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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근의 전쟁과 평화

전쟁도 전염된다

글 : 이춘근  이춘근국제정치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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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지난 9월부터 한 달여 동안 전쟁… 러시아·터키·이란·이스라엘 등 연루
⊙ 전쟁 규모는 작아도 원인은 강대국 간 전쟁과 유사
⊙ 분쟁 원인은 나고르노카라바흐 영유권… 민족 경계선과 국가 경계선의 불일치가 전쟁 원인

이춘근
195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미 국 텍사스대학 정치학 박사 /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연구실장, 자유기업원 국제문제연구실장·부원장, 한국경제연구원 외교안보연구실장 역임. 現 국방부 정책자문위원 / 저서 《미·중 패권경쟁과 한국의 국가전략》 《격동하는 동북아시아》 《현실주의국제정치학》 등
아제르바이잔군 진지를 포격하는 아르메니아군 병사.
한 달 넘게 계속되고 있는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은 주로 포격전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사진=AP/뉴시스
  미국 CIA가 매년 간행하는 전 세계 국가들에 관한 자료집 《월드 팩트 북(World Fact Book)》 2020~2021에 의하면 2010년 현재 세계에는 195개의 독립국이 존재한다. 비록 아직 독립국가로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지만 정치적 실체로는 인정되는 조직이 무려 267개에 이른다.
 
  이렇게 나라가 많다 보니 국제정치를 오래 공부한 사람들에게도 생소한 국가 이름이 한두 개가 아니다. 국제정치를 관찰하는 대개의 사람들은 주로 소수(少數) 강대국만 집중해서 살펴보기 때문에 그렇다. 사실 오늘날 국제정치 이론은 역사상 나타났던 기껏해야 10개 정도에 불과한 강대국의 행동을 관찰하고, 그것들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정치를 올바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강대국이 아닌 작은 나라들의 관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그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작은 나라들의 행동이 때로 큰 나라들의 이해관계 충돌을 불러일으키게 되고,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어 큰 전쟁을 야기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작은 나라 세르비아의 청년이 쏜 총 한 발이 제1차 세계대전으로 번진 것이 좋은 예이다.
 
  지난 9월 27일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간에 전쟁이 발발했다. 두 나라는 그 후 한 달여 동안 세 차례 휴전협정을 맺지만 번번이 파기되었다. 지난 11월 10일 네 번째 휴전협정을 맺었지만, 양측이 이를 준수할지는 미지수다.
 
 
  전쟁은 왜 일어나는가
 
  보통 사람들은, 물론 상당 정도의 전문가들도 이 두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른다. 그러나 두 나라는 앞에서 인용한 CIA 자료에 당당하게 독립국으로 기재된 195개국 중의 나라다. 신문에도 작게 보도된 이 전쟁을 살펴보려는 것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약소국 간의 하찮은 분쟁이 큰 전쟁으로 번질 수 있다는 전쟁 원인 이론의 맥락에서 이 두 나라의 싸움을 한번 분석해보기 위해서이다.
 
  전쟁은 정말 별의 별 이유 때문에 발생한다. 전쟁을 연구하는 학자 수만큼 많은 전쟁 원인 이론들이 존재하며, 정반대의 주장을 하는 이론이 한 권의 국제정치학 책 속에 사이좋게 소개되어 있기도 하다.
 
  아주 유명한 국제정치학 이론인 ‘세력균형이론(Balance of Power Theory)’은 국가들의 힘이 균형을 이룰 때 평화가 온다고 주장한다. 최근 한창 유행하고 있는 ‘힘의 전이(轉移) 이론(Power Transition Theory)’은 국가 간(특히 강대국 사이)에서 힘의 균형이 이루어지는 경우 큰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이런 이론들은 전쟁을 일으키는 궁극적인 요인은 ‘힘의 관계’라는 사실에 서로 동의한다는 점에서 모두 현실주의 계열에 속한다.
 
  힘을 계산할 때 자국(自國)의 힘만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자국의 안보에 영향을 주는 주변국들의 힘도 함께 계산하다 보니 강대국에 인접해 있는 작은 나라들의 갈등이 큰 관심거리가 되며, 이 같은 맥락에서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전쟁을 설명해볼 수 있겠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이 두 나라는 작은 나라이지만 각각 상당히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다.
 
  아르메니아는 이 세상 어떤 나라보다도 먼저인 4세기부터 기독교를 국교(國敎)로 삼았다는 사실을 자랑하는 나라다. 아르메니아는 국토 면적이 2만9743km2로 대한민국의 약 30%에 해당하는 나라다. 내륙(內陸)국가로서 바다는 없지만 네 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데 그 길이가 만만치 않다. 아르메니아는 아제르바이잔과 996km, 조지아와 219km, 이란과 44km, 터키와 311km의 국경을 공유하고 있는 나라다. 인구는 2020년 7월 기준 302만1324 명이다. 인구의 98.1%가 아르메니아인이며 97.9%가 아르메니아어를 사용하는 단일종족 국가라고 말할 수 있다. 구매력 기준 GDP가 2017년도 283억4000만 달러(개인소득 9500달러, 명목 GDP로 전 세계에서 136번째)로 비교적 가난한 나라다. 그러나 국가 안보가 불안하여 GDP의 4.25%를 국방비로 사용하는 안보국가다. 아르메니아의 국방비는 GDP 대비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높다.
 
