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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인터뷰

후나바시 요이치 前 《아사히신문》 주필

“한국은 한국인 생각 이상으로 미국이 중시하는 나라”

글 : 유민호  퍼시픽21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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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책임회피 문화가 후쿠시마 참사, 백신 개발 지연, 주기적인 금융위기 만들어”
⊙ “일본의 타이완에 대한 백신 지원은 본격적으로 타이완을 지키겠다는 결의”
⊙ “커트 캠벨 NSC 인도태평양조정관,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일본이 더 한층 노력하라고 요청”
⊙ “(미국 내에서의) 文 대통령에 대한 불신감 사라지지 않고 있어”
⊙ “中, 한반도 통일에 전혀 무관심… 문재인의 남북화해 이벤트는 중국 이익에 반해”

劉敏鎬
196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일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졸업(15기) / 前 딕 모리스 선거컨설팅 아시아 담당. 《조선일보》 《주간조선》 등에 기고 / 現 워싱턴 에너지컨설팅 퍼시픽21 디렉터 / 저서 《일본직설》(1·2), 《백악관의 달인들》(일본어), 《미슐랭 순례기》(중국어) 등
사진=조선DB
  지난 3월 워싱턴에서 흥미로운 책 하나가 발간됐다. 《멜트다운(Meltdown)》이라는 책으로 출판사는 싱크탱크 브루킹스(Brookings.edu)다. 2011년 3월 11일 터진 일본 동일본 대지진과 관련된 백서(白書)로, 출간 즉시 워싱턴에서 화제가 됐다. 후쿠시마(福島) 원전(原電) 사고가 왜 발생했는지, 어떤 배경하에 멜트다운 직전까지 갔고, 어떤 과정을 거쳐 수습됐는지에 관한 얘기가 총망라된 책이다. 책상머리 소견이 아니라, 후쿠시마 참사와 관련한 원전 경영진, 정치가, 과학자, 기술자, 미디어, 외국 전문가에 이르는, 무려 300명의 대면(對面) 인터뷰에 기초한 방대한 분량의 백서다. 3・11 이후 2년 뒤인 2013년, 1차로 일본에서 출간된 백서 《카운트다운(Countdown)》에 뒤이은 증보판이다. 질적·양적 차원에서 볼 때, 원전 사고의 원인, 과정, 결과 나아가 교훈이 될 만한 내용들이 120% 들어가 있다.
 
 
  후나바시 요이치
 
후나바시 요이치의 《멜트다운》.
  《멜트다운》 백서를 주도한 인물은 일본의 저명한 저널리스트 후나바시 요이치(船橋洋一·76)다. 《아사히(朝日)신문》 기자로 베이징(北京)과 워싱턴 특파원을 거쳐 주필까지 지낸 국제정치 전문 대기자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저널리스트로 지금도 《워싱턴포스트》를 비롯한 미국 언론에 칼럼을 쓰고 있다.
 
  《멜트다운》 백서는 그가 《아사히신문》에서 은퇴한 뒤 설립한 후 이사장으로 있는 싱크탱크 ‘아시아 퍼시픽 이니셔티브(APinitiative.org·이하 API)’에서 만든 것이다. 300명의 대면 인터뷰는 후나바시가 직접 진행했다.
 
  한국도 사건이 터질 때마다 백서가 등장한다. 그러나 후세(後世)에 교훈으로 활용될, 외국인이 봐도 고개를 끄덕일 객관적인 백서는 전무하다. 승자와 패자를 확실히 가른 뒤, 패자의 목을 조르기 위한 승자의 ‘한(恨)풀이’ 백서가 태반이다. 백서 내용 자체도 너무 부실하고, 특정 코드에 맞춰진 인물 주도하의 일방적 의견이 대부분이다. 후대(後代)를 위한 교훈과 무관한, ‘백서=유죄 판결문’인 셈이다.
 
