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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열전

두 번 이혼, 세 번째 결혼한 개그맨 1세대 엄용수

“사랑에 실패하면? 다시 하라. 또 실패하면? 또다시 하라”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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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하는 철학’이 제게 ‘살아남은 철학’이 됐죠”
⊙ “결혼은 그냥 하면 되는 거예요. 제가 해보니까 아무것도 아니야”
⊙ “개그 아이디어 회의만 27년. 지겹지만 죽도록 해야 하는 게 코미디고 개그”
⊙ “일부러 웃겨선 안 돼요. 자기가 살아온 얘기를 전달하면서 웃겨야 해요”

엄용수(嚴龍洙·엄영수)
1953년생. 홍익대 화학공학과 졸업 / MBC 라디오 제1기 개그콘테스트(금상)로 데뷔, KBS TV 〈유머 1번지〉 등 출연, EBS TV 〈바둑교실〉 공동해설자 /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대통령 표창, 대한민국 나눔대상 국회법제사법위원장상 수상 / 現 한국방송코미디협회장
사진=조준우
  개그맨 1세대 엄용수(嚴龍洙·68·한국방송코미디협회장)씨는 얼마 전 엄영수로 개명했다. “사람들이 전부 엄영수로 발음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고 개명할 필요는 없어 보이나 어쨌든 언론에서 ‘엄용수→엄영수’라는 개명 기사가 쏟아졌다. 연예인은 화제로 먹고사니 일단 개명 이슈는 성공한 셈.
 
  얼마 후 ‘엄영수 결혼’이 실검 순위에 올랐다. 3혼(婚)째다. 지난 2월 6일 미국에서 10세 연하의 재미교포 사업가 김경옥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언론마다 주요 뉴스로 앞 다퉈 보도했다.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엄용수, 아니 엄영수 회장은 여전히 이슈 메이커다.
 
  그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인 지난 1월 13일, 기자는 서울 여의도에서 엄 회장을 만났다.
 
  ― 결혼을 앞두고 새로운 각오라도?
 
  “특별히 그런 건 없고, 살던 대로…. 미국 가기 전에 어머니 묘에 가보고…. 동양적인 예(禮)잖아요. 고향(경기도 화성) 친구 만나서 ‘결혼하고 온다’고 말했죠. 코미디계 원로인 송해 어르신, 이상해 어른을 뵙고 ‘미국 갔다 오겠습니다…’.”
 
  ― 어른들이 뭐라시던가요.
 
  “송해, 구봉서(작고) 선생님은 한 번도 제 가정사를 언급하신 적이 없어요. 누가 ‘구(봉서) 선생님, 엄용수 이번에 이혼했대요’라고 일러바쳐도 딴청을 부리며 ‘야, 밥 먹으러 가자’ 하셨지, 다른 말씀은 없으셨어요.”
 
 
  코미디협회 月 회비 5000원
 
  그와 백년가약(百年佳約)을 맺은 여성의 이름은 ‘엄 에스터’. 한국명은 김경옥. 로스앤젤레스(LA)에서 애완동물 의류업으로 성공한 사업가로 알려져 있다.
 
  “결혼식(2월 6일)만 하고 바로 서울로 옵니다. 에스터는 미국에서 개와 고양이 옷을 파는 의류업을 해요. 그 나라는 개와 고양이에게 편지 쓰는 날도 있고, 같이 노는 날도 있어요. 크리스마스 때는 선물도 줍니다. 다양한 용품이 개발돼 있고 값도 비싸요. 사람 상대보다 (돈이) 더 됩니다.
 
  젊은 시절, 일할 만큼 했으니 (결혼 후) 좋은 것 먹고 다니자고 그래요. 저보고 일에 너무 절어 살았다는 겁니다.”
 
  ― 코미디협회 일부터 내려놓으셔야겠어요.
 
  “네, 코미디협회장, 코미디노동조합지부장, 실연자권리협회 이사… 이런 직함들을 다 내려놓으려 합니다.”
 
  ― 실연자권리협회요?
 
  “한국방송실연자권리협회라는 게 있어요. 방송 연기자의 ‘저작인접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는데 제가 실연자권리협회 코미디 대표죠. 협회 이사이기도 하고요. 재방료가 1년에 300여억원하는데 그거 받아다가 재방 나가는 사람에게 나눠줘요. 수수료를 15%, 10% 떼나? 굉장하죠. 그런 자리를 다 내려놓고….”
 
  ― 후임은 정하셨나요.
 
