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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20代의 386 비판 화제 《K를 생각한다》의 저자 임명묵

“386은 여전히 자신이 비주류라고 착각한다”

글 :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hy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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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에 의해 上下가 나뉘어… 내 노력으로 되는 것은 없다는 90년대생
⊙ 386은 쪽방촌에서 코란을 암송했던 이슬람주의자와 똑같다
⊙ 소련의 노멘클라투라처럼 자신의 富를 자녀에게 물려줘

임명묵
1994년생.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재학 중. 저서 《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
  만 26세 청년이 쓴 책이 화제다. 초판을 찍은 지 한 달 만에 3쇄를 찍었다. 기성세대들이 90년대생들을 바라보며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질문에 대해 청년은 조곤조곤 답한다. 그의 시각에 비친 기성세대, 특히 386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책을 읽으면서 기성세대들은 뜨끔해하고, 또 철부지로만 여겼던 20대 청년의 냉혹한 비판에 쓴웃음을 짓는다.
 
  화제의 책 《K-를 생각한다》의 저자 임명묵씨가 주인공이다. 책이 주는 묵직한 울림과 달리 인터뷰장으로 나온 그는 수다를 좋아하고 패기가 넘치는 발랄한 청년이었다.
 
  “서재에 처박혀서 책만 읽고 거대 담론에 몰입한 사람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있어요. 평소에는 웹툰, 웹 소설 보고, K팝 듣고 그래요. 걸그룹 ‘블랙핑크’ ‘에스파’ 좋아하고 그런 사람이에요, 저는.”
 

  ― 책이 화제입니다. 예상하셨나요.
 
  “아뇨, 저도 어안이 벙벙해요. 이준석씨가 당대표 되면서 2030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때에 출간된 것이 한몫을 한 것 같아요.”
 
  ― MZ세대의 지성, 비범한 20대라고 부르는데요.
 
  “어휴, 부담스러워요. 저는 20대를 만나면서 느꼈던 생각, 그들의 얘기를 솔직하게 표현했을 뿐이에요. 문명이나 역사, 사회와 국제 정세에 평소에 관심이 많거든요. 이런 것들을 오늘날의 대한민국에 비춰서 객관적으로 분석해보고 싶었습니다.”
 
  ― ‘20대, 너희는 대체 누구냐’를 묻지 않을 수 없어요. 제가 만나본 20대들은 자기 삶이 너무 힘들고 희망이 없다는 얘기뿐이었습니다.
 
  “기대치가 높아진 부분은 분명히 있습니다. 태어났을 때 국민소득 1만 달러였고, 10대 때 2만 달러, 20대 때 3만 달러를 경험한 세대입니다. 20대가 보기에는 대한민국의 성장과 함께했고, 3만 달러에 어울리는 중산층의 삶을 살 것으로 기대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까 거기서 오는 심리적 압박감이 크다고 보입니다. 학생부와 내신 기반 입시 제도로 경쟁을 줄여주겠다고 교육 개혁을 했지만 딱히 달라진 건 없었거든요. 결국에는 날마다 경쟁인 10대를 보냈는데 20대가 되어도 딱히 다를 바 없는 삶, 더구나 앞으로 나아질 기미가 없는 현실 앞에 좌절하는 세대죠.”
 
 
  진보 교육이 가져온 최고조 혼란을 경험한 세대
 
지난 5월 13일 《K-를 생각한다》 저자 임명묵씨가 책을 들고 인터뷰에 응한 모습. 사진=조선DB
  ― 하나하나 짚어보죠. 한창 친구들과 놀고 싶은 10대 때의 치열한 입시 압박은 어느 세대나 있었어요.
 
  “그렇죠. 그런데 90년대생은 진보 교육이 만들어낸 혼란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했던 세대였습니다. 진보 교육 옹호자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한국 교육이 무조건 실패한 것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교육을 사회적으로 당연히 통과해야 할 의례라고 생각한 덕에 사회 구성원들이 안정적으로 중등 교육을 이수했고, 입시 경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상위권 학생의 수준을 신장시켰습니다. 한국이 최빈국에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교육 전통 덕분이었다고 봅니다.
 
  물론 한국 사회의 고도화가 임계점을 넘으면서 기존 교육 시스템이 감당하지 못한 역기능은 누적되고 있었죠.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 것은 당연히 더 많은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 상류층과 중산층이었고요. 우리나라에서 계층 간 교육 격차는 계속 확대돼 교육이 더는 계층 상승의 도구가 아니라 세대 내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성격으로 바뀌었죠.
 
