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젊은이의 시각

‘바람의 방향’을 읽는 이스라엘 외교를 통해 보는 한국

과감한 발상 전환으로 中東의 전략적 입지 재구축

글 : 홍태화  미국 스탠퍼드대학 국제관계학부 3학년 재학 중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미국의 中東 엑소더스 속에서 떠오르는 위협인 이란 견제 위해 과거의 敵과도 손잡아
⊙ 팔레스타인 분쟁이 당장 해결되기 어렵다는 점에 착안, 군사력·경제력·對美협상력 무기로 삼아 폭넓은 외교 행보
⊙ “팔레스타인 문제는 우리가 직면한 여러 地政學的 이슈 중 하나일 뿐, 이 험난한 지역에서 든든한 友軍을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전직 이스라엘 외교관)

洪台和
1998년생. 현재 미국 스탠퍼드대학 국제관계학부 3학년 재학 중
이스라엘은 2020년 9월 15일 이른바 아브라함 협정을 통해 걸프만 아랍국가들과의 관계를 정상화했다. (왼쪽부터)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칼리드 빈 아흐메드 알 칼리파 바레인 외무장관, 알둘아 빈 자이드 알 나하얀 UAE 외무장관, 사진= AP/뉴시스
  “바람의 방향을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필자가 2018년 여름 이스라엘 국가안보연구소(INSS)에서 인턴할 때 만난 이스라엘의 전 외교관이 한 말이다.
 
  2018년은 이스라엘에 있어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5월 한 달 동안만 해도 미국대사관이 예루살렘으로 이전했고, 미국이 이란과의 핵(核)합의를 파기했다. 팔레스타인과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었고, 일각에서는 제3차 인티파다(intifada)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이스라엘이 중동(中東)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에만 힘쓰고 팔레스타인을 지나치게 홀대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이러한 우려를 이스라엘 측이 인지하고 있는지 묻자, 해당 외교관은 이렇게 답했다.
 
  “우리는 중동의 파트너들과 이란이라는 공동의 안보위협 해결과 경제번영이라는 목표가 있다. 팔레스타인 문제도 중요하지만, 이는 우리가 직면한 여러 지정학적(地政學的) 이슈 중 하나일 뿐이다. 이 험난한 지역에서 든든한 우군(友軍)을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바람의 방향을 읽어야 한다.”
 
  당시에는 그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아브라함 협정
 
  이스라엘의 최우방인 미국으로 잠시 시선을 옮겨보자. 이스라엘 외교 정책은 미국을 배제하고 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떠난 트럼프 행정부 인사 중 트럼프 전 대통령 본인을 제외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만큼 진보 진영에 미움받는 인물도 없다. 그는 4년간 줄곧 국정을 개인 사업 수단으로 남용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부인 이방카 트럼프와 함께 백악관 족벌주의(族閥主義) 논란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다.
 
  평소 노골적인 친(親)이스라엘 행보를 보여온 그가 중동평화구상의 책임자로 임명되었을 때, 많은 우려가 있은 것은 당연지사였다. 아니나 다를까 2020년 2월 발표된 트럼프 행정부의 중동평화구상은 팔레스타인을 소외시키고 이스라엘에 지나치게 편향되어 있다는 평을 받았다. 팔레스타인 이슈가 ‘종교갈등’이라는 중동 특유의 뇌관에 걸쳐져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발전하고 있던 이스라엘-아랍권 관계마저 후퇴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놀랍게도,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이스라엘은 중동 및 이슬람 국가들과 ‘아브라함 협정’(Abraham Accords·유대교와 이슬람교 모두 성경 속의 아브라함을 신앙의 조상으로 받드는 데서 나온 명칭-편집자 주)을 통해 연쇄적으로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모로코, 수단 등이 이스라엘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사실상 비공식 동맹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쿠슈너가 지난 3월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글의 일부에 해답이 있다.
 
  “아랍-이스라엘 분쟁이 지속된 이유 중 하나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 합의를 봐야만 아랍권과의 관계도 개선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 전제는 틀렸다.”
 
