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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색수배 중인 ‘라임 몸통’ 쫓는 경찰 출신 백왕기 변호사

‘라임 주범’ 김영홍, 필리핀에 잠적 중… 이미 신분 세탁 했을 수도

글 :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talktom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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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임 수사 지지부진한 건 도망간 주범 때문, 반드시 잡아야”
⊙ 도피 중 버젓이 ‘온라인 카지노’ 송출… 불법 자금 마련에 배당까지
⊙ 소극적인 수사 기관… “수백억원 피해 입은 의뢰인 위해 직접 팔 걷어붙였다”
⊙ 필리핀서 수차례 ‘셋업범죄’ 걸려 신변 위협 받아도… “포기 않겠다”

白旺基
1965년생. 대원고, 경찰대 행정학과(5기) 졸업 / 제42회 사법시험(사법연수원 32기), 중앙경찰학교 교수 / 現 필리핀 오션베스트리더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터질 게 터진 모양이었다. 라임 사태 발발 직후. 백왕기(56) 변호사는 단번에 이렇게 말했다.
 
  “몸통은 김영홍이다.”
 
  필리핀에서 해외 은닉재산 추적·환수·국제소송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는 그는 라임 사태가 일어나기 전부터 김영홍 메트로폴리탄 회장을 주시하고 있었다.
 

  메트로폴리탄은 라임으로부터 해외 리조트 및 카지노 사업 명목으로 3500억원을 투자받은 부동산 시행사다. 이 투자금은 후에 라임 사태를 일으킨 단초(斷礎)가 됐다. 김봉현 또한 옥중서신에서 실질적 ‘몸통’으로 김영홍을 지목했다. 백 변호사는 “현재 밝혀진 3500억원 이외에도 제이제이씨홀딩스, 제이케이인터내셔널, 캄보디아 리조트 1억 달러(약 1200억원)까지 합치면 그가 빼돌린 것으로 추정되는 금액은 5000억원이 넘는다”고 했다.
 
  백 변호사에 따르면 김영홍은 라임 사태 직전인 2019년 10월 필리핀으로 도피했다. 적색수배령이 떨어진 지 1년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 그림자도 못 찾았다. 백 변호사는 “김영홍이 횡령한 돈이 라임 피해금액(1조6000억원)의 30~40%를 차지한다”면서 “그를 잡지 않고는 라임의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그는 급기야 필리핀 현지에서 직접 김영홍을 찾겠다고 팔을 걷어붙였다. 김영홍에게 수백억원의 피해를 입은 의뢰인 때문이다.
 
  ― 라임 수사 진행 상황을 지켜보니 어떻습니까. 지지부진하다는 시각이 많은데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수사에 가장 중요한 주범이 도망을 가버렸으니까요. 종범들은 다 주범에게 범죄사실을 떠넘길 거고요. 특히 김영홍 회장과 관련해서는 이상하리만큼 수사가 안 되고 있습니다. 라임의 주범 격으로 꼽히는 인물 몇몇과 그 아래 수많은 종범이 있지 않습니까. 다른 주범의 종범들은 처벌을 받고 있는데, 22개 메트로폴리탄 계열사 관계자 및 김영홍과 관련된 인물은 그 누구도 처벌을 받지 않았어요. 범죄 사실이 명백한데 말입니다.”
 
 
  무색한 적색수배령
 
백왕기 변호사는 김영홍 메트로폴리탄 회장이 295억원을 들여 차명으로 필리핀 막탄의 이슬라리조트를 매입했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이슬라리조트의 등기부등본(GIS). 매입 후에도 주주 명부는 그대로다.
  ― 김영홍 회장이 필리핀에 있다는 건 어떻게 확신합니까.
 
  “현지에서 목격담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두 달 전쯤에 막탄섬과 클락에 다녀갔다는 제보를 받았어요. 카지노 리조트에서 며칠씩 체류하며, 비호세력 삼는 지인들에게 막대한 자금을 쓰고 있다고 하더군요.”
 
  ― 누가 제보했나요.
 
  “카지노 업자들이죠.”
 
  ― 제보가 들어왔을 때 그 장소에 들이닥치면 잡을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보통 다녀가고 한참 뒤에 알려줍니다. 카지노 업자들은 워낙 음성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매사에 조심스럽습니다. 자칫하다가는 본인에게 피해가 올 수 있거든요.”
 
  ― 말씀대로라면 김 회장은 버젓이 활동하고 있는 셈인데, 왜 못 잡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데요.
 
