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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내 마음을 담은 집》 출간한 서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집은 감탄의 아우성보다 내밀한 詩語로 채워야 하는 공간”

글 : 오동룡  조선뉴스프레스 취재기획위원·군사전문기자  goms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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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퇴 간호사의 16평 주택 ‘문추헌’… ‘검소한 풍요’의 모습 드러내
⊙ 포스코센터, ‘투명성’이라는 우리의 시대정신을 가장 잘 반영한 건물
⊙ 단열재 쓰지 않은 평양의 건축물은 모두 철거 대상
⊙ 현존 최고 건축물은 루이 칸 설계 ‘필립스 엑스터 아카데미 도서관’
⊙ 코로나19, 기존 주택의 진화 방향을 시간적으로 단축할 전망
사진=조준우
  “환자가 병원에 가서 의사를 앞에 놓고 ‘저는 암이라서 이러저러한 항암치료가 필요합니다’라고 할 거면 의사가 필요 없겠죠. 건축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서울대 캠퍼스 공학관 연구실에서 만난 서현(徐顯)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건축가를 ‘의사’에 비유했다. 그는 “집을 지으려는 사람이 여행지에서 찍은 지중해풍 주택 사진을 내밀며 ‘언덕 위 빨간 집을 지어달라’고 한다면 환자가 처방을 내리는 꼴이 된다”며 “그보다는 ‘아이들과 옥상에서 별을 보고 싶다’처럼 ‘왜 이런 집에 살고 싶은가’를 이야기해야 집짓기에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서현 교수는 “어떤 집에는 기능적 조건을 넘어서는 가치가 있다”고 했다. 몇 평(㎡)에 방이 몇 개인지도 중요하지만 집은 ‘사는 사람이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곳’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서 교수는 지난 1월 펴낸 그의 아홉 번째 저서 《내 마음을 담은 집》(효형출판)에 그의 작은 집짓기에 대한 생각을 담았다. 그는 1998년 건축의 대중화를 이끈 ‘바이블’이란 평가를 받는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를 출간한 것을 비롯해, 강연과 기고 등을 통해 건축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안내자 역할을 해왔다.
 
  서현 교수의 이번 책은 정년을 맞아 귀향하려는 사람은 물론, 청장년층에게까지 ‘살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지어진 ‘집 세 채’ 이야기다. 그는 “맞춤옷은 몸에 꼭 맞으면서 입는 사람의 분위기를 드러내듯 집도 마찬가지”라며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보여주는 게 집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마음을 담은 세 채의 집
 
하늘이 동그란 집이란 뜻인 ‘건원재’. 사진=서현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를 통해 네팔에서 자원봉사 간호사 활동을 마치고 은퇴한 간호사를 위해 서현 교수가 악보 이면지에 프리핸드 스케치했던 주택 ‘문추헌(文秋軒)’은 본의 아니게 지역의 명소가 됐다. 문추헌은 예산 5000만원으로 빠듯하게 시작한 16.7평(55.3㎡)의 작은 집이다. 보통 이런 집은 콘크리트 벽 밖에 벽돌을 쌓아 고만고만한 농가 주택으로 완성되지만, 이 집은 발상의 전환을 통해 벽돌을 실내에 쌓아 농가주택과 차별화했다. 그 결과, 건물 밖에는 노출된 콘크리트 벽에 담쟁이가 자라고, 풍경(風磬)이 바람에 울고, 내부는 건축주가 싫어하는 벽지 대신 카페처럼 벽돌로 벽을 쌓았다. ‘ㄱ’자 천장을 드라마틱하게 터 실내로 들어오는 빛이 따뜻하게 내부를 비춰준다. 서 교수는 “가장 검소한 풍요의 모습”이라고 했다.
 
  서 교수는 “여생을 조용히 보내려던 문추헌 건축주는 집을 짓고 나자 에너지가 생기셨는지 호스피스 간호사로 재취업을 하셨다”며 “전국 각지에서 집 구경을 하려는 사람들로 문추헌이 졸지에 ‘견학 공간’이 되었고, 할머니는 유명인사가 됐다”며 웃었다.
 