  “아뇨. 후배들이 투표로 결정하니까. 왜냐하면 인기 있는 개그맨들은 기획사에서 못 하게 해요. ‘기획사를 위해 돈 벌어야지 공익을 위해 백날 일해야 뭐가 남느냐’는 식이에요.
 
  얼마 전, 한 개그우먼이 큰 병을 앓았어요. 당장 수술 안 하면 죽는데 어떻게 해요. 빨리 입원하라고 해도 돈이 없다는 거예요. 병원서 안 받아주는 걸 코미디협회장이 책임진다고 하니 입원시켜주더랍니다.
 
  협회라고 하니 돈 많은 줄 알아요. 회원 850명 중 대개가 월 회비 5000원을 못 내서 회장이 대납하는데, 하하하. 같은 회원들도 몰라요. 그러니까 힘든 자리예요.”
 
 
  “공천 신청만 하라, 걱정하지 말라”
 
엄영수(엄용수)가 개그 대본을 짜고 있다. 각종 신문에서 스크랩한 정보를 옮겨 적은 뒤 ‘웃음 코드’를 찾는다.
  ― 말씀을 들어보니 출마 제의를 받은 것 같아요.
 
  “많이 받았죠. 정치권에서 저더러 ‘(공천) 신청만 하라’는 유혹이 있었지만 제가 두 번씩이나 이혼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그때만 해도 이혼이 큰 핸디캡이 될 때였어요.”
 
  ― 지금이라도….
 
  “금년 칠십이에요. 원래 1952년생입니다. 젊었을 때처럼 총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하더니 화제를 돌려 호기롭게 개그맨 후배들에게 미국 LA 신혼집을 개방하겠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이번에 결혼하면 LA에 집이 생기는 거잖아요. 코미디 한류 바람을 일으키는 데 거점이 되지 않겠어요? (코미디) 협회에다 ‘코미디로 견문을 넓히려면 미국에 와라. 도와줄게. LA에 집 있으니 오라’는 공문을 냈어요. 하하하.”
 
  ― 부인과 이야기가 된 겁니까.
 
  “아니요, 무조건 밀고 나가는 것이죠. 우선, 아메리카 대륙이 내 땅인데… 미국 시민권자와 결혼해서. 하하하.”
 
  ― 자동 시민권자가 되는 겁니까.
 
  “시민권 신청을 하면 3년은 의무적으로 미국에 머물러야 한대요. 중간에 한국 다녀가면 무효가 된대요.”
 
  ― 당분간 못 뵙겠네요.
 
  “아뇨. 저는 시민권 신청은 안 할 생각입니다. 영주권 신청부터 하려고요. 영주권은 (한국을) 드나들어도 나와요. 저는 시민권 욕심이 없고, 결혼해서 에스터가 여기서(한국서) 뒷바라지할 것이니까. 그래도 미국 집은 이용할 수 있잖아요.”
 
  ― 코미디 사랑, 못 말리겠어요.(웃음) 이혼을 망설이고 재혼을 망설이는 분들에게 한 말씀 한다면.
 
  “우리가 살날이 많지 않아요. 사랑을 한다는 것, 사랑이 있다는 것은 살아 있고 열정이 있다는 뜻입니다. 사랑을 잃어버렸거나 사랑이 변했거나 사랑 때문에 상처를 받았으면 빨리 다시 사랑을 시작하면 됩니다. ‘빨리 다시 찾으라’고 충고하고 싶어요. 저는 골프 칠 때 공이 러프에 빠지면 비켜서 치지 않고 공이 빠진 데서 다시 칩니다.”
 
 
  “다시 사랑을 시작하면 됩니다”
 
  ― 다시 시작하면 됩니까.
 
  “재고 따지고 계산하지 말고, 열정과 사랑으로 저 사람을 보는 순간 사랑이 느껴지면 사랑한다고 말하세요. 잘못되면? 다시 하라. 또 잘못되면? 또다시 하라. 어느 나라고 결혼 몇 번 해야 한다고 정한 나라는 없어요.
 
  결혼이 있으므로 인류사회가 여기까지 왔고, 인류사회를 이끈 힘은 결혼에 있어요. 홀로 되면 우울증 걸리고 사회에 부담 주고, 혼자 된다는 것은 남이 봐도 안쓰럽죠. 그러니 빨리빨리 사랑하고 결혼하게끔 맺어줘야 합니다.”
 

  그러더니 한 여성이 그를 찾아온 사연을 꺼냈다.
 
