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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주희의 라운지

한진家 막내딸에서 기업인으로, 조현민 한진 부사장

“과거 반성하고 극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감사하다”

글 :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everhop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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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조양호 회장, 폐 이식 수술 잘됐지만 스트레스로 상태 악화”
⊙ 할아버지 조중훈 회장이 자주 하던 말은 ‘지고 이겨라’
⊙ 갑질 논란 이후 3년, “과거 돌아보고 반성하며 배려가 부족했다는 점 깨달았다”
⊙ 미국 국적 논란, “국적은 내게 중요하지 않다. 필요하다면 언제든 국적 바꿀 수 있어”

趙顯玟
1983년생.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 커뮤니케이션학과 졸업, 서울대 글로벌경영학 석사 / 대한항공 전무, 진에어 부사장 역임 / 現 한진 마케팅 총괄 부사장 / 《지니의 콩닥콩닥 세계여행》 시리즈 출간
사진=한진 제공
  우리는 지난 7년간 한 가정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시작은 장녀였다. 2014년 직장에서 부하 직원의 태도를 지적하며 내린 조치가 문제가 됐다. 회사를 떠나 결국 법정까지 가게 됐다.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몇 년 후인 2018년, 막내딸의 업무 태도가 논란이 됐다. 그 역시 회사를 떠나야 했다.
 
  그 와중에 어머니 역시 곤욕을 치렀다. 어찌 된 일인지, 집안에서의 내밀한 모습들이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별별 이야기가 인터넷에 떠돌았다. 가장인 아버지도 무사하지 못했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아 20년간 경영해온 회사에서 경영권을 박탈당했다. 연임 반대를 주장한 국민연금의 역할이 컸다. 그러고 나서 그 다음 달,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타인의 눈에도 갑작스러워 보인 죽음이었다.
 
  남은 가족들은 지난해 다시 주목을 받았다. 가업의 경영권을 둘러싸고 분쟁이 벌어졌다. ‘3자연합’까지 등장해 장남이 이어받은 경영자 자리를 위협했다. 이 과정에서 장녀와 나머지 가족의 사이는 벌어졌다. 경영권 싸움은 지난 4월 장남의 승리로 일단락됐다.
 
 
  한진家의 7년
 
할아버지인 조중훈 회장의 마지막 해외여행이 된 2001년 파리 여행. 사진=한진 제공
  바로 한진가(家) 이야기다. 언젠가부터 한국 사회는 주기적으로 마녀를 찾아내 처단하는 데 익숙해졌다. 그들의 항변을 듣는 데는 인색하다. 이들은 지난 7년간 어떤 시간을 보낸 걸까. 무엇보다, 우리가 마녀로 몰아세웠던 그들은 진짜 마녀였을까. 지난 4월 29일 서울 소공동 한진빌딩에서 막내딸, 조현민 한진 부사장을 만났다. 사무실은 생각보다 단출했다. 본관 건물이 공사 중이라 임시로 쓰는 사무실이라고 했다.
 
  “건물이 너무 오래돼서 주총 끝나자마자 내부 공사 중이에요. 신관과 본관 사이에 연결통로가 있어요. 그 복도에 할아버지 사진들이 걸려 있어요. 그런데 거기가 초라해요. 지나가면서 항상 안타까웠어요. 복도도 넓히고 할아버지 사진도 깔끔하게 옮겼어요.”
 
  조 부사장이 여기서 말하는 할아버지는 조중훈 초대 한진그룹 회장을 의미한다.
 
  — 할아버지와 함께한 기억이 많나요.
 
  “그럼요. 제가 할아버지와 제일 시간을 많이 보냈어요. 영결식장에서 제가 편지도 읽었어요. 오빠와 언니는 유학 다니고 공부하느라 할아버지랑 여행 가는 데 못 따라다녔지만 전 어리니까 항상 따라다녔거든요. 주말마다 뵈러 가기도 했고요.”
 

  — 함께 여행도 다녔군요.
 
  “할아버지의 마지막 해외여행이 2001년 파리였어요. 고등학교 졸업한 다음 날 모시고 갔는데, 하루는 오후가 비었어요. 할아버지가 저한테 ‘뭐 할까?’ 그러시는 거예요. ‘일단 루브르를 가시죠’ 하고 갔어요. 표를 사는데 직원이 센스 있게 할아버지의 훈장 배지를 알아봤어요.”
 
  — 레지옹 도뇌르 훈장인가요.
 
  “네. 훈장을 받은 사람들이 평소에 달고 다니는 배지거든요. 미술관에서 연세가 많으시니까 휠체어도 준비해주고 그 자리에서 예우해주어서 좋았어요. 〈모나리자〉까지 보고 나왔는데 할아버지가 또 물으시는 거예요. ‘이제 뭐 할까…’ 그래서 센강에서 바토 무슈 유람선을 타자고 했어요.”
 
 
  韓進의 뜻은 ‘韓민족의 前進’
 
  — 명소들을 갔네요.
 