  이런 역기능에 대한 반발은 한국 사회가 민주화되고 김대중 정부 들어 본격화됐습니다. 당시 교육부 장관인 이해찬은 모의고사, 학력고사를 비롯한 각종 평가시험, 아침 0교시 자습과 야간 자율학습 같은 제도는 전면적으로 없앴습니다. 결국 이해찬 세대는 실패했지만요.”
 
  ― 이해찬은 ‘하나만 잘해도 대학 갈 수 있는 교육’을 캐치 플레이즈로 내걸었죠.
 
  “네, 저는 이해찬식(式)의 교육이 이상론적 실험과 같았다고 봅니다. 노무현 정부 때도 이런 갈등이 이어져서 대대적인 대입(大入) 개편안을 발표했죠. 수능 등급제를 통해 수능을 무력화시키고 내신을 상대평가로 전환해 내신 비중을 높이는 것,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해 대학이 자율적으로 학생을 선발토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내신이 중요해지면서 선행학습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교사들은 자신이 가르치는 부분까지 미리 학습하고 온 학생들이 학교 수업을 듣지 않는 것에 개탄했습니다. 이명박 정권 들어 입학사정관제는 대대적으로 확대됐고요. 노무현이 뿌리내리고 이명박이 만개시킨 입학사정관제는 진보・보수에 상관없이 무한 세습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생활기록부에 기재하는 내용에 제한이 없었기 때문에 과외나 부모의 지원을 요구하는 성취부터, 비정상적인 항목이 마구잡이로 작성됐습니다.
 
  이 시기에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명문대에 간 사람 중에 가장 유명한 사람이 조국 전(前) 법무부 장관의 딸이잖아요.”
 
 
  “날마다 경쟁과 투쟁의 나날”
 
  ― 수능 한 번으로 대학이 결정되는 것을 막고자 한 일이 365일 90년대생들을 긴장하게 한 건가요.
 
  “우리 세대는 생활기록부를 잘 쓰기 위해 시험에만 몰두할 수 없게 되어 독서, 봉사, 그룹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겉으로 보면 생각하는 교육, 마땅히 그래야 할 모습이었겠죠. 하지만 학종(학생부종합전형) 옹호자들의 말처럼 한국인들이 원했던 것이 ‘겉의 가치’를 충족하는 것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옆자리 친구조차 밟아야 할 경쟁 상대가 됐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 1학기까지 총 10번의 시험을 치를 때마다 심리적 압박을 받았습니다.
 
  내신은 시험 사이의 간격이 짧다 보니 그사이에 나갈 수 있는 진도도 짧고 시험 범위도 한정적이었습니다. 그런 시험에서 변별력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사고력 문제가 아니라 극단적 암기를 요구하는 문제가 나왔습니다. 내신 중심의 입시는 입시 경쟁에 참여하는 학생들에게 더 과중한 스트레스를 준 겁니다. 생활기록부를 기획해 만들어주는 과정 자체는 내신처럼 경쟁적이기보다는 이미 입장권을 획득한 학생들에게 학교가 부여하는 특혜에 가까웠습니다. 문제는 학교에서만 경쟁을 치열히 겪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온라인상에서도 20대는 경쟁, 갈등을 겪었습니다.”
 
  ― 온라인 공간은 또 다른 갈등의 장(場)이었다는 거죠.
 
  “90년대생은 10대 중후반부터 온라인에 노출됐습니다. 처음 우리가 접한 온라인은 ‘일베’ ‘디시인사이드’ ‘트위터’ ‘여초카페’ 등이었어요. 커뮤니티에 속한 이용자들이 다양한 주제를 두고 논쟁을 벌였습니다. 물론 세력 싸움은 예전에도 있었지만 2010년대 들어 갈등이 한층 격해지고, 현실세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빈도가 늘었습니다. 90년대생들은 온라인을 통해 증오・혐오에 대한 논의를 경험했습니다. 한국의 대중문화, 콘텐츠 산업이 발전한 것도 이즈음이었습니다.
 
  90년대생들이 20대가 되면서 이들은 콘텐츠의 생산자이자 소비자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대중음악, 엔터테인먼트 영역에서 음원차트나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치열한 경쟁이 상시로 일어나는 전장(戰場)으로 변했습니다. 투쟁이 2010년대 한국 콘텐츠 산업을 발전시킨 연료였고, 구성원들이 에너지를 쏟아 산업이 고속 발전할 수 있게 만든 심리적 동기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런 모종의 환경 변화가 90년대생들에 적대적으로 작용했고, 이로 인해 축적된 집단적 에너지가 90년대생을 투쟁적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날마다 경쟁과 투쟁의 나날이죠.”
 
