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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레스 오블리주 - 柳原熙·宋敬愛씨

“온 가족이 ‘나눔’에 중독돼 행복합니다”

글 : 서철인  월간조선 기자  ironin@chosun.com

사진 : 서경리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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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과의사 남편은 13년째 脫北者 무료 진료, 성공한 여성 CEO 아내는 10여 년째 결식 아동 후원
⊙ 대학생 두 아들은 컵라면 팔고, 인턴십해 모은 돈으로 饑餓에 허덕이는 북한 아동 도와
⊙ “20대에도 ‘나눔’의 가치 알았더라면 인생이 훨씬 더 풍요로웠을 것 같아요”(송경애)

柳原熙
⊙ 53세. 미국 리하이대 화공과 졸업. 뉴저지주립대 치의학 박사. 컬럼비아대 의료정책행정 석사.
⊙ 現 WY치과 대표원장.

宋敬愛
⊙ 52세. 이화여대 경영학과 졸업.
⊙ 스탠리앤송사 사장, 서울 신라호텔 마케팅 매니저 역임.
⊙ 現 SM C&C 대표, 어린이재단 이사, 사회통합위원회 위원.
  유원희(柳原熙) 박사는 서울 신사동에 위치한 WY치과 원장이다. 이 치과병원은 내국인보다는 외국인들에게 더 유명한 곳이다. 한국에 진출해 있는 다국적 기업의 지사장과 각국의 공관 대사 가족들이 이 병원의 주요 고객이다.
 
  미국 뉴저지주립대 치의학 박사 출신인 유 원장은 뉴저지주(州)에서 8년 동안 개업의로 활동하다 1997년 한국으로 영주 귀국했다. 이후 미국에서 익힌 치의학 선진의술을 한국 의료진에 전수하는 한편, 한국 주재(駐在) 외국인들의 치과 진료를 도맡아 왔다.
 
  유 원장의 부인은 ‘성공한 여성 CEO’의 대명사가 된 송경애(宋敬愛) SM C&C(舊 BT&I 그룹) 대표다. 그녀는 《포천코리아》에서 주최하는 ‘2011 한국 경제를 움직이는 인물 40인’에 선정될 정도로 영향력 있는 여성 CEO다.
 
  이화여대 경영학과 출신의 송 대표는 재계에서 입지전적 인물로 통한다. 그녀는 1987년 스물다섯의 나이에 자본금 250만원으로 시작한 비즈니스 전문 여행사 BT&I를 2600억원대의 항공권을 판매하는 코스닥 상장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이 회사는 지난해 4월 SM엔터테인먼트가 지분 인수를 통해 1대 주주가 되면서 사명(社名)을 SM C&C(컬처앤콘텐츠)로 변경했다.
 
  각자 다른 분야와 영역에서 열심히 달려온 이 부부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오래전부터 각자의 방식으로, 때론 힘을 합쳐 ‘나눔’을 실천해 왔다는 점이다. 유 원장은 개업 초기부터 지금까지 13년째 탈북자(脫北者)들의 치아를 무료로 진료해 오고 있고, 송 대표는 식구들의 각종 기념일을 자선단체에 기부금을 내는 방식으로 챙기고 있다. 그녀는 2010년 여성 CEO로는 최초로 1억원 이상의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 되었고, 미국의 《포브스》가 발표한 ‘아시아 기부 영웅 48인’에 선정되었다.
 
  부창부수(夫唱婦隨)인 두 사람 사이에는 두 대학생 아들이 있다. 미국 유학 중인 이 아이들은 부모에 뒤질세라 고교 재학 중 급우들에게 컵라면을 팔아 기아(飢餓)에 허덕이는 북한 어린이들을 돕는 단체에 기부했다. 덕분에 ‘누들 보이스(noodle boys)’라는 별명이 붙었다.
 
  남 돕는 일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유별난 이 부부를 WY치과 병원에서 만났다. 때마침 방학을 맞아 일시 귀국한 두 아들이 진료차 병원에 들러 부부 인터뷰는 온 가족이 함께하는 자리가 됐다.
 
 
  결혼 후 미국 시민권 포기
 
모처럼 온 가족이 치과병원에 모였다. 이들은 따로 또 같이 ‘나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왼쪽부터 송경애씨, 유원희씨, 장남 진영씨, 차남 현진씨.
  평일 오후 3시, 대기 중인 고객이 몇 명 있었지만 병원은 비교적 한산해 보였다. 널찍한 병원 로비 한쪽 벽면은 이곳을 다녀간 고객들의 기념사진으로 꾸며져 있었다. 언뜻 봐도 열에 아홉은 외국인이었다. 하긴 치과 진료 후 기념사진 촬영에 응할 한국인이 몇이나 될 것이며, 그 사진을 병원 벽에 전시할 이는 또 몇이나 될까. 유 원장은 “겁먹고 찾아오는 고객들에게 편안하고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꾸민 공간”이라고 말했다. 독특하게도 그는 ‘환자’가 아니라 ‘고객’이라고 표현했다.
 
