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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

한글 받아들인 찌아찌아족 한글학당 탐방기

한국-인도네시아 수교 50주년, 찌아찌아족 아이들이 부르는 아리랑

글 :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everhop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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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 채택한 찌아찌아족, 2010년부터 현재까지 6000여 명이 한글과 한국어 공부
⊙ 인도네시아에서 독립영웅으로 추앙받는 조선인 양칠성, 인도네시아 영화의 아버지 조선인 허영
⊙ 바우바우시에 한글학당 건립한 정덕영 교장과 한국찌아찌아문화교류협회
⊙ 주한 인도네시아 한국 대사관과 코트라, 아라소프트, KB국민은행이 ‘팀코리아’ 이뤄 바우바우시와 IT 협력
사진=정덕영
  바닥이 붉은색으로 물들어간다. 깨진 와인병에서 술이 점점 더 많이 흘러나왔다. 6월 26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공항, 입국 수속을 위해 줄을 서 있던 참이었다. 함께 인도네시아에 온 일행이 와인병이 든 쇼핑백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깨진 와인병과 바닥을 적시는 술을 번갈아보고 있는데 공항 남자 직원이 다가온다.
 
  “이거 문제가 될 수 있다.”
 
  벽에 붙은 감시카메라를 가리키며 자못 위협조다.
 
  ‘술병을 바닥에 떨어뜨린 게 문제가 된다고?’
 
  술병 사고 전에도 그 직원은 다가와 비자를 왜 사전에 신청하지 않았냐고 추궁하는 둥 뭔가를 원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던 참이었다. (많은 외국인 입국자들처럼 기자도 입국장에서 도착 비자를 발급받을 예정이었다.)
 
  그때 히잡을 쓴 여성 직원이 빗자루와 양동이를 들고 나타났다.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사고 현장을 정리했다. 김이 샜다는 듯 그 직원도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사실 어느 문화권이든 와인병이 깨지는 건 부정적인 징조로 친다. 물론 과학적인 근거는 없다. 믿거나 말거나다.
 
  수속을 마치고 공항 안에 있는 호텔로 이동했다. 호텔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 날 일찍 바우바우(Bau-Bau)로 향하기 위함이다. 먼저 마카사르로 가는 국내선을 탑승한 후, 거기에서 부톤(Buton)섬 바우바우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탈 예정이다. 바우바우에는 찌아찌아(Cia-Cia)족이 산다. 그들에게 한글과 한국어를 가르치는 정덕영 교장과 바우바우 한글학당이 기다리고 있다.
 
  수카르노 하타 공항은 상당히 크고 깨끗했다. 인도네시아의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와 초대 부통령 모하맛 하타의 이름을 붙였다. 프랑스 샤를드골 공항을 설계한 건축가 폴 앙드뢰가 설계했다. 다만 공항 구조상 터미널 사이의 이동이 생각보다 복잡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기자는 체크인 카운터 앞에서 넋 놓고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비행기를 놓친 것이다. 꿈이 아닐까. ‘라스트콜(last call·마지막 호출)’을 들은 후에야 탑승한 불미스러운 기록이 있긴 하지만, 평생 비행기를 놓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국제선도 아니고 국내선을 놓치다니…. 문득 어제의 깨진 와인병이 떠올랐다.
 
 
  동서 길이가 5150km
 
  물론 비행기를 놓친 직접적인 이유는 기자가 체크인 카운터에 여유 있게 도착하지 않은 것이었다. 외부에서 핑계를 찾아 보자면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자카르타에서 출발하는 국내선은 국내선이 아니라 거의 국제선이다. 국제선을 타는 마음가짐으로 체크인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한국이라면 국내선은 탑승 1시간 전에 가도 충분하다. 인도네시아는 다르다. 일단 공항 진입 과정부터 복잡하다. 수카르노 하타 공항은 1터미널, 2터미널, 3터미널로 이뤄져 있다. 1터미널은 국내선 터미널이고, 2·3은 국내선, 국제선 공용(共用) 터미널이다. 국제선, 국내선 공용이다 보니 공항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보안 검색 절차에도 시간이 걸린다. 주목해야 할 건 국내선의 경우 탑승 터미널과 게이트가 수시로 바뀐다는 거다. 탑승 전까지 계속 확인해봐야 한다. 탑승 전날 확인할 때는 2터미널이었는데 당일 가보니 3터미널인 경우도 잦다. 터미널 사이를 이동하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30분은 잡아야 한다.
 