  ― 다른 세대에도 이런 환경은 주어지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타당한 의문입니다. 그런데 90년대생들이 압박을 느끼고 투쟁적이 된 것은 객관적 현실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 주관적 심리의 문제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90년대생이 그 이전 세대보다 풍요로운 여건인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자신의 환경을 개인적으로 감각되는 수준에서만 인식하고 그 인식을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시대를 이해하지 않습니까.”
 
 
  부모에 의해 上下 계층이 나뉜 세대
 
2020년 1월 19일, 자유한국당 강당에서 ‘여의도 90년대생이 온다’라는 주제로 청년토론회가 열렸다. 사진= 조선DB
  임명묵씨는 달변가다. 우리의 대화는 책에서 습득한 내용을 달달 외우는 대화가 아니었다. 그가 체득한, 철저하게 경험한 지난날에 대한 기억에 기초한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90년대생을 집약하는 용어 중 하나는 ‘온라인 세대’라는 것이다. 서른에 스마트폰을 접한 오늘날의 40대와 그들은 철저하게 다르다.
 
  “90년대가 가장 공감했던 단어가 ‘헬조선’ ‘금수저’일 겁니다. 헬조선은 한국의 현실이 지옥과 같다는 의미로 쓰인 단어입니다. 수저 계급론은 물고 태어난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에 따라 인생의 모든 운명이 결정되고 그것을 뒤집기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체념의 정서가 담긴 말이잖습니까. 90년생들에게 확 와닿는 말인 거죠.”
 
  ― 소위 자신의 노력으로 신분 상승이 될 수 없다는 얘기인가요.
 
  “90년대생들이 상하층의 격차가 커졌습니다. ‘인서울’(서울 안에 있는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의 상류·중산층 문화와 그에 해당하지 않는 문화가 철저히 나누어집니다. 물론 아예 상층부, 다이아몬드 수저들은 여기에 포함조차 안 되고요. 저는 서울대에 재학 중이지만 조치원에서 나고 자랐고, 공익 근무를 천안에서 했어요. 인서울 문화와 아닌 문화를 모두 경험했습니다. 그 차이가 매우 커요. 문제는 이렇게 문화가 확연히 나뉜 것이 우리 세대가 처음이라는 겁니다. 특히 90년대생 본인의 잘잘못이 아니라 부모에 의해 철저하게 나뉜 것이 많은 문제의 시작입니다.”
 
  ― 부모의 계급이 바로 자녀의 계급으로 세습된다는 소리군요.
 
  “‘헬조선’ ‘흙수저’ ‘죽창가’ 모두 ‘아무리 내가 노력해도 출신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좌절감의 표현입니다. 이는 대한민국의 전통 가치와 다릅니다. 우리나라의 건국 신화는 평범한 사람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무학(無學)의 농사꾼이어도 본인이 노력하면 잘살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90년대생들은 우리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친구들보다 잘살 수도, 비슷하게 흉내 내면서 살 수도 없습니다. 그런 문이 아예 막힌 겁니다. 그러면서 ‘앞 세대가 성취했던 일들이 나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고 인식한 겁니다.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나고 극도로 단일한 공간에서 모든 구성원이 같은 기준에 따라 위를 향해 달렸던 전통적 모델이 붕괴한 거죠. 90년대생들은 그들의 부모인 60년대생들 사이에서 계층 분화가 시작됐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에게까지 계층화・세습화가 이뤄진다는 것을 체험한 세대입니다.”
 
  ― 부모 세대의 선택이 90년대생의 오늘을 만든다는 거네요.
 
  “60년대생은 대학을 졸업하고 발전하는 대외영역이나 양질의 일자리를 얻은 집단과 그렇지 못한 이들로 갈리지 않습니까. 두 집단의 격차는 2000년 무렵에 가시화됐습니다. 전자는 수도권에 아파트가 있고 자산을 갖고 있고, 자신들의 소득과 정보망으로 자녀들에게 높은 인적 자원을 마련해줬습니다. 하지만 후자는 그렇지 못했죠. 그 격차가 2010년 들어서 본격화됐고,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는 자녀가 어떤 영역에서 일하게 될지를 결정짓는 중요 변수가 됐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중요성은 점점 배가됐고요. 죽창론의 핵심은 ‘이놈이고 저놈이고 죽창 한 방이면 모두 죽는다’는 것이잖아요. 결국 계층 격차가 빚어낸 부조리의 사회를 완전히 파괴함으로써 쓸어버리겠다는 분개의 정서라고 봅니다.”
 