  이는 필자가 2018년 이스라엘에서 들은 충고와 일맥상통한다. 미국 역시 이스라엘과 함께 아랍국가들과의 안보 네트워크를 통해 이란을 견제하고 지역 균형을 유지하기로 선택한 것이다. 미국은 동맹국인 사우디아라비아, UAE, 바레인 등을 회유하고 압박하여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를 가속시켰다. 이는 ‘아랍의 봄’과 함께 팔레스타인을 중동 핵심 이슈로 견지하던 오바마 행정부와는 다른 접근법이었고,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빈 살만, “팔레스타인, 그만 불평해야”
 
  소위 ‘팔레스타인 딜레마’는 이스라엘 건국과 맞물려 지난 70년간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곤란하게 해온 이슈이다.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안보위협이자, 국가 정통성 및 정체성(正體性)과 연결되어 심리적으로도 가장 민감한 문제이다. 팔레스타인을 둘러싸고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국가들과 여러 차례 전쟁까지 치렀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지난 수십 년간 미국 중재하에 협상과 압박을 통해 팔레스타인과 2국가 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여러 현실적·정치적 이유로 매번 실패했다. 더 큰 문제는 이 팔레스타인 이슈가 모든 지역 외교를 잠식한 것이다. 미국의 중재로 1978년 이스라엘과 이집트 간 맺어진 캠프 데이비드 협정은 아랍 세계의 외면을 받았으며, 이집트는 팔레스타인을 배신했다는 비판을 받으며 아랍연맹의 주도권을 잃었다. 2010년 5월에는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로 향하던 민간구호선을 공격해 터키 구호활동가 10명이 사망하자 이스라엘과 터키가 단교(斷交)하였다.
 
  하지만 지난 약 5년간의 아랍권을 향한 이스라엘-미국의 합동 외교는 성공적이었다. 이란이라는 핫 이슈가 대두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란은 중동에서 핵무기 개발, 헤즈볼라를 동원한 테러리즘과 레바논·시리아·바레인·이라크를 망라하는 ‘시아 초승달’ 지역에서의 세력 확장을 통해 역내(域內)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 수니파 맹주(盟主)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등 걸프왕국들은 이스라엘이 아닌 이란을 지역 최대 안보 위협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란이 이스라엘을 초토화(焦土化)시키겠다고 여러 차례 천명한 만큼, 이스라엘과 걸프왕국들은 필연적으로 전략적 파트너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스라엘의 경제력이 중동국가들과의 관계 발전에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석유 의존에서 점진적으로 탈피하려는 아랍국가들에 이스라엘의 현대 경제는 투자와 무역 측면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블루오션이다. 특히 이스라엘의 선진화된 금융권과 ‘중동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실리콘 와디’는 중동 모든 국가에 선망의 대상이다. 팔레스타인 이슈에 함몰되어 번영의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데 아랍 정·재계 엘리트는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건국에서 비롯된 팔레스타인 난민 비극을 직접 목격한 1세대 중동 지도자들이 일선에서 서서히 물러나고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를 비롯한 2세대 리더들이 전면에 등장한 것이 주효했다. 서구 언론에서 ‘MBS’로 지칭되는 빈 살만 왕세자는 사적(私的)인 자리에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비판하며 “팔레스타인이 그만 불평하고 트럼프의 제안에 응해야 한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렇게 빠르게 변하는 지역 정세를 기반으로 이스라엘은 적극적인 외교 공세에 나섰다. 인적 교류로 시작해 첩보 공유, 한층 유연해진 외교적 수사를 통해 점진적으로 아랍권과의 관계를 변화시켜간 것이다. 미국과의 튼튼한 동맹을 지렛대 삼아 기어코 아랍권의 금기였던 이스라엘 주권 인정까지 이끌어냈다. 전통적으로 최우선 과제로 여겨졌던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은 잠시 접어두고 변화하는 안보 환경에 적응하기로 결단한 것이다.
 
 
  “백악관에는 이스라엘의 진정한 친구가 앉아 있다”
 
  지난 1월 바이든 행정부가 취임할 당시, 미국-이스라엘 동맹에 대한 우려가 컸다. 지난 수년간 미국 민주당 내부에서 반(反)이스라엘 기류가 강해져왔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미국은 이스라엘에 초당적(超黨的)인 지지를 보내왔으나 최근 팔레스타인 이슈, 서안(西岸)지구 정착촌 문제, 이란 핵 위협에 대한 접근법 등을 두고 민주당과 이스라엘 지도층 간의 반목이 커져왔다. 네타냐후 전 이스라엘 총리는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5년 백악관과의 상의 없이 미국 상원에서 이란 핵 협상을 비판하는 연설을 한 바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란 핵 합의를 복원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전문가들은 새 행정부가 트럼프-네타냐후 브로맨스를 이어가지 못할 것이라 예상했다. 무엇보다, 아브라함 협정으로 짜인 새판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전망이 많았다.
 
