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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주희의 라운지

오세훈 前 서울시장

“서울시장 경선 안 나간다, 結者解之論 앞에선 有口無言”

글 :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everhop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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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자해지하는 길이 서울시장 출마뿐인 건 아니다”
⊙ “부동산 대참사 일등공신,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와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
⊙ “3기 신도시에 반값아파트 공급하면 부동산 폭등 잡을 수 있다”
⊙ “윤석열 총장, 반기문 유엔 총장처럼 고민하게 될 거다”

吳世勳
1961년생. 고려대 법대 졸업, 同 대학원 박사 / 제26회 사법시험 합격 / 前 16대 국회의원, 한나라당·바른정당 최고위원, 33·34대 서울시장 / 現 국민의힘 광진구을 당협위원장,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특임교수
사진=조준우
  10년은 실수와 후회를 극복할 만큼 긴 시간일까. 그에게 지난 10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2020년 12월 11일, 서울 자양동에 있는 사무실로 오세훈 전 시장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오세훈법률사무소’는 자양사거리 대로변에 있다. 총선 직전까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역사무소로 쓰던 자리다. 오 전 시장 책상 위엔 책이 여러 권 쌓여 있었다. 《국민의힘 당헌당규집》과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이 쓴 《정책의 배신》이 얼핏 보였다.
 
 
  드라마틱한 취임과 사퇴
 
오세훈 시장이 2011년 8월 21일 서울시청에서 무상급식 주민투표 결과에 시장직 사퇴를 연계한다는 기자회견을 하며 무릎 꿇고 있다. 사진=조선DB
  원래는 오전으로 약속을 한 참이었다. 오후로 미루자는 연락을 받았다. 사전에 보낸 질문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현안이 아닌 정책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그때 결정을 후회하나요?’ 지난 10년간 그가 응한 언론 인터뷰마다 등장한 질문이다. 매번 같은 질문을 받는 사람의 처지도 딱했다.
 

  ― 10년 전 서울시장직 사퇴에 대한 질문을 인터뷰할 때마다 받으시더군요. 버겁지 않으셨나요.
 
  “짜증이 나죠. 똑같은 질문을 계속 받으니…. 직(職)을 건 건 과도했습니다. 복지에 대한 저의 원칙을 지키기 위한 나름의 결정이었어요. 어떤 복지든 노력하는 분들을 더 돕고, 하후상박(下厚上薄)으로 어려운 분들에게 복지 혜택이 더 많이 가야 한다는 원칙이었습니다. 무상급식 전면 시행은 여기에 맞지 않았어요.”
 
  거듭해 묻는 쪽도 이해가 되는 것이, 그의 서울시장 입성은 등장부터 퇴장까지 워낙 드라마틱했다. 2006년 46세로 당선, 최연소 민선 서울시장이었다. 한명숙 후보를 꺾고 재선에 성공한 후엔 대선주자급으로 올라섰다. 그러다 2011년 직을 걸고 무상급식 전면확대 반대에 대한 주민투표를 제안했다. 개표에 필요한 투표율(33%)이 충족되지 않았다. 개표도 하지 못했고, 곧이어 사퇴로 책임을 졌다.
 
 
  ‘일만 했지 정치는 안 해’
 
2010년 6·2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에 당선된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가 당선이 확정되자 지지자들과 환호하고 있다. 사진=조선DB
  사퇴 직후의 어느 인터뷰에서 그는 인상적인 말을 했다. 배우자인 송현옥 세종대 교수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단다. “당신은 일만 했지 정치는 안 했다”고.
 
  ― 일만 한 걸 후회하나요.
 
  “서울시장 할 땐 일에 미쳐 있었거든요. 잠을 못 자도 피곤한 줄 몰랐어요. 정치권에서는 다른 평가를 받았어요. ‘우리 당 안 챙긴다’고. 문재인 정부 인사들을 보며 반면교사로 배운 게 참 많습니다. 그들은 자기 사람 챙기고, 다음 선거 대비하고, 국민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본인들의 세력 기반을 확대하는 데 골몰하잖아요. 그런 걸 보며 해서는 안 될 후회지만, 후회를 했어요. 그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절반 정도는 우리 당을 챙겼어야 하는 게 아닌가. 선거 때 도와주신 분들을 챙기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정치인으로서는 미숙했던 거죠.”
 
