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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이슈진단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과 주변국에 미치는 영향

抗蘇 지도자들, 사치에 빠져 탈레반과 싸우지 못해

글 :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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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은 탈레반의 신장위구르 독립운동세력 지원, 인도는 탈레반이 파키스탄의 카슈미르 탈환 지원하는 것 우려
⊙ 탈레반 후원해온 파키스탄, 이번에도 헬기·특수부대 동원해 탈레반의 판지시르 점령 도와
⊙ 축출된 가니는 탈레반보다 政敵 제거에 관심… 대통령안보보좌관이 정부군에게 항복 명령
⊙ “투쟁은 길자이족이 하고 果實은 두라니족이 따 먹는다”
⊙ 4명의 형제 중 3명이 탈레반에 가담한 경우, 나머지 1명이 형제들의 가족 생계 떠맡아

박현도
1966년생. 서강대 종교학과 졸업, 캐나다 맥길대학 이슬람연구소 이슬람학 석사, 同 박사과정 수료. 이란 테헤란대학 이슬람학 박사 /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 외교부 정책자문위원 역임. 現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연구교수, 《Religion & Peace》 편집장, (사)한-이란협회 학술위원장, 법무부 난민자문위원, 한국종교인평화회의 출판위원장
지난 8월 15일 카불에 입성한 탈레반 전사들은 대통령궁을 접수했다. 미군 장비로 무장한 것이 인상적이다. 사진=AP/뉴시스
  ‘아프가니스타니즘(Afghanistanism)’이라는 표현은 ‘당면한 국내 문제를 무시하고 먼 나라의 문제에 집중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탈레반의 카불 입성(入城)으로 전 세계 언론이 아프가니스탄 관련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먼 나라 일이라기보다는 국내 문제와 같은 비중으로 보도된다. 예전과 달리 세계가 그만큼 좁아졌다. 아프가니스타니즘이라는 단어가 새로운 뜻을 얻은 것 같은 느낌이다.
 
  미군이 떠나도 적어도 1년은 버텨줄 것으로 믿었던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이 미군이 철수하면서 급격히 무너지자, 우리나라처럼 미군과 함께 국가안보를 꾸려가는 미국 동맹국들의 민심이 동요하였다. 특히 탈레반이라는 ‘악마’의 귀환에 놀란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이 비행기에 매달리다 떨어지기까지 하면서 필사적으로 탈출하려는 아비규환(阿鼻叫喚)을 보면서 자유세계 시민들은 경악을 금하지 못하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서둘러 동맹국의 중요성을 강조하자 미군 철수 가능성 논란이 조기(早期) 진화되긴 하였지만,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는 안 그래도 중국의 부상(浮上), 러시아의 크림반도 무력(武力)점령 등으로 혼란스러운 국제사회 질서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킨 것은 분명하다.
 

  아프가니스탄은 고대(古代) 페르시아의 키루스 대왕이 정복 전쟁 중 목숨을 잃은 곳인데 이 사건으로 처음 역사 문헌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프가니스탄은 1979년 12월부터 1989년 2월까지 이어진 소련의 침공을 이겨냈고, 2001년 10월 7일 들어왔던 미국도 지난 8월 30일 떠나면서 ‘제국의 무덤’이라는 별칭이 더욱 공고해졌다.
 
 
  정복의 고속도로
 
  아프가니스탄은 역사를 되돌아보면 사실 1965년 아널드 플레처의 책 제목 《아프가니스탄: 정복의 고속도로(Afghanistan: Highway of Conquest)》처럼 ‘정복의 고속도로’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곳이다.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를 비롯해 아랍 무슬림, 칭기즈 칸, 티무르, 바부르, 19세기 영국까지 세기의 강자들이 거쳐갔다.
 
