역구를 영등포구을에서 용산으로 바꾼 겁니까.
 
  “사연이 깁니다. 홍준표 대표가 취임하고, 영등포구을 당협위원장에서 잘렸습니다. 홍 대표가 특별한 기준 없이 당협위원장을 다수 교체했는데, 제가 그 대상 중 한명이었죠. 박근혜 대통령 당선의 일등 공신이었다는 게 이유가 됐다고 하더군요. 정치적으로 재기가 어려운 상황이었죠. 그런데 2019년 우연히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 우연한 기회?
 
  “날짜도 정확히 기억합니다. 2018년 크리스마스 다음 날(12월 26일)이었는데 아침 7시쯤에 사무총장이던 김용태 의원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형님이 용산에 살고 계시니 용산을 맡아주셔야 되겠다’고요. 제가 ‘아니, 당협위원장 신청 기간도 지났는데 무슨 소리냐’고 했더니, ‘현 당협위원장이 문제가 있어 바꾸려 공모를 했는데 인물들이 마땅치 않다’며 재공모를 하면 신청서를 내라더군요. 그래서 이 친구가 자기 어려울 때 도와줬다고 그 고마움을 갚나 보다 생각했죠. 제가 2012년 때 소위 친박 진영에서 김용태 의원은 반드시 자르라고 한 것을 안 된다고 막아 공천을 받게 했거든요. 어쨌든 신청서를 냈는데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는 겁니다.”
 
  ― 어떻게 흘러가던가요.
 
  “문제가 있어 교체하겠다던 현 당협위원장이랑 오디션을 보라는 겁니다. 결국 생각이 바뀌어 저를 떨어뜨리려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당시에는 설마 했습니다. 그 일로 제가 굉장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정치를 더 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고민할 정도였죠. 당시 2019년 초였는데 선거까지 1년이 남았으니 마지막 도전이라고 생각하고 한번 해보자 해서 용산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공천도 정말 힘들게 받았습니다. 2~3회 경선을 거쳤죠. 지역 주민들이 의회에 들어가서 바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셨는지 경선과 본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 강남을 제외한 당내 유일한 서울 지역구 의원인데, 21대 총선서 보수당이 이렇게까지 완패할지 예상하셨나요.
 
  “조국사태 이후 치러진 선거라 잠시 우리가 이길 수 있지 않겠느냐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하는데, 실제 밑바닥 민심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탄핵이 아직 정리도 안 됐고, 지도부가 나름대로 장외집회로 고생했지만, 장외집회만 하고 제대로 된 당의 노선을 확실히 정하지 못해 국민으로부터 대안세력이란 평가를 받지 못했죠. 선거 전 우리 당이 여론조사를 한 것을 보면 강북에서 저를 포함 2~3명밖에 당선이 안 되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뚜껑을 열어보니 저 혼자 당선이 됐는데 강북의 목소리를 대변하려 노력 중입니다.”
 
  ― 21대 총선에서 화려하게 부활한 뒤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출마 설도 나왔습니다만.
 
  “4·7 서울시장·부산시장 재보궐선거는 국민의힘 입장에서 반드시 이겨야 할 선거였기 때문에 지금 당장 경쟁력이 있는 후보가 출마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아직 5년 공백을 극복하지 못한 상태라 판단해 진작부터 출마 생각을 접었죠.”
 
 
  주중대사 출신의 고언
 
  반중(反中) 물결은 세계적 추세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나 홀로 중국 떠받들기’를 하는 형국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이라는 해묵은 사고에 사로잡힌 문 정부가 홍콩·신장 위구르 탄압 등 중국의 각종 비행과 불법에 일절 침묵한 채 미국 주도 경제번영네트워크(EPN) 참여 등을 주저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문재인 정부는 처음부터 중국이 원하는 건 다 들어줬다. 문재인 대통령 방중을 앞두고 ‘사드 3불(不)’로 군사 주권까지 양보했다. 이는 한국의 군사 문제에 중국의 간섭을 허용한 것으로서, 1905년 외교 주권을 일본에 빼앗긴 ‘을사늑약’과 맞먹는 외교적 참사로 꼽힌다. 우리 서해를 내해(內海)로 만들려는 서해 공정을 벌여도 성명 하나 없다.
 
  문 대통령은 바이든보다 먼저 시진핑과 통화해 “중국 영향력이 날로 강해지고 있다”고 칭송했다. 왕이의 공산당 서열은 25위권 밖인데도 한국에 오면 의전 서열 1·2위인 대통령과 국회의장, 전 여당 대표, 대통령 측근 등을 줄줄이 만나고 다닌다. 이 정도 되면 대접을 받아야 정상인데, 중국은 우릴 속국(屬國)으로 여긴다는 지적이다. 권 의원이 주중대사를 지냈을 시기엔 중국이 이처럼 우릴 얕보지 못했다. 눈치 안 보고 할 말은 다 했기 때문이다.
 
