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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원로 지휘자 서현석의 人生

“앙상블을 政治에 비유하지만 하모니가 그냥 이뤄지나요?”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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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아원(경기 이천 愛光園) 브라스밴드의 선율에 반해 음악의 길로
⊙ 트럼펫 전공… 서울대 음대 1학년 때 서울시향 연주자가 돼
⊙ 서울윈드앙상블 창단… 한국 관악 수준을 끌어올려
⊙ 국내 최초 2006년과 2011년 베토벤과 브람스 교향곡 전집 출반
⊙ 父傳子傳 지휘자… 아들은 과천시향 지휘자 서진

徐賢錫
1941년생. 서울대 음대 졸업, 독일 아헨국립음악대 수료 / 前 서울시립교향악단·KBS교향악단·국립교향악단 트럼펫 수석, 서울윈드앙상블 음악감독,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 지휘자, 성신여대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 신인예술상(1967), 한국음악상(1990), 한국관악상(1999), 음악대상(한국음악평론가협회, 2000), 대한민국 화관문화훈장 대통령상(2004)
  어느 음악평론가에게 서현석(徐賢錫·81) 지휘자를 평해달라고 부탁했다. 이런 답변이 왔다.
 
  “지휘자 서현석은, 국내 최초의 구립교향악단인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와 함께 남긴 베토벤과 브람스 교향곡 전집 음반이 호평을 받았다고 여러 해 전 지인을 통해 전해 들었습니다.”
 
  그 평론가는 서현석의 지휘를 직접 목격한 일도 있다고 한다. 2013년 4월 교향악 축제에서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연주회와 2015년 3월 춘천에서 춘천시향을 지휘한 연주회를 찾았다고 한다. 그는 “두 번 모두 모난 구석 없이 힘있게 조형된 무대로 기억에 남아 있다”고 회상했다.
 

  그러더니 서현석의 아들 과천시향 지휘자 서진(46)씨 이야기를 보탰다.
 
  “그의 아드님이 가업을 잇고 있습니다. 2017년 5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 파트에서 프라임 필을 이끌며 김달성의 1969년작 오페라 〈자명고〉를 서포트하는 서진을 본 적이 있어요. 지휘자 서진은 2014년 과천시향의 상임지휘자로 임명된 이후 호평이 주를 이루는 듯합니다.”
 
  그러고 보니 기자도 서진 지휘자를 무대에서 만난 적이 있다. 지난 4월 2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2021 교향악 축제’에서 카를 슈타미츠 ‘클라리넷 협주곡 제7번’과 시벨리우스 ‘교향곡 제1번’을 듣고 깜짝 놀랐다. 분명 서진은 로맨티스트가 분명했다. 기자는 그날 밤 무엇에 홀린 듯 ‘과천시향이 봄밤의 클라리넷 축제를 완성하다!’라는 리뷰 기사를 급히 썼다.
 
  이튿날 ‘아버지 지휘자’에게 전화가 왔다. 만나고 싶었다. 아버지 입을 통한아들의 지휘 테크닉 이야기가 아닌 아버지가 걸어온 음악 인생을 듣고 싶었다.
 
 
  서현석이 그리는 지휘의 물결은…
 
1979년 국립교향악단의 수석 트럼펫 연주자 서현석.
  기자는 비록 무대 위의 서현석을 직접 만나진 못했지만, 땀이 가득한 베토벤과 브람스 교향곡 전집 음반을 돌려 들으며 그가 그리는 지휘의 물결을 떠올려보았다.
 
  지휘자에게 왜 폭넓은 음악적 경험이 필요한지 느낄 수 있었다. 서현석은 지휘자에 앞서 뛰어난 트럼펫 연주자였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서울시향과 국립교향악단, KBS교향악단에서 트럼펫 수석 연주자로 활약했다. 지휘에 필요한, 정확한 음감과 박자감은 거저 얻은 것이 아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서현석이 지휘하는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과 토스카니니, 푸르트벵글러가 지휘하는 ‘운명’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우리는 왜 서현석의 ‘운명’을 들어야만 할까. 이유를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아니, 쉬울 수 있다. 서현석만이 아는 음표와 쉼표, 그만이 할 수 있는 해석의 즐거움 때문이다.
 