  나중에 호텔 프런트에서 직원에게 물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국내선을 타기 위해 보통 몇 시간 전에 공항에 가나요?” 단호한 어조로 “2시간 전이다. 그래야 안전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사실 한국과 사정이 다른 게 당연한 것이, 인도네시아는 한국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국토의 규모가 엄청 크다. 동남아 적도상에 길고 넓게 자리해 있다. 서울-자카르타 직선거리가 5283km(비행시간 약 7시간)인데, 인도네시아의 동서 길이가 5150km다. 서쪽 끝인 사방에서 메단, 자카르타, 자야뿌라를 경유해 동쪽 끝인 머라우께까지 가려면 국내선 비행시간만 20시간이 걸린다.
 
 
  시간관념 부족한 인니 항공사들
 
  둘째, 인도네시아 항공사들에 문제가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국내선을 운항 중인 항공사로는 라이언 에어, 바틱 에어, 가루다, 시티 링크 등이 있다. 인도네시아 항공사의 시간관념은 여행객들 사이에 유명하다. 국적기인 가루다와 가루다가 운영하는 시티 링크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라이언 에어는 악명 높다. 출발 시각을 한두 시간 뒤로 미루는 건 다반사다. 운항을 당일에 갑자기 취소하는 일도 흔하다. 얼마나 어이없나 하면, 심지어 일찍 출발하기도 한다. 고속버스도 그러지 않는데 말이다. 기자가 놓친 비행편도 라이언 에어였다.
 
  나중에 부톤섬에서 다시 자카르타로 나올 때도 어김없이 라이언 에어가 추억을 만들어줬다. 예약해놓은 항공편을 갑자기 없애버렸다. 운항이 취소됐다는 것도 출발 당일까지 알려주지 않았다. 뒤이어 예약해놓은 항공편 모두 탑승할 수 없었다.
 
  비행기표 교환과 취소에 따른 보상을 제대로 해주는 것도 아니다. 아쉽게도 사무실로 뛰어들어가 길길이 뛰어보질 않아서 그 경우는 모르겠지만, 후에 신사적으로 요청하면 갖은 절차를 들이대며 보상을 피하는 식이다. 나중에 서면으로 처리하기 위해 운항 지연확인서를 요청했더니 무슨 서류를 주긴 했다. 후에 확인해보니, 지연확인서도 아니고 항공 운행 일지였다.
 
 
  세계 최대 이슬람국가
 
  셋째, 6월 마지막 주가 갑자기 인도네시아의 황금연휴가 되어버렸다. 무슨 얘기인가 하면, 6월 29일(목)은 원래 인도네시아 휴일이다. 이슬람 희생제 ‘이둘 아드하(Idul Adha)’ 종교일이다. 그런데 그 앞뒤 평일도 갑자기 휴일이 됐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의 이슬람국가다. 사우디아라비아나 이란 같은 이슬람국가와는 다르다. 세속(世俗)국가를 표방한다. 이슬람교와 함께 불교, 힌두교, 가톨릭, 개신교, 유교를 국가 종교로 지정했다. 각 종교의 축일마다 다 쉰다.
 
  2016년 기준 전체 인구의 87%가 무슬림이다. 전체 인구(2021년 기준 2억7200만 명)가 많다 보니 기독교를 믿는 이들도 2000만 명이 넘는다. 주민등록증에 자신의 종교를 명시해야 한다. 무신론자(無神論者)는 공산주의자로 간주되어 사회에서 배척하는 분위기였다. 최근엔 조금 달라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무신론자라고 떳떳이 밝히기는 어려운 분위기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이슬람 희생제 앞뒤 날도 쉬라고 갑자기 발표했다. 6월 28일(수)과 30일(금)이 ‘권장 공동휴일(Cuti Bersama)’이 되면서 5일 내내 쉴 수 있는 연휴 기간이 되어버렸다. 인도네시아 주요 언론에 보도된 게 6월 20일이니, 휴일 일주일 전에 발표됐다.
 
  어쩐지 공항에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비행기를 놓치고 망연자실한 상태로 다음 비행편을 검색했다. 더 공포스러운 건 실시간으로 비행기 좌석이 다 팔리고 있다는 거였다. 아무리 황금연휴라도 왜 이렇게 사람들이 어딘가를 가려고 할까 의아했다. 부분적인 이유를 나중에 인도네시아 역사를 공부하며 알게 됐다.
 
  1980년대 들어서면서 인도네시아 정부에 오일 달러가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수하르토 정부는 인구 조밀 지역 주민을 저개발 지역으로 이주시키는 정책을 추진했다. 이러니 갑작스러운 연휴에 국내선이 난리통이 된 게 이해가 되기도 했다. 실제로 후에 비행기와 배에서 마주친 가족 단위의 여행객들은 대개 고향을 찾아가는 듯했다.
 