  필자가 아는 한 워싱턴에서 후나바시에 비견될 만한, 강력하고도 넓은 인맥을 가진 아시아인은 없다. 국제정세, 글로벌 현황에 관해 후나바시의 고견(高見)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후쿠시마에서 얻은 교훈이 무엇인지, 백서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국제정치 전문 대기자로서, 한반도와 세계의 오늘과 내일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한 의견을 후나바시를 통해 알아본다. 인터뷰는 줌 비디오를 도쿄 API 후나바시 사무실로 연결해 이뤄졌다.
 
 
  사쿠이 리스크
 
  ― 후쿠시마 사태는 왜 미리 막지 못했나.
 
  “세상에는 지금 현 상태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불충분하다고 말하면 경영·정치 측면에서 부담이 생기게 된다. 돈은 물론 여론도 반대로 돌아설 수 있다. 정부나 기업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앞서나가는 것을 주저하게 된다.
 
  그게 일본에서 백신 개발이 늦어진 이유일 듯한데, 가능하면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한다. 개인 차원의 문제일 뿐, 정부의 역할이 아니라는 식으로 대응한다. 백신 개발에 나서려면 엄청난 돈이 들고, 결과도 어떻게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아예 처음부터 피하게 된다. 정부가 회피할 경우 기업도 적극적으로 나설 수가 없다.
 

  ‘사쿠이 리스크(作爲のリスク)’란 말이 있다.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앞서서 나아갈 경우 부딪히게 될 나쁜 결과가 사쿠이 리스크다. 반대로 ‘후사쿠이 리스크(不作爲のリスク)’란 말도 있다. 아무것도 안 하면서 그냥 무작정 기다릴 경우에 나타날 나쁜 결과를 의미한다.
 
  후쿠시마 비극은 후사쿠이 리스크의 결과물이라 볼 수 있다. 사쿠이 리스크를 과장하면서 비난하는 생각이 후쿠시마 참사, 백신 나아가 주기적인 금융위기의 배경에 있다. 후사쿠이 리스크에 대한 염려와 우려가 후쿠시마 참사 이전에 전무(全無)했다.”
 
  ― 만약 비슷한 사건이 재발한다면, 후쿠시마 교훈을 되살려 막아낼 수 있을까.
 
  “피할 수 없다고 본다. 민주주의 국가의 경우, 리스크가 나타나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경우 최종 해결점은 사법부(司法府)에 있다. 법을 통해 피해에 따른 책임 소재를 밝히게 된다. 그러나 주목할 부분은 사법부 자체가 갖는 DNA, 즉 유전자다. 사법부는 혁명·개혁이 아니라, 안전·안정을 기본으로 하는 보수적(保守的)인 기관이다. 사쿠이 리스크, 즉 쓸데없이 안 나서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사법부의 기본자세란 말이다.”
 
 
  “책임회피부터 한 일본 정부”
 
2011년 4월 5일 후쿠시마 원전 사태와 관련해 도쿄전력 관계자들이 사죄했다. 사진=뉴시스/AFP
  ― 후쿠시마 참사만이 아니라, 글로벌 팬데믹 상황을 봐도 정부의 역할과 지도자의 결단이 중요하다.
 
  “미국은 후쿠시마 참사 당시 구세주(救世主)처럼 나타난 나라다. 무려 200여명에 달하는 원자력 규제위원회(NRC) 전문가가 일본에 파견돼 미국의 경험에 기초한 수많은 데이터와 어드바이스를 제공했다. 미일(美日)동맹에 기초한 신속한 협조로, NRC의 도움이 없었다면 더 큰 피해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2011년 당시 NRC를 중심으로 한, 후쿠시마 관련 일미(日美) 특별위원회가 탄생됐다. 위원회에서 미국인이 놀랐던 것은 일본 정부의 무책임한 자세였다. NRC가 방사능 오염 제거용 미국산 중화제를 일본인에게 먹여야 한다고 하자, 일본 관료 하나가 정색을 하면서 일어섰다. 그는 ‘미국산 중화제 배급에 나서겠지만, 만약 문제가 생길 경우 미국 측이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참사에 직면해서도 책임회피부터 하는 일본 정부의 자세에 대해, 회의 참석 미국인 전부가 두 손을 들었다고 한다.”
 