  ‘이야기가 통하는 집’인 54평(180.6㎡)짜리 ‘담류헌(談流軒)’은 동네 아이들과 그 부모들이 모여드는 사랑방 같은 집이다. 방과 후 함께 귀가한 아이들이 모여 만화영화를 보고, 퇴근 시간이면 어른들도 하나둘씩 들어와 함께 치킨을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집이다. 낮엔 햇빛으로, 밤엔 야간 조명으로 빛의 향연을 벌이는 집이다. 서현 교수는 건축주를 위해 손수 당호를 붓글씨로 써 건물에 편액(扁額·문 위에 걸어놓는 액자)으로 걸었다.
 
  ‘하늘이 동그란 집’이란 뜻인 46평(152.8㎡)의 ‘건원재(乾圓齋)’는 희귀 경차(輕車)를 소유한 전직 축구선수 건축주를 위한 집이다. 자동차 네 대를 위한 주차 공간은 1층을 둘러싸듯 배치하고 2층에는 중정(中庭)을 뒀다. 계절 따라 이동하는 태양의 빛이 중정 벽에 동그라미・하트 같은 무늬를 그려 보는 이에게 탄성을 선사한다. 건축주 남편에겐 동그란 하늘을 선물했고, 하트 모양의 빛은 그 아내에게 보내는 선물이었다. 그렇게 만든 동그란 하늘을 보고 방문객 중 하나는 ‘빛의 마술사’인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의 작품 같다고도 했다.
 
 
  “노년이 되면 도심으로”
 
문추헌 당호. 서현 교수는 “집이 당호를 갖게 되면 가치가 커진다”고 말한다.
  ― 시공업체는 누가 선정하나.
 
  “건축주가 선정한다. 건축가가 3배수를 추천하고 건축주가 인터뷰해 선정하는 게 합리적이다. 문추헌을 지을 때 시공을 담당한 시공자(정원종합건설)가 달랑 5000만원만 들고 있는 간호사 할머니를 위해 기꺼이 시공하겠다고 하지 않았으면 나도 무료봉사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서 교수는 “문추헌이 준공됐을 때 언론에서 ‘5000만원으로 15평 집을 지었다’면서 계량화된 가치로 계속 보도하는 것이 어느 순간 불편해지기 시작했다”며 “간호사로 환자를 돌보면서 평생을 살아온 간호사 할머니의 인생은 돈으로 측정할 수 없는 것이었고, 우리 건축가와 시공사는 자본으로 측정되지 않는 에너지를 보내 돈으로만 재단되지 않는 사회가 있다는 것을 세상에 보였던 것”이라고 했다.
 
  소득 수준의 향상과 은퇴 후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누구나 한번쯤 단독주택 마련을 꿈꾼다. 하지만 집을 짓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집을 짓고 싶으나 엄두도 내지 못하는 이들에게 서 교수는 “엄두를 내기 어렵다면 엄두를 내면 안 된다”고 야박하게 이야기했다. “집을 짓는 것은 기회비용이 매우 큰 결정이기 때문에 단독주택에 살겠다는 확실한 신념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서 교수는 “한국에서 주거는 환금성(換金性)의 의미도 있기 때문에 은퇴 후 건강할 때 단독주택에 살다 노년이 되면 도심으로 들어온다는 ‘출구 전략’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면서 “나 역시 아파트에 살고 있고, ‘마음을 담는 집’이 꼭 단독주택이란 얘기는 아니다. 이러한 결정이 결국 삶의 가치관 문제”라고 했다.
 
  서현 교수의 연구실 문틀 위에는 ‘석청청거(石淸淸居)’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석청은 서 교수의 아호(雅號)인데, 서예가 김병기(金炳基) 전북대 교수가 ‘석청이 사는 맑은 집’이란 뜻으로 써주었다고 한다.
 
  ― 건축주들에게 당호(堂號)를 권하는 까닭은.
 
  “당호는 철저하게 동양적 가치관이다. 건물들의 모양이 엇비슷한 우리 건축에서 그 개별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은 전면에 걸린 편액이다. 거기에 담긴 글자가 중요하다. 그게 당호다. 나는 당호가 한자 이름이길 기대한다. 좁은 공간에 많은 것을 함축적으로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뭔가 더 있어 보이면서, 부인할 수 없는 우리의 문화적 유산이다.”
 