  “그런데 아버지가 저한테 유람선 표를 사라는 거예요. 그게 왜 그랬냐면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불어를 배웠어요. 5학년 때부터 4년간은 매년 서머스쿨을 프랑스에서 다녔어요. 파리에 있는 거의 모든 박물관을 매년 간 거예요. 할아버지가 그걸 아시니까 일종의 테스트를 하신 거예요.”
 
  — 파리 생활을 어떻게 했나 테스트해보신 거군요.
 
  “불어로 표를 사는데 할아버지랑 아빠가 정말 뿌듯해하시는 거예요. ‘오, 얘가 불어를 해’… 근데 그게 아주 단순한 회화였거든요. 불어 수업 한 번만 들어도 할 수 있는 수준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 그 시간들이 참 좋았어요.”
 
  — ‘한진’이라는 이름이 ‘한민족의 전진(前進)’을 의미한다면서요.
 
  “맞아요. 우리끼리 이런 얘기를 해요. 이미 그때 할아버지는 ‘아, 대한민국은 너무 좁다. 우리는 앞으로 세계로 나간다’ 그런 생각으로 지으신 것 아닌가. 그때는 해외여행이라고 해야 일본 정도 생각할 때인데, 세계로 나가는 길이 되겠다는 비전을 품으신 거죠.”
 
  — 그러고 보면 한국 경제가 지금까지 발전하는 데는 대단한 창업주들이 기여를 한 것 같네요.
 
  “창업 1세 분들은 다 멋지세요. 사실 규모랑 상관없이 마켓컬리 대표님이건, 작은 슈퍼마켓 사장님이건 창업주들은 모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조중훈 회장과의 추억
 
조 부사장은 어린 시절 조중훈 회장과 여행을 자주 다녔다. 사진=한진 제공
  — 할아버지에게 들은 얘기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요.
 
  “제 머릿속에 할아버지는 그냥 할아버지였어요. 할아버지가 키가 작으시거든요. 연세가 있으시니 배도 나오셨을 거잖아요. 맹세코 기억이 안 나는데 어릴 때 제가 유치원 졸업식 앞두고 그랬대요. ‘할아버지는 배 뚱뚱하니까 오지 마.’ 그것 갖고 얼마나 놀리셨는지. 안타까운 건 제가 할아버지 말씀을 알아듣기 시작했을 때 이미 할아버지는 연세가 많으셔서 옛날 얘기만 주로 하셨어요.”
 
  — 창업 당시 얘기인가요.
 
  “네, 인천에서 사업 시작하실 때예요. 경비견들이 창고를 지키잖아요. 도둑들이 무를 베이컨이랑 삶는대요. 그러면 무에서 베이컨 냄새가 나니까 개들이 뜨거운 무를 덥석 문대요. 그러면 무가 너무 뜨거워서 개들의 입이 마비가 돼서 짖지도 물지도 못하게 된대요. 베트남 가셨을 때 할머니는 열심히 김치 담가서 직원들 먹이셨대요.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 흥미롭네요.
 
  “제일 아쉬운 게 할아버지가 사업 얘기 하셨을 때 저는 너무 어렸어요. 할아버지의 경영 철학들을 직접 들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싶어요. 조금만 일찍 태어났어도 조금은 듣지 않았을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저는 대학생이었지만 언니·오빠는 이미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거든요.”
 
  조 부사장은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후 LG애드에 들어갔다. 2년 후 대한항공 통합커뮤니케이션실에 입사했다.
 
  — 광고 분야를 맡으라고 부모님이 정해주신 건가요.
 
  “전혀 아니에요. 우리 남매는 셋 다 하고 싶은 거 했어요. 언니는 음식을 좋아하니까 호텔을 간 거고, 오빠는 자동차·컴퓨터 좋아하니까 경제학 공부하고 대한항공으로 간 거예요. 저는 이미 중학교 때 제 인생의 행로를 정해뒀어요. ‘대학교에서 심리학 공부하고 큰 광고회사에 들어갔다가, 제 광고회사를 만들어서 모든 세계 광고제를 휩쓸 거다’라고요.”
 
  — 현 상황은 좀 다르잖아요.
 
  “그렇죠. 하지만 크게 다르다고 생각은 안 해요. 광고도 광고였지만 제 회사를 세우겠다는 계획이었으니까요. 지금은 아니지만 언제든 새로운 회사를 시작할 수 있잖아요.”
 
  — 왜 하필 광고일까요.
 
  “어릴 때부터 왜 광고에 관심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어요. 1996년에 김자옥씨가 ‘공주는 외로워’로 가수 데뷔해서 히트를 쳤잖아요. 그때 제가 중학생이었어요. 할머니 댁에서 밥 먹고 집에 가는 차 안에서 아빠한테 그랬어요. ‘우리도 김자옥씨 같은 모델 좀 기용하자.’ 아빠가 웃는 거예요. 그러면서 딱 한마디 하셨어요. ‘그래 네가 커서 나중에 우리 광고 바꿔.’”
 
 
  ‘네가 커서 광고 바꿔라’
 
  — 왜 김자옥씨예요.
 
