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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식 KOMAC 회장

“‘제조업은 필요 없다’ 이건 나라를 망치는 말”

글 : 이근미  객원기자  www.rootl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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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 최초로 영국 로이드선급협회 검사관 지내
⊙ 박정희, “대한민국의 조선공업을 살리시오! 삼면이 바다잖소”
⊙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 등으로 일하며 제철·조선·석유화학·기계·전자·과학기술 분야 중장기 발전계획 수립
⊙ 경부고속도로 만들 때 책상에서 자로 직접 도로구간을 그었지만 땅 한 평 안 사

申東植
1932년생. 서울대 조선공학과 졸업. 스웨덴 찰머스 공과대학원, 영국 더럼 공과대학원 조선공학 수학 / 대통령 초대 경제수석비서관, 해사행정특별심의위원회 위원장(장관급), 경제과학심의회의 사무총장(장관급) 역임 / 現 ㈜한국해사기술(KOMAC) 회장 / 은탑산업훈장, 3·1문화상·대통령표창(외국투자유치부문), 우암상·자랑스러운동문상 수상
사진=신동식 제공
  우리 나이로 90세 현역 신동식(申東植·89) 회장은 국내외에서 ‘조선(造船)공업의 아버지’ ‘가장 경험이 많은 현역 조선쟁이’로 불린다. ㈜한국해사기술(KOMAC·코막)을 경영하면서 세계 여러 국가 또는 기업의 자문에 응하느라 바쁜 그에게는 ‘국가건설기획자(nation building architect)’라는 별명도 따라다닌다. 신동식 회장은 세계 최고의 선급(船級)협회인 영국 로이드(Lloyd’s Register)와 미국선급협회(ABS)에서 한국인 최초로 검사관을 지냈다. 기술자 가운데 처음으로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에 임명되면서 전문 기술관료(테크노크라트) 시대를 연 인물이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참여하여 조선공업과 과학기술 발전 계획을 수립·집행하여 한국을 세계 제1의 조선국가로 부상시키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90세에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비결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세상은 끊임없이 바뀌고 있어요. 코로나19로 인해서 방향이 아닌 속도가 달라졌어요. 변화에 대한 엄청난 가속도가 붙은 거죠. 구십 노인네가 무슨 미래를 생각하느냐고 하겠지만 젊은 사람에게 지지 않기 위해 꾸준히 공부해요. 뇌를 계속 쓰면 젊어집니다. 건물도 몇십 년 되면 재건축하는데 100세 시대에 맞춰 자기 인생도 늘 재정비해야지요.”
 

  매일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를 살펴보며 해외 자문에 조언해주고 5개 연구포럼 공부까지, 너무 바쁜 그에게 취업경쟁에 뛰어든 청년과 인생 2막 스타터를 위한 ‘평생 현역 비법’ 전수를 부탁했다.
 
  “사람은 하고 싶은 게 있어야 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을 해야 해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닌, 좀 더 차원을 높여 애국심을 발휘할 분야를 찾아야 합니다. 어렵다고 낙심하지 말고 실력을 쌓아 길을 찾으면 오래 일할 수 있어요.”
 
 
  高卒 기능공 양성소 자진 입소
 
1957년 스웨덴 코쿰 조선소 근무 시절의 신동식 회장.
  신동식 회장은 6·25전쟁 때 학도병으로 참전했다가 부산으로 피란 와서 미국 군함이 싣고 온 군수물자와 구호품을 체크하는 체커(checker)로 일했다. 거대한 미군 수송함에서 탱크와 군인이 쏟아져 나오는 걸 보고 ‘멋진 배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꾸며 서울대 조선공학과에 진학했다. 마땅한 교재도 없던 시절이니 수석으로 졸업해도 일자리가 있을 리 만무했다.
 
