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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격인터뷰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與野 대선 후보들 중 정치 경험 제일 많다”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ironhee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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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권 사람들,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일지는 모르지만, 민주주의자들은 아니다”

⊙ “DJ·YS가 정치 입문 후 20년 지나서 했을 경험을 8년 9개월 만에 다 했다”
⊙ “자기 인기를 수업료로 지불하면서 경험을 쌓아가는 것이 정치인의 宿命”
⊙ ‘대선 후보 경선 결과 승복하겠느냐’ 묻자 “현역 정치인 중에 그것을 행동으로 증명한 유일한 사람이 나”
⊙ “2012년 미국行 관련 가짜뉴스 만든 장본인은 문재인”
⊙ “美中 신냉전, 이제는 동맹 선택하고 그로 인한 손해 最小化할 수 있는 전략 마련해야”
⊙ “남북관계, 민족적 관점 아니라 국가 對 국가 관계로 접근해야”
⊙ “바이오기술·나노기술과 정치가 융합해서 mRNA 백신 나와… 세계가 이렇게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여의도에서는 몰라”
사진=조준우
  나이에 비해 앳되어 보이는 얼굴, 깻잎 머리, 우물우물 입안에서 맴돌다가 허공으로 흩어지는 듯한 목소리, 언뜻 신선해 보이기는 하는데 콘텐츠는 없는 것 같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 같기는 한데 뭔가 결실을 맺은 것은 없는 듯한 정치 이력….
 
  2017년 대통령 선거 당시 TV토론 등을 통해 형성된 안철수(安哲秀·59) 국민의당 대표에 대한 이미지였다. 기자의 인식 역시 거기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인터뷰를 요청하면서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시간은 내주어야 한다”고 해 시간을 받아내기는 했지만, ‘영양가 없는 인터뷰가 되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이 들었다. 기우(杞憂)였다. 지난 6월 7일 서울 여의도에 있는 국민의당 당사에서 만난 안철수 대표는 시종 적극적이었고, 자신감이 넘쳤다. 보기에 따라서는 나르시시즘으로 느껴질 만한 얘기도 곧잘 했는데, 그게 밉게 보이지는 않았다. ‘안철수의 재발견’이었다고 할까?
 

  자리에 앉자마자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 내년 대선(大選)에 틀림없이 나올 텐데, 대통령이 되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질문은 ‘왜 정치를 하는가’ 아니겠습니까. 대통령은 하나의 수단이지, 목적이 될 수는 없다고 봅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게 목적이면 당선되고서 끝이고, 그다음에는 국정 운영을 제대로 못 해 불행한 대통령이 되지 않습니까. 그 목적을 ‘퇴임 후에 성공한 대통령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데 두면, 많은 문제가 풀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강한 나라, 바른 나라, 좋은 나라
 
  — 그럼 정치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대한민국을 강한 나라, 바른 나라, 그리고 좋은 나라로 만드는 것이죠.
 
  강한 나라라는 것은 경제적으로, 안보·외교적으로, 그리고 코로나19 백신과 관련해서도 제대로 경쟁력이 있는 나라를 말하는 것입니다.
 
  바른 나라라고 하면, 공정한 경쟁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실력만으로 성공할 수 있는 나라, 일반 국민의 상식이나 규범이 제대로 잘 지켜지는 나라, 더 근본적으로는 민주주의와 법치(法治)가 잘 지켜지는 나라를 말합니다.”
 
  — 좋은 나라라고 하면….
 
  “저는 능력주의가 지나치면 굉장히 불행해진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그럼 공화국이 되기가 힘들거든요. 그래서 사회적 약자(弱者)들을 따뜻하게 보듬어줄 수 있는 사회안전망을 제대로 잘 갖춘 나라가 좋은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또 과정에서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었다면 한 번 실패하더라도 재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 나라가 좋은 나라라고 봅니다. 바로 그 목적을 위해 거의 9년 전인 2012년 9월 19일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 정치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저는 우리와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삶의 틀을 만드는 게 정치라고 봅니다. 우리는 우리나라라는 틀 안에서 태어나서, 우리나라 교육 제도하에서 교육을 받고, 자유시장경제 제도하에서 만들어진 회사에 취직해서 일하고, 은퇴한 후에는 우리나라가 만든 복지 제도하에서 여생(餘生)을 보내잖아요. 우리가 살아가는 이런 틀을 조금만 바꿔도 굉장히 많은 사람이 지금보다는 좀 더 잘,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文 정부, 생각 다른 사람 敵으로 돌려”
 
  이야기 중에 ‘공화국’이라는 말이 귀에 들어왔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역사가 73년이지만 ‘민주’를 말하는 정치인들은 많았어도 ‘공화국’을 말하는 정치인은 드물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 좀전에 ‘공화국’이라는 말씀을 했는데, 안 대표가 생각하는 ‘공화국’이란 무슨 의미입니까.
 
  “함께 살아가는 사회죠. 현 정부나 현 정부 지지자들을 보면 민주주의와 전체주의(全體主義)를 완전히 혼동하고 있더군요. 민주주의라는 것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인정하는 제도 아닙니까?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거든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 치열하게 토론하고, 그러다가 합의하는 과정, 이런 것들이 민주주의에서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 그렇지요.
 
  “현재 문재인(文在寅) 정부를 보면, 생각이 다른 사람은 아예 적(敵)으로 돌리고 우리나라에서 살아갈 가치가 없는 사람으로 만들고 있어요. 생각이 같은 사람들끼리만 모여 살게 하는 것, 그게 전체주의 사고(思考)방식이거든요. 이른바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집권했는데, 그 사람들이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일지는 모르지만, 민주주의자들은 아닌 거죠.”
 
  지금은 그렇게 비판하고 있지만, 안철수 대표는 2014년 3월부터 1년 9개월 동안 현 집권세력과 함께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배를 함께 탔었다. 그것도 ‘공동대표’라는 선장으로….
 
  — 현 집권세력과 한때 정치를 같이했는데, 그때는 그런 점을 못 느꼈습니까.
 
  질문이 떨어지자마자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니까 나왔죠!”
 
  이어서 안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그 당에서 정치를 하는 목적 자체가 저는 그들과 달랐습니다. 제가 처음 정치를 시작한 것은 한국 정치의 병폐를 고치기 위해서였거든요.”
 
 
  “신문 정치 면은 아예 안 봤다”
 
2016년 4·13총선 후 당선자 이름을 보드판에 붙이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국민의당은 당시 지역구와 비례대표 합쳐서 38석을 얻었다. 사진=조선DB
  안 그래도 안 대표에게 정치에 입문하게 된 이유 등을 물어보려던 참이었다.
 