  서 교수는 “건물이 당호라는 이름을 얻게 되면 존재 가치가 훅 커진다”며 “‘충주시 엄정면 추평리 건물’이라고 하는 것보다 ‘문추헌’이라고 건축주의 정신세계를 담은 이름을 부르면 집의 격(格)이 달라 보인다”고 했다.
 
 
  작은 집 짓기가 더 힘들다
 
10만 평에 달하는 대한민국 최대의 아파트 단지 가락시영아파트(헬리오시티) 재건축 사업에서 총괄기획을 맡은 서현 교수(오른쪽). 사진=서현
  ― 연면적 50만 평에 달하는 헬리오시티를 설계하고 문추헌과 같은 15평짜리 작은 집도 설계해보니 대규모 주택 설계할 때와 작은 집 설계할 때의 마음가짐은 어떻게 다를까.
 
  서 교수는 10만 평에 달하는 대한민국 최대 아파트 단지인 가락시영아파트 재건축 사업(이후 헬리오시티로 명명)에 총괄기획가(Master Planner)로 참여하기도 했다.
 
  “대규모 주택 설계는 거대한 조직들이 달라붙어 함께 사업을 하기 때문에 책임이 분산되고 실수를 바로잡을 기회가 있어 사실 마음은 편하다. 반면, 작은 집은 실수했을 때 바로잡을 장치도 없고, 책임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 게다가 도면만 그리는 데서 끝나지 않고 물리적 구조물이 완성되는 순간까지 책임져야 하기에 스트레스가 더 많다.”
 

  ― 제주에 처음 지은 ‘해심헌(海心軒)’은 현무암과 노출 콘크리트, 투명유리로 구성했는데, ‘아름다운 제주건축 7선’에 선정됐다. 제주도에 두 번째로 약사 부부를 위해 국내 최초로 삼각형 집, 시선재(視線齋)를 지었다.
 
  “서귀포 대포동에서 바다를 향해 촉수(觸手)를 내밀고 있는 듯한 집이다. 대지(垈地)에 넣어보니 삼각형 형상이 맞았는데, 머릿속으로 삼각형을 구현하는데 여러 난관이 도사렸다. 결국 바다를 가깝게 다가오게 하기 위해 전신주를 보이지 않도록 처리하고, 모서리에 창을 시원하게 냈다. 9개월 설계와 6개월의 공사를 끝마치고 집들이 행사를 했을 때, 건축주가 ‘이젠 삼각김밥도 싫어하시겠다’고 해서 웃었다.”
 
  ― 건축가는 설계 도면을 그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시공까지 챙겨야 한다. 그러려면 시공회사와 시공을 담당하는 공사장 인부들과도 의사소통이 원활해야 할 것 같다.
 
  “건축가와 시공사는 기본적으로 이해관계가 다르다. 시공사는 손해를 보지 않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에 그 과정에서 건물이 망가지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건축가의 스트레스가 시작되는 것이다. 나는 글쓰기와 건물 설계를 병행한다. 글은 신문사에 보내면 그것으로 끝이지만, 건물은 건축 과정에서 개입하는 사람들이 많아 건축가 의도대로 되지 않는다. 결국 지속적인 대화와 타협이 대단히 필요하다.”
 
  ― 건축가는 자재(資材), 다시 말해 과거의 재료와 최신 재료를 모두 망라한 건축 재료에 통달해야 할 것 같다.
 
  “의사가 신약(新藥)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건축가는 재료를 갖고 물리적 구조물을 만드는데, 물리적 구조물은 결국 재료의 문제다. 재료를 잘 사용하느냐의 여부가 건축가가 프로냐 아마추어냐를 구분하는 기준점이 된다.”
 