 
  ‘소확행’으로 살거나 ‘한탕주의’를 꿈꾸거나
 
2019년 11월 22일, 고려대 중앙광장에서 학생들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씨의 입학 취소를 요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 90년대생들의 또 다른 정서는 뭐가 있을까요.
 
  “자신의 작은 노동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계층이 달라질 수 없다는 것을 체득한 90년대생들은 ‘소확행’(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작은 일에서 행복을 찾는 삶을 산다는 말)으로 살아가느냐, 아니면 한 번의 도전으로 하류의 인생에서 해방되느냐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90년대생의 한탕주의는 2017년에 시작된 코인 열풍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90년대생들은 제대로 된 일자리도 없었지만, 이 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아르바이트해서 모으거나, 심하면 빚을 내서라도 코인 판에 뛰어들었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상위층으로 올라가 노동과 고된 경쟁에서 해방되는 길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코인을 규제하자 급기야 ‘이것은 이미 고도성장의 모든 혜택을 입은 기성세대가 90년대생을 절망적인 계층화에 몰아넣고서 최후에 남은 기회의 사다리마저 차버리는 행동이다’라고 치부했습니다.
 
  음지에서는 코인, 더 심하면 불법도박이었고, 양지에서는 2018년 무렵부터 시작된 유튜브 열풍이 한탕주의를 반영했습니다. 양질의 유튜브를 제작하는 것보다 당사자도 모르는 사이에 갑자기 인기를 끌어서 유튜브를 통해 소득을 올리는 사례가 속출했습니다. 이제 청년층은 그런 것을 선망하게 됐다는 것이죠. 이런 것들은 한탕주의의 다양한 유형을 보여줍니다.”
 

  ― 20대는 ‘공정’에 관심이 있다고 합니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고도 하는데요.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20대라고 해서 더 이전 세대보다 공정에 민감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90년대생들도 제도를 우회하고 무력화해서 자신들이 혜택받을 기회가 주어지면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90년대생의 상층부는 끝없는 경쟁에서 탈락하면 안 된다는 압박, 하층부는 상층을 보며 좌절감을 맛봤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90년대생들이 그나마 신뢰했던 것은 한국이라는 국가 시스템이었습니다.
 
  민주화 이후에 권력의 폭압적인 면은 줄고 ‘보모 국가’적인 면모(국가가 시민을 마치 어린아이처럼 과보호하려는 경향을 비꼬는 말)를 보였잖아요. 국가 시스템은 90년대생들에게 한국 사회에서 예측 가능성과 안정을 제공해주는 최후의 보루 같은 것이었습니다. ‘공정 사회’라기보다 ‘불안을 키우지 않는 사회’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조국 사태’가 이 부분을 건드렸고, 90년대생들이 여기에 반응하면서 이들이 공정에 관심이 많다는 오해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임명묵씨는 386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책의 상당 부분도 1994년생인 그의 눈으로 바라본 386세대에 대한 글이 많다. 원래 관심이 있었고, 이른바 ‘조국 사태’를 겪으며 386에 대해 심층적으로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86에서 전향한 사람들, 그들의 부모인 386세대를 수없이 만나 인터뷰했다고 한다.
 
 
  1994년생이 정의한 대한민국의 ‘386’
 
‘조국 사태’는 대다수의 20대에게 ‘부의 대물림’을 경험한 사건으로 기억된다. 2019년 10월 14일 오후 사의를 밝힌 조국 법무부 장관이 과천 법무부 청사를 나서는 모습. 사진= 조선DB
  그는 ▲80년대에 반독재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이들이 586인가 ▲대학에 가지 않은 60년대생을 586에 넣을 수 있을까 ▲학생운동에 참여하지 않았더라도 80년대에 진학했던 사람을 586이라고 해도 될까 ▲좌파적 성향을 갖고 민주당을 강력히 지지하는 사람들이 586일까 하는 수많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호칭에서조차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의 결론은 이렇다.
 