 
  ‘인도’는 인도네시아 의미
 
  어쨌든 다음 날까지 바우바우에 도착해야 했다. 바우바우시에 먼저 도착해 있는 찌아찌아문화교류협회 측과 연락해 방법을 모색했다. 그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은 켄다리까지 비행기를 타고 간 다음, 배를 타는 거였다. 켄다리는 동남술라웨시의 주도(州都)다. 켄다리로 가는 비행기표도 물론 다 팔렸지만, 대기를 걸어놨더니 기적처럼 구해졌다. 기자처럼 비행기를 놓쳐 자카르타 공항에 오지 못해 비행기를 놓친 이들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켄다리에 도착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짐이 나오지 않는다. 그것도 기자의 짐가방만 안 나온다. 짐을 찾아 하나둘씩 사라지는 승객들을 바라보며 점점 시무룩해졌다. 불운이 끝나지 않은 건가.
 
  복잡한 표정으로 컨베이어 벨트를 보고 있는데 저 끄트머리에서 어렴풋이 기자의 짐가방이 보였다.
 
  이 모든 일을 겪은 후 공항을 나서니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다. 거리 풍경은 기묘했다. 가게들이 분명 영업을 하고 있고 사람들도 거리를 걸어 다녔다. 그런데도 거리가 어두웠다. 가로등이 거의 없었다. 있어도 차도 중앙분리대에만 겨우 있었다. 사고만 나지 말라는 뜻인가. 거리 전체가 어둠 속의 축제를 벌이고 있는 것 같았다.
 
  유심히 보다 이유를 알았다. 가로등이 없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조명의 조도(照度)가 낮았다. 영업 중인 상점 내부도 그리 밝지 않았다. 전기의 전압(電壓)이 낮아서였다. 무슨 일인지 마트 체인인 ‘인도마트(Indo Mart)’는 무척 환했다. 알고 보니 돈을 따로 들이면 승압(昇壓)을 할 수 있단다. ‘인도마트’의 ‘인도’는 인도네시아의 줄임말이었다. 인도네시아나 다른 동남아 국가에서 ‘인도(Indo)’는 모두 인도네시아를 뜻한다.
 
 
  술 안 파는 포장마차
 
켄다리에서 들른 노상 식당. 돌아다니며 노래를 부르는 거리의 가수들이 왼쪽에 보인다. 사진=하주희
  호텔에 도착해보니 황송할 만큼 호화로운 호텔이었다. 물론 한국으로 치면 보통의 관광호텔이지만 말이다. 로비 조명이 무척 밝아 깜짝 놀랐다. “이 호텔은 사장이 어느 나라 사람이냐” 묻자 “중국인과 인도네시아인이 반반씩 투자했는데 사장은 중국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도저히 그냥 잘 수는 없었다. 로비에 있는 일종의 라운지로 갔다. 역시 켄다리에서 알아주는 호텔이 맞는지, 덩치가 꽤 크고 쇠사슬 모양의 목걸이 등 제법 화려한 복장을 한 사내들이 모여 앉아 있다. 한국의 풍경과 다른 점이라면 술이 전혀 없다. 이들은 콜라나 차를 마시고 있었다. 상상이 되는가. 케이크와 홍차를 가운데 두고 불량한 포즈로 눕다시피 의자에 늘어져 있는 깡패(처럼 보이는 사람들)들을 말이다. 함께 기념촬영을 하자고 할까 하다 말았다.
 
  호텔 안 풍경에 싫증 나 길 건너에 있는 노상 식당에 가보기로 했다. 야외 포장마차다. 자리가 거의 차 있다. 연휴를 앞둔 탓인지 젊은이들이 모여 앉아 있다. 기타를 들고 노래하는 거리의 가수들이 노상 식당마다 돌아다녔다. 손님들에게 팁을 받기 위해서다. 갑자기 기자 옆으로 8~9세 되어 보이는 꼬마 남자아이가 다가온다. 우쿨렐레를 튕기며 노래를 부른다. 너무 작은 목소리여서 뭘 하고 있는지도 사실 몰랐다. 노점 주인집 아이가 장난을 치는 줄 알고 미소를 건네주었다. 그러자 아이는 시무룩해지며 뒤돌아 어딘가로 걸어갔다. 알고 보니 최연소 버스킹 가수였던 거다. 돈은 안 주고 미소만 보여주니 낙담해서 가버린 거였다.
 
  역시 술은 어디에도 없었다. 담배는 팔지만 술은 안 팔았다. 껄렁껄렁해 보이는 남성들이 생수를 마시며 열심히 얘기 중이다. 술이 없으니 목가적으로 보였다. 한국 포장마차가 성인용 만화라면 인도네시아는 아동용 만화의 느낌이다.
 
 
  ‘흥남 철수’
 
켄다리 항구에서 부톤섬으로 가는 배를 타려는 인파.
  다음 날 새벽 6시30분, 항구로 향했다. 부톤섬으로 가는 배를 타러 가는 길이다. 바우바우 한글학당 측에서 알음알음으로 현지인을 통해 표를 구해줬다.
 
