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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인터뷰

독일 철학가 마르쿠스 가브리엘 교수

“전염병 공포 이용 정부가 주도권 잡으면서 포퓰리즘 확산”

글 : 유민호  퍼시픽21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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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대학에서 최연소 나이로 박사·교수가 된 유럽의 ‘마이클 샌델’… 팬데믹·디지털 시대의 인기 강사
⊙ “중국, ‘결코’ (인류 공통의 윤리를 무시한 채) 전 세계를 장악할 수 없어”
⊙ “국가가 아니라 ‘국가에 기대는 개개인’이 유럽이 직면한 문제의 출발점”
⊙ “페이스북, 10년 내에 과거의 야후처럼 몰락할 것”
⊙ “AI를 통한 인간 심리 파악, 영원히 불가능할 것”

劉敏鎬
196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일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졸업(15기) / 前 딕 모리스 선거컨설팅 아시아 담당. 《조선일보》 《주간조선》 등에 기고 / 現 워싱턴 에너지컨설팅 퍼시픽21 디렉터 / 저서 《일본직설》(1·2), 《백악관의 달인들》(일본어), 《미슐랭 순례기》(중국어) 등

Markus Gabriel
1980년생. 25세 때 독일 하이델베르크(Heidelberg)대학에서 고대 그리스와 철학으로 박사 취득. 이후 28세 때 독일 본(Bonn)대학 최연소 철학과 교수 취임. 포르투갈 리스본대학, 덴마크 오르후스대학, 미국 버클리대학에서 초청교수로 활동 중. 현재 유럽을 대표하는 철학가로, ‘도덕·윤리’를 통한 인류 문명·문화발달사에 주목. 영어·이탈리아어·포르투갈어·그리스어·중국어·라틴어 등 10개 언어에 능통한 인물로, 한국에도 소개된 《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를 비롯한 대중적 철학서 10여 권 출간
  ‘미이즘(Meism)’은 글로벌 시대의 특징 중 하나다. ‘나(Me)의, 나를 위한, 나에 의한’ 주의(主義)·주장과 그를 바탕으로 한 세계가 ‘미이즘’의 실체다. 세계가 나를 중심으로 돈다는 천동설(天動說)과 고대(古代) 그리스 나르시시즘의 부활이라고나 할까? 인간·사회·세계·인류에 대한 연구나 사색도 관심 밖이다. 철학적 논쟁이나 공부 없이도 세상 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혼자라도 디지털 기술을 통해 ‘미이즘’을 전(全) 세계 모두에게 리얼타임으로 선보일 수 있다. 구체적으로, 노래·춤·먹방으로 ‘미이즘’을 연출한 뒤, 엄지손가락 ‘좋아요’를 끌어모으면 된다. 엄지손가락 세계 안에 살면서도 IT 스타로 뜨고 돈도 벌 수 있는 시대다. 20세기 세계에 머문 사람이 보면, 미이즘=리얼리티 쇼의 ‘봉이 김선달’로 느껴질지 모르겠다.
 
  매일 신문·방송에 오르내리는 비트코인도 ‘미이즘’이란 맥락에서 풀이할 수 있다. 달러·유로·엔이 아니라, 출처·정체불명 비트코인이야말로 나(Me)의, 나를 위한, 나에 의한 ‘미이즘’ 세계의 통화(通貨)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할까?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지나치면 독(毒)으로 변하기 마련이다. 천동설과 나르시시즘 세계에 대한 경종(警鐘)이 곳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비트코인 폭락 경고는 매일 듣는 뉴스 중 하나다. 더불어 이미 2년째로 접어든 코로나19는 ‘최고·최대·최악’의 경고다. 코로나19는 팬데믹(pandemic) 전염병이다. 팬데믹은 고대 그리스어 ‘Pan(전부)’과 ‘Demos(군중)’라는 단어의 합성어다. 사회에서 살아가는 군중 전부에게 ‘예외 없이’ 닥치는 것이 팬데믹이다. 개인에 기초한 ‘미이즘’이 안 통한다는 의미다. 코로나19 문제는 ‘미이즘’ 차원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나서서 막아야만 한다. 수면 위와 ‘좋아요’ 엄지손가락만 볼 경우에 팬데믹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글로벌 시대인 만큼, 국가 단위가 아닌 지구 차원의 해결방안이 기본이다.
 