  정복자들은 잠시 머물다 가지 않고 왕조를 세워 주변 지역으로 세력을 넓혔는데, 가즈나 술탄조(Ghazna Sultanate·977~1186년)가 대표적인 예다. 오늘날 아프가니스탄의 가즈니를 수도로 삼은 가즈나 술탄조는 이란 동부 지역과 인도 펀잡을 장악하였다. 인도 무슬림들은 가즈나 술탄조의 마흐무드(재위 998~1030년)를 인도에 이슬람을 전파한 정복자로 존경한다. 또 가즈나 술탄조에 이어 아프가니스탄 구르에서 발흥한 구르 술탄조(Ghur Sultanate)는 원래 이슬람교를 신봉하지 않았으나, 가즈나 술탄조의 침략을 받고 복속된 후 이슬람화되었다. 훗날 가즈나 술탄조를 멸망시킨 구르 술탄조는 인도에 무슬림 세력 기반을 더욱 굳게 다졌다. 북부 인도를 열어 델리, 아지메르 등 주요 도시를 정복하고 벵골까지 진출하였다.
 
 
  다민족 국가 아프가니스탄
 
지난 8월 19일 수도 카불 시내를 순찰하는 탈레반 전사들. 사진=AP/뉴시스
  국토의 75%가 산악지역인 아프가니스탄은 ‘쿠헤 바바(산의 아버지)’로 불리며 해발 5000~7000m에 이르는 힌두쿠시산맥이 국토를 가르고, 국토의 절반이 해발 2000m인 험한 땅이다. 14개 민족이 거주하고, 10여 개 언어가 사용되며, 공식 언어가 2개(다리어·파슈토어)인 나라다. 처음부터 중앙집권적인 정치체제가 자리 잡기 어려운 나라인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은 오늘날의 형태를 갖춘 18세기 이래 부족 연합체 형태의 정체(政體)를 유지해왔다. 14개 민족 중 다수는 파슈툰족이지만, 전체 인구의 반을 넘지는 못한다. 인구조사는 1979년이 마지막인데, 그마저 정확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오늘날 아프가니스탄 인구는 모두 추정치다. 2019년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약 3800만명이다. 파슈툰족은 42%를 차지하고, 타지크족(27%)과 하자라족(9%), 우즈베크족(9%) 등이 그 뒤를 따른다. 사는 지역도 서로 달라서 파슈툰족은 남부와 동부, 타지크족은 북부, 하자라족은 중부, 우즈베크족은 서부에 주로 거주한다.
 
  흥미롭게도 이 민족들은 민족주의를 앞세워 국가를 만들겠다는 정치운동을 펴지 않았다. 우즈베크족이나 타지크족은 이웃한 우즈베키스탄이나 타지키스탄과 민족국가를 이루겠다는 뜻도 없었다. 다수인 파슈툰족의 경우 민족주의 운동은 오히려 파키스탄에 거주하는 파슈툰족 사이에서 거셌고, 여전히 그러한 불씨가 남아 있다. 1500만~1600만명에 달하는 아프가니스탄의 파슈툰족보다 4000만명 이상의 파슈툰족이 사는 파키스탄에서 ‘파슈투니스탄(Pashtunistan)’ 건국 운동이 더 활발하다.
 
 
  데오반디와 와하비
 
  탈레반은 파슈툰어로 ‘이슬람을 배우는 학생’을 뜻한다. 아랍어로 학생을 가리키는 ‘탈렙(taleb·talib)’에 파슈툰어의 복수접미사 ‘안(an)’이 붙은 형태다. 학생들은 이슬람을 기숙학교인 마드라사(madrasa)에서 공부한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산실(産室)은 파키스탄 페샤와르에서 동쪽으로 약 70km 떨어진 아코라 하탁에 세운 데오반디(Deobandi) 마드라사인 다룰 울룸 하카니아(Darul Ulum Haqqania)다. 탈레반의 창시자 물라 오마르가 바로 이 학교 출신이다. 탈레반을 이끄는 지도부 상당수도 이곳에서 수학하였다.
 
  데오반디는 영국의 인도 지배기에 델리에서 북쪽으로 약 150km 떨어진 도시 데오반드에서 시작한 근대 개혁운동이다. 18세기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발생한 와하비(Wahhabi) 사상의 영향을 받은 원리주의 운동이다. 와하비보다는 온건한 개혁운동인데 서구의 영향으로 이슬람적 삶의 양식이 침식되는 것을 막고자 반(反)서구를 기치로 내부 개혁 교육을 시작하였다.
 
