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强小기업CEO

李吉順 (주)에어비타 대표

“공기청정기로 세계를 정복하고 세상을 정화하고 싶다”

글 : 서철인  월간조선 기자  ironin@chosun.com

사진 : 서경리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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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부 출신 CEO, 직원 18명으로 연간 매출 100억원, 사업 초기 여자라서 약점이었던 부분이
    지금은 강점으로 부상
⊙ 소형 공기청정기 분야 세계 1위, 미국·중국·일본 등 세계 30여개 국가에 수출

李吉順
⊙ 49세. 한국항공대 법학과 졸업.
⊙ 2000년 개인회사 ‘이오나이저’ 창업, 2003년 법인 (주)에어비타 설립.
⊙ 제네바 국제발명전시회 금상·디자인부문 특별상(2005), 발명의 날 대통령표창(2008),
    장영실상(2009), 한국제품안전학회 제품안전경영대상(2010) 등 다수 수상.
  환경오염이 심화되면서 공기청정기가 집 안의 필수품이 되었다. 하지만 서민들에게 공기청정기는 여전히 가격 부담이 큰 사치품이다. 좁은 공간에 들여놓기에는 덩치가 큰 물품이기도 하다. 기존 제품의 이런 한계를 간파해 가격 부담이 적고 몸집이 작은 공기청정기를 개발한 이가 있다. 이길순(李吉順) 에어비타 대표다.
 
  평범한 주부였던 이 대표는 핸드백에 들어갈 정도로 작고 앙증맞은 공기청정기를 개발해 국내외 주요 발명상을 휩쓸었다. 또한 세계 30여 개국에 제품을 수출, 직원 두 명으로 시작한 회사를 연 매출 100억원대의 강소(强小)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에어비타의 공기청정기는 주변 공기를 빨아들이지 않고 청정기 내부에서 음이온과 살균이온을 만들어 외부로 내뿜는 방식이다. 전자제품임에도 물 세척이 가능해 필터를 교환할 필요가 없고, 전기료가 월 100원 정도여서 경제적이다.
 
  이 대표는 이 같은 장점을 살려 차량용, 냉장고용, 화장실용 등 용도에 맞는 제품을 개발해 대박을 터뜨렸다. 에어비타는 초소형 청정기 시장에서 국내는 물론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주부에서 최고경영자(CEO)로 거듭난 이길순 대표를 서울 염창동 본사에서 만났다. 그녀는 “사업 관계로 홍콩과 선전(深圳), 마카오 등을 방문하고 어제 귀국했다”며 다소 상기된 표정이었다. 이 대표의 말이다.
 
  “홍콩 레이몬드 챈 회장의 초청으로 다녀왔습니다. 얼마 전 챈 회장이 방한(訪韓)해 한국 기업인들과 골프 회동을 가졌는데, 120타가 넘는 저와 게임을 한 것이 인상적이었나 봐요. 그 많은 분들 중 유일하게 저만 초청했고, 방에 수영장이 딸린 최고급 호텔까지 제공해 줄 정도로 초특급 대우를 해 주었습니다. 물론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향후 사업 계획을 놓고 긍정적인 대화도 나눴지요.”
 
  레이몬드 챈 회장은 홍콩에 근거지를 둔 다국적기업 오레곤의 CEO다. 다양한 전자제품을 생산 유통하고 있는 챈 회장은 에어비타의 공기청정기가 자사(自社) 제품보다 성능이나 디자인에서 앞선다며 거래를 약속했다고 한다. 이 대표는 “골프를 못 쳐서 비즈니스가 성사된 것은 처음이었다”며 “운(運)이 좋았다”고 말했다.
 
 
  영업 내조로 남편 초고속 승진
 
홍콩의 레이몬드 챈 오레곤 부회장이 방한했을 때 함께한 모습.
  이길순 대표는 성공 비결을 묻는 질문에 “운이 좋았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하지만 평범한 주부였던 그녀가 사업가로 변신하고, 세계 시장을 석권하기까지는 운 이상의 눈물겨운 노력과 근성이 있었다.
 