  ― 당시 후쿠시마 위기 대응 총사령탑은 어디였는가.
 
  “‘사건 직후’부터는, 원자력 담당 부처인 경제산업성이 총사령탑이었다. 그러나 내막으로 들어가면 달라진다. 문부성을 비롯한 다른 부처도 ‘사건 이전’의 사령탑, 즉 감독기관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원자력 문제는 평화적 사용 목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군(軍)이나 경찰은 원자력발전소 문제와 전혀 무관하다. 문부성은 산하에 과학기술청을 갖고 있어서 문부성이 후쿠시마 감독기관이 되어버린 것이다. 사건 이전과 이후로 나눌 때, 후쿠시마 사령탑은 전부 애매한 상태로 운영됐다.”
 
  ― 아베(安倍) 전 총리, 스가(菅) 현 총리에서 볼 수 있지만, 코로나19 팬데믹과 관련해 총리가 과학자와 함께 대국민 기자회견에 나서게 됐다. 사령탑으로서의 정치가와 과학자의 결합인데, 이것은 후쿠시마에서 얻은 교훈일 듯하다.
 
  “정치가와 과학자가 함께 자리를 하면서 의견을 교환한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후쿠시마 참사 당시 총리는 간 나오토(菅直人)다. 도쿄공업대학 출신으로, 본인 스스로 과학기술에 정통한 엔지니어로 생각할지 모르겠다.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사건 발생 당시 간 총리의 대응이 사사건건 지나치다는 불만이 곳곳에서 나왔다. 총리관저와 과학기술자들과의 불협화음이 곳곳에서 노출됐다. 아베 전 총리나 스가 총리의 대응 방식을 보면 간 총리의 실패를 거울로 삼아 적절히 대응하는 듯하다.”
 
  ― 후쿠시마 참사는 100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하는 천재지변의 결과라는 말도 있다.
 
  “후쿠시마 원전 관리 기업인 도쿄(東京)전력이 그 같은 변명의 진원지다. ‘거대한 자연의 힘을 인간이 어떻게 막아낼 수 있는가’라는 심정일 것이다. ‘쓰나미(津波)로 인해 세상을 뜬 사람들 모두가 어떻게 해서 도쿄전력의 책임인가’라는 변명도 심심찮게 들린다.
 
  나는 그 같은 변명을 수용할 수 없다. 증거는 도호쿠(東北)전력이 운영한 오나가와(女川) 원전이다. 후쿠시마에서 북쪽으로 175km 떨어진 곳에 들어선 바닷가 원전이다. 후쿠시마보다 지진층에 한층 더 가까운 곳에 들어선 발전소이다. 1984년부터 발전에 들어갔지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무려 15m 높이의 방파제를 쌓았다. 당시 도호쿠전력 부사장의 제안으로 이뤄진 것인데, 방파제 건설에 따른 추가 비용에 대한 반발이 엄청났다. 하지만 그 덕분에 3·11 당시 쓰나미에도 불구하고 경미한 피해만 입었을 뿐 무사히 지나갔다. 당시 오나가와 주변은 쓰나미 피해자들의 피난 생활 무대로도 활용되었다. 방파제가 지켜주고, 다른 곳은 전부 정전(停電)인데도 원자력발전이 가능했기 때문에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었다. 후쿠시마에는 도호쿠전력의 부사장 같은 사람이 없었다.”
 
 
  “한쪽만 보여주는 한, 교훈 얻을 수 없다”
 
  후나바시는 “백서를 내면서 알게 됐지만, 일본 미디어와 정부는 오나가와 케이스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갖고 교훈을 얻어낸 뒤 전국민에게 널리 알렸어야만 했다”고 말했다.
 
