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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선거 현장 체험기 ①

엎치락뒤치락… 그러나 民意 모으는 과정

글 : 윤정호  조선일보 워싱턴 특파원  jhyo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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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대선 예비후보로 나선 힐러리 클린턴(가운데) 전 국무장관이 가족들과 함께 아이오와주 에이브러햄 링컨고등학교에서 선거 유세를 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 선거의 해가 밝았다. 선거 초반 판세는 예상과 달리 대혼전이다. 민주당에서 두말없이 대권 주자가 될 것으로 예상했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70대의 노정객 샌더스에게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에서는 간발의 차이로 이겼으나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는 큰 표차로 패배했다. 공화당에서는 아웃사이더인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예상 밖의 돌풍을 일으켰으나 아이오와에서 2위에 그쳤고, 뉴햄프셔에서 1위로 살아났다. 자존심 상할 법도 한데, 한 자릿수 지지율에도 여전히 버티는 후보들이 많다.
 
  이러다간 미국에서 이례적으로 재벌이 대통령 후보가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쯤, 첫 경선에서 돌발변수가 발생했다. 전국 지지율 1위 자리를 내놓은 적이 거의 없던 트럼프를 엉뚱한 보수주의자 테드 크루즈(텍사스) 연방상원 의원이 꺾었고, 45세의 초 미남 연방상원 의원 초선인 마코 루비오(플로리다)가 아이오와주(州) 코커스에서 트럼프에 근접한 3위로 나섰다. 선거에 나선 후보들은 속이 타고 마음이 졸여 초주검이겠지만, 세상에서 제일 재미난 게 예측 불가한 선거판 구경이다. 그것도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는 현장에서 후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것만큼 흥미로운 일도 없다. 한 차례 폭풍(아이오와)이 몰려가고 또 다른 ‘경선 폭풍’(뉴햄프셔)에서는 여론조사 예상대로 결과가 나왔다. 엎치락뒤치락하는 미국 대통령 선거를 지켜보면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상징인 나라라면서 뭐 이런 시스템이 있나 싶은데, 끝나고 보면 “아, 이게 아래에서부터 위로 민의를 모아가는 과정이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자존심 강한 첫 경선지 아이오와의 주민들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선 70대 老政客 버니 샌더스가 아이오와주 뮤직맨스퀘어(Music Man Square)에서 연설하고 있다.
  아이오와의 주도(州都)인 디모인에는 4년마다 수천 명의 기자가 몰려든다. 각 당의 후보를 뽑는 첫 경선이 치러지기 때문이다. 주도치고는 다소 작은 듯 보이는 디모인 공항은 이때만큼은 뉴욕이나 시카고 부럽지 않다. 방 잡기도 어렵고, 비행기 예약은 서너 달 전에는 해야 낭패를 보지 않는다. 디모인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시카고 공항에는 커다란 방송용 카메라를 든 기자들의 모습이 곳곳에서 보였다. 2월 1일 디모인으로 향하는 비행기의 스튜어디스는 “이번 비행기에 방송카메라만 10대가 실렸다”고 말했다.
 
  인구 40만명의 디모인에는 가는 곳마다 지지 후보들의 선전간판이 눈에 띄었다. 시내에서 힐러리나 샌더스, 트럼프나 크루즈를 지지하는 티셔츠를 안 입으면 간첩 같았다. 작은 도시의 정치열기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길을 가는 시민에게 누구를 지지하느냐고 물으면 곧바로 답이 나왔다. 지지하는 이유도 명확했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자신들이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과시하듯 자존심도 강했다. 한 시민은 “우리가 미국의 대통령을 결정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어디를 가도 선거 이야기였고, 술 한잔하면서도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은근히 선전하면서 자기 쪽으로 끌어들이려 했다. 눈발이 날려 사람들이 있을까 싶던 힐러리 유세장에는 예정시각 훨씬 전부터 주민들이 길게 늘어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워싱턴포스트》는 아이오와 경선을 앞두고 이곳에 대한 특집을 했다. 가볼 만한 곳을 소개했는데,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배경이 된 ‘로즈만 브리지’, 존 웨인의 생가, 그리고 끝없이 펼쳐지는 옥수수밭을 내세웠다. 그만큼 볼 만한 게 없다는 뜻이었다. 그런데도 정치에 대한 자부심만은 대단했다.
 
