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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이후 최초 인터뷰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

“이 정권이 연장되면 국가적 재앙… 일부 주사파 제외 모든 세력 연대하자”

글 :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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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류 국가로 도약하기 위해 ‘캐치올 파티’ 만들어야
⊙ 탄핵 동조는 천인공노할 정치적 행위… 당대표에서 내려온 날 박정희 묘소 찾아
⊙ 청와대 근무 시절 박근혜 대통령 수없이 獨對… 不通 아니었다
⊙ 국민의힘, 진정성 다한다면 호남표 가져올 수 있어

李貞鉉
1958년생. 광주 살레시오고·동국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 국회정책연구위원, 국회의원 비서, 한나라당 미디어기획단장,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홍보수석, 18~20대 국회의원, 새누리당 당대표
사진=조준우
  4년 만의 인터뷰라고 했다. 몹시 떨린다고도 했다. 한때 기자를 만나는 것이 업(業)이었던 이에게 이런 말을 들을 줄 몰랐다. 이정현 전(前) 새누리당 대표에게는 ‘호남 출신의 보수당 의원’과 ‘박근혜의 입’이라는 타이틀이 따라다닌다. 이는 싫든 좋든 그의 대표적인 이미지다.
 
  하지만 그를 이 두 가지로만 압축하기는 부족하다. 그는 1984년 정계(政界)에 입문한 37년 차 정치인이다. 정당과 국회, 청와대, 선거현장을 두루 경험했다. 국회의원 비서와 말단 사무처 간사병부터 시작해 3선 의원에 최고위원 두 번,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과 당대표를 지낸 베테랑 정치인이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 당이 내분 상태에 빠진 2016년 12월에 새누리당 당대표 자리를 내놓고 탈당했다.
 
  ― 4년 만에 인터뷰에 나선 이유는요.
 
  “(잠시 침묵) 음…, 사실 하고 싶은 얘기가 정말 많았거든요.”
 
  ― 그런데 왜 그동안 침묵했나요.
 
  “그게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 누구에 대한 도리요.
 
  “국민에 대한 도리요. 필부유책(匹夫有責)이라는 말이 있잖습니까. 하물며 저는 다죠. 책임과 가책으로 몇 번 심경에 위험한 고비가 있었습니다.”
 
  이제 그는 무덤덤했다. 지난 시절을 많이 내려놓은 듯해서 과연 옛날 얘기를 하며 인터뷰를 이어갈 수 있을지 걱정될 정도였다.
 
 
  최고의 善은 정권 교체
 
2016년 8월11일,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의 인사말을 듣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이정현 대표는 '박근혜의 입'으로 불렸다.
  “제가 정치권에 몸담으면서 별의별 상황을 다 지켜봤지만 문민(文民) 이후 지금과 같은 상황은 처음 봅니다. 문재인 정부는 3년 동안 국가의 근간과 근본을 흔들어놨습니다. 남은 2년에 5년이 더 연장된다면 원상 회복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정권을 대체할 세력이 없다는 것, 야당의 모습 또한 실망스러웠습니다. 단순한 비난, 비판, 불만을 넘어 청와대와 정당, 국회에 몸담았던 사람의 눈으로 봤을 때 왜 이 정권이 연장되면 국가적 재앙인지를 국민들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 지난 4월 총선에서 여당이 180석을 얻어 충격이었나 보군요.
 
  “제 우려보다는 덜 나왔습니다. 다행이죠. 이해찬(李海瓚)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보수 궤멸’을 줄곧 말했습니다. 20년 집권하겠다, 생전에 권력을 내놓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끔찍한 얘기입니까. 보수를 궤멸시키면 좌편향 정당만 남습니다. 이념전쟁 선포입니다. 민주주의 중단 선언입니다. 헌법 부정 선언입니다. 말로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보수 궤멸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4+1’ 연합을 통해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괴물 선거법’을 관철한 것도 보수 궤멸 혁명의 일환이었습니다. 선거 기간 중 종로에 출마한 이낙연(李洛淵) 후보가 당정 회의 결과를 발표한다는 핑계로 전(全) 방송 생중계 상태에서 ‘전 국민 재난지원금 100만원 지급’을 직접 발표했습니다. 제 체감상 뉴스의 약 85%는 코로나19 소식이었고, 약 5%는 윤석열(尹錫悅) 검찰총장 장모 뉴스, 약 5%는 N번방, 약 3%는 재난지원금 뉴스, 약 2%는 야당의 막말과 공천 파동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41.3%가 비(非)민주당을 선택한 것은 기적입니다. 정권 실정(失政)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죠.”
 
  ― 친정인 국민의힘이 무력해 보이지 않던가요.
 
  “제1야당으로서 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없죠. 무슨 전략·전술이 나오겠습니까. 리더와 리더십이 사실상 부재상태에서요.”
 
  ― 제1야당이 무력하지만 정권 교체의 희망은 있는 겁니까.
 