  “1000년에 한 번 오는 불행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당했다는 식의 천재(天災)로 만드는 것이 속이 편하기 때문이다. 교훈은 실패의 케이스, 성공의 케이스 둘을 명확하게 보여줄 때 얻을 수 있다. 한쪽만 보여주는 한, 결코 교훈을 얻을 수 없다.”
 

  ― 앞으로 더 큰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터질 수 있는데….
 
  “팬데믹과 백신에서 보듯 일본은 아직도 어제의 교훈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 왜 불과 10년 전 터진 대재앙의 교훈조차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것일까?
 
  나의 생각으로는 근본적인 이유는 ‘일본과 제2차세계대전’이란 어제의 역사에 관련된 정부와 국회의 객관적인 분석과 결과가 없었다는 점에 있는 듯하다. 일본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왜 전쟁이 일어났고, 왜 그런 결과로 끝났는지’에 대한 보고서를 만들지 않았다. 맥아더 GHQ 점령 당시에는 못했다하더라도, 이후에 스스로 그런 역사 보고서를 만들어내야만 했지만, 결국 해내지 못했다. 그러나 전쟁의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문 1960년대부터는 언제든지 가능했다. 객관적·총체적 연구는 큰 사건 이후 반드시 필요하다. 태평양전쟁에 관련된 망각은 이후 일본의 상습적 버릇으로 남게 되었다.”
 
  후나바시는 “미일동맹이야말로 초대형 국가적 위기를 막아낸 결정적 상수(常數)”라고 단언한다. 일본은 물론 전 세계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동맹국인 미국의 전폭적인 지지와 실질적인 도움이 있었기에 더 큰 초대형 참사로 가지 않았다고 말한다.
 
 
  천황과 3·11 대지진
 
  후쿠시마 참사 당시 천황 아키히토(明仁)는 일본인의 마음을 하나로 결속시켜준 구심점(求心點)이었다. 3·11 동일본 대지진이 터진 지 6일 뒤인 3월 16일, 천황은 텔레비전을 통해 〈3·11 피해자에게 보내는 메시지〉라는 대(對)국민 담화를 내보냈다. 당시 필자도 지켜봤지만, 담담한 목소리가 너무도 인상 깊었다. 도쿄 거주 일본인 친구는 “천황과 함께라면 그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불러일으킨 메시지였다”고 말했다.
 
  ― 후쿠시마 참사 이후 천황의 의미는.
 
  “2011년 3월 16일은 전후(戰後) 처음으로 천황이 스스로 대국민 담화에 나선 날이다. 천황은 원자력 물리학자 다나카 준이치(田中俊一)를 황궁으로 초대해 후쿠시마 현지 상황에 대해 물어봤다. 다나카는 ‘멜트다운’이란 용어를 사용하면서 아주 위험한 상황이란 점을 천황에게 보고했다.
 
  천황은 원래 자연과학을 공부해서 보통 수준 이상의 원자력 관련 지식이 있었다. 다나카와 만난 뒤 천황은 국가적 위기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스스로 나서 대국민 담화를 하겠다고 말했다. 정치권이나 누군가가 권유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결정한 대국민 담화다. 당시 천황은 피해자에 대한 애도와 후쿠시마 참사에 맞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했다.
 
  놀랍게도 천황이 가장 먼저 언급한 감사의 대상은 자위대였다. 경찰 그리고 소방대원이 뒤를 이었다. 천황의 자위대 언급은 전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천황과 군부(軍部)의 특별한 관계로 인해 생긴 상처로 인해 전후 천황은 군에 대한 언급 자체를 피해왔다. 일본 국민들은 천황이 자위대에게 감사를 표하는 모습을 보면서 전후 최대의 국난(國難)이란 사실을 피부로 느꼈다.”
 
 
  “中 경쟁력, ‘의심할 바 없이’ 강해”
 
  ― 중국의 국가경쟁력을 어떻게 보는가? 종이호랑이가 아닌가.
 