  ― 10년간 원외에 있으면서 정치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는지요.
 
  “정치는 인간의 이기심,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것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어요. 예전엔 무엇이 올바른가를 생각하고 정치를 했어요. 인간의 욕망을 무시하고는 정치라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바보스러울 정도로 뒤늦게 깨달은 거죠.”
 
 
  부동산 참사 부른 ‘박원순 서울시’
 
2007년 11월 오세훈 시장이 친환경 자동차 시승 행사에 참여했다. 사진=조선DB
  다산콜센터, 서울・경기 버스환승 통합,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브랜드로서의 ‘서울’. 모두 오세훈 서울시장 시절 계획하거나 탄생한 것이다. 서울을 대표하는 것들로 자리 잡았다. 그의 재임 시절 서울은 국제금융의 허브 도시에 가까워지기도 했다. 서울의 국제금융센터지수는 오 전 시장 취임 다음 해인 2007년 43위에서 퇴임한 해인 2011년 16위로 올라섰다. 참고로 2020년엔 33위를 기록했다.
 
  오세훈 서울시정의 재평가라고 할까, 박원순 시장 임기 후반부로 갈수록 오 전 시장 시절과 비교하는 시각이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 박원순 시정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어떤 걸까요.
 
  “부동산 문제죠. 현재 진행 중인 부동산 대참사는 박원순 전 시장이 씨를 뿌린 겁니다. 처음에 시장이 되면 6개월 정도는 공부해야 합니다. 특히 도시행정을 직접 하던 분이 아니면 겸손한 마음으로 기본부터 새로 공부하는 시간이 꼭 필요해요. 서울시정이 워낙 방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박 전 시장은 보궐선거로 취임했잖아요. 인수위가 없었어요.”
 
  ― 보궐선거로 당선되면 준비 기간이 없군요.
 
  “얼떨결에 시장이 된 거잖아요. 그럴수록 본인이 더 겸손해야 되거든요. 제가 시장 할 때 뉴타운, 재개발, 재건축 지구가 400군데 가까이 지정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박 전 시장은 출근하자마자 ‘뉴타운은 잘못된 것’이라고 했어요. ‘재개발, 재건축 모두 잘못된 거다. 다 취소한다’고. 전문가들이 그럽니다. 시장에 공급될 수 있었던 25만 가구의 신규주택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거라고요.”
 
 
  변창흠과 김수현
 
  ― 신축 아파트 공급이 그때 이미 막히기 시작했군요.
 
  “도시는 살아 있는 생명체와 같아요. 하향 곡선을 그리는 지역이 있다면, 낙후된 지역이 부상하고 도시 전체가 순환이 이뤄져야 되거든요. 그런 것에 대한 기본적인 공부가 안 되어 있는 상태에서 정치적으로 시민단체, 민주당의 시각에서 재개발·재건축을 반대한 거예요.”
 
  ― 왜 반대한 거죠.
 
  “‘재개발·재건축은 원주민들이 쫓겨나는 나쁜 제도다.’ 이게 반대 논리였어요. 그런데 그건 부작용이에요. 부작용을 보완해가면서 제도를 시행해야 되는데, ‘부작용이 있으니 나쁜 제도’라면서 다 취소하기 시작한 거예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서민들에게 더할 수 없는 좌절을 안겨준 가장 잘못된 선택의 시작이었던 거죠.”
 
  ― 누가 박 시장에게 그런 생각을 주입했을까요.
 
  “변창흠 현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 이 두 명의 폴리페서들이 서울시 행정을 망가뜨려놓은 장본인입니다. 공급이 부족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이 두 사람이 재개발·재건축을 반대하는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겁니다. 민주당은 반대 논리를 제공해준 이 두 사람을 중용하기 시작했어요.”
 
  ― 민주당은 왜 신축 아파트가 들어서는 걸 반대할까요.
 
  “재개발·재건축만 끝나면 그 지역이 보수화된다고 판단한 거예요. 그러니 반대 논리를 찾은 거죠. ‘소외받은 사람들의 주거 연속성이 사라진다’.”
 