  “획기적이잖아요. 나이 드신 분이 공주옷 입고 나와서요. 1990년대 중후반에 좋은 광고가 많이 나왔어요. 조성모·이정현 ‘잘자 내 꿈 꿔’, 이미연·김승우 ‘아빠 해봐’, 한석규씨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땐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같은 광고가 다 그때 나온 거예요. 이동통신 업계가 크는 시기여서 돈이 많았잖아요.”
 
  — 그러고 보니 그때는 광고가 재미있었네요.
 
  “맞아요. 통신사가 돈이 많으니, 빅모델을 쓰고 시리즈로 제작하다 보니 광고가 참 재밌었어요. 그다음 전성기가 휴대폰이 나올 때예요. 애니콜 애니모션, 싸이언, 스카이… 확실히 돈 많은 광고주들이 경쟁하면 광고계가 잘돼요. 최근에 재밌었던 광고는 배달의 민족, 쓱닷컴 같은 광고죠. 트렌드 변화를 주도하는 건 당시 제일 잘나가는 광고주예요.”
 
  조 부사장은 광고 얘기가 나오자 신이 난 듯했다.
 
  “대학교 다닐 때, 1월 말이나 2월 초가 되면 미국 슈퍼볼(Super bowl) 경기가 열려요. 그때 항상 아빠가 오셨어요. 방에서 아빠는 컴퓨터 하고, 저는 놀면서 슈퍼볼을 틀어놔요. 미식축구 경기할 때는 아빠가 보시고 광고할 때는 제가 보는 거죠. 지금도 저는 광고가 좋아요. 광고가 너무 재밌어요. 전에는 운전하면서 라디오 방송을 항상 들었거든요.”
 
 
  라디오 광고로 읽는 경제 흐름
 
2017년 대한항공 10년 근속 표창을 받은 조현민 부사장. 사진=한진 제공
  — 라디오 광고는 TV 광고와 뭐가 좀 다른가요.
 
  “시기마다 광고가 좀 달라요. 매년 10월쯤 되면 다이어리 광고가 나오고요. 한동안은 카페24 광고를 엄청나게 했어요. 그때가 딱 이커머스 시작이었던 거예요. 그때 깨달았으면 주식이라도 샀을 텐데. 그다음엔 여행사들 광고가 쏟아져나왔어요. 참좋은여행이 가수 10센티랑 같이 노래 만들어서 라디오 광고를 어마어마하게 했어요. 여행사들이 서로 광고를 하기 시작했죠. 코로나19 직전까지 여행업계 경기가 좋았잖아요. 광고를 잘 관찰하면 돈이 흐르는 걸 볼 수 있어요.”
 
  — 요즘도 광고를 보나요.
 
  “요새 저는 만화채널만 봐요. 어린이 학습을 돕는 AI 프로그램 광고가 어마어마하게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어린이 학습 관련 회사 주식을 한번 사봤어요.”
 
  — 기업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광고를 통해 보는 게 습관이 됐나 보네요.
 
  “광고 업무를 담당했으니까요. 항공사 광고도 마찬가지예요. 비행 노선 광고를 할 때도 전략이 있거든요. 대한항공이 2008년부터 미국 광고를 했지요. 미국 캠페인이 어떤 의미가 있나면요, 그 전까지는 중복노선은 절대 광고를 안 했어요. 남 좋은 일 시킨다는 거죠. 예를 들어 뉴욕이라고 하면 많은 항공사가 뉴욕에 취항하잖아요. 많은 사람이 뉴욕에 가고 싶어진다 해도 모두 대한항공을 타는 건 아니란 얘기죠.”
 
  — 그런데 뉴욕 광고는 했잖아요.
 
  “미국 갈 때 비자가 면제됐기 때문이에요. 아빠랑 회사 임원분들이랑 다 같이 점심을 먹을 때였어요. 제가 그랬어요. ‘내 소원은 뉴욕 노선을 갖고 광고를 찍는 거다.’ 언니였나 오빠가 그랬어요. ‘왜 남 좋은 일 하냐’ 그랬더니 아빠가 말씀하셨어요. ‘남 좋은 일이 아니다. 파이를 키워서 더 많은 사람이 미국에 가면 점유율이 높은 우리가 그만큼 더 수혜를 보는 게 아니냐.’”
 
  — 크게 보자는 뜻이군요.
 
  “무비자가 아니었으면 그렇게 말씀 안 하셨을 거예요. 그래서 뉴욕 캠페인이 제작된 거예요.”
 
  — ‘미국 어디까지 가봤니’ 시리즈는 이후에도 계속 화제가 됐잖아요.
 
  “상이며 감사패며 많이 받았어요. 이후로 여러 대사관에서 우리도 광고 좀 찍어달라고 부탁해왔어요. 미국 캠페인 이후로는 단독 운항이 아닌 노선도 광고를 할 수 있게 됐어요.”
 
 
  스타크래프트 리그 후원
 
  대한항공은 2010년에 스타크래프트 리그를 후원했다. 항공사가 e스포츠를 후원한 건 처음이라 ‘게임 덕후’들 사이에서 꽤 반응이 좋았다. 항공기에 래핑도 해 화제가 됐다. 후원을 주도한 조 부사장은 그들 사이에서 ‘스타크래프트 여신’이라고까지 불렸다.
 