 
  노출 콘크리트
 
일본의 세계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 사진=조선DB
  ― 노출 콘크리트, 한국에서 건축가 김수근(金壽根)이 시작했을 때는 낯설었는데…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노출 콘크리트가 꽤 익숙해졌다.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 이는 이제 문화적 취향이 있다는 한국인들이 언급하는 콘크리트의 보통명사가 돼버렸다. 대학 때 그의 건축 사진을 보며 ‘도대체 단열은 어떻게 하나’ 궁금증을 가졌다. 아무리 그의 도면을 봐도 단열재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 유학 때 만난 일본 유학생에게 물으니 ‘단열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기겁을 했다. 안도의 세계적 유명세 때문에 일본인들은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추운 노출 콘크리트 건물 앞에서 행복해한다.”
 
  ― 노출 콘크리트 시공법은 표면이 깔끔하고 세련돼 인기를 끌고 있다.
 
  “노출 콘크리트는 단열 여부와 관계없이 그토록 깔끔한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들려면 비싼 코팅 합판 거푸집을 써야 한다. 문추헌에선 재생 유로폼 거푸집을 썼다. 거푸집 시공 때는 거푸집이 꺾이는 곳에 물이 새지 못하게 온갖 장치를 써야 한다. 그 작업에 목숨 거는 게 일본 목수(木手)들이다. 옆에서 감시하지 않아도 그걸 본인들의 자존심으로 한다. 그게 에도시대를 살아온 일본 장인들의 곤조(근성)다. 문추헌에 집들이 갔더니 간호사 할머니 친척분이 ‘건물 외벽에는 언제 타일 바를 거야’ 하더라(웃음).”
 
  서 교수는 노출 콘크리트에 대한 생각을 이렇게 정리했다.
 
  “깔끔한 콘크리트의 미학에 문화 정체성 의구심이 있다. 그냥 막사발 같은 콘크리트가 우리의 미감에 더 맞지 않으냐 하는 생각이다. 매끈한 노출 콘크리트보다 텁텁하고 분방한 맛이 나는 콘크리트 말이다.”
 
 
  ‘빛의 광장’
 
‘한국 건축계의 살아 있는 전설’ ‘한국 건축의 교과서’로 불리는 건축가 김종성과 함께한 서현 교수. 서울대 시절 서현 교수에게 건축을 가르친 스승이다. 사진=서현
  서현 교수는 1986년 서울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1988년 동 대학원 건축학과에서 공학석사 학위를 받고 1992년 미국으로 건너가 컬럼비아대학에서 건축학 석사 학위를 다시 받았다. 대한건축학회, 미국건축가협회(AIA)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그는 올가을 서울시가 주관하는 서울건축문화제의 총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 교수가 학창 시절 읽은 짧은 글 하나가 ‘건축쟁이’ 인생으로 이끌었다. 중학(장훈중) 시절, ‘현대 건축의 반항아들’이란 기사에 세계적인 독일 건축가 헬무트 얀(Helmut Jahn)이 등장한 것을 보고, 건축가의 존재를 알게 됐다고 한다. 서 교수는 “근대 건축의 거장이자 일리노이공과대학(IIT) 교수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의 수제자인 건축가 김종성(金鍾星) 선생을 가장 존경한다”며 “그분이 힐튼호텔 설계차 방한해 서울대에 출강하면서 건축물을 생각하고 보는 방식을 지도해주셨다”고 했다.
 
  서 교수는 서울시청 앞 광장 복원 공모전에 출품해 당선된 〈빛의 광장〉 작품이 사장(死藏)된 것을 지금도 아쉬워한다. 서현 교수는 인터시티 건축사 사무소와 함께 2003년 서울시가 공모한 ‘시청 앞 광장 설계 공모전’에 당선됐다. 서 교수가 제안한 빛・유리・모니터로 구성된 ‘빛의 광장’ 건립안은 참신한 아이디어로 호평을 받았다.
 
  최신 전자 설비인 2003개의 박막액정표시장치(LCD)를 시민들에게 분양해 시청 앞을 정보가 오가는 ‘정보 광장’으로 만들어 개방된 민주주의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 그의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서울시는 하이 서울 페스티벌의 일정에 맞추어 건립하려면 시간이 촉박하고, 시공비도 잔디광장에 비해 두 배가 넘는다는 이유로 ‘빛의 광장’을 ‘잔디 광장’으로 바꾸고 말았다.
 
 
  ‘건축’이라는 말은 일본에서 들어와
 
  ― 우리나라에 예부터 ‘건축’이란 단어가 있었나.
 