  “386의 8이 중요합니다. 대학에 진학해서 80년대 학번을 달고 있느냐, 아니냐가 중요합니다. 60년대생의 대학 진학률은 25% 정도였습니다. 제 부모님도 대학을 안 나오셨어요. 만약 대학에 간 사람들이 다른 세력과 집단적으로 많은 것을 공유한다면 60년대생 모두를 386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386을 ‘60년대생의 80년대 학번’이라고 정의하면 또 문제가 있습니다. 386이라는 용어에 강한 정파성이 암시돼 있기 때문입니다. 이 용어는 2000년대에 전두환에 대항한 학생운동에 참여한 경험이 있고, 이 경험을 활용해 정치권에 진출한 이들을 부르면서 만들어졌습니다. 이렇게 정치에 진출한 이들이 대부분 좌파 정당에 들어갔기에 당연히 ‘386=진보좌파 정당’이라는 이미지가 생긴 겁니다. 이런 정파성은 386이 486이 되고, 586을 지나 686에 진입하는 긴 세월 동안 ‘86세대’라는 용어로 늘 따라다닌 겁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386을 ‘60년대생으로 80년대에 대학에 진학해 학생운동에 참여했거나, 그와 관련된 정서에 강하게 동조하는 이들’이라고 정의했습니다.”
 
  ― 고민을 많이 했네요. 원래 책을 쓰기 전부터 386세력에 대해 관심이 많았나요.
 
  “네. 제 부모 세대이기도 하니까요. 386이 중·고등학생이던 1970년대의 문화는 1980년과 확실히 달랐어요. 이 시기 학생운동은 미약했죠. 박정희 정권이 유신 헌법을 세우고 독재를 했지만, 정권의 정당성은 전두환 정권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탄탄했습니다.
 
  1950년대에 태어난 70년대 학번들은 힘은 약했지만, 유신독재에 반대하는 민주화운동이나, 1970년 전태일 분신으로 촉발된 노동운동에 투신했습니다. 박정희 정권 후반기에 어느 정도 성숙하기 시작한 산업화와 고등교육의 확대를 반영한 것인데, 이들의 성향은 확실히 1960년대보다는 1980년대의 운동에 가까운 면이 많았습니다. 유시민, 심상정, 이해찬, 문재인이 대표적인 예죠.
 
  1970년대에 한국에 비판적인 집단들은 박정희 정권이 미국 중심의 안보, 무역 질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문제 삼으며 정권이 독점하던 세계관에 균열을 냈습니다. 이런 주장은 사실 정권에 대한 안티테제(특정한 긍정적 주장에 대한 특정한 부정적 주장)의 집합이었습니다.”
 
 
  386은 안티테제의 집합체
 
2018년 4월 7일, 제주 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회원들은 ‘통일방해·내정간섭·전쟁위협 미국 규탄대회’를 열었다. 사진=조선DB
  ― 386이 안티테제의 집합체라고 주장하네요.
 
  “미국은 자유 진영의 보편적 가치를 위해 감사해야 할 국가가 아니라 한국의 자주성을 침해하고 자신의 제국적 이익만을 고려한 국가로 규정했습니다. 재벌은 수출을 통해 한국 경제 성장의 최전선에 나선 주인공이 아니라, 미국 중심의 무역 질서에 편승해 일본과 협력하고 우리나라의 노동자・농민의 삶을 파괴한 매판 자본이 됐습니다. 모든 한국인이 지지해야 마땅한 박정희 정권은 미국의 이익을 위해 청산되지 않은 친일파들과 유착한 세력이라고 했습니다.”
 
  ― 오늘날 집권세력이 된 386의 주장이 1970년대에 모두 형성된 거죠.
 
  “종합된 것은 1980년이었지만 실질적 단초는 1970년대에 모두 등장한 셈입니다. 하지만 1980년에 신군부가 광주에서 학살을 저지르면서 모든 것이 뒤바뀌었습니다. 군부가 자국민에게 저지른 학살은 모든 이에게 엄청난 충격이 됐고, 온건한 비판세력이 될 수 있었던 이들도 모두 강경한 반대세력으로 전환됐습니다. 자율성을 보장받은 공간 속에서 수많은 학생이 매년 운동권에 유입돼 사상적으로 감화되고 정부에 대한 저항 의식을 불태웠습니다. 결국 광주는 반대파를 급진화시키고, 신군부 정권의 항구적 족쇄로 남아 1980년대를 학생운동의 전성기로 만든 결정적 계기가 된 거죠.
 
  중요한 반전은 신군부 정권을 통해 한국을 통제하려던 미국이 광주 학살을 위해 군부대 이동을 승인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입니다. 학생운동가들 사이에서 미국은 이제 제국주의적 야욕을 위해 한국 민중을 거리낌 없이 희생시키는 사악한 제국이 된 겁니다. 반미주의가 박현채나 리영희를 비롯한 몇몇 지식인의 추상적 비판에 그치지 않고 거대한 대중적 지지 기반을 확보한 겁니다.”
 