  세계 여러 나라에 편지를 보낸 끝에 유럽 최고 조선소인 스웨덴 코쿰의 설계부 엔지니어로 채용되었다. 항공편에 숙소와 개인사무실까지 제공받았지만 경험 부족으로 현장에 적응할 수 없자 고등학교 졸업생들을 위한 기능공 양성소에 자진 입소했다. 12주간 스파르타 교육을 받으며 기초를 탄탄히 다지고 경험을 쌓은 후에야 영국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
 
  “영국 로이드 런던본부에서 첫 한국인 국제선박검사관으로 일할 때 작은 섬나라가 어떻게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로 변신했을까 궁금했어요. 당시 한국은 정말 가난하고 말썽이 많아 돌아가기 싫을 정도였지. 그러면서도 막연히 한국에 돌아가면 뭘 해야 하나, 생각하며 영국의 발전에 관심을 가졌어요.”
 
 
  朴正熙와의 만남
 
신동식 회장은 박정희 대통령 초기에 조선산업 및 과학기술, 해양 분야에서 활약했다.
  친하게 지내던 김유택(金裕澤) 주영(駐英)대사가 5·16혁명 직후 고국의 부름을 받아 귀국한 뒤 그에게 돌아오라고 종용했다. 자유당 때 재무부 차관과 한국은행 총재를 지낸 후 경제기획원 장관에 임명된 김유택씨가 박정희(朴正熙)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게 그의 얘기를 한 것이다.
 
  “박정희 의장이 우리나라를 해양국가로 만들기 위한 인물을 찾고 있었던 거지. 바로 거절했는데 운명이란 게 이상해. 1961년 8월 일본 로이드로 파견을 나가 근무하고 있는데 박 의장이 케네디 미국 대통령을 만나러 가는 길에 일본에 들렀어요. 김유택 장관의 주선으로 박 의장을 만났는데 그 자리에서 바다를 개척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구미 시골에서 태어난 분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지금도 납득이 안 가요. 그 얘기를 듣고 돌아오기로 결심했지.”
 
  로이드를 휴직하고 귀국해 대한조선공사 기술고문직을 맡았다. 조개탄 난로와 재봉틀 제조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던 조선소에서 전쟁 중에 두 동강이 나 동해 대포리에 좌초되어 있던 4000t급 화물선을 수리했다. 이어 3500t급 배를 수주했으나 조선공업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더 이상 진척이 없자 사직을 결심했다.
 
  그 소식을 들은 김유택 장관이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하는 일에 참여해 해사(海事) 분야를 맡으라며 그를 경제기획원 고문으로 임명했다. 1년간 조선·해운·수산·항만 분야를 포괄하는 해사산업 전반에 대한 기획을 한 후 출국했다. 조선에 대한 견해를 더 넓히기 위해 미국으로 옮겨 ABS선급협회 뉴욕본부에서 일했다.
 
  1965년, 린든 존슨 대통령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이 그를 호텔로 불렀다.
 
  “‘대한민국의 조선공업을 살리시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잖소!’라고 하셔서 ‘실패하는 일 절대 없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답했지. 그 길로 존슨 대통령이 내준 전용기를 타고 박 대통령과 함께 귀국했어요.”
 
  이후 초대(初代)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과 해사행정특별심의위원회 위원장(장관급), 경제과학심의회의 사무총장(장관급) 등의 고위직을 거치며 제철·조선·석유화학·기계·전자·과학기술 분야의 중장기 발전계획을 수립했다. 1965년의 우리나라 상황은 거의 절망적이었다.
 
 
  “양철 조각도 못 만드는데…”
 
  “일감은 없고 거지와 깡패가 득시글했는데 방직공장이나 수산업 같은 걸로는 나라가 될 것 같지 않아. 그래서 제조업, 그중에서도 수많은 부품이 들어가는 배를 만들자고 했어요. 조선공업은 조선·엔지니어링·철강·전자 산업 간의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중요한 산업입니다. 조선공업이 우리나라의 고급 산업을 일으키는 기관차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죠. ‘앞으로 세계 조선공업이 이렇게 변할 것이고 한국 조선공업은 어떤 역할을 하고 이런 경제효과가 있을 것이다’라고 브리핑을 하면서 세계 어디에도 없는 최대 규모의 조선소를 짓자고 했죠. ‘양철 조각도 못 만드는데 무슨 배를 만들겠다는 말이냐,’ 최고회의 군인들과 경제전문가들이 나한테 미친놈이라고 했지.”
 
