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인터뷰

黃敎安 전 미래통합당 대표

“大選 나갈지는 국민이 결정… 여론조사 구애될 필요 없어”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ironheel@chosun.com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총리는 半정치인… 국정 전반을 포괄적으로 다뤄본 게 강점”
⊙ “고치지 못할 장애적 달란트는 없다”
⊙ “총선 패배에 대해 贖罪해야겠다는 생각… 정권 교체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지 하겠다”
⊙ “탄핵 문제는 大義를 이룬 다음에 논해도 늦지 않아”
사진=조준우
  대통령 선거가 10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이른바 ‘대권(大權) 주자’들은 공식적인 선언은 안 했어도 현안에 대해 한마디씩 하고, 정책 제안들을 내놓는 등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중동(靜中動)이라고, 물밑에서의 움직임이 포착되는 사람들도 있다. 황교안(黃敎安·64) 전 미래통합당 대표도 그중 한 사람이다.
 
  황교안 전 대표의 등장은 보기에 따라서는 뜻밖일 수도 있다. 작년 총선(總選)에서의 참패(慘敗) 이후 그는 정치적 관심 밖으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대권 주자 선호도를 묻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그의 이름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도 그가 대권 도전을 위해 사람들을 만나면서 조언을 구하고 있다는 얘기가 꽤 오래전부터 들려왔다.
 
  그는 왜 지금 다시 나서려는 것일까? 4·7보궐선거 이후 국민의힘 내에서 다시 불거진 박근혜(朴槿惠) 전 대통령 탄핵 문제나 사면 등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 총리’이자 탄핵 당시 ‘대통령권한대행’이었던 그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5월 3일 황교안 전 대표를 만났다. 그가 CSIS(전략국제연구센터) 초청으로 미국으로 떠나기 이틀 전이었다.
 
 
  “韓美동맹 껍데기만 남았다”
 
  ― 미국에 다녀온다고 들었습니다.
 
  “CSIS, 헤리티지재단 등 싱크탱크, 경제단체 관계자들을 만나 한미(韓美)동맹,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경제협력, 북한인권, 한미 간 청년교류협력방안 등에 대해 논의하고자 합니다.”
 
  ― 지금 한미동맹이 지속 가능할 것인지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어떤 전문가들은 한미동맹이 껍데기만 남았다는 우려까지 하고 있습니다. 한미동맹은 우리나라의 안보뿐 아니라 경제를 위해서도 아주 중요합니다. 정말 우리가 지켜내야 하고 앞으로도 계속 함께해야 할 동맹입니다. 지금 ‘한미동맹이 껍데기만 남았다’ ‘실제로 한미동맹이 있는 거냐’라는 걱정을 하게 만든 것은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지난 1년 동안 어떻게 지냈습니까.
 
  이 질문에 황교안 전 대표는 “후우~” 하고 한숨부터 내쉬었다
 
  “지난 1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잘 지낸 분이 없는 것 같습니다. 깊은 반성을 통해 시대정신에 새롭게 부응하기 위한 성찰(省察)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조용히 지냈지만, 제가 원래 일없이 보내는 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책을 많이 읽고, 사람들도 많이 만나면서 나름대로 분주하게 지냈습니다.”
 
  ― 어떤 분들을 만났습니까.
 
  “전에 만나지 못하던 분들을 더 만났습니다. 특히 작년 공천과 선거 과정에서 어려움을 당했던 분들이 큰 고통과 좌절 속에 있는데, 제게 큰 책임이 있다는 마음으로 그분들을 만나서 위로했습니다. 또 우리 사회 곳곳에 있는 사회적 약자(弱者)들도 관심을 갖고 찾아뵈었습니다.”
 
 
  《권력의 법칙》과 〈사마의〉
 
  ― 지난 1년 동안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책 하나만 꼽으라면.
 
  “역설적인 의미에서 인상적이었는데, 《권력의 법칙》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의 내용은 정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 그 책의 저자 로버트 그린은 ‘현대의 마키아벨리’라고 불리는 분이죠.
 
  “저자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겠는데, 왜냐하면 그 책의 내용에 공감하지 못해서입니다. 정치인들은 거짓말도 좀 하고 말 바꾸기도 좀 하고 내로남불도 하라는 내용이었는데…. 그런 책들이 인기 서적 중의 하나가 된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 그 밖에 어떤 책을 읽었습니까.
 
  “《2020 미래전략》 같은 미래에 대한 책들도 봤고, 청년과 관련된 책들도 읽었습니다. 영화도 좀 봤습니다.”
 