 
  유럽의 젊은 간판 철학가
 
  독일 본대학의 마르쿠스 가브리엘 교수는 21세기를 대표하는 철학가(哲學家) 중 한명이다. 글로벌 팬데믹과 디지털 시대에 대응할 수 있는 철학가로도 통한다. 변화와 위기의 해결사로서 철학가인 셈이다. 부연하자면 ‘미이즘 세상이 갖는 한계와 문제점’이 그의 주된 연구 테마라 볼 수 있다.
 
  가브리엘 교수는 본대학 역사상 최연소 박사이자 교수로 유명하다. 1818년 설립된 본대학은 독일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대학 중 하나다. 노벨상 수상자를 11명이나 배출했다. 문학·경제학·신학(神學) 등 인문사회과학에 강한 대학인데, 특히 철학 분야는 본대학이 자랑하는 간판 학부 중 하나다.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니체가 본대학 철학과 출신이다.
 
  1980년생 가브리엘 교수는 2008년 본대학 교수로 근무한 이래 세계 철학계를 리드하는 인물로 급부상했다. 필자 생각으로는 팬데믹 이전 세계 철학계를 석권했던 하버드대학 철학교수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 못지않은 유럽의 간판 철학가다. 마이클 샌델이 ‘정의론(正義論)’에 기초한 철학 세계를 논한 데 비해, 가브리엘 교수는 ‘도덕과 윤리’에 기초한 세계에 방점을 둔다. 팬데믹과 디지털 시대의 한계도 도덕·윤리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가브리엘 교수는 어려운 철학서를 대중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하는 베스트셀러 저술가이기도 하다. 그 덕분에 가브리엘 교수는 유럽·미국·일본에서는 이미 친근한 인기스타 강사로 떠올랐다. 인류의 시련으로 다가온 팬데믹과 그 이후의 세계가 어떻게 될까? 현재 인류가 맞이한 문제는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될 수 있을까? 한국을 지배하는 미국 중심 세계관이 아니라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관점에서 이러한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 가브리엘 교수를 인터뷰했다. 인터뷰는 본대학 철학연구소의 가브리엘 교수를 비디오로 연결해 1시간 동안 진행됐다.
 
 
  “도덕·윤리를 기반으로 한 대응책 있어야”
 
지난 3월 24일 독일 베를린 쇠네펠트 공항의 모습. 가브리엘 교수는 강제적 록다운이 계속되는 유럽의 상황에 비판적이다. 사진=신화/뉴시스
  ‘1만5090 대(對) 14.’
 
  지난 5월 7일 독일과 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19 감염자 수다. 인구 8300만명인 독일과 14억명인 중국 사이의 인구 비율까지 감안하면, 독일의 상황은 처참할 정도다. 독일은 자타가 공인하는 20세기 문명사의 주역 중 하나였다. 그런 독일이 바이러스 하나에 왜 이처럼 간단히 붕괴되고 있는지부터 물어봤다. 그의 답변이다.
 
  “코로나19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글로벌 차원에서 ‘빠르게’ 진행된 사건이다. 길게는 한 달, 짧으면 일주일 정도 차로, 전 세계 인류가 동시에 위기상황에 처했다. 역사상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사건이다. 따라서 인류 전체가 동시에, 공동의 위협에 대응해야만 한다. 유럽·아메리카·아시아·아프리카 모두 단일한 공동목표가 생긴 것이다. 인류 모두의 협력이 필요하게 됐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전혀 다르다. 국가 간 협력도 엉망이지만, 국가 내에서 벌어지는 구체적인 대응 방안에서부터 삐걱대는 판국이다. 특히 도덕(moral)과 윤리(ethics)를 기반으로 한 국가 내 대응 능력을 보면 나라별 차이가 너무나 심하다. 단언컨대 전염병 시대에 직면한 유럽과 미국의 도덕·윤리 수준은 그 어떤 체제나 지역의 나라보다도 낮다. 끔찍할 정도의, 최악의 상태라 할까? 왜일까? 왜 인류 문명을 리드하던 선진국이 전염병 퇴치 하나 제대로 못 할까?
 
  답은 간단하다. 도덕·윤리는 도외시한 채, 과학·기술 차원의 대응에만 매달리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코로나19 피해 감염자가 가장 많은 곳은 유럽과 미국이다. 유럽은 이미 100만명 이상이 숨졌고, 하루에도 10만명 이상의 감염자가 나오고 있다. 유럽과 미국은 민주주의에 기초한, 선진(先進) 이념의 선두주자다. 그러나 민주주의 대국이라고 해서 도덕·윤리가 높다고 말할 수는 없다. 지난 4월 말부터 유럽 곳곳에서 록다운(lockdown)이 이뤄지고 있지만, 도덕·윤리를 기반으로 한 대응책이 없는 한 아무런 효과도 거둘 수 없다.”
 