  “선물을 들고 절 찾아와 이런 고백을 하더군요. 남들에게 이혼 사실이 알려질까 늘 두려웠지만 어찌어찌해서 알려졌대요. 전부 자신을 멀리하고 얕잡아보는데, ‘엄 선생이 TV에 나와 이혼을 무슨 스포츠 얘기하듯 10년 동안 막 떠들더니, 세상이 달라졌다’는 겁니다.
 
  ‘살다 보면 이혼할 수 있구나’ ‘이혼해도 행복하게 사는구나’ 하고 편견이 사라졌다는 거예요. 그래서 ‘엄 선생님 덕에 밝게 살게 됐다’고 ‘감사하다’고… 하하하.”
 
  ― 이혼에 대한 시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인생은 재미있고, 열정적으로 살아야 해요. 누가 가져다주는 게 아니니까. 동료 개그맨 중에 이용식·김학래는 결혼 횟수를 중시해요. 김학래 왈(曰), 자신은 ‘엄용수의 2회 결혼식 때 사회를 봤다’고 합니다. 이용식은 ‘1회 결혼해서 몇십 년 동안 살고 있다’고, ‘한 번’ 결혼을 강조하죠.
 
  보세요. 우리가 죽어 훗날 묘비에 몇 회 결혼했다고 욕할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가 죽은 뒤를 알기나 합니까. 다섯 번을 이혼했든 횟수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행복하면 되는 거지. 그러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남들이 뭘 말할지 두려워하지 말라는 겁니다.
 
  ‘아, 저 사람 세 번씩 결혼하는구나’ 하지만 실은 부러워하는 겁니다. 남이 비난할까 싶어 움츠려 사는 게 가장 바보 같은 짓이에요. 결혼은 그냥 하면 되는 거예요. 제가 해보니까 아무것도 아니야.”
 
 
  “못 살 이유가 없어요”
 
  ― 감정은 쉽게 감염돼 자신은 물론이고 주위도 힘들게 하더라고요.
 
  “저는 결혼할 때마다 문제가 생겨 결혼 안 하려고 했는데 이번 경우는… 내가 알지도 못하고, 본 적도 없는데 (에스터에게) 전화가 왔어요. ‘엄용수와 결혼하고 싶다’고.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엄용수씨 코미디를 보면서 힐링이 됐다. 엄용수를 생각하면 운전하다가 웃음이 나오고 밥 먹을 때도 길을 걸을 때도 웃음이 나온다’는 거예요. 그분이 ‘결혼하더라도 사람들에게 엄용수가 먼저 프러포즈를 했다’고 말해 달래요. 하하하.”
 
  ― 그 얘기를 공개적으로 하면 어떻게 해요.
 
  “자기는 반지도 있고, 보석도 있고, 집도 있고 다 있대. 엄용수의 사랑과 열정만 있으면 된대. 그렇게까지 나오는데 제가 뭐…. 한번 만나보고 결정한 거예요.
 
  LA만 해도 제 동창이 13명이나 돼요. 다들 ‘축하한다’ ‘이번에는 잘 살아라’ ‘뭘 도와줄까’ 묻는데, 국내 지인들은 달라요. ‘꽃뱀일 거야’ ‘너 큰일 났다’ ‘또 개망신 당한다’ 등 한미(韓美) 간 온도 차가 확 달라요.
 
  국내 지인들에게 LA 동창 이야기를 하니 ‘미국 사람 이야기는 다 옳고, 우리 말은 고깝게 들려? 너 사대주의자냐?’ 하고 나무라요.”
 
  ― 하여간 잘 사십시오.
 
  “못 살 이유가 없어요.”
 
  ― 사실, 이혼하고 싶어도 못 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우리나라는 존속살인, 존속폭행 등 존속 범죄가 선진국의 3배라고 해요.
 
  “우리나라는 모든 시스템이 굉장히 유교적이야. 남자는 위엄을 지닌 가장이고 아내는 무조건 순종해야 합니다. 부부간 대화가 거의 몇 마디 없습니다.
 
  에스터와 사귀면서 국제전화로 하루에 두세 차례 통화하는데 한 번에 2시간씩 통화해요. 무슨 찌개로 밥 먹고 오늘 누구를 만난 이야기를 시시콜콜 다 쏟아내요. 그러고도 자꾸 물어요. ‘오늘 어디 가?’ ‘무슨 일이 있어?’ 등. 그런데 한국의 가정은 어때요?”
 
  ― 대화도 없는데 원가족을 부부싸움에 개입시키죠.
 
