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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북한 출신 국민의힘 지성호 의원

“북한 정권은 ‘꽃제비’ 출신인 나한테 졌다”

글 : 정광성  월간조선 기자  jgws89@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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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좌진 면접 태극기 그리기와 애국가 써보라 해”
⊙ “첫 업무는 무연고 탈북민 납골당 방문”
⊙ 지성호 의원실, 남북 출신 보좌진 함께 채용, 통일체험
⊙ “고향 사람들에게 나 자체로 희망이 됐으면 바랄 것이 없다”
⊙ “처음에 비례 44번 받아 탈당하려 했다”
2020년 10월 7일 지성호 국민의힘 의원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의 외교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강경화 장관에게 질의하고 있다. 사진=조선DB
  “북한에서 가장 밑바닥이었던 꽃제비 출신 지성호가 북한 정권과 싸워 승리했다.”
 
  국민의힘 지성호 의원의 말이다. 지 의원은 2006년 탈북했다. 그는 북한에서 이곳저곳 떠돌며 구걸로 생계를 이어가는 이른바 ‘꽃제비’ 출신이다. 지 의원은 어릴 때 사고로 왼쪽 팔과 다리까지 잃었다.
 
  지성호 의원은 2018년 1월 30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 연두교서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소개하며 우리 사회에 알려졌다. 힘든 몸을 이끌고 북한 인권 상황을 국제사회에 알리던 지성호 의원은 21대 총선 과정에서 인재 영입 1호로 당시 미래통합당에 합류하면서 현실 정치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 국회의원이 된 지 7개월 정도인데 적응은 됐습니까.
 
  “네, 조금은 적응이 된 것 같습니다. 제가 북한 관련 시민사회 영역에서 일하다가 정치 영역이라는 다른 곳에 뛰어들다 보니 적응하는 데 조금 시간이 걸렸습니다. 국감도 무사히 잘 끝냈고 주변 동료 의원들과도 친분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 국회에 첫 등원한 날이 잊히지 않겠죠.
 
  “당연하죠. 등원 전날 너무 떨려서 잠도 제대로 못 잤어요. 첫 출근하는 날 북한에서부터 가져온 목발을 짚고 국회로 당당히 들어가려고 했는데… 그렇게 하진 못했지만 좋은 출발이었던 것 같습니다.”
 
  ― 북한에서 가져온 목발을 짚고 등원하려 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개인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국민이 쇼를 한다고 생각할까 봐 못 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북한 주민들이 보았으면 했습니다. 북한 정권의 피해자였던 제가 자유를 찾아 탈북해 지금은 당당히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된 모습을요.”
 
 
  국회 등원 후 첫 업무는 무연고 탈북민 납골당 방문
 
  ― 국회의원 지성호의 첫 업무도 특별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보좌진과 논의해 무연고 탈북민들의 납골당을 방문했어요. 무엇을 먼저 할지 정말 생각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어렵게 자유를 찾아와 이곳에서 돌아가신 분들에게 헌화하고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지고 출발하기 위해 방문하게 됐죠.”
 
  ― 보좌진 면접도 특별하게 보았다고 하던데요.
 
  “네, 저는 조금 특별하게 봤습니다. 면접장에서 태극기를 그려보게 한다든지, 애국가를 써보게 했습니다.”
 
  ― 의원실에 특별한 보좌진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네, 탈북민 출신 보좌진 3명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국회에는 300개의 의원실이 있는데, 그중에서 우리는 남북통일을 먼저 경험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통일을 의원실에서 먼저 해보는 거죠.”
 
  ― 어떤 분들이죠.
 
  “평범한 분들입니다. 북한에서 대학을 나왔거나 탈북 후 한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한 청년들입니다.”
 
  ― 이분들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앞으로 통일되면 이들이 지금 국회에서 배운 정치・행정 경험을 토대로 북한에 새로운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한 역할 했으면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입법 보조원 2명도 현재 대학에서 공부하는 탈북 청년들을 채용해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 아직 짧은 시간이지만 국회에 들어와 한 일 중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제가 처음으로 발의한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했을 때입니다. 본회의장 전광판에 제가 단독 발의한 법안이 딱 나왔을 때 의장이 의사봉을 탕, 탕, 탕 세 번 치는데 그때 감정은 말로 표현이 안 됩니다.”
 