  각 후보의 성격은 선거사무소를 운영하는 방식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샌더스 캠프는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주차장에는 샌더스의 사진으로 도배된 대형 홍보 버스가 자리 잡고 있었다. 사무실 안은 시끌벅적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 전날 여론조사에서 샌더스가 힐러리를 오차범위 내에서 따라잡고 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사무실 가득 100여 명의 지지자가 빼곡히 들어와 웃고 떠들고 구호를 외쳤다. 히스패닉계 젊은이 10여 명은 샌더스가 자신의 입장을 가장 잘 이해한다며 ‘샌더스! 샌더스!’를 소리치며 분위기를 돋웠다. 샌더스 얼굴 수십 개가 새겨져 있는 셔츠를 입은 한 자원봉사자는 “서민의 삶을 가장 잘 이해하는 후보가 바로 샌더스”라며 승리를 확신했다. 한쪽에는 피자 박스가 가득했고, 아무나 사무실에 들어와 먹어도 뭐라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한쪽 벽에는 자원봉사자들이 손 글씨로 제작한 홍보물도 있고, ‘우리가 버니를 사랑하는 이유들’이라는 롤링페이퍼도 걸려 있었다. 전국에서 한 유세 참석자들의 숫자도 적혀 있었고, 버니의 정책도 정리해 놓았다. 빨간색 버니 티셔츠를 맞춰 입은 자원봉사자 7명은 구석에 있는 원형 테이블에 모여앉아 당원들에게 홍보 전화를 돌리고 있었다. 질문지에는 ‘전화를 안 받으면 3번까지 더 하라’는 지시사항도 적혀 있었다. 누구를 지지하는지, 코커스에 참석할 것인지, 교통수단은 있는지 등도 점검하도록 돼 있었다. 미국 선거는 우리처럼 엄격하지 않았다. 전화 홍보는 무차별적으로 할 수 있었고, 투표장에 가기 어려운 사람에게 이동수단을 제공하는 것도 아무 문제가 없다.
 
 
  선거사무소를 보면 후보가 보인다
 
  샌더스 사무실에서 10여 분 떨어진 힐러리 캠프는 다소 체계적이었다. 샌더스 캠프가 열린 공간이었다면, 힐러리 캠프는 입구에 손님을 맞는 자원봉사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샌더스 캠프에서는 아무에게나 말을 걸어도 괜찮았는데, 이곳에서는 1차 제지를 당했다. 홍보담당자와 연락해 허락을 받아야 취재가 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우여곡절 끝에 ‘허락’을 받고는 자원봉사자, 선거 캠프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선거 캠프에서 이른바 ‘스태프’와 자원봉사자는 차이가 있었다. 자원봉사자는 말 그대로 봉사하는 역할이고, 스태프는 유급 직원이었다. 기자에게 말을 할 수 있는 수준도 달라, 자원봉사자는 자신이 하는 일만, 스태프는 선거 전략이나 판세까지 말할 수 있었다. 힐러리 사무실은 공직경험이 많은 후보답게 상당히 조직화해 있었다.
 
  힐러리 캠프에서는 9세짜리 자원봉사자가 유권자에게 전화를 걸어 지지를 호소하는 장면이 가장 눈에 띄었다. 할머니 손을 잡고 사무실에 나온 에밀리는 “여성 대통령이 꿈”이라며 “힐러리가 먼저 그 길을 열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에 자원봉사에 나섰다”고 말했다. 미국 선거에서 나이는 장애가 되지 않았다. 누구든 선거운동을 할 수 있고, 제약도 없었다. 함께 나선 할머니 코니 힐(70)은 “선거 벽보를 보던 에밀리가 하루는 ‘나도 거들고 싶다’고 해 그때부터 데리고 다닌다”고 말했다.
 
  공화당 선두주자였던 트럼프의 사무실은 다른 캠프와는 전혀 달랐다. 시내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었고, 밖에 세워놓은 지지 선간판이 없었다면 사무실이 있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평소 유세 때 기자들에게 싫은 소리를 하고, 심지어 쫓아내기까지 하는 후보를 닮아서인지,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벽에 부딪혔다. 입구에서 안내를 담당하던 자원봉사자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약속을 하고 왔느냐”며 가로막았다. 곧이어 나온 다른 관계자는 홍보담당자의 전화번호를 주면서 “이 사람하고 통화하라”고 말하고는 나가달라고 했다. 사무실 안도 보여줄 수 없다고 했고, 선거 전략이 뭐냐, 자신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아무 답을 하지 않았다. 언론에 대해 상당한 경계심을 보였고, 접근까지 막는 폐쇄형이었다. 어떤 지지구호나 트럼프의 사진도 한 장 걸려 있지 않았다.
 