 
  마스크·젓가락으로 본 도덕
 
  이렇게 가브리엘 교수의 일성(一聲)은 도덕·윤리에 대한 얘기에서부터 시작됐다. 도덕과 윤리는 선악(善惡) 가치판단에 동원되는, 비슷하면서도 차이가 나는 개념이다. 문자적 의미로 볼 때, 도덕은 사회 전체 차원을 시야에 둔 ‘자발적·내면적’ 선악판단 기준으로 통한다. 법과 같은 외면적·강제적 가치와는 거리를 둔 개념이다. 윤리는 특정 직업·집단·분야를 염두에 둔, ‘객관적’ 차원의 가치판단 기준이다. 직업윤리에 반할 경우, 법을 통한 외면적 통제도 이뤄질 수 있다. 따라서 도덕은 개인적, 윤리는 집단적 개념이라 볼 수 있다. 계속되는 가브리엘 교수의 설명이다.
 
  “‘도덕적 진보(moral progress)’는 도덕 문제에 관련된 핵심 의제 중 하나다. 인간 행동의 대부분은 도덕 기준과 무관하게 이뤄진다. 식사할 때 일회용 젓가락과 포크 중 어느 것을 사용할지가 도덕의 기준은 아니다. 마스크 쓰는 것도 원래 도덕 기준과 무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팬데믹이 확산되면서 마스크를 쓰는 것이 남에게 해를 주지 않는 행위로 인식되면서 도덕 기준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병이 돌 때에는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좋다’라는 식의 도덕적 진보가 이뤄진 셈이다.”
 
  가브리엘 교수의 얘기를 들으면서 ‘일회용 젓가락도 이미 도덕적 진보의 영역 안에 들어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환경을 고려할 경우, 일회용 젓가락 사용을 멀리하게 되기 때문이다. 20세기 한때 일회용 젓가락은 위생의 상징 중 하나였다. 불과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위생적 차원’에서 일회용 젓가락은 도덕적 진보의 대상인 듯했다. 그러나 오늘날 환경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일회용 젓가락은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도덕도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도덕·윤리에 관한 가브리엘 교수의 얘기를 듣는 순간 의문이 일었다. 중국 같은 전체주의 독재국가가 아니라 민주주의 유럽과 미국이 ‘문제아’로 전락한 것 같기 때문이다.
 
 
  “아시아권, 도덕·윤리에 기초해 코로나19 대응”
 
  ― 그렇다면 그와 반대편에 있는 중국을 찬미하고 따라야 할까.
 
  “중국은 사실상 일당독재에다가 전체주의 국가다. 100%는 아니지만, 당과 국가가 직접 나서 국민 개개인의 도덕·윤리까지 규정하고 통제한다. 개개인이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할 도덕·윤리의 영역은 서방에 비해 미미하다. 그렇지만 코로나19에 관련된, 제한된 도덕·윤리의 영역에서 본다면 중국인의 의식은 유럽·미국보다 높다.”
 
  ― 유럽과 미국이 도덕·윤리에 무심하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인권 존중이나 인간 품격에 관한 문제는 종교·철학 모두가 다루는 중요한 문제들이다. 전염병 확산이 가속화되면서 서방은 그 같은 문제를 도외시하고 있다. 과학·기술 차원의 대응에만 매달릴 뿐이다. 개인도 문제지만, 국가 정부가 전면에 나서서 위헌적(違憲的) 상황을 연출해내고 있다. 바이러스 퇴치 목적으로, 록다운(lockdown), 즉 전면봉쇄를 남발하고 있다. 개별적 차원의 인권이나 품격을 무시한다는 말이다. 결과적으로 유럽 전체에 허무주의(nihilism)가 판치게 된다. 내가 보기에 현재 유럽 전체에 허무주의가 떠돌고 있다.”
 
  ― 록다운이 어떤 점에서 문제인가.
 
  “유럽의 모든 정부는 중국은 물론 한국이나 아시아권의 전염병 감염 상황을 수시로 전달하면서 록다운을 정당화하고 있다. 최악의 상황인 유럽과 양호한 아시아권 나라를 평면 비교하면서 어느 정도 인권유린도 감수하라는 식의 프로파간다를 퍼트리고 있다.
 