  “결론부터 말하면 건축(建築)이란 말은 일본에서 들어왔다. 메이지 시대 때 도쿄대 교수이자 조선신궁(朝鮮神宮) 자리를 지정한 건축가 이토주타(伊東忠太)가 ‘아키텍처(architecture)’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추상적 개념으로 해석해 ‘건축’으로 번역했다. 우리는 집을 짓는 행위를 ‘조영(造營)’이라 했고, 일본은 당시만 해도 조선(造船)이라 하듯 ‘조가(造家)’라고 부르고 있었다. 이후 건축이라는 단어가 한·중·일 3국에서 쓰이게 됐다.”
 
  ― 스스로 건축을 종단학문(縱斷學問)이라고 부르는데.
 
  “건축은 인문학(人文學)으로 시작해 건축 과정에서 공학(工學)으로 마무리되고, 예술작품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건축이라는 단어의 실체가 고약하다. 어딘가에 명료하게 갈래 잡아 집어넣기가 어렵다. 유럽의 역사를 보면, 건축의 학문적 나이는 문학, 수학, 철학 다음 정도의 수준이다. 인문학, 사회학, 과학, 공학, 예술이라고 분류되는 학문들이 범접할 나이가 아니다. 개중 인문학을 뺀 학문들은 17, 18세기가 지나면서 등장한 새내기들이다. 이런 건축이 저런 후대 학문의 어느 부분에 가까우냐는 수모를 겪는 중이다. 건축은 그냥 담담히, 혹은 도도히 건축일 따름이다.”
 
 
  포스코센터, 우리 시대정신을 잘 반영한 건물
 
  ― 서울을 비롯한 한국의 도시가 건강한 도시가 되려면 어떻게 도시를 건설해야 할까.
 
  “건강한 도시가 되기 위해선 그 도시에 담겨 있는 사회가 건강해야 한다. 거꾸로는 안 된다. 유럽이나 미국의 도시를 가보면 공통점이 있다. 지구상 어느 곳보다 먼저 민주화를 이룩하고, 사회적 공동체 의식을 공유한 사회다. 결국 그런 사회가 만든 도시가 훨씬 더 아름다워질 수밖에 없고, 멋진 건물이 계속 탄생할 수밖에 없다. 결국 도시가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는 사회가 공정해져야 한다는 게 나의 절대 신념이다.”
 
  ― 건물이 퇴적되어 도시는 오래된 도서관과 같은 역사도시로 변모해나간다. 그런 역사도시의 형태가 잘 완성된 곳은 어디인가.
 
  “유럽의 도시는 제2차 세계대전의 폭격만 피했다면, 대개 그러한 역사도시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영국 철학자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은 도시를 오래된 도서관에 비유했다. 도서관에 가면 고서(古書)도 있고 신간(新刊)도 꽂혀 있는데, 그게 도시의 모습이라는 거다. 정말 좋은 도시는 몇백 년 전에 건축한 건물과 새 건물이 서로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계속 교차하면서 꽂혀 있는 형태를 말하는 것이다. 박제되지 않고 진화해나가는 도서관과 같은 도시다.”
 
  ― 우리나라에서 잘 지어진 건축물을 꼽는다면.
 
  “우리의 시대정신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건축물은 포스코센터(간삼건축+Pos A.C.)다. 포스코센터는 ‘투명성’이라는 기업의 이상이 물리적 조직을 통해 뚜렷하게 건물에 표현돼 있는 기념비적 건축물이다. 투명성을 강조하기 위해 건물 외벽은 유리로 구성했고, 로비는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1990년대 당시 모든 건물의 1층 로비는 암묵적으로 ‘들어오지 말라’며 배타적이었다. 포스코센터는 1층에서 마음껏 사진을 찍도록 처음으로 개방했다. 포스코센터는 고도의 복잡한 기술적 한계를 넘어 우리에게 기술적 자신감도 심어주었다.”
 
  ―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은 무엇일까.
 