  반면 크루즈의 사무실은 시끌벅적했다. 70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전화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1일 1만5000통’이 목표로 정해져 있었다. 크루즈의 지역구인 텍사스에서 일주일 전부터 왔다는 제임스 설먼(73)은 “어제 하루에만 전화를 200통 이상은 한 것 같다”며 “신뢰할 수 있는 보수주의자는 크루즈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계속 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크루즈는 아이오와 99개 카운티 모두를 발로 뛰는 유세를 선거 당일 완성했다. 아버지가 목사란 점을 충분히 활용해 이 지역에서 영향력이 큰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전략이었다.
 
  각 후보는 첫 경선 승리를 위해 막판까지 유세에 집중했다. 힐러리는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임신한 딸 첼시까지 총동원해 국정경험을 바탕으로 한 안정적 변화를 강조했고, 샌더스는 ‘보통 사람의 정치, 부자 정치 끝장’을 강조했다. 트럼프는 성공한 사업가로서의 자신의 신화를 부각했고, 크루즈는 보수의 아이콘임을 앞세웠다. 특히 이들 모두는 지지층의 투표에 ‘목숨’을 걸었다. 당일 눈폭풍이 온다는 일기예보에 트럼프는 “아이오와인이 눈을 두려워하느냐. 투표장에 가지 않으면 내가 지금까지 고생했던 일이 허사가 된다. 투표하라”고 압박했다.
 
 
  희한한 민주주의 실험장, 아이오와 코커스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의 두 주자(도널드 트럼프와 테드 크루즈)의 지지율 격차가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말로만 듣던 아이오와 코커스 현장은 참 어수룩했다. 2월 1일 밤 찾은 디모인의 몬로 초등학교에는 공화당과 민주당원들이 줄을 서서 한 시간째 코커스 장소로 들어가고 있었다. 체육관, 카페테리아, 도서실, 강의실 등 4곳에서 코커스가 동시에 열렸다. 공화당이 2개 지역구, 민주당이 2개 지역구. 입구에 신분 확인을 하는 절차가 있었지만, 아무나 코커스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현장에서 당원으로 등록해 투표할 수도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난생처음 투표를 하는 젊은이들의 모습 또한 많이 보였다. 샌더스 열풍이 이유였다. 한 대학생은 “코커스에는 처음 나온다”며 “샌더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나왔다”고 즉석 입당원서를 썼다. 주변에는 친구 여러 명이 똑같이 당원 등록을 하고 있었다.
 
  코커스 방식은 민주당과 공화당이 확연히 달랐다. 같은 점은 특별히 정해진 규칙이나 제약이 없다는 점이었다. 우선 공화당은 모인 당원 수를 확인하면, 지지하는 후보를 위해 찬조연설을 할 사람이 있으면 나선다. 없으면 그만이다. 후보별로 제한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숫자도 사실상 제한이 없다. 그렇지만 지나치게 한쪽 사람이 나서서 일방적 주장을 하는 경우는 없다. 몬로 초등학교 도서실에서 열린 공화당 코커스에서는 트럼프 지지자가 먼저 나섰다. 50대의 여성은 “기존 정치가 우리에게 해준 것이 아무것도 없다. 새로운 인물로 새롭게 나라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곧바로 신경외과 전문의 출신인 벤 카슨 지지자가 나섰다. 개인적으로 그의 자서전을 보고 반했다는 이 여성은 한참 동안 자기가 생각하는 카슨에 대해 이야기하더니, 본격적으로 지지연설을 했다. 시간이 10여 분 이상 지났지만, 아무도 제지하지는 않았다. 10명 가까운 후보들이 나선 탓에 지지연설은 계속 이어졌다. 이후 절차는 간단했다.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의 이름을 적어서 반장 선거하듯 내면 된다. 화이트보드에 적힌 후보 이름 옆에 지지자의 숫자가 적히고, 그걸 종합해 본부로 보내면 득표율이 합산된다. 미국 대통령 선거 본선은 한 주에서 1%라도 이기면 주 전체 대통령선거인단을 독식하는 ‘위너 테이크스 올(Winner takes all)’ 시스템인데, 후보 경선 단계에서는 대부분 득표비례로 대의원을 정한다.
 