  상당히 성공한 운동으로 자리 잡은 인도의 데오반디에서 배운 학생들이 파키스탄으로 가서 교육을 이어갔는데,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되고 파키스탄 정치인들이 이슬람을 정치에 이용하면서 파키스탄의 데오반디는 과격하게 변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이 성공하자 위협을 느낀 사우디아라비아가 와하비 사상을 전 세계에 보급하면서, 와하비 영향을 받은 국가의 이슬람 운동은 더욱 급진적인 정치원리로 발전하였다. 데오반디 역시 와하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괴물의 탄생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단순히 존립을 위협받고 있는 친소(親蘇) 정권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중앙아시아에서 아라비아해로 이어지는 통로를 장악하여 가스와 석유 파이프라인을 마련하려는 지정학적(地政學的)·지경학적(地經學的) 노림수가 숨어 있었다.
 
  이에 미국은 소련의 남하를 막고 ‘소련판 베트남전쟁’을 선사할 준비를 하였다. 싸움의 구도를 신(神)을 믿지 않는 공산주의자와 신을 따르는 무슬림 전사(戰士)로 잡고, 무신론자(無神論者) 소련에 대항하여 성전(聖戰·지하드)을 수행할 전사(무자헤딘)를 양성하였다.
 
  소련은 농촌 지역에서 민간인과 전사 간의 구분이 어렵다고 느껴 농민들을 도시로 강제 이주시켰다. 이에 여성과 아이들은 전쟁의 참화(慘禍)를 피해 파키스탄 난민촌으로 이주하였다. 고향을 떠나 파키스탄으로 몰려온 파슈툰 소년 난민과 전쟁고아들은 데오반디 마드라사에서 제공하는 이슬람과 군사 교육을 받으며 전사로 성장하였다. 세상을 흑백(黑白)으로 보고 종말론적 사상으로 무장한 무자헤딘으로 변모한 것이다. 이들이 1994년 물라 오마르가 조직한 탈레반 병사가 되었다.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든든한 후원을 받은 파키스탄 정보부는 탈레반에게 무기와 군사 기술·정보를 제공하였다.
 
  미국은 오사마 빈라덴과 손을 잡고 아프가니스탄을 무신론자의 군홧발에서 해방시킬 아랍 전사들을 무슬림 세계로부터 끌어들였다. 1988년 그러한 전사들과 함께 오사마 빈라덴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알카에다를 결성하였다. 요르단 감옥에서 원리주의자의 설교에 회심(回心)한 알자르카위도 성전에 참여하고자 아프가니스탄에 와서 오사마 빈라덴을 만났다. 알자르카위는 2014년 잔혹함으로 악명을 떨친 IS의 창시자다.
 
  탈레반은 대소(對蘇) 항쟁단체 무자헤딘들이, 소련이 1989년 패퇴(敗退)한 후 벌어진 내전(內戰) 정국에서 1994년 물라 오마르 지도 아래 뭉쳐 만든 원리주의 조직이다. 힐러리 클린턴은 2012년 인터뷰에서 미국이 싸우고 있는 원리주의 테러분자들을 미국이 대소 아프가니스탄전쟁에서 키웠다고 했는데, 틀린 말이 아니다. ‘소련판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은 알카에다, 탈레반, IS의 모체(母體)를 지원하였다. 괴물은 그렇게 세상에 고개를 내밀었다.
 
 
  길자이족과 두라니족
 
  탈레반은 파슈툰족이 주축이고, 파슈툰족 중에서도 길자이족이 주류다. 그러나 파슈툰족 모두가 탈레반을 지지하지는 않기 때문에, 파슈툰족이 곧 탈레반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특히 파슈툰족 중 두라니족은 싸움에 능한 길자이족과 달리 18세기 이래 아프가니스탄의 정치를 좌지우지해온 정치 엘리트를 다수 배출한 지배적인 부족이다. 2001년 탈레반이 붕괴된 후 들어선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초대(初代) 대통령 하미드 카르자이가 바로 파슈툰 두라니족이다. “투쟁은 길자이족이 하고 과실(果實)은 두라니족이 따 먹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거친 환경에서 자란 길자이족은 전투에 능했지만, 풍요로운 농경사회를 배경으로 성장한 두라니족은 유연한 문화를 지니고 아프가니스탄 정계를 장악해왔다.
 
  아프가니스탄 남부 스핀 볼다크에서 탈레반은 두라니족에 속하는 아차크자이족 100여명을 학살하였다. 최근 탈레반에게 뺨을 맞는 수모를 당하다 살해당한 코미디언도 아차크자이족 출신이다. 그렇다고 해서 탈레반이 두라니족을 증오하여 무조건 죽인다는 말은 아니다.
 