  재삼 강조하지만, 도덕·윤리에 기초한 대응은 한국·일본 같은 아시아권의 공통현상 중 하나다. 바이러스를 효과적으로 막는 파워의 근저에 도덕·윤리가 있다. 국가와 정부가 강제명령을 내리기 전, 개개인 스스로가 준비하면서 적극 대응해나가는 자발적 자세다. 개인과 사회에 대한 존경과 배려에 기초한 능동적 전염병 대응이다. 개개인의 차이나 인권은 무시한 채, 한순간 전면정지로 가는 록다운의 유럽과는 차원이 다르다.”
 
 
  아테네와 스파르타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펠로폰네소스전쟁 당시 전몰자 추도연설을 하는 아테네의 지도자 페리클레스. 아테네는 패했지만 그 정신은 살아남았다.
  가브리엘 교수 말을 들으면서 2400여 년 전 역사가 떠올랐다. 고대 그리스 역사 속의 스파르타와 아테네 관계다. 서기전 431년에서 404년까지 계속된 펠로폰네소스전쟁의 최종 승자는 스파르타다. 무력(武力) 하나에 집중한 전체주의 스파르타가 철학·예술·미학(美學)·건축을 사랑한 민주주의 아테네를 파괴·정복했다. 팬데믹과 뒤이은 경제적 도약을 보면, 일당 독재국가 중국이 민주주의 서방을 제압한 듯하다. 이런 생각을 얘기하자, 가브리엘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장기적으로 보기 바란다. 당장은 스파르타가 이기고 아테네가 멸망한 것처럼 느껴진다. 중국은 앞으로 당분간 계속해서 발전될 것이다. 중국 나름의 도덕적 진보도 한층 더 이뤄질 것이다. 워낙 뒤처진 상황이기에, 경제만이 아니라 인권·성(性)평등·환경 등과 관련된 발전도 가능하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국가적 차원의 중국이 보여주는 도덕·윤리는 서방에 한참 뒤져 있다.”
 
  ― 미국은 어떠한가.
 
  “도덕성 상실은 현재 미국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모순과 문제점의 원인 중 하나다. 21세기 초 이라크전쟁을 보자. 군사적·전략적 차원에서 보면 그 전쟁이 미국의 이익에 부합했을 것이다. 그러나 순간적인 이익에 불과하다. 이라크전쟁 때부터 드러난 도덕성 결핍에 따른 악영향이 미국과 세계 전체로 퍼져나갔다.
 
  도덕성은 리더십을 지탱해주는 중요한 근거다. 21세기 서방이 왜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를 각 분야의 모델로 삼고 인용한다고 보는가? 그리스의 언어·철학·건축·예술이 왜 지금도 화제가 되고, ‘짝퉁 대국’ 중국조차 그런 것들을 베끼는 데 혈안이 돼 있을까? 민주주의를 통해 나타난 도덕성이 25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그런 도덕성을 흠모하고, 계속해서 도덕적 발전을 지향해온 것이 서방의 역사다. 노예제를 폐지하고 여성의 사회참여를 인정하며 어린이 인권 보호에 나선 것이 좋은 본보기다. 스파르타는 펠로폰네소스전쟁에서 이기기는 했지만, 잠시 반짝하다가 사라진 나라다.”
 
 
  중국이 覇者가 될 수 없는 이유
 
  ― 중국이 세계의 패자(覇者)가 될 수 있을까.
 
  “2021년 인류는 ‘현대(modernity)’에 살고 있다. 프랑스혁명과 영국의 산업화를 통합 합작품이 현대의 출발점이다. 대략 19세기 초부터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전 세계로 퍼져나간 현대는 개별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인류 모두가 믿고 따르는 공통분모 하나를 갖고 있다. 바로 방법으로서 자연과학의 발전이다. 자연과학을 통한 인간 삶의 향상이 현대를 살아가는 전 세계의 일상 상식이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믿음이 잘못됐다고 단언한다. 가장 무지하고 편협한 단말마적인 생각이다. 재차 강조하지만, 기존의 믿음만이 아닌 개개인의 윤리적 부분이 인간 삶 향상의 필수조건이라 믿는다. 현대에 윤리를 추가하지 않을 경우, 지금까지 200년 이상 쌓아온 과학·기술과 인류 발전을 전부 붕괴시키는 악마로 변신할 것이다.
 