  ― 어떤 영화였습니까.
 
  “〈어거스트 러쉬〉. 나약하고 소외되었던 소년이 훌륭한 음악가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인데, 해피엔딩이 되는 것을 보면서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사마의〉 같은 드라마도 좀 봤습니다. 하하.”
 
  ― 〈사마의〉는 요새 기업인이나 정치인들이 많이 본다고 하더군요.
 
  “그런가요? 그런 걸 보면서 저의 부족함을 채우는 모멘텀이 됐습니다.”
 
  ― 부족함이란 어떤 점을 두고 하는 얘기입니까.
 
  “저는 그동안 계속 행정가로 일하지 않았습니까. 당대표가 되기는 했지만, 그런다고 해서 정치 전반에 대해 밝아지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저를 두고 ‘정치를 행정적으로 했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그런 부족한 부분들을 성찰의 기간을 통해서 많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를 재충전하는 기회도 되었습니다.”
 
 
  “大選 출마, 국민이 결정할 일”
 
  ― 《권력의 법칙》에 나오는 얘기들이 아직도 거부감이 든다고 하면, 아직 정치인이 덜된 것 아닙니까.
 
  “저는 과거식의 정치를 본받아서 과거식의 정치를 잘하기 위해서 정치를 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국민의 신뢰를 받는 정치, 새로운 정치, 21세기형 정치, 그런 정치를 하겠다고 당에 들어온 것입니다.
 
  사실 제가 아니면 누가 그렇게 하겠습니까. 저는 정치를 오래 한 사람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저는 새로운 도전과 시도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그러니까 내년 대선(大選) 출마 결심은 했다는 말씀이죠.
 
  전에 유승민(劉承旼) 전 의원이나 원희룡(元喜龍) 제주지사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는 거의 즉각적으로 “예!”라는 답변이 튀어나왔다. 황 전 대표의 대답은 달랐다.
 
  “제 목표는 무너져가는 나라를 바로 세우고 정말 힘들어하는 민생(民生)을 일으켜 세우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이루려는 것이 욕심이라면, 그런 욕심을 갖겠습니다. 저는 ‘어떤 자리에 오르겠다’거나, ‘무엇이 되겠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겠다’는 관점에서 비전을 키워왔습니다. 앞으로 제가 대선에 나설지 여부는 국민들께서 결정하실 일입니다. 저는 저의 책임을 다하면서 뚜벅뚜벅 미래를 향해서 나아가도록 하겠습니다.”
 
  ― 그렇다면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저조하게 나타난다면, 안 나올 수도 있다는 얘긴가요.
 
  “어떤 분은 대통령 선거를 불과 몇 달 앞둔 상황에서 지지율이 1%도 안 되었지만, 결국 대통령이 되지 않았습니까. 여론조사 결과라고 하는 것은 참고할 뿐이지, 거기에 구애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正常에서 어긋난 國政부터 바로잡아야”
 
황교안 전 대표는 지난 4월 26일 국회 본청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소상공인들을 찾아 격려했다. 사진=조선DB
  ― 지금 말씀하신 것만으로는 권력의지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저는 국민들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국민들이 걱정 없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고 싶은 의지는 누구보다 강합니다. 정말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은 의지도 누구보다 강합니다. 하지만 사적(私的) 욕심이 권력의지라면 그런 권력의지는 갖지 않겠습니다.”
 
  황 전 대표는 “작년 총선 때 공천을 하면서도 저의 개인적인 권력욕심을 내려놨었다”면서 “그것은 제가 말했던 진정한 권력의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 그런 권력의지는 언제 생겼습니까.
 
  “문재인(文在寅) 정권이 무능(無能)하고 부패한 모습을 국민들에게 지속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 때문에 국민들이 고통받는 것을 보면서 그런 권력의지가 생겼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 대선에서 내세우고 싶은 비전은 무엇입니까.
 
  “1960년대에 세계 최빈국(最貧國)이었던 우리나라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었습니다. 이제는 우리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미래 선진국, 초일류 세계 정상(頂上) 국가가 되는 것이 우리의 꿈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정상(正常)에서 어긋난 국정(國政)부터 바로잡아야 합니다. 국정이 정상화되지 않고는 그런 나라가 될 수 없습니다.”
 
  ― 비정상에서 어긋난 국정이라는 것은 무엇을 두고 하는 말입니까.
 