  ― 주중대사 시절(2013년 6월~2015년 3월 한중 관계가 굉장히 좋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중국에서도 유사 이래 최고라고 평했죠.”
 
  ― 근데 지금은 왜 이렇게 된 겁니까.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한미동맹이 굳건할 때였어요. 중국은 한미동맹과 한·미·일 삼각 협력관계를 바탕으로 한국을 바라보기에 한국을 굉장히 조심스럽게 대할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지금은 한미 관계가 거의 최악이다 보니 중국으로서는 한국에 특별히 관심을 두거나 구애를 할 필요가 없어졌죠. 한국 정치인들이 만절필동(萬折必東)이다 뭐다 하면서 (저자세로) 기어들어 가는데, 중국도 자신들을 낮춰가며 대등한 관계를 해줄 이유가 없죠.”
 
  ― 문재인 정부의 중국에 대한 굴종적 태도가 문제란 이야기죠.
 
  “현 여권은 집권 전부터 집권하면 사드 배치를 백지화할 것 같은 인상을 중국에 줬습니다. 송영길 대표도 야당 시절 지금의 여당 의원들을 데리고 중국에 가서 ‘사드 배치를 막아 달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을 했죠. 저는 서독의 예를 많이 참고해야 한다고 봅니다. 서독의 경제를 굳건하게 한 기초위에 소련과도 활발히 교류했는데, 서독이 소련에 할 말은 했습니다. 우리도 중국에 할 말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통일 전후 서독의 대외정책 살펴봐야
 
  ― 통일 전후 서독의 대외정책을 제대로 살펴볼 필요가 있겠네요.
 
  “우리 사드 이슈와 비슷한 게 서독과 미국, 소련 사이에서 벌어진 미국의 중거리 핵탄두 미사일인 ‘퍼싱2’ 배치 문제였는데 서독 정치인들은 소련의 총리들에게 할 소리를 다 했어요. 당시에도 미국은 ‘배치하자’고 했고, 서독에서는 반대가 많았어요. 소련은 ‘배치하면 안 된다’고 했고요. 그때 좌파 정당 출신 총리이지만 헬무트 슈미트는 소련에 ‘SS-20(소련의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완전히 철수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퍼싱2를 배치할 수밖에 없다’고 했어요. 서독은 소련에 ‘너희가 배치하는데 우리가 배치하지 않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당당하게 말했죠. 우리도 중국에 ‘북한 핵 위협을 어느 정도 제거하지 않는 이상 사드를 배치할 수밖에 없다’고 분명하게 이야기했어야 했습니다.”
 
  ― 박근혜 정부 때는 중국에 할 말을 다 했나요.
 
  “다 했죠. 시진핑 정부 초기 중국에서 방공식별구역을 갑자기 확장한 적이 있었어요. 중국 외교부 관계자들은 ‘중국의 방공식별구역이 넓어져 한국의 방공식별구역과 중복되는 부분이 많아져도 한중이 소통·협력하면 문제가 없다’고 했죠. 저도 그들에게 ‘중국이 방공식별구역을 확대하는 바람에 우리 방공식별구역을 다시 조사해보니 지나치게 작게 설정돼 있다는 게 밝혀져 국내 여론상 대한민국도 이를 확대할 수밖에 없다. 방공식별구역 확대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당신들 말대로 중복 부분이 많아져도 소통·협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 중국이 댄 명분을 똑같이 내놨으니 아무 말 못 했겠네요.
 
  “그렇죠. 외교는 당당하게 할 필요가 있어요. 할 말은 해야 합니다.”
 
  권 의원이 말을 이었다.
 
  “한번은 중국이 주재하는 (국제회의에서) 공동성명을 택하는데, 우리에게 불리한 내용이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공동성명에 서명하지 못한다고 했어요. 당시 시진핑 주석이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상하이(上海)에 가기로 했는데, 시 주석이 출발하는 날까지 우리가 버티니까 중국 외교 당국자가 ‘서명하지 않으면 한국이 회의를 망치는 것으로 이해하겠다’고 항의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는 걸 공동성명서에 만들어놓고는 이를 강요하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회의는 중국 스스로 망친 것이다’고 했어요. 당시 우리 외교부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플랜(plan) B안(案)을 준비해놓긴 했는데, 이 안은 보지도 않고 ‘중국이 성명서 내용을 바꾸지 않으면 한국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세게 나갔죠. 결국 중국에서 ‘어떤 문구를 고치면 받아들일 수 있느냐’고 하기에 우리 정부가 문제 삼은 모든 걸 지적했고 고쳐냈습니다. 플랜 B안보다 훨씬 우리에게 유리했습니다.”
 
  권 의원과 여러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순식간에 삭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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