  경북 영주가 고향인 이 대표는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소, 돼지, 오리 등의 가축을 치고 농지도 제법 되었던 부친(父親)은 막내딸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각별한 사랑 때문에 제가 어렸을 때부터 통이 좀 컸어요. 고등학교 때 맞춘 겨울 코트가 다섯 벌, 구두가 일곱 켤레나 되었지요. 당시 시골 출신 아이들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오죽했으면 저희 엄마가 저보고 ‘나중에 옷 장수 신발 장수 될 것이냐’고 하셨겠어요.”
 
  집안엔 할머니도 있었지만 그의 씀씀이를 크게 나무라지 않았다. 할머니는 막내손녀만 보면 “너는 막내지만 맏이 역할을 하는 사주팔자라니까 어느 집이든 맏며느리로 시집가야 한다”며 그저 웃기만 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도 할머니도 그녀가 간절히 원했던 미국 유학만큼은 한사코 만류했다. 그 무렵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일명 ‘동두천 양공주 사건’ 때문이었다. 동두천 양공주가 미군(美軍)과 결혼해 미국에 갔으나 술과 마약에 찌들어 폐인이 되었다는 당시 언론보도는 충격적이었다. 아버지는 “죽으면 죽었지 딸을 미국에 보낼 수 없다”고 했다.
 
  황소고집인 그녀는 “미국 유학을 보내 주지 않으면 대학에 가지 않겠다”며 버텼다. 어른들 역시 한 치의 양보 없이 길을 막았다. 결국 그녀는 미국 유학도 국내 대학 진학도 하지 못한 채 20대 초반을 보냈다. 그러곤 친구 소개로 제약회사 영업사원을 만나 일찌감치 결혼했다. 그녀는 “착하고 성실하기만 한 남편을 입사 4년 만에 지점장으로 초고속 승진을 시켰다”며 이렇게 말했다.
 
  “어느 회사든 영업사원은 영업 못지않게 수금이 중요합니다. 매월 말일까지 수금을 완료해야 실적 달성 100%로 인정해 주는 분위기죠. 남편의 경우 가만히 보니까 달을 넘겨 수금할 때가 많았습니다. 어차피 들어올 돈이라면 손해날 것이 없으니 우선 수중에 있는 돈으로 채워 넣으면 되겠다는 계산이 나오더군요. 덕분에 남편은 ‘매달 수금 100% 달성’의 실적을 올릴 수 있었지요.”
 
  제약회사 영업이사까지 지낸 남편은 그 후 자동차 영업을 했다. 남편의 수입은 인센티브까지 매월 1000만원이 넘었는데, 이 역시 아내의 특출한 내조 덕분이었다. 이 대표는 “남편이 10대를 팔면 나는 12대를 팔았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남편의 판매 실적이 시원찮아 답답한 마음에 한두 대 팔아 줄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제가 자동차 얘기를 하면 저와 연고가 없는 사람도 기존 계약을 파기하고 저와 계약을 했어요.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옆 좌석의 어느 기업인에게 고급 승용차를 판매한 적도 있습니다. 고객들은 빈틈없고 야무진 영업사원보다 어수룩하지만 솔직해 보이는 저의 말을 더 신뢰했던 것 같아요. 견적도 뽑을 줄 모르는 저를 통해 자동차를 구매한 것을 보면 ….”
 
  그녀는 두 아이의 엄마와 남편을 돕는 보조 판매사로 열심히 살았다. 자동차 판매가 호조세여서 주말이면 골프를 즐길 만큼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여유도 있었다. 수중에 돈이 좀 있어서 미분양 아파트를 사 놓으면 몇 달 새에 호재가 생겨 가격이 껑충 뛰는 등 그 무렵에는 뭘 해도 잘되었다. 그녀는 “운이 좋아서인지 돈 벌기가 너무 쉬웠다”고 말했다.
 
 
  제품 개발에 집 한 채 날려
 
지난 여름 중소기업 해외시장 개척단에 참가, 독일 유통 전문업체 EDEKA 매장을 찾아가 판매 현황을 보고받은 후 관계자들과 함께했다.
  가정주부로서 편안하고 윤택한 일상을 누려 온 이길순 대표가 공기청정기 사업에 뛰어든 것은 아주 우연한 계기에서였다. 이 대표의 말이다.
 