  아제르바이잔은 카스피해 연안의 국가로서 러시아제국에 포함된 나라였으나 러시아제국이 공산주의혁명으로 무너졌을 때 2년(1918~1920) 독립했다가 다시 소련 통치하에 들어갔던 나라다. 약 70년간 소련의 지배를 받은 후 1991년 다시 독립했다. 아제르바이잔은 땅 넓이가 8만6600km2로 대한민국의 약 87% 크기며 인구도 1020만5810명에 이르는 상당 규모의 국가다. 구매력 기준 GDP는 2017년 현재 1722억 달러(개인소득 1만7500달러, 명목 GDP 세계 73위), 인구의 90% 이상이 아제르바이잔인이며 아제르바이잔어를 사용하는 동질적인 나라다.
 

  두 나라는 오랫동안 나고르노카라바흐(Nagorno-Karabakh) 지역을 둘러싸고는 분쟁을 치러왔다. 1988~1994년에도 양측은 전쟁을 벌인 적이 있다. 전쟁의 원인은 아르메니아의 지원을 받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 아르메니아인들과 아제르바이잔공화국 간의 갈등이었다. 이후 최근에 이르기까지 휴전상태가 지속되다가 지난 7월 12일 다시 점화(點火)되었다. 이번에는 아르메니아 정부와 아제르바이잔 정부 간 분쟁이라는 점에서 과거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과 성격이 약간 다르다.
 
  인명피해 규모로 보았을 때 지난 두 나라 간 전투에서 사망자가 전쟁 기준을 충족할 정도로 큰 규모는 아니었다. 국제정치학자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전쟁은 전투에서의 인명피해(battle death) 1000명을 기준으로 삼는다. 즉 1000명 이상의 인명피해가 있는 군사분쟁(military conflict)을 전쟁(war)으로 정의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전쟁의 시작과 끝
 
  두 나라의 다툼은 피그미 수준의 분쟁이었지만 전쟁을 공부하는 모든 사람이 당면하는 문제 중 상당 부분이 그대로 노정(露呈)되었다. 물론 작은 전쟁이지만 큰 전쟁처럼 모호한 부분이 너무 많다. 지난 7월 12일부터 양국 간 전투가 발발하기 시작했는데, 그 원인이 우선 애매하다. 양측 모두 상대방에게 도발의 책임을 묻는다는 점도 큰 전쟁들과 유사하다. 수많은 전쟁의 경우 전투가 언제 시작되었는지, 언제 끝났는지를 밝히는 일이 쉽지 않았다. 시작과 끝이 분명한 전쟁을 찾는 일이 오히려 어려울 정도다.
 
  예를 들면 많은 학자는 1990년 8월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점령함으로써 야기된 걸프전쟁의 발발 시점에 대해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날(1990년 8월 2일)을 전쟁의 시작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학자들도 있고, 미국이 직접 이라크 폭격을 행한 ‘사막의 폭풍 작전(Operation Desert Storm)’이 시작된 1991년 1월 17일을 전쟁의 시작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전쟁이 끝난 날에 대해서도 견해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왕왕 있다. 총성이 멈춘 날을 종전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가 있고, 항복조인을 한 날 비로소 전쟁이 끝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날을 1945년 8월 15일로 치지만 일본이 항복에 조인한 9월 3일을 전쟁이 종식된 날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중국은 9월 3일을 전승(戰勝)기념일이라 부른다. 중국이 연합군의 승리에 기여한 바가 무엇인지는 아직도 모호하지만 말이다.
 
  전쟁 연구에서 쉽지 않은 문제 중 하나는 누가 승리했느냐의 여부인데, 승자(勝者)와 패자(敗者)가 명확하지 않은 채 끝나는 전쟁도 부지기수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양측은 모두 자신이 승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르메니아는 자국군이 5명 전사, 35명 부상, 경찰 2명 부상, 민간인 1명 부상이라고 발표하고 있다. 반면 아제르바이잔의 주장에 의하면, 아르메니아 병사는 최대 120명 사망했으며, 탱크 1대, 장갑차 1대, 무인비행기 5대가 파괴되었다. 아제르바이잔은 자국군 병사 12명, 민간인 1명이 사망했으며, 4명의 병사가 부상당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르메니아의 주장에 의하면 아제르바이잔은 병사 21명이 전사했고, 탱크 3대, 드론 13기가 파괴되었다.
 