  서현석이 2006년과 2011년에 각각 출시한 베토벤과 브람스 교향곡 전집 은 국내 악단이 남긴 최초의 전집 음반이다. 국내 수많은 교향악단이 있지만 왜 전집을 못 내는 것일까.
 
  차이콥스키와 시벨리우스 교향곡 전집은 김대진(金大鎭·1962~)이 지휘한 수원시향이 2014년과 2016년 각각 소니(Sony)에서 박스세트로 출시했다. 브루크너 교향곡 전집은 임헌정(林憲政·1953~)이 지휘한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2017년 데카(Decca)에서 10CD 박스세트로 출시해 미국 브루크너협회가 선정한 그해의 음반상을 받았다. 여기서 소니와 데카는 인터내셔널 릴리스가 아니라, 레이블만 빌려준 로컬 릴리스다.
 
  아직 국내 악단이 남긴 슈베르트와 드보르자크, 말러, 쇼스타코비치 등 여타 교향곡 작곡가들의 전집 음반은 없다. 서현석 같은 지휘자가 없어서일까.
 
  기자는 지난 5월 3일 경기 파주 헤이리에서 서현석 지휘자를 만났다. 그는 여전히 음악을 즐기며 새로운 연주를 꿈꾸고 있었다. 오는 9월 헤이리국제평화음악제를 준비하고 있다. 지휘자 곽승, 아들 지휘자 서진, 피아니스트 한동일 등과 함께 한다.
 
  “지자체에서 국제음악제를 주최할 형편이 안 되니까 이곳 헤이리 주민들이 십시일반 참여해 4000만원을 모았어요. 기적 같은 일이에요. 또 많은 연주자가 재능기부에 동참합니다. 마을 주민인 가수 윤도현, 탤런트 김미숙씨도 함께 해요. 꼭 오세요.”
 
  그는 2006년 페스티벌 악단인 ‘파주 헤이리심포니오케스트라’를 창단, 지금까지 23회의 정기연주회와 실내악 축제를 열었다. 어느덧 파주가 클래식 음악의 명소로 변하고 있다.
 
 
  고아원 소년소녀의 선율
 
1997년 7월 12일 서현석은 한예종 관악합주단(KNUA Wind Ensemble)을 이끌고 오스트리아 슐라드밍(Schladming)에서 세계심포닉밴드협회(WASBE) 초청 연주회를 가졌다.
  20세기 최고의 첼리스트인 파블로 카잘스가 ‘마태 수난곡’을 처음 듣고 몇 달 동안 몸져누웠다는 글을 어느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과장된 표현이라 해도 음악은, 음악을 하는 사람이건 듣는 사람이건, 사람의 마음을 파고들어 영혼을 물들인다.
 
  어느 가락 앞에 저절로 콧노래가 나오듯 음악가는 특별한 재능을 지녔거나 보통 사람과 다른 사연을 가진 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클래식 음악을 평생 업으로 삼게 된 사연이 궁금합니다.
 
  “경기도 이천이 고향입니다. 부모님은 전형적인 농부셨죠. 10남매(6남4녀) 중 7번째로 태어났는데 음악을 접할 환경이 전혀 못 됐어요. 이천에 고아원이 한 곳 있었습니다. 혹시 애광원(愛光園)이라고 들어보셨어요? 그곳에 브라스밴드가 있었어요. 악기 원조를 받아 소년소녀들이 연주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음악이 좋았어요.”
 
  6·25전쟁으로 갈 곳 잃은 고아들이 음악을 통해, 악기를 통해 표현하는 격렬한 열정과 감동의 선율을 체험한 것이었다.
 
  ― 음악 선생님은 누굴까요.
 
  “미군 장교가 가르쳤을 겁니다. 좋은 스승을 만났던 거지요.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음악을 해보고 싶다’고 처음 느꼈어요.
 
  애광원은 우리 집에서 2km 남짓 떨어졌는데 그네의 연주를 듣고 싶어 자주 찾아갔죠. 초등학교 시절, 같은 반 애광원 친구들이 부러웠어요. 시가행진하는 모습도 봤죠. 음악이 그렇게 제게로 찾아왔어요.”
 