  ― 반미(反美)의 뿌리를 추적했네요.
 
  “왜 386이 오늘날의 모습이 됐는지를 추적하다 보니 그렇게 이어졌습니다. 80년대를 거치면서 학생운동은 급진적인 혁명론을 완성했고, 금서(禁書)였던 마르크스와 레닌, 중국 공산당의 저작들이 유입됐습니다. 당시 학생운동가와 그들과 연계된 선배 ‘이론가’들은 정권의 반대세력에서 헤게모니를 잡고자 이런 서적들의 이론을 적용해 한국 사회 분석에 몰두했습니다. 소위 ‘사구체 논쟁’으로 유명한 사회구성체 논쟁이었습니다.
 
  이 논쟁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한 이들이 ‘NL’로 알려진 민족해방파, 혹은 주사파였습니다. NL은 특유의 반지성주의적 조직방법론과 한국인에게 여전히 지배적인 민족주의 감성을 활용해 주도권을 쥔 겁니다. 그들의 도그마는 한국은 그저 미국의 식민지인 저발전 국가로, 미국과 일본의 자본가들을 위해 착취당한다는 점에서 일본 강점기와 다를 것이 없다는 겁니다. 고로 자주독립을 이루고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혁명에 착수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혁명을 도울 세력이 바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입니다. 결국 광주의 충격은 마침내 북한에 대한 금기까지 해제시킨 겁니다.”
 
 
  “386주의는 애초부터 틀렸다”
 
  임명묵씨의 ‘NL’ ‘386의 뿌리’에 대한 연구는 단순 호기심이 빚어낸 수준이 아니었다. 논리적이고 단단하고, 무엇보다 거침이 없었다. 그의 책이 요즘 화제가 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저는 NL의 ‘사회주의적 민족주의’의 본질은 사회주의보다는 신(新)전통주의라고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사회주의를 통해 노동계급이 이끄는 평등한 세상을 건설하고자 하는 볼셰비키의 후예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군부 독재 시기에 진행된 급속한 발전과 그에 따른 문화적 변화, 계층의 분화 등 근대화의 충격에 혼란스러워하면서, 자신들에게 익숙한 농촌 공동체를 한국에 복원코자 했던 이들입니다.
 
  계보로 찾자면 구한말 위정척사파의 후예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농활을 가서 한국의 때 묻지 않은 전통문화를 발견하려고 한 것,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인 코카콜라를 거부하고 풍물패를 조직한 것, 정치·사회적 목표가 좌절되고 많은 이가 종교나 무속 등 정신 수양 운동에 귀의한 것, 자본주의적 근대화에 물들지 않은 공동체의 이상향으로 북한에 대한 환상을 품게 된 것이 같은 연원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실 이들의 친척은 이슬람주의자들이에요.”
 
  ― 386과 이슬람주의자들이 같다는 거군요.
 
  “386의 활동은 대학 인근의 쪽방에 모여 코란을 암송하면서 이슬람의 본래 의미를 탐구하고자 했던, 법을 어겨가며 자발적으로 히잡을 쓰려고 하고 미국 제국주의를 몰아내자고 결의했던 터키나 이란, 이집트의 이슬람주의 학생들의 활동과 유사합니다. NL의 태두라고 할 수 있는 김영환의 사상에 1979년 미국 대사관을 점거한 테헤란의 군중이 큰 영향을 미친 것이 우연이 아니란 말입니다. 하지만 ‘386주의’는 애초부터 틀렸습니다. 완전히 틀렸어요.”
 
  ― 그 이유는요.
 
  “한국에서 혁명론이 뿌리를 내릴 수 없는 근본적 이유는 한국 현대사 자체에 있습니다. 전후(戰後) 한국이 이룬 근대화가 여태 비(非)서구 국가들의 근대화와 본질적으로 달랐습니다. 20세기 후반 급진적인 신전통주의와 사회주의가 세력을 얻어 갈등이 극대화된 지역은 이중경제체제하의 문화적 분리가 심했습니다. 가령 석유산업을 통해 얻는 이득이 서구화된 엘리트에게만 가고, 농민과 도시 빈민은 독실한 신앙을 유지한 채 계속 저발전 상태에 있던 이란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한국은 수출지향적 산업도시들이 먼저 발전하는 불균등 발전이 있기는 했지만, 다른 국가들처럼 이중경제체제가 등장하지는 않았습니다. 농촌 역시 근대화의 많은 수혜를 입었고, 많은 농민이 도시로 이주해 노동자가 되어 중산층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전국적 상향 이동이 활발했으니 자연스레 엘리트와 대중 간의 문화적 분리가 일어날 틈이 없었습니다.
 