  유원희 원장은 중학교를 마치고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 간 후 뉴저지주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마쳤다. 학부에서는 화공학을, 대학원에서는 치의학을 전공했다. 섬세하고 꼼꼼한 성격에 손재주까지 뛰어나 대학원 우등 졸업은 물론 개업의로서도 실력을 인정받아 성공가도를 달렸다고 한다.
 
  치과 전문의로 잘나가던 그가 보장된 미래를 버리고 미지의 세계나 다름없던 한국행을 결심한 것은 부인 송경애 대표 때문이다. 결혼 전 한국에서 여행사를 운영했던 송 대표가 결혼과 함께 미국으로 가면서 ‘돌아오겠다’는 직원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한국행을 촉구했다는 것이다. 결국 송 대표가 1995년 먼저 귀국하고, 1997년 유 원장이 뒤따랐다. 송 대표가 “남편은 저를 위해 시민권까지 포기하고 한국에 와서 치과의사 시험을 다시 치른 사람”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당시 한국에서 병원을 개업하기 위해서는 한국 의사 면허를 새로 취득해야 했어요. 그런데 의사고시는 한국 외 국적 소유자는 응시할 수 없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어서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게 되었죠. 부모 형제들이 모두 미국에 있는 상황이라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고마워요.”
 
  중학교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간 송 대표는 사업을 위해 이미 시민권을 포기한 상태였는데, 이때 영주권마저 포기했다.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한국을 떠난 부모 세대와 반대로 부부는 네 살, 다섯 살 된 두 아들을 데리고 미국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온 셈이다. 문득 두 사람의 결혼 스토리가 궁금했다. 송 대표가 털어놓았다.
 
  “고교 졸업 후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와서 이화여대에 다녔어요. 그때 아는 분의 소개로 펜팔을 시작했는데, 8년 동안이나 서로 사진만 보고 편지를 주고받았죠. 외모나 성격상 제 스타일은 아니었는데 오랜 시간 동안 편지를 주고받다 보니 정이 들었습니다.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어서 믿음이 갔어요. 살면 살수록 내가 진국이랑 결혼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탈북자 치아 생각보다 양호
 
  귀국 후 유 원장은 서울 논현동에 병원을 냈다. IMF로 한국 경제가 붕괴된 시기라 어려움이 많았다. 수입이 미국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유 원장은 병원을 열자마자 무료 진료를 통한 봉사활동부터 시작했다.
 
  “개원 후 아는 분에게 무료 진료 봉사를 하고 싶다고 했더니 안산 고향마을을 소개해 주더군요. 고향마을은 일제시대 강제징용당한 사할린 동포들이 영주 귀국해 사는 곳입니다. 당시 1000명에 가까운 분들이 이곳 정착촌에 계셨는데, 대부분이 70~80대 노인들이다 보니 치아가 없는 분이 많았어요. 매주 목요일이면 병원 문을 닫고 이분들을 진료하기 위해 안산으로 달려가곤 했죠. 틀니만 70개 넘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2년 정도 고향마을에 드나들 무렵 경기도 안성에 있는 ‘하나원’에서 연락이 왔다. 무료 진료할 치과의사를 찾고 있는데 도와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는 흔쾌히 봉사하겠다고 답했다.
 
  1999년 개원한 ‘하나원’은 탈북자들이 남한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지원하는 정착 지원 시설이다. 탈북자들은 3개월 동안 이곳에 머물며 남한 사회 적응 교육을 받는데, 이 과정에 갖가지 의료 서비스도 포함돼 있었다.
 
  “하나원이 정부 지원 시설이기는 하지만 재정적으로 한계가 있어서 민간단체의 도움 없이는 운영이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제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거절할 수 없었죠. 하나원 내에 진료실이 마련돼 있어서 이번에는 안산 대신 안성으로 매주 목요일마다 출근했습니다.”
 