  민주당 코커스는 어찌 보면 한심해 보인다. 선거의 기본이 직접, 평등, 보통, 비밀선거인데, 이 가운데 비밀선거는 포기했다. 당원 등록과 참석 인원 확인이 끝나면, 임시 의장이 지지하는 후보 측에 그룹별로 모이라고 알린다. 처음 코커스장에 들어왔을 때부터 샌더스 지지자, 힐러리 지지자, 마틴 오말리 전 메릴랜드 주지사 지지자 등 세 부류로 나눠 있었지만, 의장의 지시에 좀 더 그룹별로 구분해 집합했다. 지지연설을 하겠느냐는 임시 의장의 질문에, “노!”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다 아는데 무슨 또 지지연설이냐는 취지였다.
 
  그러고 나서 한 일은 숫자 세기. 객관적인 제3자가 한 명 두 명 꼽아가면서 세는 것도 아니고, 죽 늘어선 지지자들이 ‘하나’ ‘둘’ ‘셋’ 하면서 스스로 숫자를 부른다. 물론 상대 측 참관인이 정확하게 세는지 지켜보지만, 누가 등록한 당원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중간에 끼어들어도 그만이다. 심지어 취재를 하는 기자에게 “왜 줄을 서지 않느냐”고 물어볼 정도다. 집사람의 목이 아파서 대신 번호를 부르는 남편도 있었다. 지역 유력지인 《디모인 리지스터》 기자는 “이게 아메리카”라고 말했다. 부정등록 당원이 있거나, 슬쩍 숫자를 하나 더 헤아려도 어쩔 수 없다는 뜻이었다. 서로를 믿고 신뢰하는 전통이 있기 때문에 이런 엉망진창 같은 시스템이 수십 년을 이어오는 것이었다. 실제 덩치가 산만 한 한 청년은 샌더스 그룹에 속해 있으면서 숫자를 부르지 않았다. 이유를 묻자 “아직 선거권이 없다”고 말했다.
 
  숫자 세기가 끝났다. 샌더스 측 지지자는 총 525명 가운데 252명. 과반이 조금 안 됐다. 힐러리 진영도 이어서 지지자들을 줄 세워 번호를 불렀다. 229명. 오말리 지지자는 28명밖에 안 됐다. 여기서 민주당은 끝나지 않았다. 최소한 확보해야 하는 지지율이 15%로, 오말리 지지자들은 이 기준에 미달해 3가지 가운데 선택을 해야 했다. 샌더스 지지자로 변심하거나, 힐러리 지지자로 돌든지, 아니면 그냥 집에 가든지였다. 양 진영은 오말리 측 지지자를 확보하기 위해 구애전을 10여 분 동안 벌였다. 심지어 샌더스 지지자는 “여기 오면 공짜 도넛을 주겠다”고 말했고, 이에 호응해 “그렇다면 그리로”라며 옮겨가기도 했다. 우리 같으면 매표라고 난리가 날 텐데, 다들 웃고 말았다. 잠시 정리 시간을 갖더니 다시 카운트에 들어갔다. 오말리 지지자들이 새롭게 가세해 처음처럼 숫자 세기가 다시 시작됐다. 최종 결과는 샌더스 측의 근소한 승리였다. 힐러리 측 선거 참관인은 “젊은이들이 너무 많이 나오기에 걱정이 많았는데, 실제 결과도 그렇게 됐다”며 “샌더스 열풍이 거품은 아닌 듯하다”고 말했다. 아이오와 코커스를 웃음거리로 만든 것은 ‘동전 던지기’였다. 민주당 규정 가운데 ‘둘 이상의 그룹이 대의원 1명을 놓고 동률로 경합하면 동전 던지기로 누가 대의원을 잃을지 결정한다’는 내용이 있다. 이 규정이 최소 6군데 코커스에서 적용된 것이다. 《디모인 리지스터》는 동전 던지기에서 모두 힐러리 측이 승리했다고 보도했다. 선거결과를 운에 맡기는 식이 과연 바람직하냐를 놓고는 《워싱턴포스트》 같은 주요 언론도 판단을 유보했다.
 