  기존 세계와 윤리와의 접목은 전 세계 모두 동시에 실행해야 할 사안이다. 인류 공통분모로서 윤리다. 정치체제나 이념을 통한 중국과의 우열(優劣)논쟁이 아니라, 윤리적 차원의 공통분모를 발굴·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노력이 한층 더 절실하다. 과학·기술이 거꾸로 인류를 죽이기 전에, 윤리성 발전을 위한 논의가 글로벌 차원에서 빨리 시행되어야만 할 것이다.”
 

  ― 그게 중국이 패권 국가가 되느냐는 문제와 무슨 상관인가.
 
  “중국은 ‘결코’ (인류 공통의 윤리를 무시한 채) 전 세계를 장악할 수는 없다. 과학·기술로 아무리 앞선다고 해도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 역사 전체를 통틀어 도덕·윤리로 남을 설득하지 못하는 나라가 대(大)제국으로 발전한 경우는 없다. 사실 독일도 두 번이나 시도했지만(웃음) 실패했다.
 
  미국에 대해 부정적으로 얘기하는 사람이 많지만, 독일인인 내가 보면 아직은 미국이 도덕·윤리라는 점에서 세계를 리드하고 있다. 지식인과 지도자들이 실천하는 도덕·윤리 수준이 유럽보다 훨씬 높다. 도덕·윤리에 기초해, 도덕적 진화로 나아가는 사회와 나라가 최종 승자다.”
 
 
  “사회민주주의와 함께 내리막길 접어들어”
 
  가브리엘 교수에 따르면 독일 국민의 록다운 찬성 여부가 5대 5로 팽팽하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독일 국민의 내면이다. 록다운에 반대하면서 록다운이 인권유린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70% 정도지만, 겉으로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이 가브리엘 교수의 분석이다. 인권을 강조할 경우, 전염병을 수수방관하는 것은 물론 확산시키는 ‘악(惡)’으로 지탄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얘기를 듣는 순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만들어낸 ‘샤이(Shy)’ 지지층과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 1930년대 나치 정권 탄생 당시 나타났던 것과 흡사한 여론몰이식 ‘공기’를 통한 이성(理性) 마비 현상이 왜 21세기에 재등장했을까.
 
  “독일만이 아니라, 21세기 유럽이 직면한 전반적 문제점의 출발은, 국가보다는 국가에 기대는 개개인에게서 찾을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은 바이러스 팬데믹 이전 반(半)세기 전인 1970년대부터 시작된 비극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것이지만 1945년 전후(戰後)부터 1970년대 이전까지의 유럽은 도덕·윤리에 기초한 황금기를 창조해냈고 구가(謳歌)했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불기 시작한 사회민주주의(social democracy) 열기와 함께 모든 것이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경제적 격차와 빈곤(貧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국민들이 국가와 정부에 의존하게 됐다. 사회복지라는 이름으로 뿌려진 엄청난 돈이 유럽 전체를 병들게 했다.
 
  1997년 영국 총리가 된 토니 블레어(Tony Blair)의 ‘제3의 길’은 이미 중병(重病)에 접어든 사회민주주의를 보수(補修)하기 위한 이념이었다. 그러나 복지라는 맛에 길든 국민의 의존병(依存病)은 한순간에 사라지기 어려웠다. 스스로의 문제를 자체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정부에 기대는 것이 상식화돼버렸다. 50년 이상 그런 습성에 젖어 들었기 때문에 마침내 록다운 같은 상황도 순순히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팬데믹, 기업이 더 정확하게 대응할 수 있어”
 
지난 4월 23일 일본 도쿄 거리 모습. 코로나19로 인한 가게·식당의 개점 여부를 시민들의 자율에 맡김으로써 일상이 거의 유지되고 있다. 사진=신화/뉴시스
  가브리엘 교수가 비판한 록다운은 유럽만의 현상은 아니다. 한국에서도 볼 수 있다. 도시 통제 같은 전면적 봉쇄는 없지만 마스크 미착용 시 벌금 10만원, 5인 이상 사적(私的) 모임 금지가 상식화된 지 오래다.
 
  이웃 일본을 보면 한국과 너무도 다르다. 감염자 수를 보면 일본은 한국보다 10배 정도 높다. 그러나 일본은 국가의 명령이 아니라 자숙·근신에 기초한 대응이 전부다. 마스크를 안 쓴다고 해서 벌금 내는 일은 없다. 결정자는 국가가 아니라 개개인이다. 5인 모임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5인 모임을 받지 않도록 식당에 요청하고 거기에 응할 경우 보조금을 지급하는 식의 간접적인 정책이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생존을 위해 문을 열 수밖에 없는 가게나 식당도 많다. 일본에서는 그렇다고 해서 문을 연 식당을 비난하는 식의 분위기는 없다. 바이러스가 걱정된다면 문을 연 식당에 안 가면 그만이다. 가게 문을 열지 여부는 정부가 아니라 식당 주인이 내린다. 덕분에 지난 5월의 일본은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 70% 정도의 일상생활이 유지되고 있다. 도쿄 곳곳이 붐비는 것은 당연하다.
 