  나이든 탈북자들은 이가 없는 경우가 많아 브리지나 틀니를 했고, 젊은 탈북자들은 충치 치료나 스케일링을 많이 했다. 그는 “젊은 탈북자 중에는 치과 진료를 처음 받아본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많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다들 처음 받아보는 진료라 그런지 겁을 먹고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특기할 만한 것은 열악한 북한의 의료 실정에 비하면 치아 상태들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는 점이었어요. 오랫동안 치과 진료를 받지 않아 치석은 많았지만 충치는 그리 많지 않았어요. 아마 우리와 달리 과자나 초콜릿 같은 군것질감을 쉽게 접할 수 없는 환경이다 보니 오히려 치아 보존에 유리했던 게 아닌가 싶더군요.”
 
  진료가 많을 때는 하루에 30명을 치료한 적도 있다. 치아 상태로 보아 치과 진료 경험이 있는 탈북자도 상당수 있었다. 탈북 후 체류지인 중국이나 동남아 등지에서 치료받은 경우였다. 북한에서 치료받은 사례가 드물어 북한의 치의학 수준을 가늠하기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유 원장은 안성을 오갈 때면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 진영·현진 군을 자주 데리고 다녔다. 어려서부터 봉사활동이 몸에 배게 하기 위해서였다.
 
  “하나원에는 진영이와 현진이 또래의 아이들도 있었어요. 자주 다녀서 그런지 진영이와 현진이가 그 아이들과 스스럼없이 잘 어울렸는데, 어느 날인가는 그 아이들로부터 목숨 걸고 탈출한 얘기를 듣고 꽤 충격을 받았던 모양입니다. 그날은 밥도 안 먹고 울기만 했죠. 그러더니 북한 어린이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고, 스스로 도울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고교 시절 컵라면 판매 사업으로 이어졌죠.”
 
 
  부부가 외국인 고객 共有
 
WY치과에는 치료 후 흰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는 고객들의 사진이 병원 로비에 걸려 있다. 이 병원의 고객은 대부분 한국 주재 외국인들이다.
  10년 동안 하나원을 오가며 그가 진료한 탈북자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탈북자 수가 갈수록 많아져 강원도와 서울 인근에 분원이 생긴 최근에는 하나원을 직접 방문하는 대신 매주 목요일마다 내원하는 탈북 청소년들에 한해 무료 진료를 하고 있다. 유 원장의 말이다.
 
  “한동안 하나원 분원이 있는 강원도까지 오갔는데 너무 머니까 힘이 부치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에는 병원에서 무료 진료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입소문이 나서 많이 옵니다. 한번은 강남의 모 경찰서에서 도와달라며 틀니 앞 부분이 부러진 탈북자 한 분을 보냈더군요. 탈북자 분이 틀니가 부러지니까 경찰서에 도움을 요청했던 모양입니다. 담당 경찰서는 인터넷 매체를 통해 제 이야기를 본 기억이 나서 탈북자를 저희 병원으로 안내한 것이고요.”
 
  치과 진료는 대부분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비용이 많이 발생한다. “비용 부담이 꽤 클 것 같다”고 하자 송경애 대표가 “본인이 행복해서 하는 일이라 돈 버는 것은 거의 포기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처음 안산 고향마을에 다닐 때만 해도 저는 이 사람이 무슨 일을 하러 다니는지 몰랐어요. 그저 집에 틀니가 쌓여 있는 것을 보고 깜짝깜짝 놀랐을 뿐이죠. 보셔서 아시겠지만 남편은 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한 사람입니다. 돈을 좀 못 벌면 어때요. 남을 돕는 일 때문에 저렇게 행복해하는데 말이죠. 그리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무료 진료를 하는 대신 받을 사람에게는 확실하게 받기 때문에 병원 사정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부부는 고객을 공유하고 있다. 비즈니스 전문 여행사인 BT&I의 주요 고객인 다국적 기업의 CEO들이 곧 WY치과의 고객이기도 하다. 송 대표는 “개원 초기만 해도 한국 주재 외국인들이 한국 치의학 수준을 믿지 못해 본국에 돌아가 치료를 받곤 했는데, 요즘은 임기를 마치고 귀국한 분들도 일부러 휴가를 내고 한국에 와서 남편에게 치료를 받는다”고 자랑했다. 그녀는 “남편의 성실함과 솜씨를 믿기 때문에 치과 진료가 필요한 VIP 고객을 많이 모시고 온다”고도 했다.
 
 
  회사 송년회와 가족기념일 비용 기부
 
  유원희 원장에 비해 송경애 대표의 ‘나눔’ 활동은 대외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나눔’을 생활화한 독특한 기업문화 때문이다. 그녀가 CEO로 있는 BT&I(現 SM C&C)는 2009년부터 송년회 대신 송년회에 소요될 비용을 모아 어린이재단에서 운영하는 한사랑 마을에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한 2011년부터는 사내(社內)에 기부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급여에서 일정액을 떼어 ‘나눔 펀드’를 조성하고 있다. 자발적인 사업인데도 전 직원의 70% 이상이 참여할 정도로 호응도가 높다고 한다.
 