  아니나 다를까, 바이든의 민주당 정부는 정권 초기부터 이스라엘과 마찰을 빚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아브라함 협정의 대가(代價)로 UAE에 약속했던 F-35 판매도 재고(再考)하겠다고 밝혔다(지난 4월 판매 진행 결정). 이스라엘과 아랍국가 간 경제협력에 기여할 ‘아브라함 협정 펀드’ 투자 또한 무기한 동결했다. 미 국무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치적인 아브라함 협정을 부각시키지 않기 위해 해당 용어를 기피하고 대신 ‘이스라엘-아랍 세계 관계 정상화’라는 일반적인 표현을 쓰고 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폐쇄한 팔레스타인 업무 담당 예루살렘 영사관을 복원하기로 결정했다. 결정적으로 모두가 예상하였듯이 오스트리아 빈에서 이란과의 핵 합의 복원을 위한 협상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핵심 이익이 걸린 이슈에서 미국은 이스라엘의 곁을 지키고 있다. 지난 5월 있었던 이스라엘-하마스 간 교전(交戰)은 많은 팔레스타인 민간인 사상자를 냈다. 트럼프의 냉혹한 실리주의(實利主義) 대신 인권(人權)을 외교의 기치로 내세운 바이든이었기에 더 이상 이스라엘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는 민주당 내 진보 인사들에게 강렬한 비판을 받을 정도로 이스라엘의 자위권(自衛權)을 옹호하였다. 또 인권 유린 비판을 받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예멘 내전(內戰)에서 많은 민간인 피해자를 낸 UAE가 이스라엘과 함께 대(對)이란 포위망을 결성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동시에, 아브라함 협정의 기존 가맹국과 이스라엘 간 비즈니스・교육의 교류를 늘리고, 다른 국가들이 이에 동참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스라엘 국가안보연구소가 최근 “일각의 우려와 달리 백악관에는 이스라엘의 진정한 친구가 앉아 있다”고 호평한 이유이다.
 
 
  이스라엘 외교의 승리
 
나프탈리 베네트 신임 이스라엘 총리는 지난 8월 28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사진=AP/뉴시스
  지난 8월 28일 열린 나프탈리 베네트 신임 이스라엘 총리와 바이든 대통령 간 첫 정상회담에서 미국은 이란을 향해 “외교가 실패한다면 우리는 다른 ‘선택지’를 택할 준비가 돼 있다”며 강하게 경고했다. 적국(敵國)과의 대화를 구걸한다는 일부 공화당 의원들의 비판이 무색할 정도로 강경한 입장인데, 이는 미국의 안보 공약을 확인해달라는 이스라엘의 요구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팔레스타인 이슈는 바이든 대통령이 ‘2국가 해법’을 지지한다는 원론적인 언급만 나왔을 뿐이다. 미국의 국제 리더십, 인권 수호자로서의 역할과는 별개로 순전히 이스라엘의 국익(國益) 관점에서 봤을 때 이는 이스라엘 외교의 완벽한 승리이다.
 
  일부 전문가는 평화를 위한 장기적 대책 없이 하마스와의 보복 악순환이 산발적으로 이어진다면, 가자에서 로켓포탄이 날아올 때마다 아랍 세계 신문 1면을 덮을 것이라 경고한다.
 
  역설적으로 그만큼 큰 위기가 없는 한 팔레스타인 문제가 헤드라인을 장식할 일은 없다. 바이든의 국가안보팀에 포진한 외교 베테랑들이 이란 핵 합의 부활 가능성을 낮게 판단하고 있다는 소식까지 겹치면서, 이스라엘 의도대로 상황이 흘러갈 가능성이 높아진 상태다. 즉 이스라엘은 파트너들과 함께 정세의 흐름에 부합하는, 불가역적(不可逆的)인 지역 구도를 성공적으로 구축하였다.
 