  — 왜 스타크래프트에 주목한 거죠.
 
  “지금도 롤(LOL)을 보면 제일 잘하는 선수들은 한국 선수들이에요. 이런 트렌드가 시작된 게 스타크래프트예요. 한국의 스타리그 전에는 게임을 관전한다는 개념이 전혀 없었어요. ‘게임은 내가 하는 거지 굳이 왜 남이 하는 걸 봐?’였는데 한국의 1세대 프로게이머들이 그걸 바꾼 거예요. 게임 유닛의 모든 걸 파악해서 할 수 있는 걸 다 하면서 엄청난 플레이를 한 거죠. 게임을 보기만 해도 재밌네? 이렇게 된 거예요. 그래서 e스포츠가 탄생했어요.”
 

  — 게임과 항공사는 언뜻 연결이 잘 안 되는데요.
 
  “2008년에 미국 광고도 시작했지만, 어쨌든 그때 대한항공의 이미지는 고리타분한 럭셔리였어요. 출장 다니는 40~50대에게 잘 해주면 된다는 식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주장했어요. ‘지금의 20대가 40대가 되면 대한항공을 탈 거 같냐. 지금 20대가 비싸서 대한항공 안 타고 외국 항공사 타는데 그때 굳이 대한항공을 탈 이유가 뭔가.’”
 
  — 충성도가 없다는 얘기군요.
 
  “그렇죠. 대한항공이니까 탄다? 대한항공이 뭔데. 당시 아랍에미레이트항공은 기내에 퍼스트 클래스 승객을 위한 방을 만들기도 하고 난리였어요. 대한항공은 그러지도 않았잖아요.”
 
  — 20~30대가 대한항공에 애정을 느끼도록 스타 리그를 후원했단 얘기군요.
 
  “그렇죠. 대한항공의 프리미엄을 유지하되 미래 고객들의 눈에 ‘인싸’처럼 보이게 하자는 취지였어요.”
 
 
  매일 생각나는 아버지
 

  원래 조 부사장은 대한항공과 진에어 관련 얘기는 가급적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항공업계 구조조정을 위해 산업은행이 대한항공에 8000억원을 투입한 상황이다. 행여나 지금도 경영에 관여하고 있다는 오해를 받을까 우려하는 눈치였다.
 
  사무실 벽에는 액자가 하나 걸려 있었다. 책상에 앉아 고개만 돌리면 볼 수 있는 위치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비행기 옆에 서서 어딘가를 바라보는 조양호 회장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지난 4월 8일은 조 회장의 2주기(周忌)였다.
 
  — 언제 아버님 생각이 많이 나나요.
 
  “매일 생각해요. 제일 생각날 때가 큰 결정을 해야 할 때예요. ‘아빠한테 얘기했으면 통과됐을까’… 뭔가 결정하기 전에 고민해요. 큰 그림들 있잖아요. 전략 면에서 한진 관광에 어떤 플랫폼을 만든다든가, 기존의 여행 상품권이 아닌 다음 단계의 상품권을 만들고 싶은데 아빠가 과연 오케이를 했을까? 내가 아빠를 설득할 수 있었을까?”
 
  — 가상으로 결재를 받는 거군요.
 
  “그렇죠. 과거에 한번 반대하셨던 일이라면, 아빠가 반대한 이유는 뭐고 시대가 변했다는 가정 안에서라면 아빠의 반대가 바뀌었을까. 지금은 아빠가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기억이 많은데 시간이 지나면 저에게 유리하게 아빠의 생각을 바꿀 것만 같아요.”
 
  조 부사장은 아버지 얘기가 나올 때마다 울었다. 아버지와 깊은 소통을 하는 자식이 있고, 그렇지 않은 자식이 있다. 그는 전자였던 것 같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아빠가 이런 걸 혼자서 몇십 년을 하셨구나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이런 고민과 불안감, 나는 이 작은 걸 갖고 고민되고 잠도 안 오고 그러는데 아빠는 얼마나 힘드셨을까. ‘아빠 이런 걸 어떻게 하셨어요? 이러니까 몸이 아프셨죠’ 하며 자주 생각해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조양호 회장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위원장과 조직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성화 봉송에도 참여했다. 사진=한진 제공
  2년 전 조 회장의 별세가 알려졌을 때 기자는 뉴욕에 있었다. 소식을 듣고 현지 교포 지인들이 꽤나 동요했던 게 기억에 남아 있다. 타살이나 마찬가지 아니냐며 한탄하는 이도 있었다. 외국에 사는 이들에게 국적기라는 건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보게 됐다.
 
  — 아버님이 갑작스럽게 돌아가셨지요. 더 사실 수 있었던 것 아니냐는 반응들도 있었고요.
 
  “폐 이식 수술은 잘됐어요. 잘 회복하고 계셨는데 갑자기 안 좋아지신 건 맞아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셔서 악화됐어요.”
 
  — 돌아가실 무렵 나눈 대화 중에 생각나는 게 있나요.
 
