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기자수첩

政敵 린뱌오의 자리를 찾아준 덩샤오핑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ironheel@chosun.com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린뱌오(林彪·1907~1971)는 영욕(榮辱)이 엇갈리는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마오쩌둥의 대장정에도 참여했던 그는 국공내전(國共內戰) 기간 중에는 동북인민해방군을 이끌고 요심전역(遼瀋戰役)에서 승리, 만주(동북3성)를 장악했다. 이 전투는 마오쩌둥의 공산군이 내전 초기의 열세(劣勢)를 만회하고 중국 대륙을 석권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1966년 문화대혁명 당시 국방부장이던 린뱌오는 마오쩌둥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바쳤고, 그 덕분에 마오쩌둥의 공식적인 후계자가 됐다. 린뱌오는 “마오 주석은 천재”라는 문구를 공산당 강령에 집어넣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하면서 아부했지만, 마오쩌둥의 시의심(猜疑心)을 피해 가지는 못했다. 궁지에 몰린 린뱌오는 1971년 9월 13일 가족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도망치다가 몽골 상공에서 비행기가 추락하는 바람에 사망했다. 린뱌오가 쿠데타를 시도했다느니, 그의 아들이 마오쩌둥을 암살하려 했다느니 하는 소문이 무성했다. 이후 린뱌오는 ‘마오 주석의 충직한 전우’에서 ‘혁명의 배신자’ ‘만고(萬古) 역적’으로 추락했다.
 

  마오쩌둥이 죽고 문혁이 끝난 후, 어느 해인가 최고지도자 덩샤오핑이 혁명박물관을 방문했다. 린뱌오의 사진이 안 보이자 덩샤오핑은 “다른 곳도 아니고, 혁명박물관에 린뱌오가 없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야단을 쳤다. 이후 베이징을 비롯해 중국 전역에 있는 혁명박물관에 린뱌오의 사진이 다시 내걸리고, 곳곳에 그의 동상이 섰다.
 
  덩샤오핑은 린뱌오와 정적(政敵)이었지만,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과정에서의 린뱌오의 업적을 인정하는 데는 인색하지 않았다. 문득 현대사박물관과 교과서에서 역대 대통령의 업적들은 안 보이고, 일부 세력이 전직 대통령의 동상을 철거하라고 난리 치고, 심지어 백선엽 장군의 묘소에까지 몰려가 고인의 영면(永眠)을 방해하는 이 나라의 현실이 떠오른다. 착잡하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202110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북스토어
프리미엄결제
2020년4월부록
정기구독 이벤트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 월간조선 2018년 4월호 부록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