  “약간 설명이 길어지겠지만 말씀드리자면, 제가 카이스트 교수를 하다가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겸 정년 보장 교수로 스카우트가 된 지 두 달 정도 지났을 때 갑자기 제가 ‘서울시장 출마 의사가 있다’는 식으로 거짓 보도들이 막 나왔습니다.”
 
  — 거짓 보도였던 겁니까, 그게?
 
  “그럼요.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제가 정치할 생각이 있었다면 학교를 옮겼겠습니까? 학교를 옮겨놓고 두 달 만에 나와서 정치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그거는 욕 듣는 일이고, 정치인 커리어 관리 차원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저는 처음부터 정치할 생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제 이름이 오르내리고 여론조사도 하고…. 그래서 출마 선언도 안 한 사람이 불출마 선언을 하게 된 거죠.”
 
  — 정말 정치에 관심이 없었던 겁니까.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 전까지 신문에서 정치 면은 안 봤습니다. 봐도 하나도 도움 되는 말이 없고 해서 아예 보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그때는 제가 무슨 정치적인 감(感)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불출마 선언을 하고 돌아오면서도 ‘아마 내일 아침이 되면, 사람들 마음만 들뜨게 해놓고 이게 뭐냐고 하는 사람들의 비난이 쏟아지겠지만, 감수해야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오히려 이제는 대통령 후보로 거론이 되는 겁니다.”
 
  —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당혹스러웠죠. 그래도 ‘내가 계속 학교 교수, 대학원장으로 열심히 일하면, 석 달 정도 지나면 그런 건 다 사라지겠거니’ 싶었어요. 그런데 해가 지나도 오히려 (저에 대한 기대가) 더 커지더라고요.
 
  그런 게 반 년 정도 계속되기에 ‘사람들이 왜 정치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대학교수한테 그런 기대를 하는 것일까’를 고민하게 됐어요. 뭐, 그 이유는 간단하잖아요. 대한민국 정치가 너무 실망스러워서 그런 거 아닙니까.”
 
 
  정치권 패거리 문화
 
  — 그렇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상식적인 수준에서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를 생각해보니, 금방 세 가지가 눈에 띄더군요. 그때는 정치를 전혀 모를 때였는데도 말이죠.
 
  첫 번째는 정치권의 부정부패였고, 두 번째는 패거리 문화였습니다. 정치권의 패거리 문화, 약간 더 심하게 말하면 조폭 문화에서는 옳고 그르다가 아니라 우리 편이냐 아니냐가 판단 기준이었어요. 우리 편이면 흉악범이라도 보호해줘야 하고, 상대편이면 이순신 장군이라고 해도 나쁜 사람으로 모는 거죠.
 
  세 번째는 왕(王)처럼 군림하는 정치였습니다. 모든 분야에서 정치가 위에서 왕 노릇 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이 세 가지를 바꾸라고 저 같은 사람이라도 한번 나서 달라고 하니, 이 한 몸 던져서라도 그런 요구를 실현하는 새 정치를 해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 새 정치란 무엇입니까.
 
  “앞에서 말한 헌 정치와 반대되는 것이죠. 부정부패가 아니라 공익(公益)을 위해서 봉사하는 정치, 패거리 정치가 아니라 문제해결에 집중하는 문제해결 정치, 국민을 위해서 봉사하는 정치입니다.
 
  그런데 2012년 9월 19일 정치를 시작하면서 이 이야기를 했더니, ‘모호하다’는 거예요. 저는 굉장히 쉽게 설명했다고 생각했는데…. ‘아, 내 설명이 좀 부족한가 보다’ 싶어서 좀 더 쉽게 설명해도 계속 모호하다고 하는 거예요. 나중에 알았어요. 제 설명이 모호했던 게 아니라 그게 기득권(旣得權) 정치의 논리라는 걸 말이죠.”
 
  — 기득권 정치의 논리라….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뭐라도 비판해야 하니까, 새 정치에 대해 제가 무수히 설명해도 애써 외면하면서 무조건 ‘모호하다’고만 주장하는 거죠. 저는 입이 한 개인데 10만명이 모호하다고 이야기하니까, 일반 국민들에겐 제 말은 한 번밖에 안 들리고 모호하다는 이야기만 들리는 거죠.”
 
 
  “3金 이래 가장 큰 교섭단체 만들어”
 
2014년 3월 16일 안철수 대표의 새정치연합과 김한길 대표의 민주당은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이름 아래 통합했다. 사진=조선DB
  — 그렇게 해서 9년 가까이 정치하면서 국회의원도 했고, 큰 야당의 공동대표도 했죠.
 
  “3김(金) 이래 가장 큰 교섭단체도 만들었고요.”
 
  — 예전부터 정치권에서 ‘교섭단체 만드는 거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고들 하죠.
 
  “대한민국 정치 역사에 남는 거죠. 사실 자력(自力)으로 창당하고 이걸 교섭단체로 만드는 것은 정치력의 정점(頂點)이죠.”
 
  — 지난 9년을 돌아볼 때, 아까 말한 ‘새 정치’는 얼마나 실현했다고 생각합니까.
 
  “개인적으로 제일 큰 보람을 느꼈던 것은 정당을 창당하고 교섭단체로 만든 것보다는 19, 20대 국회의원으로서 제가 만든 법안들을 통과시킨 것입니다.”
 
  — 어떤 법들이 있습니까.
 
  “우선은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제가 아니면 통과가 안 됐을 겁니다. 그걸 많은 분이 모르시는데요. 2015년 2월 국회 때였는데, 당시 김영란법에 대해서 논의가 진행되다가 중단됐어요. 사람들이 ‘이번 임시회에서 통과하지 못한다’고 말했는데, 제가 보니까 그해 4월에는 재보궐선거가 있고, 정기국회로 넘어가면 2016년 총선 직전이어서 그렇게 중요한 법이 통과되기 힘들겠더군요. 그래서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민주당 원내대표를 설득해서 논의를 재개하게 했습니다.”
 
  안 대표는 “개인적으로 김영란법 내용이 어느 정도는 도덕적인 것이지 법으로 다룰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하지만 우리나라에 워낙 여러 가지 폐해가 있으니 먼저 법으로 문화를 바꾼 후, 필요 없는 법이 되어 없어지게 하는 것이 좋겠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 그 밖에 또 어떤 법이 있습니까.
 
  “신해철법이 있습니다.”
 