  “수술 전이었어요. 그때 이미 중환자실에 들어가 계셨어요. 이식이 너무나 급하게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저한테 갑자기 그러시는 거예요. ‘너 숙제했니?’”
 
  — 숙제가 뭔가요.
 
  “아빠가 70세 돼서 일을 좀 놓게 되면 강아지를 키우겠다고 말씀하시곤 했어요. 큰 양치기 개를 키우고 싶어 하셨어요. 병원에 입원해서도 어떤 종을 키울까 걸핏하면 강아지를 찾아보는 거예요. 숙제라는 게 아버지가 키우실 개를 찾는 거였어요.”
 
  — 숙제를 했나요.
 
  “이렇게 답했어요. ‘아빠, 일반 병실로 돌아가기만 하면 아빠가 원하는 개들 다 데리고 올 테니까 일반 병실만 가요.’ 아빠는 회복할 수 있을 거란 자신이 있었던 거예요. 우리 앞에서 두려운 걸 다 숨긴 것도 있었겠지만 스스로 ‘다 괜찮아질 거야’ 생각하셨거든요.”
 
  — 퇴원할 수 있을 거라 자신하셨던 거군요.
 
  “폐 이식 수술을 하면 이후에도 숨 쉬는 게 쉽지 않아요. 1년간은 거의 매일 병원에 가서 모니터링해야 했어요. 1년은 비행기를 못 타는 거예요. 어차피 1년은 엘에이(LA)에서 살아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배려’의 중요성 깨달아
 
  — 지난 7년 동안 여러 일이 있었는데요, 돌아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잘못한 점을 반성하겠다’ 이런 얘기는 빼고요.
 
  “근데 전 진짜 잘못했어요. 맞잖아요. 후회해요.”
 
  — 어떤 걸 느꼈나요.
 
  “결론적으론 저는 일에 욕심이 많았고 일을 잘하고 싶었어요.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그때는 ‘왜 못해?’밖에 생각을 못 했어요. ‘왜 나를 못 따라와’였어요. 지금은 ‘우리 어떻게 하면 같이할 수 있을까?’라는 걸 배웠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제가 하는 말의 내용은 똑같아요. 전에는 같이 가야 되는데 왜 못 와만 생각했으면, 지금은 우리 같이 가야 되는데 어떻게 하면 될까, 이렇게 생각하고 말하는 걸 배웠어요.”
 
  — 심리 상담 같은 것도 받았나요.
 
  “네. 온라인 심리 상담을 받았어요.”
 
  — 그런 게 있나요.
 
  “얼굴 보는 건 꺼려져서요. 채팅 상담을 몇 번 해봤어요.”
 
  — 왜 대면 상담을 안 했나요.
 
  “사실 저도 심리 상담이란 걸 안 해봤으니까 일단 이걸 해보면서 알아보고 싶었어요. ‘이 정도로도 도움이 되는구나’ 혹은 ‘아, 내가 정말 도움이 필요하구나’, 이걸 알아보고 싶었어요.”
 
  — 신원은 밝히고요.
 
  “아니요.”
 
  — 신원을 안 밝히면 얘기가 겉돌잖아요. 모호한 상담이 되겠는데요.
 
  “두루뭉술하게 얘기를 하는 거죠. 이런 식으로요. ‘어떤 사람이 나보고 자꾸 갑질을 한다는데, 나는 그냥 화를 낸 거예요. 화내는 것과 갑질이랑 지적이 어떻게 다르죠.’”
 
  — 상담사는 갑질과 지적의 차이가 뭐라던가요.
 
  “저한테 되레 물어봐요. ‘어떻게 생각하시는데요?’ 그래서 생각해보다가 깨달았어요. 저는 배려가 부족했어요. 스스로 배려가 많은 사람이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개인적인 일에는 배려가 많아도 일에는 확실히 부족했어요. 이중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됐어요.”
 
  — 이중성이 무슨 말인가요.
 
  “공과 사를 구분하겠다면서도 어설프게 구분해서 행동한 거예요. 지킬 박사와 하이드 정도는 아니지만요. 나는 사적으론 배려가 많은 사람인데 공적으로는 깐깐하게 행동하고 화내고 하니 그런 갈등이 생기는 거예요. 그걸 또 스스로 감당을 못했어요. 진짜 나는 이건데, 화내는 것도 싫은데 힘들고 어리석었어요. 업무적으로 제가 원하는 대로 안 될 때면 감정을 능숙하게 컨트롤하지 못했어요.”
 
  — 당시 논란이 됐을 때 아버님은 뭐라고 하셨어요.
 
  “그냥 그러셨어요. ‘네가 잘못했어. 네가 일을 열심히 하려는 건 누구보다 잘 알지만 네가 잘한 건 없어. 너의 행동은 분명 잘못됐어. 그런 것까진 내가 너한테 가르쳐줄 순 없어.’ 그렇잖아요. 일하는 건 배울 수 있지만, 감정 컨트롤은 제가 깨닫고 제가 해야 되는 거잖아요. 제가 잘못했다는 걸 알고 있는 걸 확인하신 후에는 다른 말씀 안 하셨어요.”
 
