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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도의 페르시아 灣景

경제제재 해제로 기지개 켜는 이란

‘돈만 아는 한국기업’ 이미지 불식시켜야

글 : 박현도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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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커진 이란행 비행기는 만석, 호텔비는 3배 가까이 폭등
⊙ 오일달러 없는 이란 등 산유국들, “투자해서 돈 벌어 가라”… 옛날 같은 중동특수(特需)
    기대 어려워
⊙ 8000만 인구 중 절반이 젊은 세대…, 복장규제 완화 등 개혁 조짐 보이기 시작

박현도
1966년생. 서강대 종교학과 졸업, 캐나다 맥길대 이슬람학 석사 및 박사(수료),
이란 테헤란대 이슬람학 박사 / 현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인문한국 연구교수.
이화여대 겸임교수. 외교부 정책자문위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동연구회전문위원,
종교평화국제사업단 영문계간지 《Religion & Peace》 편집장 /
저서 《법으로 보는 이슬람과 중동》, 《IS를 말한다》 등 공저 다수
타즈리시 시장을 메운 시민들. 조용한 가운데 이란은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의 구약에 해당하는 유대인들의 《히브리 성서》 이사야서 45장은 〈하느님이 자기 존재를 알지도 못하는 고레스를 메시아로 선택하여 유대인을 바빌론 노예살이로부터 해방시켰다〉고 적고 있다. 히브리어로 ‘기름 부은 자’라는 뜻인 메시아가 그리스어의 그리스도다. 이방인에게 쌀쌀맞은 유대인들의 태도를 생각하면 고레스는 그만큼 위대한 인물이다.
 
  기원전 586년 바빌론으로 끌려간 유대인들을 538년에 해방시킨 페르시아 황제 고레스. 그리스어로 퀴로스, 라틴어로 퀴루스로 불린 고레스가 이란 출신이다. 페르시아어 이름은 쿠로슈(Kurosh)다. 그냥 쿠로슈가 아니라 쿠로셰 보조르그(Kurosh-e Bozorg)라고 부른다. 위대한 쿠로슈라는 뜻이다.
 
  이란이 1979년 이슬람혁명 이래 반(反)시온주의를 국시로 삼아 이스라엘과 대립하고 있는 현실에 비춰 보면 이란인의 조상 쿠로셰 보조르그가 이스라엘인들의 조상인 바빌론 유배 유대인에게 해방의 기쁨을 선사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초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초현실적인 것이 어디 이뿐이랴. 핵문제로 얼굴 붉히다 IS라는 공동의 적을 잡기 위해 미군과 이란군이 이라크에서 함께 싸우고 있다. 그런데도 미국은 여전히 이란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올 5월까지 필자는 이란을 세 번 방문하면서 위대한 쿠로슈의 후손과 국제사회가 써 내려가는 변화의 텍스트를 감지할 기회를 가졌다.
 
 
  시아파의 바티칸 곰
 
필자와 마스제드 자메이 박사.
  지난해 12월 이란의 영적(靈的)인 속살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스제드 자메이(Masjed Jamei) 박사의 초청으로 시아파의 바티칸 곰(Qom), 고도 카샨(Kashan)과 테헤란을 돌아보았다. 마스제드 자메이 박사는 대대로 성직자를 배출한 이란 명문가 출신이다. 전직 외교관이자 국제관계를 전공한 박사로 지정학(地政學) 전문가이자 호자톨레슬람(Hojjatoleslam)이라는 칭호를 지닌 종교인이다. 그는 세 번 방한(訪韓)해 우리나라의 종교계를 둘러보고 발전상을 익혔다.
 
  대 아야톨라 호세인 바히드 호라사니(Hossein Vahid Khorasani)가 93세의 노구를 이끌고 이른 아침 곰의 성소 하라메 파테메(Haram-e Fatemeh)에서 강의를 하고, 30대에서 많게는 70대 이상으로 보이는 학자들이 이분의 말씀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필기를 하면서 경청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이 시아파를 움직이는 이란의 종교적 열정이었다.
 