  탈레반에는 두라니족도 많이 참여하고 있다. 물라 오마르와 함께 탈레반을 만들고 미국과 평화회담을 이끈 압둘 가니 바라다르도 두라니족이다.
 
  그런가 하면 1996년 탈레반이 잔인하게 살해한 모하마드 나지불라(소련 괴뢰정권 시절의 아프간 대통령)는 길자이 아흐마드자이족이다. 아랍에미리트(UAE)로 도주한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도 길자이 아흐마드자이족이다.
 
  따라서 탈레반은 파슈툰족이라도, 길자이족이든 두라니족이든 간에 종교적 세계관 공유(共有) 여부에 따라 피아(彼我)를 구분한다. 이란의 아프가니스탄 전문가 모하마드 자파리안은 아프가니스탄인 중 15~25%가 탈레반 사상을 갖고 있고 대부분 파슈툰족이지만, 그 외 6~8%는 우즈베크족·타지크족·투르크멘족으로 추정한다.
 
 
  탈레반의 성공 원인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카르자이 전 아프간 대통령. 카르자이는 미국의 앞잡이라는 인식을 벗는 데 실패했다. 사진=AP/뉴시스
  1989년 소련이 철수한 후 1992년부터 내전에 들어가자 칸다하르에서 자경단(自警團)으로 시작한 탈레반은, 파키스탄 정보부와 사우디아라비아의 후원으로 1996년 북부동맹이 장악한 지역을 제외하고 약 90%에 달하는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였다. 이후 탈레반 정권은 알카에다에게 테러 기지를 제공하고 오사마 빈라덴과 협력했다. 이 때문에 9·11테러 직후 미국의 공격을 받아 2001년 12월 탈레반 정권은 5년 만에 막을 내렸다.
 
  그로부터 20년 만에 다시 탈레반이 돌아왔다. 천문학적인 재원을 투입하고도 미국은 왜 아프가니스탄에 성공한 민주 정부를 세우지 못하였을까? 도대체 탈레반은 어떻게 성공한 것일까?
 
  자파리안은 탈레반의 성공 이유로, 먼저 가족의 후원과 파슈툰족이라는 기반을 든다. 4명의 형제 중 3명이 탈레반에 가담한 경우, 나머지 1명이 형제들의 가족 생계를 떠맡는다. 또 탈레반의 주축이 파슈툰족이라는 사실은 말 그대로, 파슈툰족은 마르지 않는 저수지처럼 끊임없이 탈레반 전사를 공급한다.
 
  둘째, 미국이 민심과 무관하게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구성하였기 때문에 탈레반이 성공할 수 있었다. 하미드 카르자이는 정당 당수의 비서역을 수행한 것 외에 정치 경험이 부족하였다. 대소 항전 용사들에게 미국에서 요식업을 한 카르자이는 지도자감이 아니었다.
 
  카르자이 대통령의 형 카윰 카르자이는 2014년 대선에 출마하려다 동생의 반대로 물러났다. 또 카르자이에 이어 대통령이 된 아슈라프 가니는 부정선거 시비에 휩싸였다. 가니는 집권 기간 내내 탈레반에 대적(對敵)하지 않고 오로지 정적(政敵) 제거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탈레반이 검문소를 설치하여 국민에게 세금을 거둬도 제지하지 않았고, IS나 타지키스탄·위구르·우즈베키스탄의 극단주의 세력이 아프가니스탄에 똬리를 틀어도 막지 않았다.
 
  셋째, 대소 항전으로 국민의 존경을 받은 비(非)탈레반 무자헤딘이 부유한 삶을 누리면서 국민이 더 이상 이들을 존경하지 않게 되었다. 헤라트에서 적은 병력으로 소련과 싸워 이긴 이스마일 칸은 부(富)를 누리느라 탈레반과 싸움에 전력(全力)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런 그가 국민에게 탈레반과 싸우라고 한다면 누가 따를까? 또 마자르 이 샤리프의 아타 모함마드 누르는 궁전 같은 집에서 거주하였다. 얼마나 호화로웠는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누르의 집이 백악관보다 더 장식이 뛰어나다”고 할 정도였다.
 