  “기존 가족은 기득권 세력이고 새로 온 며느리는 이방인이야. 그런 게 유교주의 문화거든. 그것이 내재화되어 부부싸움이 편 가르기가 되고, 패싸움이 됩니다. 남편은 아내를 소유하고 지배하려 들고, 그 의식이 죽을 때까지 안 깨져요.”
 
 
  두 번 결혼에 실패한 이유
 
  ― 앞으로 가정에서 가부장적인 관습을 벗겠다?
 
  “에스터가 ‘모든 것을 오픈해 달라’고 해요. ‘다 이야기해주면 다 받아준다’는 거예요. 사실, 제가 두 번의 아픔이 있었던 게 부부간 대화가 너무 없었어요. 부부간 의견이 다를 수도 있거든요.”
 
  ― 늘 다르죠.
 
  “어떤 문제에 늘 결론을 내려 했어요. 누가 옳은지 따지다 보면 싸움이 안 끝나. 내가 옳고, 상대는 늘 승복해야 한다면 어떻게 대화할 수 있나요? 그래서 본가에 가버리고 친정에 가버리죠. 결론을 내서 승부를 꼭 보려는 것… 그것이 결혼에 두 번 실패한 이유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불륜이 너무 많아요. 어떻게 됐든 남편과 트러블이 생겼을 때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게 ‘바람’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바람피우는 걸 감싸줍니다. 바람을 옹호하고 부러워합니다. 안 들키게 해주고…. 결국 불행을 키우죠.”
 
  ― 외람되나, 앞으로 부부간 갈등이 있더라도 잘 극복할 것 같아요.
 
  “제가 헤어져 보니까, 자녀들이 영향을 많이 받아요. 부모가 헤어지면, 외부에서 ‘너 엄마 없지?’, 학교에서 ‘내일 엄마 (학교에) 오라고 해’ 하면 아이가 어쩔 줄 모릅니다. 이혼은 집안 전체가 큰 영향을 받아요. 부부가 헤어지더라도 아이가 커서, 아이가 어느 정도 인지능력이 있을 때 헤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부부가 다툴 때도 아이 없는 데서 해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나부터 지키면, 아이 앞에서 (부부싸움을) 져줘서 아내가 인식하게 만들면, 싸움이 줄지 않겠어요?
 
  두 번 헤어진 것은 제 직업이 연예인이기 때문도 아니고, 가정에 무관심해서도 아니고, 전적으로 두 번 다 바람….”
 
 
  “제가요, 좀 魔가 많아”
 
  대화가 오래 이어지자 그는 뜻밖에도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제가요, 좀 마(魔)가 많아. 작년 5월에 등에다 뜸을 6개나 떴거든요. 뜸이 커. (손가락으로 크기를 가늠하며) 이런 상처가 6개가 있어요. (살이) 파였어요.”
 
  ― 어떻게 된 건데요.
 
  “프로듀서가 갑(甲)이잖아요. 그분 자제의 결혼식에 안 갔더니 연락이 왔어요. 축의금이랑 신랑 신부 선물하고 갖다 드렸죠. 대화 끝에 ‘엄 선생님, 어디 아픈 데 없어요?’ 묻기에 지나가는 말로 ‘귀에 이명(耳鳴)이 생겨 매미가 웁니다’ 하니까, ‘아는 명의(名醫)가 있는데 한 방에 고친다’는 겁니다. ‘강원도 춘천에 명의가 있으니 가자’는데 안 갈 수 없잖아요.
 
  어떻게 고친다든지, 양방인지 한방인지, 치료비가 얼마인지, 병원 이름이 뭔지 일절 이야기를 안 해. 그냥 아주 용하다는 거예요. PD 간부가 그런 말을 하니 따라갔죠.
 
  옷 벗고 누우라고 해서 누웠어요. 척추를 보더니 ‘엄 선생님 상태가 나쁘니까 세 번은 오셔야 한다’고 해요. ‘뜸을 한 번 놓는데 300만원, 세 번에 900만원’이라며 ‘보통 환자는 받지 않고 특별한 분만 소개받는다’고 해요. ‘병원서 포기한 시한부 환자들이 여기 와서 낫고, 임신 못 하는 사람도 한 번에 임신이 된다’고 하니….
 
  뜸을 뜬다는 것도 탈의한 다음 처음 들었어요. 그러니 그 자리에서 안 한다고 할 수 있어요? ‘대번에 낫는다’는데…. 지금도 매미 소리 때문에 죽겠어요. 이명은 현대의학이 해결 못 하는 난제인데 고친다고 하니….”
 
