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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7조’ 상소문 쓴 조은산

‘랜선’ 타고 흐르는 39세 애 둘 아빠의 영향력

글 :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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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닷없는 ‘상소문’ 바람이다. 지난 8월 2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시무7조(時務7條)가 올라오면서다. 신라시대 학자 최치원이 진성여왕에게 올린 ‘시무10조’의 형식을 차용해 세금 감면, 이성 중시, 실리 외교, 사욕 인정, 인사 교체, 헌법 준수, 스스로 일신(一新)까지 총 7가지 시무를 담은 글이다. 본문 중간에는 깨알처럼 ‘(이)해찬’ ‘(김)현미’ ‘(추)미애’ ‘조국’ 등 여권 인사의 이름을 숨겨뒀다. 해찬은 ‘해괴한 말로 백성들의 기세에, 찬물을 끼얹고’, 조국은 ‘조정의 대신 열 중 셋은 허황된 꿈을 좇아, 국사를 말아먹는 이상주의자’로 표현하는 식이다.
 
  옛 문인들이 쓸법한 문체에 풍자와 해학을 곁들이면서 세태를 예리하게 지적한 이 글은, 정부의 부동산·경제 정책 실패에 분노하면서도 표출하지 못했던 국민의 갑갑한 마음을 정확히 짚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랄한 비판만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우국충정(憂國衷情)을 바탕에 깔아 비판의 진정성을 살렸다는 의견도 나온다. 9월 14일 기준 이 청원에는 43만여명이 동의한 상태다.
 
  글쓴이는 조은산(필명)이다. 호(號)는 진인(塵人·먼지 같은 사람)이다. 그는 이에 앞서 지난 7월 초, ‘다주택’을 ‘다치킨’에 비유해 ‘두 마리 치킨을 규제해달라’는 글을 올려 관심을 끌기도 했다. 지난 8월 24일에는 ‘塵人 조은산이 뉴노멀의 정신을 받들어 거천삼석의 상소문을 올리니 삼가 굽어 살펴주시옵소서’라는 제목의 네 번째 청원글을 썼다.
 
  그의 글이 화제가 되자, 청원 게시판에는 하나둘 상소문 형태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대표적인 게 ‘영남만인소’를 차용해 문재인 정부를 비판한 글이다. 영남만인소는 조선시대 고종 시절 영남 지방의 유생 1만여 명이 당시 개화정책에 반대해 올린 상소문이다. 경상도에 사는 ‘백두(白頭) 김모(金某)’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가 지난 8월 29일 올린 이 글에는 현재 약 2만명이 동의했다.
 
  일약 스타가 됐지만, 얼굴은 없다. 실명도 알려지지 않았다. 한때 개량한복을 입고 다니는 ‘어르신’일 것이라는 추측이 지배적이었지만, 조은산은 의외로 30대 남성으로 밝혀졌다. 최근 블로그를 개설한 그는 여기서 자신을 “보잘것없는 밥벌레이자 내세울 것 없는 평범한 39세 애 둘 아빠”라고 소개했다. 이에 따르면 글쓰기와는 관련 없는 직종에 종사하는 월급쟁이라고 한다. 호인 ‘진인’에 대해서는 “일용직 공사장을 전전했던 총각 시절, 내 처지가 현장에 가득한 먼지, 매연과 닮았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의 글을 쓰고 있지만, 정치 성향은 진보도 보수도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언론 인터뷰를 하거나 추가적인 신상을 공개하지는 않겠다는 의사를 드러냈다.
 
  블로그에는 틈틈이 글이 올라온다.
 
  반응은 뜨겁다. 댓글이 수백 개 달리는 건 물론이고, 글 자체가 속속 기사화되고 있다. 지난 9월 12일에는 ‘가을, 개천절을 앞두고’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개천절 광화문집회 강행을 예고한 보수단체를 향해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는 “사람의 생명만큼 귀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살아야 말도 하는 법”이라며 “부디 그 뜻을 잠시 거두어주소서”라고 호소했다.
 
  그를 보면서 ‘넛지(nudge)’의 개념이 떠올랐다. 팔꿈치로 옆구리를 찌른다는 뜻이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사람들의 선택에 개입하되, 명령이나 지시가 아닌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한 간접적 개입의 개념으로 쓰인다. 먼지 같은 사람이 이 사회에 부드러운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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