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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 출신 우동집 주인장의 일본物語 〈2〉

오바마의 일본식 사과

글 : 신상목  기리야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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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사 사과할 필요 없다”던 일본 학생, “미국도 원폭에 대해 사과할 필요 없겠네”라고 하자
    쏙 들어가
⊙ “오바마 정권 초기부터 미국 정부로부터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방문하는 데 관심이
    있다는 언질을 받아왔다”(사사에 겐이치로 주미일본대사)
⊙ 오바마는 ‘사과’라고 표현하지 않았지만 사과했고, 일본인들은 사과를 요구하지 않았지만
    사과받아
지난 5월 27일 히로시마를 방문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원폭 피해자인 모리 시게아키 씨를 따뜻하게 포옹, 우회적으로 사과했다. 사진=AP/뉴시스
  2000년 일본 와세다대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다. 한국에 반감을 가진 보수 성향의 T군이 있었다. 반한(反韓) 성향의 일본인이 그렇듯 본인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데 한국인은 감정적이고 다혈질이라 믿는 친구였다. 한국에 1년간 체류하면서 구석구석을 누벼, 한국의 장단점을 나름대로 집요하게 파악한 친구였다.
 
  당시는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한국 음식 붐 등 우호적 기운이 싹트는 반면,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등 민족주의적 캠페인이 먹혀들어 묘한 긴장이 감돌 때였다. 우익의 역사관을 대변하는 고바야시 요시노리의 《오만주의 선언》이라는 만화책이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 꽤 반향을 불러일으키던 시기이기도 했다.
 
  ‘동아시아국제관계론’ 수업시간에 결국 T군과 한판 붙게 됐다. 동아시아 민족주의의 원인과 해결책을 주제로 토의하다 일본이 과거사를 사과할 필요가 있느냐의 문제로 번졌는데, 이 친구가 《오만주의 선언》에서나 나올 법한 주장을 하는 것이다. 즉 “전쟁이란 것은 애초 선악(善惡)이 없으며, 승자가 패자를 단죄하여 악(惡)이라 규정할 뿐, 선악의 관점에서 전쟁을 재단하고 전쟁 수행 과정에서 발생했던 일을 사과한다는 것은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방약무인(傍若無人)도 유분수라는 생각에 조목조목 그 주장의 논리적·윤리적 오류를 지적했지만, T군은 굽히기는커녕 더 강하게 “한국에 수차례 사과했지만 그때마다 사과 요구의 강도가 높아지는 것을 경험했으니 한국에 더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지켜보던 일본인 학생들이 이 논쟁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일본인이기에 갖는 울분과 처연함
 
  웬만하면 넘어가려 했는데 손 좀 봐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한마디 던졌다. “미국도 원폭(原爆) 투하에 대해 일본에 사과할 필요가 없겠네요?” T군의 눈빛에 강렬한 적의가 떠오르다가 이내 낭패의 기운이 감돌았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표정의 변화를 분명히 읽을 수 있었다. T군의 입 주위가 씰룩거리더니 이윽고 힘없이 내뱉었다. “원폭 문제 얘기입니까?” 이후 T군은 나를 노려볼 뿐이었다.
 
  원폭 문제는 일본인들에게 민감하고 아프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이 교차하고 아무리 자신들이 전쟁을 일으킨 원죄가 있다고는 하지만 14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꼭 그래야만 했나’ 하는 미국에 대한 원망을 지울 수 없는 기억의 상징이다. 좌우익 이념이 무의미한, 울분과 처연(悽然)함의 복합적인 심정이 있다.
 
  다음날 A4 한 장 분량의 페이퍼를 써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배포하였다. “역사인식의 문제는 처한 입장에 따라 같을 수는 없겠지만 민족자결, 주권평등의 원칙이 지도적 이념이 된 현재의 국제관계 속에서 전쟁의 비인도성, 식민지 지배의 부당함을 굳이 당시의 시제법(時際法)을 들먹이며 정당하고 합법적이었음을 강변하는 것이 미래를 향한 인식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일본 제국주의와 군국주의로 인해 가장 혹독하게 인권이 침해당하고 비참한 삶을 강요당한 것은 일본인 자신들이다. 그러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깊이 자각하고 굳은 결의를 해야 하는 것은 누구보다 일본인 스스로를 위한 것이 아닌가. 그 과정에서 일본이 과거 피해를 입은 주변국에 대해 가해자의 입장에서 역사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조금은 더 배려하고 양보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 동아시아의 민족주의를 완화하고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일본이 감내해야 할 역사적 책무가 아닌가”라는 요지였다.
 
  그 페이퍼를 돌린 후 그전까지는 알지 못했던 일본인 학생들이 먼저 인사를 건네왔다. 나중에 들어보니 평소 T군이 자기중심적인 역사인식을 강변하는 것에 반감이 있었으나, 대놓고 뭐라 하기도 뭐한 분위기여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내가 나서서 그 친구 기를 꺾어주어서 통쾌했다는 것이었다.
 