  “21세기 중국의 국가경쟁력은 ‘의심할 바 없이’ 강하다. 호불호(好不好), 민주주의, 인권 문제와 무관하게 중국을 보자. 전 세계를 일시에 정지시킨, 바이러스 팬데믹에 맞선 대응 능력 하나만 봐도 경쟁력이 엄청난 나라다. 효과적으로 이뤄진 록다운(lockdown), 재빨리 이뤄진 백신 개발, 엄청난 속도로 급상승하는 경제성장을 보면 중국의 국가경쟁력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중국의 강한 국가경쟁력=민주주의 한계’로 느껴진다. 중국 모델이 인류의 대안(代案)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상황까지는 안 갈 것이다. 앞으로 인류는 비(非)군사적 차원의 위기를 주기적(週期的)으로 맞이하게 될 것이다. 바이러스, 테러, 사이버 안보, 기후 변동과 관련된 문제가 그 예(例)이다. 이들 비군사적 차원의 문제들은 단일 국가 차원이 아닌, 글로벌 차원의 총체적 위기로 연결될 것이다.
 
  이 같은 문제에 직면해 전체주의 중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는 각자의 방식에 의거해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이다. 이 과정에서 주목할 부분은 파워와 질서다. 엄청난 대재앙이 몰려올 경우 파워와 질서를 동시에 유지할 수 있을지 여부가 핵심이다. 전체주의 중국, 민주주의 서방세계가 각자의 방식에 의해 파워와 질서를 언제까지 지켜나갈 수 있을지가 최후 승자의 조건이다. 민주주의 우위성을 강조하면서 중국을 내려다보거나, 반대로 중국이 미국을 비웃으면서 체제 선전을 하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대재앙에 대응하는 동안 나타날, 결과로서 파워와 질서 유지가 관건이다.”
 
  후나바시는 여기서 나치 독일의 경우를 예로 들었다.
 
  “1919년, 민주주의 이념에 기초한 독일 바이마르 헌법이 탄생했다. 그러나 1930년대 나치가 등장하면서 바이마르 헌법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당시 헌법학자 카를 슈미트(Carl Schmitt)는 ‘자유(Liberty)와 안전(Security)을 모두 확보할 수 없을 경우 안전을 위해 자유를 버릴 수 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결국 나치 등장의 정통성을 부여한 개념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이 패망하면서 카를 슈미트의 생각은 잠시 사라졌다. 나는 카를 슈미트의 생각을 지지하지 않지만, 2021년 세계를 보면 카를 슈미트의 시대가 다시 돌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카를 슈미트의 시대가 돌아왔다”
 
  ― 미국 상황을 보면 파워와 질서가 흔들리는 듯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정책을 보면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들이 많다. 10만명에 이르는 일본계 미국인에 대한 강제수용은 대표적인 본보기다. 일본계 강제수용이 역사적 과오라 인정된 것은 1980년대 레이건 대통령 때이다. 거의 40여 년간 민주주의에 반하는 역사가 용인돼왔다고 볼 수 있다.
 
  카를 슈미트의 세계관은 민주주의의 맏형이라 불리는 미국에서도 엄연히 존재한다. 현재 바이든은 카를 슈미트의 세계관을 어느 정도까지 받아들일지 고민하는 단계에 서 있다. 이미 트럼프 때부터 시작됐지만, 중국을 상대로 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중국과의 경쟁무대에 나서기 위한 준비단계로서 자유 개념의 재정립이다. 안전을 유지하기 위한 자유 개념의 변화다.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보여줬던 식의, 국가 국민의 안전을 위한 자유의 제한이다.”
 
  후나바시는 “사실 미국은 이미 2001년 9·11테러 이후 자유 개념의 재정립에 들어선 상태”라고 말했다.
 