  시기, 질투, 모함이 많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절대적 지지 아래 정책에 대한 견해를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1965년에 한국의 조선공업 중장기 발전계획을 만들어 대통령에게 보고했어요. 다들 말도 안 된다고 했지만 꿈이 있고 나라를 발전시키려는 의지가 강력한 박 대통령이 나를 믿고 밀어줬어요. 박정희 대통령은 진정한 애국자입니다. 늘 나라 걱정을 했어요.”
 
  1967년 ‘대만이 세계은행(IBRD) 협력자금으로 참치어선 20척을 국제입찰한다’는 작은 기사를 눈여겨본 그는 입찰에 참여해 불가능한 일을 따내 7억 달러의 수출을 달성했다. 이 일은 우리나라 산업이 경공업에서 중공업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세계은행의 신임 아래 철도 차량 국제입찰에 참여하는 등 여러 사업으로 이어졌다.
 
 
  “박정희의 꿈을 바탕으로 내가 조선 심포니 작곡”
 
1969년 한국과학기술연구소 준공식. 박정희 대통령 뒤가 신동식 회장이다.
  그가 1960년대에 세운 조선공업 계획은 1970년대에 빛을 발했다. 원래 거제도에 3개의 대형 조선소를 조성하기로 했는데 현대가 울산에 조선소를 만들면서 거제도에 2개의 조선소가 들어섰다. 정주영(鄭周永) 현대 회장과 이병철(李秉喆) 삼성 회장은 조선산업을 완강히 거절했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강권적으로 떠넘겼다. 대한해운공사 남궁련(南宮鍊) 사장이 시작한 조선소는 나중에 대우로 넘어갔다.
 
  “국가에서 조직적으로 민간기업을 밀어주니 큰 힘이 됐지. 예를 들어 정주영 회장이 대형 선박을 수주해왔을 때 선박을 만들 기술이 없었어요. 그럴 때 설계도면은 어디서 사오고,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 그런 걸 다 국가 차원에서 서포트해준 거지.”
 
  신동식 회장은 우리나라 조선산업이 세계 최고가 된 비결을 이렇게 분석했다.
 
  “조선은 막대한 투자를 해야 하는 장치산업입니다. 1960년 당시는 세계 경기가 신통치 않아 일본과 독일이 투자할 생각을 못 했지. 근데 나 같은 사람 하나가 나와서 해보자 하니까 국가 차원에서 엄청난 투자를 하게 됐고, 일본이나 독일에 없던 새로운 공법으로 세상에 없던 기계들을 연구하면서 신기술을 만들어간 거지. 오늘날 세계 최고가 된 우리나라 조선산업은 박정희 대통령의 원대한 해양 입국 꿈을 바탕으로, 내가 조선 심포니를 작곡하고, 남궁련·정주영·이병철 회장이라는 오케스트라 단원이 각자의 파트를 열심히 연주한 결과지요.”
 
  초창기에는 남의 나라 기술을 베껴서 비슷하게 만들었지만 우리만의 기술이 절실했다. 그는 박 대통령을 설득하여 미국 원조로 과학기술처를 비롯해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한국과학기술원(KAIST), 과학기술정보센터(KORSTIC), 한국과학기술진흥재단을 설립했다. 해외 고급 두뇌와 기술인력 유치를 위해 국내 최초의 종합기술용역회사인 코리아엔지니어링컴퍼니도 설립했다.
 
  “과학기술의 뒷받침 없이 제조업 발전은 불가능하고, 국가 경제발전도 이룰 수 없어요. 포항제철에도 돈만 벌지 말고 포스텍을 만들라고 권유했어요. 포항제철 광양제철소가 단일 제철공장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커요. 품질도 세계 최고지. 세계 최고의 철판을 가장 싸게 공급받아 우리나라 조선산업이 발달했어요.”
 