  중산층과 소비경제의 풍요가 대다수의 사람에게 다가온 시점에서 소위 일부 의식화된 대학생들의 혁명론을 따라갈 사람은 없었습니다. 진정한 민중 후보라고 했던 운동권과 좌파 인사들 이외에는 관심도 없었던 백기완이 아니라, 새로운 중산층의 권리를 보장해줄 사람은 김영삼과 김대중이었던 거죠.”
 
 
  노무현 정부 때 다시 고개 들어
 
(왼쪽부터) 이해찬, 심상정, 유시민 등이 386세대에 영향력을 끼쳤다. 사진=조선DB
  ― 386이 세력 확장에는 실패했는지 모르지만, 먼 훗날, 가령 문재인 정부 때 강한 영향력을 가졌죠.
 
  “86세대가 갖는 지배력은 소련 후기에 형성된 공산당 노멘클라투라에 비견할 수 있겠죠. 소련은 한국처럼 1917년 혁명과 내전을 거치면서 사회 혁명을 이뤘고, 그 과정에서 구시대의 엘리트층은 한번에 일소됐습니다. 공산당이 발탁한 농민과 노동자 출신의 청년 엘리트층은 스탈린의 경제 개발과 독일과의 전쟁에 참여하면서 앞 세대의 빈자리를 메우고 지도자급 인사로 훈련됐습니다.
 
  이들은 넘볼 수 없는 지배력을 확보해 고령이 되어서까지 국가의 중요 직위를 놓지 않은 채 권력을 만끽했습니다. 또 이들은 자신의 욕망 중 하나인 계층 세습을 실현하고자 했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사회자본, 문화자본을 이용해 자녀들에게 가장 좋은 교육과 촉망받는 커리어를 물려주려 했고, 자녀들은 그런 특혜를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편법도 동원됐죠.
 
  한국도 같습니다. 이번에 조국 사태가 이를 여실히 보여줬습니다. 대한민국의 386은 그들이 꿈꿨던 혁명의 꿈을 잊고, 자신들의 자산 상승을 즐기며, 자녀들에게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교육, 해외 유학 등을 제공하는 엘리트층이 됐습니다.”
 
  ― 마음속으로는 혁명을 하는데, 현실에서는 풍족한 자본주의를 누리게 됐죠.
 
  “중산층이자 사회의 주역인 그들은 다시 거리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선거에서 민주당 계열의 승리를 바라는 정도로 소박하게 축소됐죠. 그런데 노무현이 집권하면서 달라집니다. 국가보안법 철폐 시도와 같이 강력하던 국가 권력을 억누르고 공안 기구의 힘을 약화시키려는 시도가 이뤄졌고, 햇볕정책이나 동북아 균형론자와 같이 미국 중심의 외교에서 탈피하려는 외교가 열렬한 호응을 얻죠. 예외가 있다면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경제정책일 겁니다.
 
  이런 상황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열리면서 극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명박 정권이 보수주의, 기업 친화적 경제정책을 들고나오자, 민주당은 신속하게 좌파 논리를 수용해 이명박 정권을 공격했습니다. 2008년 광우병 시위가 대표적이었죠.
 
  민주당의 좌회전은 2010년에 복지가 본격적인 정치 의제로 떠오르면서 선명해졌고, 경기 교육감의 무상급식 추진 등으로 전국적인 복지 논쟁을 촉발시켰습니다. 박근혜 정권 때도 이들은 2013년 철도파업 등을 이어갔죠. 그리고 2017년에 86세대가 완벽하게 장악한 민주당은 좌파적 경제, 사회 의제와 민족주의적 역사 바로 세우기를 내세우면서 문재인 정부의 이름으로 집권하기에 이른 겁니다.”
 
 
  “386은 이미 主流”
 
  ― 일목요연한 정리네요.
 
  “역사적 흐름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제가 볼 때 386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과거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90년대생이 86세대를 비판할 때 가장 많이 하는 얘기는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편하게 산, 그러니까 ‘꿀을 빤’ 세대라는 점입니다. 사실 저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우리 세대는 풍요로운 선진국에서 태어났지만, 86세대는 훨씬 가난하고 폭력적인 과거의 개발도상국에서 태어났어요. 우리가 그들에게 ‘꿀 빨았다’고 할 수는 없죠. 그래도 정서적으로 86세대에게 유리한 점도 있었습니다. 86세대는 고도성장의 수혜를 입었고, 삶이 지금보다 훨씬 단순할 때 살았기에 인간의 생애주기에 요구되는 대부분을 충족하며 살았어요. 그런 것이 좌절되었기에 청년층이 불행을 더 크게 느끼는 것 같습니다.
 