  “9·11 여파로 신설된 국토안보부(Homeland Security)는 개인 자유의 통제와 제약에 나섰다. 2001년에는 테러리스트, 2021년에는 중국이 타깃이 되면서 자유 개념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이기도 하지만, 행정부가 사법부나 입법부보다 한층 더 힘을 발휘하는 것도 자유 개념의 변화로 연결될 수 있다. 보통 행정부는 국가 국민의 안전, 사법부·입법부는 자유를 한층 더 중시하는 기관이다.”
 
  ― 구체적으로 바이든은 어떤 정책을 동원해 중국과의 경쟁에 들어갈 것이라 보는가.
 
  “미국 내 중산층(中産層)을 통한 대중국 경쟁에 나설 것이라고 본다. 정부나 군인만이 아닌, 중산층 시민들에 의한 국가안전보장인 셈이다.
 
  구체적으로는 무역이나 통상을 제약하는 새로운 입법이나 행정명령이 계속해서 나타날 것이다. 중국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저가(低價) 수출품 위주의 중국식 자유무역을 배격해야만 한다는 것이 바이든의 생각이다. 미국 중산층도 그 같은 상황을 이해하고 무역에 관한 제약을 이해해달라는 것이 바이든의 생각이다. ‘중국=미국 중산층 모두의 위협’이란 점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무역에 관한 자유가 제약될 수 있다는 의미다. 결과적으로 미국 기업이나 소비자에 대한 정부의 보조금 지급도 일상화될 것이고, 백신에서 보듯 미국민을 우선시하는 식의 보호주의 정책들이 터져 나올 것이다.”
 
  언제부턴가 일본 신문·방송에 하루도 안 빠지는 기록 경신 뉴스가 하나 있다. 필자가 글을 쓰는 시점(6월 10일)을 기준으로 ‘112’란 신기록이 추가됐다. 중국 해경(海警) 선박의 센카쿠(尖閣)열도 주변 불법체류 기록이다. 112일 연속 센카쿠 바다에 불법 침입했다는 말이다.
 
  중국 해경은 군사조직에 준하는 기관이다. 무기 보유나 체계가 중국군과 똑같다. 여차하면 중국 해경 배에서 센카쿠에 상륙한 뒤, 중국 오성홍기를 꽂을 수도 있다. 갖가지 대항 시나리오가 거의 매일 공표되고 있다. 일본은 일본 혼자만이 아니라 미국·유럽을 끌어들인 글로벌 차원의 대응에 주력하고 있다. 6월 4일, 타이완에 대한 124만인분 백신 지원은 그 같은 험악한 상황 속에서 나온 빅 뉴스다. 주목할 부분은 그날이 6월 4일이란 점이다. 천안문 사태 32주년 기념일이다.
 
 
  ‘타이완 공격=일본 공격’
 
  ― 타이완에 대한 백신 지원의 의미는 무엇인가.
 
  “타이완에 대한 백신 지원 문제는, 본격적으로 타이완을 지키겠다는 일본의 결의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의 협박에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대응하겠다는 정책이다. 국제정세를 보면 일본 스스로가 원해서라기보다, 일본이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됐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분석일 듯하다. 4월 일미정상회담에 이어, 6월 중순 런던의 G7 정상회의를 통해서도 타이완 안전 보장 결의가 재차 강조될 것이다. 일본은 미국을 비롯한 G7 회원국과 더불어 타이완 안전 보장을 약속하고 지원하는 나라로 남을 것이다.”
 
  ― 일본 내부에서 타이완에 대한 의견이 하나로 모인 상태인가.
 
  “아직 충분하지는 않다. 중국은 일본 대외(對外)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나라다. 기업 쪽 우려가 강하게 남아 있다. 아베 전 총리 당시는 특유의 리더십과 미중 간 균형외교를 활용해 기업의 목소리를 통제할 수 있었다. 스가 총리에게는 그런 파워가 없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경우, 일본 국민 상당수가 ‘타이완 수호=일본의 안전 보장’이란 식으로 이해할 것으로 본다.”
 