  걸프·칼텍스·GE·GM·보잉 같은 미국의 대표 기업과 국제 금융기구 간의 교섭을 통해 자금과 기술을 도입하여 국내 기간산업 계획을 수립한 일, 걸프와 공동으로 대륙붕 석유자원 개발 협약을 맺은 일 등도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대한민국을 떠받치는 제조업
 
KOMAC은 각종 특수선을 비롯해 2124종의 선박을 설계했다.
  1971년 공직에서 물러나자 여러 대기업과 공공기관으로부터 러브콜이 이어졌다. 편한 길 대신 10평(약 33m2) 남짓한 사무실에서 경영난을 겪고 있던 KOMAC을 인수했다. 힘든 길을 택한 것이 90세 현역으로 뛸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KOMAC은 쇄빙선, 심해 탐사선, 핵폐기물 운반선, 친환경 선박 같은 특수선을 비롯한 2124종의 선박을 설계했다. 감리를 맡은 배도 2000여 척에 이른다. KOMAC은 대우 옥포조선소, 삼성 거제조선소를 위시하여 국내외 35개국에 첨단 설비와 생산 시스템을 갖춘 초대형 조선소 25곳의 건설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운영에 조언을 했다. 현재 150여명이 일하고 있는데 조선 호황 때는 KOMAC 직원이 500여명에 달했다.
 
  “우리 회사가 크진 않지만 최첨단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전 세계에서 설계를 가장 많이 합니다. 하나에 10억원씩 하는 복잡하고 세련된 소프트웨어 수십 종을 활용해 고급스러운 설계를 하는 거죠.”
 
  5년 전 대한민국 해군이 첨단 항공모함과 잠수함을 계획할 때 대우조선해양, 자주국방네트워크, KOMAC이 협력 작업을 했다. 2019년, 중소벤처기업부에서 50년 전통의 KOMAC을 ‘명문 장수기업’으로 선정했다.
 

  ‘조선이 불황이어서 대규모 조선소 시대는 끝났다’는 의견들에 대해 신동식 회장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조선산업은 사양(斜陽)산업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쓴 기자에게 조선소에 가본 적 있느냐고 물었더니 안 가봤대. ‘중화학공업은 사양산업이다, 제조업은 필요없다’ 이건 나라를 망치는 말이지. 반도체, 조선, 철강, 자동차, 화학제품을 수출해서 먹고사는 나라가 그거 안 하고 어떻게 할 겁니까.”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조선국가로 현재 바다에 떠다니는 5만t 이상 선박의 85%가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이다. 품질이 좋으면서 가격과 운영비가 싼 배를 건조(建造)하는 ‘올해 최고의 선박’에 우리나라 배가 몇십 년째 일등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신동식 회장은 호황과 불황이 되풀이되겠지만 조선산업은 인류 역사와 영원히 함께할 거라고 말했다.
 
  “조선산업은 대한민국을 떠받치는 국가 기간산업의 중요한 한 축이며 설비와 기술, 모든 면에서 세계 제일의 기량을 갖추고 있어요. 고급 기술인력의 고용 증대와 기술 증진의 파급 효과가 아주 큽니다. 선박은 단일 수출품으로는 규모와 가격에서 최상입니다. 한 척에 3000억원 하는 배도 있어요. 10척 만들면 3조원이에요. 특수 해양 구조물은 1기에 5조원이 넘는 것도 있어요. 세계에서 가장 큰 30만t짜리 배에 철강재가 5만t이 들어가요. 중국은 24~30개월, 일본은 12~18개월이 걸려야 이런 배를 만들지만 우리나라는 6~8개월이면 완성해요. 모든 공정을 대한민국의 뛰어난 IT 기술과 연계하여 디지털화한 덕분이죠.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갖춘 조선산업은 반드시 육성하고 보호되어야 합니다.”
 