  정말 당황하면 웃음이 나올 수 있다는 걸 혹시 아는지. 항구에 도착해 나도 모르게 아하하하 웃음이 터졌다. 3배쯤 과장하면 흥남 철수 같은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배에 올라타려 수백 명이 아우성이다. 배 2층 갑판으로 막무가내로 기어올라가는 이들이 보였고, 배 안으로 들어가는 좁은 입구 안팎으로 수백 명이 거품처럼 몰려 있었다. 모두 표를 들고 있긴 한데, 과연 저 무리에 끼어 배를 탈 수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어안이 벙벙해서 서 있는데 배를 예매해준 남성이 재빨리 선원 한 명을 붙잡고 뭐라뭐라 말한다. 그러자 선원이 억지로 길을 만들어줬다. 그들이 아니었으면 표를 100장 들고 있어도 못 탔을 거라 확신한다.
 
  간신히 자리에 앉고 보니 바닥이고 선반이고 엉덩이를 붙일 수 있는 모든 곳에 사람들이 앉거나 서 있다. 아기까지 둘러메고 서서 가는 이들을 보니 자리에 앉아 있는 게 미안할 지경이었다. 8시가 되니 배가 출발한다. 집으로 가고 있기 때문일까. 선실 안엔 기대감 같은 게 떠다녔다. 앞자리에 앉은 젊은 여성을 보고 통로를 간신히 지나가던 젊은 군인이 인사를 한다. 같은 고향 사람인 듯하다.
 
  시간이 지나자 그 불편한 자세로 다들 어떻게든 잠이 들었는지 조용해졌다. 배가 흔들리자 사람들이 ‘우우’ 하며 재밌다는 듯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 기자의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만약 이 배가 침몰하면, 나는 거의 100%의 확률로 죽을 거란 사실이었다. 더군다나 지금 이 배는 명절 연휴 때문에 원래 승선 인원의 두 배는 족히 넘게 탑승했으니 말이다. 실제로 인도네시아에서는 배 침몰 사고가 자주 일어난다. 기자가 귀국한 후인 7월 24일에도 부톤섬과 인근 섬을 오가는 배가 전복했다. 15명이 사망하고 19명이 실종됐다.
 
 
  유명해진 찌아찌아족
 
인도네시아 마트에서는 한국산 라면을 흔히 만날 수 있다.
  앞자리에 앉은 여성들과 대화를 나눴다. 물론 번역 앱을 사용했다. 그들은 기자에게 “어디 가냐”고 물었다. “부톤! 찌아찌아”라고 했더니 “아” 하면서 단박에 고개를 끄덕인다. 여정 도중 만난 인도네시아인들에게 “한글을 채택한 찌아찌아족을 아는가” 물었더니 많은 사람이 안다고 대답했다.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채택해 상당한 홍보 효과를 거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바우바우에는 한때 ‘코리안 빌리지(한국 마을)’도 있었다. 한복을 입고 기념촬영도 할 수 있는 일종의 작은 한국 거리다. 한국에 관심이 있는 인도네시아인들이 꽤 많이 찾았다고 한다. 지금은 운영하지 않는다.
 
  이번엔 기자가 물었다. “이 배는 항상 이런가요?” “평소엔 이렇지 않고 오늘은 명절이라 이렇다”는 답이 돌아왔다. 어딘가에서 한번 정선했다. 그 와중에 먹을 것을 파는 상인이 들어와 돌고 나갔다. 앞자리 여성들은 고추튀김을 사 먹었다. 인도네시아인들은 짜고 맵고 단 걸 좋아한다. 마트에 가면 컵라면을 파는데, 한국 라면과 비슷하다.
 
  부톤섬에 도착했다. 5시간 걸린다더니 거의 7시간이 걸렸다. 배가 가라앉지 않은 것만으로 감지덕지였다. 승객들은 순식간에 배에서 빠져나갔다. 와중에 짐가방이 없어지지 않은 것은 기적 같았다. 공기 중에 두리안 향기가 떠다녔다. 한국어로 쓴 손피켓을 들고 마중 나온 찌아찌아 아이들이 보였다.
 
 
  2010년부터 한글 가르친 정덕영씨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상 매점(와룽). 사진 속 와룽은 큰 축에 속한다.
  부톤섬의 면적은 4727km²로 제주도 면적(1846km²)의 약 2.5배다. 강원도 인제·평창·홍천을 합한 면적과 같다. 대부분 열대 우림 지대다. 바우바우시의 인구는 16만 명, 13개 민족으로 이뤄져 있는데 이 중 찌아찌아족이 가장 많다. 찌아찌아족은 약 9만1000명이다. 대부분이 이슬람교를 믿는다.
 