  —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예전의 ‘흑역사’들이 나오던데요.
 
  “제가 참 어리석었어요. 그런 기록들은 지워지지 않을 거예요. 앞으로 그런 과거를 극복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것에 감사해요.”
 
  — 트위터 사건도 있었던데요. 한글 철자가 틀렸다고요. 민망했겠어요.
 
  “그건 더 어리석었던 철없던 시절 일이에요. 괜찮아요. 저는 영어를 잘하니까요. 이렇게 말해야 덜 창피하겠죠?”
 
 
  미국 국적에 대한 생각
 
미국으로 떠나기 전 인천 하얏트 호텔에서. 조양호 회장 생전에 한국에서 찍은 마지막 사진이다. 사진=한진 제공
  조 부 사장은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영어로 교육을 받았다. 지금도 특히 읽고 쓰는 데는 영어가 더 편한 듯했다. 2017년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경제사절단 대표로 미국에 가기도 했다. 미국 정부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필요성을 피력하기 위한 방문이었다. 한국 재계의 목소리를 미국 정부에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 한국으로 귀화할 생각은 없나요.
 
  “저는 언제든지 미국 국적을 포기할 수 있어요. 미국 국적을 포기하는 그 힘든 과정을 겪어야 하는 현실적인 이유가 아직 없을 뿐이에요.”
 
  — 미국 국적을 고수하고 있는 게 아니란 말이네요.
 
  “제가 미국에서 태어나기로 선택한 게 아니에요. 태어나보니까 미국이었을 뿐이에요. 나중에 영주권을 취득한 것도 아니고요. 왜 예민한진 알겠는데 국적은 저한테 큰 문제는 아니에요. 남자였으면 군대를 다녀왔겠죠.”
 
  — 미국 국적 포기하는 게 힘든 모양이죠?
 
  “그게, 미국은 이중국적을 인정해줘요. 그런데도 미국 국적을 포기한다는 건 정말 이상하게 여겨지는 거예요. 배신자 느낌이랄까요. 미국을 몇 년 동안 못 들어가요. 정말 복잡해지는 거죠.”
 
  — 국적 때문에 진에어에서 이사로 재직했던 게 뒤늦게 문제가 됐지요.
 
  “다 죄송하지만 진에어 분들에게 제일 죄송해요. 진에어가 저 때문에 제재받은 게 10주년 되는 해였거든요. 10주년 뺏어가, 제재까지 받아. 정말 죄송해요. 평생 그럴 거 같아요. ‘그때 한국 국적으로 귀화했으면 괜찮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어쨌든 내가 잘못했구나, 죄인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진에어가 잘돼야 해요.”
 
 
  엄격했던 할머니, 그리고 엄마
 
  — 어머님도 논란이 됐지요. 동영상도 나왔고요.
 
  “할머니가 워낙 깐깐하셨어요. 할머니는 할아버지랑 결혼하고 함께 회사를 키우고 이끌어오면서 그렇게 되셨어요. ‘내 말이 다 맞아’, 보통 사람도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그렇게 되잖아요. 그런 할머니 밑에서 엄마는 23세부터 할머니가 돌아가신 2017년까지 엄격하게 훈련을 받은 거예요.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엄마는 무조건 일주일에 한 번 부암동을 가셨어요.”
 
  — 시집살이네요.
 
  “할머니가 뭘 요구하면 엄마는 그 두 배를 해야 맞출 수 있었어요. 처음엔 당연히 못 했겠죠. 시간이 지나니 엄마도 고수가 된 거예요. 그래서 엄마는 너무나 정확하신 분이에요. 저도 맨날 혼나요.”
 
  — 상대에게 기대하는 수준이 높겠네요.
 
  “정말 높아요. 결론적으론 저나 엄마나 배려가 부족했던 거예요. 어떻게 엄마는 나름 한다고 했는데 보는 시각이 너무 달랐던 거예요. 우리 입장도 있지만, 그 입장이 항상 맞는 건 아니잖아요. 엄마도 인정을 하세요. 깨닫고 반성을 하셨어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엄마는 너무 이상하게 알려진 부분이 있어 안타까워요.”
 
  — 별별 과거 얘기가 다 까발려졌죠.
 
  “억울한 부분도 많아요. 아무리 잘 설명해도 변명밖에 안 되잖아요. 말해도 안 되고요. 엄마는 일을 안 하시기 때문에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게 제일 안타까워요.”
 
  — 일우스페이스도 그만두었죠.
 
  “안 하시죠. 연세도 있고 상처를 많이 받으셨기 때문에 모든 행동이 너무나 조심스러운 거죠.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기 싫으니까요. 엄마도 2년 넘게 심리 상담을 받으셨어요.”
 
 
  익명에 숨은 폭력
 
  — 내부자 제보라는 식으로 회사 안에서도 여러 목소리가 나왔죠.
 
  “사실 거기엔 허구가 많았어요. 이후에 대한항공도 그렇고 우리 한진에서도 소통 광장을 오픈했어요.”
 
  — 사내 인트라넷에 만든 건가요.
 