  “정권 교체는 필연입니다. 문재인 정권은 자체 모순으로 무너질 겁니다. 외교부터 남북, 경제, 사회, 정치 등 단 한 분야도 성공하거나 나아진 곳이 없습니다. 청년실업, 양극화, 서민경제, 법질서, 안전, 안보도 최악입니다. 정부 재정과 국가 부채의 증가 속도는 우려스럽습니다. 민주를 주창하던 사람들이 국민을 이렇게 ‘졸(卒)’로 볼 수 있는 건가요? 자유를 갈망했다는 사람들이 인간의 기본적 자유마저 이렇게 억압하는 것이 말이 됩니까. 현시점에서 최고의 선(善), 최고의 정의는 정권 교체입니다.”
 
 
  문재인 정부 사람들은 ‘무서운 사람들’
 
  이정현 전 대표는 ‘보수 궤멸’이라는 단어에 유난히 발끈했다. 이해찬 전 대표가 그 발언을 한 것에 대해 “철회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또 그는 문재인 정부 사람들을 ‘무서운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문재인 정권의 핵심 실세들 중 일부는 80년대 이전 민주화 세력들과 다르다고 봅니다. 주사파로 불린 사람들도 있습니다. NL(민족해방)계, PD(민중민주)계임을 자청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세력이 ‘20년을 집권하겠다’고, ‘보수를 궤멸시키겠다’고 합니다. 이 나라를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만들고 키워온 세력들이 궤멸당하고만 있을 수 있습니까? 보수 궤멸 혁명세력의 장기집권은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 동교동계, 상도동계 같은 민주화 세력과 현 정권 일부 인사들이 다르다는 건가요.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80년대 운동권 세력 일부는 한때 진영을 만들고 치열하게 생존해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권력 내외부에 있고 기득권 세력이 된 겁니다. 과거 DJ(김대중)나 YS(김영삼)계와 다르다고 봅니다. 군부 정권의 장기집권 저지를 주장하던 민주화운동 세력과는 결이 다르다고 봅니다. 이들이 국정 분야에 급진적인 변화를 꾀하면서 3권 분립을 포함해 나라의 근본이 뒤틀린다고 생각합니다.”
 
  ― 그들이 문재인 정권 3년간 국가의 근간을 흔들었다는 건가요.
 
  “현 정권은 유례없는 청와대 중심 국가고, 청와대 안팎의 핵심은 주사파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민졸공화국’입니다. 주권은 대통령에게 있고, 권력은 청와대에서 나옵니다. 국민을 졸로 보지 않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을 서슴지 않고 합니다.”
 
  ― 이 정권 사람들이 무섭다고 했는데요.
 
  “이 사람들은 차기 대선에서 지지 않을 겁니다. 왜냐면? 지면 죽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지율을 떠받치고 선거에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겁니다. 민주주의는 여든 야든 선거에 지기도 하고 이기기도 하는 것인데, 정권을 내놓지 않겠다고 하지 않습니까? 20년 집권을 집권 세력이 결정하나요? 그러면 국민은 뭡니까? 졸입니까?”
 
 
  문재인 정부의 3政 문란
 
  ― 어떻게 국가의 근간을 흔들고 있습니까.
 
  “3정(政) 문란입니다. 조세·재정 질서, 법 질서, 공직 질서가 문란합니다. 문재인 정부는 정권 잡은 사람들 법과 국민·야당에 적용되는 법이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백선엽법’과 ‘김원봉법’이 다릅니다. 사람에 따라, 역사적 사안에 따라 다르게 적용합니다. 이렇게 법 질서가 문란하면 대한민국의 근간은 흔들립니다. 공직 질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사는 임명직과 선출직이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임명직에는 선거 캠프 출신과 민주당 인사들로 사상 유례없는 ‘정치 빚 갚기’ 낙하산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코드 인사보다 더 문제는 청와대와 국가 기관이 선출직에까지 관여한 의혹이 수사되고 있다는 겁니다.”
 
  ― 울산시장 선거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지난 3년 동안 수많은 사건이 있었지만 유독 울산시장 선거를 주목하는 이유는 이런 유의 선거부정 의혹은 민주주의의 부정이기 때문입니다. 울산시장 선거, 드루킹 여론조작 사건 등 선거 관련 의혹은 끝까지 파헤쳐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의 3정 문란 중 마지막은 재정·조세 문란입니다. 시골 할아버지가 ‘시방 나랏돈이 썩어 자빠졌제?’ 하시더군요. 경제성장은 마이너스인데 돈 뿌리기는 고장 난 수도꼭지입니다. 온 나라가 공짜판, 공사판입니다. 조선시대 3정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세금을 쥐어짜 걷습니다. 이대로 가면 조세저항 시민혁명이 일어날 겁니다.”
 
  ― 정권 교체를 하려면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야당에 대통령감이 없다고 합니다.
 
  “YS와 DJ를 제외하고 처음부터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이 대통령이 된 사례는 없습니다. ‘나요, 나’를 외친 사람들은 그 외침 자체가 상대의 공격 표적이 됩니다. 모태 국회의원과 모태 대통령은 없습니다. 메시아가 나타나는 것도 아닙니다. 이제는 정말 새로운 인물과 세력이 나설 차례입니다.”
 
 
  시대 과제는 끝났다
 
  ― 새로운 세력이라… 말은 그렇게 하는데 쉽겠습니까.
 