  신해철법은 2014년 가수 신해철씨가 의료사고로 사망한 후 개정된 ‘의료사고 피해 구제 및 의료분쟁조정법’을 말한다. 이에 따라 의료사고로 환자가 사망하거나 1개월 이상 의식불명, 중증장애가 있는 경우에는 피신청인(의료진)의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즉시 의료분쟁 조정절차를 개시하게 되었다.
 
  — 의료계의 반대가 많았던 법인데, 의사 출신이면서도 신해철법에 찬성했네요.
 
  “그것 때문에 제 선후배 의사들한테 욕을 많이 먹었죠. 하지만 의사들을 위해서도 신해철법이 옳다고 생각해, 여야를 설득해 통과시켰습니다.”
 
  안 대표는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시절 박근혜(朴槿惠) 정부가 기초연금을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올리는 데 찬성한 데 대해서도 자부심을 표했다.
 
  “사실 그건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大選)공약이었는데, 민주당이 반대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상상이 안 가는 일인데, ‘노인들한테 돈 줘봤자 우리한테 표 안 준다’며 당 전체가 반대했어요. 그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에요.
 
  하지만 저는 어르신들이 우리나라를 여기까지 만든 분들이고,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이 OECD 국가 중 최고 높은 상황을 그대로 놔둘 수 없다고 생각해서 당 소속 의원들을 설득해 기초연금 인상을 성사시켰습니다.”
 
  안철수 대표는 “이런 것들이 그래도 세상을 바꾸고,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의 삶을 바꾼 것”이라면서 “저한테는 그런 게 더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그 어떤 多選 의원보다 정치 경험 많다”
 
  — 그동안 정치를 하면서 ‘이런 점은 내가 기성정치인들보다 나았다’고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정치 중심에서 8년 9개월을 정치하는 동안, 당대표를 네 번 하면서 전국 단위의 모든 선거를 지휘해봤습니다. 또 중요한 선거에 다 후보자로 나갔지요. 보통 당대표를 하더라도 전국 선거 하나 지휘하는 정도입니다. 모든 종류의 선거를 다 지휘해본 사람은 현역 정치인 중에 저밖에 없어요. DJ(김대중)나 YS(김영삼)가 정치에 입문한 후 20년 이상 지나서 해봤을 경험을 저는 불과 8년 9개월 만에 다 했습니다. 정치적인 경험에 있어서 사실 어떤 다선(多選) 의원보다 제가 더 많습니다.
 
  저는 큰 당에서 정치를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언론인은 제3지대에서 이렇게 오래 살아남은 사람은 대한민국 70년 정치 역사상 제가 처음이라고 하더군요.”
 

  — 그런데 민주당 정치인들과 새정치민주연합은 왜 같이하게 된 겁니까.
 
  “제가 정치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당시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당신이) 한국 정치의 폐해를 바꾸기 위해 정치를 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기존 거대 양당 중 하나를 그렇게 바꾸면 목적을 달성하는 것 아니냐’라고 제안해왔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그럼 한번 도전해봐야겠다’ ‘목숨 걸고 뛰어들어서 하면 못 할 일이 있겠는가’ 하는 심정으로 민주당에 합류했던 것입니다.”
 
  — 같이 정치할 만하던가요.
 
  “오래지 않아서 그 정체를 알았어요. 절대로 바꿀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새정치민주연합을 나와서 국민의당, 제3당으로 돌아온 거죠. 제가 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에 몸을 담았던 것은 정치를 바꾸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었지, 그 사람들의 이념에 동조해서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사람들을 바꾸어보려고 한 것인데, 불가능하더라고요.”
 
 
  ‘안철수 3대 예언’
 
  — 불가능하다는 건 이념적 측면에서였습니까, 아니면 행태적 측면에서였습니까.
 
  “종합적이죠. 제가 2017년 대선 후보 토론 때 이야기했다가 2019년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안철수 3대 예언’이라는 것도 제가 2015년 그 당을 나올 때에 알던 내용을 다시 이야기한 것이었습니다.”
 
  — ‘안철수 3대 예언’이라는 게 뭡니까.
 
  “제가 2017년 대선 후보 토론 때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세 가지 일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어요.
 
  첫째는 자기를 지지하지 않은 국민의 반(半)을 적폐로 몰고, 나라는 분열될 것이다. 둘째는 자기 편, 말 잘 듣는 사람들만 쓰다가 무능(無能)하고 부패한 정부가 될 것이다. 셋째는 4차 산업혁명을 비롯, 세계가 나아가는 흐름을 알지 못하므로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뒤처지는 나라가 될 것이다.”
 
  — 정말 그대로 되었네요.
 
  “저는 모든 국민이 그걸 아는 줄 알았어요. 2019년에 그게 갑자기 인터넷에서 ‘안철수 3대 예언’이라고 화제가 되는 걸 보면서 ‘사람들이 이걸 모르고 있었구나’ 싶어서 너무 놀랐어요.”
 
  — 정치를 하면서 아쉬웠던 부분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사실 많죠. 정치는 제게 다섯 번째 직업입니다. 의사, IT전문가, 벤처 경영자, 대학교수, 정치인…. 저는 직업을 바꿀 때 항상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는 사람입니다. 사실 처음에는 뭘 알겠어요? 의사 하다가 벤처 기업 하면 잘할 리가 있겠어요? 대신 저는 한 번 실수를 하면 뒤돌아보고 후회하고 감정 소비하는 데 시간 쓰는 타입이 아닙니다. 뒤돌아보고 내가 뭘 잘못했는지 파악한 다음에 교훈을 얻어서 같은 실수를 다시 되풀이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준석 돌풍
 
  — 지금 국민의힘에서 불고 있는 이준석 돌풍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현실 정치에 대한 실망과 변화에 대한 열망이죠. ‘누가 해도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없으니까, 누구든 다른 사람한테 한번 맡겨보자’ 이런 마음 아니겠어요? 2012년에 제게 기대가 모였을 때도 마찬가지였겠죠.”
 
  — 2012년과 지금을 비교해본다면 어떻습니까.
 
  “2012년보다 지금이 더 나쁜 것 같아요. 지금은 정부가 국민을 이간질해서 싸우게 만들고 있잖아요.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코로나19 방역에 일등공신은 사실은 의사가 아니라 간호사라는 걸 다 안다’는 식으로…. (혼잣말처럼) 와, 거의 상상을 초월해. 참, 질문이 뭐였죠?”
 
  — 이준석 돌풍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이었죠.
 
  “그런데 누가 되든지 간에 이번 국민의힘 당대표의 역할은 역대 당대표와는 완전히 다를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걸 잘 모르는 거 같더라고요.”
 
  — 무슨 의미입니까.
 
