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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 출신 우동집 주인장의 일본이야기

원폭 문제를 보는 일본인들의 시각

글 : 신상목  기리야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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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법원, 원폭 피해자들이 낸 시모다 소송에서 “미국의 원폭투하는 국제법 위반이지만,
    피폭자들에게는 청구권 없어”
⊙ ‌일본 정부, 원폭투하 직후에는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다가 요시다 정부 때는 “위법행위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고
⊙ “스스로 약해서 지고도 승자의 책임을 논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당시 존재하지 않는 법을
    기준으로 소급해서 책임을 묻는 것은 국제법의 원칙에 맞지도 않는 것이다”

신상목
1970년생. 연세대 법대 졸업. 외시 30회 합격 /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외교부 G20정상회의
행사기획과장, 핵안보정상회의 준비기획단 의전과장 역임. 현 기리야마 대표 / 저서 《일본은 악어다》
일본 히로시마에 있는 평화기념관을 둘러보는 일본 초등학생들. 일본인들은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을 ‘역사적’이라며 환영하고 있다. 사진=배진영
  5월 27일 이세시마(伊勢志摩)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 참석차 방일(訪日)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히로시마시(廣島市)를 방문하기로 했다. 미·일 양국 언론과 여론 일반은 지난날의 아픈 역사를 극복하는 ‘역사적 방문(historic visit)’으로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지만 일본 내에서는 원폭(原爆) 투하의 비인도성 및 그에 대한 미국의 정식 사과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미국 정부는 핵무기 없는 세상의 중요성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목적일 뿐 원폭투하에 대한 사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지만 일부 미국 보수층 사이에는 굴욕적 ‘사과 외교’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 일부 한국 언론은 “일본의 총리도 위안부 피해자를 찾아 사죄하는 진심 어린 ‘참회(懺悔) 외교’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라며 금번 방문의 의의를 일본 비판론으로 전환하기도 했다.
 
  식민지 피지배 경험이 있는 한국은 일본에 대해 원한(怨恨)이 있지만, 일본은 일본 나름대로 미국에 대해 통한(痛恨)이 있다. 바로 원폭투하 문제이다. 한국이 위안부 문제로 일본에 대해 ‘뚜껑이 열린다’면 일본은 원폭 문제로 미국에 대해 ‘속앓이’를 한다.
 
 
  시모다 재판
 
  195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피폭자(被爆者)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소위 ‘시모다(下田) 재판’이다.
 
  원폭 피해자인 원고(原告)들은 “미국의 원폭투하가 국제법(육전규칙에 관한 헤이그협정-전쟁무기는 원칙적으로 비전투원, 비전투시설에 사용되어서는 안 되며, 필요 최소한의 고통만 가해야 한다)을 위반한 불법행위로서 피해자들은 미국에 대하여 배상청구권이 있으나, 일본 정부가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의해 청구권을 포기함에 따라 피해자가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었는바, 그에 대한 책임이 있는 일본 정부가 피해자에게 배(보)상을 하여야 한다”는 취지로 국가를 상대로 한 소(訴)를 제기하였다.
 
  1. 미군의 원폭투하는 국제법 위반인가, 2. 위법이라면 피해자 개인이 미국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가, 3. 그러한 청구가 미국 재판소에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있는가, 4. 청구권이 있다 하여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의해 포기된 것인가, 5. 일본 정부가 그것을 포기하였다면 그것은 위법인가, 6. 포기한 것이 위법은 아니라 할지라도 포기하였다면 국가는 손실보상이라도 하여야 하는 것인가 등이 재판부가 논파(論破)해야 할 쟁점 영역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재판소는 미국의 원폭투하를 국제법 위반이라고 판단하되, 원고의 청구는 기각하였다. 재판부는 “국제법의 주체성은 국가에만 인정된다. 미국은 전시 군(軍)의 행위에 대해 개인의 배상청구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일본의 재판소는 미국 정부를 재판할 권한이 없으므로 원고의 청구권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지 의심된다. 따라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의해 상실된 원고의 청구권은 존재한다고 인정할 근거가 없다”고 판시(判示)했다. 재판부는 “피폭자에 대해 충분한 구제책이 시행되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인바, 이는 재판부의 권한을 벗어난 일이나 일본 정부의 정책 빈곤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원고의 청구권은 기각되었지만, 이 재판을 통해 원폭의 참상과 살아남은 피해자의 비참한 처지에 대해 사회적 관심과 주의가 환기되었다. 이후 일본 정부는 피폭자의 의료지원과 인도적 생활지원을 위한 일련의 국내법을 제정하였다. 또한 이 재판은 이후 성립된 국제 인도법(人道法) 및 ‘핵무기의 사용 또는 그 위협’의 국제법상 불법행위 규범을 형성하는 데에도 기여하였다.
 