  “네. 그 제보들이 익명 어플인 ‘블라인드’에서 나왔잖아요. 블라인드를 보면 익명이 참 무서운 게, 내가 누군지 밝혀지지 않는다는 자신이 생기면 책임지지 않아도 되니 막 쓰잖아요. 조금이라도 기분 나쁘면 고발해버리는 거예요. 물론 그런 공간이 필요는 하겠죠. 블라인드까지 가서 불만을 쓴다는 게 그게 어떤 종류든 열정은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소통 광장을 만든 거예요.”
 
  — 소통 광장이라도 회사 게시판인데 누가 글을 쓸까요.
 
  “익명이긴 하지만 블라인드 같은 익명은 아닌 거죠. 건전하게 예의를 지키고 조금씩 공유하면서 진정한 개선을 해보자는 거죠.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 8개가량 올라왔어요. 다양해요. 휴가 갔다는 걸 알려주는 방법을 검토해달라는 것부터, 임금피크제 운용에 탄력성을 주라는 의견까지요.”
 
 
  ‘그룹을 지키자’
 
  지난해부터 이어진 한진가의 경영권 다툼은 지난 4월 마무리됐다. 한진칼의 경영권을 두고 조현아씨가 동생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에 반기를 들었다. 조현민 부사장과 어머니 이명희씨는 조원태 회장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 조현아씨는 왜 그런 거예요.
 
  “언니의 마음을 제가 어떻게 알겠나요. 제 마음도 잘 모르는데요.”
 
  — 가족인데 얘기도 안 해봤나요? 형제가 많은 것도 아니잖아요.
 
  “당연히 시도는 했죠. 언니랑 연락 안 한 지 2년이 돼가는 것 같아요. 언니 입장에선 그럴 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 아버님께서 갑자기 돌아가셔서 정리가 잘 안 된 부분이 있나 봐요.
 
  “아무래도 그런 부분이 있죠.”
 
  — 어머니와 같이 성명도 발표했잖아요.
 
  “그룹을 지켜야겠다는 마음이었어요. 우리 가족을 넘어서,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온 한진그룹을 지키는 거죠. 할아버지가 창업하시고 아빠가 평생 지켜오셨고, 저희도 덕분에 많은 혜택을 받았어요. 물론 저희가 없어진다고 직원들에게 큰일이 생기진 않겠지만 같이 가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엄마와 저의 생각이었어요.”
 
  — 큰 틀에서 그룹을 지키자는 의도였단 말이군요.
 
  “할아버지가 가장 좋아하셨던 말이 있어요. ‘지고 이겨라’ 항상 그 얘기를 하셨어요. 양보를 하면서 큰 걸 얻어야 된다는 말씀이었어요.”
 
  — 경영권을 다투는 상황에서 지고 이기는 건 뭘까요.
 
  “내가 갖고 싶은 게 5개면, 2개는 양보를 하고 5개 중 2~3개를 받으면서 전체 그룹을 지키는 게 지고 이기는 거죠. 5개 다 갖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딨어요. 같이 양보해야 되는 부분인 거죠.”
 
  알 듯 모를 듯한 얘기였다.
 
  — 어머님께서 속상하셨겠네요.
 
  “제일 속상한 건 엄마죠. 심지어 남편까지 떠나보냈잖아요. 형제와 자식은 정말 다른 것 같아요.”
 
 
  스티브 잡스 존경해
 
  조 부사장은 삶에서 꽤나 일을 중시하는 듯해 보였다. 존경하는 CEO도 스티브 잡스란다.
 
  “스티브 잡스는 일단 창업을 했고, 한번 쫓겨났어요. 그때 넥스트와 픽사를 만들었잖아요. 끊임없이 창조를 했어요. 엔지니어로 시작했고, 마케팅 천재였어요. 애플의 1983년 슈퍼볼 광고는 광고계의 전설이에요. 애플의 광고는 항상 명확한 메시지가 있는 철저한 소비자 중심 광고였어요. 철학이 묻어나는 거죠. 예술 광고는 아니에요. 철저하게 제품 광고고, 철저하게 소비자 중심 광고예요.”
 
  — 스티브 잡스 자체는 인간적으로 논란이 많았잖아요.
 
  “애플 내부의 일을 어떻게 알겠어요? 모든 게 결과로 덮어지는 거죠. 아마존의 제프 베소스도 마찬가지예요. 어린 친구들은 제가 스티브 잡스 좋아하는 것처럼 제프 베소스를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제프 베소스도 아마존에서 말이 많더라고요. 저도 놀랐어요.”
 
  — 안 좋은 얘긴가요.
 
  “어떤 조직이든 큰 조직엔 음지가 있어요. 이제는 소셜미디어(SNS)가 있으니 숨길 수 없어요. 하지만 상대적으로 그게 별로 이슈가 안 되고 가려질 수 있는 게, 어쨌든 아마존은 창조를 하고 있고 결과를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택배왕’ 게임 출시
 
한진이 업계 최초로 제작한 택배 게임 ‘택배왕 아일랜드’. 사진=한진 제공
  — 요즘도 게임을 하나요.
 