  ― 첫 발의한 법안이 통과된 후 자축했나요.
 
  “원래는 첫 법안이 통과되면 의원실 보좌진과 회식을 하는 게 전통이래요. 근데 그때는 몰랐습니다. 나중에야 알게 된 거죠. 아마 다른 일을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보좌진에게 너무 미안했어요.”
 
  ― 처음 발의한 법안이 탈북민 정착 관련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북한이탈주민 보호와 정착 지원에 관한 법률’입니다.”
 
  ― ‘북한이탈주민 보호와 정착 지원에 관한 법률’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그동안 해외에서 10년 이상 거주한 탈북민이 국내에 입국하면 정착 지원금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를 수정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해외 거주 연도를 삭제하고 10~20년 후 국내에 입국해도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 또 어떤 법안들을 발의했나요.
 
  “여러 가지 있지만 탈북민의 정착 지원금 관련해서도 발의한 것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하나원(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을 나오면 6개월 정착 지원금이 나왔습니다. 이를 1년으로 늘리는 내용입니다.”
 
  ― 탈북민 정착 지원금이 6개월로 부족한가요.
 
  “탈북민 관련 NGO 활동을 하면서 보니 6개월이면 짧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탈북민 대부분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북한에서의 삶, 탈북 과정, 여성 인신매매 등을 경험하게 되면 정상적인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들의 상처를 국가에서 책임지고 치료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 국가가 어떻게 책임져야 합니까.
 
  “국가가 탈북민을 6개월간 치료해줘야 합니다. 그렇다고 탈북민을 정신적으로 이상한 사람으로 보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만큼 힘든 삶을 살았으니 심리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그들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주어 우리 사회에 동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회령 출신인 것이 자랑스럽다”
 
2018년 8월 6일 서울 영등포 사무실에서 만난 지성호 나우 대표. ‘고난의 행군’ 때 사고로 왼쪽 다리와 팔을 잃은 그는 2006년 아버지가 만들어준 목발을 짚고 탈북했다. 사진=조선DB
  ― 북한 회령 지역 사람들이 동향 출신 지성호가 국회의원이 됐다는 소식을 알고 있다는 기사도 나왔는데요.
 
  “2500만명 북한 주민에게 희망이 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었습니다. 더 기쁜 것은 제가 북한 정권과 싸워 승리했다는 것입니다.”
 
  ― 북한 정권과 싸워 승리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그동안 북한 정권은 탈북민에 대해 얼마나 안 좋은 소문을 퍼뜨렸습니까? 그럼에도 대한민국 국민은 저를 국회의원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제가 국회의원이 됐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북한 정권은 저에게 진 것입니다.”
 
  ― 지금까지 탈북민 출신 국회의원 3명 중 지 의원만 평양 출신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이죠. 저는 회령 출신인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북한 주민들도 아마 그런 사실에 더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평양 출신도 아니고 북한에서 고등학교 졸업한 사람이 한국에 와서 교육을 다시 받고 국민의 선택을 받아 국회의원까지 됐으니 북한 주민들이 더 놀라지 않겠습니까.”
 

  ― 좋은 일도 있지만, 북한 출신 국회의원이어서 힘든 점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다 어려웠죠. 그중에서도 후원에 대한 부분이 가장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처음엔 후원회도 없었어요. 초반에 정치적 공격을 좀 받다 보니 후원회장을 부탁할 사람도 없었습니다. 지금은 탈북민 목회자들이 후원회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습니다만 많이 어려운 상태입니다.”
 
  ―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의원도 후원회가 만들어졌는데 왜 나는 없을까 등 여러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 선거운동 당시에도 힘들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네, 그땐 정말 집중적으로 정치적 공격을 받으면서 선거운동을 했습니다. 하지만 정치적 공격은 별로 힘들진 않았는데 고향이 북한이다 보니 선거운동할 때 당에 도움이 못 되는 것이 힘들었지요.”
 
  ― 일각에선 북한 출신의 초선 비례대표가 얼마나 큰일을 하겠냐, 하는 우려도 있습니다.
 
  “물론 그런 생각을 하는 분들도 있겠죠. 그런데 그런 우려를 잠재우는 것도 나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초선 비례라고 해서 일을 못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3선보다 더 빛이 날 수도 있습니다. 당에서 지금 북한인권위원장을 맡아 국제회의 등을 열어 미국에 있는 분들과도 소통을 활발히 벌이고 있습니다.”
 