  《조선일보》를 찾아보니 1954년 9월6일자 3면에 애광원 창립 기념식 기사가 있었다. 이듬해 6월12일자 4면에는 이승만 대통령 부인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애광원 광장에서 구호물자 전달식을 가졌다’는 기사도 있었다. 원아가 200여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때 음악을 하던 아이들이 자라나 이봉조(李鳳祚·1932~1987)악단 등에 들어가 단원으로 활약했어요. 이들이 한국 음악사에 영향을 끼쳤지만 제 삶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 거지요.”
 
  이천에서 초등학교를 마친 서현석은 서울로 전학을 가게 된다. 한양대 인근 이모집에서 숙식하다 신당동에서 자취생활을 시작했다. 신문배달을 하며 고학(苦學) 시절을 보냈다.
 
 
  대학 신입생이 서울시향 단원이 되다
 
  ― 서울대 음대를 진학할 정도면 음악 수준이 뛰어났나 봅니다.
 
  “그렇지도 않아요. 그 시절, 음대 가는 게 어렵지 않았어요.
 
  배명중학교에 입학했는데 KBS교향악단에 계시던 분이 강사로 오셨어요. 그분이 바로 조순명 선생님(서울대 음대 1950년 입학·경복고 교사 역임)이십니다. 제게 은인이시죠. 그분께 트럼펫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가 14세 무렵이었어요. 어느 정도 하니까 전액 장학금을 받고 고교에 다닐 수 있었죠.”
 
  ― 트럼펫은 어떤 매력이 있습니까.
 
  “금관악기 중에서 최고의 악기지요. 관악 연주자들은 두둑한 배포와 언제 어느 순간이라도 정확히 악보에 적힌 음표를 연주할 수 있는 테크닉, 쉼 없는 소리 연습이 필요합니다.”
 
  트럼펫의 매력이랄 수 있는 고음역은 소리 내기가 쉽지 않다. 문득 MBC TV 〈장학퀴즈〉의 테마송인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 3악장’이 생각난다. 트럼펫 솔로로 시작되는 말러의 ‘교향곡 5번 1악장’은 또 어떤가.
 
  ― 어린 시절 손재주나 음감이 남달랐을까요.
 
  “그런 건 별로 없었던 것 같고… 노력형인 것 같아요.”
 
  ― 겸손의 말씀….
 
  “아니, 정말 자연스럽게 그 길로 가게 된 것 같아요.
 
  어린 시절 애광원의 선율이 컸어요. 트럼펫으로 내면의 울림을 경험한 환경이 제게 영향을 미쳤지요. 콩쿠르요? 아뇨. 그런 도전은 꿈도 못 꿨어요. 나가면 떨어지지요, 그 정도 실력은 안 됐어요. 트럼펫이 좋아 그냥 열심히 뛰어다닌 것 같아요.”
 
  14세 때부터 트럼펫을 손에 쥔 그는 서울대 음대에 1961년 입학했다. 1학년 2학기 때 서울시향 오디션에 합격했다.
 
  “단원이 되고 나서 뻐기고 다녔지요. 시향은 보통 오전에 연습하는데 교양과목 수업이 대개 오전에 있었어요. 학점 때문에 교수님 찾아다녀도 안 됐어요. 고생을 많이 했지요. 그래도 뭐… 남들은 음대 나와서 오케스트라 들어가는데, 대학 1학년 때 됐으니 그걸로 만족하고 다녔지요.(웃음)”
 
  ― 대단한 것 아닌가요?
 
  “보기에 그렇기는 한데….”
 
 
  현대 오케스트라와 목관악기
 
1977년 독일 유학 시절 서현석. 국내 관악연주자로는 처음으로 독일에 유학해 아헨(Aachen)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트럼펫을 배웠다.
  지휘자 서현석은 1961년 서울대 음대 1학년 재학 중 서울시립교향악단에 입단하여 트럼펫 연주자로 활동을 시작했다. 1966년 KBS교향악단에 입단해 이듬해 문화공보부 주최 신인예술상 특상을 받았다. 1977년 관악 연주자로선 처음으로 독일로 유학, 아헨(Aachen)국립음대에서 지휘와 트럼펫을 전공했다. 1979년부터 1981년까지 국립교향악단과 KBS교향악단의 트럼펫 수석 연주자로 활동했다.
 
