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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황기철 국가보훈처장

“천안함 생존장병 지원에 최선 다할 것”

글 :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hy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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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 참전국 대사관 방문해 감사 인사… ‘보훈 외교’ 확대할 것
⊙ 김원봉 서훈 추진한 적 없어… 사회주의자 서훈은 노태우 정부 때부터
⊙ 올 연말까지 보훈 위탁병원 520곳으로 확대

黃基鐵
1956년생. 진해고·해사(32기)·고려대(불어불문학과) 졸업, 경희대 경영대학원 석사, 파리1대 대학원 역사학 석사 / 여수함 함장, 광개토대왕함 함장, 해군 제2함대 사령관, 해군 작전사령관, 해군 참모차장, 해군사관학교 교장, 제30대 해군참모총장 역임 / 저서 《바다에서 새벽을 보다》
  “‘만일 내 부하들이 다치면 어떻게 해줘야 하나’를 수없이 생각하면서 군(軍)에서 생활했습니다. 내정됐다는 소식을 들으니 그 생각이 제일 먼저 나더군요. 제가 그동안 부상 장병이나 유가족을 보고 느낀 점들을 실천해야겠다고 말입니다.”
 
  황기철(黃基鐵) 국가보훈처장이 말했다. 담담하게 말했지만 그의 말에서는 단단함이 느껴졌다. 평생을 군에 몸담은 그에게 국가보훈처장은 남다른 의미로 다가올 터다. 1978년 해군 장교로 임관해 초계함인 여수함 함장, 구축함인 광개토대왕함 함장, 해군 제2함대 사령관과 해군작전사령관, 제30대 해군참모총장을 지낸 그가 지난해 12월 국가보훈처장이 됐다.
 

  일반인들에게 그는 ‘아덴만의 영웅’ ‘노란리본 군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2011년 소말리아 인근 아덴만 해역에서 벌어진 삼호주얼리호 납치 사건 당시 황 처장은 ‘아덴만 여명작전’을 지휘해 인명 피해 없이 선원들을 전원 구출했다. 2014년 세월호 침몰 때 해군참모총장이던 그는 사고 현장인 팽목항에 온 박근혜(朴槿惠) 전(前) 대통령을 안내하면서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아 화제가 됐다. 이후 방산비리 사건에서 누명을 쓰고 고초를 치른 황 처장은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후 중국 시안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지냈다. 6년 만의 공직(公職) 복귀가 국가보훈처다.
 
 
  2022년까지 보훈위탁병원 640곳으로 확대
 
  “군에서 다하지 못한 공직을 최선을 다해 봉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특정한 이념이나 정당, 세력에 편향되지 않고 국민통합을 실천하는 정부 기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 너무 교과서적인 답변인데요.
 
  “하하, 저는 평생을 군에서 지낸 사람 아닙니까. 평소에 군인으로서 보고 느낀 점을 제대로 실천해야죠. 군인은 국가를 지키는 일이 명예롭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명예로운 일을 하는 과정에서 국가가 부여한 임무를 수행하다 보면 언제든 희생은 따를 수 있습니다. 희생에 대한 뒷감당은 국가가 져야 합니다.
 
  저는 지휘관 시절에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리면서 항상 ‘자네들 뒤에는 국가가 있고 우리가 함께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목숨 바쳐 임무 수행을 한 그분들의 희생은 국가가 보듬어줘야 합니다. 지금까지 제도적인 제한이 있었다면, 그 부분을 해결하도록 최선을 다할 겁니다. 문화 개선에도 앞장서야겠고요.”
 
  ― 국가유공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을 바꾸겠다는 겁니까.
 
  “국가보훈처가 단순히 국가유공자를 관리하는 기관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에 그분들을 존경하고 감사해하는 그런 문화를 만드는 일에 앞장서고 싶습니다. 그런 문화를 바탕으로 더 큰 대한민국을 만들고, 미래 후손들에게 정신을 물려줘야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보훈은 ‘든든한 보훈’입니다.”
 
  ― 무슨 의미입니까.
 
  “그동안의 보훈은 ‘원호(援護)’의 개념에서 ‘예우’의 개념으로 변했습니다.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발전하면서 국민의 눈높이와 경제 수준이 높아지고, 보훈 역시 유공자들이 나이 들고 범위가 확대되면서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보훈처 직원들이 열심히 하고 있지만 시대에 맞는 선진 보훈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업무의 체계화를 통해 정책 중심 부처로 거듭나야 합니다. 제가 보훈 현장을 가고 보훈 가족 목소리를 들어보면 정말 다양한 얘기들을 합니다. 현재 정책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새로운 정책을 개발해, 보훈 가족과 국민들이 이를 체감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중앙 행정기관인 보훈처가 해야 할 일입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든든한 보훈입니다.”
 