  “지금까지 대선을 앞둔 시기에 보수정당 당대표의 역할은 당 내부의 대선 후보 경선(競選)을 관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보수정당에서 (당 내외의) 후보단일화를 해본 적이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 (당대표에게) 큰 정치력이 필요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주요 야권 후보들이 전부 국민의힘 밖에 있습니다. 윤석열(尹錫悅) 전 검찰총장, 저, 홍준표(洪準杓) 전 대표, 최재형(崔在亨) 감사원장, 김동연(金東兗) 전 경제부총리 등. 이들이 모두 참여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서 야권 단일 후보를 내야만 대선에서 가능성이 있어요. 서울시장 선거 때하고 똑같죠. 그런데 이게 보통 정치력이 필요한 일이 아닙니다. 누가 당대표가 되든 이제 그걸 이루어야 하는 책임이 주어지는 거죠.”
 
 
  토니 블레어와의 대화
 
  2012년 정치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안철수 대표는 때 묻지 않은 만 50세 신선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내년 대선 때면 안 대표도 60세다. 어떻게 보면 경륜(經綸)을 내세우기에도, 참신함을 내세우기에도 애매한 나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 부분을 지적하자 안 대표는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이야기를 꺼냈다.
 
  “전에 블레어 전 총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블레어는 자기가 처음에 영국 총리가 됐을 때는 인기가 하늘을 찔렀는데, 어떤 사안에 대해서 자기한테 결정해달라고 갖고 오면 아는 게 없어서 너무 겁이 났다고 하더군요. ‘잘못 결정하면 영국에 엄청나게 큰 손해가 날 텐데,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되는지’ 판단이 안 섰대요. 10년 정도 지난 다음에는 어떤 사안을 가지고 오든 전문가한테 물어볼 필요도 없을 정도로 정확하게 판단할 자신이 생겼는데, 그때가 되자 인기가 바닥으로 떨어져서 쫓겨났답니다.”
 
  — 재미있군요.
 
  “그 얘기를 들으면서 ‘자기의 인기를 수업료로 지불하면서 경험을 쌓아가는 것이 정치인의 숙명(宿命)’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지만, 새 정치를 하겠다던 제 초심(初心)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또 지난 10년간 양쪽에서 탈탈 털었는데 제가 도덕적으로 문제 된 일이 없잖아요. 돈 문제가 있나요, 여자 문제가 있나요, 막말을 했나요? 얼마 전에 현 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분을 만났는데, 저는 좋아하지 않지만 제가 깨끗한 것은 안다고 말하더군요.”
 
  — 말씀하신 것처럼 국민의힘 안팎에서 대선에 나서려는 분들과 통합해야 될 텐데, 통합의 방법을 생각하고 있는 게 있습니까.
 
  “주호영(朱豪英)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당대표 권한대행을 할 때 만나서 ‘원칙 있는 통합을 해야 된다. 그것은 우리와 국민의힘뿐만 아니라 나중에 윤석열 전 총장을 포함해서 야권 전체 대통합의 큰 원칙이다’라는 데에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
 
  — ‘원칙 있는 통합’이란 무엇입니까.
 
  “첫 번째, 통합만을 위한 통합이 아니라 지지자의 저변(底邊)을 넓히는 통합이 되어야 한다. 당끼리 통합을 해도 지지자가 떨어져 나가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당 대 당 통합이 되어야 합니다. 일종의 흡수통합이 돼버리면 지지자는 안 따라옵니다.
 
  두 번째, 중도실용(中道實用) 정치가 노선의 중심이 되어야 된다. 이념이라는 게 소중한 가치이고 세계관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너무 한쪽에 경도(傾倒)되고 서로를 적대시하는 것 때문에 우리 사회의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잖습니까?
 
  세 번째, 단순한 통합으로 완성이 아니고 그때부터는 개혁하는 모습, 바뀌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경선 승복
 
서울시장 단일 후보로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결정된 다음 날인 3월 24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국민의힘 의원총회장에 나가 오 후보와 포옹했다. 사진=조선DB
  — ‘당 대 당 통합’이라고 하면 통합 과정에서 지분(持分)을 요구하겠다는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양쪽 지지자들을 전부 포괄해서, 지지자들이 실망하거나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하는 그런 통합이 제일 중요한 거지요. 예를 들어 중도실용 노선 중심이어야 한다고 했으니까 그런 내용을 담는 당헌(黨憲)·당규(黨規) 손질이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 통합 야권 대선 후보 선출 과정에서 혹시 후보가 안 되더라도, 그 결과에 승복할 겁니까.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안 대표의 대답이 돌아왔다.
 
  “현역 정치인 중에 그것을 행동으로 증명한 유일한 사람이 저 아닌가요, 하하.”
 
  — 이번에 안 대표가 오세훈(吳世勳) 시장과의 서울시장 경선 후 그 결과에 흔쾌히 승복하는 모습을 본 많은 분이 좋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정치하기 이전부터 사람으로서 도리, 약속, 신뢰…, 이런 것을 누구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산 사람입니다. 정치권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예요. 이번에도 뭐 똑같이 보여드린 거고요. 2012년에 제가 문재인 후보 지원 유세를 몇 번 한 줄 아세요?”
 
  — 몇 번 했나요.
 
  “40번 넘게 했어요. 이번에 오세훈 시장 지원 유세는 20번 했어요. 그런데 많은 언론인이 ‘안철수가 2012년에는 문재인 후보를 잘 안 도와줬는데, 이번에 다른 모습을 보였다’고 글을 쓰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민주당이 얼마나 여론 조작과 왜곡을 많이 했기에… 당시 신문을 찾아보면 다 나오는 사실인데도 사실을 생명처럼 생각하는 중견 언론인들조차 왜곡된 기억을 갖고 있어요.”
 
  —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와 단일화는 왜 한 건가요.
 
  “1등과 싸워 이기기 위해 2, 3등이 손을 잡고 단일화하는 것은 역대 대한민국 대선에서 자주 있었던 일 아닌가요? DJP연합을 보세요. DJ하고 JP(김종필)가 이념이 같아서 연합했나요? 노무현(盧武鉉)-정몽준(鄭夢準) 후보 단일화도 이념이 같아서 한 건가요? 2012년 당시 1위 후보를 이기기 위해서 2, 3등인 저와 문재인 후보가 단일화한 거였어요.”
 