  찌아찌아족은 고유 언어인 찌아찌아어가 있지만 사멸(死滅)될 위기에 처해 있다. 젊은이들은 인도네시아어로 소통한다. 언어가 없어진다는 건 그 언어가 담고 있는 이야기들도 없어지는 걸 의미한다. 찌아찌아어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012년 조사에서 인도네시아어를 이해하고 구사할 수 있는 인구가 전체 국민의 97%가 넘는 걸로 나왔다.
 
  찌아찌아어는 고유 문자가 없기 때문에 사라져 가는 전통과 기억을 기록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한글을 받아들인 이유다.
 
  찌아찌아족과 한글의 첫 만남은 1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5년 전태현 한국외국어대 말레이·인도네시아어 통번역학과 교수는 국제학술대회 참석차 바우바우시를 방문했다. 이때 처음 고유 문자가 없는 찌아찌아족을 알게 됐다. 전 교수에게 이 얘기를 전해 들은 훈민정음학회는 찌아찌아족에 한글 사용을 제안했다. 찌아찌아족은 부족장 회의를 열었다. 한글을 부족의 문자로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14년 전, 2009년의 일이다.
 
  현지에서 한글을 가르칠 교사로 정덕영씨가 선발됐다. 이듬해인 2010년 바우바우시로 간 정씨는 지금도 찌아찌아족과 함께 있다. 사단법인 한국찌아찌아문화교류협회 덕이다.
 
 
  한국찌아찌아문화교류협회
 
찌아찌아족 초등학생 아이들. 초등학생은 한글을 배우고, 중·고등학생은 한국어를 공부한다. 사진=정덕영
  한데 2011년 정부의 지원이 끊겼다. 세종학당과 정씨는 귀국해야 했다. 찌아찌아 아이들은 돈을 모아 현지 신문에 “선생님이 돌아오게 해달라”는 광고까지 냈다.
 
  정덕영씨의 호소를 듣고, 몇몇 뜻있는 인사들이 모였다. 이들은 사비(私費)를 털어 후원금을 모았다. 한국찌아찌아문화교류협회를 만들어 지금까지 후원을 계속하고 있다. 이 덕분에 한글 교육이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지난해 8월엔 바우바우에 학교를 세웠다. 1311㎡ 부지 위에 연면적 465㎡ 2층 규모의 건물 안에 한글학당이 자리하고 있다. 회의실과 한글교사 숙소도 함께 있다. 교보생명이 건축비를 보탰다. 그동안엔 정덕영 한글학당 교장이 바우바우시의 학교들을 돌아다니며 아이들을 가르쳤다. 초등학생들에겐 한글을, 중·고등학생들에겐 한국어를 가르친다. 현재 50명이 공부 중이다.
 
 
  한글 고어 사용하는 찌아찌아족
 
아라소프트는 찌아찌아어를 한글로 표기할 수 있는 디지털 저작 프로그램을 제작해 기증했다. 강정현 아라소프트 대표가 프로그램 사용법을 교육하는 모습.
  올해는 한국·인도네시아 수교 50주년이다. 50주년을 기념해 한국 기업과 기관들이 바우바우시에서 힘을 합쳤다. ‘팀코리아’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는 현지에서 기업들과 함께 이번 행사를 기획했다. e러닝 콘텐츠를 만드는 기업인 아라소프트(대표 강정현)는 찌아찌아족이 사용할 수 있는 맞춤형 문서 저작 프로그램을 만들어 기증했다. 맞춤형 프로그램이 필요한 이유가 있다.
 
  찌아찌아족 언어의 발음 특성상 한글 고어(古語)를 문자에 활용한다. 순경음(脣輕音) 비읍(ㅸ)과 순경음 피읖(ㆄ), 쌍리을(ㄹㄹ), 반치음(ㅿ)이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엔 사용됐지만 이후 사용하지 않는 자모들이다. 찌아찌아어에서는 이 한글 고어들을 활용하는데, 이걸 표기할 수 있는 디지털 문서 저작 프로그램이 없었다. 책을 만들 때 손으로 써서 제작했다. 아라소프트는 고어들을 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라이선스를 기증했다.
 
주인도네시아 한국 대사관에서 바우바우 한글학당에 현판을 기증했다. 왼쪽부터 김준성 코트라 수라바야 무역관장, 다루살람 바우바우 시장 비서, 정덕영 한글학당 교장, 이상덕 주인도네시아 한국 대사, 김한란 한국찌아찌아문화교류협회 이사장.
  KB국민은행은 노트북과 스마트 태블릿 60여 대를 바우바우 한글학당에 기증했다. KB국민은행은 인도네시아에서 활발히 사업을 펼치고 있다. 현지 은행인 부코핀은행을 인수해 KB부코핀으로 사업 중이다. KB부코핀의 사업 분야엔 이슬람 금융도 있다. 이슬람 금융상품은 면허가 있는 은행만 다룰 수 있다. KB부코핀이 KB국민은행의 사업 확장에 전진기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다. ‘팀코리아’는 바우바우시 공무원과 청년 기업인들을 위한 IT 역량 강화 세미나도 열었다.
 