  필자가 이란의 영성(靈性) 전통을 돌아보는 여정 동안 반미(反美)나 경제제재에 관한 이야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어느 곳에서도 제재로 인한 물자부족이나 초조함은 볼 수 없었다. 짓다 만 집, 보수가 필요한 건물들은 곳곳에 산재했지만 우리의 대화는 종교와 영성의 향기에 파묻혔다.
 
 
  부쩍 늘어난 한국인 방문자들
 
대 아야톨라 호라사니의 강의. 30~70대 학생들이 열심히 그의 말을 받아 적고 있다.
  한 달 만인 올해 1월에 다시 방문한 이란은 테헤란행이나 귀국행 기내만 보아도 많이 달랐다. 경제제재가 부분적으로 해제된 직후였기 때문이다. 이란에 드나든 지 5년 만에 처음으로 가장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을 비행기에서 만날 수 있었다. 남성은 정부 관계자나 회사 파견 직원, 여성은 단체여행객이었다. 남성들의 대화는 투자, 달러, 건설 등 비즈니스 일색이었다. 여성들은 조용히 기도하거나 성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對)이란 제재가 한창일 때에도 이란 관광명소에서 “무엇을 하는지 묻지 말라”고 하는 한국인들을 만난 적이 있다. 기독교 선교와 관련한 이들일 것이다. 이란 등 중동국가들에서 기독교 선교는 국법으로 엄금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제재 해제와 더불어 많아진다면 우려할 일이 아닐 수 없다.
 
  4개월 만인 지난 5월에 다시 방문한 이란은 더욱 놀라웠다. 그동안 이란을 드나들 때는 카타르항공이나 터키항공을 주로 이용했는데, 도하나 이스탄불 발(發) 테헤란행 비행기는 좌석이 한 열에 좌우 3석씩 160석 내외다. 그런데 이번에는 처음으로 아랍에미리트항공을 이용하였다. 한 열에 좌·중·우 모두 10석으로 200석이 넘는 큰 비행기인데도 만석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아랍에미리트항공에서는 페르시아어로 안내방송이 나왔다는 사실이다. 이전에 이용한 카타르항공은 아랍어・영어, 터키항공은 터키어・영어로 안내방송을 했다. 아랍에미리트항공이 전부터 페르시아어 방송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간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테헤란에서 제일 좋다는 파르시안 아자디(Parsian Azadi) 호텔은 5성급이지만, 우리나라의 같은 급 호텔에 비하면 여러모로 뒤진다. 그래도 우리 대통령이 순방 때 묵었던 곳이다. 경제제재가 한창이던 때에 1박에 80달러 정도면 머물 수 있었는데 지난 1월에는 120달러, 5월에는 220달러를 내야 했다. 돈은 둘째 치고 곳곳에서 몰려드는 사업가들로 인해 호텔 방 잡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한류팀의 실수
 
이슬람 여성들의 머리가리개는 감옥이 아니라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내용의 공익광고 포스터.
  1월 경제제재가 부분 해제된 이후 중국이 제일 먼저 달려갔다. 언론은 행여나 우리가 뒤처질까 정부를 압박하고 나섰다. 언론 보도만 보면 이란은 엘도라도다. 이란 순방을 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낙오할 것 같은 분위기에서 우리 대통령의 순방이 이루어졌다. 이란을 통한 ‘제2의 중동붐’이라는 슬로건에, 대통령의 첫 이란 방문이라는 역사적 의미는 뒷전으로 밀렸다.
 
  물론 먹고사는 것을 해결해 주는 경제가 제일 중요하다. 우리 정부는 안팎으로 어려운 경제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이란에 공을 들였다. 이란을 통한 제2의 중동신화를 창출하기 위하여 온갖 지혜를 짜냈다.
 
  TV 안 보는 사람 10% 빼면 사실상 시청률 100%를 기록했다는 주몽과 양금이(대장금을 이렇게 부른다)가 일궈 놓은 한류(韓流)의 불을 되살리기 위하여 음식, 한방 등 한류 관련 상품이나 서비스는 모두 대통령 순방 보따리에 넣었다. 한류팀은 남산타워 같은 테헤란 보르제 밀라드(Borj-e Milad)에 한국의 미(美)를 선보였다.
 