  물론 86세대가 누리는 것들이 대부분 그들이 쟁취한 것은 맞아요. 대학가에서 뭉쳐 화염병 들고 백골단과 싸웠고, 대학 시절의 경험을 자산으로 기업체나 정당의 윗사람을 들이받으면서 헤게모니를 장악했어요. 그들은 이미 주류예요. 그런데 대한민국의 386은 자기들이 주류임에도 여전히 주류는 따로 있다고 여기는 비주류 의식이 있습니다. 그들은 정확히 한국 체제의 일부분이고, 주류인 엘리트 집단인데도 말이죠. 지배 엘리트가 스스로를 인식하지 못할 때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용기가 없어서 과오를 인정하지 못한 386”
 
2020년 7월 23일,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 청문회 모습. 태영호 의원의 ‘전향했느냐’는 질문에 즉답을 피했다. 사진=조선DB
  ― 많은 이가 지적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집권세력인 386이 저잣거리에서 술 한잔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하는 이들이라면 괜찮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한 국가를 좌지우지하는 사람들입니다. 만약 386세력이 한국이 재벌, 검찰, 보수언론의 손아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손아귀에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깨닫는다면, 더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주지 않겠습니까? 이들은 언제나 쉬운 길만 선택했습니다. 과거를 돌아보고 과오를 반성하는 대신에 적당히 어물쩍 묻어 버리고 넘어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지난 청문회 때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이인영 통일부 장관에게 ‘전대협 주체사상을 신봉하지 않았느냐. 전향할 생각이 없느냐’고 묻자 이인영은 ‘전향을 강요하는 것은 남측 민주주의에 대한 태영호의 인식이 박약하다는 것’이라며 넘어갔습니다. 물론 이인영이 김일성에 대한 충성 맹세를 했는지 여부는 몰라요. 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과거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의문을 가진 적이 있다고, 이제는 바뀌었다고 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는 그러지 않았고, 다른 386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찌 보면 그들은 지난 과오를 인정하는 적절 시간을 놓친 겁니다.”
 
  ― 왜 그랬을까요.
 
  “용기가 없었으니까요.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도자라면 그래서는 안 되는 겁니다.”
 
  당연한 얘기일 수도 있지만, 20대 청년의 입에서 ‘용기’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무릎을 탁 치고 있었다. 세상살이에 많은 일이 필요하지만,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만큼 필요한 덕목이 없을 테니까 말이다. ‘반 년 동안 책 쓰느라 학교 공부에 소홀했는데 이제 열심히 하려 한다’며 발걸음을 옮기는 임명묵씨를 보며 90년대생에 대한 희망을 엿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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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aychoi12@gmail.com    (2021-07-31) 찬성 : 3   반대 : 0
저는 1986년에 대학에 입학했던 386세대입니다. 젊은 작가의 너무나도 간단 명료 하면서도 본질을 꿰뚫는 해석에 답장을 안할 수가 없어서 이글을 씁니다. 잘 보셨습니다. 저희 세대에 반정부 시위에 앞장섰던 대학시절 친구들중, 정계로 입문한 친구들이 지금의 권력형 금수저들이 되었습니다. 지위와 관계를 이용해 온갓 합법 불법을 가리지 않고 부와 명예를 쌓아 왔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저희 386세대들은 사회로 나가서 밤낮을 안가리고 정신없이 일한덕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되었지요. 지금의 권력형 금수저들은 저희 세대가 보기에도 부끄럽고 창피하기만한 대한민국의 수치입니다. 다음 세대에게 미안할 따름입니다. 죄송합니다.

말씀하셨듯이 현재의 70년대 80년대 정치인들은 현재 권력의 핵심에 있으면서도 한심하게도 과거의 피해망상증 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어 보입니다. 이제는 임명묵씨와 같은 90년세대들이 대한민국의 미래와 희망을 위해서 제발 구세대 들이 해왔던 구태의연한 소수이기주의를 버리고, 당장은 힘들고 어려운 결정일지라도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선택과 결정을 하는 정치를 해주시기를 부탁합니다.

임명묵씨 젊은 세대들을 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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