  ― 생존 참전용사들의 수가 줄고 있죠.
 
  “6·25 전쟁이 일어난 지 70년이 넘었다는 건 그만큼 참전용사들이 연로해졌다는 것이죠. 전국 6곳에 보훈병원이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기존 위탁병원 420곳을 올 연말까지 520곳, 2022년까지 640곳으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6·25 참전국에 대한 감사는 계속돼야”
 
황기철 국가보훈처장이 4월 20일, 서울 미군 용산기지에서 스튜어트 캠벨 마이어 유엔군부사령관을 접견해 국제보훈사업 교류협력 확대방안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 취임 이후 6·25전쟁 참전 국가의 대사관을 일일이 방문했다죠.
 
  “좀 거창하게 표현하면 ‘보훈외교’입니다. 국가보훈처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70년 전에 유엔(UN)군으로서 대한민국을 돕기 위해 싸운 국가와 도움을 준 국가, 희생을 치른 참전국은 영원히 우리의 우방이자 감사해야 할 나라들입니다. 그들 덕분에 우리가 자유와 번영을 누리는 것은 분명합니다.
 
  지난해 코로나19로 마스크 품귀 현상이 있었을 때 보훈처가 유엔 참전용사들에게 마스크를 지원했다고 들었습니다. 미국과 캐나다 보훈부 장관 등 각국 정부 관계자들이 한국의 선물에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우리로서는 작은 성의였지만 이를 받는 국가들에는 큰 감동이 된 거죠.
 
  저는 6·25 참전국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은 아무리 해도 과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남미 국가 중에 유일하게 참전한 콜롬비아를 떠올려보세요. 그 더운 나라에 살던 군인들이 대한민국이라는 잘 알지도 못하는 국가를 위해 혹한을 견뎌내며 전쟁을 치렀습니다. 70년 전에 그들이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저는 이들에 대한 감사 표현은 앞으로 계속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취임 후 참전국 대사관을 일일이 찾아갔습니다. 대사들과 대화해보니 그들 마음속에는 자기 나라가 대한민국을 도왔다는 자부심이 있고, 그 바탕 위에서 두 국가가 잘 지내고 싶어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국가보훈처 측에 따르면 6·25 참전국들은 시간이 훌쩍 지난 오늘날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우리와 교류하고 싶어 한다. 1951년 6월 15일에 보병 제 1대대가 참전한 콜롬비아는 오는 6월 한국전 참전 70주년을 맞아 기념식 개최를 국가보훈처에 요청했다. 미국 다음으로 큰 규모를 파병한 영국도 올해는 특별하다. 영국군 29여단은 1951년 4월 중공군의 공세를 맞아 파주 적성 일대에서 임진강 방어전투를 벌였다. 최대 격전이었던 전투가 벌어진 지 꼭 70년이다. 국가보훈처는 ‘임진강 전투 70주년 기념식’ 성공을 위해 영국대사관을 지원키로 했다. 프랑스는 올해 한국전 참전 기념비에 프랑스 참전대대 소속 전몰용사 전원의 이름이 새겨진 추모 동판을 세울 계획이고, 네덜란드는 코로나19로 중단된 네덜란드 참전용사의 방한이 속히 재개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재한유엔기념공원에 외국인 참전용사 13명 안장
 
  ― 보훈처장에 취임한 후 외교관 같은 일정을 보내신 모양이네요.
 
  “꼭 그것만 한 건 아니고요(웃음). 하지만 최근 대사들을 만나면서 ‘공공 외교가 더 효율적인 외교 정책이 될 수 있구나’ 하고 느끼는 건 사실입니다. 우리나라는 함께 피 흘린 22개국과 혈맹이라는 끈끈한 관계를 매개로 보훈 외교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입니다. 참전한 용사들에게 자신이 지킨 나라가 눈부시게 발전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참전에 대한 자긍심을 주고, 또 전쟁 트라우마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태 재방한(再訪韓) 초청 행사에만 3만3340명, 현지 위로행사에 25만명이 참여했습니다. 참전국 후손들이 평화를 얘기하면서 참전의 인연을 이어가는 것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유엔 참전용사 중에 ‘재한유엔기념공원’에 사후(死後) 안장되는 분들이 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재한유엔기념공원은 한국을 방문한 유엔 참전용사라면 누구나 찾는 곳입니다. 전우가 잠들어 있는 곳이니까요. 몇몇 분은 사후에 이곳 안장을 희망했습니다. 처음에는 사후 안장이 되지 않았는데 이분들의 요청으로 공원을 관리하는 재한유엔기념공원 국제관리위원회에서 허가를 해줬죠. 2015년 5월 프랑스의 레몽 베르나르 참전용사가 처음 안장된 후 지금까지 열세 분이 안장됐습니다. 사후 안장이 허가되면서 재한유엔기념공원은 전쟁을 억지하는 완충지 역할을 하면서 세계 평화를 상징하는 장소가 됐습니다. 국가보훈처는 사후 안장을 희망할 경우 최고 예우를 다해 모시고 있습니다.”
 