 
  2012년 大選 후 미국行의 진실
 
2012년 대선 당시 안철수 대표는 40여 차례 문재인 후보 지원유세를 했다고 한다. 사진=조선DB
  안철수 대표는 “2012년 대선 당시 ‘선거날 투표도 안 하고 오전에 떠나버리는 바람에 선거에 악영향을 끼쳤다’고 하는 얘기도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대선 투표일 직전 일요일에 문재인 후보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제 승산이 높아 보이는데, 대선에서 이기면 연립정부 구성 문제를 포함해서 여러 가지 복잡한 말들이 나올 거다. 백의종군(白衣從軍)하겠다고 선언하고 이제까지 지원 유세를 했으니, 저는 그냥 멀리 떠나겠다’고 말했어요.”
 
  — 문재인 후보 반응이 어땠나요.
 
  “예상도 못 한 그 말에 너무나 기뻐하더라고요, 하하. 저는 대선 당일 오전에 투표한 후 저녁 6시에 투표 마감되는 걸 보고 떠났어요. 그런데도 왜곡을 하는데, 그 장본인이 문재인 대통령이에요.”
 
  안철수 대표는 “이건 제가 직접 보여드려야겠다”며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기자 옆자리로 왔다. 그는 스마트폰을 열고 2002년 대선 당시 정몽준 의원의 노무현 후보 지원 유세, 2007년 대선 당시 박근혜 의원의 이명박(李明博) 후보 지원 유세, 그리고 2012년 대선 당시 자신의 문재인 후보 지원 유세 횟수를 보여주는 도표를 보여주며 열심히 설명했다.
 
  “여기 보면 정몽준 의원의 노무현 후보 지원 유세는 몇 번 안 돼요. 박근혜 의원의 이명박 후보 지원 유세는 이것보다는 많지만 몇 개 안 되고, 공동 유세는 한 번도 안 했어요. 저는 공동 유세 4번을 포함해서 40번 이상 지원 유세를 했어요.”
 
 
  “문재인이 가짜뉴스 만들어낸 장본인”
 
  — 문재인 대통령이 안 대표 미국행(行)과 관련해서 ‘왜곡의 장본인’이라는 것은 무슨 얘기인가요.
 
  안 대표는 다시 스마트폰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책 《1219 끝이 시작이다》와 《대한민국이 묻는다》의 해당 부분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3년에 낸 《1219 끝이 시작이다》를 보면, ‘선거 당일에 출국하는 것도 안 후보가 사전에 저에게 연락해줬고, 필요할 경우에 연락 채널도 알려줬습니다’라고 되어 있어요. 제가 전화번호를 알려줬거든요. 또 ‘그리고 특히 제가 승리할 경우 공동정부나 연정 구성 같은, 예상되는 민감한 논란의 중심에 그가 직접 서게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저는 이해했습니다’라고 썼어요. 이때는 이 사람이 사실대로 쓴 거죠.”
 
  — 그렇군요.
 
  “그런데 2017년 1월에 나온 《대한민국이 묻는다》라는 대담집에서는 얘기가 달라져요. 질문자가 ‘안철수가 미국 안 가고 선거운동해줬으면 하는 아쉬움을 표현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하니까 ‘뭐, 많은 아쉬움들이 있지만 알 수는 없다’고 대답했어요. 이건 제가 자기 선거운동을 안 해줬다고 말한 겁니다. 그다음에 ‘아이, 왜 미국으로 가버린 사람 못 붙잡았냐’고 묻자 ‘뭐, 제가 그 사람이 아니니까 이유는 알 수 없다’고 답했어요. 그래서 가짜뉴스를 만들어낸 장본인이 문재인 대통령이 된 것입니다.”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나서 안철수 대표는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 범(汎)야권 후보 경선이나 단일화 과정에서 가장 큰 경쟁자가 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모두 장단점이 있어요. 예를 들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경우 ‘법치’ ‘공정’의 상징이잖아요. 그대신 앞으로 우리나라가 무엇을 해서 먹고살 건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세계가 어떻게 바뀌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약할 수밖에 없겠지요.
 
  반면에 저는 미래의 세상이 어떻게 바뀌고, 우리가 무엇을 갖고 먹고살 수 있을 것인지, 어떻게 해야 우리나라가 창업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책으로 배운 사람들과는 비교가 안 되겠죠. 저는 직접 창업해서 성공시켜 보았잖아요.”
 
 
  “대선 9개월 전, 문은 닫혔다”
 
  — 범야권 후보로 거론되는 분들이 다 강점이 있는데, 통합이 잘 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야권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는 서로의 장점을 부각시켜가면서 선의(善意)의 경쟁을 하면 좋겠어요. 우리나라를 어떻게 만들겠다는 비전 경쟁을 한 후 지지자들의 선택을 받는 분이 대통령 후보가 되고, 나머지 분들은 다 그분을 도와서 부족한 부분들을 채우는 팀플레이를 하면 좋겠어요. 그러면 야권이 여권보다 훨씬 더 안정감을 줄 거예요.
 
  국민들이 ‘아, 지금 나라가 너무 위기상황이니까 저 사람들이 다 함께 나서서 도우려고 하는구나’ 생각하면 야권에 승산이 있다고 생각해요. 대신 서로 막 헐뜯으면서 네거티브 경쟁을 하면 콩가루 집안 되는 거죠, 하하. (새로 선출된 국민의힘) 당대표가 정치력을 발휘해서 그렇게 판을 만들어가야죠. 후보들이 직접 그 판을 만들 수는 없잖아요.”
 
  —지금 거론되는 범여권 후보 중에는 이재명(李在明) 지사가 대선 후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까.
 
  “사실 대선 9개월 전이면 이제 새로운 사람은 안 나오죠. 이제 문은 닫혔어요. 새로운 사람에 대해서…. 민주당 경선이 석 달 남은 걸로 아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대개 현시점에서 1위인 사람이 후보가 되죠. 선거 기간 석 달이면 조선왕조 500년 동안 일어난 모든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기간이기도 해서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이재명 후보가 조금 더 확률이 높다고 봅니다. 다만, 당내 주류들과는 결이 달라서 그게 큰 변수(變數)입니다.”
 
  — 거론되고 있는 여야 대선 후보들과 비교할 때 자신의 가장 큰 특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여야 전체 후보 중에 제가 정치 경험이 제일 많아요, 하하하. 어떤 분들은 ‘정치력이 부족한 거 아니냐’는 식으로 비판도 하세요. 그런데 오히려 큰 정당에 있는 분들의 정치력이 더 증명이 안 되어 있어요.
 
  예를 들면, 대기업 임원으로 있던 분들이 그 회사에 있을 때 실적이 좋았더라도 퇴임하고 난 후 창업하면 망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가 실적을 낸 것은 조직의 힘이지 개인 역량은 아니었던 거죠.”
 