  ‘나눔’ 행사에 직원들이 이렇듯 적극적인 이유는 송 대표 특유의 ‘나눔 리더십’ 때문인 듯하다. 송 대표는 2005년 직원들을 상대로 ‘3년 연속 근무자에 한해 1년치 연봉을 얹어주겠다’는 아주 특별한 공약을 내걸었다. BT&I 직원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3+1 연봉제’로 불리는 공약이었다. 그녀는 “이직이 잦은 여행사 특유의 문화와 가계 형편 때문에 은행 대출을 받는 직원들이 안타까워 내건 공약이었다”고 말했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여행업계가 불황인 가운데 송 대표는 3년 후인 2009년 이 약속을 정확하게 지켰다.
 
  경영 일선에서뿐만 아니다. 일상에서도 ‘나눔’을 생활화해 온 것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그녀는 2010년부터 가족의 특별한 기념일을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것으로 자축했다. 2월 14일 자신의 생일에는 2010만214원을, 결혼 20주년 기념일인 11월 17일에는 2010만1117원을 기부하는 식이었다. 그렇게 해서 2010년 한 해 기부금이 1억원을 넘겼다. 송 대표는 이해에 여성 CEO로서는 최초로 1억원 이상의 고액 기부자 클럽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 됐다.
 
  송 대표가 생활 속에서 실천해 온 ‘나눔’ 중에는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것도 많다. 사실 그녀는 10여 년 전부터 한부모 가정과 결손 가정의 아이들 15명을 지원해 왔다. 또한 해외아동 20명과 결연을 맺고 후원하고 있다.
 
  “저는 사업을 하지만 술도 못 마시고 골프도 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휴일이면 바빠요. 해외 결연 아동 20명에게 답장 편지 쓰고 국내 후원 아이들 집에 밑반찬 만들어 나르느라 정신이 없지요. 그 바쁨이 싫지 않고 행복해요. 초등학교 때부터 후원했던 아이가 어느덧 자라 대학에 진학하고 군 입대 하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낍니다.”
 
 
  부모처럼 사는 것이 두 아들의 꿈
 
  후원 초기에는 이런저런 우여곡절도 있었다. 어린 아들로부터 “엄마는 나보다 누구누구 형아를 더 사랑한다”는 질투심 어린 투정도 들었고, 후원 아이들을 위한답시고 집으로 초대한 것이 그 아이들에게는 오히려 상처가 되는 일도 있었다. 아이에게 좀 더 잘해 주고 싶은 마음만 앞섰지 그 아이가 여러 가지 면에서 자신이 처한 상황과 비교하게 되리라는 생각을 못한 것이다.
 
  후원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송 대표의 후원 형태 또한 조금씩 진화하고 있다. 회사에서 인턴십을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는가 하면 취업의 길을 알선하기도 한다. 물질적인 지원을 뛰어넘어 멘토 역할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성공을 위해 ‘좀 더 높이’만 외치던 시절에는 목표를 달성해도 행복하지 않았는데 ‘나눔’을 알고부터는 작고 사소한 일에도 행복을 느낀다”며 “나눌 수 있도록 기회를 준 아이들이 오히려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또한 “남편이 아니었다면 ‘나눔’의 행복을 깨우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저는 남편 덕분에 아주 긍정적인 사람이 되었어요. 남편은 ‘어떻게 저 사람은 모든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강하죠. 남을 헐뜯거나 흉보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남편을 조금 일찍 만나 20대에도 ‘나눔’의 행복을 알았더라면 인생이 훨씬 더 풍요로웠을 것 같아요.”
 
  송 대표는 남편이 자신에게 좋은 영향을 끼쳤듯 아이들도 남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고교 시절 급우들에게 컵라면을 팔던 두 아들은 어느덧 대학생이 되었다. 장남 진영 군은 뉴욕대에, 차남 현진 군은 조지워싱턴대에 재학 중이다. 두 아들은 방학 때마다 인턴십 겸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을 어린이재단에 기부하고 있다. 이날 병원에 온 두 아들에게 “부모님이 어떤 분들이냐”고 묻자 차남 현진 군이 씩씩하게 악수부터 청하더니 “사랑하고 존경하는 분들”이라고 답했다. “부모님처럼 사는 것이 꿈”이라는 말도 했다. 옆에서 송 대표가 ‘내가 자식 농사 하나는 잘 지었지’라는 듯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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