  ― 그 두 사람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엔 중앙정부로 들어갔지요.
 
  “박원순 시정에 관여하면서 덩치를 키우고 목소리를 키우더니, 결국 문재인 정부가 탄생하자 중앙정부로 진출했어요. 오늘날 부동산 대참사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한 이들이라 생각합니다. 본인들도 이젠 깨닫고 있을 거예요. 제가 뉴타운을 30군데 이상 지정할 때부터 극렬하게 반대한 이들이 바로 이 두 사람이에요.”
 
 
  뒤늦은 강남북균형발전 추진
 
  당사자가 갑작스레 고인이 돼버린 탓에 서울시정에 대해 길게 말하기 영 거북스럽긴 했다. 그러나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 전 시장은 1000만 시민이 사는 대한민국의 수도를 이끄는 자리에 10년을 앉아 있었다.
 
  오 전 시장은 박 전 시장의 ‘옥탑방 체험’ 얘기를 꺼냈다. 박 전 시장은 취임 후 7년이 지난 2018년, 서울 삼양동의 한 옥탑방에서 한 달간 ‘옥탑방 체험’을 해 당시 화제가 됐다. 그게 또 하필 삼양동이었다. 오 전 시장은 어릴 적 삼양동 판자촌에서 살던 시절을 가장 가난했던 날들로 회고한 적이 있다.
 
  “그때 박 전 시장이 나름대로 고생을 하고 나와서 한 말이 이겁니다. ‘강남북 균형발전을 추진하겠다.’ 제 귀를 의심했어요. 서울시장은 선거 공약부터 강남북 균형발전을 넣어요. 임기 초반에 가장 집중하는 게 강남북 균형발전이고 자나 깨나 고민하는 게 강남북 균형발전이에요. 그럼 그동안은 강남북 균형발전을 추진하지 않은 건가요. 어이가 없었어요.”
 
  이후 박 전 시장은 경전철, 동북권 개발 등 몇 가지 강북 발전안을 내놓았다. 대부분 오세훈 서울시에서 추진했는데 박 전 시장이 취임 후 백지화한 정책이었다.
 

  ― 서울시가 광화문광장 재정비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광화문광장 재정비안은 박원순 시장의 생각이었다고 보지 않아요. 승효상(承孝相) 건축가가 문재인 대통령의 고등학교 동기죠. 이분이 박 전 시장이 취임하자 서울시 실세로 등장합니다. 서울시 총괄건축가라는 신설된 자리를 맡아 서울시 건축행정의 상왕(上王) 역할을 하기 시작했어요. 박 전 시장의 사실상 핵심 참모 역할을 한 거죠. 광화문광장은 그분의 개인적인 한(恨)풀이라고 생각합니다.”
 
  ― 한 맺힐 일이 있었나요.
 
  “2005년 광화문광장을 조성할 때 중앙안·편측안·양측안으로 3가지를 놓고 비교를 했어요. 전문가 패널조사와 일반 시민 여론조사를 해 다각도로 여론수렴을 했지요. 압도적으로 중앙안이 나왔어요. 승효상씨는 당시 편측안을 제안했어요. 바로 이번에 공사하는 그 안입니다. 본인의 제안이 채택이 안 되자 한이 맺혔던 것 같아요.”
 
  승효상 건축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을 설계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에선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을 맡고 있다.
 
  오 전 시장은 몇 번이나 ‘서울시 얘기는 그만하자’고 했다. 서울시장으로 보낸 5년은 그에게 자산이자 멍에인 것일까. 서울시정 얘기를 할 때 그는 유독 신나 보이면서도 불만스러워 보였다.
 
 
  結者解之 앞에 有口無言
 
  박 전 시장이 사망한 직후 주식 시장에선 이른바 ‘오세훈 테마주’가 폭등했다. 돈만큼 인간사에 민감하게 예민한 게 있을까. 그가 피하고 싶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 결자해지(結者解之)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 2021년 4월 재보선에 안 나가십니까.
 
  “저 때문에 박원순 시장이 취임했다는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지요. 그분이 잘해서 서울을 계속 발전시켰다면 제가 이 정도로 면목이 없진 않겠죠. 결자해지를 말하는 분들 앞에선 제가 유구무언(有口無言)입니다.”
 