  — 무슨 말씀을 하려는지 알겠습니다.
 
  “저는 개인의 역량이었어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3김 이래 가장 큰 교섭단체를 직접 만들어봤고요.
 
  2017년 대선 때 제가 3등을 했다고 하지만, 우리나라 역대 대선 결과를 보았을 때 제3당 후보로서 20% 넘게 받은 사람은 DJ하고 저 두 사람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 대선 3등이 전혀 부끄럽지 않아요. 큰 정당이었으면 두 배는 받았을 거예요.”
 
 
  “美中 간 선택해야 할 상황”
 
  안철수 대표는 자신이 “의학, IT 분야, 경영자, 교수로서의 전문성, 그리고 이제는 정치인으로서 경험까지 모두 가진 유일한 사람”이라면서 “지금 전 세계의 흐름, 미래에 어떻게 갈 건지, 이런 것에 대해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사람들 중 제일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다.
 
  “‘대통령이 모든 분야 몰라도 된다, 전문가한테 맡기면 된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옛날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시절에는 그게 가능했어요. 하지만 요즘은 각 분야마다 너무나 복잡해졌어요, 한 분야에서 전문가라고 해도 전혀 방향이 다른 경우가 많아요. 원전(原電) 분야만 봐도 그 안에 탈(脫)원전 전문가도 있고, 소형원자로를 해야 한다는 전문가도 있어요. (리더가) 세계가 어떤 방향으로 가는지를 알아야 제대로 된 전문가를 골라서 맡길 수 있어요. 지금 전 세계는 ‘코로나19 극복’ ‘4차 산업혁명’ ‘미중(美中) 신냉전(新冷戰)’이라는 3대 메가트렌드하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마침 안철수 대표에게 던지려던 질문 중에 미중 갈등과 한국의 선택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사람들이 냉전이라고 하면 미소(美蘇) 냉전 때처럼 군사 패권(覇權) 경쟁만 생각하는데, 미중 신냉전의 핵심은 경제패권전쟁, 기술패권전쟁입니다. 그래서 미국이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만들고, 기술을 공유(共有)하자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선택의 기로(岐路)에 서 있습니다. 그냥 안보 동맹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미래를 좌우하는 선택을 해야 할 상황인 거죠.”
 
  —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사실 우리는 지금까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고 하면서 전략적 모호성을 가지고 최대한 국익(國益)을 극대화(極大化)시키려 노력해왔어요. 하지만 이제는 결국 한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점점 다가가고 있어요. 이제는 동맹을 선택하고, 그 대신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손해는 최소화(最小化)할 수 있는 전략을 마련해야 합니다.”
 
 
  수평적 리더십
 
2011년 5월 2일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 당시 백악관 상황실 모습. 안철수 대표는 이 사진을 ‘수평적 리더십’의 사례로 꼽았다. 사진=뉴시스/AP
  — ‘안철수 리더십’에 대해서 스스로 정의한다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저는 기본적으로 수평적 리더십이에요. 벤처기업을 경영할 때도, 학교 교수로서도, 정치하면서도 그랬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수직적 리더십에 익숙하잖아요. 하지만 20~30대는 수직적 리더십에 대한 저항감이 굉장히 심합니다. 그렇게 세상이 바뀌고 있는 거지요. 세상이 복잡해져서 이제는 더 이상 리더가 현장 상황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또 세상이 너무 빨리 바뀌기 때문에 현장에 있는 사람들만이 그 변화를 감지(感知)할 수 있습니다. 저 위에 있다 보면 결정이 굉장히 늦게 됩니다. 그 리더십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이 하나 있습니다.”
 
  — 어떤 사진입니까.
 
  “2011년 5월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 때 백악관 사진입니다. 그 사진을 보면 중심에서 지휘하고 있는 사람은 오바마 대통령이 아니라 장군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사진 구석에 있어요. 그것이 수평적 리더십입니다. 워낙 빨리 바뀌고 전문성을 요하는 분야에 대해 리더가 할 일은 자기가 생각하는 최적의 전문가를 그 자리에 앉히고, 그 사람에게 결정하게 하는 것입니다. 리더는 그걸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움직여야 되는 세상이 됐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저 위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코로나19 백신에 대해서 일일이 얘기하고 있어요. 문재인 대통령이 백신에 대해 무엇을 압니까. 제가 작년 5월쯤 보니, 연말이면 백신이 나오겠더라고요. 그래서 ‘지금부터 (백신 마련을) 대비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어요.”
 
  — 작년 5월에 그랬다는 얘기입니까.
 
  “대구에서 강연한 내용인데 유튜브에 있습니다. 그때 보니 백신 개발이 성공할지 실패할지 모르는 상황인데도 각국 정상(頂上)들이 나서서 미리 연구비를 주면서 선(先)계약을 시작하더라고요. 연구에 실패해도 돈을 정부에 돌려주지 않는 조건으로…. 그러니까 제약회사들이 경쟁적으로 백신 개발을 시작하더군요.
 
  ‘왜 그러는 것일까’ 생각해보니, 그게 합리적인 판단이었어요. 다른 백신도 그렇지만, 임상 1상, 2상을 거쳐 3상 시험에 들어가도 최종 승인을 받는 것은 절반밖에 안 됩니다. 하지만 미리 연구비를 주고 선계약한 것 중의 하나라도 성공하면, 그것 때문에 한 달이라도 빨리 코로나19를 종식시킬 수 있잖아요? 한 달이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고, 국가 경제가 다시 돌아가면서 생기는 이익은 백신 개발에 들어간 비용하고는 비교가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나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인데 저렇게 말을 안 들어서….”
 
 
  “안틀러, 처음 듣는다”
 
  — 착해 보이는 이미지와는 달리 상당히 독단적인 면이 있어서 안철수연구소 시절에 별명이 ‘안틀러’였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사실입니까.
 
  “안… 뭐라고요?”
 
  — 안틀러요.
 
  “처음 듣는데….”
 
  — ‘안철수+히틀러’라는 뜻입니다.
 
  “안틀러는 처음 듣는다, 하하하. 그런 얘기가 있다면 아마 경쟁자들에게서 나온 것일 겁니다.”
 
  — 어떤 경쟁자를 말하는 겁니까.
 
  “저는 1997년 IMF사태 이전에 창업을 했어요. 회사가 망하기 직전까지 갈 정도로 죽을 고생도 했죠. 그런데 IMF사태 이후에 벤처 붐이 생겼잖아요. 그전까지는 안랩 하나였는데, 갑자기 IT분야 보안회사가 200개쯤 생겼어요. 전 세계에 600개쯤 있었는데, 그중 200개가 한국업체였어요. 그게 다 망하고 지금 한 5개 남았나? 하하. 그러니까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저를 흠집 내고 싶었겠죠.”
 