 
  일본, 원폭투하 직후엔 “인류문화에 반하는 범죄”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된 후, 일본 정부는 “인류문화에 반하는 새로운 유형의 범죄”라고 규탄했다.
  재판부는 미국의 원폭투하를 국제법 위반으로 판단하였지만, 이에 대한 일본 정부의 속내는 복잡하였다. 일본 정부가 대외적으로 표명한 입장은 여러 차례 변화하였다.
 
  1945년 8월 원폭투하 직후 일본 외무성은 다음과 같은 외교적 항의서한을 미국에 발송하였다.
 
  “교전자는 적을 타격하기 위한 수단의 선택에 있어 무제한의 권리를 향유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국제법의 확고한 원칙이다. 따라서 우리는 불필요한 고통을 야기하는 무기, 발사체, 물질을 도입해서는 안 된다. 이는 〈육전규칙에 관한 헤이그협약〉의 부속서에 명시되어 있다. (중략) 미국이 이번에 사용한 폭탄의 무차별성과 잔인성은 독가스나 동종 무기를 훨씬 능가하며, 이러한 무기의 사용은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금지된다. 미국은 국제법과 인도(人道)의 근본적 원칙을 무시하였으며 제국의 도시에 대해 무차별적 폭격을 가하였고 이는 수많은 어린이, 여성, 노인들의 살상과 수많은 사원, 학교, 병원, 민간 거주지의 파괴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무차별성과 잔인성에 있어 기존의 어떤 무기도 월등히 능가하는 새로운 폭탄을 사용하였다. 그러한 무기의 사용은 인류문화에 반(反)하는 새로운 유형의 범죄이다.”
 
  히로히토 천황도 항복담화에서 “적은 그 힘을 알 수 없는 새롭고 잔인한 무기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우리가 싸움을 계속한다면 일본의 완전한 멸망에 봉착하게 될 것이며 이는 동시에 인류 문명의 종말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라고 언급하면서 원폭이 ‘인류 문명의 종말’을 초래할 수 있는 반인륜적 무기라고 주장하였다.
 
 
  요시다 정부, “원폭투하, 위법행위라고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일본 정부의 입장은 시모다 재판 이후 180도 바뀌게 된다. 피폭 피해자로부터 국가배상의 청구를 받은 일본 정부는 피고의 입장에서 재판 당시 다음과 같이 항변하였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이 국제법을 위반하였는가에 대해서는 누구도 결정을 내릴 수 없다. 더구나 핵무기 사용 금지에 관한 국제적 합의가 아직 형성되지 않았음에 비추어 볼 때, 원폭투하를 섣불리 위법행위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중략) 국제법의 관점에서 전쟁은 근본적으로 적을 항복시키기 위해 필요한 모든 수단을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다. 중세 이래 국제법에 따르면, 해당 시점에 채택된 관습법과 조약이 부과한 조건을 준수한다는 전제하에, 전투원은 전쟁의 특별한 목적 달성을 위해 적을 타격하기 위한 수단을 선택할 수 있다.”
 