  ― 간혹 오케스트라에서 관악기를 2관, 3관, 4관으로 편성하더군요. 편성이 늘면 소리가 더 커지겠지요. 오케스트라에 관악기가 중요한 이유는 뭘까요.
 
  “다양한 색채의 음향을 구사할 수 있지요. 클래식이 바로크, 고전, 낭만, 현대로 오면서 점점 관악기 비중이 커져갔어요. 헨델, 바흐 같은 작곡자들을 통해 트럼펫 역할이 확대됐다고 볼 수 있죠.
 
  브람스는 중요한 멜로디를 호른으로 부각시켰죠. 라벨이나 드뷔시 같은 작곡자들은 독특한 소리 빛깔을 위해 목관악기를 썼어요.”
 
  목관악기가 점차 개량되면서 음정이 안정적이고 고르게 된 측면도 있다. 이후 트럼펫은 오케스트라에서 화려한 색채를 더하는 악기로 중요한 쓰임을 받게 됐다.
 
  “빈 필하모닉이나 베를린 필 같은 대형 오케스트라는 소리 볼륨을 높이려 3관, 4관으로 연주하죠. 지휘자 카라얀은 4관 연주를 했어요. 물론 대개 2관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나 현대로 오면서 극장 규모가 커지니까 악기를 ‘더블’로 운영하게 된 겁니다.
 
  마우스피스만 하더라도 과거엔 아주 좁은 걸 썼어요. 지금은 넓은 마우스피스를 써서 소리 크기를 올립니다. 콘트라베이스라는 악기도 마찬가지죠. 과거엔 선이 네 줄인데 요즘엔 다섯 줄을 원하거든요. 소리 볼륨을 키우려고….”
 
  ― 줄이 늘어나면 소리가 커지나요.
 
  “더 낮은 저음을 연주할 수 있으니까요. 엄청난 소리가 나오죠. 그러면 모든 사운드가 달라져요. 예전엔 관악기 소리를 예쁘게 내려 했다면 요즘은 거칠면서도 굵고 건강한 소리를 많이 원합니다.”
 
  ― 그건 왜 그런가요.
 
  “우리가 CD나 LP판으로 듣는 연주는 기계를 통해 깎여서 나오는 소리잖아요. 극장에서 듣는 오케스트라 연주는 어마어마하지요. 음반으로 소리 공부를 하면 한계가 생겨요. 실제 연주회에서 들으면 다른 소리가 나오거든요.
 
  유학 시절, 베를린 필에서 연주하던 분에게 트럼펫을 배웠어요. 그분 연주를 들으면 소리가 거친 듯했어요. 아내가 그래요. ‘선생님 소리보다 내 소리가 더 예쁘다’고요.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요. 선생님 소리는 무대 위에서 들으면 그런(예쁜) 소리가 났어요. 조각도 그렇잖아요. 거리를 두고 봐야지 제대로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기본기가 중요한 이유
 
지휘자 서현석과 아내인 피아니스트 김덕희 여사.
  ― 국내 오케스트라 관악의 수준은 세계 무대에서 어느 정도인가요. 지방 오케스트라에서 관악을 연주하는 외국인이 여전히 많아요.
 
  “농구나 배구, 야구, 축구에서 외국인 선수들을 볼 수 있잖아요.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하면 어떨까요.
 
  한국인 입술의 경우 근육 구조가 외국인과 다릅니다. 근육이 다르면 소리가 달라요. 외국인 연주자를 초빙하는 이유겠지요. 지방 오케스트라의 경우 호른이나 트럼펫 연주자를 해외에서 데려와 효과를 보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색깔이 비슷하면 연주자 각자의 소리가 잘 융합되는데 외국인이 하면 튀는 면이 있죠. 지휘자들이 욕심을 부려 그렇지 우리 연주자의 수준도 어느 정도 올라왔기 때문에 이제는 한국인끼리 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일본이 그렇거든요. 제2차 세계대전 후에 NHK교향악단이 악장, 지휘자, 각 수석 연주자까지 죄다 미국이나 오스트리아 출신들로 채우던 시절이 있었죠. 그러다 국내 콩쿠르를 통해 선발된 젊은 연주자들을 국비유학 보냈어요. 그들이 4~5년 후 돌아오면서 한 사람씩 외국 연주자들을 돌려보냈어요. 지금은 거의 일본인만의 오케스트라가 되었고 실력도 세계 1급에 속한다고 평할 수 있죠. 그런 면을 우리도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외국인을 쓰는 것은 좋은데 이후 대비를 안 하니 답답하죠.”
 