  “한국 경찰은 필리핀 내에 사법권이 없기 때문에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이종필 라임 전 부사장이 지난 1월 29일 1심 재판에서 징역 15년형을 선고 받았다. 검찰에서는 이종필과 김영홍을 경제공동체로 보고 있다. 사진=조선DB
  ― 적색수배령이 떨어졌지 않습니까. 중범죄 피의자에게 내리는 인터폴 수배 단계 중 가장 강력한 조치 아닙니까.
 
  “물론 우리나라에서 인터폴에 적색수배 영장을 발부했기 때문에 필리핀 경찰도 김영홍을 체포할 수 있는 권한과 의무는 있습니다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필리핀은 영미법체계를 따라요. 절차가 굉장히 복잡하죠. 체포영장만 발부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주거 공간이나 호텔에 들어가려면 압수수색영장이 필요한데, 그게 포괄적으로 나오지 않거든요. 몇 호실에 있는지까지 특정을 해야 해요.”
 
  ― 적색수배라는 게 생각보다 무력하군요. 얼굴에 빨간 줄이 그어진 수준인 줄 알았는데.
 
  “한국 검경에서 강력하게 필리핀 수사기관에 체포 동의를 구하면 도움이 될 텐데, 그 부분이 아쉽기는 합니다. 만일 국가 차원에서 필리핀에 강력하게 청구를 해서 대대적인 검거 작업이 이뤄지면 체포가 가능합니다. 그럴 경우 3주 정도만 수색하면 잡을 수 있어요.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라는 겁니다.”
 
  ― 왜 그렇게 안 되고 있습니까. 한국 수사기관에서 비중을 안 두는 겁니까.
 
  “수사의 필요성은 충분히 느끼고 있습니다. 적색수배도 그래서 내린 거고요. 지난 1월 29일 재판부는 이종필에게 ‘죄질이 매우 나쁘다’며 15년형(1심)을 내렸죠. 검찰에서는 그런 이종필과 김영홍을 ‘경제공동체’로 보고 있습니다. 다만 현실적인 벽이 있는 거죠. 예컨대 대한민국대사관 세부영사분관에 한국 경찰청에서 파견 나온 경찰관과도 공조가 가능한데, 제한적이에요. 업무도 많고 3년마다 보직이 바뀌니까 좀 적응한다 싶으면 발령이 나거든요. 또한 제가 경찰 출신인 게 외려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일종의 청탁으로 비칠 수 있어서 강하게 협조를 요청하기가 곤란한 거죠.”
 
 
  ‘끈질긴 악연’
 
  ‘라임의 주범은 김영홍.’ 백 변호사의 이 같은 말은 단순히 서류상 분석에서 나온 게 아니다. 라임 사태가 촉발된 건 지난 2018년 파티게임즈의 부실 BW(신주인수권부사채) 매입 때문이다. 2017년 6월, 당시 파티게임즈를 상대로 채권 회수를 진행하고 있던 인물이 백 변호사다. 라임의 자금 흐름에 그만큼 밝다는 얘기다.
 
  “2017년 7월에 라임에서 투자한 파티게임즈는 2018년 3월, 감사의견 거절을 받았습니다. 그때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요. 상장 폐지 직전인 회사의 BW를 액면가로 인수하겠다는 세력이 나타난 겁니다. 급기야 상장 폐지가 됐고, 400억원이 휴짓조각이 됐는데도 일주일 뒤 그 세력은 권면총액 수준에 이를 사들였습니다.”
 
  그 세력의 정체가 메트로폴리탄이었다. 이를 계기로 백 변호사는 라임 사태의 주요 인물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김영홍 회장은 배우 신은경의 전 남편인 김모씨의 소개로 2018년 1월 이종필 라임 부사장을 만났습니다. 그 무렵 메트로폴리탄 법인을 설립하고 3500억원을 투자받았죠.”
 
  백 변호사는 “파티게임즈 BW 사태로 위기를 넘겼다고 판단한 이종필 전 라임 부사장과 김영홍의 행각은 그때부터 더욱 대담해졌다”면서 “메트로폴리탄 관련 비상장 회사들을 동원하거나 급조해 사모사채를 발행하는 형식으로 수천억원을 마구 빼돌렸다”고 했다.
 