  “경제가 완전히 난맥상에 빠져 있지 않습니까. 민생도 도탄에 빠져 있지 않습니까. 특히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이 힘들고, 기업 하는 분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많은 규제에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안보도 모두 구멍이 뚫리지 않았습니까. 이런 상황들이 다 정상이 아니지요.
 
  또 한 가지, 지금 우리 가치(價値)도 무너져 있습니다. 정의와 공정을 말했던 정부 아닙니까. 하지만 조국(曺國)·윤미향·추미애 이런 분들의 사례를 보면서 정의와 공정이 말뿐이었고, 그 뒤에서는 불의와 불공정이 자행됐다는 것을 국민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미래 세대에게 보여서는 안 될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 정치의 가장 큰 역할은 갈등을 조정하는 것입니다. 평생 법조(法曹)에만 몸담았던 분들은 그런 역을 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저는 최근에는 정치권에 있었습니다.”
 
  ― 1년도 안 되지 않습니까.
 
  “하하하. 농담입니다. 제가 주로 검사로 행정부에 있었던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검찰에서만 일했던 것은 아닙니다. 법무부에서도 일했습니다. 법무부는 수사하는 부서가 아닙니다.”
 
  ― 그럼 무엇을 하는 부서입니까.
 
  “법무부에는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법무실 등이 있어서 다양한 법제·사회제도 등을 다룹니다. 이는 검찰의 영역을 훨씬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런 곳에서 넓은 의미의 법치(法治), 법의 지배를 경험했습니다. 법무부에서 하는 중요한 일 중 하나가 우리 사회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또 검찰에서 오래 일했지만, 검찰이 처벌만 하는 곳은 아닙니다. 혹시 검찰의 기소・불기소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 아십니까?”
 
  ― 모르겠는데요.
 
  “반반입니다. 즉 검찰은 처벌하는 기관이 아니라 균형을 잡는 기관이라는 얘기입니다. 몽테스키외는 검찰에 대해 ‘인류 역사상 가장 객관적인 기관’이라고 말했습니다.
 
  검찰은 프랑스혁명 때 경찰과 법원의 부패와 비리를 극복하기 위해 생겨났습니다. 검찰의 기본적인 역할은 수사·처벌이 아니라 인권 옹호입니다. 이는 결국 갈등 조절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저는 국무총리도 했습니다.”
 
  ― 그렇죠.
 
  “총리에게는 고유 권한이 없어요. 각 부처의 일들을 조정하고 통할(統轄)하는 것, 즉 다리 역할, 조정자 역할을 하는 게 총리입니다. 각 부처도 국회와 소통하기는 하지만 큰 틀의 소통은 총리가 직접 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은 다 소통의 일환이었습니다. 저는 ‘총리는 반(半)정치인’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인생 여정에서 저는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가급적 균형추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정치적 달란트
 
  ― 과거 이회창(李會昌) 전 총리, 고건(高建) 전 총리, 반기문(潘基文) 전 유엔사무총장 등은 한때 지지율이 높았지만 결국 대권 도전에 실패하거나 중도에 포기했습니다. 이를 두고 관료 출신의 한계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과 비교하면 본인은 어떤 점이 다르다고 생각합니까.
 
  “고건 전 총리나 반기문 전 총장을 예로 드는 분들에게 제가 이렇게 말했어요. ‘그렇게 말하면 그분들이 마치 실패한 인물의 상징처럼 되는데, 그건 아니다. 어떻게 반기문 총장이 실패한 사람이냐. 고건 총리는 행정의 달인인데 그 사람을 실패의 사례로 드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입니다.”
 

  ― 그거야 그분들이 대권 도전에 실패했다는 얘기지, 인생에 실패했다는 얘기는 아니죠.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나라를 다시 세우고 민생을 바로 세우기 위해 필요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거기에 제가 오래 공직에 있었다거나, 법조인 출신이라는 것은 큰 장애요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자신에게 정치적 달란트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고치지 못할 장애적(障的) 달란트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생래적(生來的) 정치인, 태어나면서 정치를 잘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노무현(盧武鉉) 전 대통령은 태어나면서부터 정치를 잘한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변호사를 잘했었죠.
 
  중요한 것은 변화를 얼마나 잘 수용하느냐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의지를 갖고 있습니다.”
 
  ― 그렇습니까.
 