  “정치는 생물입니다. 살아 있다는 말이고 살아 있는 것은 수명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정치에서 진영 정치는 주사파를 끝으로 마감돼야 합니다. 지역, 이념, 직업, 시대 과제를 주도한 세력들의 역할은 끝났습니다. 배고픔을 해결했고, 민주주의를 이뤘고, 인간다움과 분배를 추구했습니다. 독립운동 세력, 산업화 세력, 민주화 세력이 시대 과제를 적절히 잘 수행해왔습니다. 이제 그런 시대 과제는 어느 정도 이루어졌습니다. 문제는 모든 것이 궤도에 올랐지만 아직은 비정상적인 면이 적지 않습니다. 모든 분야에서 정상화를 위한 범국민운동이 필요합니다. 이제 새로운 시대 과제는 ‘일류 국가’를 만들어가는 것이고 이를 위해 우리 국민이 한 번 더 뭉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일류 국가요.
 
  “일등 국가가 아닙니다. 선진 선도국가, 구석구석 비정상적인 것들이 정상화되는 일류 국가를 건설해 미래 세대에게 물려줘야 합니다. 일류 국가는 국가 안보와 국민 안보를 철저하게 지키는 나라입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엄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나라입니다. 일류 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정당, ‘캐치올 파티(catch-all party·국민 전체를 대표하고자 하는 정당)’가 등장해야 합니다. 주사파를 제외한 진보와 보수를 다 아우르는 세력이 나서야 합니다. 영국의 제3의길, 프랑스 마크롱의 전진당, 독일의 기민당과 사민당의 연정, 일본의 자민당, 클린턴의 신(新)자유주의 수용은 보수와 진보의 영역이 따로 있지 않다는 역사적 증거입니다. 캐치올 파티가 답입니다.”
 
  ―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가능합니다. 입으로 하는 정치, 상대를 비방하고 과거에 천착하고 진지와 진영을 구축해서 끼리끼리 하는 정치, 기득권을 형성하는 정치는 끝내야 합니다. 외교관, 과학자, 대기업, 중견 중소기업, 소상공인, 농어민을 포함해 다양한 분야에서 현장 경험이 있는 전문가들을 선출직으로 뽑아야 합니다. 미래 세대인 20~30대 젊은층의 정치 참여를 늘려야 합니다. 자유, 민주, 평화 수호를 위한 국민 연대를 띄워야 합니다. 비정치권 인사들과 호남 DJ 세력들, 국민의힘 세 세력이 수평으로 연대해서 새로운 정치 세력으로 재편돼야 합니다.”
 
  ― 이상적인 얘기네요.
 
  “YS가 3당 합당 결단을 하고, DJ와 JP(김종필)가 연합했습니다. 이제 ‘역DJP연합’을 해야 합니다. 현 집권 세력인 주사파를 제외한 합리적·이성적인 모든 세력이 연대해야 합니다.”
 
  ― YS, DJ, JP라는 ‘정치 9단’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 아닙니까.
 
  “아닙니다.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인한 수평정치 시대입니다. 20세기 재래식 정치를 마감하고 21세기형 새로운 정치 세력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국민 전체가 다양한 형태로 동시다발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세상입니다.”
 
 
  박근혜의 ‘親朴’ 이전에 박정희의 ‘親朴’
 
2010년 4월 8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이정현 의원이 얘기를 하고 있다.
  ‘정치인 이정현’의 최고 정점은 그가 당원들로부터 40.9%의 지지를 얻어 새누리당 당대표를 했을 때다. 그는 2016년 8월 당대표가 됐고,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직후 당이 분열되자 2016년 12월 자리에서 내려왔다.
 
  “정치인으로서 당대표는 최고의 꿈이었습니다. 호남에서 수없이 떨어지면서도 무릎으로 기어서 결국 당선됐습니다. 이런 정치를 전국화하고 싶었습니다. 새누리당을 완전히 갈아엎고 싶었습니다.
 
  나름 한 일도 있습니다. ‘서류 정당’ ‘보고서 정당’을 없앴고, 당대표부터 소속 의원까지 무조건 현장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부산 폭우 재난이 있었을 때 밤 8시 반에 부산에서 당정(黨政) 회의를 했습니다. 의원들 세미나에 가지 않았습니다. 동료 의원들에게 욕을 먹었지만 당대표가 인사말만 하고 떠나는 의원 세미나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감사패도 없앴습니다. 권위주의 문화를 전부 없애고 싶었습니다. 밤낮 없이 일하는 정책정치, 통합정치를 정착시키고 싶었습니다.”
 
  ― 넉 달 만에 내려와서 아쉬웠겠습니다. 당대표에서 내려온 날은 뭐를 했나요.
 
  “고생한 직원들이랑 곰탕으로 점심을 먹고, 운전비서랑 단둘이 국립묘지에 갔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육영수 여사 묘를 찾아 30여 분 동안 마음의 대화를 했습니다. 이후에 무명용사 탑 앞에서 한겨울에 2시간여 동안 혼자 앉아 있었습니다. ‘조국이 뭐라고, 당신들은 20대에 하나뿐인 목숨을 내놓았나. 그러고도 이름도 밝히지 못한 채 무명용사로 묻혔느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그들만큼 목숨을 걸고 국가에 충성했느냐고 자책했습니다.”
 
  ― 박정희 대통령 묘에서 무슨 마음의 대화를 했나요.
 