 
  6·25 생존 참전용사 7만2455명
 
지난 3월 9일, 황기철 국가보훈처장이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서해수호의 날’ 계기 참전 장병 간담회에 참석하기 전에 묘역을 둘러보고 있다.
  황기철 처장을 만나 유독 6·25 참전국에 대한 얘기를 많이 나눈 것은 지난해가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이었기 때문이다. 보훈처는 70주년 사업추진위원회를 만들고 다양한 기념사업을 준비했는데, 코로나19라는 악재로 인해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보훈처의 태동은 6·25전쟁 참전용사 및 유족에 대한 보훈을 관장하는 업무를 맡기 위해서였다. 현재 보훈처의 보훈 대상자는 일제 강점기 시절 항일독립운동가, 한국전쟁 참전용사, 베트남전 참전용사 등이다. 현재 6·25 참전용사 중 7만2455명, 베트남전 용사 중 18만9641명이 생존해 있다.
 
  ― 지난 ‘서해 수호의 날’에 천안함 장병 유공자 등록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습니다.
 
  “천안함 피격사건의 생존 장병 중 국가유공자 등록은 현재 12명입니다. 현재 6명은 보훈 심사가 진행 중인데 신속한 심사를 통해 예우와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 천안함, 연평해전은 최근에 일어난 전투로 사상자들이 청년입니다.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정말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다 하려고 합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제도적 한계가 있기 때문에 새롭게 설계해줘야 합니다. 생존 장병 대부분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호소합니다. 그런데 PTSD가 의학적으로 규명이 잘 안 된다고 합니다. 장병들은 너무나 괴로운데, 현 의료체계상 그 고통에 상응할 만한 등급 판정에 어려움이 있다고 합니다. PTSD 진단 이력과 치료 내역 등을 충분히 확보해, 자료가 없어 보훈 심사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서훈심사위원회 위원들 깐깐하게 심사한다”
 
  ― 제대군인의 예우에 아쉬운 점은 없습니까.
 
  “많죠. 보훈처 지방청마다 제대군인의 재취업을 위해 노력합니다. 호주는 전역해도 바로 취직이 된다고 하더군요. 군의 병과 체계가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국방부와 협업해야 하고, 제대군인에 대한 사전 교육은 보훈처에서 맡아야 합니다. 사회와 군이 공유할 수 있는 병과 기술이 접목돼야 합니다.”
 
  ― 문재인 정부 들어 김원봉, 민주당 손혜원 의원 부친의 서훈 논란이 있었습니다.
 
  “국가보훈처는 더 많은 사람에게 서훈을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개개인이 어떤 역할을 했느냐가 중요합니다.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노력했는데, 그 이후에 사회주의 행적이 있다면 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공과(功過)를 따져보는 것입니다. 서훈심사위원회 위원의 역사학자들은 굉장히 깐깐합니다. 느슨한 잣대로 독립운동가에게 서훈하지 않습니다. 이 부분은 믿어도 좋습니다.”
 
  황기철 처장과 동석한 보훈처 관계자가 사회주의자의 서훈과 관련해 보충 설명을 했다.
 
  “보훈처는 어떤 경우라도 북한 정권 수립에 적극 기여했거나 동조한 사람에게는 서훈하지 않습니다. 김원봉은 서훈심사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문제가 있어 서훈 대상자에서 제외된 것이 아니라 서훈심사위원회 안건으로 올려진 적이 없습니다. 일부 독립단체에서 서훈을 요구했지만, 우리 요건에 부합하지 않아 시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손혜원 의원의 부친은 보훈처의 심사 기준이 다소 완화되면서 그 테두리 안에 들어와 서훈된 케이스입니다. 국회의원의 부친이어서 서훈된 것이 아닙니다. 간혹 서훈이 될 자격과 되지 않을 자격의 접점에 있는 분들이 있는데, 이 부분은 국민 공감대가 이뤄져야 할 부분이라고 보입니다. 정치 공방에 의해 왜곡된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보훈처에 따르면 사회주의자에 대한 서훈은 노태우 정부 때 시작됐다. 박헌영, 김단야, 임원근 등 이른바 ‘트로이카’의 사례에서 보훈처 서훈 기준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 보훈처 측의 설명이다. 임원근은 사회주의 운동가였지만 1993년 보훈처 서훈을 받았다. 조선청년총동맹 중앙집행위원 등을 지내며 러시아와 중국, 국내를 오가며 활동한 김단야는 광복 이전에 숙청을 당해 서훈됐다. 하지만 해방 이후 북한에서 남조선노동당 부위원장, 북한 외무부 부수상을 지낸 박헌영은 북한 정권에 적극 동조했다는 이유로 서훈되지 않았다.
 