 
  해외 조언과 탄소포집 회사 운영
 
신동식 회장은 인도 등 개도국들의 국가개발에 대해 조언하고 있다. 2007년 인도 구자라트주 해양행사 참석 당시의 모습이다.
  KOMAC 경영은 신동식 회장이 하는 일의 10%에 불과할 정도로 그의 활동 범위는 광범위하다. 제3공화국에서 국가 기획에 깊숙이 관여한 신동식 회장에게 세계 여러 나라 국가지도자들과 기업체에서 조언을 요청해오고 있다. 인도 모디 총리의 요청으로 국가개발에 대한 자문을 10여 년간 응해오고 있으며, 아프리카 가나·튀니지, 태국도 그의 조언을 받았다. 튀지니는 감사의 표시로 신 회장을 명예총영사에 임명했다. 캐나다·독일·영국·스웨덴·노르웨이의 주요 인사들과도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0여 년 전 중국 장쩌민(江澤民) 주석이 조선산업을 한국처럼 발전시키고 싶다며 조언을 요청해와 지금까지 교류가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기술이 중국에 유출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신 회장은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우리가 다 할 수는 없어요. 유조선이나 석탄운반선 같은 건 중국에서 만들게 하고 가스운반선처럼 첨단기술이 필요하고 부가가치 높은 건 우리가 만들면 됩니다. 우리는 더 고급스러워져야지.”
 
  신동식 회장은 미래를 내다보면서 관련 기업을 창업하고 연구에 매진해왔다. 그는 현재 세계 최고의 CCUS(탄소포집·활용·저장) 기술을 보유한 노르웨이 카본(Kabon)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큰 화(禍)가 닥쳐요. 배는 엄청나게 큰 엔진으로 움직이는데 그때 나오는 시커먼 연기 때문에 기후온난화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죠. 20년 전에 이산화탄소 처리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국내에서는 관심이 없어 노르웨이 사람들과 회사를 만들었어요. OXY그룹과 GE 같은 회사들로부터 기술 인정을 받고 협업 중인데, 이제서야 한국 기업들로부터 연락이 옵니다.”
 
 
  가덕도 부유식 초대형 복합물류터미널 구상
 
  신 회장은 15년 전부터 부산 가덕도 앞바다에 700만 평(약 2300만m2) 규모의 부유식(浮游式) 초대형 복합물류터미널(VLFS)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북극 항로 개척과 환태평양 지역의 통상 확대, 시베리아 대륙 횡단철도(TSR), 중국 대륙 횡단철도(TCR), 아시아 대륙 횡단철도(TAR) 등을 내다보고 비행장과 부두, 금융단지를 갖춘 국제허브를 조성하자는 계획이다.
 
  “유럽에서 우리나라나 중국으로 짐을 싣고 오려면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거나 아프리카를 돌아서 와야 해요. 기후변화로 북극의 얼음이 녹아 북극 항로가 개발되면 기존 항로보다 15일 정도 단축돼요. 막대한 물량을 싣고 와서 어디다 놔둬야 하는데 일본은 지진 때문에 불안하고 블라디보스토크는 겨울에 항구가 얼어요. 부산이 최적지니 국제물류허브로 만들자는 거죠. 미국에서 컨테이너 2만4000개를 실은 배가 중국으로 가려고 해도 들어갈 항구가 없어요. 부산에 부려놓고 작은 배로 나르면 되지요.”
 
  그는 세부 계획서를 만들어 부산시장이 바뀔 때마다 브리핑하고 국토교통부와 해양수산부, 국회에서도 수없이 설명했다. 인공섬 조성에 필요한 자금조달 계획까지 완벽하게 다 세워놓았다. 현장에서 박수치며 호응한 사람 중에 다시 연락해온 경우는 없었다고 한다. 지난 3월 국회에서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이 통과된 이후 KOMAC으로 관련 자료를 요청하는 전화가 빗발쳤다.
 
  “가덕도 공항은 엄청난 계획인데 타당성 조사도 안 하고 통과시켰어요. 휴지 만드는 공장도 그렇게 허술하게는 안 해요. 파생되는 부가가치와 파급 효과를 생각해야 하는데 답답한 노릇이지. 언론이 철저히 지적해야 하는데 그만큼 역할을 안 하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그가 쉼 없이 달려온 날들을 평가하여 부산대에서 ‘한국 조선산업의 아버지, 신동식 박사 기록관’을 조성하는 중이다. 2019년에는 명예박사 학위도 수여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뽑은 ‘근대 역사를 빛낸 50인’, 한국개발연구원이 선정한 조선산업 분야 ‘코리안 미라클’에 선정되었으며, 한국경영연구원 명예의전당 ‘한국역사를 빛낸 21인의 영웅’에 ‘신동식’이라는 이름이 등재되었다.
 