  ― 외국인과의 입술 구조나 근육 구조 차이를 극복하기 어려운가요.
 
  “(짧은 침묵이 흐른 뒤) 아주 고도로 올라가면 그럴 것 같아요.”
 
  ― 수술하면 안 됩니까.
 
  농담스러운 질문인데 그는 진지하게 답했다.
 
  “안 돼요.”
 

  ― 연습으로 극복이 어렵나요.
 
  “서양인은 입술 자체가 얇아요. 창호지 질이 다르듯이…. 동양인 입술은 아무리 얇다 해도 서양인과 달라요. 조금 질긴 것 같아요. 그러나 처음부터 잘못 배워서인지 연구할 필요는 있어요.
 
  한예종에 있을 때 러시아 연주자를 목관 선생으로 모셨어요. 어떻게 가르치나 유심히 지켜봤죠. 과연 기본기에 충실해요. ‘도’만 가지고 종일 연주해요. 부드럽게, 빠르게, 크게, 낮게… 여러 방식으로 훈련시키는데 6개월 후 확실히 연주가 달라지기 시작하더군요. 그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기본기가 이렇게 중요하구나, 느꼈죠. 우리는 기본기보다 입시 준비에 매달리며 협주곡, 소나타 연주를 하는 게 잘못된 겁니다.”
 
  ― 한예종 학생들이 원래 뛰어나지 않나요.
 
  “그렇지 않아요. 100명 중에 제대로 관악기를 다룰 수 있는 친구는 4~5명 정도입니다.”
 
  스승의 냉정한 평가지만 따지고 보면 어느 분야에서든 ‘상위 1%’는 그 정도 비율이다.
 
 
  지휘자의 능력
 
서현석이 지휘하는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는 지난 2006년과 2011년 베토벤과 브람스 교향곡 전집 음반을 국내 최초로 냈다.
  지휘자들은 관악기 특성을 제대로 알까. 한 파트에 현과 동시에 소리를 낼 수 없는 목관·금관의 특성을 세심하게 배려하지 못한 일부 지휘자의 무지(無知)가 관악에 대한 편견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게다가 목관·금관 악기별로 전임교수를 두지 않은 현실도 변한 게 없다.
 
  “지휘자 손짓에 맞춰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이 동시에 빵~ 하고 나와야 하는데 어떤 이는 조금 늦고, 어떤 이는 조금 빠르고, 다 다르거든요. 일치시키는 게 지휘자 역할이죠.
 
  프렌치 호른은 길이가 2m가 넘어요. 훅 불어도 나오는 속도가 늦잖아요. 튜바도 불면 속도가 늦어요. 반면 클라리넷이나 트럼펫은 불자마자 빵~ 하고 나오거든요. 이처럼 악기마다 특성이 다른데 지휘자는 다 알아야 해요.”
 
  ― 지휘자는 어떻게 합니까.
 
  “연주자가 그 대목에서 긴장하도록 눈으로 사인을 미리 주면서 준비하게 만들어야죠. 지휘자가 냉철하지 못하면 미리 대비하기 어렵죠. 음악 앙상블을 ‘정치(政治)’에 비유하지만 하모니가 그냥 이뤄지나요? 쉬운 일이 아니죠.”
 
  ― 단원의 기량을 뿜어내도록 하려면 지휘자는 어떤 능력이 필요합니까.
 
  “악보를 열심히 공부해야 하고 단원들과 관계도 좋아야 해요. 마냥 사람이 좋아서도 안 돼요. 독일은 지휘자의 계약 기간이 끝난 뒤 단원들의 투표로 연임 여부가 결정됩니다. 음악이 아무리 좋아도 인상 쓰고 불같이 화내면 누가 좋아하겠어요. 물론 실력이 뛰어나면 해임하기는 힘들겠죠.(웃음)”
 
  ― 지휘자는 화를 잘 낼 것 같아요.
 