  일본의 이러한 입장 변화는 세 가지 측면에서 비롯되었다. 첫째 요시다(吉田) 총리를 비롯한 전후 수습 내각의 ‘어차피 진 전쟁 구질구질하게 굴지 말고 깨끗하게 승복하는 것이 일본의 정신’이라는 무사도(武士道)적 가치관, 둘째 전후 일본 복구 및 미·일 동맹체제 강화가 최우선의 당면과제인 만큼 미국과의 전쟁행위 관련 쟁송으로 미·일관계에 부담이 되는 것을 봉쇄하기 위한 체제적 필요성, 셋째 미국의 전쟁범죄 추궁을 위하여 당시 존재하지 않았던 국제규범 위반을 들먹일 경우 그러한 추궁이 고스란히 일본에 돌아올 수 있다는 쌍방행위자로서의 고려 등이 그것이다.
 
  일본의 강경 좌파들은 일본 정부의 ‘원폭 범죄 규정 회의론’을 신랄하게 비난하면서, “원폭투하야말로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반인도적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전쟁을 일으켰다는 원죄 때문에 미국도 일본도 그 참상과 피해에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분개한다. 그들은 나아가 반국가주의의 입장에서 미국에 대해서는 전쟁범죄의 책임을 묻는 한편, 원폭투하의 동기를 제공한 히로히토 천황의 전쟁수행 책임을 묻는 것을 가장 중요한 활동의 기둥으로 삼고 있으며, 이러한 전통은 지금도 계승되고 있다.
 
  반대편에 서 있는 일본 정부는 대미 관계에서 일본 정부의 운신의 폭을 좁히는 부담이 되지 않도록 원폭 문제에 대해 자중(自重)한다는 기본 입장에는 당시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다. 이에 따라 원폭 문제는 지금도 일본인들의 정치성향이나 역사인식을 가르는 가장 두드러지는 척도의 하나가 되고 있다.
 
 
  원폭 문제와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
 
  한국에서는 공감을 얻는 것이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원폭투하 문제는 위안부 문제와 동전의 양면으로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원폭 문제에 대한 일본 내 피해 인식에 대해 가증스런 ‘피해자 코스프레’로 여기고 분개하는 한국인들에게는 공감의 여지가 적겠지만, 일본 정부와 다수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상당수 일본인들은 전쟁 시기에 벌어진 참화를 원폭 문제에 적용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바라보고 해석한다.
 
  즉, “원폭과 같은 잔혹한 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끔찍한 일이지만, 전시에 벌어진 일을 평화시의 개념으로 생각할 수는 없다. 일본은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하였다. 스스로가 약하여 지고도 승자의 책임을 논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더구나 법적으로 당시 존재하지 않은 법을 기준으로 소급해서 책임을 묻는 것은 국제법의 원칙에 맞지도 않는 것이다. 비참한 고통을 겪어야 했던 수많은 희생자가 있는 아픈 역사이지만, 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피해자가 받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 그리고 같은 실수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교훈을 얻는 것으로써 작금의 아픈 역사는 극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큰 틀에서 바라본 일본 주류(主流)의 전쟁 또는 역사 인식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은 일본 사회가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의 저변에도 깔려 있다고 봐야 한다.
 
  아울러 국제안보 환경의 변화에 따라 점점 보수화하고 있는 일본 사회가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원폭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 변화를 가져온 냉철한 현실주의적 시각이 깔려 있다. 즉, “국익을 위해 사력을 다해 힘을 겨룬 후 그 승패에 승복하는가? 전쟁을 치를 정도로 적대하던 관계라 할지라도 미래를 위해 과거를 넘어서는 전략적인 사고를 하고 있는가? 자신이 다칠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을 함부로 휘두르는 어리석은 짓을 하는가?”라는 문제의식이 투영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한 그들의 시각으로 바라본 한국은 과연 어떠한 나라인가? 반대로 한국은 어떠한 시각으로 일본을 바라보고 있는가? 광복 70년을 맞아도 여전히 얽혀 있는 한일관계의 꼬인 실타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으로부터 그 원인과 해결의 단초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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