  “저희 집과 이웃한 연립주택 반지하 방에 젊은 부부가 세들어 살았어요. 오다가다 만나 친해진 사이인데, 그 집 갓난아이가 천식이 심해 늘 링거를 꽂고 살았습니다. 너무 가엾어서 공기청정기 하나를 사 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공기청정기 값이 너무 비싸더군요. 당시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던 제품은 스위스제였는데, 가격이 무려 400만원이나 되었어요. 크기도 상당했고요. 문득 ‘공기청정기가 필요한 사람은 주거 환경이 열악한 서민들일 텐데 저렇게 비싸서야 살 수 있겠나, 공기청정기는 꼭 저렇게 커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로부터 한 달 후 이 대표는 일본에 사는 친언니 집에 다니러 갔다. 일본 가전회사가 만든 일명 ‘코끼리표 밥솥’이 한국에서 한창 유행할 때였다. 그런데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코끼리 밥솥’ 아니라 공기청정기였다. 당시 일본 가정에는 습한 기후 탓에 공기청정기가 하나씩 있었다. 그녀는 ‘운명처럼 앞으로 한국에서도 공기청정기가 유행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고 한다.
 
  “제 성격이 떠오르는 영감(靈感)이 있으면 바로 바로 끄집어내는 타입이에요.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좀 더 작고 간편한 공기정청기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을뿐더러 내 나름의 설계도까지 그렸습니다.”
 
  귀국 즉시 그녀는 청계천 일대 부품상들을 뒤지고 다니는 한편 주변 친구들에게 관련 전문가를 소개해 달라고 하소연했다. 친구들은 하나같이 “편하게 공이나 치면서 살지 무엇 하러 그런 걸 만들려 하느냐”며 만류했다. 그 와중에 운 좋게 현재 에어비타 기술이사로 재직 중인 박영욱씨를 만났다. 박씨는 당시 일본 공기청정기 업체에서 개발자로 일하다 그만둔 후 한국에서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었다고 한다.
 
  “그때 박영욱 이사님을 만난 것은 제게 행운이었어요. 그분에게 소형 공기청정기를 만들고 싶다고 했더니 ‘아주 좋은 생각이다. 내가 만들어 주겠다’고 하더군요. 엔지니어 분야에 관한 한 백지 상태였던 때라 그 당시만 해도 공기청정기를 쉽게 뚝딱 만들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제가 좀 무모했지요.”
 
  박영욱 이사와 둘이 제품 개발에 쏟은 세월이 7년이었다. 제품을 먼저 개발하고 난 후 창업하다 보니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받을 수 있는 각종 지원도 받지 못했다. 이 대표는 “금형기며 사출기 등을 구매하느라 당시 소유하고 있던 대지 660㎡(200평) 규모의 주택 하나를 처분했다”고 말했다.
 
  “물건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순식간에 집 한 채 값이 사라지니까 ‘어머, 이거 장난이 아니네’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주변 친구나 친지들은 물론 아이들까지도 ‘이쯤 해서 그만두라’고 난리가 났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가 뭘 하겠다는 것이냐’는 빈정거림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안 된다’고 하니까 더 오기가 생기더군요.
 
 
  여자라는 이유로 업계에서 ‘왕따’
 
  제품을 완성했으니 팔아야 했다. 2001년, (주)에어비타의 전신인 ‘이오나이저’를 설립했지만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았다. 때마침 구세주인 양 한 유통회사로부터 제품 5000개 주문이 들어왔다. 개당 5만원씩 총 2억5000만원 규모로, 당시로서는 큰돈이었다. 그런데 납품 3일을 남겨두고 갑자기 주문을 취소해 버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해당 업체를 찾아가 대표를 만났다. 그는 “미안하게 됐다”며 A4 용지 한 묶음을 내밀었다. 동종업체에서 보낸 음해성 보고서였다. ‘집에서 살림만 하던 아줌마, 전문 지식도 기술도 없는 여자가 만든 제품’이라는 내용이었다. 한마디로 신뢰할 만한 구석이 단 한군데도 없는 제품이라는 얘기였다. 이 대표는 “나라도 구매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불리한 내용이 많았다”고 말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업계에서 여자는 불리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어요. 그 보고서는 새삼 내가 여자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지요. 유통업체 대표에게 제가 오히려 죄송하다고 인사하고 나오는데 눈물이 뚝뚝 떨어지더군요. 5층 계단을 내려오는 내내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태어나서 그렇게 펑펑 울기는 처음이었어요.”
 