  “(긴 침묵) 저는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과 리더십을 흠모합니다. 저는 전남 두메산골에서 컸습니다. 주변에 남자들은 주로 머슴을 살고 여자들은 남의 일을 하고, 나이 어린 여자애들은 식모살이를 하고. 춘궁기에 쌀이 떨어져 굶는 이웃을 보고 자랐습니다. 나중에 그들 중 상당수가 중산층으로 살게 된 것은 산업화 덕분입니다. 저는 박근혜의 ‘친박’이기도 하고 박정희의 ‘친박’이기도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내가 잘못했거든 내가 죽은 뒤에 무덤에 와서 침을 뱉어라’는 말에 감동합니다. 지도자는 애국애족에 그 정도 결기와 배짱, 신념은 있어야 합니다.”
 
 
  청와대 근무 시절 박근혜 대통령과 수없이 독대
 
2016년 8월 9일, 새누리당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선출하는 제4차 전당대회가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열렸다. 다음날, 이정현 의원이 당 대표로 선출됐다.
  ― 정치인에게 있어서 배신은 뭐라고 생각합니까.
 
  “저는 배은망덕하게 살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 탄핵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입니까.
 
  “훗날 정치권력 찬탈의 한 사례로 다뤄질 겁니다. 탄핵 과정에 동조해 자기 당 대통령을 끌어내린 사람들은 정말…. (잠시 침묵)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짓을 한 겁니다. 나는 누구도 사람 자체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시 새누리당 의원의 탄핵 동조 행위 그 자체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 주군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어서 별 수 없었다고 합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주군이 어디 있습니까? 대통령은 주군이 아닙니다. 국가의 근간을 송두리째 흔들며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문재인 정권에 대해서, 그랬던 분들이 지금 침묵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후 대통령 후보, 당대표 후보, 비대위원장 후보를 한 명 제대로 내세우지도, 스스로 나서서 지지받지도 못하는 상황을 어떻게 설명하던가요?”
 
  ― 이 대표에게 박근혜 대통령은 주군이 아니었나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제가 소속된 무리에서 그분은 국민이 선택하고 당원이 선택한 리더였습니다. 우리가 뽑았으니 우리가 협조하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자기 당 소속 대통령을 적극 돕는 것은 대통령과 함께 애국하고 국민을 위해 일하는 공동책임 수행입니다. 지금이 전제주의 국가도 아닌데 주군이라니 적절한 단어가 아닙니다.”
 
  ― 당시 ‘십상시’ ‘복심’ ‘내시’라는 민주당 일각의 비난도 있지 않았나요.
 
  “대통령을 보좌하는 창와대 참모나 여당 의원을 그들이 그렇게 불렀다면 사회수석, 민정수석에 비서실장까지 한 문재인 대통령은 내시 중의 내시, 십상시 중의 십상시가 대통령이 된 것이겠네요? 요즘은 대통령뿐 아니라 전·현직 장관의 내시 노릇까지 하는 사람들이 차고 넘치는 것인가요? 정도껏 해야지요. 자기 얼굴에 침 뱉기입니다.”
 
  ― 박근혜 대통령이 여왕처럼 굴었다고 하는데요.
 
  “여왕이라는 말은 언론 용어이기도 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쓰는 말 중 하나입니다. 우리 시스템이 여왕을 용납하는 구조도 아니고, 여왕이었다면 이런 일을 당하고 있지도 않았을 겁니다.”
 
  ― 박근혜 대통령이 비서실장조차 독대(獨對)하지 않았다, 불통(不通)이었다고 합니다.
 
  “거짓말(가짜) 뉴스입니다. 셀 수 없이 독대했습니다. 저만 해도 독대는 물론 하루 전화통화만 수십여 통 한 적도 있습니다. 대통령마다 일하는 스타일이 다른 겁니다. 대통령에게 독대는 최상일 수도 있지만 최악의 스타일일 수도 있습니다.”
 
  ― 전화만 하고 대면은 안 한 것 아닙니까.
 
  “대통령이 모든 분야의 전문가도 아닌데 어떻게 혼자 결정하겠습니까? 이 정부 들어 장관들이, 집권당 대표가 대통령과 수시로 독대한다는 보도를 들은 적 있나요?.”
 
  ― 탄핵 후에 박근혜 대통령과 만난 적 있습니까.
 
  “다음 기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26년 만의 새 역사를 쓴 정치인
 
이정현 전 대표는 2013년부터 2014년까지 청와대 정무수석과 홍보수석을 지냈다. 2013년 6월 19일, 이정현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지역발전위원회 인선발표를 하는 모습
  이정현 전 대표는 1984년 ‘민주정의당’에서 시작해 당 이름이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으로 바뀌었지만 보수정당 한 곳에만 머물렀다. 출생지는 전남 곡성, 고등학교 시절까지 광주에서 지낸 호남 토박이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찾아가 보수당에 뼈를 묻었다. 고향에서 욕도 많이 먹었다. 그가 2004년 한나라당 후보로 광주에 출마했을 때 그가 받은 표는 720표, 전체의 1.03%였다. 명함을 내밀면 고향 사람들은 그의 면전(面前)에서 명함을 찢어 뿌렸고, 유세 현장을 찾는 사람도 한 명 없었다. ‘정현이네 집이랑은 품앗이도 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는 터에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만 애꿎은 피해를 봤다.
 