  ― 한국의 작년 총선에서도 그랬지만, 각국에서는 코로나19 지원을 빙자한 포퓰리즘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포퓰리즘이야말로 팬데믹 이후 나타난 세계적 현상이다. 포퓰리즘의 핵심은 정부가 주도권을 잡는다는 데 있다. 사실 바이러스 팬데믹의 경우 기업이 나설 경우 한층 더 빨리 정확하게 대응해나갈 수 있다. 정부는 ‘항상’ 늦다. 그러나 전염병 공포를 이용해 정부가 주도권을 잡으면서 국민과 기업을 자기 영향권 내로 흡수해가고 있다. 오지랖을 넓힐수록 파워도 강화된다. 결국 정부가 사사건건 개인의 행동강령까지 결정하는 판이다. 정부는 결정이 아니라, 권유와 요청하는 수준에 머물러야만 한다. 모이지 말라고 명령하지 말고, 모일 경우 팬데믹이 확산될 수 있다는 점을 알려야 한다. 판단은 개개인이 내려야 한다. 그게 민주주의이고 도덕·윤리의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도덕성에 기초해 기후변화 해결 나서야”
 
  ― 전 세계적인 화두(話頭) 가운데 하나인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무리 부정한다 해도 지구의 기후변화는 눈앞의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지구에서 살아갈 수가 없다. 환경·기술·경제 모든 것이 기후문제로 연결될 수 있다. 어떻게 그런 문제를 해결해나갈지에 대한 공감대의 기반은 도덕성이다. 노예 문제를 해결한 과거의 지혜처럼, 도덕성에 기초해 기후변화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역사가 증명하듯, 도덕적 발전은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집요한 반발과 저항이 ‘항상’ 기다리고 있다. 당장 눈앞에 드러난 이해관계보다 도덕성에 기초한 해결만이 인류 문명·문화의 보고(寶庫)로 남을 것이다.”
 
  기후변화가 철학 영역에 들어간다는 것이 흥미롭다. 사실 철학은 모든 것을 사유(思惟)하고 서로 논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들판의 꽃 하나, 하늘의 구름조차 철학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가브리엘 교수가 보면 팬데믹은 물론 기후변화, 나아가 과학·기술 문제가 철학계의 관심사로 떠오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신(神)·자연·인간만이 아니라 세상만사 전부가 철학의 영역이다. ‘개인정보를 악용하는 디지털 감시(surveillance) 체제의 폐해’는 최근 주목하는 가브리엘 교수의 연구 테마 중 하나다.
 
 
  익명성에 기초한 디지털 대응
 

  ― 팬데믹 시대에 디지털이 갖는 의미와 가치는 무엇인가.
 
  “디지털을 통한 팬데믹 대응은 피할 수 없다. 전 세계 모든 정부가 어떤 식으로든 모바일 인터넷 디지털을 활용해 바이러스 대응에 나서고 있다. 덕분에 국민 개개인을 감시하는 체제로 발전되고 있다. 바이러스 감염자를 알고 정부가 곧바로 연락해서 활동을 제약할 수도 있다.
 
  내가 생각하는 디지털 대응은 개개인의 익명화(匿名化)에 있다. 이미 독일에서도 만들어졌지만, 전염병에 걸렸다 해도 정부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대응할 수 있는 모바일 앱도 있다. 정부가 어디에 어떤 상태의 감염자가 있는지는 알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누구인지에 대한 정보는 전부 차단하는 식의 대응체제다. 익명성을 전제로 한 팬데믹 대응인 셈이다. 중국처럼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 개개인의 모든 것을 감시·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익명성에 기초한 디지털 대응체제가 이뤄질 것이다. 결국은 도덕·윤리에 기초한 디지털 체제다.”
 
  ― 개인정보와 관련된 GAFA(구글·아마존·페이스북·애플)의 문제점들이 곳곳에서 노출되고 있다. 해결방안은 무엇일까.
 