  “화낼 필요가 없고 화를 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적을 했는데 변화가 안 되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지요. 지휘자는 단원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아무리 제자여도 반말을 해선 곤란해요.”
 
  잠시 뜸을 들인 뒤 속엣말을 털어놨다.
 
  “지휘자는 음악에 관한 확실한 주관과 실력이 있어야 하지만 늘 소통하고 대화해야 합니다. 저 역시 속상한 경우가 많았어요. 잠을 못 이루고 수면제에 의존하기도 했죠.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있지요. 연주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 단원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니까요.”
 
  서현석은 1997년 IMF 어려움에도 강남교향악단(현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을 창단하고, 이듬해 제1회 정기연주회를 개최하며 ‘교향악 축제’에 참가했다. 2000년 우리나라 최초의 기초자치단체 소속 오케스트라가 되었다.
 
  짧은 연륜에도 원숙미와 때로 패기 넘치는 연주력을 선보이며 실력 있는 교향악단의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대한민국 최초로 베토벤 9개 교향곡과 브람스 4개 교향곡을 출반하며 한국 교향악 역사에 큰 획을 남겼다.
 
  또 성신여대(1983~1996년)와 한국예술종합학교(1996~2007년) 교수로 많은 제자를 음악인으로 길러냈다. 현재 그는 교향악단을 퇴임한 연주자들이 발족한 대한민국 교향악우회의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40년 전으로 다시 돌아가도
 
3명의 지휘자. (오른쪽부터) 서현석, 곽승, 아들 서진씨. 지휘자 곽승은 서현석의 오랜 벗이자 음악 동료다.
  ― 지휘는 언제 배우신 겁니까.
 
  “1968~1969년에 건강이 나빠졌어요. 안면신경에 문제가 생겨 입술이 비뚤어졌어요. 트럼펫을 제대로 불 수 없었죠. 낙담하고 있었는데 임원식(林元植·1919~2002년) 선생님이 ‘다 나을 때까지 서울예고 합주부를 맡아 훈련시켜라’ 하셨죠. 사실, 선생님은 지휘자보다 트럼펫주자로서 서현석을 격려하셨어요.
 
  그때부터 지휘 활동을 하게 됐지만 이후 건강이 좋아져 트럼펫을 다시 분 겁니다.”
 
  그가 본격 지휘자의 길을 걷게 된 특별한 사연이 있다. 오디션이란 이름의 ‘폭력’을 단호히 거부하면서다.
 
  “1980년대 초로 기억합니다. 유학 중에 국립교향악단 홍연택(洪燕澤) 지휘자가 ‘미국 순회 투어를 하니 빨리 귀국하라’는 겁니다. 모든 걸 팽개치고 들어왔죠. 3개월간 순회공연을 마치고 독일로 돌아가지 않고 주저앉았어요. 그 무렵 국립교향악단이 KBS교향악단으로 바뀌는데 새로 젊은 지휘자가 왔어요.
 
  ‘전 단원의 오디션을 보겠다’는 말에 실망했죠. 고생고생하며 지금의 오케스트라를 만들었는데 지휘자가 바뀌니 나이 든 분들 다 자르고 젊은 사람끼리 하겠다니…. 오디션에 참여할 생각이 없었어요.”
 
  당시 《조선일보》(1982년 9월1일자 7면)는 한 음악평론가의 말을 빌려 “서현석(트럼펫 수석)씨 같은 우수한 연주자는 오디션 참가 여부를 따지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악단에 복귀시키는 것이 악단 발전에 필요한 일”이라고 보도했다.
 
  ― 선택의 문제네요. 지금도 그때처럼 오디션을 거부합니까.
 
  “마찬가지죠. 1년마다 단원들을 심사한다는 게 말이 안 돼요. 그런 식의 평정(評定)은 지금도 거부합니다. 물론 대개는 재계약하면서 우물우물 넘어가지만 단원들은 해마다 스트레스를 받아요. 공무원 뽑아다가 매년 ‘공시(공무원 시험)’를 치게 해보세요. 자르든, 안 자르든 그런 불안감을 갖게 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아요.”
 
  ― 오디션 보면 나이 드신 분이 탈락하는 이유가 뭡니까. 완숙한 연주를 들려줄 것 같은데.
 