  돈이 들어오면 당장 급한 은행 부채부터 해결하리라 했던 계획이 무산됐다. 경기도 일산에 있던 사무실로 돌아온 그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걱정되어 홀로 10층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곳에서 대성통곡을 하다 좀 창피한 생각이 들어 가까스로 울음을 멈추고 보니 보랏빛 제비꽃 한 무더기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네가 너무 예뻐서 우는 거야”라며 눈물을 닦은 후 9층에 있던 공장으로 내려오는데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3년 전 부도를 낸 사출기 업자였다.
 
  “당시 저희 회사가 납품받아야 할 사출기가 7000만원어치나 되었습니다. 부도가 났다고 하길래 사출기 공장으로 달려갔지요. 그런데 며칠 동안 자지도 먹지도 않았는지 노숙자 모습을 한 사장을 보니 차마 내 돈 갚으라는 얘기를 못하겠더군요. 씩씩거리며 돈 받으러 갔다가 지갑에 있던 돈 30만원을 건네며 ‘내 돈은 갚지 않아도 되니 일단 목욕탕 가서 좀 씻고 뭐 좀 먹으라’고 하곤 돌아왔어요. 사무실로 오는 길에 지갑을 열어 보니 딱 1만원 남았더군요.”
 
  이후 까맣게 잊고 있던 그 사출업자가 전화를 한 것이었다. 그는 “어젯밤 꿈속에 이길순 대표가 나타나 전화했다”며 안부를 물었다. 이 대표는 회사 상황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얘기했다. 그랬더니 자신은 재기(再起)에 성공했다며 “당장 급한 돈이 얼마냐”고 물었다. 그리고 다음 날 이 대표가 필요로 하는 돈 3000만원을 통장에 입금해 주었다. 이 대표는 “그 돈이 얼마나 고맙던지 엎드려 큰절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인정
 
(주)에어비타가 전 세계 30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는 소형 공기청정기. 실내용은 물론 차량용, 냉장고용도 있다.
  한 차례의 부도 위기를 극복한 후 2005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국제발명전시회에 소형 공기청정기를 들고 갔다. 제품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출품한 이 전시회에서 뜻밖에도 금상과 디자인부문 특별상을 거머쥐었다. 이 전시회 참가는 해외시장 개척의 교두보가 되었다. 이 대표의 설명이다.
 
  “제네바 전시회 당시 독일 QVC 홈쇼핑 부회장이 저희 부스에 와서 제품을 유심히 관찰하더니 ‘작아서 재미있다’며 5개를 구입해 갔습니다. 그로부터 몇 달 후 QVC 홈쇼핑으로부터 대량주문이 들어왔어요. 발주 물량이 무려 1만2000개나 되었습니다. 원래 비염이 심해 불면에 시달리던 QVC 부회장이 저희 제품 사용 후 숙면을 취하게 돼 홈쇼핑에 론칭하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국내의 경우 주문량이 많아야 3000개 정도여서 깜짝 놀랐습니다.”
 
  공장 규모상 1만2000개를 납품 일자까지 맞추려면 일정이 빠듯했다. 얼마 되지 않은 직원들에게 사정하고 부탁해 겨우 일정을 맞추는 듯싶었는데 부평 공장에 불이 나면서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다. 이 대표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당시 저희 집이 서울 상암동에 있었는데, 새벽 4시쯤 공장에서 전화가 왔어요. 공장에 불이 났다고 하더군요. 그 길로 차를 몰아 공장에 도착했습니다. 가속페달을 얼마나 세게 밟았는지 상암동에서 부평까지 그 먼 거리를 주파하는 데 딱 10분 걸렸더군요. 나중에 화재가 진압되고 난 후 제 차림새를 보니 맨발에 파자마였습니다.”
 
  천만다행히도 화마는 공장 내부가 아닌 외부를 태운 채 발화 1시간여 만에 진압됐다. 발주 물량을 겨우 맞춰 선적 작업만 남겨 놓은 시점이어서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적었다. 그래도 제품에 그을음이 심해 닦아 내고 새로 포장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했다.
 