  그런데 사실 모 부처가 막판에 한류 관련 여러 직능인(職能人)을 호텔방도 확보하지 않은 채 부랴부랴 비행기에 태워 보내면서 여성들은 이란에서 반드시 머리가리개를 써야 한다는 기본적 사실조차 알려주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맨땅에 헤딩하는 한국인의 정신’으로 행사는 잘 치렀지만 씁쓸했다.
 
  사상 초유의 대규모 경제사절단도 뒤따랐고, 셈법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어찌 되었든 간에 42조원 규모의 상호 양해각서(MOU)를 이란 측과 체결했다. 각서라는 것이 구속력이 없고, 약속한 대로 모두 실현될 가능성도 희박하기는 하다. 그래도 양국이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미국이 달러 결제가 가능하도록 금융제재를 더 완화하지 않는 한 현시점에서 어떠한 나라도 이란과 양해각서대로 사업을 추진하기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한 반면, 이란은 우리가 상당한 금액을 오히려 투자한다고 밝혀 국내에서 시비가 일기도 했다.
 
 
  ‘중동신화’는 더 이상 없다
 
  현재 이란과 경협(經協)은 우리 투자가 선행하지 않으면 어려운 상황이다. 경제제재로 인한 원유 금수(禁輸), 유가 급락으로 이란의 재정 상태가 어렵기에 이란 내 대형 사업은 외부의 투자가 절실하다. 이란만 그런 것은 아니다. 잘나가던 산유국들이 공사대금을 모두 다 주고 공사를 발주하는 시절은 이미 끝났다. 수주한 측에서 공사비의 상당액을 조달해 공사에 참여한다.
 
  현재 이란이 원하는 것은 외부의 적극적인 투자다. 투자해서 벌어 가라는 말이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따라서 양해각서에 제시된 금액을 우리가 우리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
 
  대통령의 이란 순방은 시의적절했고 이란 내 반응도 긍정적이다. 식민지배에서 해방된 독립국가 중 유일하게 발전을 이룬 대한민국에 대한 이란의 평가는 높다. 미국에 대한 양국의 인식 차이로 괴리감은 있지만, 양국 관계가 친미, 반미 문제로 어긋나지는 않았다. 우리의 분단 상황을 이란의 루하니 대통령이 북핵(北核)을 공개 반대한 것은 이번 이란 순방의 최대 업적이다.
 
  김승호 주이란 대사는 “돈이 걸려 있으면 우리나 이란 사업가들의 눈이 번쩍번쩍 빛나 알아서들 잘하니까 정부는 뒷바라지하면서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역할에 그쳐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양해각서를 정부가 체결하도록 했으니 사업은 이제 기업의 몫이다. 대신 정부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이란의 문화와 종교 분야 인물들과 친교하면서 우호관계를 깊게 해야 한다.
 
 
  ‘30+16’
 
대외경제정책연구원과 아산정책연구원이 테헤란에서 이란 상무부 산하 무역연구소와 공동주최한 제4차 한-이란 협력포럼.
  이란 친구들은 한국과 이란은 닮은 것이 많다고 말했다. 교육열이 높고 새로운 것을 실험하려는 호기심이 강하다. 그런데 차이점 또한 뚜렷하다. 한국인은 질서를 잘 지키는데 이란인들은 “언제 그런 법이 만들어졌냐?” “누가 만들었어? 나는 몰라!”라며 안 지킨다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단결력은 이란이 우리보다 더 낫다. 특히 20~30대 젊은 세대의 합심은 가공할 만하다. 변화를 꿈꾸는 이들은 2월 26일 치러진 제10대 국회(2016~2020)와 5대 전문가의회(2016~2024) 선거에서 개혁 열망을 확연하게 보여주었다.
 
  젊은 세대를 주축으로 한 온건개혁파 지지자들은 테헤란 선거구에서 ‘30+16’이라고 쓴 선거구호 판을 들고 곳곳을 누비며 선거운동을 펼쳤다. 테헤란에 할당된 30명의 국회의원과 16명의 전문가의회 의원을 모두 현 대통령 루하니와 하타미(Khatami) 대통령 시절 부통령을 지낸 아레프(Aref)가 이끄는 ‘희망의 리스트’ 온건(개혁) 정파 사람들로 뽑자는 말이다.
 