  — 안 대표가 정치를 시작한 후 안 대표를 도와주려고 갔다가 내침을 당했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가 정치하는 동안에 계속 제3당을 했잖아요? 한 1년 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에 있긴 했지만, 그때도 주류가 아니었죠. 그런데 (저와 함께 일하다가) 선거에 나가려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당선 가능성이 낮다 보니 결국 큰 당으로 가게 되는 거죠. 그 당에서 자기 입지를 마련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안철수 저격수’가 되는 거예요.
 
  그런 분들에 대해서는 원망보다는 미안한 마음이 더 큽니다. 제가 좀 더 정치력을 잘 발휘해서 그들이 당선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으면 그들이 떠났겠습니까.”
 
  안철수 대표는 그런 잡음이 나오게 된 원인 중 하나로 자신의 정치 입문 과정을 꼽았다.
 
  “누가 정치를 시작하면, 정치하는 과정에 코어(core) 그룹이 생기고, 거기서 조금씩 사람들이 많아지면 체계적으로 관리가 가능할 것입니다. 그런데 저 같은 경우는 갑자기 수많은 사람이 주변에 모이게 되었는데, 사실 그때는 제가 그런 상황을 관리할 역량이 안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오해도 생기고 사람이 떨어져 나가기도 하고 그런 것 같습니다. 나중에라도 오해를 풀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다행인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문제인 거죠.
 
  저 같은 경우가 없었던 것 같아요. 윤석열 전 총장이 지금 정치권에 갑자기 나오면서 사람이 확 몰려들면 저랑 비슷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김종인의 비토
 
2016년 5월 1일 원불교 100주년 기념대회에서 만난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4·13총선 후여서인지 두 사람의 표정이 어색하다. 사진=조선DB
  김종인(金鍾仁)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4·7재보궐선거 후 “솔직히 국민의당이 무슨 실체가 있나. 비례대표 세 사람뿐”이라면서 “안철수는 지금 국민의힘과 합당해서 대선 후보가 되겠다는 욕심이 딱 보이는 것 아닌가. 서울시장에 출마하면서 대선은 포기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 사람이 대통령 되면 나라가 또 엉망이 된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지난 3월 18일에는 안 대표에 대해 “내가 볼 때 정신이 이상한 사람 같다”고 극언을 했다. 성일종 국민의힘 비대위원은 4월 13일 방송에서 “(김 전 위원장이 안 대표에 대해) 지도자로서 준비가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하기도 했다.
 
  — 김종인씨가 왜 안 대표 비토하는 말을 그렇게 자주 하는 겁니까.
 
  “그분을 처음 만났을 때 스토리부터 들려드리는 게 맞는 거 같네요. 제가 서울대로 옮긴 지 얼마 안 됐을 때예요. 갑자기 네 분의 어르신에게서 저를 좀 보자는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나갔는데, 그중 한 분이 김종인 위원장이셨어요. 김 위원장이 대뜸 ‘총선에 출마하라’고 하시는 거예요. ‘아, 저는 정치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했더니, ‘아니, 그러면 내가 여기 있을 필요가 없잖아’ 하고 5분인가 10분 있다가 나가셨어요.”
 
  — 그러니까 서울시장 나온다고 소동이 일어나기 전의 얘기인 거죠.
 
  “네. 아마 제 짐작에 네 분 중 한 분이 제가 정치할 생각이 있다고 잘못 들으신 거 같아요. 그래서 저를 정치할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부른 건데 정치할 생각이 없다고 하니까 그렇게 나가신 거죠.
 
  언론 기사를 보니 그분은 그때 제가 ‘국회의원은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는데, 제가 왜 그걸 합니까’라고 말한 것으로 기억하시더라고요. 저를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저는 평생 그런 식으로 말해본 적이 없어요. 그에 대한 인상이 강하신 것 같아요.
 
  그 후 2016년 총선 때 저는 새로 창당한 국민의당 대표로, 김 위원장은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호남(湖南)을 두고 세게 붙었어요. 그때 제가 김 위원장의 국보위(國保委) 전력(前歷)부터 막 비판했어요. 김종인 위원장이 그때까지 선거를 치르면서 상대 당대표로부터 그렇게 공격받은 게 처음이었을 겁니다. 죄송하기는 하지만, 그게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제가 해야 할 일이잖아요? 수장(首將)끼리 서로 일합(一合)을 겨룬 건데, 그것도 조금 마음에 남아 있지 않을까 싶네요.”
 
 
  “안랩에서 사장은 영업 사원”
 
  — 안 대표가 의사 출신이면서 개업의나 대학병원 의사가 되지 않고, 컴퓨터 백신에 파고든 것을 두고 오타쿠, 즉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자기 세계 속에서만 갇혀 사는 사람 아닌가 하는 눈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가 그런 사람이면 어떻게 회사를 경영했겠습니까. 안랩은 B2B 회사, 즉 일반 소비자가 아니라 대기업 상대로 장사를 하는 곳입니다. 거기서 사장은 영업 사원이에요. 제가 평생 제일 오래 한 게 영업입니다. 오타쿠가 무슨 영업을 합니까, 하하하. 또 대학교수를 했고, 청춘 콘서트를 할 때에는 한 번에 3000명의 청중 앞에서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저보고 오타쿠라고 하는 것은 사실과 완전히 반대되는 이야기입니다.”
 
  — 어떻게 해서 의사의 길을 걷는 대신 컴퓨터 백신을 연구하게 된 겁니까.
 
  “의대를 졸업하고 나면 인턴·레지던트를 거쳐서 임상 의사가 되는 길이 있고, 다른 하나는 석사·박사 과정을 거쳐 의학 연구 분야로 가는 길이 있습니다. 저는 의학 연구 분야로 갔는데, 제가 공부한 주제가 심장 부정맥 연구였어요. 이를 위해서는 컴퓨터로 분석하는 게 필수였는데, 그때는 1980년 중반이라서 그에 필요한 소프트웨어가 없었어요. 만들어주는 사람도 없었고요. 그래서 의학공부를 하기 위해 컴퓨터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컴퓨터 바이러스를 발견하고 백신을 만들게 된 거죠.”
 
  안철수 대표는 독서가 안랩(안철수연구소)을 경영하는 과정에서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저는 소설을 읽을 때 줄거리보다는 등장인물의 심리에 더 관심이 많았어요. ‘그 사람은 왜 이 상황에서 이런 생각을 했을까’ 하는 게 궁금하더라고요.
 