  “제가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폭넓은 분들과 대화를 나누고 많은 의견을 수용해서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가치들을 도출(導出)해내고 정책화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저는 지난 1년 동안 주로 그동안 저와 다른 입장에 서 있던 분들의 책을 많이 보았습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좌우(左右)가 아니라, 그것이 국민 중심이냐 하는 것이 기준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마크롱 모델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자신의 지지단체인 앙마르슈를 통해 국민들의 정책수요를 파악해 대선에서 승리했다. 사진=AP/뉴시스
  ― 아까부터 ‘국민’이라는 말을 많이 하셨는데, 문재인 대통령도 입만 열면 ‘국민’을 찾습니다. 어떤 국민을 말하는 것입니까.
 
  “‘국민’이라는 것은 소위 정치에서 말하는 진영(陣營)과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가 진영을 국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미스매치(mismatch)가 생기는 것이라고 봅니다. 국민의 뜻을 알기 위한 방법으로 여론조사가 있다고 하지만, 응답률이 5%도 안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 그럼 국민의 생각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결국 국민의 생각을 알기 위해서는 국민들과 직접 소통하고 부딪혀야겠죠.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에 지지자들의 모임인 앙마르슈 회원들을 전국에 보내 여론조사를 했다고 합니다.”
 
  ― 그렇죠.
 
  “여론조사 기관에 맡긴 게 아니라 직접 가서 들어본 거예요. 그런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국민의 니즈(needs)를 모아서 그것들을 국민에게 던졌더니 39세에 대통령이 되는 기적을 이루어낸 것입니다. 국민의 뜻은 우리가 받을 수 있다, 얻을 수 있다,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그게 그렇게 쉬울까요.
 
  “물론 모든 국민을 만날 수는 없겠지요. 그렇지만 현장에 가서 몇 분의 얘기를 들어보면 큰 흐름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바로는 그렇게 해서 접하게 되는 국민의 뜻은 정치권에서 얘기하는 것과는 다르더라고요.”
 
  ― 밑바닥 여론을 직접 듣기 위해 구체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 게 있습니까.
 
  “코로나19 때문에 직접 국민들을 만나서 여론을 듣는 것은 어렵겠지요. 그러나 소셜미디어(SNS), 온라인 등을 통한 소통수단들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 지금쯤이면 그런 소통을 통해 여론을 취합하고 정책을 다듬고 있어야 할 때 아닙니까. 지금 그걸 시작한다고 하면 늦은 것 아닌가요.
 
  “정치를 시작하면서부터 그런 소통의 루트들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마무리는 별도로 준비해야겠지요.”
 
 
  “國政 전반 경험”
 
  ― 야권 후보 가운데는 현재 여론조사에서 1등을 하고 있는 윤석열(尹錫悅) 전 검찰총장을 비롯해 홍준표(洪準杓) 전 자유한국당 대표, 원희룡 제주지사 등 검찰 출신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과 비교할 때 본인의 특장점(特長點)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그분들과 객관적인 차이가 있다면 저는 국정 전반을 포괄적으로 경험해보았다는 것을 들 수 있겠지요. 국정이라는 것은 그냥 말로 하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경험이 필요한데 그런 점에서는 다른 분들이 경험하지 못한 면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분들은 다른 장점을 갖고 있겠지요.”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 보수(保守)세력 일각에서는 그의 출마를 기대했다. 하지만 그는 출마하지 않았다. 자유한국당에서는 홍준표 후보가 출마했지만,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패배했다. 탄핵의 광풍(狂風) 속에서 박근혜 정부의 국무총리가 대선에 나와 승리를 거머쥘 수는 없었겠지만,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대선에 나왔다면, 지금쯤 그의 정치적 위상은 훨씬 더 커졌을지도 모른다.
 
  ― 2017년 대선 당시 출마 권유를 많이 받지 않았습니까.
 
  “그랬습니다. 하지만 저는 당시 위기 관리자였습니다. 위기 관리자가 새로운 위기 요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통령께서 탄핵당해서 국정운영의 구심점(求心點)이 사라진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상황에서 대통령권한대행으로 국정을 관리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총선 敗因
 
  황교안 전 대표는 2019년 1월 자유한국당에 입당, 같은 해 2월 전당대회에서 당대표가 됐다. 입당 43일 만이었다. 그에게는 운이 따랐다. 조국 사태 등으로 그해 가을부터 민심이 문재인 정권으로부터 급속히 이반(離反)된 것이다. 황교안 대표는 삭발, 단식으로 대여(對與)투쟁의 선봉에 섰다. 당원 확장 운동을 벌이자 시민들이 자기 발로 걸어와 입당원서를 썼다. 2020년 총선에서 자유한국당의 승리는 떼놓은 당상인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결과는 보수정당의 유례없는 참패였다.
 
  ― 지난해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이 패배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합니까.
 