  서양 학생들은 일본이 좋아 일부러 유학 온 친구들이어서 그런지 이 논의에 개입하는 것 자체를 꺼렸다. 다만, 원폭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대다수의 서양 학생이 일본에 동정적이었다. 중국 저장성(浙江省)에서 온 Y군은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부분에서는 내게 동조했지만 서양과 일본에 대한 피해의식과 그로부터 비롯된 자기중심적 민족주의 성향은 T군보다 더 강렬했다.
 
 
  루스 전 주일미국대사의 히로시마 위령제 참석
 
2010년 8월 히로시마 위령제에 참석했던 존 루스 전 주일미국대사.
  5월 27일 미국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방문했다. 한국에선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지만,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이 갖는 역사적 의의는 간단치 않다. 그저 일본에 면죄부를 주고 아베 정권에 선물을 안기고 중국을 견제하는 정략적 제스처로 폄하하는 것은 본질을 놓치는 것이다.
 
  미일 간의 해묵은 감정의 골이 메워졌고, 동맹은 더 견고해졌다. 한 편의 잘 연출된 드라마가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키듯 두 나라 국민은 서로를 더 깊게 이해하게 됐다. 역사의 아픔을 초극(超克)하여 미래를 향해 더 단단히 결합시킨 역사적 이벤트가 어떻게 가능하였을까라는 전략적 독해가 여기서 필요해진다.
 
  오바마의 발걸음을 히로시마로 이끈 것은 누구 또는 무엇일까? 일각에서는 아베 정권의 외교적 승리라고 평한다. 아베 정권의 적극적 노력이 주효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이와 관련하여, 2009~2013년 주일미국대사로 재임한 존 루스(John Roos) 전 대사는 방문 추진의 경위에 대해 신뢰성 높은 견해를 제시한다.
 
  루스 전 대사는 일본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오바마는 취임 당시부터 히로시마 방문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고 이를 공개적으로 언명해 왔다”고 증언한다. 루스 전 대사는 2010년 현직 미국대사로는 최초로 매년 8월 6일 열리는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 위령제에 공식적으로 참석하여 화제가 됐던 인물이다.
 
  루스 전 대사는 “당시 미국대사의 원폭 위령제 참석이 민감하게 다뤄질 수 있음을 감안하여 워싱턴과 긴밀히 협의했는데 국무부나 백악관의 반대는커녕 전폭적인 지지(tremendous support)를 받았다”고 밝혔다. 특히 최종 재가권자가 오바마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위령제 참석에 어려움이 없었다고 했다.
 
  사사에 겐이치로 주미일본대사도 “오바마 정권 초기부터 미국 정부로부터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방문하는 데 관심이 있다는 언질을 받아왔다”고 CNN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아베가 아니라 오바마의 승리
 
  오바마는 ‘핵무기 없는 세상’과 함께 미국의 도덕성이 논란을 빚은 국가와의 관계를 전향적으로 진전시키는 것을 최우선적 외교정책의 목표로 삼았다. 특히 후자와 관련, 오바마는 “우리의 현재와 미래가 과거의 ‘포로(imprisoned)’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역설하면서 재임 기간 내내 미국의 부(負)의 유산(negative legacy)을 치유하는 데 역점을 기울였다.
 
  ‘과거의 응어리를 넘은 여정(Trips beyond old grudges)’으로 표현되는 쿠바·미얀마·베트남 방문 외교는 미국의 국익과 함께 오바마의 신념과 소신이 담긴 업적이다. 오바마의 외교정책과 개인적 신념에 비춰볼 때, 히로시마가 ‘과거의 응어리를 넘은 여정’의 종착지가 되는 것은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수순이다. 일본 외교의 승리가 아니라 오바마 대통령의 소신과 용기의 승리인 것이다.
 
  두 번째로, 오바마가 가고 싶다고 마음대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간 대사건 대통령이건 미국 고위 인사의 히로시마 방문은 ‘사과(Apology)’라는 민감한 문제가 걸림돌이 돼 왔다. 오바마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였을까?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을 사과 문제로 접근하면 정치, 외교적 부담이 완전히 다른 성격의 것이 된다. 좋은 의도가 논란만 낳을 수도 있는 위험성이 있다. 이번 방문의 성사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루스의 2010년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 위령제 참가였다. 루스 전 대사는 같은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위령제에 참석한 것과 관련) 여태까지 단 한 사람도 나의 방문에 시비를 걸거나 사과를 요구한 사람은 없었다.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가는 것(just going)’ 그 자체가 중요함을 강조했다. 흥미로운 것은 위령제 참가 과정에서 개인이건 일본 정부건 누구도 나의 방문을 사과로 여기지 않았고 사과를 요구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미일관계를 위해 그저 미국 대통령이 그 자리에 있는 것(presence), 말 한마디(A word), 그리고 상징성(symbolism)이었다.”
 