  “인간의 정신이 건축을 규정한다. 인간의 조직된 방식이 결국 건물 공간의 조직 방식을 규정한다. 예컨대 권위주의적 건축물에선 조직의 수장(首長)이 제일 경관 좋은 위치를 차지한다. 사회적 위계가 건축에 반영된 결과다. 문제는 공간의 조직체로서 건물이 준공 후 고착화되는 데 비해 사회는 유연히 변화한다는 데 있다. 따라서 건축과 사회는 영원히 갈등과 모순의 관계일 수밖에 없다. 건축가의 역할은 그러한 ‘부정교합’, 건축이 갖는 지체현상을 드러내 새로운 사회에 맞는 건축적 제안을 하는 것이다.”
 
  ― 지금까지 우리나라 건축물의 아름다움이란 예쁜 기와와 처마 선만을 주목하는 과거 지향적 사고가 지배적이라고 비판했는데, 이것도 우리 건축의 자산 아닌가.
 
  “우리 건축 기술의 자산인 것만은 분명하다. 문제는 우리가 더 이상 한복을 입고 다니지 않는 것처럼, 그 자산으로서의 가치가 현대화되는 데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건축가들이 그 문제에 대한 대안을 만들어내지 못한 것은 반성할 일이다.”
 
 
  억울한 콘크리트
 
  ― 한 번 집을 지으면 수백 년까지 사용하는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국내 건축물의 수명은 왜 이리 짧은가.
 
  “건축 자재의 문제도 있고, 사회적 내구성의 문제도 있다. 우리는 싸고, 빠르고, 쉽게 건물을 지어 도시를 만들고 있기 때문에 결국 물리적 내구성도 짧아진다. 그리고 사회적 변화가 빨라 기존 건축물도 급속하게 노후화하고 있다. 싸다(cheap)는 것이 결국 싸지 않았던 것이다.”
 
  ― ‘서울은 비빔밥 같은 도시’라고 했는데? 미추(美醜)가 섞여 있는 도시란 뜻인가.
 
  “그렇다. 세상은 미인만으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서울이 건강하지 않은 데 있다. 자본가들이 훨씬 더 행복하고 안락하게 살 수 있도록 사회가 동의하고 있는 구조다. 첫째는 부모의 유산이 아니면 자신의 소득으로 서울시 경계 안에서 주거권을 확보할 수 없다는 점이다. 둘째는 자동차를 갖고 다니는 사람들이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사람보다 압도적으로 편하게 돌아다닐 수 있는 사회다. 서울이 한국 사회가 작동하고 있는 방식을 고스란히 물리적으로 보여주고 있을 따름이다.”
 
  ― 영화 〈어벤져스〉에서 마포 일대 추격 신을 보면서 아파트들이 흉물처럼 느껴졌다.
 
  “할리우드 영화에 우리 모습이 적나라하게 비친 것이다. 현재와 같은 아파트를 짓지 않기 위해선 아파트 건축에 관련된 몇 가지 변수들을 풀어야 한다. 현행 건축법상 규정하고 있는 밀도 문제 등을 해결하지 않으면, 아무리 위대한 건축가를 데리고 와도 대안이 없다. 20년 전 단독주택이 갖고 있는 장점인 마당이 있는 ‘스펀지 아파트’를 제안했다. 요즘 세종시에 짓고 있는 아파트를 중심으로 실험이 시작되고 있다.”
 
  ― 콘크리트는 현대 건축의 무성격하고 부정적 모습을 표현할 때면 항상 눈총을 받는 재료다. 콘크리트가 혼(魂)이 있다면 억울할 것 같다.
 
  “서양에선 이미 로마 시대부터 사용됐고, 콘크리트를 빼놓고는 건축을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재료다. 우리가 이발소 그림이라는 걸 보고 물감을 탓할 수는 없다. 콘크리트가 가진 최대의 특징은 형틀, 즉 거푸집만 만들 수 있으면 어떤 모양이든지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콘크리트는 재료로서 잘못이 없다. 비난을 받아야 한다면 그건 건축가와 시공자의 몫이다. 오히려 콘크리트처럼 기특하고 쓸모 많은 재료도 없다.”
 