  “그날부터 전 직원 철야 작업에 돌입했어요. 새벽에 졸지 말라고 노래 부르는 사람들까지 동원해 라인을 가동시켰지요. 사장인 저도 함께 그을음을 닦아 내고 포장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주문량을 맞추느라 몇날 며칠 밤을 지샜지요. 마지막 날 컨테이너에 담겨 선적까지 되는 걸 본 후 저는 졸도해 버렸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독일 QVC 홈쇼핑이 발주한 제품을 빈틈없이 납품했다. 그러고 난 후 얼마 되지 않아 독일 현지에서 연락이 왔다. 전시회 때부터 통역을 맡아 준 교포가 “사장님,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는데 어느 것부터 전할까요”라며 이렇게 전했다.
 
  “사장님, QVC 홈쇼핑 본방송에서 에어비타 제품을 팔 수 없게 되었습니다. QVC 홈쇼핑은 새로 론칭하는 물건의 경우 항상 본 방송 전 10분 정도 테스트 방송을 합니다. 세팅이나 고객의 반응을 체크하기 위해 짧게 예행연습을 하는 시간인데, 이 테스트 방송 중 발주한 1만2000개의 공기청정기가 이례적으로 매진이 되어 버렸어요. 그 때문에 본방송에 내놓을 제품이 없습니다.”
 
  독일에서 대박이 났다는 보도가 나가자 그동안 문전박대하다시피 한 국내 홈쇼핑 업체들도 제품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200개가 넘는 국내 공기청정기 업계도 그녀를 여자라는 이유로 더 이상 소외시키거나 무시하지 않았다.
 
 
  기내 판매 용품에도 선정
 
  공기청정기 전체 시장은 현재(2011년 기준) 해외 18조원, 국내 1조8000억원 규모이며 매년 30% 이상 증가 추세다. (주)에어비타는 성장 가능성이 큰 소형 공기청정기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이길순 대표는 “삼성과 LG는 물론 일본의 샤프에서도 소형 공기청정기를 만들고 있지만 기술이나 디자인 면에서 아직까지는 우리가 최고”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10년 넘게 소형 공기청정기 연구에만 몰두한 만큼 이 분야 관련 지적재산권을 총 34건이나 보유하고 있다.
 
  또한 현재도 매출의 3분의 1 가량을 연구개발(R&D) 부문에 투자 중이다. 연구개발은 지금도 창업 동지인 박영욱 이사가 주도하고 있다고 한다.
 
  “사업 시작한 지 12년째인데, 초기 멤버가 저를 포함해 4명뿐입니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이 저희 회사를 거쳐 갔지요. 중소업체를 경영해 보니 가장 힘든 점이 직원 관리 부분이더군요. 직원이 힘들 때 회사가 도움을 주었다고 해서 회사가 어려울 때 그 직원의 도움을 기대하면 상처만 받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주)에어비타의 총 직원은 현재 18명이다. 매출에 비해 직원이 적은 편이다. 이 대표는 “제조 부문은 외주제작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고, 국내외 영업은 CEO인 내가 직접 뛰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 제품은 현재 미국, 중국, 일본을 비롯해 전 세계 30여 개국에 진출해 있다. 이 대표는 “1년의 절반은 해외에서 보내고 있다”며 해외 시장 개척 중 겪은 일화를 들려줬다.
 
  “저는 수많은 실패와 실수 때문에 오늘의 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름 없는 중소업체라서 받아야 했던 설움도 결국 피가 되고 살이 되겠지요. 2004년 일본에 저희 제품 500개를 납품했는데, 바이어가 제품에 하자가 있다며 전량 되돌려 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그 제품을 김포공항 통관에서 불법 수입품이라며 3시간 동안 붙들고 조사했지요. 그런가 하면 중국 공항에서는 통관이 되지 않아 무려 5시간 동안이나 붙잡혀 있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겪은 일들을 늘어놓자면 몇날 며칠 밤을 새워도 모자랄 거예요.”
 
  전체 매출의 절반이 해외시장에서 발생하는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CEO가 여자라서 힘들었던 부분도 지금은 강점이 되었다. 이 회사 제품 광고에는 ‘엄마의 정성으로 만든 제품’이라는 점이 강조되고 있고,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여자가 만들었다는 부분이 신뢰 포인트가 되었다고 한다.
 
  (주)에어비타의 공기청정기는 최근 홍콩항공과 에어프랑스 기내 판매 용품에도 선정됐다. 이 대표는 “이젠 일반형 시장에 도전할 준비가 되었다”며 “공기청정기 하면 대한민국, 대한민국 하면 에어비타 얘기를 들을 수 있을 때까지 달리고 또 달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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