 
  여러 부처로 흩어진 보훈 행사를 보훈처가 일괄 관리해야
 
2013년 1월 21일, ‘아덴만 여명작전 2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석해균 선장, 황기철 해군참모차장, 이국종 교수(오른쪽부터)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문재인 정부가 독립유공자에 대한 심사 기준을 완화하면서 보훈의 의미를 호국이 아닌 독립에만 맞추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있는데요.
 
  “현 정부는 대한민국을 만든 세 기둥을 ‘독립’ ‘호국’ ‘민주’라고 했습니다. 이에 따라 독립유공자 심사 기준이 완화돼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여성과 학생, 의병을 집중 발굴해 독립유공자 포상을 확대한 것은 사실입니다. 생활이 어려운 독립유공자 자녀, 손자녀들에 생활지원금을 지급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참전유공자에 대해 소홀한 것은 아닙니다. 참전명예수당은 역대 정부 최고 수준인 월 34만원으로 인상했습니다. 병원 진료비 감면 혜택 역시 13년 만에 종전의 60%에서 90%로 대폭 확대했습니다. 생계가 곤란한 참전유공자들께는 장례비를 지원하고 있고요. 보훈을 독립 부문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았습니다.”
 
  ― 5·18 공법 단체 설립법이 통과됐죠.
 
  “보훈 중 ‘민주’에 해당하는 부분인데요. 그동안 민간에서 기념해왔던 2·28민주운동과 3·8민주의거를 법정 기념일로 정했습니다. 5·18민주유공자가 보훈 대상에 편입된 지 18년 만에 공법 단체 설립이 가능해졌습니다. 현재 각 단체별로 설립 절차가 진행 중인데 5·18민주화운동 공로자회는 마무리 단계에 있습니다.”
 
  ― 독립·호국·민주를 균형있게 접근할 수 있습니까.
 
  “시기와 표출 형태는 달랐지만 모두가 국가를 위한 헌신이자 애국임은 분명합니다. 안보에 있어 여야(與野)가 없듯이 세 영역은 애국이라는 하나의 가치죠. 이 가치가 국민에게 조화롭게 전달되기 위해서는 기념 시설이나 기념일 등 보훈을 기억하고 알리는 기능이 일괄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 현재는 일괄적이지 않습니까.
 
  “정부의 독립행사인 3·1절, 8·15광복절 행사는 행정안전부에서 주관하고 있고, 국가유공자를 위한 현충시설, 즉 서울현충원과 전쟁기념관은 국방부가 주관합니다. 여러 부처에서 분산 관리하고 있는 거죠. 이렇게 되면 중요한 가치들을 일관성 있게 전달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보훈처장으로 있는 동안 이 행사를 보훈처가 통합 관리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국민에게 독립, 호국정신 선양은 물론 끝까지 예우를 다하는 국가의 책임과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입니다.”
 
  황기철 처장에게는 여전히 군인의 향기가 짙다. 임진왜란 때 해전(海戰)이 벌어진 경남 진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학교를 오가는 길에 북원로터리 중앙에 우뚝 서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장군에게 인사하는 것이 일상이었다고 한다.
 
  운명처럼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해 해군이 돼 고속정인 기러기19함 정장, 구축함인 충무함 포술장, 초계함인 여수함 함장, 구축함인 광개토대왕함장, 조함단전투함, 이지스함사업처장을 거쳐 해군의 수장인 해군참모총장까지 올랐다. 군인으로서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순간,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위치까지 오른 그이다. ‘아침마다 제복을 빳빳하게 다려 입었다’는 그에게 여전히 군인의 기(氣)가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황 처장이 그간의 경험을 묶어 펴낸 책 《바다에서 새벽을 보다》의 맨 마지막은 ‘언제나 장병들의 안전이 최우선이다’는 챕터다. 황 처장은 여기에서 엄지손가락을 자를 위기에 처한 부하의 사연, 의식을 잃은 한 수병의 사연을 조용히 써 내려갔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이때부터 그와 국가보훈처의 인연은 이미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그가 “평생 부상 장병들을 보며 느낀 점을 이제 실천하겠다”는 말이 빈말로 들리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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