 
  미국의 중동 엑소더스
 
  그렇다고 이스라엘이 미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이래 미국의 대전략(Grand Strategy)은 대중동(Greater Middle East·전통적인 ‘중동’의 개념에 북아프리카, 중앙아시아까지를 포괄하는 개념-편집자 주)에서의 점진적인 철수를 꾀했다. ‘셰일 혁명’으로 중동·북아프리카 석유의 중요도가 하락하였으며,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제어하기 위해 시선을 인도-태평양으로 옮기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 내에서는 끝나지 않는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염증이 만연하며 팽창주의적 대외(對外) 정책 대신 미국인들의 사회적·경제적 문제에 대한 집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러한 트렌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지나며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함과 거의 동시에 미 하원에서 3조5000억 달러(약 4086조원) 규모의 인프라 예산 법안이 통과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러한 변화는 이스라엘을 포함한 미국의 역내 동맹국을 긴장시킨다. 2012년 오바마 당시 미 대통령은 시리아에서 화학무기 사용은 ‘레드라인’이라며 군사적 대응을 시사한 바 있다. 하지만 2013년 여름 불리한 전황에 다급해진 아사드 정권이 화학무기를 민간인에게 사용하였음에도 보복하지 않았고, 결국 2015년 시작된 러시아의 공중지원으로 전세(戰勢)가 뒤집혔다. 2014년에는 이라크 주둔 미군 철수의 공백을 틈타 ISIS가 부상(浮上)하기도 했다.
 
  최근 아프가니스탄 철군 후 탈레반이 카불을 장악하자 중동의 많은 이가 시리아와 이라크를 떠올리며 미국의 다음 ‘배신’을 두려워하고 있다. 일부 걸프국 지도층은 바이든이 중동에서의 ‘정연한 철수(orderly retreat)’를 위해 이란과의 핵 협상에 몰두하고 있다고 믿기에 그 염려는 더욱 무겁다.
 
 
  浮上하는 敵 맞서려 先制的 관계 개선 나서
 
이스라엘은 트럼프 정권 시절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인 쿠슈너(왼쪽)를 통해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를 정상화했다. 2020년 9월 1일 쿠슈너와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의 회담 모습. 사진=AP/뉴시스
  이스라엘은 미국의 중동 엑소더스를 최대한 늦추려 하면서도, 동시에 주변국과의 관계에서 이를 실리적으로 역이용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해 이란의 핵 개발을 경계하는 지역국 앞에서 ‘행동하는 군사강국’을 자처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란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될 때 군사적 옵션을 진지하게 검토하겠다고 일관되게 천명해왔다. 실제로 지난 1981년 이라크, 2007년 시리아의 원자로를 폭격한 바 있다. 더불어 강력한 대미(對美) 로비력을 지렛대로 걸프국들의 구애를 받고 있다. 중국·러시아와도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며 전략적 공간을 창출하고 있다. 미국과의 동맹은 공고히 유지하되 동시에 ‘세계 경찰’ 미국의 부재(不在) 속에서 스스로의 몸값을 올리는,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을 택한 것이다.
 
  이러한 외교적 성취는 말 그대로 ‘바람의 방향’을 날카롭게 꿰뚫고 있기에 가능했다. 물론 혁명적으로 변화한 이스라엘-아랍 관계와 강력한 이스라엘-미국 동맹이 팔레스타인 이슈 자체를 해결하는 데도 효과적일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스라엘의 지역 내 입지와 위상은 10년 전과 극적으로 다르다는 점이다. 더 이상 그 누구도 이스라엘의 고립을 논하지 않는다. 오히려 팔레스타인이 형제 무슬림 국가들에 버림받은 것 아니냐는 아랍권 학자들의 우려가 나오는 형국이다.
 
  정책 측면에서 볼 때, 이스라엘 외교 성공의 전제는 결국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피아(彼我) 식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중동 내 친(親)이란과 반(反)이란 전선이 명확하게 형성되고 있음을 파악하고 ,핵심 국가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인 덕분이다. 이스라엘은 ‘미래 지향적 협력’이라는 상징적인 구호를 넘어 행동으로 나서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스라엘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시리아 내 친이란 민병대 및 미사일을 정확하게 폭격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와 첩보 공유(共有)를 확대한 것이 그 좋은 예이다. 과거의 갈등에 매몰되어 지정학적 파트너를 등한시하는 우(愚)를 범하는 대신, 부상하는 위협에 대항하여 선제적(先制的)으로 관계 개선을 추진하는 모습이다.
 