  후보 면면을 보았을 때 솔직히 이들 모두가 온건·개혁적인 사람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다만 루하니 대통령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선거결과는 목표에 한 석 모자란 ‘30+15’였다. 최고지도자의 사돈 골람 핫다드 아델(Gholam Haddad Adel)이 이끄는 보수정파 ‘원리주의자 대연합’에서는 모든 선거의 입후보자 자격을 심사하는 헌법수호위원회의 수장인 아야톨라 아흐마드 잔나티(Ayatollah Ahmad Jannati)만이 간신히 살아남았다. 잔나티는 최근 전문가의회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선거결과를 젊은 세대가 이루어 낸 것이다. 8000만 이란 인구의 절반을 넘는 이들이 향후 이란을 움직여 간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란 사회의 점진적 변화를 점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란 시장 진출을 염원하는 우리 기업이 사로잡아야 할 대상 역시 이들이다.
 
  정당이 없는 이란은 크게 보수, 중도, 온건(개혁)파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스스로를 중도라고 하는 ‘국민의 소리 연합’ 정파 지도자 알리 모타하리(Ali Motahari) 국회의원에 따르면, 보수정파는 이슬람문화를 존중하나 정치적 자유를 상대적으로 등한시하고 온건(개혁)파는 정치적 자유를 보장하나 이슬람문화를 존중하지 않지만, 중도인 자신은 정치적 자유와 이슬람문화를 모두 존중한다고 한다.
 
  이번 선거에서는 보수도 온건(개혁)도 중도도 압승을 거두지 못하였다. 그러나 테헤란 선거구에서는 압도적으로 온건(개혁)파가 승리하였고, 테헤란이 지닌 정치적 무게를 생각하면 적어도 이전보다 복장과 같은 이슬람 문화에 대한 시각이 다소 유연해질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스냅백’ 너무 걱정 말아야
 
미대사관인질 사건이 벌어졌던 옛 미국대사관 벽에는 ‘우리는 미국을 우리 발밑에 두었다’라는 구호가 쓰여 있다.
  현재의 경제제재 해제는 향후 이란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시도하는지 하지 않는지 지켜보기 위해 10년이란 유예기간을 둔 조건부 제재 해제다. 조금이라도 핵무기 관련 프로그램 가동 기미가 보이면 다시 제재를 하겠다는 말이다. 이런 ‘스냅백(snap back)’이 걱정스러워서 이란 진출을 고민하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 그렇다고 10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태에서 무조건 최악의 경우만을 생각해 이란시장을 포기하는 것도 어리석다.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 시기에 우리 정부 기관 중 유일하게 이란과 협력프로그램을 구축한 곳은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아중동팀이다. 어려운 때일수록 관계를 잘 맺어야 하지 않겠냐는 필자의 제안을 이권형 박사가 수용했다. 2013년부터 한·이란협력 포럼이 양국을 오가며 개최됐다. 5월에 필자가 이란 테헤란을 방문한 것도 제4회 한·이란포럼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다. 최근 이란 열풍과 관련해 일부 국내 언론에서는 “이란이 제재를 받는 동안, 한국기업들은 이란과 관계를 잘 유지해 왔기 때문에 이란도 한국에 호의를 가지고 있다”는 식의 기사가 곧잘 있었다. 그런 경우도 있었겠지만 반대되는 경우도 많았다.
 
  금융제재로 이란이 어려울 때 우리가 갑질한 경우도 있었다. 근시안적인 우리 기업의 행태를 보면서 어떻게 글로벌 비즈니스를 이야기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앞으로 이란 진출을 제대로 하려면 우리 기업에 붙은 ‘돈만 아는 기업’이라는 오해를 불식시켜야 한다. ‘불나방 비즈니스’는 이제 그만둘 때가 되었다. 그래야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마음이 통하는 친구를 만들 수 있다.
 
  헤이메하예 마 조다 델하예 예키스트(우리의 텐트는 멀지만, 마음은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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