  ― 절대 안 나가세요.
 
  “나라에 기여하는 방법이 꼭 서울시장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지난 10년간 이런 상황이 오리라 예상하고 준비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잖아요. 10년간 한순간도 게으름을 부리지 않고 대선을 준비해왔어요. 서울시장을 중도하차했다고 해서 다시 그 자리로 가는 게 결자해지일지, 그게 국민에 대한 도리이고 사회에 기여하는 길일까요. 고민이 됩니다.”
 
  ― 만약 국민의힘이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로 중지(衆志)를 모은다면.
 
  “당이라는 곳이 중지를 모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닙니다. 불가능한 전제를 놓고 고민할 필요가 없어요. ‘당신 아니면 안 되니 꼭 나와달라’ 이런 얘기를 할 사람이 일단 없습니다. 경선관리위원회도 꾸려졌고, 두세 사람이 이미 출마 선언도 했어요. 이런 상황에서 당대표나 원내대표가 ‘이 사람들은 안 되고, 이 사람이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죠.”
 
  ― 경선은 안 나간다는 말씀이네요.
 
  “그렇죠.”
 
 
  반기문과 윤석열
 
  그는 지난 대선에 주자가 아닌 조력자로 참여할 뻔했다.
 
  ― 지난 대선 때 반기문(潘基文) 유엔 총장을 돕기로 했지요. 반 총장은 왜 불출마를 결정했나요.
 
  “그때 제가 바른정당에 동참했지요. 합리적 보수라는 건 사실 명분이고 실제 이유는 사람이었어요. 반 총장이라는 인물을 통해 좌파 집권을 막아보자는 거였죠. 그분이 귀국 후 저에게 ‘선거를 책임지고 치러달라’고 부탁을 해오셨어요. 저로서는 사실 자존심 상하는 제안이었어요. 저도 대권주자 중 한 명이었으니까요. ‘당에 들어가셔야 한다’고 강권을 했어요.”
 
  ― 바른정당으로 들어오라고 한 건가요.
 
  “‘밖에 계셔서는 대선의 승부를 낼 수 없다. 어느 당이든 들어가셔야 한다. 새누리당에는 죽어도 안 들어가신다고 하니 바른정당이라도 들어오셔야 자금 문제도 해결된다’고. 그런데 그분은 마음이 상한 것 같았어요. 신당 창당이나 독자세력화를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 너무 갑자기 불출마 선언을 했지요.
 
  “자금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고 계셨던 것 같아요. 짐작건대는 주변에서 이렇게 말해놓은 듯합니다. ‘활동을 시작하면 후원금으로 자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그때는 후원회가 결성이 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공식적으로 다른 사람의 금전적 지원을 받아서 선거운동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었거든요. 나중에 들어보니 그게 중도하차의 굉장히 큰 원인이었던 것 같아요.”
 
  그는 지금 지지율이 고공행진 중인 윤석열 검찰총장도 정치권에 들어오려는 순간 반 총장처럼 고민을 맞닥뜨리게 될 거라 말했다.
 
 
  ‘기본소득’ 대신 ‘안심소득’
 
  절치부심(切齒腐心)이라고 해야 할까. 그는 지난 세월 동안 공부를 꽤 열심히 해온 듯했다. 2주에 한 번씩 각계 전문가와 함께 하는 공부 모임을 2년간 해왔다. 5년 전부터는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에서 강의도 하고 있다. 학생들과 다양한 주제로 토론식 수업을 해왔다. 그의 말이다.
 
  “지난 10년간 천착하던 주제는 이겁니다. ‘왜 어떤 나라는 잘사는데 어떤 나라는 못살까.’ 그 차이는 결국 인센티브 시스템입니다. 열심히 한 만큼 성과가 돌아오면 사람들은 열심히 일합니다.”
 
  그가 ‘복지’에 일종의 성과 보상 원리를 접합한 ‘안심소득’을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겠다. 얼핏 명칭이 비슷해 보이지만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주장하는 ‘기본소득’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기본 소득은 세금으로 모든 가구에 일정 금액을 똑같이 나눠주겠다는 정책이다.
 