  ― 미국 방문을 계획한 것으로 아는데, 어떤 분들을 만나나요.
 
  “로버트 킹 전 북한인권 특사 등 북한인권 전문가들과 바이든 정부에서 역할 할 분들을 만나려고 합니다.”
 
 
  “국민 보기 부끄러워 국회의원 배지 안 달고 다녀”
 
  ― 이번 국감에서 스스로에게 점수를 준다면 몇 점을 주겠습니까.
 
  “걱정과 달리 중간은 간 것 같습니다. 60점 정도요. 올해(2020년) 한 번 경험했으니 내년부턴 더 잘해야죠.”
 
  ― 국감에서 어떤 부분에 중점을 뒀습니까.
 
  “세 가지 정도입니다. 먼저 통일부가 대북제재에 포함된 북한산 그림과 물품을 전시하는 문제와, 외교정책에서 영사 협력원 제도를 신설하려고 노력했습니다.”
 
  ― 영사 협력원 제도는 무엇인가요.
 
  “해외를 돌다 보면 우리 국민이 세계 곳곳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사관들이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다 보니 사건·사고가 있을 때마다 재외국민이 불편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해당 지역에서 한 명씩 선출해 영사 협력원으로 일하게 하는 것입니다.”
 
  ― 그럼 그들도 대사관이나 영사관 소속으로 일하는 것입니까.
 
  “그렇다고 볼 수 있죠. 국가가 그들을 반(半) 공무원처럼 일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럼 그들이 해당 지역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를 종합해 영사관에 전달하면 우리 국민이 더 편하게 일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해외에서도 대한민국 국민임이 자랑스러운 나라를 만들고 싶습니다.”
 
  ― 국감에서 북한에 억류된 6명의 우리 국민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요.
 
  “네, 현재 6명의 대한민국 국민이 북한에 억류되어 강제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조속한 귀환을 위해 통일부에 강력하게 항의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죠. 자국의 국민도 지켜주지 못하는 나라가 무슨 국가입니까. 저는 국회의원 임기 동안 이 6명의 국민이 무사 귀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 이번에 대북전단 금지법도 통과됐는데요.
 
  “정상적으로 통과된 것이 아닙니다. 더불어민주당의 날치기로 통과된 것이지요.”
 
  ― 합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입니까.
 
  “처음엔 여야가 합의로 통과시키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돌변하더니 당론으로 결정된 것이어서 어쩔 수 없이 통과시켜야 한다고 하더군요. 외통위 본회의에서도 정족수로 밀어붙이는 더불어민주당을 보면서 분노했습니다. 저는 대북전단 금지법이 통과된 이후 국민 보기 부끄러워 국회의원 배지도 달고 다니지 않습니다.”
 
  ― 해당 법안을 살펴보면 전단뿐만 아니라 금전도 북한으로 보내면 안 된다고 되어 있더라고요.
 
  “네, 개정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 그런데 지금도 탈북민들은 북한에 있는 가족들에게 돈을 보내고 있는데 그럼 이들도 처벌 대상이 되겠네요.
 
  “그들까지 처벌하긴 어려울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보내는 부분이라 처벌할 수 없을 겁니다.”
 
 
  “이처럼 국민을 기만하는 정부는 처음 봤다”
 
2017년 10월 26일(미국시각) 북한인권청년단체 나우 지성호 대표가 미국 옥시데이(OXI DAY) 재단으로부터 ‘불의에 맞서 싸운 용감한 사람’으로 선정돼 수상했다. 사진=지성호 의원 페이스북
  ― 국감 중 외통위에선 해수부 공무원 피살 사건을 놓고 갈등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네, 이와 관련해서 외교부와 통일부에 진상조사를 강력히 요구했지만 들은 척도 안 하더라고요. 저도 한국에 정착한 지 15년 정도 됐지만 이처럼 막무가내인 정부는 처음 봅니다.”
 
  ― 어떤 부분이 제일 힘들던가요.
 
  “소통이 안 됩니다.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고 강압적으로 찍어 누르려고만 합니다. 이런 행태가 계속되면 북한처럼 독재의 길로 가는 것이죠. 정말 민주주의 근간을 해치는 행동들을 보면서 너무 놀랐습니다.”
 
  ―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코로나19 백신 절반을 북한으로 보내자고 하는데요.
 