 
  ‘한눈파는 것’이 實利외교 아니다
 
  이스라엘은 흔들림 없는 동맹 관계를 통해 실리를 챙겨간다. 이스라엘은 적극적인 대미외교를 통해 그토록 원하던 골란고원에 대한 주권 인정, 미 대사관 예루살렘 이전, 이란 핵 합의 파기를 이끌어냈다. 이제는 미국과의 동맹을 고리로 외교적 입지까지 강화하고 있다. 미국이라는 영향력 있는 브로커가 물밑에서 수년간 중동의 친미(親美) 국가들과 이스라엘의 만남을 주선해온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친이란 성향인 카타르마저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를 노리고 있음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술(旣述)하였듯이, 트럼프 행정부보다 이스라엘에 덜 우호적인 바이든 백악관마저 정책적으로는 큰 변화가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동맹이 이해해주는 선까지 ‘일탈’하고 ‘한눈파는 것’이 꼭 실리외교는 아니다. 적어도 안보에 있어서는 주로 철통같은 동맹 네트워크에서 파생되는 협상력과 억제력을 통해 핵심 국가 이익을 수호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과감한 발상의 전환을 통해 지역 외교에 초점을 두었다. 팔레스타인 문제에 몰두하던 과거를 답습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분쟁이 당장 해결되기 어렵다는 점에 착안해 억제와 확전(擴戰) 방지에 집중하고, 폭넓은 외교 행보를 통해 전략적인 입지를 다져간 것이다.
 
 
  한국 외교의 오늘
 
  팔레스타인 문제가 이스라엘의 존립과 밀접히 맞닿아 있는 것만큼, 북한도 한반도 유일 합법 정부 대한민국의 실존적(實存的) 위협이다. 하지만 2021년 이스라엘의 외교 전략은 북한 문제에만 치중해온 지난 4년간 우리나라 외교와는 정반대다. 명분도, 실속도 없는 대북 구애는 우리의 전략적 입지를 좁혀왔다. 사실상 모든 외교 이슈를 북한, 그것도 비핵화(非核化)가 아닌 남북협력과 제재 해제에 초점을 맞춰놓고 접근하고 있다. 이는 빠르게 진화하는 지정학의 시대에 여러 현안을 논해야 하는 외교 파트너들에 대한 공감력 부족이자 전략적 자충수(自充手)이다.
 
  지난 몇 년간 문재인 정부가 주장해온 ‘한반도 운전자론’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세계가 움직이는 듯한, 중세(中世) 시대의 천동설(天動說)을 연상시키는 자기중심적 사고(思考)에 기반하고 있다. 좁은 민족주의 프레임에 갇혀 세계로 향하지 못하고 있다. 미중(美中) 패권(覇權) 경쟁 구도 속에서 우리 앞에는 외교적 과제가 산적(山積)해 있다. 전략적·현실적 계산을 바탕으로 새로운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보편적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를 중심으로 우리와 유사한 입장을 가진 나라들과 연대(連帶)해야 한다. 이스라엘은 미국과의 동맹은 물론이고 새로운 중동 파트너들과 안보 협력을 가시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북한의 반발이 두려워 한미(韓美)연합훈련을 주저하는 자세, 남북협력으로 극일(克日)하겠다는 허영, 원활한 대북 접근의 명목으로 중국에 굴종을 자처하는 모습은 이스라엘과 비교된다.
 
  미국 외교협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의 엘리엇 아브람스 연구원은 아브라함 협정이 ‘한물간 이데올로기를 넘어선 국익 우선주의의 승리’라고 평했다. ‘우리는 바람의 방향을 읽고 있는가? 우리는 국제 정세의 흐름에 역주행(逆走行)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문해볼 때이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1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유라정    (2021-10-11) 찬성 : 10   반대 : 0
글 잘 읽었습니다. 대학 3년생의 시각이 전문가 수준이라 여겨져 맞장구를 치게됩니다.
최근에 윌슨센터에서 한국역사 및 공공정책 센터의 신임국장이 된 수미테리 박사가 한국계라서 뿌듯했는데, 홍태화 학생도 국제정치 분야의 인재가 될것같은 예감이 드는군요.
계속 정진하시길 응원합니다.

202111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북스토어
프리미엄결제
2020년4월부록
정기구독 이벤트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 월간조선 2018년 4월호 부록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