  이후 그는 2008년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는데, 2012년 새누리당 후보로 광주에 출마했을 때 또 떨어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인연이 닿은 것도 ‘제발 호남 포기를 포기해달라’고 격정 토로를 한 자리에서다. 그렇게 맺어진 인연으로 그는 박근혜 대통령의 곁에 머무르며 ‘박근혜의 복심(服心)’ ‘박근혜의 입’이 됐다.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청와대에 들어가 정무수석과 홍보수석(2013년 2월~2014년 6월)을 지냈다. 김선동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 의원직을 상실해 전남 순천·곡성에서 보궐선거가 치러진다는 소리와 함께 청와대를 나왔다.
 
  이정현 대표는 “고향에서 보궐선거가 치러진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요동쳤다”고 했다. 상대는 노무현 의원 보좌관 출신의 서갑원(徐甲源)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였다. 이정현 대표가 여론조사에서 선전하자, 당시 김한길(金漢吉) 대표, 이해찬·박지원 의원 등이 서갑원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호남을 찾았다.
 
  승자는 이정현 대표였다. 이로써 그는 1988년 소선거구제가 도입된 이래 26년 만에 ‘보수정당 후보 전남 당선’이라는 신기록을 세웠다. ‘720표가 6만 표’가 되는 데 걸린 시간은 10년이었다. 현재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 중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이정현 전 대표만큼 호남을 잘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호남의 마음을 얻는 법
 
청와대를 떠나 전남 곡성 재보궐선거에 출마한 이정현 전 대표가 당선된 뒤 순천 시민들에게 당선 인사를 하고 있다. 그는 선거 기간동안 자전거를 타고 유세지역을 샅샅이 돌았다.
  ― 국민의힘이 사실상 TK당으로 전락했다는 말들을 하는데요.
 
  “뭐 그렇게까지는 아니고요. 문재인 정부의 극심한 국민 편가르기로 저와 김부겸 의원이 타파하고자 했던 동서(東西) 갈등은 도루묵이 되었죠. 지역구도가 다시 더욱 심해진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 아직 희망이 있어요.”
 
  ― 희망이라…, 글쎄요.
 
  “호남인들의 사랑을 얻기 위한 진정성이 부족했습니다. 몸의 한 부분이 작다고 소홀히 하면 나중에 온몸이 아프거나 변고를 당합니다. 간이든 콩팥이든 팔다리든 아픈 곳은 똑같이 돌봐야 합니다. 저는 무릎으로 기어다녔습니다. 내 진심이 통할 수만 있다면 호남 지역 전부를 발바닥으로 걷겠다고 했습니다. 주민회관에서 주민들과 함께 막걸리 마시고, 같이 자고, 할머니들과 화투도 치고…. 말 그대로 서민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제가 나중에 선거 유세를 하면서 ‘미치도록 일하고 싶습니다. 저 일 한번만 시켜주십시오’ 하고 울부짖을 때 시민들이 같이 울었습니다. 나이 지긋한 분은 ‘니가 시방 미치겄다는데 어쩌냐. 요로코롬 미치게 일하고 싶다는디 어찌고 말리겄냐. 이번에는 한번 니가 해봐라’ 하고 저를 부둥켜안고 등을 두드려주시면서 우셨습니다. 호남 사람들에게는 가슴으로 다가가면 마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호남 사람들이 갖고 있는 호국과 민주화의 기여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국민의힘이 진심으로 공감해야 합니다. 충무공은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고 했습니다. 임란, 정란 등 국가 위기 때마다 수군·의병·승병으로 전장에 호남인들이 나섰습니다. 호남인들이 민주화에 기여한 점도 제대로 평가하면 좋겠습니다. 어느 지역인들 민주화에 대한 열기가 없었겠느냐마는 호남인은 큰 희생을 치렀습니다. 5·18 이후 민주화운동으로 인한 젊은 학생들의 희생이 최소화되고 국민의 인권이 신장된 것을 마음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오히려 5·18 전국화에 국민의힘이 나설 필요도 있습니다.”
 
  ― 이번에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광주를 찾았는데요.
 
  “백번 잘한 겁니다. 한 번에 그치지 않고 근본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안타는 점수가 안 됩니다. 후속 안타가 점수를 내잖아요? 퍼레이드로 이어져야 합니다.”
 
  ― 지역발전 소외도 늘 쟁점인데요.
 
  “보수는 호남 지역 현안과 숙원 해결에 오히려 앞장서야 합니다. 새만금사업은 33년째 진행 중입니다. 보수정당에서 완공과 활용 방안에 대해 적극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부산~광주 간의 경전선은 88년 된 철도입니다. 순천~광주 구간의 직선화·전철화 공기를 앞당기자고 제안해야 합니다. 40km 사정거리의 호크미사일 부대를 무등산 꼭대기에서 이전하는 것도 보수가 나서면 환영받을 겁니다. 광주 군사공항의 무안공항 이전에도 먼저 나서야 합니다. 또 중앙당과 향후 각급 인사에 호남의 젊은 인재들을 대거 발탁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호남 포기 전략을 포기하면 모든 선거의 판도가 달라질 겁니다. 배려가 아니라 수권을 하겠다는 정당의 기본자세입니다.”
 