  ― 그래서요.
 
  “작년 5월에 뜸을 떴는데 글쎄 9월까지 등에서 고름이 나왔어요. 그런데 병원에 가면 안 된대. 약 먹으면 안 되고.”
 
  ― 그동안 샤워는 어떻게 했어요.
 
  “못 했죠. 여름 내내 못 했죠. 상처에서 고름이 나는데 속옷에 들러붙어 잠도 못 자고, 벽에 기대어 겨우 잠을 잤어요. 피부가 다 망가져서….”
 
  ― 그래, 병원에는 가셨죠.
 
  “거의 다 아물 때 갔어요. 불구가 됐다는 거예요. 치료가 안 되고, 성형도 안 되고, 지방층까지 다 파괴되어 패혈증에 걸릴 뻔했다는 겁니다. 상처를 본 의사들이 ‘명의가 아니라 의학상식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에스터에게 보여주니 ‘어디서 그런 사기를 당했냐’고 해요. 결혼도 하기 전에 이혼당할 뻔했어요. 제가 용서할 수가 없어요.”
 
  ― 어떻게 하시겠어요.
 
  “고소해야지요. 에스터는 ‘잊어버려라’ 하지만 저 같은 피해자가 또 생기면 어떻게 해요. 아직도 망할 게 많다는 것은 제가 가진 게 많다는 것, 아니겠어요?”
 
  ― 진단서는요.
 
  “다 끊어놨죠. 저는, 죽을 때까지 이야깃거리가 생겨요. 웃기라고 새로운 소재를 만들어주시는구나….”
 
 
  ‘망가져도 웃기면 된다’
 
젊은 시절 엄영수. 그는 1981년 MBC 개그맨 콘테스트 1기로 데뷔했다. 올해로 데뷔 40년 차다.
  ― 웃기는 소재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전유성 형에게 배웠는데, ‘우리는 망가져도 사람을 웃기면 된다. 품위, 이런 것 찾지 말고 망가지더라도 사람들을 웃고 즐기게 하면 우리 의무를 다한 거다. 무대 위에 올라와 끊임없이 사람을 웃기게 승부를, 사력을 다해야 한다’고요.”
 
  ― 뜸 뜨다 죽을 뻔한 이야기를 개그 소재로 한다고요.
 
  “제 등허리가 또 망했잖아요. 하하하. 나이 칠십에 등짝이 망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입니까. 그런데 많이 망해 보니까 웬만큼 망해선 걱정이 안 돼, 하하하. 그래서 아, 인간은 훈련이 필요하구나. 그래서 저는 매일 망가지는 거예요.”
 
  ― 그게 리얼리티네요.
 
  “제가 망한 이야기를 리얼하게 말하니까 박수를 칩니다. 치면서 ‘저렇게 망하고도 버티냐’고 해요. 그래도 ‘망하는 철학’이 제게 ‘살아남은 철학’이 됐죠, 하하하.
 
  현대 코미디물이 뭐냐? 리얼리티예요. 옛날 MBC TV 〈웃으면 복이 와요〉 시절, 코미디 프로를 보세요. 지금 보면 안 웃깁니다. 일부러 웃겨선 안 되는 시절입니다. 자기가 살아온 얘기를 전달하면서 웃겨야 해요.”
 
  ― 그렇군요.
 
  “흔히 자기 이야기를 말하라고 하면 대개 성공 스토리잖아요. 열심히 공부해 하버드대 갔다, 1년에 차를 몇 대 팔았다, 의자 4개의 작은 가게에서 자장면을 팔아 빌딩을 올렸다 등. ‘난 무슨 말을 할까’ 고민했어요.
 
  반대로 갔지. 가정은 이렇게 해서 망하고, 결혼은 저렇게 해서 망하고, 방송국에서 주는 상장 하나 못 탔고, 탈모 현상은 왜 생겼고…. 이런 망한 이야기를 사람들이 너무 좋아해. ‘저 새끼, 저걸로 망했대’ 하면서. 제 ‘망한’ 개그가 메시지를 준다는 겁니다.
 
  결론이 뭐냐. 제가 안 망한 게 없어요. 아직도 망할 게 많다는 것은 제가 가진 게 많다는 뜻이 아니겠어요?”
 
 
  “내가 말해놓고 개운치 않으면 사람들 못 웃겨”
 
  ― 개그맨도 못 웃기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요.
 