  “김영홍은 여기서 더 나아가 향군상조회를 인수해 수익률 돌려막기를 계속하려 했죠. 라임 곁가지인 김봉현에게 65억원을 지원하며 향군상조회를 인수하도록 지시한 자도 김영홍이고요. 메트로폴리탄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라임과 관련된 회사라는 이유로 결국 인수에는 실패했습니다. 이때 김영홍은 재빠르게 판단했습니다. 이종필과 김봉현을 전면에 밀어놓고 필리핀으로 건너가기로요. 2019년 10월, 라임 사태가 본격화되기 전에 말입니다.”
 
 
  발 빠른 도피처 마련
 
  악연이 따로 없었다. 필리핀에서도 김영홍과의 연결고리가 생겼다. 백 변호사는 2011년 7월 필리핀 막탄 소재 이슬라리조트의 채권 보유자들과 채권 회수 추심 계약을 맺은 상태였다. 필리핀 법정에서 이들을 대리해 리조트 소유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법정 다툼 끝에 리조트를 공매한 후 매각대금을 채권자들에게 돌려줄 일만 남겨두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 리조트를 이미 원소유자에게 매입했다고 주장하는 세력이 등장했다. 이들은 백 변호사의 의뢰인들이 추진하던 강제집행의 중단을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또다시 김영홍이 개입했다는 게 백 변호사의 설명이다. 그는 “소유권을 두고 갈등이 불거진 리조트를 2018년 10월 김영홍 회장이 차명으로 매입했다”고 했다.
 
  리조트 매각 대금(295억원)을 지불한 인물은 채모 메트로폴리탄 대표이사다. 당시 채씨는 메트로폴리탄의 계열사로부터 300억원을 대여받아 개인 자격으로 리조트를 인수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세요. 마닐라 고등법원의 판결문까지 나와 강제집행만 남겨놓은 리조트를 누가 사겠습니까. 이 같은 무모한 일을 할 이유는 명백해 보였습니다. 도피처 마련과 자금 빼돌리기. 실제로 당시 필리핀에 ‘이슬라리조트 인수 비용’으로 신고 및 흘러들어온 자금도 전혀 없었어요. 295억원이 고스란히 증발한 거죠.”
 
  ― 그 돈은 어디로 갔나요.
 
  “김영홍은 이 295억원을 춘천 지역 한 업자의 차명계좌를 이용, 자금 세탁을 거친 후 리조트를 소유하고 있던 조폭 등 주주 11명에게 지급했습니다. 리조트가 매각됐는데, 지분 이전 등기도 이뤄지지 않았어요. 인수 후 해가 바뀌어도, 심지어 현재(1월 11일 기준)까지도 기존 주주들이 그대로 등재돼 있어요. 결국 기존 주주들과 결탁했다는 뜻인 겁니다. 김영홍의 부하직원인 메트로폴리탄의 채모 대표이사가 지난해 2월 남부지검에 ‘필리핀 카지노 투자 명목으로 투자받은 라임 자금 중 리조트 매각대금을 김영홍 회장의 지시로 2018년 10월 수표로 끊어 인출했다’고 진술한 것도 이를 뒷받침하죠.”
 
  당연히 백 변호사의 채권자들은 여전히 대금을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 한때 분열했던 채권자들은 다시 백 변호사를 찾아와 채권 추심을 의뢰한 상태다. 백 변호사가 본격적으로 김영홍을 쫓게 된 배경이다.
 
 
  도피 중에도 온라인 카지노로 돈 벌어
 
백 변호사는 김영홍이 도피 중에도 온라인 아바타 카지노 송출로 자금을 마련하고 있다고 했다. 사진은 증거자료 수집을 위해 국내에 송출 중인 게임 테이블을 녹화하고 있는 모습. 사진=백왕기 제공
  쫓다 보니, 추가 범행도 눈에 들어왔다. 백 변호사는 도피 중인 김 회장이 현재까지도 카지노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고 했다. 불법 온라인 카지노를 통해서다. 국내에 송출 중인 정황도 포착했다.
 
  ― 이슬라리조트가 아직 영업을 하고 있습니까.
 
  “업장은 모두 문을 닫은 상태입니다. 다만 온라인 아바타 카지노는 지속적으로 송출 중입니다. 아바타는 70명 정도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숙박 장소는 카지노 관련자들이 사용 중이고요.”
 
  ― 온라인 아바타 카지노라면?
 