  대소 항전 용사들이 이렇게 부를 좇아 변했으니, 이들의 말을 따라 국민이 탈레반에 맞서 싸우는 것은 애초부터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배불러진 역전(歷戰)의 용사들은 전장(戰場)에선 아무 쓸모가 없었다.
 
  넷째, 탈레반은 정부 지도자들과 막후 협상을 벌여 손쉽게 아프가니스탄을 접수하였다. 30시간도 채 못 되어 탈레반은 칸다하르·헤라트·가즈니 등 9개 주(州)를 점령하였다. 포병도 공군도 없이 오토바이·대전차포·소련제 칼라시니코프 소총만으로 탈레반이 히틀러를 능가한 전과(戰果)를 거둔 데에는 보이지 않는 거래 외에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가니 대통령은 우즈베크족 지역인 파르야브 주지사로 파슈툰족 다우드 로그마니를 임명하였다. 주민들은 로그마니가 탈레반을 위해 온다고 하면서 결사반대하였다. 결국 로그마니는 파르야브 대신 가즈니 주지사가 되었는데, 불과 두 달 만에 탈레반에게 가즈니를 넘기고 카불로 돌아왔다. 또 파자주에서는 정부군이 탈레반과 격전을 벌이고 있는데, 가니 대통령의 안보보좌관인 모헵이 주지사에게 전화를 걸어 싸움을 멈추고 탈레반에게 항복하라고 하였다. 육로(陸路)로 칸다하르에서 헤라트는 이틀이 걸리는 거리인데 같은 날 오전에는 칸다하르가, 오후에는 헤라트가 탈레반 손에 넘어갔다. 탈레반과 아프가니스탄 정부 간 모종의 거래가 없었다면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 것이다.
 
 
  샤리아가 아니라 파슈툰 부족법이 지배원리
 
  “공개적이고 포용적인 이슬람 정부를 구성하겠다”고 한 탈레반의 말은 일단 공염불(空念佛)이 되었다. 지난 9월 7일 탈레반이 공개한 임시정부 관료 명단은 국제사회가 ‘혹시나?’ 하고 기대한 것과는 달리 테러리스트 명단이었다.
 
  탈레반은 여성의 권리 보장이나 언론의 자유를 약속하고 있지만, 이 또한 기만술에 불과하다. 국제사회의 눈을 의식하여 용감하게 거리로 나온 여성 시위대들에게 직접 발포는 못 하고 있지만, 기자들에게는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 20년 전과 달리 국제사회를 의식한다는 점은 고무적이지만, 여전히 이들은 ‘샤리아의 틀’이라는 자의적(恣意的)인 잣대를 들이대면서 여성과 언론의 자유를 억압한다. ‘샤리아의 틀’이라는 것이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 같아 신뢰할 만한 기준이 되지 못한다.
 
  탈레반이 샤리아를 제대로 아는지도 궁금하다. 샤리아는 여성의 상속권과 재산권을 인정하고, 혼인 시 여성의 의견을 존중하여 신랑감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여성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탈레반은 여성의 상속권이나 재산권을 인정하지 않고, 여성의 의사를 묻지 않은 채 이뤄지는 강제결혼을 인정한다.
 
  이러한 악습(惡習)은 실질적으로 탈레반이 속한 파슈툰족의 오랜 부족 관습인 파슈툰왈리(Pashtunwali)에 기반한다. 파슈툰족 여성은 남성 없이는 존재가 불가능하다. 모든 경제적 이익은 남성 차지고, 여성은 희생이라는 미덕(美德)의 피해자다.
 
  옆을 가린 경주마처럼 탈레반은 파슈툰적 세계관에서 문자적인 이슬람 해석을 받아들였다. 이들의 이슬람 해석에 대해 극단주의적이고 문자적이라고 하는 이유다. 데오반디가 인도에서 파키스탄으로 넘어가 파키스탄의 정치환경 속에서 급진화되었고, 와하비의 세례로 더욱 극보수화되었다. 그 영향 아래 파슈툰 난민촌에서 어린 전사들의 머릿속에 박힌 자의적이고 위험한 흑백 선악관은 불신자(不信者) 소련 공산주의자와 싸우면서 더욱 잔혹해져서 탈레반이 세상을 보는 창이 되었다.
 