  “못 웃기면 그게 코미디언입니까. 악착같이 웃기려고 이 얘기 하고 저 얘기 하고, 고쳐도 보고 시연(試演)도 해보고…. 지인들에게 ‘웃기냐? 재밌냐’ 하고 물어보기도 하죠.
 
  못 웃기면 스트레스 많이 받죠. 몇 번 해도 안 웃어? 그럼 겁이 나요. 결국 스스로 (무대를) 떠나요.”
 
  ― 그런데 관객이 즐거워야 하지만 본인도 즐거워야 하지요.
 
  “그렇죠. 내가 웃음이 나와야 그 사람도 웃어요. 내가 말해놓고 개운치 않으면 사람들 못 웃겨.”
 
  ― 희극인이 되려면 어떤 자질이 필요합니까.
 
  “조영남 형이 제 멘토입니다. 많은 가르침을 받는데, 모름지기 재주를 갈고 닦아라. 보통의 인간은, 뭘 할 줄 알면, 사람들 앞에 자랑하려 듭니다. ‘난 이런 걸 잘합니다’ ‘내 개그 한번 보실래요?’ 하고 말이죠.
 
  조영남 형은 ‘그런 것 하지 말고 오로지 혼자서 열심히, 꾸준히 칼을 갈고 닦으라’고 충고하죠. 백남봉(작고)·남보원(작고) 선생님의 원맨쇼를 보면 온갖 기술이 등장하잖아요. 꽹과리 소리, 새소리를 입으로 내는데 그렇게 하기까지 얼마나 연습했겠어요. 영남이 형은 ‘오로지, 오로지 연습해서 남이 안 보는 데 가서 꾸준히 하고 있으면, 돈을 들고 속세의 인간이 찾아온다’는 거예요. ‘만약 안 찾아오면 도(道)를 못 통했기에 안 찾아온다’는 겁니다.”
 
  ― 엄용수 선생님은 도가 트인 거죠?
 
  “아뇨, 하하하. 아직 안 됐기 때문에 그냥 오로지, 오로지 연습, 연습을 하죠. 제가 앞서 두 번 결혼한 것도 연습이에요. 하하하. 인생에서 세 번 결혼이면 더는 (결혼)할 수도 없을 거예요.”
 
 
  “예능 프로에 나가 막 떠드는 것은 공해”
 
20년째 한국방송코미디협회장을 맡고 있는 엄영수는 뛰어난 언변으로 각종 행사에 단골 게스트로 출연하고 있다.
  ― 개그 짜는 일이 얼마나 힘이 듭니까.
 
  “아이디어 회의만 27년인가를 했어요.”
 
  ― 대단하네요.
 
  “KBS TV 〈유머 1번지〉를 수십 년간 하면서, 늘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어요. 너무 지겹지만 죽을 때까지 해야 그게 코미디고 개그입니다.
 
  코미디를 만만하게 보고, 편하게 먹고살려고, 가지고 있는 인기로 얼굴로 예능 프로에 나가 막 떠들어 봐요. 아이디어도 없이 그냥 막…. 결국 자멸하는 길입니다. 그것은 코미디가 아니라 공해지.
 
  지금 신인들(의) 함량(이) 미달 이야기가 나옵니다. 냉정하게 말해 아이디어 회의를 거치지 않은 이야기는 곧 집에 가는 거예요. 어린 개그맨들은 쥐어짜는 아이디어 회의를 하면서 땀을, 눈물을 흘려야 하거든요. 방송국에서 시달려봐야 해요.”
 
  ― 예전에는 아이디어 회의를 어떻게 했나요.
 
  “〈유머 1번지〉 한 코너를 위해 아이디어 회의 이틀, 연습 하루, 야외 녹화 하루, 스튜디오 녹화 하루, 그다음에 보충촬영 하루…. 이렇게 한 프로를 위해 일주일에 엿새를 달렸어요.”
 
  ― 흠뻑 젖어야 하는군요.
 
  “딴생각을 하면 PD가 잘라버려요. 우리 개그맨들은 죽을 때까지 아이디어 회의를 해야 된다는 것! 드라마는요… 대본을 주잖아요. 개그는 정해진 틀이 없습니다.”
 
  ― 코미디와 개그 차이가 뭡니까.
 
  “희극인조차 코미디와 개그가 뭔지 모르는 것, 이게 비극이에요. 차이를 몰라요. 젊은 개그맨도 몰라요. 개그맨은 작가적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코미디언은 연기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개그맨은 내가 뭘 하려고 마음먹으면, 녹화 끝날 때까지 어디 가서 시연할 때까지 계속 대본을 바꿔요. 더 웃기는 걸로.
 