  “일종의 ‘대리게임’입니다. 필리핀 현지 카지노에 있는 사람을 아바타로 지정한 뒤 플레이어의 지시대로 베팅을 하는 방식입니다. 컴퓨터나 휴대전화로 현장 직원과 대화하며 게임에 참여하죠. 국내에 송출 중인 정황을 파악했고, 게임 테이블 중 일부를 24시간 녹화한 증거자료를 남부지검에 제출했습니다. 판돈을 계산해보니 수익이 연간 350억원가량 되더군요. 도박 자금은 일명 ‘환치기’ 형태로 송금되고 있고요. 이에 따라 김영홍 일당을 도박개장죄 위반,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고발한 상태입니다.”
 
  그는 “심지어 이 범죄 수익금은 김영홍을 비호하는 세력에게 배당까지 되고 있다”고 했다.
 
  ― 온라인 카지노로부터 배당을 받고 있는 사실은 어떻게 알았습니까.
 
  “앞서 울산에서 이슬라리조트를 내세워 분양 사기를 친 이모씨라고 있습니다. 김영홍과 기존 주주들의 측근이죠. 현재 울산지검에 기소된 이씨는 검찰에 김 회장이 빼돌린 295억원과 온라인 카지노 배당금이 누구에게 돌아갔는지 모두 증언했습니다. 본인 또한 카지노 배당금을 받고 있다며 관련 계좌 내역까지 제출한 상태죠.”
 
  그는 짧은 한숨을 내쉰 뒤 말을 이었다.
 
  “만일 불법 자금이 아니고, 인수 과정 또한 정상이었다면 이러한 추가 수익금은 라임 투자자들에게 배당돼야 맞는 겁니다. 그런데 조폭 출신 등 완전히 엉뚱한 이들이 배를 채우고 있는 형국이에요.”
 
 
  ‘김 회장’ 추적에 50억원 들여
 
  혼자서는 만만치 않은 작업. 그렇다고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그는 필리핀 검찰청(NBI)과 형사국(CIDG)에 직접 공조를 요청했다. 김영홍에 대한 사건·사고 자료를 취합해 필리핀 사법 당국에 제공하고, 체포를 의뢰했다. NBI의 추천을 받아 필리핀 정부의 허가를 받은 사설경비업체도 고용했다. 수색 과정에서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현지 로펌도 14군데나 선임했다. 여기까지 총 50억원의 비용을 썼다. 백 변호사는 “의뢰인이 채권을 회수하지 못하면 이 비용이 전액 법률사무소의 손실로 잡힌다”면서 “국가의 사법권이 미치지 않는 나라로 도망간 사람을 잡는데 국가만 의존할 수는 없으니 답답한 사람이 우물을 판 것”이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 로펌을 14군데나 따로 선임한 이유는 뭡니까.
 
  “필리핀에서 소송을 진행하다 보면 ‘셋업범죄’에 얽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송 상대측에서 누명을 씌워 저를 체포시키는 거죠. 셋업을 당하면 소리소문없이 목숨을 잃기도 해요. 이러한 셋업범죄를 하나라도 방어하지 못하면 채권 회수 활동을 지속할 수 없기 때문에 항상 실력 있는 변호사들을 선임해놓고 있어야 합니다.”
 

  ― 셋업범죄는 영화에서만 들어봤는데요. 흔히 ‘마약 던지기(상대방의 소지품 등에 마약을 넣어두는 것)’ 같은 겁니까.
 
  “그건 가장 쉬운 방법이고요. 예컨대 멀쩡한 사람을 인신매매범으로 만듭니다. 진범 A, B, C가 있고 팔려 간 여성 1, 2, 3이 있다고 쳐요. 이때 진범의 공범으로 저를 포함하고, 피해자 뒤에 가공의 4, 5를 추가시킵니다. 진범 A, B, C의 조서와 3명의 피해자로부터 진술을 받아놓고 나중에 가공의 4, 5를 빼버리는 겁니다. 그러면 피의자 신분조서와 피해자 진술이 완전히 엮이게 되죠. 이런 식으로 기소가 되면 웬만하면 빠져나올 수 없어요. 그쪽에서도 변호사들을 다 끼고 조작하거든요.”
 
  ― 직접 당한 적도 있나요.
 