 
  이변은 선거를 흥미롭게 만든다
 
테드 크루즈 연방상원 의원은 전국 지지율에서 1위 자리를 내놓은 적이 없었던 트럼프를 첫 경선(아이오와 코커스)에서 눌렀다.
  아이오와주 1700여 개의 선거구에서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열린 코커스 결과는 마이크로소프트가 후원한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실시간으로 본부로 전송됐다. CNN, 폭스뉴스 등은 24시간 생방송에 들어갔다. 개표율이 올라가면서 승자의 윤곽이 드러났다. 이변이었다. 전국 지지율 1위 자리를 내놓지 않던 트럼프가 휘청거렸다. 크루즈가 코커스가 끝난 지 30분도 안 돼 28%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일찌감치 승리를 확정지었다. 트럼프는 24%로 2위로 밀렸다. 하지만 이날 최고 승자는 트럼프에 1%포인트 뒤진 루비오였다. 공화당 지도부는 마땅한 주류 후보가 없어 고민하던 차에 강한 면모를 보인 루비오가 가능성을 보이자 환호했다. 루비오는 가장 먼저 기자회견을 갖고는 승자처럼 활짝 웃었다. 크루즈는 기독교 복음주의자의 도움이 결정적이었음을 인정하면서 “신이여 아이오와주를 축복하소서”라는 말로 승리 소감을 밝혔다. 트럼프는 아주 짧게 “좋은 경험을 했다”고 했지만, 표정은 시원치 않았다. 그러고는 즐겨 사용하던 트위터 세계에서 15시간 이상 사라졌다. 그만큼 충격이 컸다는 이야기였다.
 
  민주당은 선거 당일 승자를 발표하지 못할 만큼 팽팽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2일 오전 3시 힐러리의 승리를 선언했지만, 방송사 어디도 이 결과를 그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CNN은 “힐러리가 다시 한 번 자신이 압도적이자 본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후보라는 점을 보여주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힐러리의 패배를 사실상 선언했다. 샌더스는 “사실상 동률”이라며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고, 두 번째 경선이 열리는 뉴햄프셔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힐러리보다 더 열정적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힐러리는 그러나 2008년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뜻밖의 패배를 당하면서 결국 후보가 되지 못한 악몽을 떨쳐냈다는 이유 때문인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사실상의 패배인데도 뉴햄프셔만 지나면 네바다, 사우스캐롤라이나 등에서 우세를 보일 수 있다고 보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민주당은 경선이 끝난 지 6일 뒤 최종 득표율을 수정 발표했다. 힐러리가 49.84%, 샌더스가 49.59%를 각각 얻었다고 말했다. 샌더스 측은 그러나 이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선거구마다 집계오류가 많았다며 재검표를 요구하며 ‘선거 불복’을 선언했다. 《디모인 리지스터》도 “민주당 경선 결과에 상당한 하자가 있다”며 샌더스 편을 들었다.
 
 
  아이오와 경선 결과, 선거판을 바꾸다
 
45세의 미남 정치인 마코 루비오(플로리다) 연방상원 의원은 공화당 대선 경선의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아이오와 경선에서 트럼프에 근접한 루비오는 경선 전과 후가 확연하게 달랐다. 그동안 한 자릿수 지지율로 큰 관심을 받지 못하다가 뉴햄프셔 프라이머리 여론조사에서 2위로 치고 올라왔다. 공화당 지도부는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와 존 케이식 오하이오 주지사,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 등 이른바 ‘주지사 3총사’에게 은근히 사퇴 압력을 가했다. 같은 주류 측 후보끼리 자해하지 말고, 쿠바계로 히스패닉계에 호소력을 갖고 있고, 젊은 패기의 루비오를 밀어주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다. 지도부는 크루즈가 지나치게 보수주의자라 표의 확장성이 떨어지고, 비호감형이란 인식이 많아 지지를 꺼렸다. 하지만 곧 이어진 공화당 토론에서 ‘패기’의 루비오는 ‘경험 부족’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주지사 3총사’에게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 특히 크리스티 주지사는 “루비오가 준비 안 된 후보로 머릿속에 암기한 25초짜리 문장만 계속 되새김질하듯 한다”며 “대통령은 그런 자리가 아니다”라고 쏘아댔다. 실제 루비오는 ABC 주최 토론에서 “버락 오바마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모른다는 허구는 떨쳐버리자. 그는 정확히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다”는 말을 네 번이나 똑같이 되뇌었다. 이 같은 자책점에 순풍을 타는 듯하던 루비오는 뒷심 부족을 뉴햄프셔에서 고스란히 노출했다.
 