 
  “사과를 요구할 수만 있다면…”
 
  루스는 특히 위령제 당시 피폭 생존자가 단상에서 내려오는 자신을 향해 큰 박수로 환호(Applaud)하는 것을 보고 확신이 생겼다고 한다. 자신의 위령제 방문과 관련된 경험이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이 가져올 여러 가지 반향(implications)을 검토하는 토대가 되었고, 자신이 확신을 갖고 이제는 미국의 정상이 히로시마를 방문할 때(right time to go)라고 오바마에게 건의했다고 한다.
 
  미국 정부는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을 발표하며 사죄 성격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일본 정부는 국내적 비판 여론 우려에도 불구하고 “희생자에 대한 애도의 뜻을 표하고 그러한 참화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강한 메시지를 발신하는 것”이라는 미국의 입장을 그대로 인용(認容)하고 어떠한 이의도 조건도 제기하지 않았다.
 
  히로시마 방문 직전인 5월 22일 교도통신이 원폭 투하로 직접 피해를 입은 피폭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미국에 사죄를 원하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78.3%가 “원치 않는다”고 답했으며, 방문 직후 실시한 일반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98%가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응답자의 74.7%는 “오바마 대통령이 원폭 투하에 대해 사죄할 필요가 없다”고 답했다.
 
  미국에 대한 사과 요구의 문제는 일본 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한 피폭자는 자신은 끔찍한 무기를 사용한 미국을 용서할 수 없으며, 분명히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고 언론에 말했고, 평생 후유증을 걱정하며 사는 피폭자 3세는 “사과를 요구할 수만 있으면 요구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다수의 일본인은 원치 않는 사과를 강요해서 제자리에 머무는 것보다 미래로 향하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고 오바마를 환영했다. 오바마가 ‘과거의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 내린 결단에 일본인들도 ‘사과는 사과하는 쪽의 몫이며 강요받아 하는 사과는 의미가 없다’는 일본적 사죄관(謝罪觀)으로 화답한 것이다.
 
 
  오바마의 일본식 사과
 
  많은 한국인은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인 일본인이 무슨 권리로 미국에 사과를 요구하는가? 미국이 사과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는 인식을 보인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피해를 입은 우리 입장이고 보편적인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일본의 인식이 반드시 자가당착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주목해야 할 부분은 ‘미국이 사과해야 하는가 아닌가’는 방문이 끝나고 보니 별 의미가 없었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이 미국에 사과를 바라는 것은 ‘인류의 존립을 위협하는 엄청난 파괴력의 비인도적 무기를 사용하여 무고한 시민을 무차별적으로 살상한 것을 인정하고 그 희생자에 대해 애도의 뜻을 표해 달라’는 의미이다. 히로시마 방문이 사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누차에 걸쳐 강조한 오바마는 매우 완곡한 표현이지만, ‘과학이 만들어낸 끔찍한 파괴력에 상응하는 윤리의 필요성, 원폭 투하로 인해 무고한 피해자가 겪어야 했던 고통과 그에 대한 애도,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인도(人道)의 정신에 바탕한 엄중한 책임’을 역설했다.
 
  사과라는 표현이 명시적으로 있건 없건 일본인들이 바랐던 반성과 애도와 위로의 내용이 포함된 것이다. ‘사과는 사과하는 쪽의 몫’이라는 일본인의 사죄관이 열어놓은 문을 통해 오바마는 ‘사과라는 말이 들어가야만 사과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화법으로 호응한 것이다. 오바마는 사과하지 않았지만 사과했고 일본인들은 사과를 요구하지 않았지만 사과받았다.
 
 
  오바마의 포옹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이 한국에 던지는 의미의 독해는, 왜 오바마가 한국인 원폭 피해자 위령탑에 참배하도록 하지 못했는가를 외교 당국에 따지는 수준에 머물러선 안 된다.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바르샤바 전몰자 위령탑 앞에서 무릎 꿇은 장면이 유럽의 역사 화해를 이끌어내었다면,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은 동아시아에서 역사 화해를 이끌어낼 수 있는 모델이자 모멘텀(momentum)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일 지도자와 국민이 영감을 얻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가해국 정치지도자의 소신과 행동이 역동성(dynamics)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 시 일본인들은 한 장의 사진에 큰 감동을 받았다. 오바마가 원폭 생존자인 모리 시게아키 씨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모습이다. 어떤 수사(修辭)와 웅변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진한 인간애가 거기 담겨 있다. 같은 이념과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 사이에 역사의 화해라는 것은 생각보다 그리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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