  독기가 서린 창을 청소하려면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지만, 그러한 움직임은 이내 내부 분열을 부를 것이다. 따라서 탈레반이 변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사상 전향도 어려운데, 하물며 종교 신념을 바꾸는 것이 가능할까!
 
 
  파키스탄, 탈레반 지원
 
판지시르계곡의 反탈레반 전사들은 아직도 탈레반과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사진=신화/뉴시스
  탈레반에게 끝까지 저항하고 있는 곳은 현재 판지시르다. 2001년 9·11테러 이틀 전 판지시르에서 저항군을 이끌던 아흐마드 샤 마수드는 알카에다의 자폭(自爆) 테러에 목숨을 잃었다. 오사마 빈라덴은 탈레반의 골칫덩어리를 제거해주고 9·11테러를 감행하였고, 탈레반은 그에 대한 보은(報恩)으로 알카에다를 보호하였다. 탈레반과 알카에다의 거래로 볼 수 있다.
 
  20년 후인 지금 아흐마드 샤 마수드의 아들이 탈레반에 맞서는 저항군을 판지시르에서 지휘하고 있다. 소련군도 함락하지 못한 난공불락(難攻不落)인 천혜의 골짜기에서 자유를 향한 투쟁을 계속하고 있지만, 파키스탄의 개입으로 전망은 밝지 못하다. 파키스탄은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파키스탄 보안군이 헬기 27대와 특수부대를 동원하여 탈레반의 판지시르 점령에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언론에서는 완전 함락이라고 하지만, 아직 마수드의 국민저항군은 건재하며 싸움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이란은 파키스탄의 개입에 발끈하며 외국이 아프가니스탄 내정에 간섭하는 것은 묵과할 수 없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란이 판지시르 저항군을 위해 전장에 뛰어들 가능성은 없다. 이란은 미군 철수가 수니파의 이란 공세를 부채질한다고 보고 탈레반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 상황을 통제하려고 한다. 탈레반이 좋아서가 아니라 불필요한 상황에 끌려 들어가는 우(愚)를 범하지 않도록 억제하는 중이다.
 
  판지시르 저항군에 우호적인 나라는 타지키스탄이다. 판지시르 전사들이 타지크족이기 때문이다. 우즈베키스탄도 은밀하게 돕는다는 말이 있지만, 확인하기는 어렵다. 내륙국(內陸國) 우즈베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을 거쳐 이란의 항구도시 반다르아바스에 이르는 운송로(運送路) 다각화(多角化) 계획이 있기에 운신의 폭이 작은 형편이다. 투르크메니스탄은 자국에서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을 거쳐 인도에 이르는 가스 파이프라인 건설을 추진 중이기 때문에 굳이 탈레반과 척을 질 이유가 없다.
 
  중앙아시아 국가에 영향력을 갖고 있는 러시아는 일단 관망 중이다. 러시아는 아직 탈레반 임시정부를 인정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신경 곤두선 중국과 인도
 
  탈레반의 집권으로 비상이 걸린 나라는 중국과 인도다. 중국은 평소 탈레반과 사이가 좋은 위구르 독립운동 조직 ETIM(동투르키스탄이슬람운동)이 두 나라 국경 지역에서 암약할 가능성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더욱이 미국은 ETIM을 테러조직 명단에서 제외하였다. 중국은 탈레반에게 이들과 관계를 끊을 것을 요구하면서 경제지원을 반대급부로 제시하고 있다.
 
  인도는 탈레반이 카슈미르 독립운동을 지원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인도는 파키스탄이 판지시르 저항군을 공격하는 탈레반을 돕는 대가(代價)로, 탈레반은 파키스탄의 카슈미르 탈환을 돕는다는 밀약(密約)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1996년 파키스탄과 함께 탈레반 정권을 인정했던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도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을 이용해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탈레반에게 접근 중이다. 미국과 탈레반에게 협상장소를 제공한 카타르, 중앙아시아 입지를 다지려는 터키도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미국이 떠난 ‘테러의 온상지’ ‘양귀비의 천국’ 아프가니스탄에서 주변 국가의 주판 튕기는 소리가 괴물과 춤을 권하는 무도곡(舞蹈曲)과 함께 요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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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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