  주지사 3총사가 루비오를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루비오가 기세를 올릴수록 자신의 기회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아이오와와 뉴햄프셔에서 연속으로 3위 안에 들지 못하면 경선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특히 선거자금을 1000억원 이상 모은 부시의 경우가 제일 애매하다. 지지율은 바닥인데, 돈은 많다. 경선을 계속하기도 쉽지 않지만, 후원자들 때문에 그만둘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졌다. 이 때문에 전력을 다해 뉴햄프셔 공략에 나서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2위까지 올랐다.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는 1등 경쟁 못지않게 2위 자리를 놓고 더욱 박빙의 승부가 펼쳐졌다.
 
  트럼프는 지지율에서는 다른 후보들에 비해 두 자릿수 이상의 차이로 뉴햄프셔에서 1위였다. 하지만 아이오와에서의 아픈 기억이 그를 괴롭히면서 최후까지 마음을 놓지 못했다. 투표율이 어느 때보다 높았던 뉴햄프셔에서 그러나 일찌감치 승리를 선언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방송사들은 10%도 개표가 되지 않았는데, 트럼프의 승리를 확정했다. 전국 지지율은 여전하고, ‘트럼프 거품’이라는 말이 이제 다시 설 땅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 다음 경선이 있는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한번 더 성공하면,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길이 훨씬 더 넓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눈폭풍에 발 묶인 취재기자들
 
  민주당은 힐러리에 대한 불안감이 아이오와 경선 이후 이어졌다. 특히 개인 서버를 이용해 기밀문건을 국무장관 때 주고받은 ‘이메일 게이트’, 월가에서 받은 수억원대의 강연료, 권력의 부부 세습 같은 악재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지적이 먹혔다. 게다가 뉴햄프셔 프라이머리 직전에는 FBI가 힐러리 이메일을 수사 중에 있다는 사실을 공식 확인하기까지 했다.
 
  민주당 주류 측은 그렇다고 샌더스를 후보로 내세우기는 곤란하다는 생각에 존 케리 국무장관 등의 카드를 놓고 심사숙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은 무소속 출마를 생각하고 있어 힐러리에게는 또 다른 악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대권 주자들의 담화와 토론 수준이 비참할 정도로 따분해 유권자들을 화나게 하고 모욕하고 있다”며 “미국 시민은 더 나은 상황을 마주할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출마 선언 시기와 관련해서는 구체적으로 “3월 초에 유권자들의 투표용지에 자신의 이름을 올릴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반면 샌더스는 아이오와 경선이 끝난 지 24시간 만에 300만 달러(약 36억원)의 후원금을 모으는 등 돌풍을 이어갔다. 특히 새로 기부한 10명 중 4명이 이전에는 샌더스에게 기부하지 않던 사람이란 점은 캠프를 흥분시켰다. 갈수록 광고전, 홍보전이 될 경선 자금을 마련하는 데 청신호가 켜진 것이다. 뉴햄프셔 승리를 통해 더 많은 자금이 들어올 것도 예상된다. 이 때문에 민주당 경선은 장기전에 접어들 것이라는 예측이 일반화하고 있다. 샌더스에게 밀리는 분위기의 힐러리는 ‘여성 대통령’이란 개념을 일찌감치 내세우며 ‘여성의 단결’을 호소할 지경이 됐다.
 
  아이오와 후폭풍은 취재기자들에게도 닥쳤다. 경선 다음날 불어닥친 눈폭풍 때문이었다. 공항에서 10시간을 기다리다 비행편이 취소돼 발이 묶인 경우도 있었고, 다른 도시로 4시간 이상 눈길을 뚫고 달려가 겨우 돌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비행편 취소는 복불복. 먼저 떠나야 했던 동료 기자가 비행편을 구하지 못했지만, 늦은 비행편 탑승객에게는 우회로를 열어주기도 했다. 직항으로 3시간도 안 걸리는 거리를 18시간 만에 둘러왔다. 뉴햄프셔는 프라이머리 전날 눈이 내렸다. 하얗게 쌓이는 눈 속을 뚫고 유세장을 향했다. 미국 동부와 중부가 눈이 많다고는 하지만, 기자들과는 악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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