  반면 코미디언은 한번 대사를 외우면 죽을 때까지 안 바꾸는 거예요. 주는 대사를 외워서 연기로 웃기면 됩니다. ‘뭐다꼬(뭐라고)?’ 하면서 굴러 떨어지면서 연기하는 식이죠.
 
  그러나 개그맨은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존재니까 어떤 스토리로 어떻게 이야기할지,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어떻게 재미있게 전할지 매일, 더, 더, 더 고민해야 합니다. 이 시대는 개그맨을 원하지, 코미디언을 원하지 않아요.”
 
 
  “이 시대는 개그맨을 원하지, 코미디언을 원하지 않아요”
 
  ― 엄용수씨는 개그맨 1세대가 맞지요.
 
  “네, 1세대입니다. 아직 버티고 있는 것은 코미디언 선배들과 다른 생각을 갖기 때문이 아닐까요? 저는 개그를 끊임없이 바꿔요. 웃기는 말을 하고 나서도 딴 데 가서는 어떻게 바꿀지 고민하죠.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짜내요. 그게 코미디를 살리는 길입니다.”
 
  ― 주목을 받아도 오래 사랑받기 위해선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 하는군요.
 
  “제가 코미디언 100명 시절에 들어왔는데… 100명 있을 때 100번째 들어왔는데 이제 제 위로 20명만 남아 있어요.
 
  80명이 돌아가신 거예요. 제 밑으로 830명이 있어요. 그렇게 시간이 빨리 가니까, 코미디도 변화가 많아요. 가수들은 히트곡 한두 곡만 있어도 살아가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매일매일 생각하지 않으면 외면받아요. ‘나이 먹었어? 더 나올 게 없네’, 그러면 아웃이거든요.”
 
  ― 참 냉정하네요.
 
  “그러니까 웃기지 못하면 코미디가 아니죠, 희극인이 웃기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죠.”
 
  ― 정권에 따라 개그맨을 이용하고, 필요에 따라 프로를 없애버리고. PD가 어떤 방향으로 몰고 가지 않는 조직문화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어떤 방법을 쓰든지 정부 시책이나 정부가 하는 것에 반하는 것을 코미디로 만들어 주목받으면 어디선가 견제를 합니다. 그러니 개그맨 스스로가 그쪽 길로 안 가려 하죠.
 
  저도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서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려고 해요. 그러나 누군가의 제재가 들어오고,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니까….”
 
  ― 앞으로 정치 풍자가 어떻게 될까요.
 
  “없어지죠. 박정희 정권 때 코미디 없는 나라가 됐잖아요. 그래서 배삼룡(작고) 선생님이 미국으로 망명을 간 것 아닙니까. 물론 그때는 저질 시비가 붙었죠. 실은 저질이 아니라 그때도 풍자하려니까….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길드는 데 익숙해져 있어요. 선배들 잘못이 제일 크고….”
 
  ― 2016~2017년의 〈개그콘서트〉를 보면 분명 정치적으로 편향된 면이 있었어요. 풍자라는 이름으로 말이죠.
 
  “예전에 예능국장 중에 인격자가 계셨어요. 그분 아버지가 조봉암(曺奉岩·1898~1959)에게 무죄를 때린 판사입니다. 당시 기업인 풍자, 정치 풍자를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이란 코너에서 했는데 밖으로 알려지진 않았지만, 당시 검열로 불방이 됐어요.
 
  국장이 그날 개그맨들 다 불러놓고 다짜고짜 화를 내며 실성한 사람처럼 막 떠들어요. 윗선에서 혼내라고 시키니까 야단치는 모양새를 취한 채 우리를 보호한 거예요. 밖에선 ‘오늘 개그맨들이 국장에게 혼이 단단히 나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회장님 우리 회장님’ 코너 못 없애자 〈유머 1번지〉 프로 없애
 
KBS 〈유머 1번지〉의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코너에 출연한 엄영수.
  ― 그 이후 어떻게 됐나요.
 
  “‘회장님…’ 코너를 두고 기업 반발이 심했어요. 가뜩이나 기업 하기 어려운데 우리를 풍자하고, 매국노 취급한다고요. 그 코너가 사라질 위기에 처하니까 언론이 지원 사격을 해줬어요. 없어지려다 다시 여론을 등에 업고 살았어요. 살았더니 어떤 일이 일어났느냐 하면….”
 