  “물론 그런 면도 있지만 음악은 어쨌든 기술이니까. 손가락이 돌아가야 하니까요. 100명 중 한두 명은 악착같이 해서 견디지만 대부분은 기량이 떨어져 밀리죠. 저는 강남심포니에서 지휘할 때 평정이란 걸 없앴어요. 왜 우리 단원을 외부인이 와서 심사하게 만듭니까. 창피하게.”
 
  그는 오디션을 거부해 1982년 KBS교향악단을 그만둔 뒤 성신여대 교수가 되었다. 앞서 성신여대 강사로 대학 오케스트라를 지휘했었다.
 
  “성신여대 교수 시절 전국에서 처음으로 색소폰 전공을 신설했는데 이후 모든 대학에 전공이 만들어졌어요. 색소폰 하면 대개 군(軍)에서 조금 배우거나 클라리넷 전공자가 필요에 따라 색소폰을 부는 식이었죠. 그러니 제대로 소리를 낼 수 없어요. 없는 전공을 만들려니 반발이 많았지만 이후 훌륭한 색소폰 연주자가 많이 생겼어요. 오케스트라에 꼭 필요한 유포니움(Euphonium), 베이스 클라리넷도 제가 전공을 신설해 전국 대학으로 번졌어요.”
 
 
  원숙한 인생과 음악 이야기
 
  서현석 하면 누구나 지휘자로 연상하지만, 서울윈드앙상블(옛 서울교향취주악단)을 빼놓을 수 없다. 1970년대만 해도 현(絃)에 비해 관(管)이 떨어진다는 편견이 많았다. 트럼펫 연주자로서 속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1974년 서울과 지방 오케스트라의 목관·금관·타악기 연주자들과 뜻을 같이해 관악합주단인 서울윈드앙상블을 창단했어요. 지휘자들이 현은 잘하지만 목금관 때문에 우리 오케스트라가 나쁘다는 말을 하기에 기분이 나빴어요. 관악 연주자를 잘 훈련시켜야지, 나쁘다고만 이야기해서 우리끼리라도 앙상블을 맞춰보자는 취지였죠.”
 
  이후 정기연주회, 대한민국음악제, 예술의전당 개관기념음악회, 예술의전당 교향악 축제, 청소년을 위한 연주회, 한국 작곡가들의 창작곡 연주회 등 관악기 특성을 살린 장쾌하고 웅장하며 감미로운 음악을 선보여왔다는 평가다.
 
  88서울올림픽 개·폐회식 연주에 참가해 한국 관악의 높은 수준을 전 세계에 알렸다. 또 세계심포닉밴드협회(WASBE)의 엄정한 심사를 거쳐 진행된 1991년 캐나다 밴쿠버와 시애틀, 1992년 로스앤젤레스(LA)·샌프란시스코·산호세, 1993년 일본 교토국제음악제 초청연주회도 서현석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지금 서울윈드앙상블 OB회원 수가 200명쯤 될 겁니다. 현재 멤버는 50명 정도? 대개 젊은 연주자들이죠. 그러고 보니 오는 12월 12일 세종문화회관에서 20년 만에 ‘서울윈드’와 다시 만나요. 트럼펫이 아니라 지휘로요.”
 
  ― 트럼펫 연주를 듣고 싶은데….
 
  “요즘은 못 해요. 악기를 놓은 지가 벌써….”
 
  국내 악단은 대개 80세를 넘긴 노(老)지휘자가 보이지 않는다. 안타까운 일이다.
 
  박은성(朴恩聖·1945~)을 비롯해 적지 않은 지휘자가 모두 80세 전에 준은퇴를 겪어야 했다. 객원지휘자나 명예지휘자, 계관지휘자 같은 형식으로 꾸준히 단상에 오르는 국내파 노지휘자를 계속 만나고 싶다. 그들의 원숙한 인생과 음악 이야기를 듣고 싶기 때문이다.
 
  서현석이 지휘하는 베토벤 ‘운명’을 그리고 ‘합창’을 현장에서, 객석에서 만나고 싶다. 엄격하고 고지식한 브람스를 서현석의 ‘맛’으로 즐기고 싶다. 그의 롱런을 계속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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