  안심소득을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2023년 기준으로 4인 가구의 중위 소득은 6000만원으로 추산할 수 있다. 4인 가족으로 이뤄진 A가구의 연소득이 6000만원보다 모자라면 모자란 금액의 절반을 국가가 현금으로 지원해준다. 연소득이 3000만원이라면, 모자라는 금액 3000만원의 절반인 1500만원을 지원받는다. 연소득이 전혀 없으면 3000만원을 지원받는다.
 
  결국 연소득 6000만원 이하 가구의 경우, 본인이 일해서 버는 만큼, 국가 지원금을 포함한 총소득이 늘어난다.
 
  ― 수급자의 도덕적 해이가 상당 부분 방지되겠네요.
 
  “기초수급자로 선정된 사람이 일할 기회가 생겨도 수급자 자격을 박탈당할까 봐 일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지요. 안심소득제도에선 내가 버는 돈은 다 내 거예요. 6000만원에 미달하는 부분에 대해서 50%를 채워주는 것이고요.”
 
  ― 재원 조달엔 문제가 없나요.
 
  “53조원이 필요합니다. 이 중 11조원은 기존에 기초생활수급자들에게 주어지는 생계급여, 주거급여, 자활급여와 국세청에서 지급하는 근로장려금에 소요되는 예산을 활용하면 됩니다. 나머지 42조원은 늘어나고 있는 복지 재정에서 충당하면 됩니다. 매년 30조원 이상 복지 재정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2023년에는 90조원이 됩니다. 이 중 절반을 안심소득 예산으로 편입하면 됩니다. 별도의 증세가 필요 없는 거죠.”
 
  ― 이재명식 기본소득과 전혀 다른 제도네요.
 
  “안심소득은 우파의 정책이에요. 전형적인 우파 경제학자인 밀턴 프리드먼이 주장한 제도입니다. 시카고학파의 적통을 이어받은 박기성 성신여대 교수가 한국 현실에 맞게 창안한 겁니다.”
 
 
  3기 신도시 ‘반값아파트’로 공급해야
 
2019년 2월 27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제3차 전당대회에서 당대표 후보들이 단상에 올라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진태, 오세훈, 황교안 후보. 사진=조선DB
  ― 부동산 폭등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반값아파트’를 제안하셨더군요.
 
  “반값아파트는 사실 바람직한 정책은 아니에요. 몇몇 분들에게만 로또가 될 수도 있잖아요. 비상시국이기 때문에 얘기하는 겁니다. 너무 폭등했잖아요. 이럴 때는 시장에 충격요법이 필요합니다. 그것도 많은 물량을 공급해야 해요. 물량이 적으면 안 하느니만 못합니다.”
 
  그가 제안한 반값아파트 공급은 중앙정부의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서울시의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주도해 주변 시세보다 훨씬 싼 평당 3000만원의 아파트를 시장에 투하하는 방식이다.
 
  ― 반값아파트는 어디에 공급하나요.
 
  “지금 3기 신도시 토지를 수용하는 단계거든요. 3기 신도시에 반값아파트를 도입해서 너무 오른 것을 떨굴 필요가 있어요. 집 없는 서민들은 얼마나 박탈감이 큽니까. 시간이 지나서 폭등한 집값이 고착되면 갑자기 못 낮춥니다. 경제 운용 기조에 굉장한 무리가 오고 부담이 오니까요.”
 
  ― 반값아파트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하는 것만으로도 일단 폭등세가 진정될까요.
 
  “반값아파트를 대량 공급하겠다고 발표하면 시장에 심리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반값아파트가 많이 공급된다고? 기다려야겠네’ 하고. ‘영끌’해서 사려는 사람들이 일단 기다리게 되잖아요. 문재인 정부 사람들은 ‘집 사지 말라’고 하잖아요. 그런 말을 하면 그게 시장에서 먹힙니까?”
 
  ― 국민의힘이 정권을 탈환하려면 소위 ‘중도’를 공략해야 하나요.
 