  “내부적 요인과 외부적 요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내부적 요인은 혁신과 공천의 실패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적 경륜이 있는 김종인(金鍾仁) 선거대책위원장, 김형오(金炯旿) 공천관리위원장에게 전권을 주고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제 생각대로 되지 않고 참패했습니다. 선거 패배의 책임은 그분들을 임명하고, 당이 이길 수 있는 전략을 내놓지 못한 제게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국민 여러분과 당원 동지 여러분에게 송구한 마음이 큽니다.”
 
  ― 외부적 요인은 무엇입니까.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국기(國旗)결집 효과, 즉 위기 시에 국민들이 지도자를 중심으로 뭉치는 현상입니다. 덴마크·이탈리아 같은 나라에서도 코로나19 사태 이전에 30~40%이던 총리 지지율이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는 70%가 넘었다고 합니다.
 
  이와 함께 코로나19를 이유로 한 돈 퍼주기도 민주당 승리의 큰 원인이 됐다고 봅니다. 민주당이 이긴 원인으로 돈과 코로나19를 이야기하는 분도 있습니다.”
 
  ― 내부적 요인과 외부적 요인 가운데 어느 쪽이 크게 작용했다고 봅니까.
 
  “우리 당 내부적 요인이 크다고 생각하지만 외부적 요인도 영향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외부적 요인들보다는 내부적 요인들을 개선하는 데 주력해야 할 때입니다. 여전히 혁신과 통합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통합 지연으로 화학적 결합 못 해”
 
  ― 서울·부산 보궐선거 이후 서병수 의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론을 들고나오면서 국민의힘이 시끄러웠던 것을 보면, 친박(親朴)과 비박(非朴), 찬탄(탄핵찬성)과 반탄(탄핵반대) 세력 간에 갈등의 골은 여전한 것 같습니다.
 
  “통합에 관한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첫째는 계파(系派) 통합입니다. 친박・친이(親李)・복당파・잔류파, 이런 계파들부터 통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오랜 과제였지만 제가 대표가 되고 난 후 서너 달이 지나고 나서는 계파 얘기는 들어갔습니다.
 
  둘째는 자유민주정당 통합입니다. 헌법 가치를 같이하는 자유민주정당들이 하나가 되자는 것입니다. 중간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2020년 3월 대통합이 이루어졌습니다.
 
  마지막은 국민 통합입니다. 지역, 세대, 빈부(貧富)에 따라 갈가리 찢어진 나라를 하나로 묶어야 세계 일류 국가를 이룰 수 있습니다.”
 
  ― 대개 선거 전에 통합을 이루면 선거에 유리하게 작용하는데, 통합에도 불구하고 총선에서 패한 이유는 뭐라고 봅니까.
 
  “2019년 6월부터 통합을 기획해 그해 8월부터 각 정당 대표나 책임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11월 6일 제가 공개적으로 통합 논의를 공론화하자고 제안했습니다. 통합 작업이 물밑에서 충분히 이루어졌기 때문에 한두 달, 늦어도 2020년 1월까지는 자유민주정당 간 통합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했어요. 그렇게 됐으면 통합이 물리적 통합을 넘어 화학적 통합으로까지 갔을 거예요. 통합된 정당에서 넓은 자원을 가지고 공천을 주고, 이분들이 적절하게 지역에 배치되어 선거를 치렀다면 다른 양상이 됐을 것입니다.
 
  그런데 통합이 이런저런 이유로 자꾸 지연됐습니다. 결국 2020년 3월 7일에서야 통합정당 출범식을 했습니다. 시간이 지연되면서 공천이 너무 늦게 되는 바람에 선거운동할 시간이 짧았어요. 게다가 코로나19가 닥쳐와서 대면(對面) 활동도 할 수 없었고요. 이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우리가 총선에서 참패했다고 봅니다.”
 
  황교안 전 대표는 “그래도 이번 서울 보궐선거에서 안철수(安哲秀) 국민의당 대표와 오세훈(吳世勳) 시장이 경선(競選)에서 단일화를 이룬 것을 보면, 그때 통합을 위해 노력했던 성과들이 하나씩 나오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혁신 노력 부족했다”
 
  ― 2019년 가을 이후 조국 사태 등을 겪으면서 정권심판론에 안주하다가 진 것은 아닙니까.
 
  “저는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대표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에서도 그런 안이한 생각을 갖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우리의 혁신 노력이 부족했던 데에 더 큰 원인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대표 본인이 종로 선거에 매몰되는 바람에 본인 선거도 지고, 당도 패한 것 아닙니까.
 