  바우바우 현지 협력을 기념하는 행사가 6월 28일 한글학당 앞마당에서 열렸다. 말 그대로 산 넘고 물 건너 간 끝에, 이 행사를 겨우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다. 이상덕 주인도네시아 한국 대사가 직접 참석해 한글학당에 현판을 기증했다. 한국 대사가 바우바우시를 찾은 건 수교 이래 처음이라고 했다.
 
 
  양칠성과 허영
 
팀코리아와 바우바우시의 IT ESG 협력 기념식에서 아리랑을 부르는 찌아찌아족 아이들.
  이상덕 대사는 축사에서 인도네시아와 한국의 오랜 인연을 소개했다. 양칠성, 허영 등 낯선 이름들이 들려왔다. 이들의 이름에는 인도네시아와 조선, 일본의 역사가 얽혀 있다.
 
  1942년 3월 일본군은 자바해전에서 승리해 인도네시아를 군정 통치하기 시작했다. 전북 완주 출신인 양칠성은 1942년 2월, 일본군 군무원으로 인도네시아에 왔다. 자바섬에서 포로감시원을 했다. 1945년 일본이 패망했다. 네덜란드군이 인도네시아로 돌아왔다. 양칠성은 조선으로 돌아오지 않고 인도네시아에 남았다. 일본군에서 이탈한 조선인, 일본인 동료들과 함께 인도네시아 독립군으로 활약했다. 1948년 11월까지 네덜란드군과 맞서 싸웠다. 체포된 후 1949년 8월 10일 처형당했다.
 
  허영은 일제 시대 히나쓰 에이타로(日夏英太郞)라는 이름으로 활약한 영화감독이다. 〈그대와 나(君と僕)〉(1941)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허영은 1942년 육군보도반원으로 인도네시아로 갔다. 그 역시 일본 패망 후 아내와 딸이 사는 일본에도, 모국(母國)인 조선으로도 돌아가지 않았다. 인도네시아에 남아 영화인으로 활약했다. 인도네시아 초창기 영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인도네시아 영화의 아버지’라 불릴 정도라고 한다.
 
  이 대사는 “한글학당에서 공부한 이들이 앞으로 한국 기업에도 취직하고 한국에서 배움을 이어나갈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념식엔 한국에서 건너온 한국찌아찌아문화교류협회 측 인사들도 함께했다. 협회의 김한란 이사장은 지금까지 약 6000명의 학생을 지도해온 정덕영 교장과 협회의 역사를 소개했다. 백순진 함께하는음악저작인협회 이사장(4월과5월 리더)은 한글학당에 우쿨렐레와 앰프를 기증했다. 백 이사장은 협회가 만들어질 때부터 정 교사의 활동을 지원해왔다. 평소 협회를 후원해온 KCC정공 박덕규 대표는 이번엔 찌아찌아족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다.
 
  찌아찌아족 아이들이 한복을 입고 등장했다. 아리랑을 불렀다. 바닷바람 속에 울리는 아리랑을 들으며 아이들의 그늘 없는 미소를 보자 비행기를 놓친 거며, 7시간 배를 탄 기막힌 기억이 슬며시 기화(氣化)되는 것 같았다.
 
 
  현지인 교사도 탄생
 
흐뭇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정덕영 바우바우 한글학당 교장. 사진=정덕영
  기념식을 지켜보는 정덕영 교장은 담담한 얼굴이었다. 기쁜 마음을 애써 숨기는 듯했다. 2010년부터 지금까지, 가족도 없이 이국 땅에서 혼자 살며 한글을 가르쳐온 그가 아니었다면 한글학당도, 오늘의 기념식도 없었을 것이다. 그에게 물었다.
 
  ― 다 그만두고 한국으로 가고 싶을 때는 없었나요?
 
  “있었죠. 교실에서 아이들 가르치는데 이민국에서 와서 체포하겠다고 한 적도 있었어요. 비자 문제 때문이었어요. ‘더 이상은 못 있겠다’ 싶었지요. 아플 때도 그랬어요. 간단한 병인데도 여기서는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렸을 때요. 처음에 오자마자 티푸스에 걸렸어요. 쓰러져서 열흘 입원했어요. 치료라고 해봐야 요양하고 나오는 정도였지요.”
 
  ― 그런데 왜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나요? 가족과 10년 넘게 떨어져 살고 있는데 그립지는 않나요?
 