  ― 타이완이 일본의 안전 보장에 연결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만약 중국이 타이완 공격에 나설 경우 일본도 개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타이완은 현재 두 개의 공군기지를 갖고 있다. 그중 하나는 타이완 동부 화이렌(花蓮)에 있는 지하 동굴 기지다. 지하 동굴은 미사일로 파괴할 수 없다. 직접 중국에서 발진한 전폭기가 공격에 나설 것이다. 만약 중국 전폭기가 나설 경우 일본의 방공망(防空網)을 통과하지 않을 수 없다. ‘타이완 공격=일본 방공망 침범’이 된다. 일본으로서는, 자국의 영공(領空) 주권을 짓밟으면서 타이완을 공격한다는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타이완 공격=일본 공격’이 된다는 의미다.”
 
 
  日-臺 반도체 동맹
 
  ― 일본의 안전 보장 지수로, 북한의 핵 위협을 10이라 볼 때, 중국의 타이완 공격은 어느 정도라 볼 수 있나.
 
  “똑같다고 보면 된다. 지금까지 일본 안전 보장의 최대 현안은 북핵(北核) 문제였다. 그러나 중국의 위협이 강화되면서 타이완 문제도 북핵에 준하는 일본의 최대 안전 보장 문제로 떠올랐다. 북핵 위협처럼 일본의 존망을 다투는 현안이 타이완 문제다.”
 
  ― 중국이 무력(武力)으로 센카쿠 점령에 나설 것이라 보는가.
 
  “무력 통제의 의미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중국이 계속 해경 선박을 보내면서 센카쿠가 중국 섬이란 점을 꾸준히 알릴 것이란 것은 분명하다. 센카쿠 주변에서의 ‘해경 시위’는 외국만이 아니라, 중국 국민을 상대로 한 쇼이기도 하다. 해경 시위를 통해 결국 미국 내 여론을 중국에 유리하게 바꾸면서 센카쿠에 대한 관심 자체를 없애는 것이 중국의 최대 목표다. 센카쿠가 이미 중국 지배하에 들어갔다는 식의 착각을 불러일으켜서 미국 스스로 포기하도록 만든 뒤 그 틈을 이용해 무력 점령에 들어가려는 것이다. 먼저 포기하는 쪽이 패하는 식의 치킨게임이라 보면 된다.”
 
  ― 일본-타이완 반도체 동맹이 본격화되는 듯하다.
 
  “쓰쿠바(筑波)에 생기는 타이완 TSMC와 일본 20여 기업 간의 반도체 협력공장은 R&D에 주목하는 회사다. 당장 반도체를 생산하는 공장이 아니다. 반도체는 미중 간 디커플링 리스트의 대표 주자다. 중국에서 생산되는 TSMC 반도체는 미국의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 TSMC의 기반은 타이완이다. 그러나 만약의 사태를 가정할 경우, 세계 반도체의 상당수를 타이완에 의존할 수만은 없다. 장기적으로 보면 TSMC의 경우 난징(南京)에 있는 반도체 공장을 축소하고, 일본·미국을 주생산지로 할 것이다. 일본은 반도체 조립보다, 반도체의 기본이 되는 재료나 설비시설 건설에 강하다. TSMC도 이를 잘 알기에 쓰쿠바 공장 건설에 동의했다고 본다.”
 
 
  “美, 한미동맹 중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월 21일 문재인 대통령 참석하에 6·25전쟁 영웅인 랠프 퍼킷(가운데) 예비역 美 육군 대령에게 명예훈장을 수여했다. 사진=뉴시스
  ― 지난 5월 문재인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을 어떻게 보는가.
 
  “(한국 외교가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 자신의 정치라는 측면에서 보면, 전체적으로 70점 정도라 본다. 싱가포르와 판문점회담에서 보듯, 대화를 통한 북한 비핵화(非核化) 해결과 한국의 역할론은 문 대통령식 정치의 핵심이다.
 