  “네, ‘택배왕 아일랜드’ 게임이에요.”
 
  ‘택배왕 아일랜드’는 한진이 지난 4월 업계 최초로 출시한 모바일 택배 게임이다.
 
  “택배 과정을 알려주는 게임이에요. 무료인데, 아이템을 팔고 광고도 받아요. 제가 내건 조건이 두 가지였어요. 첫째, ROI(투자수익률·Return On Investment)가 받쳐줘야 한다. 더 이상 브랜드 효과라는 말만으론 부족하다. 내가 많이 해봐서 아는데 브랜드 효과만이 아니라 뭔가 수입이 있어야 한다. 둘째, 최소한 1년을 해야 한다. 전담 직원 지정해서 효과 있든 없든 무조건 1년은 지속한다.”
 
  — 전에 진에어 있을 때 여행 동화책을 냈잖아요. 업무와 관련한 콘텐츠를 만든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이네요.
 
  “그렇죠. 이제는 제가 알아요. 콘텐츠라고 그냥 만들면 안 된다는 걸요. 게임도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이게 돈이 돼야 되는데’ 어렸을 땐 철이 없어서 브랜드의 이름으로 많은 걸 했거든요.”
 
  — 예를 들면요.
 
  “스타크래프트 리그 후원 같은 거죠. 분명 브랜드 효과가 없는 건 아니에요. 다만 검증하기 매우 힘들고 오래 걸린다는 거죠. 저는 브랜드주의자였어요. 지금은 완전히 바뀌었어요. 브랜드가 중요하다는 생각은 그대로지만요. 칸 광고제에 나오는 광고들은 반 이상이 광고제용이에요. 즉 한 번밖에 안 틀었다는 거죠.”
 
  — 물건을 팔리게 하는 광고는 아니라는 거죠.
 
  “물론 물건을 팔 수도 있지만 제작비에 비하면 효과는 너무 적은 거죠. 돈이 넘쳐나는 회사도 있지만 우리는 그런 여유는 없거든요. 이번에 게임 만들 때도, 아마 10년 전의 저였으면 난리가 났을지 몰라요. 다행히 철이 들었어요.”
 
  — 어머님이 일하는 거 말리지 않았나요.
 
  “전혀요. 늘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하셨어요.”
 
  조 부사장은 ‘반야심경(般若心經)’을 공부하다 잠시 접어뒀다고 한다. 왜 하필 반야심경인지 물었다.
 
 
  반야심경 공부하다 포기
 
  “아빠 49재 때, 스님의 독경 소리를 들었어요. 내가 찾는 답이 저기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무슨 뜻인지 알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한 줄 읽는 데 두 시간이 걸려도 이해가 안 돼서 포기했어요. ‘반야심경’이 불교 경전 중에서도 어려운 경전이더라고요. 다른 책부터 차근차근 공부해보려고요.”
 
  인터뷰 후 마포의 ‘을밀대’에서 함께 냉면을 먹었다. 몇 년 전 세상에 비친 모습과 평양냉면을 좋아한다며 소탈한 모습으로 ‘완냉’하는 모습 중 어떤 게 진짜 그의 모습일까. 잘은 모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꽤 솔직한 사람 같다는 점이다. 때론 솔직하지 않은 게 좋을 때도 있지만 말이다. 지난날을 돌아보며 그가 절실히 느꼈다는 ‘배려’가 아마 그럴 때 필요할 게다. 아버지 조양호 회장의 얘기가 나올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꼭 아버지와의 좋았던 기억으로 화제를 돌리곤 했다. 늦둥이 막내딸로 사랑받고 자란 덕일까, 위기를 견뎌내는 마음의 힘이 강한 사람이란 인상을 받았다.
 
  한진빌딩 엘리베이터 안, 재잘거리며 들어오다 조 부사장을 발견하자 조용해지는 직원들을 봤다. 냉면을 100그릇 먹는다 해도 우린 서로를 아마 어느 면에선 끝까지 이해할 수 없을 게다. 조 부사장이 ‘반야심경’을 이해 못 하듯 말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같은 회사 같은 부서에서 일하는 옆 사람을, 매일 보는 가족을 우리는 얼마나 깊이 알고 있을까.
 
  지난 2년여간 그는 세상의 독한 시선을 이해하고 극복하려 노력했다. 심리 상담을 받으며 자신을 돌아봤다. 반야심경을 이해 못 한다고 부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는 건 아니다. 이해할 순 없어도 지켜볼 순 있다. 우리도 이제는 한때 시끄러웠던 한진가의 막내딸이 아닌 ‘기업인 조현민’으로 그를 봐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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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ㅡㅡ^    (2021-05-26) 찬성 : 3   반대 : 0
이 기사보면 진짜 반성하는 건지 말모르겠는데.. 진짜 반성한다면 새로 회사 차릴것 같소.. 기존 임직원들한테 미안해서... 기존 직원들한테 투표받으면 복귀찬성을 과반수 이상 찬성할까? 앞으로는 평생 입에 욕은 담지 않길... 화나도 혼자 건물 창문 부시는게 도움이 될거요...

20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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