  “저도 제가 이렇게 오래 머무를 줄 몰랐어요. 가족들도, 저도 2~3년 있다 귀국할 줄 알았어요. 1년만 더, 1년만 더 하다 여기까지 왔어요. 여기가 인맥(人脈)의 사회거든요. 많은 사람을 알게 됐잖아요. 어느 순간에 칼로 무 자르듯 모든 걸 뒤로하고 돌아올 수가 없게 되어버렸어요. 처음엔 두 개 학교에서 가르쳤는데 지금은 열 개까지 늘어났어요. 현지인 교사도 세 명 채용했고요.”
 
  ― 다 버리고 돌아오기 힘들게 됐군요.
 
  “제가 가르친 아이들이 자라서 이제는 보조 교사를 하고 있어요. 월급은 조금밖에 못 주지만 한국어 가르치는 거 괜찮은 일이라고 제가 그 아이들에게 권했어요. 그러니 어떻게 귀국합니까. 저라는 사람을 통해 이 아이들이 한글과 한국어와 인연을 맺었잖아요.”
 
  한글학당에서는 찌아찌아 아이들에게 한글뿐 아니라 한국어도 가르친다. 찌아찌아족이 아닌 다른 종족도 그에게 한국어를 배운다. 현지에서 만난 찌아찌아족 아이들은 놀라울 정도로 한국어를 잘했다. 발음도 좋고, 아이돌이니, 드라마니 한국 문화에도 훤해 대화에 별 막힘이 없었다. 눈 감고 들어보면 한국의 여느 고등학생과 얘기하는 기분이었다. 한두 명만 그런 게 아니라 여러 명이 그랬다.
 
 
  규제 완화하려는 조코위 정부
 
찌아찌아족 아이들이 정덕영 교장과 얘기를 나누며 밝게 웃고 있다. 사진=정덕영
  그는 한국이 그리우면 여객선이 오가는 항구에 서 있는다고 했다.
 
  “‘저 사람들 이제 고향에 가는구나, 이제 가족들 만나겠구나’ 사람 구경하면 조금 괜찮아져요. 아이들 가르치러 교실에 들어가면 다시 힘이 나지요. 한글 교사들도, 아이들도 이제 저를 믿고 따라요. 관공서 직원들도 벌써 알고 지낸 지 십수 년 됐잖아요. 이제 한글학교 건물까지 지었으니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인도네시아는 오랜 기간 외부에 배타적이었다. 사람들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외국의 투자나 진출에 신중했다. 외국 기업의 투자를 희망한다고 하면서도, 외국인 비자 발급엔 까다로웠다. 현 정권인 조코위 정부는 규제를 간소화하겠다고 하지만 아직도 규제의 벽이 만만치 않다. 자카르타 같은 도시라면 좀 나을 수 있지만, 지역에선 폐쇄적인 관행이 심각하다.
 
  이날 기념식에도 이민국에서 나와서 기자가 누구인지 정덕영 교장에게 물었단다. 현지 호텔에 체크인하면 여권 사본이 자동으로 이민국으로 전달되는데, 기자는 비행기를 놓친 탓에 현지 호텔 체크인을 늦게 해 아직 여권이 전달되지 않아서였다.
 
  정 교장이 그동안 끈질기게 버텨 현지인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해놓은 건, 상당한 일이라는 걸 현지에 가보니 알 수 있었다. 그것도 정부의 지원 없이 민간 차원에서 말이다.
 

  정 교장은 먼바다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에서 10년 이상 살면 성인이 되거나, 실성한 사람이 됩니다.”
 
  실감이 되는 게, 기자도 며칠 채 머무르지도 않았는데, 분노조절장애에 걸릴 것 같았다. 사람들은 친절하고 외국인에 배타적이지 않은데, 도로나 교통체계 같은 사회 인프라와 제도가 아직 많이 부족했다.
 
  현지에서 만난 일본인 이민자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살아보니 가장 불편한 점이 뭐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한참 갸웃거리더니 이렇게 답했다.
 
  “도로에 구멍이 나서, 고쳐도 한 달 안에 같은 자리에 또 구멍이 난다. 이 사람들은 도로를 닦는 법을 모르는구나 싶다.”
 
  동남아의 많은 나라가 그렇지만, 인도네시아 역시 오토바이가 주요 교통수단 중 하나다. 도로에 구멍이 나 있으면 치명적이다.
 
 
  ‘한글이라는 집’이 넓어지고 있다
 
  부톤섬에 오기 전까진 의구심이랄까, 마음 한쪽에 이런 의문이 있었다.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도입하는 게 그들에게 또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한글 덕분에 한글학교 앞마당에서 만나게 된 찌아찌아 사람들과 한국인들을 보며 어떤 의미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어는 생각의 집이다.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우면 내 안의 어떤 부분은 잃고, 다른 부분은 채워진다. 그러면서 생각의 집이 확장된다. 한글학당 계단에 앉아 찌아찌아족 소녀들과 어떤 아이돌 가수가 제일인지 짧고 진지한 토론을 나눈 후 생각했다.
 