  ― 그런다고 호남 민심이 변하겠습니까.
 
  “제가 증인입니다. 제가 입증했습니다. 호남 거주자들만 호남인이 아닙니다. 출향 호남인이 현지 거주자 수만큼 많습니다. 한술에 배부를 리 없지만 꾸준히 진정성을 갖고 일하다 보면 호남 사람들의 마음도 열립니다. 호남도 자신들이 문을 열어야 들어오기도 하겠지만, 자신들도 그 문으로 나가게 되죠.”
 
  ― 김부겸 전 의원과 친하십니까.
 
  “지역구도를 깨기 위한 헌신 동지죠. 훌륭한 분입니다. 말이 잘 통하는 구석이 있습니다. 기회가 되어 김부겸 의원이랑 방송에 함께 출연한다면 의미 있는 많은 대담을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with king’을 ‘without king’으로
 
2016년 12월 12일, 이정현 대표(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새누리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여한 모습. 그는 나흘 뒤 당 대표에서 사퇴했다.
  이정현 전 대표는 현재 야인(野人)의 신분이지만 최근 언론에 자주 이름이 거론됐다. 하나는 의과대학 증설 문제로 문재인 정부와 의사협회가 최근 갈등을 빚었을 때다. 이정현 전 대표는 2015년에 ‘국립보건의료대학 설립을 위한 법률안’을 발의한 적이 있는데, 이 때문에 여당에서는 ‘공공의대는 새누리당에서조차 추진했던 일’이라고 한다. 물론 이정현 전 대표의 발의와 현재 여당의 주장은 차이점이 있지만, 그는 또다시 과거 일로 ‘소환’이 됐다.
 
  윤영찬(尹永贊)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카카오 소환’ 논란 때에도 이정현 대표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윤영찬 의원은 얼마 전 자신들의 구미에 맞지 않는 뉴스를 편집한 카카오를 두고 ‘카카오, (국회에) 들어오라고 하라’고 해 포털 압박 논란에 휩싸였다. 야당은 이를 두고 ‘이정현 대표의 세월호 보도 개입보다 더 심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정현 전 대표는 청와대 홍보수석으로 일하던 시절 KBS에 기사를 빼달라 청탁한 사실로 유죄(有罪)를 받았다.
 
  ― 과거의 공공의대 법안 발의 때문에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더군요.
 
  “농어촌과 낙도, 오지, 군, 역병 연구 등을 위해 공공의료 인력 양성이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제가 발의했는데 그때는 법안 상정도 반대하던 사람들입니다. 서울 모 대학을 염두에 둔 법안을 내더니 다시 남원에 의전원 설립으로 입장을 바꾸고… 그러더니 지금 와서는 의사를 4000명 늘리고 공공의대를 몇 개씩 짓겠다고 합니다. 그랬다가 다시 원점회귀 상태로 돌아갔습니다. 정책 하나를 두고 입장을 다섯 번 바꿉니다. 정책이 팔랑개비입니다. 정권 연장을 위해서라면 손바닥 뒤집듯이 쉽게 바꿔버리는 겁니다. 조삼모사(朝三暮四)죠.”
 
  ― 윤영찬 의원의 ‘카카오 소환’이 이정현 전 대표의 ‘KBS 보도 개입’보다 과하다는 얘기로 또 거론되고 있습니다. 유죄를 받았는데 하실 말씀은요.
 
  “재판 과정에서 언론에 할 얘기가 없지 않았지만 검찰 조서와 재판 결과에 일절 토를 달지 않았습니다. ‘법원 판결을 존중한다’고 딱 한마디를 했습니다. 이제 언론 관련 법은 이정현이 판례입니다. 야당인 이정현이 유죄면 정부·여당 사람들도 같은 사안에 유죄여야 법치국가입니다. 여야에 적용되는 법의 잣대가 다르다면 그것은 법이 없는 나라, 즉 독재국가죠. 저는 이 정권 사람들이 권력 실세 비리에 대해서는 길거리에서 공소장 다 쓰고 죄 안 된다고 하고, 길거리에서 판결문 다 쓰고 무죄라고 주장하는 것을 지켜봐오면서 질렸습니다.”
 
  ― 다른 얘기인데요. 청와대 근무를 해보셨는데… 대통령과 청와대 영향력이 정말 그렇게 큽니까.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왕입니다. 통(統) 자가 거느릴 통, 다스릴 통입니다. 령(領) 자도 마찬가지인데 거기에 큰 대 자(大)까지 붙였습니다. 모든 것이 ‘왕과 함께(with king)’입니다. 주권은 대통령에게 있고 권력은 청와대로부터 나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시대든 청와대 영향력이 막강한 것은 정말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더합니다. 숫제 유사 전제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 막강한 힘이 여러 번 포착됐죠.
 