  그게 나중에 회사를 경영할 때 굉장히 도움이 되었습니다. 의사가 경영을 압니까, 조직 생활을 해봤습니까? 그런데 그런 식으로 책을 읽은 것이 대화나 소통, 함께 일을 풀어나가는 데 정말 도움이 많이 되더라고요. 그게 안랩이 성공한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안 대표에게 존대말을 썼다는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이 때문에 안 대표가 마마보이가 아닌가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마마보이는 아닌데….”
 
 
  중도실용정치
 
  — 본인의 어떤 정치적 스탠스(stance)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중도실용정치죠. 사실 저는 ‘중도’라는 말은 별로 안 좋아합니다. 실용정치가 본질입니다. 사람들이 하도 진보, 보수, 중도라고만 말해서 중도라는 표현을 썼을 뿐입니다.”
 
  — 안 대표가 말하는 중도는 무슨 의미입니까.
 
  “사람들은 보수와 진보 사이의 중간 스탠스를 중도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진보와 보수는 각 분야에 대해서 답이 다 정해져 있잖아요. 하지만 시대 상황이 바뀌면서 그것이 답이 아닌 경우가 생겨요. 그게 당연하지 않겠어요? 외국 같은 경우는 옛날의 보수이념과 지금의 보수이념이 다르죠. 1970, 1980년대 이념이 화석화(化石化)되어 변하지 않는 것이 우리나라의 불행입니다.
 
  제가 말하는 중도는 예를 들어 경제정책은 보수적인 정책이 맞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을 선택하고, 안보 분야에서 진보적인 스탠스가 필요한 시기라면 그쪽을 선택하자는 것입니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해서 아무런 답이 없으면 새롭게 만들어내면 되는 것이고요. 즉 중도란 중간에 서 있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현재의 사회문제를 풀기 위한 최적(最適)의 방법을 선택하자는 것입니다. 흑묘백묘(黑猫白猫)예요. 이념이 앞설 순 없잖아요. 사회문제 푸는 게 더 중요한 거지.”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년 동안 뭘 제일 잘못했다고 생각합니까.
 
  “아… 너무 많은데, 하하하. 그러니까… 우선은….”
 
  — 너무 많으니 하나를 찍어서 말해달라는 것입니다.
 
  “(한숨을 푹 내쉬면서) 먼저, 너무 이념에 치우쳐서 너무나 무능한 정부가 됐습니다. 경제도 파탄 내고, 방역·백신도 파탄 내고, 외교도 파탄 냈어요. 둘째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법치, 공정, 그리고 상식과 규범까지 다 파괴해버렸어요. 셋째는 국민 분열을 심화시켰어요. 이렇게 완전히 어긋나버린 세상을 제대로 돌리는 게 만만치가 않을 거예요.”
 
 
  “국가 對 국가 관계로 접근해야”
 
  — 북한이 걸핏하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원색적인 욕설을 퍼붓고 있습니다. 만일 안 대표가 대통령인데, 북한이 그렇게 나온다면 어떻게 대응하겠습니까.
 
  “북한하고 잘 지내려고 유화적으로 나가는 게 제일 어리석은 일이에요. 북한이 우리 눈치 보고 우리한테 손을 내미는 경우는 단 하나뿐입니다. 한미(韓美)동맹이 튼튼하고, 일본과 좋은 관계이고, 중국으로부터도 존중받을 때만이, 북한이 우리한테 손을 내밀고 도와달라고 할 것입니다.
 
  지금 문재인 정부는 반대로 한미동맹은 약화(弱化)되고, 일본과는 최악의 관계고, 중국으로부터는 무시당하고 있잖아요. 저렇게 굴종적으로, 그냥 앞에서 계속 잘 봐달라고 웃고 해서는 북한이 우리에게 부탁할 게 없어요.”
 
  — 문재인 정권이 왜 그런다고 봅니까.
 
  “근본적으로 문재인 정부는 북한을 민족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거예요. 그런데 북한은 한 번도 우리를 민족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적이 없어요. 국가 대 국가 간 관계로 보아왔어요. 우리도 국가 대 국가 간 관계로 접근해야 하는데, 거기서 가장 큰 오류(誤謬)들이 파생된 것 아니겠습니까?”
 
  — 전에 ‘지금 세상에 간첩이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말한 것 때문에 지금까지도 보수층 사이에서는 ‘안철수는 안보에 대해 무지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그게 대표적인 가짜뉴스예요.”
 
  —가짜뉴스입니까? 그렇게 말한 적이 아예 없다는 겁니까.
 
  “제가 정치하기 이전에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아버지가 ‘박원순이 공산주의자라는 말을 들었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판단하기에는 박원순은 공산주의자라기보다는 사회주의자’라고 말씀드렸는데 그게 지방지 기자를 거치면서 와전(訛傳)된 것입니다, 그에 대해서는 이미 언론을 통해 여러 번 해명했는데, ‘간첩이 어디 있느냐’는 말만 돌아다니고 있어요.”
 
 
  mRNA 백신 개발이 던져준 고민
 

  —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코로나19 사태를 보면서 제가 제일 충격받고 있는 게, 화이자나 모더나 방식인 mRNA 백신 개발 과정입니다. mRNA는 실험실에서 금방 만들 수 있지만 불안정해서 금방 깨져버려요. 그런데 반도체 공정(工程) 쪽의 나노 테크놀로지 전문가들이 리퀴드 나노 파티클(liquid nano-particle)로 mRNA를 둘러싸는 방법을 찾아내면서 mRNA 백신이 개발된 것입니다. 완전히 다른 분야의 융합이 일어난 것이죠.
 
  더욱 놀라운 것은 이것을 지켜보던 정치권이 이와 관련해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규제나 법률적인 문제들을 미리 없앴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성공할지 실패할지 모르는데 돈을 투자했습니다. 그 덕분에 원래 10년쯤 걸려야 나올 수 있을 mRNA 백신이 1년도 안 되어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건 기술과 정치가 융합한 거예요.
 
  그러니까 바이오기술과 나노기술이 융합하고, 여기에 정치까지 융합해서 mRNA 백신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게 앞으로 선진국들이, 세계가 나아가는 방식이 될 거예요. 우리나라가 그런 걸 할 수 있을까요? 지금 저의 가장 큰 고민이 그거예요. 세계가 이렇게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여의도에서는 모르고 있어요. 이게 앞으로 우리나라가, 그리고 다음 대통령이 가장 고민해야 할 숙제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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