  ― 설마….
 
  “〈유머 1번지〉 자체가 없어졌어요.”
 
  ― 코너를 못 없애니까, 프로그램을 없앴군요.
 
  “〈유머 1번지〉가 다른 프로로 바뀌었다가 나중 〈개그콘서트〉로 다시 바뀐 거예요.”
 
  ― 그렇게 된 거네요.
 
  “정치인을 풍자하고 기업인을 해학하니, 아예 코너가 아닌 프로그램을 없앤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깨달은 거예요.”
 
  ― 어떻게요.
 
  “나이 든 놈들 다 빼고 젊은 신인들로 개그를 다시 짜도록 하는 겁니다.”
 
  ― 신인들로요.
 
  “젊은 애들끼리 모인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이것은 아냐’ ‘그러면 안 돼’ 할 수 있는 고참을 다 없앤 거예요. (PD와 제작진이) 후배들에게 ‘선배들과 어울리지 마라’. 그렇게 된 거예요. 코미디협회에서 방송국에다 ‘야유회나 모임이 있으니 개그맨들 연습 시간을 조정해 달라’고 하면 안 들어줍니다. 무조건 ‘내일 몇 시까지 와. 안 나오면 짤라’.
 
  옛날 MBC・KBS 코미디언 프로들은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다 출연하잖아요. 구봉서 어르신부터 갓 신인까지 다 출연하니까 한 가족이었어요.”
 
  ― 진짜 중요한 말씀이네요.
 
  “공중파 코미디가 다 사라지게 된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없애면 안 되니까, 선후배를 갈라놓은 뒤 나이 드신 분들 먼저 보내고 결국 개그 프로까지 다 없앤 겁니다. 거기엔 고도의 치밀한 계산이 있었다고 봐요. 그냥 우연히 그렇게 된 게 아니라고 봅니다.”
 
 
  정통 개그 프로가 있어야 하는 이유
 
  ― 〈개그콘서트〉가 폐지될 때 어떻게 하셨어요.
 
  “폐지된다고 말들이 많았잖아요. 제가 KBS 사장을 찾아가 재고해 달라고 하니 ‘누가 그런 말 하느냐’면서 ‘그런 계획 세운 적도 없고 그렇게 해선 안 된다’고 해놓고 몇 달 후에 없어졌어요.”
 
  ― 공중파에서 코미디 프로가 사라진 후 유튜브에서 개그맨들이 인기를 끌고 있어요.
 
  “유튜브 쪽에서라도 어떤 날선 비판과 예리한 풍자를 해줘야 하는데 유튜버들이 너무 시청률을….”
 
  ― 클릭 수를….
 
  “그걸 높여야 하니까, 굉장히 시청자에게 아부하는…, 그런 추세죠.”
 
  ― 예전 같은 고품격 코미디는 기대하기 어렵게 됐어요.
 
  “고품격 프로가 되기 위해선 고정 프로가 필요합니다. 고정 프로가 있어야 기본기 훈련을 할 수 있어요. 데뷔 때 인기가 없어도 선후배와 연기하면서 재주를 갈고 닦고 나름의 감각을 갖는 것이거든요. 그런 걸 공부하기도 전에, 코미디를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 온 겁니다. 어린 개그맨들이 생계를 위해 주유소 ‘알바’ 하고, 레스토랑에서 접시를 닦습니다.
 
  연기라는 게, 거기(연기)에 묻혀 있어야지 낯선 직업에 있다가 바로 무대에 서면 몰입이 안 됩니다. 대사 외우기 바쁘고… 안 됩니다. 정통 개그 프로에서 훈련을 거친 다음 예능 MC도 맡고, 토크쇼에 나가야 방송 질이 올라가고 품격이 높아지는 겁니다.”
 
  ― 하지만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으면 개콘이라도 폐지하는 게 옳죠.
 
  “당연하죠. 그런데 방송국은 프로듀서를 유학도 보내지 않습니까. 견학을 보내거나 연구동에 가서 공부할 시간을 줍니다. 연기자들도 쉬는 기간, 방송 품질 높일 기회를 마련해줘야 하지 않나요?
 
  가진 재주 다 써먹은 다음 이제 써먹을 것 없으니 집에 가라?
 
  집에 가만히 있는 사람들을 ‘개그맨 모집합니다’ 해서 불러다가 있는 재주 소진하면 그다음엔? 왜 코미디계로 불러 망가뜨리느냐 이 말씀이에요. 정통 개그 프로를 만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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