  ‘인도네시아 한쪽 부톤섬에서 찌아찌아족과 한국인의 지평이 조금씩 넓어지고 있구나. 한글이라는 집이 넓어지고 있구나.’
 
  한글이라는 한 지붕을 공유하게 된 찌아찌아족과 인도네시아에 대해 이제부터는 우리가 더 많은 호기심을 가져도 좋을 것 같다.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한글을 창제하고 반포한 목적이 바로 이런 게 아니었을까.
 

  인터뷰
  주인도네시아 대사 이상덕
 
  “인도네시아, ‘미래 大國’ 아닌 ‘현실의 대국’”
 
사진=주인도네시아 한국 대사관
  이상덕(李相悳·63) 대사는 금년 1월 주인도네시아 한국 대사로 부임했다. 올해는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수교 50주년을 맞은 해다. 이 대사는 “인도네시아는 더 이상 잠재적인 미래 대국이 아닌 현실의 대국으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 인도네시아에서도 한류의 인기가 상당히 높은 것 같습니다.
 
  “인도네시아 정·재계 인사들을 만날 때마다 본인 또는 가족들이 K-드라마와 K-팝의 열성적인 팬이라거나 한국에서 유학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배우려는 인니인들의 열기가 ‘케이 웨이브(K-wave)’를 넘어 ‘케이(K)-쓰나미’ 수준이라고 표현할 정도입니다.”
 
 
  “2045년까지 세계 5대 경제 대국 목표”
 
  ― 한국 기업들의 진출도 활발한가요. 자카르타 공항에서 현대자동차 광고가 계속 노출되는 걸 보긴 했습니다.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경제협력은 정말 눈부시게 강화되고 있습니다. 초기에 현지 진출에 성공한 봉제, 신발 등 전통 제조업 기업들뿐만 아니라 최근에 인도네시아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현대자동차, LG, 포스코, 롯데케미칼 등 우리 기업의 현장을 찾아가 봤습니다. 양국 간 경제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심화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현대자동차는 인니 현지에서 아이오닉5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현대자동차-LG 엔솔 합작공장에서는 내년부터 EV용 배터리도 생산됩니다. 인도네시아 신수도 예정지인 누산타라에서도 우리 기업들의 진출과 협력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 양국의 외교 관계는 어떤 수준인가요.
 
  “인도네시아는 동남아 국가 중 유일하게 우리와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수립한 국가입니다. 조코위 대통령은 실용주의를 중시합니다.
 
  2045년까지 인도네시아가 세계 5대 경제 대국으로 올라설 수 있는 동력을 준비하기 위해 한국과의 전방위적인 경제협력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전기차·배터리, 철강, 석유화학, 플랜트, 건설·인프라 등 인도네시아의 기간산업 분야에서의 협력뿐만 아니라, 전문 인력 양성 및 인적자원 경쟁력 제고를 통한 산업구조 고도화를 위해 인적 자원을 바탕으로 경제 발전을 이룩한 한국과 협력 및 경험을 공유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양국이 수교 50주년을 넘어 100년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양국 국민들 간의 인적 교류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양국 미래 세대 간의 교류와 협력 말입니다.”
 
  ― 인도네시아의 자산은 무엇인가요.
 
  “인도네시아는 전체 인구 약 2억8000만 명의 세계 4대 인구 대국이자, 국민 평균 연령이 30세 미만인 청년 대국입니다. 세계 최대 니켈 보유국일 뿐만 아니라, 주석, 금, 보크사이트, 석탄, 구리 등 풍부한 천연자원을 보유한 자원 부국(富國)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의 가장 큰 자산으로 무엇보다 ‘포용정신’을 들고 싶습니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 이슬람국가이면서, 다른 종교와 문화를 존중하고 포용하는 나라입니다. 한국인이 즐겨 찾는 관광지인 발리에는 힌두교 문화가 보존되어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어디를 가더라도 인도네시아의 종교적 포용과 관용을 보여주는 건축물이나 사회문화를 많이 발견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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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달기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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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son    (2023-11-18) 찬성 : 0   반대 : 0
꿈지기님의 댓글은 사실관계를 알아보고 하신건가요? 악의적인 유튜브 하나 올려 놓고 사실인 것처럼 선동하시면 곤란합니다.
  꿈지기    (2023-10-13) 찬성 : 5   반대 : 1
이런 엉터리 기사 접할 때마다 한숨이 나옵니다. 찌아찌아 한글학교(한글 알파벳 보급사업)의 실체는 윤미향식 후원금 가로채는 사기행각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인터뷰에 응한 인도네시아 한국대사님 정신차리세요?
아래 주로 영상을 살펴보세요?
https://youtu.be/aXJhhHTQHrk?si=AKHythro8CyD5TLv

20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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