  “청와대비서실은 헌법에 한 줄도 없고 청와대비서실법도 없습니다. 정부 조직법상 두 줄만 있습니다. 나머지는 대통령령(令)일 뿐입니다. 청와대비서실은 전면에 나서서도, 결정을 해서도, 공적인 발언을 해서도 안 된다는 백악관 원칙을 따라야 합니다. 드러나서도 안 되고, 권력이 돼서도 안 됩니다. 이 정부는 유독 청와대 중심 국가입니다. 100만명의 각 부처 행정 전문가들을 제쳐두고 수십명의 청와대 핵심 인사들이 국정을 좌지우지합니다. 비서실장이 외교부·산업부 장관을 놔두고 UAE에 원전 문제를 해결하러 날아갑니다. 행정관이 육군참모총장을 불러내는 게 말이 됩니까. 검찰 개혁보다 더 최우선은 청와대비서실 권력 개혁입니다. ‘왕 없이(without king)’으로 바뀌어야 문명국입니다.”
 
 
  200만명이 본 이정현의 대정부 연설
 
  유튜브에서 ‘이정현 의원’을 치면 유독 눈에 띄는 영상이 하나 나온다. 이 대표가 마지막으로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연설을 한 지난 3월 국회 대정부 연설 영상이다. 당시 무소속 의원이던 그는 ‘지금은 국가난리 상태다!’라며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국정 연설을 했다. 한 유튜브 방송에서만 147만명이 봤다. 4개 유튜브 방송을 합하면 200만명이 넘게 봤다. 영상을 본 시청자들은 그에게 열광했다. 그는 국정 연설을 시작하기 전에 여느 국회의원들이 그러하듯 국회의장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하지 않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단상으로 올라갔다.
 
  “국무위원이 발언할 때 대통령에게 절합니까? 대법관이 대법원장에게 인사하고 발언합니까? 72년 된 국회에 비정상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관행과 의식, 제도와 법이 꽉 찼습니다. 국회부터 비정상을 정상화해야 합니다.”
 
  ― 그냥 관행적으로 그런다고만 생각했습니다.
 
  “민주주의 모범을 보여야 할 국회에서 의장은 국민 대표들을 내려다보는 황제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국회에 대한 국민 지지율이 1.9%예요. 모든 기관 중에서 신뢰도 꼴찌입니다. 국회 72년을 한번쯤 총정리해야 합니다. 국회의 기본적인 책무인 예산 심의와 결산을 원점에서 새로 정립해야 합니다. 지금의 국회는 권력 분립의 한 축이 아니에요. 예산심의 과정을 국민들이 다 알면 기절초풍할 겁니다.”
 
  ― 대략 짐작은 가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데요.
 
  “정부 예산이 예결위원들에게 넘어오는 시점은 아주 임박해서입니다. 어른 키의 10배쯤 되는 예산서가 한 트럭씩 배달돼요. 만화책도 그 기간 안에 읽을 수 없을 겁니다. 책자를 만든 기획재정부 장관도 그 예산서를 보고 문제점을 못 찾아낼 겁니다. 분석이 제대로 안 되다 보니 50명의 예결위원이 예산 심의 질의 대신 주로 정치적 쟁점이 되는 지적만 하다 끝납니다. 그러면 여야에서 12명으로 소위를 구성합니다. 한 2~3일 심의하다 다시 파행으로 가고, 또 3~4명으로 소소위를 구성해요. 이후 당 지도부들끼리 물밑 거래를 해서 거의 정부안대로 확정을 합니다. 그래도 염치는 있어서 멀쩡한 대낮 놔두고 꼭 새벽 3~4시에 통과시켜요. 그래놓고 밤새웠네 생색을 냅니다. 500조원이 넘는 국민 혈세를 대통령과 각 부처가 편성·집행하고 감사까지 다 합니다.
 
  오직 심의·결산해야 할 국회마저 이렇게 하면 사실상 대통령 마음대로 쓰도록 방치하는 거지요. 국회만 심의 확정권이 있으니까요. 결산은 더 졸속이죠. 문제제기는 항상 해왔지만 소용없는 일이죠. 국회에 맡겨둬서는 절대 고쳐지지 않을 겁니다. 영원히.”
 
  ― 방법이 있나요.
 
  “개헌 전이라도 국회법, 감사원법, 정부조직법 등 관련 법을 개정해서 정부 예산의 심의와 결산에 국회가 감사원의 조력을 받게 해야 합니다. 장기적으로는 감사원의 국회 이전은 필수고요. 국회는 지금까지 한 번도 외부 진단을 받아본 적이 없었어요. 국민 평가단을 구성해서 3~5년 기간을 두고 72년 총정리를 꼭 한번 해야 합니다.”
 
  ― 작심했으니 좀 더 얘기해보십시오.
 
  “개헌은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국가 문제입니다. 우리 헌법 자체가 잠정이고 임시였습니다. 헌법 제정을 몇몇 학자들이 아주 짧은 기간에 각국의 법을 참고해 만들었어요. 내각제가 순식간에 대통령제로 바뀌고, 내각제와 혼합된 대통령제가 나왔죠. 여태 아홉 번 개헌했는데 이는 전부 대통령의 정권 연장을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87체제 이후 6공 헌법도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모든 대통령이 개헌을 주창했죠. 개헌한다는 것은 ‘지금 헌법은 임시’라는 얘기죠. 헌법이 임시라면 하위법은 잠정입니다. 입시제도, 선거법, 부동산 관련 법, 조세 정책 등이 여반장으로 바뀌는 것도 헌법이 임시여서라고 생각합니다. 이 헌법을 매번 대통령이 자기 취향으로 바꾸려 의견을 내고, 국회가 정쟁의 산물로 개헌을 추진하니 임시와 잠정이 지속되는 것입니다. 이제 개헌을 한다면 절차는 현행대로 한다 해도 최초로 국민 헌법이 추진되어야 합니다.”
 