  “한 석이라도 더 건져야 하는 상황에서 ‘나는 안 나가고 지원이나 할 테니, 여러분은 나가서 고생해라’ 이럴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서울 종로에서 출마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종로에 나가서 선거운동을 하다 보니 정말 녹록지 않더군요. 그래서 선거 경험이 많은 김종인 위원장을 모셔다가 전국의 총선 후보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부탁드렸던 것입니다.
 
  결국 저도 지고, 우리 당도 졌지요. 국민과 당원들에게 정말 죄송한 일입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저는 죄인입니다.”
 
 
  “다 제 책임입니다”
 
황교안 전 대표는 작년 총선을 앞두고 김형오 전 국회의장(오른쪽)에게 자유한국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맡겼다. 사진=조선DB
  김형오 전 공천관리위원장은 지난 3월 《총선 참패와 생각나는 사람들》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에서 그는 총선 결과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면서도 공천관리위원회의 ‘개혁공천’ 노력을 강조하는 한편, 공천관리위원회-선거대책위원회-후보가 한 몸처럼 움직이지 못한 것, 후보들에 대한 중앙당 차원의 지원 부재(不在), 비례대표정당 창당으로 인해 방송토론과 신문광고를 원천봉쇄 당한 것 등을 아쉬운 점으로 꼽았다.
 
  ― 김형오 전 공관위원장이 최근에 낸 책 《총선 참패와 생각나는 사람들》을 읽었습니까.
 
  이 질문에 황교안 전 대표는 바로 대답했다.
 
  “네. 다 제 책임입니다. 말 그대로 다 제 책임입니다.”
 
  ― 지난 총선의 패장(敗將)이 1년 동안 무엇을 하고 있다가 대선이 10개월 앞으로 다가오니 슬그머니 나오냐고 곱지 않은 눈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을 듯합니다.
 
  “제가 가만히 있다가 선거 때가 되니 움직인다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말씀입니다. 총선에서 이겼든 졌든, 보궐선거에서 이겼든 졌든, 제 목표는 문재인 정권의 종식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30% 밑으로 내려온 데서도 알 수 있듯이 그것은 국민들의 바람이기도 합니다. 총선 패배에 대한 책임감, 속죄(贖罪)해야겠다는 생각의 발로에서 정권 교체를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지 하겠다는 생각입니다.”
 
  ― 그렇다면 명시적으로 대권에 도전하는 것 말고, 흔히 하는 표현으로 백의종군(白衣從軍)하는 방법도 있지 않겠습니까.
 
  “말씀대로 최근 서울·부산 보궐선거 때에는 두 후보에게 불편을 전혀 주지 않는 방법으로 제가 할 수 있는 도움을 드리려 노력했습니다. 백의종군의 마음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다만 정치인의 행보, 임무, 그런 것은 국민들께서 판단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저는 저의 책임을 다하면서 나라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입니다. 그러다가 국민의 뜻이 모이면 그에 따를 것입니다.”
 
 
  “탄핵, ‘아직도 그걸 얘기해야 하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이 가결된 2016년 12월 9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위원 간담회에 입장하는 박근혜 대통령과 황교안 총리. 탄핵 이후 황 총리가 대통령권한대행을 맡았다. 사진=뉴시스
  ― 2016년 10월 최순실 사태 나기 시작했을 때, 총리로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였습니까.
 
  “당시 저는 국회에서 야당 의원들의 질문을 받고 ‘내 판단으로는 최순실의 호가호위(狐假虎威)’라고 답했습니다. 최순실이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을 손보았다는 얘기가 있었지만, 저도 연설문을 쓴 후에는 주위 사람들에게 의견을 구합니다. 다만 법적으로 공범(共犯)의 개념이 매우 폭넓게 인정되기 때문에, 미르재단 등과 관련해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돈을 받은 것은 없다고 하더라도 공범으로 기소된 것은… 굉장히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 탄핵 사태의 전개 과정에서 총리로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정무적·법률적 조언을 할 기회는 없었습니까.
 
  “큰 틀에서 법률적 대응 방향에 대해서는 말씀드렸지요. 하지만 그건 안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 최순실 사태, 탄핵 사태의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에 대해서는 여러 번 이야기했습니다만, ‘아직도 그걸 얘기해야 하나’ 하는 자괴감(自愧感)이 큽니다. 다 과거의 문제입니다. 재판 등 여러 가지 과정을 통해서 정리가 됐습니다. 저는 그 얘기보다는 그것을 교훈 삼아서 우리 미래의 대안을 어떻게 세워야 하느냐에 주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탄핵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 탄핵 문제를 정리하지 않고서는 근소한 차이로 승패(勝敗)가 엇갈릴 수도 있는 대선에서 보수세력의 결집을 이루어내기 어렵다고 보기에 물어보는 것입니다.
 