  “지금까지 서른 건 정도요. 2012년 한 해에는 12건의 셋업을 당한 적도 있습니다. 함께 일하던 필리핀 직원이 캐나다로 취업이 돼서 이민국에 가서 보니, 저와 함께 12건의 체포영장이 발부돼 있었죠. 그중 3건이 인신매매였어요. 셋업을 위한 고소를 할 때는 일부러 송달장소를 엉뚱한 데로 쓰기도 합니다. 두 번 출석을 안 하면 세 번째에는 체포영장이 발부되거든요. 그러니까 여기저기서 체포영장이 날아오는 거죠. 그네가 지정한 경찰이 체포영장을 가지고 끌고 가서, 심할 경우 죽여버려도 아무도 모릅니다. 어쨌든 1년 반에 걸쳐 결국 12개를 모두 풀었습니다. 관련 경찰 등을 다 고발했고 체포영장을 발부한 판사들에게는 경고의 편지까지 보냈어요. 저 스스로 셋업에 강하다는 자부심이 있지만, 안 당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당하는 건 간단하지만 푸는 데는 몇 년이 걸리니까요.”
 
  ― 김영홍 회장 무리에게도 셋업을 당했습니까.
 
  “김영홍이 이슬라리조트를 인수하기 전 리조트의 주주들로부터 당한 적이 있습니다. 후에 김영홍과 공모한 자들이죠. 2017년 10월,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마닐라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타려고 하는데 제가 돈 강취죄로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라가 있더군요. 어쩔 수 없이 필리핀에 하루 동안 억류됐었죠.”
 
  ― 경찰, 변호사까지 공모해 셋업범죄를 일으키는데, 필리핀 수사기관과 공조가 가능하긴 합니까.
 
  “지방은 아직까지 타락한 곳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마닐라 법무부 자체는 믿을 만합니다. 물론 상황이 녹록지 않지만 잡을 때까지는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미 신분 세탁 했을 수도
 
김봉현은 옥중서신을 통해 라임의 실질적 몸통은 김영홍(사진상 실명이 가려진 부분)이라고 밝혔다. 사진=뉴시스
  김영홍은 김인태 전 동남그룹 회장의 장남이다. 김인태 전 회장은 경남종합건설 사주(社主)이면서 《동남일보》 회장, 마산 성안백화점 실질 사주, 경남종합금융 대주주, 마산상공회의소 제15대 회장을 지냈다. 외국환거래법 위반, 업무상배임 등으로 오랜 해외 도피 생활 끝에 철창신세를 진 그는 한때 아프리카 가봉인으로 여권을 위조해 워커힐 카지노에서 도박을 하기도 했다. 김영홍은 그런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고 알려졌다.
 
  ― 김영홍 회장이 이미 신분 세탁을 했을 가능성도 있나요.
 
  “앞서 막탄과 클락에서 목격된 게 사실이라면,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두 지역 간 이동 수단은 비행기 편밖에 없거든요. 국제수배가 돼 있는 상태인데 비행기를 탔다는 건 본인 이름을 쓰지 않았다는 뜻일 수 있죠.”
 
  ― 신분 세탁은 어떤 방식으로 가능한 겁니까.
 
  “필리핀 인구가 약 1억1000만명입니다. 그중 7%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호적이 없거나, 호적은 있는데 사망신고가 안 된 사람이에요. 후자의 신분을 돈을 주고 사는 거죠. 필리핀 브로커들 사이에서 시세는 3000만~7000만원 정도로 형성돼 있어요. 그 돈을 주면 완전히 필리핀 사람이 됩니다. 행정기관에도 바로 적용이 돼서 여권 및 각종 신분증 발급에서 사회보장제도 가입까지 가능합니다. 이것만 전문적으로 하는 필리핀 변호사도 따로 있고요.”
 
  ― 필리핀 정부에서는 이런 거래를 그냥 두고 봅니까.
 
  “필리핀 사람이 한 명 더 생기는 거잖아요. 세금도 징수할 수 있으니까 알면서도 용인한다고 봐야죠.”
 
  그는 “만일 김영홍이 신분 세탁을 마친 상태라면, 그를 쫓는 위험 부담은 더 커진다”고 했다.
 
  “신분 세탁이 완료됐다고 하면 추적하는 작업이 상당히 예민해집니다. 신분 거래에는 필리핀 거대 조폭 세력과 정치인도 깊이 개입돼 있거든요. 이는 김영홍이 그만큼 필리핀에서도 네트워크가 끈끈하다는 뜻이기도 하고, 이렇게 이해관계가 얽힌 가운데 그의 신분 위조 여부를 밝혔다가는 제가 소리소문없이 묻힐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허허.”
 
  하지만 더 큰 걱정거리는 따로 있다고 했다.
 