  자국의 피해는 축소하고 상대방의 피해는 확대 발표하는 것이 전쟁의 상례다. 그래서 전쟁을 객관적으로 분석해서 누가 승자이고 누가 패자인지를 밝히는 일은 대단히 어렵다. 한국전쟁의 경우가 그렇지 않은가. 북한은 1953년 7월 27일 유엔과 공산군 양측이 정전협정을 체결한 날을 지금은 ‘전승기념일’이라 말하고 있다. 유엔군 측도 대한민국의 적화(赤化)를 막았다는 점에서 한국전쟁을 승리한 전쟁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다만, 이번 전쟁에서 아제르바이잔의 인명피해 중에는 소장 1명, 대령 1명, 소령 2명 등 장교들의 피해가 상대적으로 크다는 점이 특이하다. 아르메니아는 소령 1명, 대위 1명, 하사관 2명이 전사자에 포함되어 있다.
 
 
  민족 경계선과 국가 경계선의 불일치
 
  이번 전쟁에서 보병들의 총격전은 없었다고 한다. 포격(砲擊)과 드론이 전투의 주요 수단이었다. 7월 12일부터 7월 16일까지 상대적으로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전투는 4일 만에 휴전(cease fire) 상태가 되었지만, 이후에도 양측은 서로 상대방이 휴전을 위반했다고 비난하며 전투를 지속했다. 그러다가 9월 27일부터 본격적인 충돌이 다시 시작되었다.
 
  1994년 5월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 거주하는 인종적 다수파인 아르메니아인과 아제르바이잔 정부 간의 전쟁이 종식된 이후 아르메니아인은 그 지역에 대한 통제력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 같은 합의는 러시아의 중재를 통한 휴전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일방이 불리하다고 생각한 협정은 잘 지켜질 수 없었다. 휴전 위반 사례가 여러 차례 발발했으며, 가장 심각했던 것이 2016년 발생한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서의 충돌이었다. 이 지역을 벗어나는 곳인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국경선에서도 2012년, 2014년, 2018년에 상당 규모의 군사적 충돌이 발생했다.
 
  전쟁 규모는 미니전쟁이었지만, 원인은 큰 전쟁의 경우와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본시 아제르바이잔 영토 내에 아르메니아인 다수가 이루고 살던 지역인 나고르노카라바흐라는 지역이 있었다. 이 지역 내 아르메니아인들이 아제르바이잔으로부터 독립을 원하자 아제르바이잔 정부가 개입했다. 이웃의 아르메니아는 아르메니아인이 많이 사는 나고르노카라바흐가 아제르바이잔에 의해 탄압당하는 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마치 나치스 독일이 폴란드·체코 등에 살던 소수 독일인들이 해당 국가 정부에 의해 탄압받고 있으며, 그들의 거주 지역은 독일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과 유사한 논리다. 역사상 가장 중요한 전쟁 원인의 하나가 민족의 경계선과 국가의 경계선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제정치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나라는 한 민족이 한 개의 나라를 구성하고 사는 것이다. 소위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one nation one state)’는 국가들의 이상(理想)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한민족(韓民族)이 2개의 나라에서 살고 있다. 한민족이 하나의 국가에서 살아야 한다는 국제정치적 이상은 통일의 당위성이 되기도 한다.
 
 
  전쟁의 전염 이론
 
터키 이스탄불에서 벌어진 아제르바이잔 지지 시위. 터키는 같은 터키계인 아제르바이잔 지지를 천명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간 전쟁이 두 나라 사이의 전쟁 이상이 되지 않는다면 국제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같은 상호 의존의 세계에서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아르메니아가 사용한 드론이 이스라엘제라고 한다. 터키는 분쟁이 야기되는 동안 같은 터키계 민족인 아제르바이잔 편을 들었다. 터키의 이런 태도는 아르메니아인들의 분노를 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20세기 초 오스만튀르크제국에 의해 100만명이 학살된 아르메니아인들은 터키가 다시 한 번 아르메니아인을 인종학살하려 한다고 분개한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은 각국이 인종적으로 순수한 독립국이지만 국경의 길이가 900km가 넘는다. 허약한 아르메니아는 이웃에 상대적인 강대국이 많다. 조지아는 옛 소련에 속했던 나라 중 하나로서 러시아가 결코 완전한 독립국의 지위를 줄 것 같지 않은 나라다. 아르메니아의 이웃에는 이란과 터키가 있다. 즉 아르메니아가 싸움을 벌일 경우 터키와 이란은 자연스럽게 개입국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전쟁은 이란·터키·러시아 등으로 전염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을 연구한 전쟁이론이 있는데, ‘전쟁의 전염 이론(Contagion Theory of War)’이라고 한다. 학자들이 지적하는 전염성의 근본은 지리적 인접성이다.
 
  우리나라 주변국들이 모두 강대국이다 보니 한국 사람들의 국제정치적 관점은 자연스레 강대국 국제정치가 되었다. 먼 곳에 있는 작은 나라의 싸움이라 우리에게는 상당히 생소하지만, 작은 전쟁일지라도 큰 전쟁에 나타나고 있는 여러 가지 요인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런 전쟁은 큰 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것이 21세기의 세계 정치라고 말할 수 있다.
 
  작은 나라의 전쟁이 큰 나라의 전쟁과 같은 맥락에서 보일 수 있다는 것은 결국 국가안보 문제, 전쟁과 평화의 문제는 큰 나라나 작은 나라나 구분 없이 똑같이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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