  “탄핵을 인정하자는 결론을 내면 탄핵을 해서는 안 되었다고 하는 분들은 다 등을 돌리겠지요. 그 반대를 얘기해도 마찬가지겠고요.
 
  탄핵에 대한 평가는 역사에 맡겨야 합니다. 정치가 이걸 해결하려고 하니 여기에 매이고 있는 것입니다. 탄핵을 넘어서 이제 미래로 가야 합니다. 탄핵 문제는 우리가 대의(大義)를 이룬 다음에 논해도 늦지 않습니다. 탄핵 때문에 왈가왈부하다가 힘을 모으지 못해서 대선에서 지면, 정의를 세울 수 있는 기회도 없어지지 않겠습니까. 대의 아래 소아(小我)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 노재봉(盧在鳳) 전 총리는 ‘박근혜 탄핵은 체제 탄핵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다시 탄핵 문제로 가는 길입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 탄핵을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평생 법조에 몸담았던 그에게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이나 박근혜 전 대통령이 받은 유죄(有罪)판결 등에 대해 더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황 전 대표는 탄핵 문제에 대해 더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 역력했다. 더 물어봐도 비슷한 답변이 이어질 것 같아서 얘기를 돌렸다.
 
 
  “문재인 정권은 ‘참 나쁜 정권’”
 
  ― 문재인 정권을 딱 한마디로 규정한다면 뭐라고 규정하겠습니까.
 
  “‘참 나쁜 정권’이라고 해야겠지요. 국민의 간절한 바람을 악의적(惡意的)으로 이용한 정권, 내로남불 정권, 남 탓 정권, 위선(僞善) 정권, 패거리 정권…. 이런 것을 다 모으면 ‘참 나쁜 정권’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 옛날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두고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했던 게 생각나는 표현이네요.
 
  “그런가요? 그러면 ‘정말 나쁜 정권’이라고 바꿉시다.”
 
  ― 검찰 출신으로서 문재인 정권의 ‘검찰개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검찰 해체, 검찰 무력화(無力化)죠. 검찰의 수사권 다 빼앗고 조금만 남겨놓았다가 그것까지 다 없애겠다는 것 아닙니까.
 
  그래놓고 만들어놓은 게 공수처인데, 공수처가 잘하고 있습니까? 정말 공의(公義)롭고, 공정하고, 정의롭게 하고 있습니까? 국민들이 초장부터 실망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미래가 뻔히 보이잖습니까. 공수처 검사들을 임명했는데 수사를 제대로 해본 사람이 거의 없어요. 수사가 말로 하는 건 아니잖습니까. 검사들 중에도 수사하는 검사, 행정하는 검사, 공판하는 검사 등 여러 검사가 있어요. 그냥 아무나 데려다가 수사권을 준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겁니다. 이건 검찰개혁이 아니라 검찰개악(改惡)이에요.”
 
  ― 검찰의 행태에 대한 비판도 많습니다.
 
  “검찰에 부족한 점이 많지요. 하지만 아예 검찰을 없애버리고 제3의 수사기관을 만드는 것은 답이 아닙니다. 만일 나중에 공수처에 비리가 생기고, 신뢰가 떨어지면 어떻게 합니까. 제2 공수처를 만들어야 하나요. 말도 안 되는, 정말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책이라고 생각합니다.”
 
  ― 헝가리·폴란드·터키 등을 보면 전(全) 세계적으로 비(非)자유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 즉 자유가 삭제된 민주주의가 횡행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권하의 대한민국도 그리로 가고 있는 게 아닌가 걱정입니다.
 
  “이 정부가 2018년에 내놓은 헌법개정안에서는 자유민주주의의 ‘자유’를 빼려고 했잖아요. 자유라는 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이 아닙니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결합한 게 자유민주주의거든요. 자유라고 하는 가치는 우리가 그렇게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이 정부의 시도는 말 그대로 자유민주주의를 바꾸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걸 변혁(變革)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자유는 우리가 꼭 지켜야 할 국민적 가치, 헌법적 가치입니다.”
 
 
  “(당대표는) 한 번이면 족해”
 
  ― 정치를 계속하는 것에 대해 부인은 동의(同意)하나요.
 