  “현지에서 ‘이슬라리조트 매각설’이 들려오고 있다는 겁니다. 김영홍 일당이 현금화 작업을 시도하는 건데…. 이건 자리를 뜰 준비를 한다는 의미거든요. 실제로 2019년 필리핀을 시작으로 중국, 마카오, 그리고 한국인에게도 거래 제안이 들어왔었어요. 물론 리조트 내부 사정이 워낙 복잡해서 성사되지는 않았지만요.”
 
  그렇다고 거래가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다. 카지노업자들에게 이슬라카지노는 충분히 매력 요소가 있다. 필리핀 대통령 직속기관의 정식 카지노 라이선스와 온라인 카지노 허가증인 ‘e정켓’까지 보유한 곳이기 때문이다. 두 가지 라이선스를 다 가진 곳은 많지 않다고 한다.
 
  “일반인들은 리조트의 겉모습을 보고 500억원이 비싸다 느낄 겁니다. 허름하니까요. 하지만 업자들의 시각은 달라요. 마닐라의 2조원 규모 ‘오카다카지노’에서는 매각 협의 당시 1억 달러(1200억원)를 언급하기도 했죠. 만일 (김영홍이) 1200억원을 받고 리조트를 매각한다고 치면, 대금을 주주들에게 나눠준다고 해도 본인은 최소 600억원을 손에 쥐게 되겠죠. 웬만한 코스닥 업체는 사들일 수 있는 금액을 가지고, 신분 세탁을 한 후 예컨대 남미 어디론가 숨어버리면 영영 못 찾을 수도 있습니다. 애초에 주주 명부 등에 자신의 흔적이 없기 때문에 빠져나가기도 쉽겠죠.”
 
 
  ‘지옥 끝까지 쫓아가겠다’
 
2008년 필리핀으로 건너간 백왕기 변호사는 해외 은닉재산 추적·환수·국제소송 전문가다. 사진은 필리핀 법정에서 사건 기록을 들여다보는 모습. 사진=백왕기 제공
  백 변호사는 경찰대를 졸업하고 1989년부터 경찰서에서 근무했다. 한땐 천문학자를 꿈꿨다. “집안에 경찰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아버지의 말에 별보다 ‘별 단’ 사람을 보기로 했다. 경찰 경력 약 10년, 법을 더 알고 싶어 고시 공부를 했다. 2000년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한동안 서초동에서 형사전문변호사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다 2008년, 필리핀으로 떠났다.
 
  ― 어쩌다 필리핀에 가게 된 겁니까.
 
  “당시 국내 몇몇 대기업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이 필리핀의 한 리조트를 인수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했습니다. 그 프로젝트의 법률 자문을 맡았는데, 그 리조트에도 채권 문제가 있었습니다. 2008년 10월경 채권 회수를 목적으로 리조트 실사(實査)를 간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현지에서 각종 행정심판 등이 이어졌고 그 자문 계약에 이어 관련된 사건이 들어오다 보니 2010년부터는 아예 근거지를 필리핀으로 옮기게 됐습니다.”
 
  ― 수많은 경제사범을 봤겠군요. 김영홍의 스케일을 그들과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미증유(未曾有)의 인물이라고 봐야죠. 희대의 금융사기범으로 꼽히는 조희팔·주수도보다 한 수 위라고 할 수 있어요. 대범하다고 해도 보통은 폰지사기(피라미드식 다단계 사기수법)에 그치는데, 이렇게 개인이 수백억·수천억원을 수시로 빼돌리는 경우는 처음 봤습니다. 게다가 본인의 실명 기사가 계속 쏟아지고, 적색수배까지 떨어졌는데도 버젓이 활동하고 있지 않습니까. 역사적으로도 국내에서 이런 케이스는 없었어요.”
 
  ― 만약에 잡힌다면 형량은 어느 정도로 예상합니까.
 
  “경합범으로 따져봤을 때 최소 25년에서 최대 40년까지 보고 있습니다.”
 
  ― 추적 비용으로 수십억원을 쓰고, 신변 위협을 무릅쓰며 언제까지 쫓을 생각입니까.
 
  “잡힐 때까지요. 수임한 사건의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제 본분이기도 하지만, 단순히 의뢰인을 위해서는 아닙니다. 라임 사태로 피해를 입은 수많은 펀드 가입자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들의 피해 구제를 위해서라도 꼭 잡도록 하겠습니다.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라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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