  “디지털 정보를 감시체제로 이용하는 정부도 문제지만, GAFA의 경우 19세기식 노동착취의 주범(主犯)으로 변한 지 오래다. GAFA 모두가 느끼고 있겠지만, 그들의 비즈니스가 앞으로 계속될 수 있을지 몹시 불안해하고 있다.
 
  나의 전망으로는 페이스북은 앞으로 10년 내에 아주 미약한 존재로 변할 것이다. 수많은 소셜미디어(SNS) 중 하나로, 과거의 야후(YAHOO) 같은 존재로 추락할 것이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를 보라. 개인정보 침해와 관련된 스캔들이 수시로 터지고 있다. 왜 계속해서 터져나올까? 마크 저커버그 스스로 페이스북의 운명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무명(無名)으로 사라지기 전에 엄청난 돈을 벌 목적으로 이미 축적된 개인정보를 불법적으로 비즈니스에 활용하고 있다. 개인 허락도 없이 무단 판매했다는 점에서 불법, 개인정보 활용에 따른 이익금을 개개인에게 전혀 분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착취라 볼 수 있다.”
 
  ― GAFA의 문제점과 관련해 ‘디지털 프롤레타리아(digital proletariat)’라는 단어가 등장한 지 오래다. 무슨 의미인가.
 
  “디지털 프롤레타리아는 디지털 자본주의를 위해 일하는 대중이다. 그러나 디지털 자본주의가 얻은 이익을 전혀 얻지 못하는 배고픈 존재다. 선진국에서는 그 어떤 노동자라도 시간당 최소 임금을 보장하고 있다.
 
  디지털 자본주의에서 노동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할 듯하다. GAFA의 비즈니스 주력 상품은 인터넷 유저(user)들이 남긴 데이터에 기초하고 있다. 가치가 있는 곳에 노동이 있고, 이윤이 창출된다. 그러나 노동을 통한 가치 이윤만 있지, 적절한 대가(代價)가 없는 것이 21세기 디지털 자본주의의 실체다. 비디오와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면서 GAFA에 데이터를 올리는 것 자체가 바로 노동이다.”
 
  ― 그걸 노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공짜 플랫폼에 올렸기 때문에 글이나 사진을 올리는 것 자체가 노동과 무관하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 누구도 공짜로 올리라고 말한 적이 없다. 거꾸로, 공짜가 아닌 유료(有料) 플랫폼으로 운영하기 바란다. 그래서 GAFA의 수익을 유저들과 공평히 나누면 된다. 구체적으로 어떤 데이터인지, 사용자가 얼마나 될지에 따라 다르겠다. 하지만 수익은 디지털 계산에 의해 공평하게 나눠질 수 있다.”
 
 
  디지털稅
 
  ― 계산이 가능할까.
 
  “구체적으로 ‘디지털 프롤레타리아의 급료 기준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부분이 관심을 끌 것이다. 내 생각에는 최저임금제에 기초하면 될 듯하다. 대략 시간당 15유로 수준인 독일 최저임금제에 기초할 경우, GAFA로부터 받을 임금이 시간당 7유로 정도인 것으로 계산할 수 있다. 나머지는 운영비 등을 포함해 GAFA에 할당될 것이다.”
 
  디지털 노동 최저임금제 논의는 황당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가브리엘 교수는 정부와 기업을 오가며 그 같은 논의를 활성화하고 있고, 유럽 지식인 모두 진지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한다. 이런 과정에서 GAFA 이익금 환수의 주체자를 둘러싼 논의도 본격화되고 있다. 가브리엘 교수의 설명이다.
 
  “유럽 모든 정부는 GAFA를 비롯한 디지털 기업의 세금 추징에 나서고 있다. 미국이 반대하고 있지만, 이른바 디지털세(稅)로 이미 수억 달러 수준의 세금이 GAFA 등에 개별적으로 부과되고 있다. 조만간 수십억 달러까지 급증할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런 세금은 디지털 프롤레타리아에게 전해질 급료에 해당된다. GAFA가 노동력 착취의 대명사라고 할 때, 유럽 정부는 디지털 프롤레타리아의 급료를 훔치는 존재라 볼 수 있다. 법인세 형식의 세금은 가능하겠지만, 데이터 활용에 따른 이익은 전적으로 디지털 프롤레타리아의 몫이다.”
 
  ‘인공지능(AI) 문제’도 가브리엘 교수의 주된 연구영역 중 하나다. 대부분의 사람은 AI 시대를 기다리고 희망적으로 보는 듯하다. 인간을 위해 일도 해주고, 정확하고 편안한 세상을 만들어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가브리엘 교수는 그 같은 낙관론에 반대한다.
 