  “속으로는 안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정말 흙수저, 아니 무(無)수저라고 말할 정도였는데, 그런 사람을 오늘에 이르도록 해준 것이 결국 대한민국 아닙니까. 저는 다음 세대에게 망가진 나라를 물려줄 수 없다는 책임감에서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아내도 생각이 똑같아요.”
 
  ― 그런 흙수저 스토리도 있고 해서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작년 총선에서 참패하는 바람에….
 
  “첫 시도는 실패했지요. 그렇지만 다시는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겁니다. 새로 시작하면 완전히 다를 겁니다.”
 
  ― 2017년 대선 출마가 거론될 때, 황 대표를 두고 ‘대통령보다는 목사가 되고 싶어 할 사람’이라고 하는 분들도 있더군요.
 
  “저는 저의 길을 간 것입니다. 제가 신학(神學)을 공부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 목사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죠.”
 
  ― 아직 국민의힘 당원인 거죠.
 
  “당비(黨費) 많이 냅니다. 하하하.”
 
  ― 혹시 전당대회에 당대표로 나설 생각은 없습니까.
 
  “《조선일보》 쪽에서 계속 그런 질문을 하네(황교안 대표는 지난 5월 3일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했다. 이 인터뷰 기사는 5월4일자 《조선일보》에 실렸다). (당대표는) 한 번이면 족하지요.”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습니까.
 
  “이제는 관행(慣行)을 넘어서 미래로 가야 합니다. 제 미국 일정을 준비한 것은 청년 3인방입니다. 제일 나이가 많은 분이 42세였습니다. 그들이 미국 측과 협상하고, 스케줄을 만들고, 제가 미국에 가서 할 메시지도 기획했습니다.”
 
  ― 그렇습니까.
 
  “저는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에게 판을 깔아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보수정당의 기본 베이스가 청년들을 받아들이거나 앞세우기에 쉽지 않은 구조였지만, 이제 바꾸어야 합니다.
 
  OECD 37개국 가운데 수반(首班)이 30·40대인 나라가 프랑스·오스트리아 등 13개국이나 됩니다. 우리 젊은이들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기성(旣成)세대와 젊은이들이 함께하는 상생(相生)공화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나라도 젊어져야 하고, 우리 당도 젊어져야 합니다.”
 
 
  미국방문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면서 근래에 인터뷰한 주호영(朱豪英) 전 원내대표, 유승민 전 의원, 원희룡 제주지사, 권성동(權性東) 의원 등 국민의힘 정치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들의 정치행태나 주장에 꼭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그들에게는 나름 사람을 잡아끄는 힘이 있었다. 반면에 황교안 전 대표는 기본적인 생각에는 공감이 가는 대목들이 적지 않았지만 사람을 끄는 힘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꼭 국회에서 대정부 질의에 성실하게 답변하는 총리를 보는 것 같았다고 할까. 직업정치인과 관료 출신의 차이를 단적으로 보는 듯했다. 황교안 전 대표가 그 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지, 본인 말처럼 새로 시작하면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기자와의 인터뷰 후인 5월 5~13일 황교안 전 대표는 7박 8일간 미국을 다녀왔다. 미국 방문 기간 중 황 전 대표는 커트 캠벨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조정관을 만나 백신 1000만 명분 지원을 요청했다. 5월 7일 CSIS 초청 간담회에서는 빅터 차 박사, 마크 리퍼트 전 주한 미국대사와 온라인 토론을 하면서 “미국의 인도·태평양지역을 중심으로 한 쿼드동맹체제의 ‘펜타’ 확장과 대한민국의 아태지역 자유민주주의 국가들 간의 강력한 연대의식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국무부・NSC・헤리티지재단・CSIS・AEI(미국기업연구소)・상공회의소・정보기술산업협의회(ITIC) 등을 방문해서는 한미동맹의 현대화 문제를 논의했다. ‘미국 외교의 전설’인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수전 솔티 미국 북한자유연합 대표 등과도 만났다. 워싱턴DC의 사정에 밝은 유민호 퍼시픽21 디렉터는 “커트 캠벨 조정관은 일본의 톱레벨 인사들이 와도 잘 안 만나주는 사람으로, 지난번 미국을 방문한 국회 외교통일위원들도 그를 만나지 못했다”면서 “황 전 대표가 캠벨 조정관을 만난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했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202106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프리미엄결제
2020년4월부록
정기구독 이벤트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 월간조선 2018년 4월호 부록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