  “중도보다는 ‘스윙 보터(swing voter)’라고 표현하면 이해가 빠를 겁니다. 그들 중엔 평소엔 정치에 관심 없는 분들이 많아요. ‘정치 무관심층’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수 있어요. 그때그때 판단에 따라 우파도 좌파도 지지할 수 있어요. 특정 정치성향으로 분류하긴 어렵지만 정치에 대한 나름대로의 관(觀)이 있어요.”
 
  ― 그렇군요.
 
  “우파적 입장을 강화하는 걸로는 이 분들이 우리 쪽에 투표하도록 할 수 없습니다. 탈정치적인, 더 정확하게는 실용적인 정책이 더 어필할 수 있어요. 이 분들은 당파성에 치우친 분들은 문제 있다고 생각해요. 민주당 쪽으로 보면 ‘대깨문’, 우리 쪽으로 보면 ‘태극기’로 불리는 분들, 이런 분들에게 거부감을 갖고 있는 거죠. 이런 세계관과 인생관을 가진 분들을 통틀어 중도라 부르는 겁니다.”
 
  ― 그분들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보시는군요.
 
  “2019년 전당대회가 그 논쟁의 장이었어요. 황교안 전 대표는 ‘우익보강’을, 저는 ‘중도지향’을 주장했어요. 우익을 보강하면 중도에 있는 분들은 멀어집니다.”
 
 
  탄핵 사과해야
 
  ― 어떤 지도자를 존경하시나요.
 
  “백범 김구 선생의 〈나의 소원〉을 읽어보면요. 이게 80~90년 전에 쓴 글인가 싶어요. 지금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우리의 부는 우리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힘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도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문화의 중요성을 느낍니다.”
 
  그를 만나러 가는 길에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대국민 사과가 임박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 차례 미루었던 것을 기어이 하기로 했단 말이다.
 
  ― 김종인 위원장의 대국민 사과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분이 선거에 의해 선출된 당대표라면 사과의 의미가 크겠죠. 국민도 사과를 받아들이고 우리 당도 일단락을 짓고 심기일전할 수 있을 텐데, 비대위원장이 하면 김종인 위원장의 개인적 판단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거죠. 효과가 반감되는 겁니다.”
 
  ― ‘우리는 탄핵에 책임이 있는 정당이다. 사죄와 반성이 늦었다’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쓰셨지요.
 
  “말이 나왔다면 해야지요. 이렇게 됐는데 안 하면 사과도 안 하는 정당이 됩니다. 비대위원장이 사과는 하시되 당내 논란이 불거지지 않았으면 좋겠고, 이 무능하고 무도한 정권 탄생에 대해서도 함께 사과를 하시는 것이 좋겠죠.”
 
 
  오세훈의 10년
 
  미국 일리노이대학 심리학과의 패트릭 코리건(Patrick W. Corrigan) 교수는 ‘사회적 낙인(烙印)’을 연구했다. 그가 연구한 걸 보면 누군가에게 씌워진 낙인, 나쁜 인상을 지우기 위해 3가지 방법을 시도해볼 수 있다. 저항, 교육, 접촉.
 
  오 전 시장의 경우로 예를 들어보면 이렇다. ‘저항’은 말 그대로 반발하는 거다. ‘내가 시장직을 사퇴한 게 뭐 어떠냐. 반(反)포퓰리즘을 위한 것 아니었나’. ‘교육’은 당시 상황과 자신의 입장을 정확하게 알리는 거다. ‘접촉’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 소위 스킨십이다.
 
  코리건 교수가 연구해보니 저항은 낙인을 지우기는커녕 상대가 더 반발하는 부작용이 나타난다고 한다. 더 싫어하게 된다는 얘기다. 낙인을 옅게 하는 방법은 결국 교육과 접촉이었다. 소통과 접촉이 잦을수록 오해가 풀린다는 얘기다.
 
  ‘아이들 밥 주기 싫어서 시장 그만둔 사람’. 오 전 시장을 비난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그에게 새기고 싶어 하는 악의적인 낙인이다. 바라는 대로 대선행(行) 열차를 탑승하더라도 오 전 시장은 도처에서 들이미는 이 낙인과 몇 번이든 마주해야 할 것이다. 오세훈의 지난 10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그 기간에 그가 나눈 소통과 접촉의 밀도(密度)에 그의 정치 행로가 달려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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