  “이것도 문제입니다. 백번 양보해서 보낼 수 있다고 합시다. 그래도 모든 일에는 절차와 순서가 있습니다. 먼저 국민에게 의견을 묻고, 부처 간에 합의도 해야 하는데, 모든 절차와 순서를 건너뛰고 본인들 마음대로 판단하고 결정해서 통보하는 식입니다. 국민을 무시하는 오만한 정권이지요. 이건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 통일부 행정 절차 관련해서도 지적했는데요
 
  “네, 통일부가 탈북민에게 돌아가야 할 주거 지원금 40억원가량을 지급하지 않고 쌓아두고 있더라고요. 탈북민이 하나원을 나와 처음 주택을 배정받았을 때 임대보증금 기준으로 선(先)지급하고, 나머지 잔액은 주거지 보호기간인 5년이 종료된 이후 신청하게 되어 있습니다. 탈북민들이 적응기간에 정부 지원금을 탕진할 위험이 있으니 정착한 지 5년이 지난 이후에 잔액을 지급하겠다는 취지입니다. 문제는 대다수 탈북민은 ‘5년 뒤 잔액 지급’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 그러니까 통일부가 40억원을 쌓아두고 있으면서 알아서 찾아가라는 식이었네요.
 
  “그렇죠. 탈북민에게 주거 지원금은 대한민국에 정착하는 데 생명줄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데 주무부처인 통일부가 ‘아쉬운 사람이 알아서 찾아가라’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제도적으로 보장된 것조차 온전히 지급되지 않은 것은 명백한 통일부의 직무유기입니다.”
 
  ― 그런 사실을 어떻게 찾아냈습니까.
 
  “의원실에 있는 북한 출신인 박영철 비서가 찾아냈습니다. 평소에도 탈북민들의 정착에 관심이 많고,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이를 알아낸 것 같습니다.”
 
  ― 언제부터 정치해야겠다고 결심한 겁니까.
 
  “저는 정치를 할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북한 인권 NGO 일을 하면서 1년에 몇십명의 탈북민들을 구출하는 것이 저의 행복이었습니다. 모아놓은 돈은 없지만 행복했습니다. 2018년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고 왔을 때도 함께 정치하자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때도 모두 거절했습니다.”
 
 
  “비례대표 44번으로 발표되는 것 보고 탈당 결심”
 
  ― 그런데 어떤 계기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영입 인재 1호로 발탁된 겁니까.
 
  “염동열 의원에게 설득당한 거죠.”
 
  ― 평소에 알고 지냈습니까.
 
  “아니요, 몰랐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만나자고 전화를 하셨어요. 저는 북한 인권 문제 때문에 만나자고 하는 줄 알았습니다. 처음엔 거절했습니다. 그 이후에 계속해서 전화로 설득하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해보겠다고 말씀드렸죠. 근데 마침 나를 움직이는 사건이 발생한 거죠.”
 
  ― 어떤 사건입니까.
 
  “지난해 탈북민 모자가 아사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북한 인권단체들은 이에 대해 통일부에 여러 가지 요청을 했지만, 통일부가 우리 요구를 뭉개버리는 것을 보고 힘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 거죠. 그런 상황에 염동열 의원이 비전을 제시하면서 설득을 계속했습니다. 그때 이런 분과 함께라면 정치해도 되겠다고 결심한 거죠.”
 
  ― 그래서 영입 인재 1호로 들어갔는데, 정작 비례대표 명단이 공개됐을 때 44번이었습니다.
 
  “그때를 아직도 기억하는데 너무 어이가 없고,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정치라는 게 사람 바보 만드는 것은 한순간이구나 생각했죠. 저는 바로 탈당을 결심하고 절차를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이후에 일이 잘 해결돼서 지금의 제가 있는 거긴 하지만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 국회의원이 된 후 살고 있던 임대주택을 반납했습니다.
 
  “솔직히 후회를 많이 했습니다. 제가 뭐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이곳에 터전이 있는 것도 아닌데, 덜컥 내놓고 보니 앞이 캄캄하더라고요.”
 
  ― 그런데 왜 반납한 겁니까.
 
  “국민의 세금으로 살아가게 됐는데 임대아파트까지 가지고 있으면 제 양심에 찔려서 반납한 거죠.”
 
  지 의원은 지금 마포에서 반전세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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