 
  “멀쩡히 잘 돌아가는 原電을 멈추게 하니…”
 
  사람들은 ‘90세 현역’에 관심이 많지만 정작 그는 청년들과 어울리려 노력한다. 해양원전융합기술연구회(원전 연구), 한중인터모달연구회(한중열차페리사업 연구), 북극항로포럼(부유식복합물류기지 연구), 에코텍연구회(대기오염방제 연구)의 대표를 맡아 젊은 연구원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는 중이다. 그가 계속 공부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미래는 탄소 없는 세상(decarbon-ization)과 디지털화(digitalization)라는 두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기후변화를 반드시 막아야 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인류가 멸종합니다. 디지털 세상에서 한국은 어떤 좌표를 설정하고 개인은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명확히 알아야 해요.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각 분야별로 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 모두가 애국심을 갖고 연구하고 개발해서 행복하고 자유롭고 평화스러운 사회를 만들어나가야죠.”
 
  신동식 회장은 2007년부터 국내외 대학교, 연구소, 기업체, 각종 해사 관련 기구에서 60여 차례 특강을 했다. 2019년 대한조선학회가 주최한 ‘신동식 조선인생 70년 특별강연회’에서 그간의 경험과 지식을 아낌없이 전수했다.
 
  강연할 때면 국민소득 60달러에서 3만2000달러의 나라가 되기까지 과정을 들려준다. 앞 세대의 피눈물 나는 희생, 애국심, 정열, 헌신, 인내, 노력을 요즘 친구들이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한다. 매년 조선 전공 우수 대학원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삼일문화상 포상금을 조선학회에 기증하는 등 후학들을 전심으로 응원하고 있다.
 
 
  “그러면 당연히 안 되지”
 
  신동식 회장은 요즘 나라 걱정으로 우울하다고 전한다.
 
  “조선, 철강, 반도체, 석유화학공업에 더 투자하고 기술자를 양성해서 세계 일류국가를 만들어야 해요. 생산공정에 IT를 접목해서 능률을 올리고, 평생교육 시스템을 구축해 인재를 훈련시켜야 합니다. 기초가 탄탄한 제조업을 더 강화해야 하는데 멀쩡히 잘 돌아가는 원자력발전소를 멈추게 하니 앞으로 어쩌려고 그러는지… 걱정돼서 잠이 안 와요.”
 
  경부고속도로를 만들 때 책상에서 자로 직접 도로구간을 그었다는 신 회장은 고속도로 근처, 그가 만든 조선소 주변의 땅을 한 평도 사지 않았다며 작금의 LH 땅 투기 사태를 개탄했다.
 
  “그러면 당연히 안 되지. 박정희 대통령 밑에서 그런 일은 상상도 못 했어.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가 잘살 수 있을까 하는 애국심 하나로 그 많은 일을 했지.”
 
  조선산업을 시작한 지 30년 만인 2003년, 수주량과 건조량을 비롯한 각 부문 1등에 오르면서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조선국가가 되었다.
 
  “설비와 기술을 비롯한 모든 면에서 세계 제일의 기량을 갖춘 우리나라는 올바른 판단과 의지만 있으면 이루지 못할 게 없어요. 바른 방향을 정해 열심히 달려가길 바랍니다.”
 
  한국 조선산업의 선구자 신동식 회장은 아직도 할 일이 많아 오래 살아야 한다며 사무엘 울만의 시 ‘청춘’의 한 구절을 들려주었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시간이 아니라 마음가짐의 상태를 말한다. 청춘이란 그것은 인생의 깊은 샘의 신선함,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을 말한다. 우리의 생각이 사막처럼 변했을 때가 비로소 늙은 것이다. 열정을 포기하면 영혼에 주름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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