 
  김정은 시대 건물, 싸구려 분위기 풍겨
 
2017년 준공된 북한의 여명거리. 서현 교수는 “평양 시내 건물들은 기능적으로 볼 때 모두 철거 대상”이라고 말한다. 사진=뉴시스
  ― 평양은 도시 기능적으로 어떻게 평가하는지.
 
  “평양에 대한 평양 시민들의 자부심도 겉으로는 꽤나 높아 보였다. 그런데 유튜브로만 봐도 극장국가의 대표적 모습이다. 세트장 같다. 멀리서 보면 그럴싸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전부 싸구려 타일 건물들이다. 평양은 ‘100m 미인’이다. 그러나 서울 도로의 인도(人道) 폭이 2.5m인데, 평양은 10m다. 인도의 바닥 패턴은 우리를 따라올 수 없지만, 인도의 폭을 인간 중심으로 기획한 것만큼은 서울이 반성해야 한다.”
 
  ― 평양 시내 건물은 기능적으로 현대적인가.
 
  “기능적으로 볼 때 모두 철거 대상이다. 통일 이후 우리가 살기 위해서라도 헐어야 한다. 전문화되어 있는 시공인력이 건설한 것이 아니라 군인 돌격대들이 지은 건물이라 전문성도 떨어진다. 타일 등 외벽에 싼 재료를 쓴 것도 그렇고, 가장 큰 문제는 건물에 단열 개념이 없다는 사실이다. 유화제나 발포제로 단열을 하지 않은 건물은 에너지 소비도 많고 사람이 거주할 수도 없다. 김정은 시대에 건설한 창광거리 등의 건물도 시멘트에 파스텔 톤의 페인트 일색인데, 싸구려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 미국 맨해튼을 뛰어난 도시로 평가하는데, 그 이유는.
 
  “과거 유럽의 도시가 위계질서에 따라 구성됐다면, 19세기 초반 건설된 맨해튼은 등고선도 무시하고 격자로 바둑판처럼 건물을 깔아버렸다. 바둑판 위에서 누구도 특별한 대우는 없고 평등하다는 것이다. 엄청난 실험이었다.”
 
  ― 건축학적으로 평가를 받는 해외의 건축물은.
 
  “미국 보스턴에서 북쪽으로 80km 정도 떨어진 뉴햄프셔 엑서터(Exeter)시의 필립스 엑서터 아카데미(PEA) 도서관이다. 인간이 만든 현대 건축물 중 가장 완벽에 가까운 건물이다. 실제로 보면 입을 다물지 못한다. 미국 건축가 루이 칸(Louis Kahn·1901~1974)이 1965년 설계에 들어가 1972년 준공했다. 거대한 원형 개구부, 엄청난 X브레이싱(벽재 안에 철봉을 X로 배치해 보강하는 방법), 막대한 노출 콘크리트 마감, 부드러운 티크 목재 마감, 그리고 사방에서 쏟아지는 빛…. 루이스 칸은 도서관의 존재 가치를 설명하고 있다. 학생이 도서관에 들어서는 순간 내가 책의 한복판에 있고, 그곳의 책을 골라 창가로 곧바로 가져가 읽는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었다.”
 
  ― 유튜브나 텔레비전에서 집을 다루는 프로그램도 부쩍 늘고 있다. 물론 집이 휴식 공간이라는 전통적 기능엔 변함이 없겠지만, 특히 ‘방콕’ 시대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국엔 집이 어떻게 기능적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보나.
 
  “코로나19가 주택의 기능을 근본적으로 바꾼다고 보지는 않는다. 코로나19가 종식되면 사람들은 곧 이전 생활로 복귀할 것이다. 다만, 온라인 미팅 실험을 통해 기존 오프라인 미팅이 급속히 줄어들면서 100~200명을 수용하는 커다란 회의실이나 강의실의 수요는 점차 줄어들 것이다. 결국 코로나19가 기존 주택의 진화 방향을 시간적으로 단축할 것이라고는 본다.”
 
  서현 교수는 “집은 일반 대중의 감탄의 아우성보다 나 자신의 내밀한 시어(詩語)로 채워야 하는 공간”이라며 “내가 설계한 집들이 구조물로서 완전하지는 않지만, 집의 가치는 그러한 기능적 조건을 넘어 결국 마음을 담아내는 데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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