  ― 왜 AI 시대가 인류의 유토피아와 무관하다고 주장하는가.
 
  “AI는 산술적·과학적·통계적 세계관에 기초한 알고리즘(algorithm) 과학이다. 현실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아마존닷컴에서의 경험인데, 매주 내 흥미를 끌 물건 리스트가 내 이메일로 보내진다. 전부 AI를 통한 추천이다. 그러나 한 번도, 단 한 번도 내가 진짜로 원하는 물건을 추천한 적이 없다. 아무리 아마존 AI가 발달한다 해도, 앞으로도 영원히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를 것이다. 마케팅 관계자는 AI를 통한 인간 심리 파악이 가능하다고 말하지만, 나는 영원히 불가능하다고 본다. 도구로서 신모델 AI가 등장하겠지만, 개개인 인간의 생각과 다른 ‘바보(stupid)’가 양산(量産)될 것이다.”
 
 
  “21세기 말부터 아프리카가 全 세계 이끄는 곳 될 것”
 
  ― 전염병이 장기화(長期化)되면서 폭력과 인종차별도 확산되고 있다. 흉악 범죄도 매일 도를 넘어서고 있다. 신(神)은 정신적·육체적 공포에 맞설 최후의 대안(代案)이다. 그러나 정작 신에 매달리는 인간의 목소리는 미약하다. 왜일까?
 
  “과학·기술을 맹신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탄생 이후 나타난 글로벌 차원의 현상이지만, 과학·기술이 인간세계 전부를 지배하고 있다. 인터넷만 열면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이러스 관련 정보와 지식이 넘친다. 신을 통해 설명되는, 구원·선악·부활 같은 종교의 생각이나 논리가 퍼져나갈 여력이 없다.
 
  그러나 바이러스를 아무리 과학·기술 차원에서 푼다고 해도 결정적인 한계가 하나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과연 어떻게 해서 지구상에 탄생했는가’라는 부분이다. 글로벌 시대의 정점(頂點)에 갑자기 등장했다는 점도 과학·기술로 풀기 어렵다. 결국에는 신만이 풀 수 있는 근본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신을 찾는 목소리가 약하다고 해서 종교가 무의미해지거나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과학·기술이 발달할수록, 신의 영역도 깊고 넓어진다.”
 
  가브리엘 교수는 “21세기 후반부터 정신적·영적(靈的) 차원의 문명·문화가 부활할 것”이라면서 “과학·기술의 한계를 뛰어넘은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이라고 말한다.
 
  “100여 년 전부터 본격화됐지만, 과학·기술 만능주의는 서방이 창조해내고 곧바로 아시아권이 복사에 들어간 세계관이다. 유럽이 쇠락의 길에 들어서면서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이 과학·기술의 파워로 등장하고 있다. 전 세계 모두가 과학·기술 바벨탑 쌓기에 나서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그렇지도 않다. 과학·기술 만능주의 세계관과 무관한 곳이 하나 있다.”
 
  ― 어디인가.
 
  “아프리카다. 정신적·영적인 차원에서 서구와 아시아의 세계관을 압도할 새로운 지역이다. 나는 21세기 말부터 아프리카가 전 세계를 이끄는 곳으로 변할 것으로 본다.”
 
 
  美 대법원, 영업중단 명령에 違憲 결정
 
  이 인터뷰 기사를 마무리할 즈음, 미국 연방대법원은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주도한 ‘식당·가게 영업 중단 명령’이 인권에 어긋나는 위헌이란 판결을 내렸다. 팬데믹에 맞선 조치였다고는 하지만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인권에 어긋나기 때문에 무효(無效)라는 것이다. 유럽 신문·방송도 이 소식을 워싱턴발(發) 톱뉴스(top news)로 다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해외토픽 거리도 안 되는, 완전히 무시된 뉴스로 사라졌다.
 
  코로나19 전염병은 가치관은 물론, 인간·사회·세계를 보는 철학적 세계관도 극단으로 나누고 있다. 국가 차원의 누가 옳고 그르다는 식의 생각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 당장 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론은 개인의 문제로 귀결된다. 나만 사랑하는 ‘미이즘’이 아닌, 도덕·윤리로 무장한 개인으로서의 ‘미이즘’이다. ‘새삼스럽게’ 가브리엘 교수가 도덕·윤리를 철학의 화두로 잡은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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