 
  “무엇이든 하겠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2016년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뒤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 뉴시스
  이정현 전 대표는 달변가였다. 우리는 두 번에 걸쳐 6시간 동안 얘기를 나눴는데 겹치는 주제가 거의 없었다. 이렇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그동안 어떻게 침묵하며 지냈는지 물었다. 그는 “무소속이고 정치 전면에 나설 형편이 아니어서, 틈만 나면 밖으로 돌았다”고 했다.
 
  “시외버스만 타고 그동안 전국을 세 차례 돌았습니다. 배낭 메고 전국 시·군·구의 낙도 오지 산간까지 혼자 국회 일정만 없으면 전국을 떠돌아다녔습니다. 아는 분들에게 일절 연락하지 않고 그저 마주치는 다양한 분들과 대화하고 현장을 둘러봤습니다. 국방위원회 소속일 때는 89개 부대와 군 시설을 돌아봤고, 외교통상위원회 소속일 때는 23개 주한 외국 대사관을 혼자 찾아갔습니다. 수백명의 전문가와 만났고, 해외 선진국 주요기관에 방문도 했습니다. 교보문고는 제 아지트였죠.”
 
  ― 교보문고를 자주 가셨나요.
 
  “거기보다 좋은 공짜 공간이 없더라고요. 갈 때마다 오늘 딱 한 줄만 건지자는 심정으로 신간을 마구잡이로 읽었습니다. 비서관 한 명을 지정해 매주 금요일이면 책 광고와 서평을 받아 봤습니다. 당대표에서 물러나고 좀 심한 앓이를 할 때 제 집 친구(부인 지칭)가 ‘태풍 부는데 고기 잡겠다고 뱃머리에 서는 것은 만용’이라고 조언하더군요. 그때부터 돌고 읽고 만나기를 무수히 했습니다.”
 
  ― 민심은 뭐라고 조언하던가요.
 
  “문재인 정부에 대한 말은 정치권을 통해 많이 전달되고 있으니 보수정당에 대한 민심을 옮기자면, ‘보수정당은 가진 사람들을 위한 정당이다’ ‘시대에 맞지 않는 구태 집단이다’ ‘편을 갈라 소모적인 계파싸움을 일삼는 무책임하고 정책이 없는 정당이다’라고 합니다. 보수 정치 세력 재편이 절실합니다. 대선 후보를 ‘미스·미스터 트롯’ 방식으로 뽑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 ‘미스·미스터 트롯’ 방식으로 대선 후보를 뽑는다고요?
 
  “YS, DJ 같은 스타 정치인 시대는 끝났습니다. 이제는 기존 정치권을 포함해 다양한 분야에서 유명·무명의 많은 대권 예비주자들이 자천·타천으로 추천되어 여론 검증 과정을 거쳐 대선 1년 전쯤 10명으로 압축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1년 동안 빡세게 정책토론을 붙여야 합니다. 국민 의식 수준으로 볼 때 지금 시대는 국민을 설득하지 못하는 정치인은 정치인이 아닙니다. 중간에 여론조사를 통해 한 명씩 계속 탈락시켜 대선 2개월을 남기고 최종 후보를 결정하자는 것입니다. 흥행 면에서나 대선 공약의 투명성 확보 면에서, 그리고 각 후보들이 확보한 인재 관리 면에서 최상의 방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막판에는 결선 투표까지도 각오해야 합니다. 후보에게는 가혹하지만 국민에게는 최상의 후보를 내놔야 합니다. 저는 이 방식의 도입을 포함해 주사파 정권의 재앙을 종식시키는 일에 제 36년 정치 경험을 쏟아붓겠습니다. 캐디백을 메겠습니다.”
 
  ― 캐디백을 메겠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요.
 
  “저에게도 PGA 챔피언이 되겠다는 꿈이 있었고 선수로 뛴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좋은 선수를 발굴해 그 선수의 우승을 위해… 아니 대한민국을 일류 국가로 만들기 위해 기꺼이 캐디백을 메겠습니다. 정권 교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얘기가 너무 길어져서 일문일답을 요청했다.
 
  ― 이정현에게 ‘정치’란.
 
  “공기죠. 저는 이거 안 하면 못 살아요. 이것밖에 못 해요.”
 
  ― 이정현에게 ‘호남’이란.
 
  “어머니죠. 천륜이죠. 내 사랑이고 내가 효도해야 할 대상이죠.”
 
  ― 이정현에게 ‘보수’란.
 
  “DNA요. 제 핏속에 흐르는 성분?”
 
  ― 인터뷰를 끝내면서 마지막으로 한마디하면.
 
  “오늘 이 인터뷰를 시작으로 제 플랜 B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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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자    (2020-09-23) 찬성 : 9   반대 : 0
인터뷰 기사 잘 읽었습니다. 건승을 기원합니다.

20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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