  바이든은 그 같은 문 대통령의 생각을 인정했다. 미국이 백신 제공을 통해 한미동맹이 아직 굳건하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도 중요한 성과다. 일본 입장에서도 굳건한 한미동맹은 지역 내 안정에 좋다고 판단한다.”
 
  ― 문제점은 없었나.
 
  “북한에 대한 유화정책의 ‘기반’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바꿔 말해 주변국과의 관계에 대한 현실인식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예를 들어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반도 주변 모두와 우호관계를 만든 뒤 남북정상회담에 임했다. 이에 반해 문 대통령은 주변국과의 관계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는 듯하다.
 
  굳건한 한미동맹이야말로 대북(對北) 유화정책의 기반이 된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무시하고 배제하는 것이 문 대통령의 자세다. 굳건한 한미동맹이란, 군사 문제와 관련된 한미 상호 간의 약속과 의무에서 출발한다. 동맹이면서도 군사훈련 하나 제대로 못 하는 것은 정상적이라고 볼 수 없다. 그 같은 어정쩡한 상황은 결국 북한에 대한 유화정책을 어렵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 한미동맹은 굳건하다고 보나.
 
  “바이든은 동맹국들을 통한 대중(對中)전선 구축(構築)에 나서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역할은 한층 더 중요하게 될 것이다. 한국인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미국이 중시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한국의 좌파 정권에 대해 미국이 불신감(不信感)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한국이라는 동맹국에 대한 미국의 관심은 한층 더 강해질 것이다. 미국은 한국인에게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계속해서 역설할 것이다.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조정관도 기회만 있으면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일본에 전달한다. 한국도 노력해야겠지만, 일본도 한층 더 열심히 일한관계 개선에 나서야한다는 요청도 켐벨이 던지는 메시지다.”
 
 
  “美, 文에 대한 불신감 사라지지 않아”
 
사진=조선DB
  ― 한일(韓日)관계를 어떻게 전망하는가.
 
  “당분간 어려울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동맹국인 미국과 세계의 위협으로 떠오른 중국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없는 듯하다. 일본 정부도 그러하고, 나도 그렇다고 판단한다. 워싱턴에 가서 퍼포먼스식 외교를 보여줬지만, (미국 내에서의) 문 대통령에 대한 불신감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일본 정부가 9개월 임기를 남긴 문 대통령과 전격적인 대화에 나선다는 것은 극히 어렵다. 스가 총리를 비롯한 정치인들이나 외무성 모두 일치하는 생각이다. 그동안 한국과의 대화를 강조해온 외무성 내 한반도 관계자들조차 한일관계 개선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 중국의 문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
 
  “팬데믹으로 인해 최근 중국인과의 만남이 줄었다. 과거 6자회담 당시 만났던 중국인들의 생각을 들어보면, 한반도 통일에 대해 전혀 무관심한 나라가 중국이다. 단지 북한을 대미(對美)·대일(對日) 협상용 카드로 영원히 사용하자는 것이 중국의 생각이다.
 
  그런 입장에서 볼 때 문 대통령이 주창하는 남북화해나 통일 관련 이벤트는 중국 생각과 이익에 반대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북한도 내심은 남북통일에 대해 전혀 무관심하다고 본다. 따라서 문 대통령이 남북통일 어젠다를 강조할수록 중국은 물론 북한도 거부반응을 일으킨다고 볼 수 있다.”
 
  언제부턴가 요언(妖言)과 요설(饒舌)이 넘친다. 요사스러운 말과 실체 하나 없는 말의 홍수가 2021년 한국의 일상 풍경이다. 정부 발표라고 하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믿을 수가 없다. 수십여 여론조사 기관이 있다지만, 제대로 된 통계나 결과를 알려주는 곳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후나바시와의 인터뷰는 1시간 만에 끝났다. 요언·요설과는 확연히 다른 간단하고도 분명하게 와닿은 알찬 대화의 시간이었다. 그가 펴낸 《멜트다운》이 왜 워싱턴에서 화제가 됐는지도 알 것 같은 인터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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